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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신에 버금가는 자.
작가 : Stonehead
작품등록일 : 2019.9.29

저승의 최고신, 염라대왕의 현신, 신아.
그가 머물고 있는 지옥에서 대형사고가 하나 터지는데......

"십이악령이 탈출했네."

저승이 관리하는 최악의 열둘 대죄인들이 저승을 탈옥한다!

"그것 참, 큰일이군요."

신아는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이 즐거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염라대왕은 신아에게 악령의 처리를 맡긴다.
그리고 신아는 기꺼이 이 즐겁게 놀기(?)위해 악령들을 쫓아 이계(異界)로 향한다.

 
Chapter 4 역천 : 천하제일비장, 여포 봉선(2).
작성일 : 19-10-01 23:55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10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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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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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방으로 몰아치며 변칙적으로 공격해오는 방천극의 움직임은 언뜻 보면 수십 개의 방천극이 제각각 공격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또한 창이라는 무기가 가지는 사거리의 이점이 검을 든 신아보다 좋았기에 막기 급급한 신아에게는 빈틈이 많이 생겼다. 여포는 그 빈틈을 노렸다.

 

  챙! 채쟁챙! 챙!

 

  하지만 그 빈틈은 모두 신아에게 막혔다. 검은 검답지 않게 이리저리 휘는 것처럼 보였으며 사거리가 없다시피 하며 급소와 빈틈들을 정확하게 막았다.

 

  ‘특이한 검술을 쓰는군.’

 

  언뜻 보면 신아의 검술과 움직임은 투박하며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지난 시간 동안 워낙 압도적인 힘으로 인간을, 소위 양민학살을 하고 다녔기에 검에 효율성을 부여할 필요가 없었다. 다시 말해 온통 허점투성이인 검의 초짜나 다름없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여포는 그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

 

  여포가 신아를 이길 수 없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

 

  우선, 하나는 적토마가 없다는 것이다.

 

  여포는 변방 병주 출신으로 어머니가 흉노족이었다. 흉노족은 최초의 유목제국을 세운 민족으로 기마술에 능했다. 당연하게도 여포는 말을 잘 탔으며 말 위에서 쉬지도 자지도 먹지도 않고 생활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여포는 기병이었다. 말 위에서 창을 휘두르는 기병의 위력이란 말 위에 있을 때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말에서 내린 기병이란 전장의 제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따라서 단기결전이라면 몰라도 장기전으로 갈 때, 적토마가 없는 여포는 제 실력의 반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제 실력의 반이어도 지구에서는 적수는 없었을 테지만 상대는 신아였다.

 

  다른 말을 타면 됐을 테지만 여포를 태우고 방천극을 휘두르는데도 버틸 수 있는 말은 적토마 외에는 찾기가 힘들었다. 괜히 인중여포 마중적토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었다. 또한 적토마는 관우가 신으로 추앙받으면서 영물로 격이 올랐고 이는 악령이 불러낼 수도 탈 수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소리였다.

 

  둘째는, 보낸 시간의 차이였다.

 

  여포의 경우, 지구에서 무장으로 활동했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여태까지 지옥에서 보냈다. 동탁에게 다시 불려왔던 때도 그렇게 길지 않았다. 하지만 신아는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 자체가 여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수천만 년분의 지식과 기억이 집적된 신아의 정신은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자연스럽게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검술을 도출하고 사용하고 있었다.

 

  신아는 여포를 항우와 더불어 가장 상대하기 힘든 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여포가 항우와 같은 급인 십이 악령일 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악령의 종복 밖에 안 된다면 여포 따위가 신아를 이길 기회는 없었다.

 

  서걱!

 

  수십 합을 나눈 끝에 사인검은 방천극을 잘랐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초란에게 이미 한 번 잘렸던 곳이 신아에게 다시 한 번 잘린 것이다. 방천극의 날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본 여포는 곧바로 거리를 벌렸다.

 

  후웅!

 

  여포의 목이 있던 자리를 사인검이 흩고 지나갔다.

 

  “······으음.”

 

  여포는 턱이 조금 얼얼함을 느꼈다. 아니, 조금 얼얼한 게 아니라 많이 아팠다. 사인검이 내뿜는 열기는 검이 휘둘러지는 궤도를 따라 전방을 향해 열을 발산했다. 그 엄청난 고온에 턱을 데인 것이다. 목의 상처는 주위 피부와 근육이 익어버려 지혈을 할 필요는 없었으나 땀과 공기를 맞을수록 따갑고 욱씬거리는 것이 움직이는 데에 방해됐다.

 

  ‘이길 수 없다!’

 

  인중여포로도 이길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계속 싸워 봐야 개죽음 밖에 없다. 원래 목적이었던 왕만 챙겨서 빠르게 빠져나가야 했다.

 

  ‘이럴 때 적토가 있었으면······.’

 

  그 어떤 말보다 대단했던 명마, 적토. 그것이 있었기에 천하제일비장이라 불릴 수 있었던 점 또한 없잖아 있었다. 허나 이 자리에 없는 것을 바라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포는 크게 심호흡했다.

 

  그 사이, 신아는 공격을 재개했다. 사인검은 여포의 급소만으로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여포는 창대로 공격을 막거나 흘려보내며 공격을 피했다. 비교적 마른 체형인 여포는 몸이 유연했기에 이리저리 피하는 것에 능했다. 하지만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크윽!”

 

  사인검이 여포의 오른쪽 팔뚝을 베고 지나갔다. 검에 베인 그 순간, 살이 녹아 문드러지고 살이 익어 타는 냄새가 확 풍겨왔다.

 

  “그냥 빨리 죽는 게 편하지 않아?”

 

  신아가 입꼬리를 히죽 말아 올리며 말했다.

 

  “······.”

 

  여포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신아의 검을 피해 안으로 파고들어 주먹으로 신아의 턱을 밑에서 쳐올려 때렸다. 강렬한 어퍼컷이었다. 고대 삼국시대 무장이 어퍼컷을 쓸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신아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런 씨발!”

 

 

  순간 품위도 잃고 욕부터 내뱉은 신아는 자세를 잡고 매섭게 들어오는 여포의 주먹을 피했다. 거리를 확실하게 좁힌 여포는 계속해서 복싱으로 신아를 몰아붙였다. 스트레이트, 훅, 바디 블로우, 그리고 다시 스트레이트. 몇 번 피하고 보니 여포의 패턴을 파악한 신아는 그가 뻗은 주먹을 잡았다.

 

  “설마하니 삼국시대의 무장이 현대 복싱의 기술을 쓰다니. 이건 진짜 반전이네. 누구한테 배웠냐?”

 

  “······지옥에서.”

 

  인상을 쓴 여포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아, 하고 신아는 납득했다. 지옥을 꼭 여포처럼 사람을 죽여야 가는 건 아니었다. 다양한 이유로 신이 준 생명과 시간을 함부로 대한 자들 또한 지옥행을 피할 수 없었다.

 

  “벌 안 받았냐?”

 

  “······벌 받기 위해 배웠지. 거기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곧 나의 적이었으니까.”

 

  “흐응~. ······그건 그렇고 손 아프지?”

 

  퍼석!

 

  신아가 힘을 주자 잡힌 여포의 주먹이 모래가 터지듯이 피와 살과 뼈가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핀 것이 전부인데 여포의 주먹은 사라지고 흉물스러운 곤죽만 남아있었다.

 

  퍽!

 

  신아의 주먹이 밑에서부터 여포의 턱을 쳐올렸다. 여포가 먹인 어퍼컷을 되돌려준 것이다.

 

  “크으흑!”

 

  하필이면 맞은 부위가 화상을 입은 부위라 화상 상처가 터져 속의 근육이 훤히 드러났다. 피 흘리며 일어나는 여포의 눈앞에 신아의 검이 있었다.

 

  “이런······.”

 

  깡!

 

  여포의 오른쪽 눈을 노린 신아의 검은 갑자기 난입한 한 자루의 도끼에 막혔다.

 

  “하?”

 

  신아가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거구지만 준수한 외모를 지닌 청년이 또 다른 도끼로 신아의 목을 향해 내리치고 있었다.

 

  도술―축지(縮地).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신아는 축지를 따라온 거구의 청년이 휘두르는 도끼에 맞서 사인검을 들어 방어했다.

 

  까앙!

 

  검이 떨리고 팔도 떨리게 만드는 괴력에 신아는 두 눈을 부릅떴고, 청년 또한 막을 줄 몰랐다며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거리를 벌렸다.

 

  ‘동탁의 휘하에서 괴력으로 쌍도기를 다루는 자라면······ 서영! 조조와 손견을 패퇴시킨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한 맹장.’

 

  서영은 오랜 시간 동탁을 따라 북방 전선에서 많은 공을 세운 무장이었다. 반동탁연합군이 결성되고 동탁군이 퇴각할 때, 추격해온 조조군을 몰살시켰을 뿐 아니라 목숨까지 위협했다. 또한 낙양을 노리고 북상하던 손견을 막아 박살을 낸 것 또한 서영이었다. 그는 동탁 사후에 호진 등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그가 동탁의 밑에 다시 호진과 함께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영은 서영대로 머리가 복잡했다.

 

  ‘내 도끼를 막다니, 과연 이 천하의 여포가 밀릴 만하구나. 그럼 화웅과 호진을 죽인 것도 이 자인가.’

 

  지금 서영이 괴력으로 휘두르는 쌍도끼는 도끼는 통째 철과 사람의 뼈로 이뤄져 있었다. 도끼 자루의 끝에는 사람의 두개골이 적을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졌다. 이 도끼의 이름은 ‘천식부(天蝕斧, 하늘을 좀먹는 도끼)’라는 마(魔)무구로 동탁이 직접 만들어 능력까지 부여한 도끼였다.

 

  천식부는 적의 공격을 배로 반감하는 능력이 있음과 동시에 주인의 공격을 배로 증폭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악령이 직접 만들어 능력까지 부여한 무기에는 오직 만든 악령과 그 악령을 뛰어넘는 존재만이 공격을 막거나 도끼를 부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일반인은 고사하고 신선이라 불리는 자들조차 천식부의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여포와 합공을 한다면 승산이 있을 지도 모르겠으나······지금 저 상태로 제대로 싸울 수는 없겠지.’

 

  조조와 손견을 패퇴시킬 정도로 뛰어난 군사 지휘관이었던 서영은 전세의 불리함을 알았다. 그는 지금은 후퇴해야 할 때임을 알았다.

 

  사기―흑진풍(黑陣風).

 

  천식부를 중심으로 검은 바람이 회오리치듯이 몰아쳤다. 신아는 신중하게 방어 자세를 취했다.

 

  “후음!”

 

  서영이 도끼를 휘두르자 검은 바람이 주변을 집어삼키는 태풍이 되어 신아에게 날아갔다.

 

  “하압!”

 

  거기에 맞춰 신아의 검기가 태풍을 반으로 갈랐다. 검은 바람은 허무하게 반으로 나눠져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기상이변을 일으킬 정도의 기가 사라지자 하늘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신아 또한 기운을 가라앉혔다. 여포와 서영, 그리고 왕 해을은 사라졌고 부상을 입은 초란만이 남아 있었다.

 

  “에이 씨.”

 

  신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길가의 돌멩이를 발로 찼다. 돌은 굴러가며 판자때기를 하나 치웠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햇빛에 반사되는 금빛의 무언가가 있었다.

 

  “이거······국새 아니야?”

 

  신아가 든 것은 용이 조각된 황금 도장, 해씨 왕조의 국새였다. 아마도 아까 그 난리통에 떨어뜨리고 잊어버린 것이다.

 

  “에효······이딴 걸 어디다 쓰라고.”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것이지만 신아에게는 그저 잘 조각된 반짝반짝 빛나는 돌이었을 뿐이다.

 

 ***

 

  폐허가 된 거리, 한 자루의 극을 다루는 사내와 짧고 굵은 검을 쓰는 여인이 붙는다. 합이 채 열이 넘기도 전에 여인의 검이 부러지고 손목이 부러지고 배에 방천극이 박히고 허벅지가 꿰뚫린다.

 

  아무 표정이 없는 사내는 여포였고, 분한 표정으로 쓰러지는 여인은 초란이었다. 여포가 쓰러진 초란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주위가 일그러진다. 사방에서 어둠이 독기처럼 흘러들어와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린다.

 

  다시 한 번 여포와 초란이 싸운다.

 

  여포가 이긴다.

 

  초란이 쓰러진다.

 

  어둠이 흘러들어와 처음으로 되돌린다.

 

  다시 싸운다.

 

  초란이 진다.

 

  어둠이 흘러들어온다.

 

  다시 싸운다.

 

  이 미칠 것만 같은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던 자가 있다. 이 광경의 한쪽 구석에서 제 3자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그녀는 바로 초란이었다. 지켜보는 초란은 다리 부분이 흐릿한 것이 영체와 같았고 싸우고 있는 초란은 진짜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진짜는 흐릿한 영체고 싸우고 있는 것이 가짜였다.

 

 

  이곳은 초란의 정신 속 무의식이 만들어낸 심상세계(心狀世界).

 

  가장 슬프거나 기쁘거나 화나거나 허무하거나 하는 등 인간이 가진 감정들 중 가장 강하게 발현된 감정이 기반이 되어 만들어지는 심상세계는 모든 마법과 도술의 기초가 된다.

 

  사람이 쓰는 초자연적인 기술들은 모두 심상세계에 따라 어떤 형태로 현실에 나타나며 어떤 형태로 끝이 날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법이나 도술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심상세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심상세계란 태어나고 살아가며 경험하는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검사에는 검기의 발현이, 검사와 마법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아를 비롯한 삶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가장 결정적이고 영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심상세계였다.

 

  이곳, 초란의 심상세계는 여포에 대한 뼈아픈 패배로 새로이 각성한 새로운 구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심상세계는 넓다. 마음이란 한계가 없는 무한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영역. 그 마음 속에 있는 심상세계 또한 한계가 없다.

 

  보통 사람들은 심상세계의 존재를 알지 못하지만, 심상세계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에 숙련된 이들은 심상세계를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눠 마법은 마법별로, 검은 검대로, 지식은 지식별로 활용할 줄 알았다.

 

  그리고 여포와의 전투로 정신을 잃은 초란의 무의식 속에서 어둠과 독 밖에 없던 그녀의 심상세계에 ‘패배’, 그리고 ‘여포 봉선’이라는 구역이 새롭게 생겨났다. 초란의 의식은 그 속에서 몇 번이고 싸움을 재생하고 또 재생하고 있었다.

 

  그녀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이유는 하나.

 

  ‘이길 수 없다.’

 

  수십 번을 싸우게 했다. 심지어 어깨가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니고, 지친 것도 아닌 최상의 상태를 상정했다. 단검도 쓰고 독도 썼다. 그런데도 이기지를 못했다. 정확하게 수치로 따지자면 56전 56패 0승. 완패였다.

 

  마음속의 세상인데, 초란, 그녀의 세상인데도 이기지 못했다. 여포, 그는 거대한 태산과 같았다.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태산으로 인간은 결코 넘지 못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이기기 위해선······힘이 필요하다! 압도적이고 강력한 힘이!’

 

  압도적인 적을 이기려면 더 압도적이 힘으로 눌러 죽여야 한다. 물론 전쟁이었으면 다른 것들 또한 따져야 했겠지만, 이것은 전투다. 각자의 힘과 각자의 기술과 경험으로 싸우는 것. 두 사람 다 경험은 풍부하다. 하지만 여포는 선봉에 서는 장수였고, 초란은 음지에서 싸우는 암살자였다. 그렇기에 경험은 애초에 논할 수 없다.

 

  다음은 기술. 이 또한 마찬가지. 암살자와 장수의 기술은 다르다. 경험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힘. 힘은 여포가 우월하다. 따라서 초란은 압도적인 힘을 단기간에 얻어야 한다. 그것만이 필승의 방법이었다.

 

  초란이 여포와 같은 힘을 얻었다는 상태를 가정하고 다시 한 번 싸움을 시작하려던 그녀는 갑자기 무언가 강하게 잡아당기는 힘에 밑으로 쑥 끌려 들어갔다.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온몸을 짓누르던 강한 기운에 초란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염과 동시에 눈을 떴다.

 

  “허억!”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신아였다.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아, 일어났네, 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 초란은 그녀가 현실로 돌아온 것임을 알았다.

 

  “끄응.”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일어나는 초란은 문뜩 어깨와 손목, 배와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베이고 찔린 흉터 하나 남지 않고 하얀 피부 그대로 돌아왔고 단지 찢어지고 구멍난 옷들이 상처들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치료했다. 하나라도 쓸 만한 게 필요하니까.”

 

  “······감사합니다.”

 

  초란은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비록 자신도 사람이 아니라 도구로 여기는 듯해서 불쾌했으나 어쨌든 생명의 은인이다. 감사를 표하는 것은 자신은 그와 다르게 사람이라는 또 다른 증거였다.

 

  “그건 그렇고, 힘이 그렇게 탐나나?”

 

  “······그게 무슨?”

 

  “너무 강렬하더군. 힘, 힘, 힘! 오직 힘만 생각하고 있었잖아.”

 

  초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떨어진 검을 회수했다.

 

  “그 힘, 내가 줄 수도 있는데.”

 

  신아의 말에 초란은 검을 떨어뜨렸다. 천천히 돌아보자 검지를 세워 입가에 대고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그리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일단 한 번 튕겨봤다.

 

  “당신이 왜 내게 힘을 준단 겁니까?”

 

  “말했잖아, 쓸 만한 게 필요하다고.”

 

  “설령 당신이 내게 준다고 해도 내가 당신을 배반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힘을 준다고 날 죽일 수는 있고? 머리 굴리지 마. 내가 널 키울 수 있다면, 내가 널 죽일 수도 있어. 그건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는 것보다 쉬운 일이야.”

 

  은은한 노기를 드러내며 그는 끝까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장난치기 직전의 아이처럼 그녀의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내가 받아들인다 치고, 그럼 어떻게 힘을 줄 수 있죠? 영약이라도 먹일 건가요?”

  “영약보다 더 좋은 거지. 그리고 먹는 게 아니라 네게 주입시킬 거야.”

 

  “······무슨 의미죠?”

 

  주입이라는 단어에 초란이 경계했다. 하지만 신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넌 알 거 없어. 중요한 건 나한테는 네가 필요하다는 거고, 그래서 난 네게 내 힘의 일부를 빌려주기로 했다는 거고.”

 

  “······.”

 

  “자, 선택해. 힘을 얻고 멋진 기사님을 기다리는 왕을 구할 건가, 아님 이대로 홀로 쳐들어가 개죽음을 당할 건가?”

 

  “······나는.”

 

  “기회는 한 번이야. 잘 선택해.”

 

  초란의 검을 주워드는 신아가 말했다. 눈앞의 그는 악마다. 이것은 악마의 계약이다. 받아들임으로써 나 또한 악마가 되는 것이다! 초란의 직감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기적도 내려주지 않는 신에게 기대는 것을 택하기에는 초란은 세상을 너무 잘 알았다. 지금 그녀에게 주워진 선택지는 어차피 하나, 잡는다!

 

  꽉 잡은 초란의 손을 느끼며 신아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잘했어.”

 

  촤악!

 

  신아가 검으로 오른손바닥을 베었다. 상처가 나며 피가 나왔다. 신아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바닥을 초란을 향하게 하며 말했다.

 

  “마셔.”

 

  “······!”

 

  초란은 혐오의 기색을 숨기지도 않았다. 설마하니 이런 사술로 힘을 준다고 할 줄이야, 설령 힘을 얻는다 해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술이 아닌가. 초란의 입에서 거절의 말이 나오기 전에 신아가 먼저 말했다.

 

  “뭘 기대한 거지? 설마 영약을 주고 막힌 기혈을 뚫어 초고수로 만들어주기라도 바란 건가? 그렇다면 기대를 배반해서 미안하군. 하지만 말이야.”

 

  신아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너도 알잖아. 그런 규칙에 딱딱 들어맞는 방식은 지금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지금 너에게는 규칙이 아니라 반칙이 필요해. 잘 알면서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하지만.”

 

  “네가 싸우려는 여포는 인간이 아니야. 짐승이다. 짐승을 잡는데 인간의 규칙을 적용해야 하나? 인간을 해치는 짐승을 죽이는데 인간의 도리를 논하고 인간의 예를 전하며 교화할 건가? 아니! 짐승을 죽이는 데 필요한 것은 힘이다! 짐승을 죽이는데, 살생을 행하는데 도리와 예 따위를 어디다 쓴다는 거냐! 짐승에게 규칙이 없다. 그렇기에 인간은 반칙으로 짐승을 죽인다! 그것이 전부야, 그렇지 않아?”

 

  “······정말로······힘을 줄 수 있나?”

 

  초란의 물음에 신아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이것을 기대한 것 같았다.

 

  “마셔라. 나의 피는 성혈(聖血)이니, 그 속에 녹아있는 수많은 원소들 중 암(暗)과 지(地)가 너의 새로운 힘이 될 거다.”

 

  초란은 신아의 손을 잡아 입가로 가져갔다. 신아의 키는 초란보다 작았기에 초란이 무릎을 살짝 굽히고 그의 상처에 입을 대고 피를 빨아먹었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그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짙었고, 그녀 또한 심장과 온몸의 혈맥을 중심으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강력한 힘이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후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쉰 초란은 힘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주위로 땅이 움직이며 그녀의 기가 검은 연기로 형상화되어 그녀 주변을 넘실거렸다. 그녀의 시선은 신아에게로 향했다.

 

  어느새 상처가 회복된 소년, 이 말도 안 되게 간단한 방식으로 힘을 준 소년. 그가 그녀에게 한 것은 사술이지만 사술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과정이었다.

 

  ‘내가 사술에 편견이라도 갖고 있었던 것인가? ······하지만 사술이 위험하지 않다고 해서 가까이 둘 수는 없다. 이는 차후에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겠군.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 다르게 사술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신아가 그녀에게 준 것은 정말로 순수하게 신아의 피, 그 자체였다. 신아의 피에는 수천만 년간 세상을 떠돌며 먹은 영약의 기운이 그대로 영혼에 녹아들었고, 이는 육체에도 영향을 끼쳐 만들어진 결과였다.

 

  현신이라는 특수한 위치에 있는 신아의 피는 내부에서 녹아 완전히 각성한 영약의 효과와 결합하면서 잠든 신성을 깨웠고 이것이 신아를 반신의 지위에 올려놓은 계기가 되었다.

 

  “어때?”

 

  신아가 물었다. 연인에게 선물을 주고 그것이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소녀와 같은 느낌이었다. 초란은 검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힘은 쓰면 쓸수록 더욱 정교해 질 거야.”

 

  “그런가? 아주 좋은데.”

 

  초란이 검을 쥐고 정신을 집중하자 검에는 칠흑 같은 검은 기가 서렸다. 순식간에 힘을 통제하고 검기를 발현했다. 수많은 요소들 중 겨우 하나를 성공한 것이었다. 빠른 성취라고 할 수 없으나 결코 느린 성취라고도 할 수는 없었다. 신아의 입장에서 그녀의 재능은 그저 그런 범부의 재능일 것이다.

 

  “힘을 줬으니 이제 뭘 해야 할지 알겠지?”

 

  “물론이다. 이 힘으로 여포를 죽이고 노이아와 왕을 구해야지.”

 

  “그래, 잘 아네.”

 

  ‘그리고 힘은 너에게 대가를 요구할 거야.’

 

  신아는 뒷말을 일부러 삼켰다. 그것이 더 재밌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신아의 피는 결국 신아의 일부였다. 그렇기에 신아의 피를 마셔 힘을 얻은 초란 역시 변수와 비슷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정확히 말하면 변수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이제 인과율은 그녀를 주시할 것이고 때에 따라 그녀가 방해가 된다고 여기면 그녀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신아의 피를 마심으로써 그녀의 운명은 반쯤 흐려졌으니 운명 자체가 하나의 변수가 되어 인과율을 어지럽히는 것보다야 그냥 죽여 화근을 없애는 것이 인과율의 입장에서는 더 편한 선택일 것이다.

 

  언제가 됐든, 인과율은 분명 초란을 죽이려 들 것이다. 그것 또한 그것대로 신아에게 재미를 가져다 줄 것이다. 굳이 그게 아니어도 인과율에 위험이 가면 제약에도 타격이 가니, 결과적으로 신아는 힘을 되찾을 수 있다. 어디로 봐도 신아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자, 그럼 갈까?”

 

  신아의 말에 화답하듯 왕궁에서 굉음과 함께 나타난 검은 기둥들은 왕궁을 하나의 요새로 바꿔놓았다. 요새를 지키는 군사의 선두에는 여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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