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이 작품 더보기 첫회보기

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29 언약과 고요 (4)
작성일 : 19-10-03 19:13     조회 : 299     추천 : 0     분량 : 4039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레온과 이리나는 그렇게 성소를 떠났지만, 가끔 편지로 소식을 전해왔다. 미안하다. 우리가 생각이 짧았다. 늦더라도 좋으니 언제라도 생각나면 답변을 보내 달라. 잠시 들르는 것도 좋다. 아직 우리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부모가 멀리 떨어진 자식에게 보내는 말이었지만, 그는 당연하게 담겨 있어야 할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편지 사이에 그들의 양자가 쓴 편지도 있다. 한창 시종 노릇을 하고 있다던가. 본래는 그렉의 것이어야 했을 것을 내비치면, 질투 때문이라도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는 그런 의도를 가볍게 짓누르고 그 아이의 편지를 읽었다.

 

  “친애하는 그렉 형님에게. 이렇게 편지로 첫인사를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정갈한 필체와 예의 바른 문장.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그리움으로 점철된 편지는 애틋했다. 피로 이어진 부모보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생판 남의 마음이 더 진심으로 느껴지는 것에 그렉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형님께서 옛날에 쓰시던 목검을 조금 다듬어서 제 손에 맞추었답니다. 상의도 없이 그렇게 해서 죄송해요.”

 

  내 목검이라, 그렉은 잠시 회상에 잠겼다. 그 목검을 쓸 정도면 지금의 그렉과 그렇게 체격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생김새도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 부모님이 어쩌면 그 아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아 양자로 들였을지도. 그렉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제의 삶은 바쁘다고 들었어요. 괜찮으시다면 저 혼자서라도 얼굴 보러 갈게요.”

 

  자신과 부모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서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배려심이 깊은 아이다. 부모에게는 답장을 보내지 않더라도, 이 아이에게는 개인적으로 편지를 써볼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편지를 받는 나날이 늘었다는 것을 빼면, 그렉의 일상은 그들의 방문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의 신앙심이었다. 그는 교단의 가르침에 매달렸고, 영원한 빛에 매달렸고, 조지에게 매달렸다. 그것만이 번뇌를 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렉은 사제의 업무가 없는 시간에 늘 조지를 불러냈다. 불러내서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사소한 기도를 계속 바쳤다. 타오를 수 없는 연심이기에 더욱더 뜨거운 사랑이 기도에 담겨 있었다. 그럴 때면 조지는 조용히 그렉을 다독였다.

 

  “우리를 굽어보시고, 우리를 보듬으시고….”

  “응, 듣고 있어.”

 

  그렉을 품에 안을수록 조지의 힘은 강해졌다. 그렉이 원하는 것은 거의 모두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렉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가 안심할 수 있는 장소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한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사제의 업무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잘 알고 있어요, 던스턴 사제님.”

 

  던스턴과 함께 그렉은 제단을 청소했다. 체칠리아는 『아르티제의 승리』의 필사본 여러 권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느라 한창 바쁜 모양이었다. 루카스는 달리 할 일이 없었지만 에어드부르가가 자꾸 호출하는 바람에 성소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조지 님은 에어드부르가 님이 안 부르시는 겁니까?”

  “요즘은 그렇게까지 부르지 않으시네요.”

 

  좌정된 위치를 따지자면, 조지는 에어드부르가의 시종이자 숲의 파수꾼에 해당한다. 물론 그렉을 지키는 역할을 더 충실히 하고 있지만, 성소에서 좌정해준 위치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그 나름 노력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에어드부르가는 조지를 자신의 곁에 두기보다 그렉의 옆으로 보냈다.

 

  조지도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 이 숲에서 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인지.

 

  “너는 이 숲보다 더 머물고 싶은 곳이 있지 않으냐. 그뿐이다. 필요하다면 내가 부를 것을.”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했다. 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에어드부르가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할 때는 항상 그랬다. 조지보다 루카스를 더 가까이 두고 성소의 일을 도우려는 것도 그녀의 그런 석연찮은 말과 엮여 있겠지만, 그게 정확하게 무엇일지 알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아, 루카스 사제님.”

  “숲에서 돌아오는 길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루카스는 던스턴과 그렉의 인사에 답하고는 조지를 바라보았다.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살짝 들렸다. 루카스는 사제로서 영원한 빛인 조지에게 예를 표하고 자신의 방으로 내려갔다. 에어드부르가가 조지에 관해 무슨 말이라도 한 것일까. 물어보면 될 일이지만, 루카스에게 말을 거는 것은 던스턴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체칠리아가 늦는 것을 보니 저녁은 저희끼리 먹어야겠군요.”

 

  저녁노을의 위에 떠 오른 얇은 달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체칠리아는 아르티제의 남쪽 경계에서 성소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집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받고 오는 길이었다. 사제들의 식단보다 아주 조금 기름졌다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특식이다.

 

  필사본을 좀 더 만들어야 할까. 원하는 집마다 하나씩 주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아르티제에 있었던 비극과 그 비극을 반전시킨 거대한 승리의 희열은 깊은 감동과 지난 일을 아름답게 회상할 수 있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체칠리아가 이번 작품을 쓰면서 바라던 바였다.

 

  체칠리아는 영원한 빛에게 기도를 올리면서 앞으로도 아르티제가 평화롭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런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것은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에어드부르가가 영원한 빛이 되고, 숲의 저주도 사라졌는데 왜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체칠리아는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조지가 영원한 빛이 된 이후로 그녀는 계속 금기를 생각했다. 영원한 빛과 살아있는 존재의 연정. 그 금기는 어긴 자들의 결말이 어떠했는가. 금기의 말로를 아는 것은 비적성에서 특별한 가르침을 받은 사제들뿐이다. 그녀는 늑대인간의 빛을 생각했다. 한 마리의 늑대인간, 그리고 일족 전체에게 연정과 자애를 베푼 빛의 말로가 무엇이었던가.

 

  성소에 가까이 도착한 체칠리아의 눈앞이 갑자기 환해졌다. 빛의 형상으로 빚어진 비둘기가 양피지 두루마리를 들고 나타났다. 체칠리아는 그 영원한 빛이 건네는 양피지를 받았다. 그녀는 손끝으로 밀랍 봉인에 새겨진 비적성의 인장을 느꼈다. 체칠리아는 서둘러 성소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문을 걸어 잠근 그녀는 봉인을 풀었다.

 

  “친애하는 체칠리아 사제님.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안토니오의 필체였다. 개인적인 안부를 묻는 말과 함께 안토니오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몇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두 사람이었지만, 안토니오가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넘어간 적은 없었다. 평소라면 좀 더 비적성의 일상과 체칠리아에게도 안면이 있는 사제들의 소식을 담았겠지. 그런 안토니오가 본론부터 말을 꺼낸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안토니오가 전한 소식은 비적성에서 관측하게 된 어떤 이변에 대한 것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변과 이단이라 규정된 것들을 관리하는 것이 비적성의 본래 역할이다. 흡혈귀에게 오랫동안 시달리기는 했어도 비적성의 이목을 끈 적이 없는 아르티제다. 하지만 이 이변은 아르티제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영원한 빛의 특권 중에는 현세에 머물렀던 시간만큼의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이 현상은 영원한 빛의 그 특권에 간섭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빛은 서로의 권능에 간섭하여 산란과 난반사를 일으킨다. 길항을 이루는 법칙이 그렇게 균형을 이룬다. 그렇다고 해도 간섭할 수 없는 권능이 있다. 자신이 거쳐 온 생애의 기록을 열람하거나 미래를 보는 일은 방해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침해할 수 없는 권능이 침해당하고 있다. 체칠리아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 현상의 원인을 비적성은 끊임없이 재고했습니다. 그것 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는지, 혹은 처음부터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지만 결국 하나의 결론만이 내려졌습니다.”

 

  체칠리아는 그 아래에 적힌 비적성의 결론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 이변은 비적성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종류에 속한다. 이 이변 앞에서는 비적성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지금 아르티제의 미래는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아르티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원초의 빛이 내뿜는 파멸의 섬광뿐이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완결 후기 2020 / 8 / 16 540 0 -
공지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중간고사 … 2019 / 10 / 12 644 0 -
공지 8월 28일 <너무 밝은 곳의 그대> 휴… 2019 / 8 / 28 683 0 -
공지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연재주기 … 2019 / 8 / 16 665 0 -
44 에필로그 2020 / 8 / 16 293 0 1007   
43 #42 밝은 곳의 그대와 함께 (2) 2020 / 8 / 16 255 0 3654   
42 #41 밝은 곳의 그대와 함께 (1) 2020 / 5 / 24 284 0 3705   
41 #40 정해진 운명대로 (3) 2020 / 4 / 5 270 0 4110   
40 #39 정해진 운명대로 (2) 2020 / 3 / 26 289 0 4234   
39 #38 정해진 운명대로 (1) 2020 / 3 / 5 279 0 4483   
38 #37 원초의 파편 (3) 2020 / 2 / 19 284 0 4114   
37 #36 원초의 파편 (2) 2020 / 2 / 12 273 0 4250   
36 #35 원초의 파편 (1) 2020 / 2 / 6 290 0 4699   
35 #34 이단의 빛 (4) 2020 / 1 / 8 298 0 4018   
34 #33 이단의 빛 (3) 2020 / 1 / 1 313 0 4223   
33 #32 이단의 빛 (2) 2019 / 11 / 24 304 0 4125   
32 #31 이단의 빛 (1) 2019 / 11 / 14 301 0 4353   
31 #30 언약과 고요 (5) 2019 / 11 / 2 292 0 3782   
30 #29 언약과 고요 (4) 2019 / 10 / 3 300 0 4039   
29 #28 언약과 고요 (3) 2019 / 9 / 26 303 0 4592   
28 #27 언약과 고요 (2) 2019 / 9 / 19 301 0 3999   
27 #26 언약과 고요 (1) 2019 / 9 / 12 310 0 5031   
26 #25 재탄의 날 2019 / 9 / 4 308 0 4454   
25 #24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4) 2019 / 9 / 4 299 0 3972   
24 #23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3) 2019 / 8 / 21 279 0 4157   
23 #22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2) 2019 / 8 / 15 304 0 4144   
22 #21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1) 2019 / 8 / 12 322 0 4362   
21 #20 기억 속의 그 아이 (5) 2019 / 8 / 8 303 0 4372   
20 #19 기억 속의 그 아이 (4) 2019 / 8 / 5 310 0 4444   
19 #18 기억 속의 그 아이 (3) 2019 / 8 / 1 304 0 4067   
18 #17 기억 속의 그 아이 (2) 2019 / 8 / 1 310 0 5110   
17 #16 기억 속의 그 아이 (1) 2019 / 7 / 25 291 0 4257   
16 #15 순록을 탄 여인의 승리 (5) 2019 / 7 / 22 320 0 4643   
15 #14 순록을 탄 여인의 승리 (4) 2019 / 7 / 18 322 0 4996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