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좋은 건가.
내 물음에 그 녀석은 도시락 두 개째를 먹고 사랑을 해 본적이 없냐고 물었다. 사랑을 해봤다면 굳이 답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 녀석 평소에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굴어서 무시했는데 이상한 녀석임에는 분명했다. 나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 지 2년이 되었다. 그렇다고 밥을 해 먹는 것이 그립다거나 그런 밥이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 녀석은 나보다 조금 더 편의점 음식을 먹었을 뿐인데 도시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것에 비해 나는 그저 먹는다. 뿐이었다. 도시락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그저 허기를 채우는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매일 아침 그 녀석과 도시락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물론 유통기한이 3시간 내지는 4시간 지난 도시락으로. 그 녀석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서 왕왕 말을 했는데 그럴 때마다 행복해 보였다.
휴대전화를 보지 않는 내 주위의 딱 두 사람이 있는데 그 녀석과 리사였다. 어떻게 봐도 폰이 없으면 안 될 사람들인데 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판일지도 모른다. 그 녀석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폰으로 연락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녀석이 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 녀석은 남아도는 자산 같은 시간을 들여 허공에 대고 자신만의 언어를 내뱉을 뿐이었고 리사는 손님이 오면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손님이 없으면 공책에 글을 썼다. 그리고 가끔, 시간을 들여 나에게 쓴 글을 보여주고 어떤지 물었다. 내가 쓴 글이 있다면 보여 달라고 보챘다. 리사를 매일 찾아오는 손님은 4팀이나 되었다. 시간은 다르지만 4팀은 매일 와서 리사를 찾았고 리사가 먼저 온 손님에게 있으면 레이가 리사를 대신해서 리사를 찾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했다. 레이는 22살로 인형 같은 얼굴을 지녔다. 레이는 아는 것도 많으면서 아는 것이 없는 척 말을 했다. 그런 쪽으로는 발달이 잘 된 여자였다. 레이는 잘생기고 멋진 손님과 데이트도 많이 했다. 포르쉐라고 불리는 손님에게서는 에르메스 가죽 버킨 35까지 선물로 받았다. 모든 남자손님들이 레이를 좋아해도 리사를 꼭 찾는 손님이 있는 곳이 이 도시다. 도시는 설명 할 수 없는 그런 퍼즐로 이루어져있다.
화분으로 머리를 내리쳤을 때 그 서늘한 기분을 나는 기억한다. 그 기억은 떠나지 않는다. 머리에서 피가 터졌다면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피가 흐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진작 머리를 작살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동생은 처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동생을 부탁한다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암이라는 건 죽지 말아야 할 나이의 어머니를 데리고 가버렸다. 40살이 조금 넘은 나이에 장례식 장에 이름이 붙었다. 어머니가 장례식장에 들어간 날 죽은 사람 중에 나이가 제일 어렸다. 그날 모두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죽었는데 어머니만 40살 정도였다. 악마 같은 아버지는 동생을 데리고 산부인과도 다녀왔다. 죽어야 할 사람은 멀쩡하게 살아서 더러운 짓을 일삼고 있고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은 일찍 죽는다. 그런 일들이 나와 가장 가까이서 일어났다.
“죽이고 싶었습니다. 달게 받겠습니다.” 법정에서 그렇게 말을 했지만 세상에 없는 동생을 난도질하는 것 같아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질문을 하는 판사도, 제대로 변호도 하지 못하는 변호사도, 집요하게 넣고야 말겠다는 의지만 있는 검사도 죽이고 싶었다. 무엇보다 왜 공개 법정이어야 하는지, 그래서 공개방청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그날은 죽이고 싶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