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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입술은 안돼요
작가 : 시나뉴
작품등록일 : 2019.10.4

- 운명이란 아주 징글징글한 단어다.
지구상에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인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하나
그 사람이 아니면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사랑은 하고 싶은데 자신의 ‘치명적’ 결점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운명이란 게 낭만적이기 보단 웬수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결점 투성이인 자신의 받아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차이는 연애를 반복해야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차이는 연애만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운명의 ‘진리’를 ‘감전키스’를 하는 남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제 3화
작성일 : 19-10-04 22:12     조회 : 186     추천 : 0     분량 : 9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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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예사로움’ 이라고 나와 있다.

 이들의 데이트는 지극히 평범했다.

 티비에 나온 유명한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수는 엄청 배가 고팠는지 입가에 벌건 국물이 묻은 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이었다.

 완벽한 화이트칼라인 그가 맵고 단 떡볶이 한 그릇에 환장한다니...

 반전의 반전이었다. 그녀는 그의 식성에 또 한 번 호감의 단계가 상승하게 되었다.

 윤아는 은근슬쩍 자기 앞에 있는 떡을 장수 쪽으로 밀어놓으면서 수줍게 마음을 표현했다.

 예사롭다.

 흔히 있을 만하여 대수롭지 않다.

 공원에서 노니는 커플들은 주변 상황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이미 옆과 뒤를 돌아볼 수 없는 가리개가 씌어졌다.

 눈동자를 아무리 돌려도 보이는 건 나와 그대뿐이었다.

 보이는 세상에 담기는 건 서로 뿐이니 뭔들 못하겠는가.

 두 사람은 주변에서 보면 애들 장난 하는 것마냥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서로를 온연히 느낄 수 있는 게임을 했다.

 누군가 말했듯, 사랑은 원래 유치한 거니까.

 윤아와 장수는 코끼리 코를 하고 뱅글뱅글 돌았다.

 열까지 하고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데 시야가 빙빙 돌아 이상한 데로 향했다.

 윤아는 의지와 다르게 나무로 가 쾅 부딪혀 쓰러졌다.

 

 "윤아씨!"

 

 마음을 얼마나 쓰는지에 따라 상대의 고통도 많이 내 것으로 떠안아 지는 것 같았다.

 뉴스에서 크게 몇 중 추돌 났다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그대로 심장에 고통을 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수는 자신의 머리가 나무에 찧은 것 마냥 가슴으로 아픔이 느껴지면서 명치가 욱신거릴 정도의 걱정도 덤으로 따라왔다.

 그녀의 어깨를 부축한 순간 이런 오만가지 감정들이 느껴지는 걸 보면서 그는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여자에게 마음을 꽤 많이 썼구나....

 그 순간, 수의 몸이 어느새 윤아 옆에 눕혀졌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멀뚱한 눈으로 그녀를 보자 윤아는 맑게 게인 웃음을 터뜨렸다. 수도 그녀를 따라 어린이가 되었다.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요."

 "내가 보는 하늘도 그런데. 우리 같은 하늘을 보고 있네요."

 

 하늘의 별이 유난히 반짝 거렸다. 별이 쏟아지는 것 같은 밤하늘이 두 사람만 감싸고 있는 듯 했다.

 윤아와 장수는 맞잡은 손을 더욱 꽉 쥐었다.

 별이 우수수 떨어져 두 사람의 심장을 반짝 반짝 뛰게 했다.

 별이 혈관 속으로 스며들어와 손끝으로 옮겨가 맞잡은 손으로 옮겨갔다.

 체온을 담은 반짝거림은 상대를 더욱 눈부시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아름다운 것은 주위를 마비시키는 힘이 있다. 머리는 계속 별이 주는 잔상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다리는 기계적으로 걸어가 자신의의 방으로 이끌었다.

 윤아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자신의 침대에 앉아 있었고, 수의 품안에서 숨결을 나누었다.

 그의 목덜미에서 알싸한 알코올과 톡 쏘는 박하향이 섞인 스킨냄새에 풍겨져 나왔다.

 스킨 냄새가 폐부를 찌르고 차갑게 가라앉았던 체온이 술에 취한 듯 올랐다.

 일정하게 뛰는 그의 심장박동.... 엄마 자궁에서 느끼는 안식처럼 느껴져 스르르 잠이 밀려왔다.

 아쉬움을 주고 포옹을 푼 수는 그윽하게 윤아를 바라보았다.

 에로로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에서 키스를 하고 싶은 강렬한 본능을 읽었다.

 그는 가지에 앉은 눈송이처럼 살포시 눈썹을 내려앉아 조바심을 가득 담아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했다. 짧게 들이킨 숨에서 은은한 비누향이 들어왔다.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삐져나온 붉은 혀가 더듬으며 그녀를 찾았다.

 그러자 혀끝으로 말랑한 젤리의 감촉이 아닌 가시처럼 찌르는 생경한 느낌이 들어왔다.

 입술이 텄나? 의문이 고개를 치켜들려는 것을 찍어 누르고 키스에 집중했다.

 가시 하나하나를 섬세한 혀 터치로 쓸어 내려가는데 텁텁한 잉크 맛이 들어오면서 움찔하게 되었다. 계속 뒷목을 찌르는 이상한 기분에 수는 고민하다가 눈을 떴다.

 눈에 가득 들어오는 게 윤아의 미간이었다. 그의 입술은 윤아의 눈썹을 열심히 애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화들짝 입술을 떼어 혀 끝에 맴도는 속눈썹을 뱉어 내었다.

 유리는 한 번 깨지면 어떤 접착제로도 이어 붙일 수 없다.

 분위기가 유리처럼 깨어져 버렸다. 남은 건 어색한 파편뿐이었다.

 윤아의 천진난만한 웃음으로도 붙어지지 않는 분위기에 그녀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OO엔터테이먼트 대표이사 나대수.

 그는 고졸 중퇴에 로드 매니저 밑바닥부터 굴러서 한 회사의 대표가 된 신화적인 존재였다.

 그자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른 건 톱스타의 대열에 오르기 시작한 제호를 잡아 거대한 타워 팰리스 급으로 만들고 나서부터였다.

 대수가 하루 일과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바로 출근 때이었다.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수 백명의 직원들이 일 하다 말고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는 모습이 꼭 세상의 지배자가 된 것 마냥 한껏 우월감에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출근시의 행복은 채 5분도 유지하지 못하고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한낮의 무료함을 실시간 검색어를 클릭하는 것으로 채우면 시간을 때웠다.

 그런데 벌컥.

 감히 대표실 문을 노크도 없이 여는 예의 없는 놈에 대수가 도끼눈을 세워 노려보았다.

 그러나 우월한 기럭지를 보고 단박에 상대를 알아차린 그는 출근에 보였던 우월한 패기는 어디가고 두툼한 몸집을 작은 책상 구석에 구겨 넣기 바빴다.

 몸은 꾸역꾸역 숨겼다 했어도 바글바글한 아줌마 파머 머리 끄트머리는 숨기지 못했다.

 

 "딱 걸렸어요. 하여튼 굼뜨긴."

 

 책상 위로 얼굴을 배꼼이 내민 나대표는 눈가 주름이 접힐 정도로 억지로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때까지 직원들에게 보였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고 한 없이 비굴한 모습만 남았다.

 

 "어, 우리 우주대스타 왔어?"

 

 제호는 혀를 내두르고는 자연스럽게 소파가 앉아서는 긴 다리를 허공에 휘둘러 척 꼬았다.

 대수는 시린 무릎을 잡고 힘겹게 일어나 겨우 대표 의자에 앉았다.

 

 "캐스팅 얘기 오고 간지 언젠데 깜깜무소식이야. 키스씬 빼주겠대요?"

 "스타. 이 작품은 우리랑 연이 없다 생각하고 그냥 흘러 보내자. 씨에프 찍으며 기다리다 보면 더 좋은 작품이 있을 거야."

 "더 좋은 작품, 더 좋은 작품 하다 흘려보낸 게 몇 갠 데. 나한테 맞는 좋은 작품 기다리다 언제 복귀해요. 나 환갑 넘을 때?"

 

 제호는 환갑의 자신의 주름 진 얼굴이 떠올라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구부정한 허리에 눈가와 이마에 자글자글한 모습.

 하얗게 빛나는 미소를 짓다가 틀니가 퍽 빠져 분홍 잇몸만 들어났다.

 환호에서 경악으로 바뀌는 팬들의 비명이 상상이지만 강렬하게 박혔다.

 그에게 환갑은 천리길처럼 잡히지 않는 막연한 공포일뿐이었다.

 

 "나 대표님. 나부도 나면 줄줄이 무너지는 거 한 두 개 아닌 거 알죠?"

 "우리 우주대스타가 왜 부도가 나. 부르는 게 값인 백지수푠데."

 "지금 감이 영 안 잡히시는 모양인데. 나, 삐걱 거린지 오래에요. 빨리 보수 공사를 하던 싹 다 무너뜨리고 재건축을 하던,

 무너져 파묻히기 전에 뭐든 해야 된다고요."

 

 대수는 무너지는 갑작스럽게 밀려왔다. 나 나대수. 밑바닥 로드부터 20년 동안 진창에서 구르고 구르며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던가. 땡전 한 푼 없이 서울로 상경해 아무것도 먹을 게 없어 프림을 죽처럼 먹으며 땀 흘리듯 뻘뻘 울었던 이십대....

 화풀이용 샌드백이 되어 연예인의 욕과 린치를 참으로 이를 빠드득 갈아왔던 로드 매니저 생활.... 내 오른팔이라 여겼던 친구와 함께한 동업에게 배신을 당해 외팔이로 피를 뚝뚝 흘리며 죽어가던 삼십대....

 화려한 꽃이 피기 전 흙에 파묻힌 어두운 뿌리들이 드러나며 대수는 두려움을 느꼈다.

 스타가 별똥별이 되면 자신도 무너진다.

 이 생각이 어느새 그의 얼굴에 웃음기를 싹 가져가 버렸고, 진지하게 변하도록 만들었다.

 

 "그럼 좀 묻자. 대체 왜 키슬 못하겠단 거야. 나도 영 곤란하다. 매번 캐스팅 얘기 오갈 때마다 이러니. 이유나 자세히 좀 알아야..."

 

 이유.

 제호 살면서 가장 많이 하고, 많이들은 말이었다.

 이러는 이유가 뭐냐... 대체 왜.... 왜....

 자기에게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제호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조차 그 이유를 제대로 모르니 말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왜... 왜... 라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호는 칼 같이 나대표의 말을 끊어내고 자신의 말을 이었다.

 

 "나대표님. 나랑 죽을 때까지 같이 갈 생각 있어요?"

 "당연한 걸 왜 물어."

 "그 얘긴 전 대표, 전전 대표한테서도 들었던 말이에요. 앞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단정하지 맙시다."

 

 병이란 건 사람을 얼음으로 만들 사각 벽을 자신의 주위에 만들게 했다.

 제호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를 감전 시킬 수 있다는 걸 알고 얼음의 성에 자신을 가둬 바깥 세상에 대해 불신으로 가득 찬 눈길을 보내게 되었다.

 더 있다가 자신의 비밀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싶어질 것 같았다.

 제호는 긴 다리를 다시 한 번 허공에 휘둘러 꼰 다리를 풀고 일어났다.

 

 "어떡해서는 배역 따내요."

 

 기승전배역 따내구나... 나대표는 짜증 치미는 걸 참으려고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마누라가 잔소리를 폭풍처럼 쏟아낼 때는 티비나 인터넷으로 시선으로 돌림으로서 잠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벗어나려고 하는 게 남자의 심리였다.

 대수는 엎치락뒤치락 하는 실시간 검색어를 보며 스타가 주는 마누라 급 스트레스에 벗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무심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 있는 감전 키스란 단어에 눈길이 확 갔다.

 

 "감전키스?"

 

 제호는 나가려다 멈칫 했다. 감전이라는 단어가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붙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혹시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병이 밖으로 유출 되었나, 난영이 내 뒷통수를 친건가... 모니터를 보러가는 몇 발자국 사이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대수가 틀어준 영상에는 난생 처음 보는 여자가 자기가 남자를 키스를 통해 감전시킨다는 고백을 하고 있엇다.

 

 "하여튼 인터넷은 이게 문제야. 개나 소나 한번 떠 볼라고 별짓을 다해. 키스 하면 남자가 감전 당한다고?"

 

 나대표는 제호를 보며 손가락은 모니터를 손가락질 했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주길 바랬으나 제호는 그의 말에 반응할 여력이 없었다.

 이때껏 그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모두 다 자신을 보지만 아무도 자기에 대해 모르고, 알 수도 없다는 생각에 우울감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 아니 여자가 있다니....

 세상이 자기에게 그리 야박하지 않다는 생각에 흥분 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은 이때껏 무인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같은 섬에 갇혀 있으면서 서로 다른 곳을 보고 단념해 버린 것이었다.

 괜히 움직였다가 길을 잃을까 두려워 제호는 누군가 있을 거라는 희망도, 찾으려는 의지도 버렸다. 그녀가 먼저 용기 내어 그가 있는 곳으로 한 발짝 내딛어주어 준 덕에 제호는 희망과 의지를 찾았다. 제호는 최대한 오래 그녀의 고백을 눈에 담았다.

 

 

 

 

 

 

 난영은 걸음을 재촉했다.

 빨리 와달라는 제호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어림잡아 들었어도 꽤 다급했다.

 뒤집어 쓴 헬멧 속에서 들숨과 날숨이 좁고 답답한 안을 습하고 뜨겁게 만들어 메이크업을 비집고 땀이 흘러나왔다. 걱정 되었던 제호의 모습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는 난영을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았다. 답답한 땀 냄새 사이로 강한 향수 냄새가 들어왔다.

 비싼 향수를 썼을게 분명한데 남자의 향기에 대해 잘 모르는 난영이 느끼기에는 허브향이 베인 나프탈렌 향이었다.

 이 남자, 이렇게 많이 향수를 뿌리고 다녔구나.

 주치의는 환자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자들의 선망이 되는 연예인의 가슴에 안기니 심장이 뛰어야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난영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냥 향수가 진하다, 헬멧이 답답해 벗어나고 싶다, 이 남자 끌어안는 힘이 정말 세구나....

 하는 정도였다.

 

 "선생님이 오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제호는 포옹을 풀고 흥분 가득한 눈으로 난영을 바라보았다.

 

 "보여줄게 있어요."

 

 신대륙을 발견한 듯 잔뜩 들뜬 제호는 자신이 보았던 윤아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난영은 윤아의 동영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주치의가 되었지만 똑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치의는 자기 환자에게만 충실하면 되었다.

 그의 치료를 위해 안 뒤진 논문이 없었고, 안 본 서적이 없었다. 하지만 원인을 알고 치료법을 알 수가 없었다. 제호가 난영의 손을 간곡하게 잡고 치료를 해달라고 했던 날.

 난영은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살짝 귀찮았었다. 이 정도 했으면 이 세상에 제호 같은 증상은 단 한 번뿐이라고 단정을 지어버렸다.

 그저 다 죽어가던 병원을 살려준 제호에게 힘들 때 마다 말동무나 해주면 의사로서 할 도리를 다 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증상을 가진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동영상을 보면서 놀라움과 동시에 뜨끔했다. 그동안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이 없어 연구 자체가 불가능 하다고 했던 자신의 핑계에 항의를 할 거 같아서였다.

 제호가 하루 병원이 유지 될 만큼의 병원비를 내주어 손님을 못 받는 상황에서도 원장 노릇을 할 수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손을 뗀다 할까봐 살짝 걱정이 되었다.

 

 "세상에..."

 "빨리 이 여잘 불러서 검사 해봐요. 뭐 항체가 있거나 해서 치료젤 만들 수 있겠죠?“

 

 난영은 눈알을 굴리며 빨리 이 상황을 빠져나갈 대답을 생각하였다.

 제호의 증상은 플러스 전자가 과도하게 많아 이성을 감전시키는 것이었다.

 저 여자에 대해 자세한 건 모르지만 동영상 내용을 토대로 한 추측으로 그녀는 마이너스 전자가 과도하게 많다고 파악 되었다. 과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만난다면 중화 되어 더 이상 가전을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결론을 추론 할 수 있었다.

 답을 기다리는 제호의 압박에 위기를 느낀 난영은 빠르게 머리를 굴러 답을 내놓았다.

 

 "바로 아는 방법은, 제호씨가 이 여자한테 키스하는 것밖에 없어요."

 "그건 싫어요."

 "어째서?"

 "그러려면 내 병명을 밝히고 나서야 하는데. 이 여자 뭘 믿고 말해요?

 인터넷에 자기 신상 다 까발릴 정도로 뜨고 싶어 환장했더만."

 

 이 남자. 의심이 많은 줄 알았지만 사람 짜증나게 할 정도였다.

 이 정도로 사람을 못 믿는 사람이 왜 자신에겐 비밀을 털어놨는지 의문이었다.

 돈만 쥐어주면 입 닫는 속물로 보였나, 아님 자신도 믿지 못하는 것인가.

 의사와 환자 사이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거라 믿었고 그런 의료인이 되고 싶었다.

 신뢰라는 건 한 사람만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닌건가....

 난영은 마음 한켠이 섭섭함으로 시렸고, 자신을 믿지 못하는 그에게 화가 났다.

 부글부글 끌어 오르려는 활화산 같은 성질을 참고 빠르게 방법을 짜내었다.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요?"

 

 

 

 

 난영의 제안에 따라 제호는 oo여대 앞으로 향했다.

 oo여대는 동영상에서 윤아가 말했던 다니는 학교 이름이었다.

 제호는 자신의 승용차를 정문 신호등 건너편에 주차했다.

 짙게 선팅이 되어 차안이 보이지 않게 세팅되어 있었지만 그는 혹시나 누군가 알아볼까봐 잔뜩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처음엔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제호라도 대기 시간이 계속 되자 몸과 마음이 풀어졌다.

 지루하게 정문을 바라보던 제호는 기지개를 쭉 펴며 하품을 찍-했다.

 여대생 한 명도 드나들지 않는 입구는 계속 이어지는 자연 풍경만큼이나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고개를 흔들어 간신히 정신 차린 제호는 눈을 끔벅거리며 목운동을 해 보지만 목 뒤는 뻣뻣해지고, 의식은 바위를 얹어 둔 것 마냥 무거워 자기도 모르게 코마 상태에 빠졌다.

 이곳에 온 이유를 계속 떠올리며 간신히 정신을 차린 제호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껌을 씹었다. 입 안에 확 퍼지는 달짝지근한 플레인 요거트 향과 맛.

 단 것을 싫어하는 제호라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고, 통을 확인하니 자일리톨 껌이 아니라 플레인 요거트 맛이라고 적혀 있었다. 급하게 장을 보다 보니 생긴 잘못이었다. 중요한 것은 남의 손이 타는 걸 잘 못 맡기는 제호는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마감시간 직전에 마트를 가 물건을 샀다.

 삽십 분이라는 여유밖에 안 주어져서 꼼꼼히 살펴야 할 야채, 고기 먼저 장바구니에 담고 나서 마지막으로 껌, 맥주 등을 넣었다. 누군가 알아보는 시선이 더해져 아무거나 집어넣었는데 이게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플레인 요거트 맛이었던 것이다.

 이 사이 끼기 전에 뱉어내려고 종이를 찾다가 기다리던 여자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빨리 준비하고 나가야 한다는 촉박감에 잘못 샀던 제일 싫은 맛을 계속 씹어대었다.

 윤아는 걱정을 한가득 안은 얼굴로 정문을 내려오고 있었다.

 속눈썹으로 프렌치 키스를 받았던 그 날.

 윤아는 분위기만 깬 줄 알았는데 관계까지 깨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색과 웃음과 함께 헤어진 그는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 보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목 뒤를 바늘로 꽂은 듯 아려오는 촉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피하려 든다는 것을.....

 사랑은 추억을 먹고 자라는가 보다. 그 때 함께한 예사로운 데이트, 예사롭지 않은 감정이 자꾸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점점 심장을 딱딱하게 굳혀갔다.

 무겁고 답답한 고통에 한 없이 슬프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만 보면 씻은 듯 나을 것 같은 통증인데 보지 못하니 아픔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녀의 상태를 전혀 짐작이나 할 수 없었던 제호는 재빨리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마스크까지 해 단단히 준비를 했다. 난영의 계획에 따르면 기회는 단 한 번 뿐 이었다.

 실수 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에 머릿속으로 계속 리허설을 해보았다.

 마지막 리허설을 마친 그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 차에서 나왔다.

 횡단보도 거리가 짧아 차가 없을 땐 다들 무단횡단을 하는데 윤아는 끝까지 파란불이 켜지길 기다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윤아는 자신도 진저리 처질만큼 답답한 구석이 있었다.

 윤아는 신호가 바뀌고 나서 습관적으로 양 옆을 둘러보고는 길을 건넜다.

 그때, 제호는 놓치지 않고 차에서 내려 윤아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중간쯤 걸어온 윤아의 앞을 막았다. 그녀는 별안간 가로막는 그늘에 앞을 보았다.

 마음에 가시가 박혀 있으면 주변이 아무리 행복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어도 가시처럼 따끔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윤아는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앞길을 방해하는 누군가 때문에 자신의 가시를 표정으로 쏘게 만들었다.

 그 찰나, 제호는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재빨리 키스를 했다.

 윤아의 일그러진 입술사이로 제호의 입술이 빨려 들어 왔다. 처음이었다.

 그녀가 숨을 참아 머리가 핑 돌 정도 키스를 한 사람은........

 그의 혀가 빠르게 윤아의 안의 휘저었다. 혀끝의 돌기가 기분 좋은 스파크를 내면서 환희의 폭죽을 쏘아 올렸다. 파란불이 깜박거리고 경고음이 울렸다.

 하마터면 폭죽에 취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정도로 키스를 할 뻔했던 제호의 이성이 빨간불을 켰다.

 입술을 땜과 동시에 마스크를 쓴 제호는 뒷걸음질 치더니 차로 달려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참았던 숨을 몰아쉰 그는 롤러코스터에서 막 내린 사람 마냥 어질 거렸다.

 머리털 나고 처음 경험해 보는 제대로 된 키스였다. 상대를 감전시키고 아무 감흥도 없었던 불쾌한 키스가 대부분이었던 몇 번의 경험과 달리 자신이 기분 좋게 감전 당한 것 같았다.

 이런 감전 고문이라면 평생을 당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변태 기질이 있는 걸까.

 더 이상 있다가는 더 이상해져 버릴 듯 했다.

 얼굴이 시뻘게진 그는 살짝 경련이 손을 겨우 잡아 도망치듯 차를 타고 떠났다.

 윤아는 혼이 나간 듯 멍 하니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숨 쉬는 것도 잊어 버렸다.

 빵! 클락숀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덕에 숨이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현기증이 돌았다.

 바람에 휘날리는 뿌리박힌 보리 한 줄기처럼 휘청 휘청 되던 윤아는 자신이 쌩쌩 지나는 차들 사이에서 옴짝 달싹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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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 11화 2019 / 10 / 4 205 0 8270   
11 제 10화 2019 / 10 / 4 252 0 7873   
10 제 9화 2019 / 10 / 4 232 0 7234   
9 제 8화 2019 / 10 / 4 213 0 8443   
8 제 7화 2019 / 10 / 4 214 0 15261   
7 제 6화 2019 / 10 / 4 238 0 13988   
6 제 5화 2019 / 10 / 4 227 0 9941   
5 제 4화 2019 / 10 / 4 199 0 10728   
4 제 3화 2019 / 10 / 4 187 0 9490   
3 제 3화 2019 / 10 / 4 225 0 12584   
2 제 1화 2019 / 10 / 4 206 0 14361   
1 프롤로그 2019 / 10 / 4 377 0 10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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