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1
강 차리는 오늘 늦잠을 잤다. 어제 음식점 <장예원>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몇 명이랑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왔는데 그만 자명종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다. 엄마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 이불을 걷어차는 지경이 되어서야 눈을 뜨고 말았다.
-어머, 어떡해! 왜 이제 깨우는 거야! 좀 일찍 깨우지!
-그렇게 일어나라고 소리를 쳐도 안 일어난 게 누군데! 스물넷이나 쳐 먹은 딸을 업어 키울까! 밤 열두 시가 넘어서 들어와 놓고 지금 누구더러 큰 소리인지.
차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대충 머리를 빗어 넘겼다. 속옷이며 양말이며 아무렇게나 꺼내입고는 후다닥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뒤에서 엄마가 소리를 친다.
-아침도 안 먹고 나가는 거야!
아침 같은 소리 한다.
차리는 투덜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 밖으로 뛰어 나갔다. 차리의 집이 있는 아파트 입구에서 한 시간 전부터 서있던 윤 경영은 눈앞을 빠르게 지나가는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하마터면 놓칠 뻔 한 것이다. 그녀의 발걸음이 전철역을 향해 질주하고 있고 경영 역시 덩달아 숨이 가쁘다.
그는 어젯밤부터 강 차리의 집 앞에서 차리를 기다렸다.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차 안에서 잠복을 하게 되었는데 새벽 한 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차리를 차마 불러 세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잠을 설치고 이렇게 다시 나오게 된 것이다. 똥개 훈련이 따로 없다. 저렇게 급히 뛰는 것을 보니 지각을 한 모양이다. 계집애, 말썽이다.
강 차리를 따라 전철을 타게 된 윤 경영, 오랜만에 타보는 대중교통이다. 출근시간의 지하철은 여전히 개미지옥이다. 바짝 몸들이 붙어서 몸들이 밀린다. 화장품 냄새와 땀 냄새가 뒤범벅되어 코를 쑤신다. 경영은 강 차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의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전철의 문이 열릴 때마다 파도타기 하듯 우르르 몰려나가고 우르르 몰려들어오는 사람들. 경영은 그 사이를 비집고 강 차리에게서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강 차리의 작은 몸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한다. 경영은 근육에 잔뜩 힘을 주고서 전진한다. 여기저기서 경영을 쏘아보는 사람들, 경영은 눈을 질끈 감고 강 차리의 앞에 다다랐다.
강 차리는 가방을 끌어안고 있다. 손잡이를 잡을 수도 없어서 대신 곁에 있는 사람들에 기대어 중심을 잡는다. 경영은 제 눈앞에서 잔뜩 눈살을 찌푸리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발에 힘을 주어 버티고 서있는 차리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차리는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린다. 경영이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강 차리 씨, 강 차리 씨 맞죠?
차리는 누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가 싶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강 차리 씨, 저에요.
경영은 오른쪽 손 엄지와 중지를 튕겨 신호를 보냈다. 차리는 앞에 서 있는 경영을 향해 너는 뭐니? 하는 표정을 지어 보냈다.
다시 문이 열리고 상대의 몸을 찢으며 빠져 나가는 사람들과 벌집을 쑤시듯 들어오는 무리들로 전철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내가 전철을 안 탄 지가 너무 오래되었지. 나도 한 때는 매일 아침 이들처럼 전쟁으로 하루를 시작했지.
경영은 그 와중에 때 아닌 감상에 젖었다. 잠시 긴장의 끈을 놓아서일까. 그만 경영의 <그곳>이 강 차리의 배를 눌렀다. 경영이 서둘러 몸을 떼었으나 뒤에서 밀리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밀착되는 것이다. 경영은 제 <그곳>을 안으로 말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불가항력이었다. 강 차리의 얼굴이 이내 울그락불그락 일그러지고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그녀의 무릎이 경영의 <그곳>을 강타했다. 그러더니 문이 열리는 방향으로 사력을 다해 밀치고 나가는 것이다. 경영은 그녀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틀어막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뼈가 꺾이는 통증이 밀려 왔다.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물에 탄 고춧가루를 <그곳>에 부으면 이런 느낌일까. 경영은 그렇게 한참을 꼼짝없이 서 있었다.
-살살하라고 했더니 정말 살살하다 못해 아예 안 움직이는 거냐?
-부장님 저 지금 죽을 지경이에요. 진짜 죽을 것 같다고요.
책상에 엎드려 있는 윤 경영이 앓는 소리를 낸다.
-강 차리, 걔 힘이 보통 아니에요. 조그만 게 아주 힘은 소머즈 급이라고요. 저쪽에서 투사였나봐요.
그들은 전생을 저쪽이라고 부른다. 현생은 이쪽이고. 그들끼리의 용어이다. 아침에 벌어진 사태로 윤 경영은 지금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걔한테 한 대 쳐 맞았냐?
-걔는 저를 변태로 알고 있어요.
-왜 가서 바바리맨 짓거리라도 한 거야?
-그냥 따라갔어요. 말을 좀 붙여보려고, 헌데, 아이고 내가 말을 말아야지.
-네가 생긴 게 그래서 그래.
-제가 어떻게 생겼는데요?
-네가 야하게 생겼잖아. 국가 공무원 할 몽타쥬가 아니거든.
-섹시하게 생긴 거라고 알아들을게요. 가서 그냥 데려오면 안 되는 거에요 정녕?
-왜 납치라도 하지 그래!
-아이고, 미쳐.
-내가 너를 데려왔을 때를 생각해봐. 자신이 <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그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어요. 강 차리씨, 라고 불러본 게 전부라고요. 걔가 저한테 어떻게 했는지 부장님 알면 깜짝 놀라실 거에요.
오년 전 김 치호는 윤 경영을 만났다. 이른바 헌팅. 경영이 지금의 강 차리의 나이였을 때, 스물 넷, 군대를 막 제대하고 학비를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이트클럽 웨이터, 대리운전기사, 편의점 계산원, 주류 배달원 등등.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휴학계를 내고 일 년 동안 돈을 모으고 있던 중이었다.
윤 경영의 푸른점을 발견한 것은 김 치호였다. 이런 경우를 얻어 걸렸다든가 혹은 천운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우연히 들어간 장소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러니까 캐스팅과 헌팅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독보적인 케이스였다. 어쩌면 드러나지 않고 지나칠 수 있었던 금맥 같은 것이다.
그날 김 치호는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서 맥주를 세 캔 구입했다. 집에 들어가서 마시고 자려고 했던건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그냥 편의점 바깥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마시게 된 것이다. 밤인데도 날은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웠고 너무 목이 말랐다고 해 두자. 혼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그때 편의점에 맥주를 배달하는 차가 들어왔고 트럭에서 내린 젊은 두 남자가 맥주를 편의점 안으로 들여놓았다. 남자들은 민소매차림이었다. 그때 그 어둠 속에서 팔뚝에 푸른 점을 한 남자를 보게 되었다. 편의점의 불빛이 젊은 남자의 팔뚝에 조명을 쏜 것이다. 처음 그 점을 보았을 때 김 치호는 작은 문신인 모양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 어... 하면서 푸른점의 남자를 따라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고 남자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무슨 일이신데요.
-이거요, 이 점, 문신 아니시죠?
-아닌데 왜 그러세요?
-이 점은 상처로 생긴 건가요?
젊은 남자는 바빠 죽겠는데 별 이상한 아저씨를 다 보겠네 하는 표정으로 쓴맛을 다셨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나도 몰라요. 그냥 있는 점이에요.
그 후 김 치호는 우연을 가장해서 윤 경영이 있는 곳에 나타났다. 주류 배달원을 그만 두고 나이트클럽 웨이터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김 치호는 윤 경영이 있는 클럽으로 친구들을 데려갔다. 클럽의 한쪽에 서 있는 경영을 발견하고는 그가 서 있는 곳으로 갔고 그의 앞을 스쳐가다,
-어! 이게 누구야? 우리 어디서 봤는데. 아, 맞다. 푸른점이 있는 친구, 맞죠?
-......
-젊은 친구가 기억력이 없네. 왜 저번에 편의점에서 맥주 배달했을 때 내가 나타나서 푸른점이 어쩌구저쩌구 했었는데.
-아... 네...
-친구들하고 놀러왔는데 우리 테이블 좀 세팅해줘요. 이름이... 탑, 탑!
윤 경영은 가슴에 T.O.P 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그날 김 치호는 진탕 술을 주문해서 마셨고 집으로 가기 전 T.O.P의 주머니에 두둑이 팁을 챙겨 넣었다. 그 후로도 김 치호는 T.O.P의 단골손님으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윤 경영이 나이트클럽을 그만두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나이트클럽을 들락날락거리기에는 김 치호는 심한 몸치였고 그런 유흥에 지칠 나이도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몇 달 후 윤 경영은 나이트 클럽을 그만 두고 대리운전 기사를 시작했다. 물론 그의 동선은 김 치호의 레이더망 안에 있었다. 어느 날 늦은 밤, 김 치호는 어디에서 차량을 불러야 윤 경영이 기사로 나오는지를 확인한 후 대리운전 회사로 연락을 했다. 김 치호의 차를 향해 오는 윤 경영은 김 치호가 나타나자 너무 놀라서 세상에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 지어야 할 온갖 표정을 지었다.
김 치호의 차를 몰고 밤길을 달리는 윤 경영, 그의 얼굴에 깊은 어둠이 몰려왔다. 뒷좌석에 앉아서, 이것 참 별 우연이 다 있네, 하고 연신 떠들어대는 김 치호를 향해 경영의 굳은 입이 터져 나왔다.
-아저씨.
형님도 아니고 아저씨다.
-아저씨, 이거 우연 아니죠? 저 따라다니는 거죠?
-내가 너를 왜 따라다녀?
-아저씨, 술 안 마셨잖아요? 그런데 왜 대리를 불러요?
-내가 술을 마시든 말든 뭔 상관이야! 술 마셔야만 대리를 부르라는 법이 있나?
-아저씨 호모에요?
-뭐 이 새끼야!
김 치호는 뒷좌석에서 윤 경영의 뒤통수를 한 대 갈겼다. 경영은 급하게 핸들을 꺾어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뒷좌석의 김 치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그 주먹은 치호에게 닿지 못했다. 치호의 두 손이 연신 경영의 머리에 내리쳐졌다. 경영의 주먹이 몇 번 치호를 찍었으나 치호는 꿈쩍하지 않았다.
-아! 왜 때려! 왜 때리냐고!
경영이 으르렁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힘에 부치는지 발악을 하며 마구 내지르는 그의 손이 차량 시트를 흔들어댔다.
-야! 차는 내버려둬. 차는 건드리지 마라.
어느덧 두 남자는 지쳤는지 이내 각자의 자리에서 널브러졌다. 한동안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가르며 흐르는 김 치호의 낮고 부드럽기까지 한 목소리.
-윤 경영! 사는 게 힘들지?
-아저씨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뒷조사라도 했어요?
-어디 가서 소주나 한 잔 하자.
-싫어요.
-내가 네 이름을 어떻게 아는지, 내가 왜 너를 따라다녔는지 너도 알아야 될 거 아니야.
-따라 다닌 거 맞죠?
포장마차에 앉아 우동에 닭똥집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경영과 치호. 둘은 소주를 두 병째 비워가는 중이다.
-너는 네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니?
-아니요.
-중 2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말을 너처럼 하는 사람이 너 말고 또 누가 있을까?
-그걸 어떻게......
-넌 왜 러시아말과 프랑스 말을 할 줄 알게 된 거니?
-그걸 어떻게......
-누구한테 배운 적 있니?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그냥 알고 있었어요.
-나는 알지. 너는 <그 사람>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