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불타버린 재와 무덤지기
작가 : 오렌지핥고싶다
작품등록일 : 2019.9.8

세계를 이루는 다섯가지 색은 변질했고, 대륙의 중심을 다스리는 여왕은 숨을 거두었다. 백성들은 변질한 통치자를 그저 두려워 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을 연명한다. 대륙의 나머지를 다스리는 4명의 여왕은 타락해 고귀하던 영혼을 더럽혔다. 신은 이 모든 참사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렇기에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몸에서 흐르는 검붉은 혈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는 다짐했다. 망가질대로 망가져버린 이 세계를 반드시 되돌려 놓겠다고.

 
정원의 이면
작성일 : 19-10-01 23:44     조회 : 195     추천 : 0     분량 : 467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게.. 뭐죠?”

 

 론이 절망적이라는 듯 낙담한 목소리를 냈다. 아리아도 마찬가지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멍한 표정을 지으며 인상을 구겼으니.

 

 “염병.. 가관이구만. 역겨워 죽겠군.”

 

 왕국의 내부에 들어왔음에도 그들이 보고 있는 풍경은 수많은 나무와 꽃들이 얽히고 얽힌 숲이었다. 비정상적인 크기로 자라난 나무는 하늘 위로 높이 솟았고, 거대한 꽃들은 이리 피고 저리 피어 발조차 딛기 힘들 정도였다.

 

 꽃과 나무 사이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주택들이 과거의 풍경을 어렴풋이나마 상상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정말로 끔찍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얼굴..”

 

 그것은 다름 아닌 꽃의 형태였다. 멀리서 볼 때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꽃이지만, 자세히 살펴본다면 그 누구도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화사하게 피어난 꽃잎 중앙에 사람의 얼굴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아니, 박혔다기엔 그 형태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마치 사람이 꽃으로 변하기라도 한 듯한 형태였다. 핏줄이 불거진 노란 얼굴은 푸석푸석해 보이는 질감을 띠고 있었다. 이 숲을 장식하고 있는 꽃은 모두 저마다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꽃이 짓고 있는 표정은 정말로 각양각색의 형태를 띠고 있다. 누구는 놀란 표정, 누구는 고통스러운 표정, 누구는 울상을 짓고 있는 표정, 노인의 얼굴, 중년의 얼굴, 청년의 얼굴, 아이의 얼굴까지, 없는 것이 없다.

 

 “입구도 그렇고, 도대체 여기에서 어떤 빌어쳐먹을 일이 생긴 거지..? 이것들, 생긴 게 이래서 그렇지 다 살아있어. 얼굴을 자세히 보면 핏줄이 꿈틀대는 게 보인다고..”

 

 파르르 떨리는 아리아의 손이 꽃의 얼굴을 살며시 찔렀다. 그러자 꽃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듯 꽃잎을 경련시켰고, 그 반응에 충격을 받은 듯 론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어지간히도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누가 했는지는 대충 예상이 가지만.. 진짜로 이런 정신 나간 짓을 벌일 줄이야. 한시라도 빨리 이루실라 님을 찾아야 합니다. 혹시 몰라요. 이 미친 짓거리를 되돌릴 수 있을지.”

 

 론은 풀을 조심스레 해치며 앞으로 전진했다. 아리아는 사방을 살피며 또 다른 이상한 점이 없는지 탐색을 계속했다. 그렇지만 풀이 하도 무성하고 빽빽해, 이곳이 어디인지조차도 잘 알 수 없었다.

 

 어디를 봐도 사람의 얼굴을 한 꽃과 하늘을 가리는 나무들만이 풍경을 집어삼키고 있었으니.

 

 “염병할.. 도대체 성은 어디에 있는 거야?! 원래대로라면 중심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어야 할 건물이 왜 코빼기도 안 보이냐고.. 여기 진짜 이상해. 짜증 나! 다 불태워 버리고 싶어!!”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온통 녹빛뿐인 풍경을 보자니 신경질이 나버린 아리아가 목에 힘을 준 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론은 화들짝 놀라며 조용히 하라고 말했지만, 이미 스위치가 들어가버린 아리아를 막을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안 되겠다. 론, 누님이 잠깐 불장난 좀 할게! 이제 꽃도 안 보이고, 다 태워버려도 괜찮겠지. 넌 안 죽으리라 믿어!!”

 

 “제발.. 누, 누님. 아 그거 안돼요! 태워버리면 진짜 다 죽는다고!! 지금 이 상황에 무슨 불장난이에요?!”

 

 다급한 표정을 지은 론이 삽을 꺼내 들어 불을 확 붙여버린 아리아에게 절박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지금은 그 누구도 눈이 돌아버린 아리아를 막을 수 없다. 설령 그게 론이라고 해도 말이다.

 

 크게 피어올라 희멀건 빛을 뿜어내는 불덩이는 삽 끄트머리에 모여들었고, 이윽고 삽은 옆에 있는 거목을 맹렬한 기세로 후려쳤다. 폭발음이 시원하게 터짐과 동시에 론은 제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살아있던 이성이 함께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으아.. 아?”

 

 그때였다. 재빠르게 아리아의 손목을 붙잡고 도망칠 준비를 하려던 론의 비명이 우뚝 멈추었다. 아리아도 손끝에 전해진 기이한 손맛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라면 붙었어야 할 불이 붙지 않았다. 분명히 불이 붙지 않을 수 없는 크기의 폭발이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거목은 생채기 하나 없고, 그곳에는 웬 손 하나가 불 꺼진 삽을 붙잡은 채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젊은 나이에 한 번쯤은 불장난을 해 보고 싶은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야심한 밤에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불현 듯 나타난 중저음의 음성은 차분하고도 힘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등장에 놀란 론이 등불을 비춰보자,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던 것은 점잖은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이었다.

 

 “식물들이 다칠 수 있거든요.”

 

 그는 너무나도 태평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몸에는 그 어떤 무기 하나 걸치지 않았고, 평민의 것으로 보이는 천 옷은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매만져 두었다. 멋들어진 가죽 바지의 허리춤에는 가죽 물통을 하나 매고 있다.

 

 눈가에 감은 새하얀 붕대가 독특한 인상을 주었다. 노인은 도무지 이 끔찍한 녹색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론은 잔뜩 경계심이 서린 표정을 지으며 노인을 노려보았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옷을 멀끔히 입고 다니는 노인이라니. 너무나도 의심스러웠고, 또한 무언가 위험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자 노인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더니, 재미있다는 듯 론을 마주 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론이 말소리를 낸 방향을 쳐다보았다고 하는 것이 알맞을 것이다. 노인의 시선은 조금 아래로 쳐져 론의 가슴팍 쪽을 응시하고 있었으니.

 

 “아, 소개가 늦었군요. 죄송합니다. 불을 막느라 정신이 없어서 말입니다. 아가씨. 불은 조심히 다루셔야 뒤탈이 없는 법이에요.”

 

 “..미안하게 됐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아리아가 굳은 얼굴로 사과하자, 노인은 그제서야 붙잡고 있던 아리아의 삽을 놓아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기품이 묻어나는 멋진 동작이었다.

 

 “저는 이 왕국의 지배자이신 이루실라 님을 모시는 부동의 기사, 한스라고 합니다. 여왕님의 명을 받아 여러분을 모셔오기 위해 직접 마중을 나왔습니다만.. 타이밍이 좋다면 좋고, 나쁘다면 나빴군요.”

 

 순간 ‘기사’ 라는 말에 론과 아리아의 몸짓이 얼어붙었다. 여왕과 대면하기 위해서 왕성을 찾아가고는 있었지만, 먼저 기사를 만날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애초에 기사가 몇 명이나 남아있는지도 잘 알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한스와의 조우는 상당히 놀라우면서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기사.. 기사가 아직 남아있는 겁니까?! 그렇다면, 다른 기사들도..”

 

 론은 왜인지 모르게 초조한 목소리로 한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한스는 그 어떤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사람 좋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음.. 뭐 때문에 그러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단 저를 따라와 주셨으면 합니다. 질문은 성에 도착하고서 해 드리죠. 여왕님의 명을 너무 길게 끌고 싶지는 않거든요.”

 

 결국 한스의 단호한 대답을 끝으로 론과 아리아는 한스가 이끄는 대로 묵묵히 발을 옮기기로 했다. 도중에 참을성이 부족한 아리아가 한스와 성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했지만, 한스는 잠시 망설이면서도 간단한 선에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아무래도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론은 이동하면서도 계속해서 피어오르는 의문과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걱정이 많은 편이지만, 지금은 특히나 더 심했다. 애초에 그에게서 풍겨오는 분위기가 너무나도 의심스러웠다. 한스는 자신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왕국의 하나밖에 없는 입구에 저런 끔찍한 것들이 보란 듯이 심어져 있었으니까. 그걸 보고도 왕국 안으로 발을 들이고 싶어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들어오기도 전에 시체가 되었겠지만. 게다가 아리아는 불을 사용하는 모습을 한스에게 보였다.

 

 이것으로 적어도 아리아의 출신이 가장 먼저 몰락한 불의 왕국이라는 사실은 당연히 알 수 있을 테고, 그중에서도 굳이 삽을 무기처럼 쓰는 사람은 이 대륙에서 하나밖에 없으니 출신은 눈에 훤히 보인다.

 

 출신도 평범하지 않고, 커다란 불꽃까지 쓰는 인물이 굳이 이런 시기에 풍요의 왕국에 들어와 움직임을 보인다니. 딱 보아도 수상한 자임은 명백했다. 그런데도 아리아나 론을 적대시하지 않고 오히려 우호적인 모습마저 보이는 것이 굉장히 찝찝했다.

 

 더군다나 여왕의 초대까지 있다니. 자신들이 풍요의 왕국으로 올지 어떻게 알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봐도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자.. 이제 슬슬 들어갈 준비를 하시지요. 도착했습니다. 최대한 빠른 길을 택했지만, 두 분은 상당히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하지만 론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아직까지는 뽑아낼 수 있는 답이 없다. 어느새 론과 아리아는 굵은 넝쿨로 싸여 있는 음침한 분위기의 성에 도착했고, 한스가 팔을 뻗어 활짝 열려있는 성 문 안쪽을 가리켰다.

 

 “성 내부에 빈방이 많습니다. 일단은 거기서 휴식을 취하시고, 해가 밝는 대로 여왕님이 계시는 알현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식사는 방에 들어가신 뒤에 대접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온갖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론과는 달리, 아리아는 이제 쉴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한껏 들뜬 표정을 하며 론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으니. 일단 빨리 들어가자고 보채는 표정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론은 마지못해 한숨을 쉬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리아도 마찬가지로 고맙다며 손을 흔들더니, 론의 손목을 꾹 붙잡고 성 내부로 후다닥 달려가 버렸다. 한스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젠 희미해져 가는 론과 아리아의 발소리를 끝까지 경청하며.

 
작가의 말
 

 이번 화에는 쓸 TMI가 없어 아쉽게 됐습니다. 세계관 TMI는 해당 화에서 설명이 쬐끔 부족하거나, 굳이 알진 않아도 문제가 없는 정보들을 서술합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0 다시 시작되는 여정 2019 / 10 / 23 216 0 5852   
19 냉소적 퇴장 2019 / 10 / 23 227 0 4601   
18 냉기의 자식 2019 / 10 / 23 207 0 4468   
17 카샤는 개코! 2019 / 10 / 23 211 0 4693   
16 크고 아름다운 영혼철 2019 / 10 / 23 209 0 4569   
15 노래하는 대장장이 마을 2019 / 10 / 23 213 0 5293   
14 친구! 2019 / 10 / 23 204 0 5262   
13 카샤, 카샤, 카샤! 2019 / 10 / 23 211 0 4171   
12 녹색 영웅? 2019 / 10 / 23 202 0 5523   
11 간만의 휴식 2019 / 10 / 16 226 0 5187   
10 개화(開花) 2019 / 10 / 14 208 0 4691   
9 부동(不動)의 기사 2019 / 10 / 11 190 0 6001   
8 눈 먼 정의 2019 / 10 / 3 230 0 5932   
7 정원의 이면 2019 / 10 / 1 196 0 4675   
6 망할 풀때기들! 2019 / 9 / 29 246 0 4882   
5 머피의 법칙 2019 / 9 / 25 194 0 5545   
4 밥은 잘 먹고 다니냐? 2019 / 9 / 23 217 0 4700   
3 망나니 2019 / 9 / 17 234 0 6153   
2 은둔자 2019 / 9 / 9 227 0 5376   
1 프롤로그 - 대격변 (2) 2019 / 9 / 9 372 1 252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