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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슈퍼비틀
작가 : 백점토끼
작품등록일 : 2019.8.31

슈퍼비틀이라는 사슴벌레에서 발견한 당뇨병 완치제(GLP-K2 유사체)를 강탈하려는 일본과 한국 정보기관의 흥미진진한 대결이 펼쳐집니다.

 
제19화 - 슈퍼비틀을 만나다.
작성일 : 19-10-04 07:15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9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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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정은 힘겹게 산을 올랐다. 인생의 마침표를 찍으러 가는 마당에 등산하듯 이렇게 높이 올라야 하나 싶었지만 삶의 마지막을 보낼 마땅한 자리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심장은 터질 듯 조여 왔고 타는 듯한 갈증에 신음소리가 섞인 거친 숨이 쏟아졌다. 시원한 냉수 한 그릇이 간절했다.

 언젠가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지만 세잎클로버는 행복의 상징이라서 더 좋다고 아내가 말한 적이 있었다. 창정은 그런 말은 이미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별로 재미도 감동도 없는 말이니 남들 앞에서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다. 행복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니 행운을 찾는 거 아니겠냐며 상대방에게 단순하고 답답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도 냉수 한 그릇이 이렇게 간절해지는 걸 보니 아내의 말이 옳았다. 늘 곁에 있어 하찮게 여겼던 것을 가질 수 없으니 행복은 아무렇게나 쉽게 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로 인지 분간이 안 되는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창정은 땀에 온몸이 흥건히 젖었을 즈음 등을 기댈 수 있을 만한 나무를 찾았고 그것을 의자 삼아 양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산에 오르는 게 이렇게 힘든 적이 없었는데 아마도 밤늦게 먹었던 소주 두 병 때문인 것 같았다. 창정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무심코 위를 쳐다보았다. 솔잎사이로 펼쳐진 파란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그 하늘아래 땅에서부터 2m 정도 되는 높이에 소나무 가지가 창정을 향해 팔베개 하듯 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창정은 크게 숨을 쉰 후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여기서 하자.'

 어릴 때 동네에서 소나무가 죽으면 그 동네 젊은이들이 많이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공동묘지로 향하는 소나무 길을 걸을 때마다 음산한 기운을 느끼곤 했었는데 지금 바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창정은 두 개의 넥타이 끝을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소나무 가지에 길어진 넥타이의 한쪽 끝을 넘겨 잡은 후 목의 위치보다 조금 위에 묶었다. 넥타이는 소나무 가지에 훌라후프를 걸어놓은 것처럼 동그랗게 걸려 있었다. 줄을 힘껏 잡아 당겨보았다. 튼튼했다. 창정은 발을 디디고 올라설 수 있는 물체를 찾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커다란 바위를 하나 발견했는데 몇 번 끙끙대며 옮겨보다가 이렇게 어렵게 죽을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 병충해에 걸려 벌목된 나무 밑둥을 하나 주워서 넥타이 묶인 곳 땅바닥에 놓았다.

 나무 위에 올라서서 까치발을 하니 넥타이에 목이 정확하게 걸렸다. 창정은 넥타이에서 목을 빼낸 후 나무 밑둥에서 잠시 내려왔다. 그리고는 밑둥에 쪼그리고 앉아 산 아래쪽을 향해 한참을 바라보다가 무릎을 꿇었다. 가족에게 그리고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올리는 인사를 했다. 눈물이 났다. 이제 다시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지도, 머리를 쓰다듬지, 온 힘을 다해 꽉 안아보지도 못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 한없이 서러웠다.

 "수영아! 아빠가 미안하다. 여보! 정말 미안해요. 수영이 데리고 부디 행복하게 살아요."

 창정은 균형을 잡으며 나무위에 올랐다. 그리고 넥타이를 두 손으로 잡고 목을 걸쳤다. 이제 곧 모든 게 어두워지고기억은 사라질 것이다. 자신이 지은 죄, 자신이 이 세상에 잠시 들러 만났던 모든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까지 모든 인연의 끈을 놓게 되리라. 창정은 발을 디디고 섰던 나무 밑둥을 천천히 밀어냈다. 머리털 한올 한올 전기가 흐르는 듯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이내 세상은 하얀색으로 가득 채워졌다.

 '안녕!'

 

 * * *

 

 "창정아! 니 거기서 뭐하는데?"

 "어? 할매!"

 "와? 와 우는데?"

 "할매! 나 대학교 시험됐을 때 진짜 많이 슬펐어예. 옆집 아재가 할매가 살았으면 진짜 좋아할끼라 했는데……."

 "나도 안다. 할매도 니 대학 가고 공무원 시험된 거 하늘에서 다 보고 있었다."

 "진짜예? 내가 할매한테 잘못한 일이 많아서 얼마나 미안하고 서러웠는지 모릅니더. 대학교 합격해서 진짜 할매 기쁘게 해 주고 싶었는데, 미안합니더. 할매!"

 "창정아 괜찮타. 니 부모도 없이 얼마나 고생했노? 할매가 좋은거 못입히고 맛있는거 못먹여서 참 마음이 마이 아팠다."

 "할매! 나때매 고생만하고, 효도도 한번 못하고, 흑흑!"

 "괜찮다 창정아. 니가 이리 잘 된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맙다꼬. 그런데 니 지금 와이라노?"

 "할매! 용서해 주이소. 너무 힘들어서예."

 "와?"

 "내가 고생해서 돈 벌어놨는데 누가 다 훔쳐 가버렸어예. 억울하고 원통해서 죽어버릴라고예."

 "뭐라꼬? 니 저번에 내 주머니에서 훔쳐간 돈은 다 우짜고?"

 "그거는……."

 "우쨌는데? 말해바라!"

 "과자 사묵었어예."

 "요놈 새끼 내 이럴 줄 알았다. 어린놈새끼가 맨 날 도둑질이나 하고. 니가 맞아야 정신차리지. 이리 온나."

 "아! 아! 할매! 아파예. 잘못했습니더. 다음부터 안그럴께예. 돈 안훔칠께예. 아! 아!"

 "아이고 조상님아!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웬수같은 놈을 내한테 보내서 이리 고생을 시킵니꺼? 내가 이 웬수때매 내 명대로 못산다. 못살아!"

 "아! 아! 할매! 너무 아파예! 아아!"

 

 * * *

 

 "최 사장! 뭐해? 빨리 안내려오고."

 최 사장은 냇가로 향하는 좁은 길에 레커차를 진입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진입로에 주차되어 있는 아반떼 차량 때문에 도저히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 어떤 씨발 놈이 이런데다 차를 대났어? 아이 개새끼! 호로새끼!"

 최사장은 아반떼를 씹어 먹을 듯 격한 말을 뱉어내더니 박순경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이 차 때문에 안 되겠다. 저쪽으로 빼 놓고 내려갈게."

 최 사장은 씩씩거리며 아반떼 차량을 도로 밖 갓길로 옮겼다.

 "이 순경, 사진 다 찍었나?"

 "예! 다 찍었습니다."

 "뭐 좀 찾았나?"

 "예! 차가 뒤집어져 있고 안에 사람이 한 명 죽어 있습니다."

 "지랄한다! 그런 말은 지나가던 개도 하겠다."

 잠시 후 헐렁한 7부 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최 사장이 팔자걸음으로 사고현장에 다가왔다. 굵은 장딴지를 시커멓게 감싼 털을 보면 누구든 주눅이 들 만한 체구였다.

 "좃만한 새끼가 진짜! 시간도 없는데."

 "왜? 그만 진정해라."

 "내가 진정하게 생겼나? 저 따위로 차를 대 났는데 경찰이라는 사람들이 뭐하고 다니냐?어이! 이 순경! 저 아반떼 차주 조회해서 불법주차 범칙금 물려라 빨리."

 최 사장은 평소에 이들과 막역하게 지내는 듯 막무가내로 순경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야! 차가 떡이 됐네. 떡이."

 "최 사장! 어쩌지 이거? 우리 동네 사람도 아이고, 술 냄새도 안 나는데."

 "어이구 씨발놈아. 보면 모르겠나? 졸음운전 했잖아! 저기서 반쯤 졸다가 올라왔는데 갑자기 아반떼가 길 중간에 서 있어서 코란도가 깜짝 놀라 이쪽으로 핸들을 돌려서 이렇게 된거 잖아. 너는 저 위에 타이어 마크도 안 봤나?"

 "그런가?"

 "어이구 씨발놈아! 씨발놈아! 니가 그러니까 씨발놈이지. 내가 진짜, 공부도 나보다 못 하던 놈이 경찰시험 될 때부터 이상하다 했다 진짜!"

 "뭐라는 거야? 거 좀 조용히 해라!"

 "됐고! 이 순경! 119 불러서 시신은 동성병원 영안실에 안치하고, 인적사항 조회해서 가족에게 알려 주라."

 "어! 그 사람 참! 어이 이 순경! 잘 들었지? 그렇게 처리해라. 속 시끄럽다."

 박순경은 몇 발짝 떨어진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최 사장의 견인작업을 구경하고 있었다.

 

 * * *

 

 박유진 연구원의 사고차량이 수습된 오후 5시.

 부서진 차량 잔해들과 기름자국 그리고 도로 위의 라커 자국만이 사고가 난 현장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고 직후 도로를 건너 숲 속으로 들어온 슈퍼비틀은 허기가 졌다. 슈퍼필드라는 좋은 환경에서 제 때에 영양식을 챙기며 매력적인 암컷들과 환상적인 시간을 함께 보냈던 슈퍼비틀에게는 약육강식의 야생이 익숙할 리 없었다.

 배고픔을 달래줄 뭔가를 찾아 숲 속을 한참 동안 헤매던 슈퍼비틀은 갑자기 더듬이를 곧추 세우고 멈췄다. 자신을 유혹하던 암컷의 페로몬은 분명 아니었지만 좋은 느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슈퍼비틀은 조심스럽게 빨판을 갔다댔다. 시큼하고 끈적거리는 액체, 말랑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즐겨 먹던 일본제 후지콘 수액젤리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허기를 채울만 했다. 한나절 내내 굶주렸던 슈퍼비틀은 있는 힘껏 빨판을 뻗었다. 따뜻하고 끈적끈적 한 액체가 입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아! 아! 할매! 할매! 너무 아파예!"

 슈퍼비틀은 깜짝 놀랐다. 말랑말랑한 그 물체는 이상한 소리를 쏟아내며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슈퍼비틀은 있는 힘을 다해 집게를 곧추 세웠다.

 

 * * *

 

 "아! 아야!"

 바닥에 누워있던 창정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볼에 손을 갖다 댔다. 볼을 감싼 손바닥 안에 커다란 괴생명체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창정은 닭살이 돋을 만큼 혐오감을 주는 괴생명체를 반사적으로 떼 내어 던져버렸다. 손을 떠난 괴생명체는 누렇게 쌓인 솔잎 더미 위로 나가 떨어졌다.

 창정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워 자리에 앉았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세수하듯 얼굴을 쓰다듬었다. 눈가에 눈물이 가득했다.

 '할머니? 무슨 일이지?'

 뒤통수와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창정은 그제야 자신이 발을 디디고 있던 나무를 밀어낸 후 버둥대는 과정에서 목이 뒤로 젖혀졌고 어설프게 맨 넥타이 끈이 턱 쪽으로 쑥 빠져버려 뒤로 넘어지게 된 것을 알았다. 창정은 불편한 목과 머리를 번갈아 만지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추스렸다.

 '할머니! 나한테 기회가 있을까요?'

 죽으러 갔다가 뭔가를 깨닫고 보란 듯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지만 죽을 각오로 살기 이전에 아내와 수영에게 자신이 벌인 일을 먼저 솔직하게 말해야 했다. 사실 창정이 이런 결심을 한 이유는 차마 그 말을 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산 아래로 내려간들 그 말을 절대로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오죽하면 자살을 택했을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죽을 각오로 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미안한 감정에 휩싸인 채 그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목에 맨 줄이 풀려버려 잠시 생명을 연장했지만 솔직히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아내가 놀라 쓰러지고 수영이가 좌절하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실패한 일을 다시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오른쪽 볼이 심하게 아려왔다. 순간 창정은 자신의 볼을 그토록 아프게 깨물었던 기괴한 생명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손바닥에는 아직도 그 놈에게서 느꼈던 불쾌한 느낌이 남아 있는 듯 했다. 창정은 그 놈을 내팽개친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두통과 현기증으로 발을 제대로 디딜 수가 없었다. 허공에서 떨어질 때의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전날의 과음 이후로 한 끼도 먹지 못해 고통이 더 했다.

 솔잎더미를 발로 이리저리 헤치며 녀석을 찾던 창정은 잠시 후 벌렁 뒤집힌 채 아둥바둥대는 검은색 곤충을 발견했다. 그것은 커다란 숫사슴벌레였다. 한여름도 아닌데다가 대낮에 사슴벌레가 나타났다는 게 좀 이상했다. 게다가 창정이 지금까지 보아온 사슴벌레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놈이었다.

 '저런 무지막지하게 큰 놈이 내 볼을 꼬집었으니 그렇게 아팠지. 아야~'

 창정은 뒤집힌 사슴벌레를 발로 툭 건드려 일으켰다. 그 놈은 잔뜩 독이 올랐는지 앞다리를 쭉 뻗고 있는 힘껏 턱을 세웠다.

 '그냥 가라 이놈아!'

 창정은 아픈 볼을 쓰다듬으며 뒤돌아섰다. 넥타이를 다시 소나무 가지에 단단히 고정하던 창정은 문득 병식이가 했던 말이 떠올라 온 몸이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엄~청 크다 카데. 11센친가? 암튼 기네스북에 올랐다카던데 거기 1억에 경매됐다 안카나?'

 창정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1억에 경매됐다안카나?'

 창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사슴벌레는 아무 일 없는 듯 태연하게 기어가고 있었다. 창정은 헐레벌떡 달려가 녀석의 가슴과 배 사이 잘록한 부분을 덥석 집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손바닥 전체를 뒤덮을 만큼 엄청나게 큰 사슴벌레였다. 양보하고 또 양보해서 아무리 작게 불러도 1억원에 팔렸다는 그 11센치보다는 분명 큰 놈이었다. 창정은 그제야 할머니가 나타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창정은 손톱이 손바닥을 찔러 고통이 느껴질 만큼 왼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온 몸이 벌벌 떨렸다.

 '아! 씨~발! 이게 무슨 일이고? 와 미치겠네 정말! 할매! 고맙십니더.'

 

 * * *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창정을 불러 돌을 하나 주시면서 선생님 집에 갖다 놓으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1시간 거리의 시내에서 출퇴근을 하지 않고 창정의 동네에 방을 하나 얻어 신혼생활을 하고 계셨다. 중학교 1학년 시절 창정은 학교에서 크게 말썽을 피우는 아이가 아니었고 공부도 그럭저럭 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그런 창정을 믿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런데 창정은 가지고 가던 돌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고 그 충격으로 돌의 윗부분이 조금 깨져버렸다. 하지만 창정은 그 돌이 조금 깨졌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동네 냇가에 지천으로 늘린 게 돌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되자 선생님이 말했다.

 "너는 수석을 깨 놓고도 왜 아무 말이 없냐? 자식아!"

 선생님은 오전 내내 창정이 먼저 돌을 깨트린데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용서를 구하기를 바랬던 것 같았다. 하지만 창정은 돌을 깬 것이 잘못한 일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창정은 돌을 선생님 댁까지 가져다 드렸는데 왜 아무런 칭찬을 안 해주실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선생님의 질책을 들은 창정은 그 돌이 보통 돌이 아닌 '수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고는 수업을 마친 후 바로 냇가로 달려갔다.

 ‘회색, 좀 무겁고, 층이 나 있는 거.’

 창정은 돌의 생김새를 떠올리며 최대한 그와 유사한 돌을 찾기 위해 온 냇가를 헤매고 다녔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고무신을 신고 울퉁불퉁한 냇가의 돌을 밟고 다니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발바닥이 저려왔지만 어떻게든 자신이 깨트린 수석과 유사하거나 더 나은 돌을 찾아야 선생님 앞에 앉아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넓은 냇가, 그 많은 돌들 중에 어느 하나도 선생님의 수석과 비슷한 게 없었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선생님의 수석을 깨버린 잘못의 무게가 점점 크게 느껴졌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창정은 다급한 마음에 ‘회색, 좀 무겁고, 층이 나 있는 거!’를 큰소리로 외치며 마치 초능력자가 모든 정신을 집중하듯 눈앞의 돌들을 뚫어지게 살펴보다가 마침내 비슷한 돌을 하나 찾았다. 색깔이나 질감, 무게는 선생님의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크기가 좀 작고 모양도 선생님의 것에 비해서는 의미 있어 보이지 않았다. 어쨌거나 창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 돌이 동네 냇가에서 단 하나뿐인 희귀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창정은 저녁도 먹지 못한 채 그 돌을 들고 선생님 댁으로 갔다. 선생님이 계시지 않아 사모님께 선생님 드릴려고 주운 돌이라며 건네 드렸다.

 다음 날 아침 자율학습시간, 창정은 극도의 긴장 속에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르륵~"

 선생님은 조용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반 아이들이 자율학습을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하시려는 듯 교실을 한 바퀴 돌아보셨다. 그리고 창정의 앞을 지날 때 쯤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정아! 그거 네가 갔다 놨어?"

 "예, 선생님! 어제 냇가에서 주웠어예."

 "정말 나한테 줘도 돼? 정말 멋지던데? 고맙다!"

 창정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제 오후 내내 걱정과 절망으로 돌밭 위를 걸었던 시간들이 생각나 감정이 북받쳤다. 자신의 손으로 수석이라는 것을 처음 주워봤고, 이제 마음속에 지녔던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

 

 * * *

 

 곧 해가 질 것 같았다. 창정은 사슴벌레를 쥐고 산 아래로 정신없이 달렸다. 중학교 때 힘들게 수석을 찾았을 때보다 몇십 배 아니 몇 백 억배, 몇 천 억배나 더 기뻤다.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 씨발! 열심히 살면 분명이 보답이 오는 거야!"

 창정은 신기했다. 태어나서 처음 독백이라는 것을 해 보는 것 같았다. 남 앞에서는 대 놓고 하지 못하던 '씨발!'이라는 말도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창정은 더 큰소리로 세상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야~! 야~! 이 씨발놈들아! 한창정 화이팅!"

 불우했던 10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20대, 새로운 길을 찾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30대를 지나고 맞이한 절망의 40대를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하늘은 그토록 오랜 고난의 시간을 기다리게 한 후에야 동아줄을 내려주었다. 잘못해서 죽기라도 했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최소한 1억이었다. 수영이 2년치 유학비는 안전하게 저금을 해 놓고 백화점에 가서 아내에게 선물할 멋진 옷을 한 벌 산 다음, 나머지 돈은 아내에게 모두 주고 싶었다. 이제 절대로 주식투자는 하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상상도 못할 훨씬 비싼 금액으로 팔리게 된다면 빚도 전부 갚고 다시 멋지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산 아래에 도착했다. 이상하게 아반떼는 아침에 세워둔 곳과는 다른 곳에 주차되어 있었다. 창정은 아침에 술이 덜 깨서 착각을 했겠지 생각하며 운전석 문을 열었다. 차에 오르려던 창정은 잠시 멈춰 드라마틱한 하루를 보냈던 산을 바라보았다. 생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아 돌아온 산이었다. 창정은 불과 몇 시간 전, 죽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믿었던 때를 떠올렸다. 자신의 행동이 극과 극으로 바뀌게 된 것이 결국 돈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게 인간이고 사는 게 다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창정은 자신의 손에 쥔 금덩어리 덕에 더 이상 삶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깅깅깅깅깅……."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아차! 기름.'

 창정은 잘못하면 사슴벌레를 다치게 하거나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차안 이곳저곳 사슴벌레를 보관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조수석 앞 수납함에 썬글라스를 보관하는 플라스틱 안경집이 있었다. 창정은 썬글라스를 빼서 조수석에 툭 던져 놓고는 플라스틱 안경집에 사슴벌레를 넣었다. 뚜껑이 툭 하고 닫혔다. 사슴벌레에게 딱 맞는 공간이었다. 창정은 안경집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이곳에 오기 전에 지나왔던 공단지역으로 달려갔다.

 "헉, 헉, 학생! 휘발유 좀 줘!"

 호빵맨 같이 생긴 아르바이트 학생은 차를 타고 오지도 않은 채 휘발유를 달라는 사람을 보고는 이해가 안 되는 듯 되물었다.

 "예?"

 "휘발유 좀 달라고. 차가 멈춰서 그래. 아고 숨차. 후! 후!."

 "어디에 가져가실려구요?"

 "차, 기름이 없어서……. 후! 멈췄다니까. 빨리 휘발유나 좀 줘."

 창정은 가쁜 숨을 진정하며 겨우 대답했다.

 "아니 어디에 담아가실 거냐구요?"

 잠시 후 창정은 공단 내 편의점에서 커다란 생수를 한 병 샀다. 그리고 사슴벌레 생각에 박하사탕도 한 봉지 샀다. 하루 종일 굶었고 갈증이 심했던 터라 원 샷으로 거의 반병을 들이키고 나머지는 땅에 급하게 부어버렸다.

 "자! 여기."

 "얼마치요?"

 "얼마치 들어가는데?"

 "넣어봐야 알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420원이었다. 2리터 정도 밖에 안 되는 생수통이니 어림잡아도 4,000원 이상 넣을 수 없다는 것은 초등학생만 되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느려터지고 서비스정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학생을 아르바이트로 쓰고 있는 주인의 경영마인드를 알만했다.

 "2,500원치 넣어봐. 여긴 휘발유 값이 뭐 이렇게 비싸냐?"

 아르바이트 학생은 겨우 그거 넣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주유를 시작했다. 5초도 안되어 페트병이 채워졌다. 창정은 2,500원을 건네고 페트병 뚜껑을 닫았다. 학생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코끼리 같은 걸음으로 사무실을 향했다.

 "어이, 학생! 휴지 같은 거는 안주나?"

 학생은 창정을 잠시 쳐다보더니 사무실을 향해 소리쳤다.

 "아빠! 휴지 줘!"

 차로 돌아온 창정은 휘발유를 넣고 시동을 걸었다. 썬글라스 통을 열어 박하사탕 세 개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안에도 박하사탕 세 개를 넣고 엑셀을 밟았다. 질겅질겅 씹을 때마다 입안에는 단물이 가득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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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제25화 - 버스터미널 2019 / 10 / 12 197 0 2575   
25 제24화 - 배후 2019 / 10 / 11 202 0 3959   
24 제23화 - 병식의 죽음 2019 / 10 / 10 200 0 6351   
23 제22화 - 국정원 그리고 황성곤 2019 / 10 / 9 197 0 5751   
22 제21화 - 14.8cm 2019 / 10 / 7 204 0 3970   
21 제20화 - 일본의 추적 2019 / 10 / 6 189 0 963   
20 제19화 - 슈퍼비틀을 만나다. 2019 / 10 / 4 217 0 9850   
19 제18화 - 박유진 연구원의 죽음 2019 / 10 / 2 215 0 3464   
18 제17화 - 산행 2019 / 9 / 30 225 0 2696   
17 제16화 - 유진의 선택 2019 / 9 / 29 198 0 2586   
16 제15화 - 유서 2019 / 9 / 26 198 0 1906   
15 제14화 - 자살을 결심하다. 2019 / 9 / 25 193 0 4000   
14 제13호 - 상장폐지 2019 / 9 / 23 190 0 3989   
13 제12화 - 회유 2019 / 9 / 22 198 0 3784   
12 제11화 - 사슴벌레 사육장 2019 / 9 / 19 187 0 3459   
11 제10화 - 수영 학교 2019 / 9 / 18 199 0 4672   
10 제9화 - 납치 2019 / 9 / 16 190 0 1586   
9 제8화 - 신주쿠스시 2019 / 9 / 11 214 0 3181   
8 제7화 - 청와대 2019 / 9 / 9 200 0 2104   
7 제6화 - 박유진 연구원 2019 / 9 / 8 213 0 4185   
6 제5화 - 일본 수상 관저 2019 / 9 / 2 191 0 2040   
5 제4화 - 국가생물종연구소 2019 / 9 / 2 194 0 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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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점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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