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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신에 버금가는 자.
작가 : Stonehead
작품등록일 : 2019.9.29

저승의 최고신, 염라대왕의 현신, 신아.
그가 머물고 있는 지옥에서 대형사고가 하나 터지는데......

"십이악령이 탈출했네."

저승이 관리하는 최악의 열둘 대죄인들이 저승을 탈옥한다!

"그것 참, 큰일이군요."

신아는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이 즐거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염라대왕은 신아에게 악령의 처리를 맡긴다.
그리고 신아는 기꺼이 이 즐겁게 놀기(?)위해 악령들을 쫓아 이계(異界)로 향한다.

 
Chapter 4 역천 : 갑론을박.
작성일 : 19-10-01 23:51     조회 : 205     추천 : 0     분량 : 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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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편히 잔 해을은 왕궁의 침전에서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그가 가장 처음 본 광경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의와 내관들이었다.

 

  “전하!”

 

  “전하!”

 

  “정신이 드시옵니까!”

 

  해을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분명 궁 밖에 있던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가?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해을이 상황을 파악한 것은 금방이었다.

 

  “으음. ······과인이 어째서 여기 있는 것인가?”

 

  해을의 질문에 답한 것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내관, 상선이었다.

 

  “무도한 무리가 전하를 납치한 것도 모자라 용안에 상처를 내고 말았습니다. 내금위가 전하를 찾아 모셔오긴 하였으나 역도들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역도라니? 그리고 상처는 또 무슨, 앗!”

 

  해을이 말하다 말고 뺨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에 무심코 손을 가져다 댔다. 과연 뺨에는 1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상처가 나있었다. 아주 길고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상처라고 어의가 설명했다.

 

  “다행히 내금위에서 역도 하나를 추포해왔사옵니다. 아직 나이가 어려보이나 북방의 오랑캐였습니다.”

 

  “북방 오랑캐?”

 

  해을은 순간 자신과 함께 있던 노이아와 초란이 없음을 알았다. 일반인인 만큼 왕궁의 출입이 자제됐겠지만 그래도 상선의 입에서 두 사람에 대해 언급이 없다는 것은 그 둘에게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상선도 모를 정도로.

 

  “······노이아!”

 

  추포한 북방 오랑캐 아이가 노이아라는 것을 떠올린 해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상선에게 물었다.

 

  “어딨소?”

 

  “저, 전하?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그 오랑캐 아이가 있는 곳이 어디냔 말이오!”

 

  “의금부, 이옵니다.”

 

  의금부!

 

  해을은 그간의 잠과 혼란이 확 깼다. 의금부라니. 유죄든, 무죄든 살아서 들어가 죽어서야 나온다는 그 의금부에 어린 아이를 집어넣다니.

 

  정녕 제정신이란 말인가!

 

  해을은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걸어도 어린 아이의 걸음. 뒤에서 따라오는 내관과 내금위는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으로 여유롭게 뒤쫓아 갔다.

 

  왕궁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어린 왕을 향해 예를 갖췄으나 해을은 그들을 무시했다.

 

  한참을 걸어, 해을은 의금부에 도착했다. 의금부를 지키는 경비병은 달리듯이 걸어오는 왕을 보며 놀라 창을 버리고 엎드렸다. 의금부에서 업무를 보던 자들은 엎드려 예를 갖췄고 나름 지위가 있고 예법에 밝은 이들은 무릎을 꿇었다.

 

  그곳에 어린 왕의 분노가 엎드린 자들의 머리 위에 내리쳤다.

 

  “의금부사 진허율은 어디 있는가!”

 

 ***

 

  “부사 나리! 부사 나리!”

 

  갑자기 의금부의 병사 하나가 고문을 하고 있는 진허율을 찾았다. 진허율은 갑자기 조용해진 의금부와 헐레벌떡 뛰어온 병사를 보고 그가 우려하던 사태 중 하나가 현실이 되었음을 알았다.

 

  “주상 전하께서 친림(親臨)이라도 하셨느냐?”

 

  “······맞습니다. 어찌 아셨습니까?”

 

  병사는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하지만 진허율은 그를 무시하고 고문관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여전히 매달려 있는 노이아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운이 좋구나. 허나 기뻐하지는 말아라. 궐은 너 같은 천한 오랑캐가 마음 놓고 살 만한 곳이 아니니.”

 

  진허율은 그것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노이아는 답하지 않았다. 진허율은 상관하지 않고 해을이 있는 곳으로 가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신 의금부사 진허율, 주상 전하를 뵈옵니다!”

 

  해을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있나?”

 

  꾹꾹 눌러 담아도 숨길 수 없는 분노 어린 목소리에 진허율은 저도 모르게 한 번 움찔했다. 어리긴 어려도 왕의 혈통, 태어날 때부터 지배자로 태어난 자가 가진 위엄에 진허율의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 것이다.

 

  “······말씀하신 바를 알지 못하겠사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굴복할 진허율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권력도 없는 망해가는 나라의 왕. 그가 어쩌다 한 번 분노했다 한들, 그것은 이제 시체나 다름없는 용의 분노일 뿐, 결코 인간에게 위협이 될 바는 아니었다.

 

  “내금위가 잡아온 오랑캐 아이는 어디 있냐고 물었소.”

 

  “그 죄인이라면 추국장에······.”

 

  진허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옆으로 붉은 무언가 휙 지나갔다. 왕 해을이었다. 진허율의 말을 끊고 나아간 것이다. 남아있는 사방에서 진허율을 향해 시선이 쏟아졌다.

 

  ‘이, 빌어먹을! 감히, 다 망한 왕조의 왕 따위가, 날 이 따위로 대해? 저깟 오랑캐놈 때문에?’

 

  제아무리 왕이라 한들 신하를 욕보일 수는 없는 법이다. 헌데 힘도 없는 군왕이 신하에게 이리 모욕을 주다니, 대체 무엇을 믿고 저러는지 몰라도 진허율은 결코 왕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해을은 추국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본 것은 바닥을 가득 메운 피웅덩이였다. 피와 물이 섞이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양임은 틀림없었다.

 

  “허.”

 

  “이런.”

 

  뒤에서 내관 몇이 고문장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공중에 매달린 어린 아이, 온몸에 성한 곳 하나 없는 잔인한 고문의 흔적. 아무리 죄인이어도 동정심이 드는 모습이었다. 내금위가 노이아의 수갑을 풀고 천천히 내렸다.

 

  ‘······노이아?’

 

  해을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으로 내려진 노이아의 코밑에 손을 대보았다. 혹여라도 그가 죽는다면 어찌할까, 노심초사하던 해을은 미약하나마 분명하게 느껴지는 노이아의 숨결에 안도한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용포가 더럽혀지고 주위에서 전하, 전하 거리면서 뭐라 했지만 해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다시 한 번 다잡은 해을은 명했다.

 

  “무엇 하나! 어서 안으로 옮겨 치료하지 않고! 지금 당장 어의를 불러라!”

 

  노이아는 고통에서 해방됨을 느꼈다. 힘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고개,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해을의 앳된 고함소리, 그리고 한순간에 엄습해 오는 고통들. 노이아는 더 이상 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기절했다.

 

  그것을 본 해을이 내관과 어의를 더욱 다그친 것은 노이아가 앞으로 알 길이 없는 일이었다.

 

 ***

 

  한편, 신아는 엉망이 된 객잔에서 쫓겨나 길바닥에 나앉은 처지였다. 내금위로 한바탕 손해를 본 객주가 내금위를 끌고 온 것이나 다름없는 초란을 보고 졸도했기 때문이다. 깨어난 객주는 소금을 가져와 한 바가지를 뿌려댔고 신아는 결국 거기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신아가 잡귀는 아니지만 죽음의 신의 현신인 만큼 인간의 입장에서 부정하게 여겨지니 제대로 뭐 하나 못해보고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입소문이었다.

 

  “에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신아가 한숨을 푹 쉬었다. 객잔에 있던 손님들과 주위 상인들의 입과 입을 타고 초란에 대해 꽤 상세하게 알려졌다. 덕분에 번화가의 모든 객잔과 주막에서 출입을 거부당하고 급기야 치안대와 내금위가 찾아오는 일까지 벌어졌다.

 

  “큼큼.”

 

  초란은 무안한 듯 시선을 피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녀의 발 앞에는 겁도 없이 함부로 덤볐다가 신아와 초란에게 당한 내금위가 쓰러져 있었다. 다만 초란의 주위에 있는 이들은 작게나마 경련했지만 신아 주위에 있는 자들은 그런 것조차 없었다.

 

  “······죽인 겁니까?”

 

  “왜? 살려놔서 기르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태연하게 지껄이는 그 입을 찢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차피 그에게 인간의 선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초란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했다.

 

  “아아, 안 되겠다. 이대로 있다간 길바닥에서 굶어 죽겠어.”

 

  “뭘 어쩌시게요?”

 

  “가자.”

 

  “어디로 말입니까?”

 

  “개가 있는 곳. 지금쯤 호사 좀 누리고 있을 테니까, 며칠 묶고 가도 되겠지.”

 

  초란은 잠시 생각하다가 신아가 말하는 ‘개’가 노이아라는 것을 알았다. 노이아가 있는 곳이라면······.

 

  “의금부!”

 

  결론에 도달한 초란이 소리를 질렀다.

 

  “아씨, 깜짝이야.”

 

  “지금 미쳤습니까! 의금부로 가겠다고요? 거기서 대체 뭔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겁니까?”

 

  신아에게 달려들어 소리를 지르며 미쳤냐는 소리를 연발하는 초란을 두고 신아는 먼저 움직였다. 한동안 숨을 고르던 초란은 결국 신아를 따라가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초란은 알지 못했다. 신아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은 의금부가 아니라 왕궁이라는 것을. 의금부는 왕궁에 서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

 

  노이아는 생전 처음 와보는 화려한 곳에서 눈을 떴다. 깨어났으나 눈동자를 제외한 그 어떠한 것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온몸이 붕대로 감싸져 있었으며 깨어남과 동시에 자각하기 시작한 고문의 후폭풍이 몰려와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비명 한 번, 신음 한 번 흘리지 않는 것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리라.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고통에 노이아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다시 한 번 깨어났을 때에는 누군가 입에 무언가를 넣어주고 있었다. 매우 쓴 액체였는데, 아마 수면제 성분이 들어있는 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시야가 흐릿하고 고통은 한결 나아졌지만 졸음이 쏟아져 참을 수가 없었다.

 

  “······상태는······그런가······.”

 

  “······이는······표현할······사옵니다······.”

 

  꾸벅꾸벅 조는 노이아의 귀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람은 해을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누군지 알지 못했다.

 

  대화의 내용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노이아는 자기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입가에는 진통제 덕분에 작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해을은 그것을 보고 노이아의 손을 잡았다. 의금부의 고문이 어찌나 악명 높은 것인지 두 손의 상태 또한 엉망이었다. 손가락은 다 부러지는 것은 기본이었고 손톱은 다 뽑혔고 손뼈 또한 멀쩡하지 않았다. 왕실 비고에 있는 영약과 약재들을 털어 겨우내 치료할 수 있었으나 아직은 침대에서 몇 주, 아니 어쩌면 몇 달은 꼬박 요양을 해야 하는 상태였다. 그것도 왕실 비고를 모두 개방하여 치료한다는 조건 하에서였다.

 

  왕실 비고는 천년 왕국의 해씨 왕조가 천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륙의 온갖 영약과 보물들을 보관하고 있는 금고다. 비고에 있는 보물의 양은 제국의 비고와 비교해도 결코 꿀리지 않았고 비고에 있는 영약과 약초들은 동방뿐 아니라 서방의 것도 있으며 황제조차도 한두 번 볼까말까 한 것들이 가득했다.

 

  그만큼 보안이 철저한 것으로 왕궁 비밀통로와 마찬가지로 비고의 위치는 오직 왕만이 알고 있으며 다음 대 왕에게 구두(口頭)로 전해져 내려왔다.

 

  그 왕실 비고를 어린 왕이 개방하여 오랑캐 소년을 살렸다는 것은 왕궁에 이미 파다하게 펴졌다. 이에 간관들이 들고 일어남은 물론이고 문벌 귀족과 청파 귀족들까지도 해을에게 난색을 표했다.

 

  왕이 직접 형벌장에서 구해온 노이아를 감히 역적이라고 칭할 수는 없으니 입을 다물고 있을 뿐, 그들은 왕의 행보에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막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 어린 왕, 해을 자신이었다.

 

  한숨을 쉰 해을이 죽은 자신의 형, 선대왕 해정을 떠올렸다. 왕이 알아야 할 왕실 비고와 왕궁 비밀통로,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를 알려주고 문벌 귀족이 사병이 된 내금위에 끌려간 것이 벌써 2년 전이었다.

 

  왕을 지켜야 할 내금위가 왕을 끌어내리고 수도 외곽 서궁에 유폐시켰다. 그리고 해정은 1년 전 돌연 자결했다. 하지만 해을은 물론이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문벌 귀족들이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해정에게 사약을 내렸단 것을.

 

  ‘후우, 형님. 거기는 어떠십니까?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는 만나셨습니까? 형님께서 제게 남겨 두신 짐은 너무 무겁습니다.’

 

  이런 때에는 죽은 해종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왕이 되지 못한 왕자답게 낮게 엎드려 살아가던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줘야 했던 해종이 미웠던 적도 있었다.

 

  적어도 죽은 자들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을은 살아있는 자로서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해서라도 멸망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이 나라를 구할 의무가 있었다.

 

  이런 때에는 또 이 무거운 의무에서 해방된 해정이 부러웠다.

 

  해을은 노이아의 손을 놓고 침전에서 나왔다. 왕의 침실인 침전에 왕을 해한 것일지도 모르는 자를 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나 해을은 주위의 만류나 경고 따위는 듣지 않았다. 왕이 된 후 처음으로 부리는 고집이었다.

 

  침전을 나선 해을이 향한 곳은 국정을 보는 정전(正殿)이었다. 신정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궁의 대전에는 삼정승을 비롯한 조정의 대신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해을은 그들의 시선을 한 몸 받으며 당당히 걸음을 옮겨 옥좌에 앉았다.

 

  “시작하시오.”

 

  어린 왕의 선언이 있자 신 왕국의 국정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비록 왕을 빼고 하는 형식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아직은 신 왕국이 존재하며 정부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

 

  조회의 포문을 연 것은 간관이었다. 내용은 당연히 노이아에 관한 것이었다.

 

  “전하. 지금 감히 전하를 해하려한 무도한 자를 침전에서 데리고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렇소만.”

 

  해을의 표정이 자연 찌푸려졌다. 간관은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인지, 아님 무시한 것인지 자기 할 말만 계속했다.

 

  “전하. 침전은 군왕을 위한 공간이옵니다. 어찌 지존을 해하려한 역도를 위한 공간으로 쓸 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 당장 의금부로 하여 죄인을 심문해 역도의 배후를 낱낱이 밝혀내야 하옵니다!”

 

  “전하! 추국장을 여는 것을 윤허하여 주소서!”

 

  “죄인을 조사하여 역도의 무리를 밝히시어 천년 왕조의 위엄을 바로 세우소서!”

 

  간관의 발언을 시작으로 소위 청파라 불리는 이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에게 문벌귀족들이 반박을 시작했다.

 

  “역도의 무리라니! 이 어전 앞에서 무슨 망말이오!”

 

  “맞소이다! 아직 확실한 것도 없는 판국에 역도라니! 불경한 소리들 하지 마시오!”

 

  문벌귀족의 호통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청파 또한 반박한다.

 

  “주상을 궁 밖으로 납치하고 용안에 상처를 내온 것이 바로 역모요, 그것을 행하고 지시한 자들이 바로 역도들이 아니오! 이는 저잣거리 세 살배기 아기들도 다 아는 사실이오!”

 

  “억지 부리지 마시오! 전하께선 납치를 당하신 것이 아니라 왕궁 비밀 통로를 이용해 미복잠행을 다녀오신 것이오! 용안의 상처는 주제도 모르는 오랑캐놈이 전하를 해하려던 증거일 뿐, 역모라 부를 만한 것이 못 되오!”

 

  “이보시오, 대감! 대감이나 억지 부리지 마시오! 일국의 군왕이 어찌 호위도 없이 잠행을 나가신단 말이오! 또 어찌 오랑캐 따위가 군왕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단 말이오!”

 

  “군왕의 호위는 본인이 아니라 내금위의 소관이외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죄인의 처분이지, 그것이 아니외다!”

 

  주제는 이제 내금위로 옮겨갔다. 갑론을박이 격해질수록 내금위장 백선현의 얼굴이 파리하졌고 식은땀이 멈추지 않았다.

 

  “지금 해야 할 것은 두 가지요! 추국장을 열어 죄인을 조사하고 배후를 파헤치는 것! 그리고 군왕의 호위라는 중대한 직무를 유기한 내금위에 대한 처분이오!”

 

  “맞습니다! 내금위를 바로잡아 기강을 세우고 죄인을 벌하여 위엄을 바로 해야 합니다!”

 

  “어허! 비밀통로로 잠행을 나가신 전하를 내금위가 어찌 알고 따라간단 말이오! 그런 논리라면 오히려 암중호위를 벌해야 마땅하지 않소!”

 

  “그게 아니더라도 내금위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오!”

 

  “내금위는 죄가 없소이다!”

 

  “전하를 찾은 내금위는 전하를 안전하고 신속하게 왕궁으로 모셔와야 할 임무가 있소. 하지만 내금위가 어떤 짓을 저질렀소! 전하께서 어디 계신지 찾았음에도 내금위는 바로 움직이지 않아 용안에 상처를 내는 불충을 저질렀소! 이것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이유올시다!”

 

  이 부분에서는 문벌귀족들도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내금위가 꾸물거리다 진입을 늦게 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거짓이 섞인 진실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었다.

 

  분명 내금위가 포위망을 만들기 위해 꾸물거린 것을 너무 많은 수도 백성들이 모았고, 내금위가 왕을 구하겠다고 객잔에서 난리친 것 또한 너무 많은 이들이 보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오랑캐가 용안에 상처를 입혔다는 거짓 하나 만들어 끼워 넣기는 어렵지 않았고, 진실을 아는 내금위를 제외한 모두가 그것을 철석 같이 믿고 있었다.

 

  ‘내가 용안에 상처를 냈다는 것이 발각되면 나는 물론이고 우리 집안과 내금위, 거기다 진씨 가문까지 망한다. 내가 한 것은 아무리 놈을 잡기 위해서라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반역 행위. 삼족이 멸하는 것은 기본이요, 그 자리에 있던 관련자들 전원이 추국장으로 끌려가게 될 테지.’

 

  백선현은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며 대전의 갑론을박을 지켜봤다. 이미 내금위 전원에게는 말을 맞춰둔 상태다. 어차피 이 일이 발각되면 내금위 전체가 와해되고 죽는다. 내금위뿐 아니라 그들의 식솔들도 죽는다.

 

  또한, 내금위는 지금껏 백씨 가문의 권위를 등에 업고 수많은 범죄를 저질러 왔다. 이 일로 명분을 잡은 왕이 일거에 문벌귀족들을 쓸어버리고,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청파를 대거 등용해 추락한 왕권을 복구한다면 내금위는 결코 문책을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사형에 처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많고 심각한 것들이었으니.

 

  삼정승 중 한 명인 영의정 왕이서가 소리쳤다.

 

  “자, 자! 모두 정숙하시오, 정숙! 어전에서 목소리를 높이다니, 이 무슨 불경이란 말이오!”

 

  어전을 논하며 격한 토론을 끝낸 왕이서는 비웃으며 해을에게 말했다.

 

  “전하, 내금위의 문제는 후일 처리하여도 늦지 않사옵니다. 하오나 역도의 처벌은 한시가 급한 일이옵니다. 하여 신 영의정 왕이서 아뢰옵니다! 추국장을 열어 죄인의 추문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추국장을 열어 추문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허락해 주시옵소서!”

 

  왕이서는 진씨 가문의 파벌에 있는 문벌 귀족 왕씨 가의 수장이었다. 진우성에게 귀띔을 받은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오랑캐 아이를 죽여야 했다.

 

  대전은 다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아무리 내용을 바꿔도 본질은 그대로이니, 변하는 것이 없었다.

 

  해을은 옥좌에 앉아 그것을 지켜보았다. 정작 이 토론을 주도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은 해을 자신이어야 하나, 그 누구도 해을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문벌 귀족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왕이 있는 것이 유리했고, 청파는 어린 왕을 따르기보다 이 나라의 개혁이 더 시급하다고 보았다.

 

  어느 쪽이든 그들의 신념에 왕은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떠들 뿐.

 

  ‘뱀떼 같아.’

 

  해을은 하릴 없이 저들을 바라보며 풋, 하고 작게 실소했다. 뱀떼라. 너무 적절한 비유지 않은가? 제 이익과 신념을 위해 독기를 머금고 쉭쉭 거리며 서로를 비난하는 저들은 그야말로 뱀이지 않는가. 탁한 뱀들과 푸른 뱀들이 서로 싸우고 있으나 인간의 입장에서는 어떤 색이든 뱀은 결국 뱀이었다.

 

  ‘뱀들이 조정을 장악했으니, 온 나라가 독에 물들었구나.’

 

  해을이 그렇게 생각하며 한탄하는 와중에도 저들은 토론을 어느 정도 마치고 해을의 판단을 기다렸다.

 

  “전하, 어명을 내려주시옵소서.”

 

  영의정을 필두로 한 이들이 말했다.

 

  “······추국장은 열지 않겠다.”

 

  “전하!”

 

  “또한 군왕의 윤허 없이 독단으로 추국장을 연 의금부사 진허율과 과인을 잘못 보필한 내금위장 백선현을 경질한다. 영의정은 그에 관한 처벌에 대해 상세히 적어 올리도록 하라.”

 

  “······전하! 이러실 수는 없으시옵니다!”

 

  “어명이다.”

 

  “전하!”

 

  영의정 왕이서가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왕에서 무례하게 목소리를 높였으나 누구도 제지하지도 않았다. 해을 또한 마찬가지. 이런 것은 익숙한 것이었다.

 

  “이 나라의 만인지상 지존의 명령이다!”

 

  “!!!”

 

  “······명, 받드옵니다.”

 

  이를 가는 왕이서의 입에서 한 박자 늦게 말이 나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조정 대신들이 고개를 숙여 왕이서의 말을 반복했다.

 

  해을은 옥좌에서 내려와 그들을 지나쳐 대전을 나왔다. 당당하게 걸어가는 그의 뒤통수가 따끔따끔했다. 문벌귀족들의 적의가 가감 없이 꽂혀왔다.

 

  해을은 곧장 침전으로 향했다. 이곳을 지금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노이아를 만나고 싶었다.

 

  침전에 도착하자마자 해을은 노이아를 찾았다. 노이아는 이미 일어나 붕대로 칭칭 감은 몸이 불편한 듯 어색하게 움직이며 옷을 입고 있었다.

 

  “노이아!”

 

  “전하.”

 

  노이아는 입던 옷을 떨어뜨리고 허리를 숙여 엎드렸다. 그러다 통증 때문에 아픈 듯이 어정쩡하게 일어났다. 해을은 그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우고 침대에 눕혔다. 노이아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더더욱 불편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게. 자네의 부상은 심각해. 왕실 비고의 약들을 다 썼다고 해도 자네는 아직 요양이 필요해.”

 

  “······전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사람을 보내주겠네. 가서 일들도 대신 처리해주겠네.”

 

  “전하께선 하지 못할 일입니다.”

 

  “······.”

 

  해을은 입술을 깨물었다.

 

  노이아는 신아가 상대하는 이들의 힘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일개 인간인 해을은 상대할 수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해을은 무능하고 무력한 왕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알았다. 갑자기 기분이 팍 상했지만 그렇다고 환자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요양이 필요하니 내 별말하지 않겠네. 허나 다음에도 이런 무례는 용서치 않을 것이야.”

 

  “······.”

 

  그 이후로는 말이 없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노이아는 그렇다쳐도 해을은 나가도 할 게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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