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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신에 버금가는 자.
작가 : Stonehead
작품등록일 : 2019.9.29

저승의 최고신, 염라대왕의 현신, 신아.
그가 머물고 있는 지옥에서 대형사고가 하나 터지는데......

"십이악령이 탈출했네."

저승이 관리하는 최악의 열둘 대죄인들이 저승을 탈옥한다!

"그것 참, 큰일이군요."

신아는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이 즐거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염라대왕은 신아에게 악령의 처리를 맡긴다.
그리고 신아는 기꺼이 이 즐겁게 놀기(?)위해 악령들을 쫓아 이계(異界)로 향한다.

 
Chapter 4 역천 : 호진 자(字) 문재.
작성일 : 19-10-01 23:53     조회 : 217     추천 : 0     분량 : 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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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진원은 옥좌를 내려다보았다. 평소에 그렇게 탐내던 자리였고 ‘그 존재’에 대해 알게 된 이후에도 포기하기 힘든 자리였으나 지금만큼 증오스러울 수 없었다.

 

  “아직도 멀었느냐?”

 

  절로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왕실 주술사들과 기술자들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송구합니다, 대감마님. 그렇지만 너무 오래된 기술이라 관련 문헌이라도 있지 않으면······.”

 

  “왕실 삼대 비기에 관한 문헌은 다 소각되지 않았나! 그리고 열지 못하겠다면 부술 방법이라도 찾으란 말일세!”

 

  왕실 삼대 비기란 신 왕국 초대 국왕이 후대를 위해 안배한 세 가지 장치로 하나는 왕실 비밀 통로, 다른 하나는 왕실 비고, 또 다른 하나는 왕실 특무대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비교적 잘 알려졌고 그것이 실존한다는 것 또한 확인된 사실이지만 세 번째, 왕실 특무대 ‘천위(天衛).’ 그들은 패배를 모르는 무적의 부대로 일개 병사 하나하나가 일당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왕을 잡아야 한다! 천위는 오직 왕을 위해서만 검을 들었다. 왕권이 약하던 때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왕의 뒤를 지켰다. 만일 왕이 천위를 동원한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천위는 많게는 200명에서 적게는 30명으로 운용되었다. 그들은 왕권의 척도 역할도 했기 때문에 왕권이 강했을 때에는 무려 700명까지 운용했으나 왕권이 약했을 때에는 아예 한 명도 없었던 때도 있었다. 천위의 존재 여부는 오직 왕만이 알았으므로 신하들은 천위가 몇 명이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오나 아버님, 이곳에 있는 정마공의 군사들까지 합하면 모두 일만입니다. 아무리 천위가 일당백이라 한들, 일만이나 되는 병사들을 전부 감당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백선현이 차분하게 백진원을 달랬으나 그것은 그의 화만 더 돋우는 꼴이 되었다.

 

  “이런 멍청한 것! 어째서 천위의 칼이 이곳을 향하리라고 생각하느냐?”

 

  “예? 이곳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로······?”

 

  “민심을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더냐! 만일 주상이 천위를 데리고 다른 도시로 가 해씨 왕조의 건재함을 알린다면 우리는 수도를 찬탈한 역적이 된다. 온 나라의 민심이 떠나갈 것이 아니더냐!”

 

  “······송구합니다, 제가 어리석어······.”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당장 가서 왕을 찾으란 말이다! 비밀통로가 아무리 대단하다한들 새롭게 확장한 외성을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서 가서 찾아라!”

 

  “예!”

 

  그때, 대전의 문이 열리고 병사들 사이에서 장년 사내가 나타났다.

 

  “아버님, 미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백진원을 보며 아버님이라 부른 사내, 백진원에게 진심으로 자랑스럽다는 미소를 끌어낸 사내, 그는 백씨 가문의 적장자, 백예헌이었다.

 

  “오오! 그래 미후께서 날 찾으신다고? 이럴 때가 아니지. 자자, 어서 가자꾸나.”

 

  “그럴 필요 없소. 여기 왔으니.”

 

  백예헌의 뒤에서 단호한 듯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옷을 입고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고 활대를 등에 멘 장신의 여인은 아주 자연스럽게 백진원의 인사를 받았다.

 

  “어서 오십시오, 미후 합하.”

 

  “음.”

 

  그녀가 바로 정마공 진차경의 최측근 가신이자 이 수도 진격작전의 총지휘관 미후였다.

 

  미후란 이름이 아니라 오등작 중 두 번째로 공 다음가는 작위다. 서방에 대입한다면 후작의 지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었다. 즉 그녀는 미후라는 작위를 받은 귀족이며 본명은 따로 있다는 소리였다.

 

  그녀의 이름은 정마공 진차경과 그의 사대 장수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다. 왜 아무도 모르냐 하면, 아는 자들은 그녀가 다 죽였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겼군.”

 

  “송구합니다, 합하. 하지만 수도 밖으로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 곧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아니, 당신은 여기서 이곳을 지키시오. 이 자리를 놓칠 수야 없지 않겠소. 그리고······왕은 내 쪽에서 찾도록 하지. 문재.”

 

  “예, 합하.”

 

  그녀의 뒤에서 덩치 큰 거한이 나타나 답했다. 짧게 자른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으로 존재만으로 주변을 압도하는 기백과 위엄을 가지고 있는 무장이었다.

 

  “찾아. 그리고 내 앞에 데려오도록.”

 

  “명, 받듭니다.”

 

  쌍검을 빼들고 기분 좋게 웃은 문재라 불린 사내는 병사들은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미후의 시선이 대전의 한가운데 독으로 힘겨워하는 노이아에게 향했다. 그녀의 시선을 알아챈 강씨 가문의 수장, 강회진이 말했다.

 

  “저놈은 본보기로 처형하여 새로운 군왕의 지엄함을 보일 것입니다. 너무 심려치······.”

 

  미후는 손을 들어 강회진의 머리를 잡았다. 강회진은 이 무례한 행위에 당황해 할 때, 미후가 그대로 팔을 뻗어 강회진의 머리를 밀쳤다.

 

  퍼억!

 

  피가 쏟아지며 머리를 잃은 몸이 쓰러졌다. 대전의 한쪽으로 죽기 직전의 감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담아낸 노인의 머리가 굴러갔다.

 

  “말이 너무 많아. 쓸모없는 기생충 주제에”

 

  모두가 왕국의 조정 대신의 허망한 죽음에 아무런 반응도 못하고 있을 때, 미후는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노이아에게 다가갔다.

 

  노이아의 상태는 심각했다. 기혈이 터져 부상이 도진 것은 물론이고 독이 퍼져 온몸에 열이 나고 호흡이 가팔랐으며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하아······하아.”

 

  미후는 노이아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땀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말했다.

 

  “실로 슬픈 일이 아니냐? 죽지 못해 이리 고통 받다니.”

 

  “······.”

 

  “내가 너를 이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겠다.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안겨 주겠다.”

 

  “······.”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이 운명, 내가 부숴주마. 네가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둔 하늘을 내가 먹어치워주마.”

 

  “······.”

 

  “그러니, 나를 위한 한 마리의 늑대가 되어라.”

 

  노이아는 고개를 들어 미후를 바라봤다. 왜일까, 미후의 얼굴은 분명 미인이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데, 왜 그는 미후가 뚱뚱한 거한으로 보이는 것일까? 본질을 꿰뚫어보는 신목(神目)을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 그녀의 제안의 본질이 파멸을 불러온다는 것을 알았다.

 

  “······흐.”

 

  노이아는 실소를 흘렸다. 그것을 들은 미후 또한 마주 웃었다.

 

  “······흐흐.”

 

  “하하.”

 

  “흐, 아하하하!”

 

  “하하하하!”

 

  주변에서는 두 사람을 미친 것처럼 바라봤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시원하게 웃어재꼈다. 노이아는 미후에게서 항우와 같은 부정한 것을 보았고, 미후는 노이아에게서 저항을 보았다.

 

  노이아가 고개를 크게 움직여 미후에게 박치기를 날렸다. 빡! 어린아이지만 인간의 신체부위 중 가장 단단한 이마에 정통으로 맞은 미후의 코에서 한 줄기 피가 주르륵 흘렀다.

 

  “흐흐, 하하하하!”

 

  노이아는 그것을 보고 더욱 미친 듯이 웃었고.

 

  “이······애새끼가······!”

 

  미후는 분노했다. 그녀의 분노는 한순간 주위가 어두워진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어마어마한 살기에 모두가 피를 토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백진원만이 서있었으나 그 또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후우······.”

 

  짧게 심호흡한 미후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살기를 거둬들였다. 하지만 조정 대신들 중 심약한 이들은 이미 숨이 끊어진 이후였다. 아랑곳하지 않고 미후는 노이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데려가서 고통이 뭔지 보여주도록.”

 

  "······예, 예."

 

  병사들이 와서 노이아를 끌고 갔다. 가는 와중에도 노이아는 광소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을 끝까지 지켜본 미후는 혀를 한 번 차고 밖으로 나갔다.

 

 ***

 

  “너, 이 자식! 그분께서 널 가만······!”

 

  푸욱! 역수로 쥔 검이 쓰러진 채 소리 지르는 사내의 심장에 꽂혔다.

 

  “끄, 크어억!”

 

  사내의 몸이 축 늘어지며 시체의 산에 또 하나의 언덕을 더했다. 산의 정상에 무료한 듯 앉아 있는 신아는 검에 손을 놓고 피 묻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지랄.”

 

  외성 남문 대로에 시체의 산이 만들어졌다. 산의 정상에는 신아가 앉아 왕궁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의 밑에선 초란이 수도의 참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도 전체에 사나운 기마군단이 날뛰며 혼돈을 자아내고 있었다. 백성들은 창칼에 맞아 쓰러지고 죽어갔으며 헐벗고 굶은 빈민가의 백성들이 나와 무차별한 폭력을 쓰며 먹을 것을 뺏고 있었다.

 

  초란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신아의 눈에는 왕궁 전체를 감싸는 악령의 기운 또한 보였다.

 

  “······결국 본대로 됐군.”

 

  왕궁 내부 상황은 알지 못하나 사명이 보여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하지만 왕궁에는 노이아가 있었다. 나와 함께 하면서 녀석의 운명은 불투명해졌다. 이미 나와 같은 변수가 된 녀석이니, 사명이 바뀔 수도 있어.’

 

  하지만 신아는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의금부에 갇혀 고문당하던 아이가 의금부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제 실력을 발휘하겠는가? 죽지 못해 살아있는 것이 전부. 아마 이번 사명은 변수에 변수를 모두 계산하고 또 계산한 결과일 것이다.

 

  비록 사명이 무한한 개수의 미래들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도, 열두 개의 변수들을 고려하고 계산하고 또 분석하여 내놓은 미래라면 신아라고 해도 바꾸기는 싶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인과율이 절치부심한 결과일 테니까.

 

  “······으음. 일단 움직여야겠군.”

 

  왕궁에 있던 네 개의 기운 중 하나가 이곳 외성의 대로로 오는 것을 느꼈다. 상대도 아마 신아의 기운을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이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동탁이 무슨 수를 써서 이렇게 강해진 것인지, 아직 알지 못한 이상 함부로 부딪히는 것은 경솔한 짓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여기서 죽기라도 하면 다시 환생할 수 있을지, 아님 지옥에 떨어질지도 알지 못하는 판국이다. 설령 환생할 수 있다고 해도 각성을 하려면 최소 칠 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신아가 없는 칠 년이면 숨어 있는 악령들이 나와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도망치는 겁니다?”

 

  “도망?”

 

  “왕궁에서 강한 기를 가진 자가 나온 것 같습니다. 그것을 느꼈죠?”

 

  “······호오.”

 

  신아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인간이, 평범한 인간이 악령이 가진 부정의 기운을 느꼈다니, 보통은 아니었다.

 

  “도망입니까?”

 

  초란의 물음에 신아가 왕궁 방향을 가리키며 거꾸로 물었다.

 

  “넌 저거 이길 수 있어?”

 

  “······힘듭니다.”

 

  “힘듭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래, 그러니 도망가야지. 난 소중하거든.”

 

  신아가 아무리 막나가도 죽으면 끝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튀어야지.”

 

  부스럭.

 

  그때 외성 빈민가 쪽, 허름한 움집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초란이 움찔 어깨를 움츠렸다. 허름한 움집의 천이 들쳐지며 소년이 나타났다. 품에 무언가를 갈무리한 듯, 두 팔로 꼭꼭 싸맨 어린 소년은 주변을 둘러보다 초란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달려왔다.

 

  “소저, 무사하셨구려!”

 

  “······전하.”

 

  초란이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자 해을은 씁쓸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는 옆에 있는 신아를 흘끗 봤으나 신아는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왕이라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꼴이지.”

 

  “부끄러운 왕이라도 왕은 왕이죠.”

 

  “······그래, 나는 왕이지. 그대도, 노이아도 내게 같은 것을 요구하는군.”

 

  노이아의 이름에 초란은 움찔하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노이아는······어떻게 됐습니까?”

 

  “······.”

 

  해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힘겹게 말을 이었다.

 

  “미안하오. 나 때문에······.”

 

  “죽었습니까?”

 

  “죽었을 것이오.”

 

  “그렇······군요.”

 

  초란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며시 눈을 감는 그녀의 눈가에는 작은 눈물이 맺혀있었다. 노이아 또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그런 두 사람에게 신아의 신랄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뭐하냐? 니들 드라마 지금 쓰냐?”

 

  “드라마? 그런 말(馬)에 대해 모르오. 그리고 나는 내 벗에 대해 슬퍼하고 있는 것이오!”

 

  “아무리 그래도 당신을 위해 죽은 아이입니다.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슬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웃기는 놈들이네.”

 

  “뭐라고요?”

 

  초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신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목수가 부러진 망치를 보며 진심으로 슬퍼하나? 농부가 부러진 괭이를 보고 진심으로 슬퍼하나? 귀족이 종의 죽음을 보고 진심으로 슬퍼하나? 인간의 슬픔이란 결국은 자신들의 편의를 이뤄주고 고난을 대신 겪어줄 도구가 사라졌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당신은 끝까지······!”

 

  “녀석은 내가 계약하고 내가 산 내 검이자 도구다. 그 녀석의 처분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어.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버리는 것도, 전부 다, 나만이 할 수 있다고.”

 

  “그것은 대체 무슨 뜻이오?”

 

  “재들은 갤 못 죽인다는 뜻이지.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가 없어. 내가 그 애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살아있다는 뜻이오?”

 

  “살아있지.”

 

  “그걸 어떻게 믿소?”

 

  “믿기 싫으면 믿지 마. 난 진실을 말했고 믿음을 줬어. 그것을 거부한 건 너야.”

 

  확신에 찬 신아의 말에 해을은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그리고 신아의 옷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흐윽, 흐어어엉!”

 

  “야, 저리 안 가! 내 옷에 네 눈물 닦지 마!”

 

  펑!

 

  신아의 발차기에 맞아 날아간 해을은 아파서 우는 것인지, 노이아의 죽음을 걱정해서 우는 것이지 모를 정도로 펑펑 울었다. 신아가 상대하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을 때, 발치에 반짝이는 황금조각상, 국새가 구르고 있었다. 신아는 국새를 주워 비척비척 걸어오는 해을에게 건넸다.

 

  “너 또 한 번 그렇게 질질 짜면 눈을 말려버린다.”

 

  “흐읍! ······알겠소, 흐윽, 내, 울지 않겠소.”

 

  아무리 왕이라 해도 해을은 이제 겨우 열세 살이 된 어린아이였다. 평소에는 대신들에게 눌려 살며 쌓이고 쌓인 권력이 노이아란 아이로 인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왔다.

 

  너무나 여린 심성으로 부조리를 참아 오며 숨죽이며 살았던 아이의 평생의 한이 맺힌 눈물을 필사적으로 멈추기 위해 해을은 눈을 비볐다. 그런 해을의 어깨를 초란이 부드럽게 감쌌다.

 

  “하아.”

 

  한숨을 쉰 신아는 사인검을 들어 왕궁 방향으로 검기를 날렸다. 붉은 검기는 탁한 검기와 부딪혀 폭발을 일으켰다. 공중에서 일어난 기의 폭발은 작지만 엄청난 폭풍을 일으켰다. 주위를 향해 바닥에 떨어졌던 파편들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조용히 튀긴 글렀네.”

 

  “신아! 이건 대체?!”

 

  초란이 해을을 감싸 안으면서 신아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뒤의 두 사람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야, 저 꼬맹이 데리고 튀어. 여기 있다간 죽는다.”

 

  “흐흐흐,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신아의 어깨너머에서 짧은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의 거한이 웃으며 말했다. 미후가 보낸 문재였다.

 

  “자아, 주상 전하. 어서 이리로 오시지요. 소신 문재, 전하를 역적들로부터 지켜드리기 위해 미후께서 보내신 무관이옵니다.”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문재는 해을에게 말했다. 하지만 해을보다 신아가 먼저 반응했다.

 

  “문재?”

 

  “날 아나?”

 

  “동탁과 관련된 이름 중 문재는 없는데.”

 

  “너······. 너로구나. 염라가 보낸 사냥개가.”

 

  문재가 쌍검을 빼들고 굳은 표정으로 신아를 노려봤다. 살기등등한 기세 그대로 신아를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아는 여유롭게 문재라는 단어만 되뇌었다.

 

  “문재, 문재, 문재 ······, 혹시 호진?”

 

  “!”

 

  “맞구나. 호진 자(字) 문재.”

 

  호진, 자는 문재. 중국 후한 말 동탁 휘하의 무장으로 양주 사람이었다. 190년 원소를 맹주로 하는 반동탁연합군이 들고 일어나자 대독호(大督護)로 임명되어 휘하에 여포 등을 데리고 나갔으나 급한 성질과 그로 인한 내부 불화로 손견에게 패한 무장이었다.

 

  “죽어 지옥에 떨어진 놈이 어떻게 여기서 인간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거지? 동탁의 수작질인가?”

 

  “······흐, 알고 싶다면!”

 

  문재, 아니 호진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순식간에 거한이 2m가 넘는 크기가 되어 두 자루의 대검을 휘둘렀다.

 

  “흐읍! 어디 한 번 날 이겨 보거라!”

 

  “제일 쉬운 일이네.”

 

  신아는 비웃으며 피했고 호진은 더욱 빠르고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후웅! 휘웅!

 

  호진의 쌍검이 움직이는 경로는 변칙적이었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엄청난 힘으로 인해 발생하는 검풍은 살을 찢고 허름한 움막은 그냥 무너뜨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사기! 쌍참검풍(雙斬劍風)!”

 

  후우웅!

 

  호진 스스로 태풍의 눈이 된 검의 폭풍이 신아를 향해 쇄도해왔다. 검에는 탁한 검기가 서려있었고 검풍은 이전보다 범위가 더 넓어져 일대에 작지만 위험천만한 태풍을 만들어냈다. 외성대로의 건물들이 검풍에 부딪혀 부서지고 조각이 나 이리저리 휘말렸고 그것들은 또 다시 검풍에 잘려나가거나 빠른 속도로 밖을 향해 튕겨나갔다.

 

  “멍청한 새끼.”

 

  하지만 신아는 그런 호진의 공격을 비웃었다. 그리고 사인검을 들었다.

 

  신기―휘뢰전(撝雷電).

 

  천둥번개가 몰아친다. 사인검에 새겨진 주문 중 ‘撝雷電’라는 문구가 빛나며 하늘에서 먹구름이 모여들고 빛이 번쩍였다.

 

  “아무리 거센 태풍이라도.”

 

  콰릉! 콰르릉! 꽈르르르르르릉!

 

  하늘에서 푸른 번개가 떨어졌다. 한 번 번쩍인 번개는 굉음을 내며 쌍참검풍의 중심, 태풍의 눈이 된 호진에게 내리쳤다.

 

  가장 강력한 자연현상은 제아무리 악령이라고 해도 거스르기 힘든 것이었다.

 

  더구나 호진의 머리 위는 방어가 전혀 안 돼 있는 부분이었다. 사실 방어할 필요도 없었다.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이상, 그 누구도 쌍참검풍을 뚫고 머리 위를 공격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로 인한 방심이 끔찍한 결과로 돌아왔다.

 

  “끄아아아악!”

 

  “태풍의 눈만 없애면 온순한 바람이나 마찬가지지.”

 

  번개가 내리쳤고 호진은 새까매진 모습으로 온몸에서 연기가 났으며 검풍 또한 사라졌다. 번개는 순식간에 호진의 몸 내부를 태우고 나갔다. 머리의 뇌부터 시작해서 척추를 타고 온몸으로 퍼진 번개는 신경을 타고 온몸에 끔찍한 흉터를 남겼으며 무엇보다 심장을 강하게 관통하고 지나가 더 이상 심장이 뛰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신아는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호진의 몸은 죽었으나 호진의 영혼은 아직 어딘가에 살아있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영혼을 심판하는 염라의 현신이기에 가능한, 신아가 아직 자각하지 못한 또 하나의 능력일 수도 있었다.

 

  “죽었네.”

 

  신아는 호진의 목을 날려버렸다. 탄내와 고기 굽는 냄새가 퍼졌다. 새까맣게 탄 머리가 빈민가로 굴러갔다.

 

  ‘지옥에서 구르고 있는 영혼을 데려올 수 있는 공간에 간섭할 수 있는 악령들뿐이다. 그렇다면 역시 호진은 동탁이 불러내어 인간의 육체를 빼앗은 것이겠지?’

 

  흔히들 영혼이 인간의 몸을 차지하는 것을 일컬어 빙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빙의의 정확한 의미는 아주 잠깐 인간의 몸을 사용하고 다시 나가는 것이었다. 이미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의 몸을 차지하면 육체의 주인의 자아와 영혼은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아 육체를 차지한 영혼에게 먹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죽은 자가 산 자의 시간을 강탈해 가는 것이었다.

 

  누군가 며칠 째 정신을 잃고 깨어난 사람이나 죽은 줄 알았는데 멀쩡히 살아난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결코 거짓은 아니었다. 그런 자들은 대부분 떠돌던 영혼에게 육신을 빼앗긴 것이다.

 

  ‘원래 주인은······소멸한 지 오랜가.’

 

  육신을 빼앗기고 무의식 속에 가라앉은 영혼은 침입자에게 아주 좋은 양식이 된다. 영혼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에너지 덩어리이자 한 사람이 살아온 기록이었다. 침입자가 원래 주인이었던 영혼을 먹어치우면 당장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으며 기억을 엿봐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

 

  호진의 영혼 또한 본래 이 거한의 영혼을 먹고 그 행세를 해왔던 것이다.

 

  “동탁, 이 미친놈. ······설마 지옥문을 연거냐? 하. 그래서였군. 지옥문을 열어 망자들의 고통을 흡수해 둥지조차 필요가 없어진 거냐? 그 힘으로 호진을 빼낸 것이고.”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신아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저놈이 지옥문을 열었다면 결코 호진, 하나만 꺼냈을 리가 없어. 그러고 보니, 수도에서 느껴지는 악령의 기운은 모두 다섯. 하나는 동탁 본인이니까 빼면 나머지 넷은······.’

 

  “호진, 서영, 화웅, 그리고 여포.”

 

  동탁 휘하에 있던 무력 면에선 최강이라고 볼 수 있는 이들이었다. 가능성이 있다. 지옥문을 열었다면 그 넷에게 구원을 대가로 복종을 받아냈을 것이다.

 

  특히 여포. 지구에서 동탁을 배신한 전적이 있는 만큼, 동탁도 결코 꺼내주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아와 같이 염라대왕이 보낸 자들을 상대하려면 여포의 무력은 반드시 필요했을 것. 그러니 여포에게는 강한 목줄을 채워놓고 있을 것이다.

 

  “하아. ······진짜 여포라면 좀 피곤한데.”

 

  여포, 자는 봉선. 명실공히 삼국지 최강의 무장이다. 항우와 더불어 중국사에 상대할 자가 없는 최강의 비장.

 

  ‘하 씨! 항우도 빡셌는데, 여포까지. 이번엔 신앙이고 뭐고 없는데.’

 

  신앙이란 끝없는 믿음이 공급되어야 하는 것. 이번에는 노이아도 없고 자신을 믿고 숭배하는 이도 없으니 신앙도 없었다.

 

  “하아, 일단 왕궁으로 가볼까? 근데 애들은 어디까지 간 거야?”

 

  신아가 폐허가 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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