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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Record Of U
작가 : 저녁의나팔수
작품등록일 : 2019.9.6

"세상의 끝이 오지 않아 난처해하는 인류가 있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상에 두 사람이 있다. 이 세상에 두 사람만 남았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끝이라고 부르는 것이 언제 그들을 찾아올지 두려워하며 벽 속에 숨어 살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거라며 아랑곳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무수히 많다.
이 둘은 어느 쪽인가? 적어도 첫 번째 부류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두 번째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들은 배달부다. 악어가 끄는 배를 타고 아직 덜 끝난 세상의 벽과 벽 사이를 오간다. 화물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고, 이야기는 시작과 끝의 사이를 오간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끝과 함께 이야기를 담고 있던 세계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그 세계에서의 모든 이야기들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선장은 아직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Tape 1-3
작성일 : 19-10-03 04:51     조회 : 198     추천 : 0     분량 : 7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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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현관에서 복도로, 선원을 저항의 여지없이 끌고 가는 것은 물리적 힘이 아닌 당혹감이었다. 분명 그가 기억하고 있는 위상에 따르면 이곳은 무겁고 어두운 땅 아래다. 그 입지에 가장 합리적으로 부합하는 이 공간의 용도는, 그저 재앙이 현관문 앞을 지나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화분 속의 식물처럼 목숨을 이어가는 지하 방공호가 가장 알맞았다.

  분명 그 점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지금 이 복도를 밝히고 있는 것도 바깥의 햇빛이 아닌 벽에 달린 작은 조명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사람이 자리나 목적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이 집의 내부를 이루고 있는 ‘목적’은 그저 사람을 담아 둘 뿐인 화분으로써는 좀 과분했다. 방공호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담한 장식물이나 될 리가 없을 환기를 위한 여유 공간이 너무 많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을 꽤 최근에 본 적이 있다. 지상의 상징과도 같은 햇빛과 먼지의 필터만 해제하고 나면 이곳은 저 위의 반쯤 부서져 있는 집의 원래 모습이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가 충분하다. 요컨대, 저곳이 아직은 사람이 살 만한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그 공간을 이 아래에 재현해 보존하고 있다는 소리.

 

 “여기요!”

 

  아빠-라는 호칭을 아직도 유지한 채 아이는 부엌 냉장고에서 꺼낸 음료를 컵에 붓는다. 일단 보기만 하는 시점에서는 멀쩡한 마실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런 걸 먹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선원이었지만, 안 먹고 버티는 쪽이 역시 더 건강에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컵을 기울였다.

 

 “-”

 

  마시는 즉시 식도가 타들어가는 강산이 포함된 레모네이드는 아니다. 그렇게 드물지 않은, 싱싱한 방사능으로 끓어오르는 레모네이드도 아니다. 그냥 레모네이드다. 놀랍게도 시원하고 맛있는 레모네이드다. 어디서 파는 건지 묻고 싶어질 정도다. 한 컵을 다 비울 동안 식탁 맞은편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이쪽만 빤히 쳐다보는 아이의 시선 쪽이 더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어-”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불안함 때문이 아니다. 그저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순전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자신을 아버지로 착각하는 정체 모를 꼬맹이에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지, 혹여나 가르쳐 주는 기관이나 매뉴얼이 있다면 지금 당장 연결해 주길 바란다.

  덤으로 아이 쪽도 왠지 그런 느낌으로 말없이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듣지 못한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겉으로 보이는 것만 치면 저쪽은 선원보다 한참 짧은 인생을 살아온 것이 된다. 여기서 마찬가지로 말문이 막힌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 동안 무얼 하고 지냈니?”

 

  아직 자신의 가짜 신원을 부정하는 것은 이르다고 느끼며, 선원은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서 컵에 담은 ‘아버지다운’ 질문을 탁자 너머로 건네 보았다.

 

 “집을 보고 있었어요.”

 

  지극히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야 그렇겠지. 그것 말고 상식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또 무엇이 있었을까.

 

 “별 일은 없었고?”

 “네.”

 

  짧은 대답과 함께 간신히 이어지는 것 같았던 대화는 다시 끊어졌다. 이하 다시 머리 둘레를 아프게 조여 오는 어색한 침묵.

 

 “아빠는요?”

 

  그대로 돌아온 ‘딸다운’ 질문. 적당히 둘러댈까, 아니면 그럴싸하게 꾸며내야 하나.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질문을 그럭저럭 넘긴다고 해도, 지금 여기에 온 것은 이대로 여기서 가짜 아빠 노릇을 하기 위한 게 아니다. 선장이 ‘신속하고 고객친화적인 고객응대 매뉴얼’ 같은 걸 지어내기 전에 소포를 올바른 수취인에게 전달하고 돌아가야 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 상황에서도 정말로 중요한 건 그거다.

 

  가만 생각해 보니 굳이 복잡한 말을 지어낼 필요는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은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돌아온 아버지가 바깥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이지 식은땀 범벅이 되어 거짓말을 맞추는 취조 시간이 아니니까. 그리고 결국에는 들려줘야 할 진실도 조금씩 섞어서.

 

 “그러니까-어떤 사람을 만났어.”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지자, 자연스럽게 그 아래에서 찰랑거리고 있던 말들이 목구멍을 거슬러 올라왔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해본 것도 오랜만이다. 주제는 당연히 그의 기분이나 필요와는 상관없이 거의 매일 얼굴을 보고 사는 그 고용주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인데요?”

 “평범한 사람은 아니야. 조금 곤란한 사건에서 만났고, 빚을 졌지. 여러 의미로.”

 

  ‘평범하지 않다’라. 당연하지만 이 정도의 표현으로는 선장의 재킷에 달린 소매 단추 하나도 제대로 묘사할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선장은 그런 사람이다. 결코 가만히 뭔가를 기다리는 법이 없지만, 항상 올바른 때와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 알아듣기 힘들겠지만 실제로 이렇다. 사소한 핵심적 의문 따위는 사고의 저 편으로 밀어 놓아야 다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적어도 사람이라는 정도밖에 확실한 것이 없는 그를 만나, 너절하고 희한한 무역선의 유일한 선원이 되었다. 대체 그 전까지 어떻게 혼자서 돌아다녔던 걸까, 아니 애초에 선원 하나 없는 배의 주인을 ‘선장’이라고 부르는 게 맞긴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은 그와 함께 ‘일’이라는 이름의 여행을 거듭하며 밀고 올라온 더욱 기묘하고 난해한 의문에 밀려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그래, 한 번은 백군(白軍) 사령부에 들어간 적이 있었지. 비공개로.”

 

  그 앨범 속 가장 먼저 펼치게 되는 페이지 중 하나. 서문에 좀 더 살을 붙이자면, 한참 전세가 밀리고 있어 분위기가 더더욱 흉흉했던 군 사령부에 겨우 소포 하나 전하자고 둘이서 숨어들어갔다는 거다.

  둘 중 어느 쪽도 그런 종류의 잠입을 위한 체계적인 훈련 따위는 받은 적이 없다. 특히 선장 쪽은 말하지 않더라도 교육 따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허나 그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연기를 마신 벌집 같은 기지 한가운데에서 받는 사람 앞에 물건을 대령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거다.

 

 “결국 들켜서 쫒아온 군인들이 사방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데, 차마 소포 배달하러 왔다고는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

 

  지금도 떠올리면 쓴웃음만 입가에 둥둥 뜨는 추억이다. 마지막에 선장이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갈 수 있는 통행증을 꺼내 들었을 때는, 옆의 병사에게 들고 있는 총을 잠시만 빌려 달라고 부탁하는 걸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아마 그 병사도 흔쾌히 넘겨주었을 것이다.

 

  선명한 화질로 다시 재생되는 그 때의 화면에, 선원은 가벼운 두통을 느끼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다행히도 그 광경은 아이에게는 꽤나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선장의 장난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기행들은 어린아이들과 주파수가 통하는 면이 있을 게 분명하다. 차라리 선장이 이 아래로 내려오는 편이 좋았을지도.

 

 “재미있었겠네요.”

 “그래, ‘재미’는 있었지.”

 

  그 밖에 몇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놓고 나자, 어느 새 아이와 선원은 평범하게 만난 사람처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아버지와 딸 사이의 올바른 분위기인지는 알 수 없다. 허나 적어도 이 대화에서 들리지 않았던 무언가가 서로 전해진 것은 분명하다고 여겨졌다.

 

 “너는 어떻게 지냈니?”

 

  이제는 이쪽이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지금껏 서로 친근하고 원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이 장소와 그녀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밝혀져야 한다. 그저 이 소포를 여기에 내려놓고 돌아가는 걸로는 선장에게 한 번 더 엉덩이를 걷어차일 뿐이다. 때문에 전에 한 질문을, 알면서도 한 번 더 반복한다. ‘올바른’ 수취인을 찾기 위해.

 

 “….”

 

  다시 한 번 부엌에 침묵이 흐른다. 허나 그 침묵의 의미는 처음과 다르다. 숨기고 미루기 위해서가 아닌, 준비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잠시의 틈. 그 틈의 가장 깊은 지점에서 마침내 그녀의 입이 열린다. 가는 목소리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이번에는 아주 길었다.

 

 “저도 사람을 만났어요. 아니, 사람들, 만난 게 아니라, 왔었어요.”

 

  오래 묵은 사진처럼 빛이 바랜 언어로 오래된 풍경이 묘사된다. 집을 비운 유일한 가족과, 혼자 남아 집을 지키는 아이. 그리고 정말로 많은 함축을 거치고 나서야말로 표현할 수 있는 지루한 기다림. 시간의 심해(深海)밑바닥에서, 특정할 수도 없는 어느 날짜에 누군가가 이 집의 문을 두드렸다.

 

 “아빠가 아니었어요.”

 

  바닥으로 떨어진 말은 주위를 물들이며 몇 명의 방문객을 불완전하게 묘사했다. 요컨대, 기다리던 아빠 대신 이곳을 찾아온 것은 적어도 소포를 배달하러 온 사람들은 아니었다. 아마도 저 지상에 세워진 낯설고 화려한 정원이 그들을 끌어들였을 것이다.

 

 “좋은 사람도 아니었어요.”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역시 그랬겠지. 다들 무언가 대단한 발견, 또는 값진 물건을 기대하고 분별없이 들어온 자들이었을 거다. 적어도 여기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소녀에게 친절한 인사나 선물 상자를 들고 온 놈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다음은, 귀한 지면을 할애할 필요도 없이 선원이 처음에 보았던 대로다. ‘아빠’는 딸에게 이 집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이 아이-아마도 아이는 오직 그 약속을 충실하게 지켰다. 약탈자들로부터 이 집을 지키고, 세월이 깎고 허무는 이 집을 돌보고 가꾸었다. 어느 쪽이든 평범한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빠를 계속 기다렸던 거니?”

 “아니요, 하지만 맞아요.”

 

  돌아온다는 약속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받은 부탁. 유일한 부탁이었으니까. 그건 삶의 목표가 되었고, 미래의 꿈이 되었다. 마침내는 희망이 되어 바깥의 위험은 아랑곳 않고 하늘을 향해 자라났겠지.

 

 “그러면-”

 

  전해야 할 것은 모두 전해졌다. 선원은 예상하고 있던 사실을 손에 넣었고, 비어 있던 퍼즐의 수많은 조각들이 맞춰져 가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소녀가 앉아 있던 의자는 어느 새 텅 비어 있었다.

 

 “슬슬 시작해 볼까.”

 

  그것 역시, 선원이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

 

  지금부터 말하려는 사건은 흔히 ‘첫 번째 재앙’이라고 일컬어진다. 주기(週期)의 끝에서 머뭇거리는 세상을 조각내 버린 두 재앙 중 하나로. 당치도 않은 소리다. 세계는 그 이전에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인류가 이 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자원은 이미 남김없이 다 소진한 상태였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은 한 줌의 괴짜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이 별에 애정을 품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마치 내일이면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여행지의 숙소처럼 더러운 것은 그저 밀어놓을 뿐이었고, 흘러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인 시간을 무언가를 써 없애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아니 그런 와중이니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 혹은 그렇게 보일 법한 일을 나서서 하는 이들도 있었다. 과학의 이름은 그 지점에서 제법 그럴싸하게 합리적이고 숭고해 보였다. 때마침 ‘신성한’ 과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각종 윤리도 느슨해졌고, ‘자유로운’ 연구가 이루어지기에는 꽤나 좋은 시점이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말을 더하자면, 그 시절에도 이 별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연구 따위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남아 있는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결국은 더 빠르게 소비하여 장부의 기록되는 숫자를 늘리기 위한 수작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소리다. 부(富)보다 조금 덜 흔하게는 인기와 명성을 위해, 약간 더 드물게는 이미 끓어 넘치는 인류의 더한 부흥을 위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입에 올리기 꺼려지는 시도와 성과가 반복되었다.

 

  무언가 일이 벌어지기엔 꽤나 좋은 시점이었고, 약속 따위도 필요 없었단 듯이 그것은 시작되었다.

 

  진화(進化).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 용례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형태지만, 어떤 그룹의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이 단어를 붙이는 것을 매우 즐겼다. 생물학의 몇 가지 하위 분야에 다리를 걸치고 있던 그들의 연구 과제는 생물 개체의 형질 변화. 보통은 세대와 성숙을 통해 눈으로 좇을 수 없을 만큼 천천히 진행되는 그 과정을 냄비 안에서 물고기를 익히는 정도의 시간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연구의 핵심이었다.

 

  중간 과정을 깨끗이 발라내고 나서 말하자면, 연구는 그들이 바란 대로 맛좋은 냄새를 풍기며 노릇하게 익어갔다. 시대가 절박함을, 또는 비슷하게 희망이란 것을 아직 품고 있던 시대였다면 그 연구자들은 빛나는 역사에 이름을 남김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선구자로 떠받들어졌을 것이다. 허나 그런 것은 그들에게는 상관없었다. 세계라는 거대한 수족관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한 종(種)에서 벗어나, 다른 종의 생물들을 접시 위에서 포크와 나이프로 헤집으며 그들은 세간의 시시한 사탕발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유리벽 바깥의 ‘신’이 된 기분을 만끽했다.

  스스로 인류를 ‘진화’시키고 있다고 일컬으며, 연구자들은 생명이라는 거대한 신비의 신전 안으로 서둘러 걸음을 내딛었다. 연구는 이제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남은 것은 이 ‘진화’가 의도적이고 안정적으로 발현하도록 조절하는 일. 이 마지막 조각만 끼워지면, 인류는 더 이상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귀찮은 도구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자유롭게 언제든지 변할 수 있을 터이다.

 

  이로 인해 인류가, 그들 자신의 본질이 어떻게 변해 갈지는 그들 역시 알 수 없었다. 광기에 가까운 열정으로 작업에 몰두하면서도 사고의 구석에선 언제나 두려움이 검은 똬리를 틀고 있었다. 허나 그 두려움은 그들에게 억제가 아니라 쾌감으로 작용할 뿐이었다.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진보(進步)가 일으키는 반작용이자, 지금 나아가고 있는 길에 조금도 잘못된 것이 없다고 여길 확고한 증거로서.

 

  마침내 그들이 인간에 대한 실험에 들어가기 직전, 마찬가지로 여러 곳에서 여러 방법으로 잡아들인 생물들에게 먼저 ‘진화’의 시술을 진행했다. 설계한 바에 따르면, 이 시술은 개체의 ‘희망’에 반응하여 진화를 이끌어낸다.

  끝없고 새롭게 일어나며 집요하게 충족을 요구하는 ‘욕망’에 반응하는 진화라면 그저 그 기능에 충실할 뿐인 흉물이 탄생할 것이 분명하다. 허나 그 아래에 파묻혀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욕망 그 이상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 예컨대 ‘희망’이라면 단순한 흉물 이상의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그들은 확신했다.

 

  결과적으로 그 확신은 적중했다. 문자 그대로의 방식으로.

 

  실험 개체 중에 어떤 식물이 있었다. 포자 번식이라는 유서 깊은 생식 방법을 가진 이 식물 역시 실험을 위해 같은 유전자 시술을 받았다. 이 시점에서 그 식물의 희망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가깝게 짐작은 해 볼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은 퍼지는 것. 그저 번식하여 자손을 널리 남기는 것이 아닌, 그 개체 스스로 무수한 존재가 되어 장소나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이루어야 할 과업도 없이 모든 곳에 그저 ‘존재’하는 것.

  그나마 감수성이 조금 더 남아 있던 연구원이 그 사실을 짐작했을 때는, 식물이 이미 모든 필터를 우회할 수 있는 입자를 공기 중에 흩뿌린 후였다. 사태의 심각성은 오염을 피해 인구가 밀집된 도시 한가운데에 연구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비로소 올바른 단계로 상승했다.

 

  도시에 새어 나온 입자 자체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허나 그것은 그 일대에서 가장 번성하던 종의 몇몇 개체에게 흡수되었고, 본래 자신에게 이루어진 ‘시술’의 효력을 불완전하게나마 그들에게 발휘했다. 원래라면 더욱 통제된 환경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던 인간에게의 실험은 더 이르게, 훨씬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이 연구가 완전히 중지되지 않았더라면, 혹은 연구자들 중에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 실험은 아주 흥미로운 데이터를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입수할 수 있는 데이터는 이것 정도밖에 없다.

 

  사람들의 희망이라는 게, 생각만큼 ‘희망차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덜 다양했다는 것.

 

 
작가의 말
 

 인간은 삶의 절반을 세상을 깨닫는 데에 보낸다.

 나머지 절반은 그 깨달음을 변호하며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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