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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꽃을 담은 소녀
작가 : 심연고래
작품등록일 : 2019.9.3

특별한 힘을 가진 소심한 소녀의 이야기

 
04. 작별
작성일 : 19-10-01 22:11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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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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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집은 오늘도 일찍 문을 열었다. 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평소보다 30분 정도 더 일찍 오븐에 불이 들어왔다. 어머니께서는 아침용 식빵과 샐러드 대신 간식거리로 먹을 쿠키를 굽고, 계란을 삶으셨다.

  나는 평소와 달리 어머니를 돕지 않고, 커다란 가방을 다시 정리했다. 옷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어서 필요한 만큼 넣고 나니 오히려 옷장이 반쯤 비어버렸다.

  ‘후우....’

  이제 곧 출발. 밤을 거의 새다시피 잠을 못 잤는데도 졸리지가 않았다. 아니,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머리가 멍했다. 온갖 생각이 휘몰아쳤던 밤과는 달리 해가 뜨면서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해야 하는 대로 움직였다.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어찌어찌 챙긴 가방을 들고 가게로 내려갔다. 이른 시간이어서 가게도,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마을도 조용했다. 따뜻하지만 아직은 푸르른 빛이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어느 때와 같은 풍경 속에서 나 혼자만 끼어있지 못했다.

  여행이라니.... 나는 카운터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것도 수도로 여행이라니. 옆에 놓인 커다란 가방이 아무래도 어색했다.

  ‘으아아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뭐라고 콕 집어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기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바로 그 기분.

  “마닐드, 먼저 나가보렴. 나는 이거 다 싸고 갈 테니.”

  “... 네.”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방금 앉았는데. 도대체 내가 가만히 있는 걸 못 보는 건지 뭔지.... 그냥 이 모든 상황이 짜증 났다. 가기 싫다고 했는데도 보내면서 내가 불쌍하다거나 미안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전혀 안 드는 걸까? 아, 뭐 그런 생각이 있으면 애초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뒀겠지...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

  가게 문을 여니 안과는 조금 다른 서늘한 공기가 밀려왔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선지 봄날의 기온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오히려 서늘해서 신선했다. 그 덕에 이상한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그래.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야? 그냥 수도에 여행을 가는 거잖아. 내가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지만, 할 수는 있는 일이지. 공부도 싫지만, 자의든 타의든 어쨌든 거의 매일 하고, 벳지랑 쥬뮈는 그렇게 성격이 안 맞아도 같이 잘 노는데. 하기 싫지만, 할 수는 있는 일이지.

 그냥 내가 조금 더 조심만 하면 돼. 들키지만 않으면 여행을 갔다 온 하나의 경험으로 끝나는 거잖아? 그래 경험. 이게 바로 사람들이 그렇게 목을 매는 경험이지. 이번 한 번만 갔다 오면 분명 더 이상 가라마라 하지 않을 거야. 경험해봤고, 별로였다고 하면 되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주 작은 빛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 빛에 약간의 용기가 생겼고, 나는 팔짱을 끼고 길 끝을 노려봤다. 좋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잘 보내기만 하면 돼. 들키지 않고, 딱 일주일만 보내고 오면 그다음부터는, 더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야. 곧 어머니의 말씀대로 길 끝에서 데인과 아즈반의 모습이 나타났다. 데인은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나는 그 가증스러운 모습을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절대로 들키지만 않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거야.

 

 ***

  “저, 저기 마닐드?”

  “네? 무슨 일이세요?”

  나는 최대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굉장히 즐겁다는 얼굴로 데인을 쳐다봤다. 하지만 데인은 조금은 묘한 얼굴이었다. 웃고는 있는데, 웃고 있는 게 아닌 그런 얼굴이랄까.... 뭐지? 내가 뭔가 잘못했나?

  “저기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니?”

  응?

  “네?”

  나는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도 있고 벙찐 얼굴을 하고 말았다. 무슨 소리지 이게?

  “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데인이 난처한 얼굴로 열심히 말을 생각해내는 사이 아즈반이 끼어들었다.

  “가기 싫은데 끌려왔으니 당연히 저런 표정이지.”

  아즈반의 말을 들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 집에 왔을 때 들은 이야기로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단 말이 이런 말이구만. 요 며칠 사이에 명언 여러 개를 실생활에서 체험하고 있네.... 그것도 뼈저리게.

  “아, 아니에요! 그냥 제가 여행 가는 게 처음이라서 좀 긴장돼서 그래요.”

  내 대답에 데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아, 그렇구나! 나는 또 화난 건 줄 알구.... 좀 설레고 그렇지?”

  “어... 네.”

  표정관리라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이라니....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입꼬리가 떨려왔다.

  “... 정말 화난 거 아니지?”

  “네. 저엉말 아니에요.”

  안면근육의 한계 때문인지 데인은 조금은 걱정되는 눈빛이었다. 나는 조금 더 힘을 쥐어 짜내어 하하 하하고 최대한 해맑게 웃었다. 후.... 이젠 정말 한계야. 그냥 자는 척이나 할까? 밤에 잠을 못 잤으니 슬슬 졸린 것 같기도 한데....

  “아닌 얼굴이 아닌데?”

  젠장.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던 졸음이 아즈반의 말 한마디에 쏙 들어가 버렸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확 밀려와 대놓고 아즈반을 째려보고 말았다. 아, 안 돼. 미소를 잃으면 안 돼. 후우.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아니, 근데 진짜 저 사람은 왜 온 걸까? 아무리 언니가 바쁘다고 해도, 데인이랑 그렇게 친해 보이지도 않는데 왜 저 사람이 온 거지? 설마 카뷔 언니 남자친구인 건가? 잘생기기는 했지만.... 카뷔 언니가 저런 인성의 인간을 좋아할 리가 없는데....

  “아니에요. 저 화 안 났어요.”

  “그래? 그런데 왜 억지로 웃고 있지?”

  뭐지, 이 사람 독심술이라도 하나? 섬뜩했다. 처음 만날 때부터 서늘한 인간이라는 건 알았지만, 대화를 나누니 온몸이 얼어붙을 것처럼 섬뜩했다. 반면 서늘함에 면역이라도 된 건지 데인은 불처럼 타올랐다.

  “야! 너 내가 헛소리하면 그 입 찢어버린다고 했지!”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즈반에게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너 때문에 얼굴을 들고 살 수가 없어! 진짜! 어?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도 보이는 사람들한테 시비를 걸질 않나, 카뷔네 부모님한테 예의 없이 굴지를 않나, 이제는 애한테 뭐? 억지로 웃어?”

  나는 표정관리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데인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늘 해실거리며 덜렁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거기에는 누군가의 익숙한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카뷔 언니 열받았을 때랑 정말 똑같잖아.... 괜히 둘이 친구가 아니구나.

  “어? 애가 좀 긴장할 수도 있고 그러지. 너나 나나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낯을 가릴 수도 있는 거지!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뻔뻔해가지고 낯짝에 드래곤 가죽 뒤집어쓰고 있는 줄 알아? 이 새끼야!”

  드...드래곤 가죽.... 신박한 비유에 감탄이 나왔다. 물론 드래곤의 가죽을 누가 뜯어다 쓰겠냐마는 이론적으로는 그것만큼 두껍고 튼튼한 건 없지.... 그나저나 이렇게 차가 흔들리는데 잘 서있네.... 신기하다.

  그 순간 엄청난 사실이 뇌리에 스쳤다. 아무리 운전석과 좌석이 나눠져있는 중형택시라고 해도 기사 아주머니한테도 다 들릴 텐데? 데인의 사자후가 조금 속 시원하기는 했지만, 말려야 할 것 같았다.

  “저, 저기 데인 언니. 진정하세요. 산길이라 차가 많이 흔들리는데 그러다 넘어질지도....”

  “아주 그냥 지 잘났다고 눈에-. 어? 응? 아, 응...”

  일단 데인을 진정시켜 자리에 앉혔다. 그녀는 앉기는 했지만, 여전히 분이 안 풀린 얼굴이었다. 반면 아즈반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책만 읽었다. ... 저런 건 좀 배우고 싶네.

  “어휴, 진짜 저런 놈을 왜 붙여준 거야?”

  데인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를 돌아봤다.

  “마닐드. 미안해. 전에도 말했지만, 원래 뼛속부터 그런 종족이라... 아.... 솔직히 이해해달라고 하기도 그렇다. 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정말 미안해... 내가 미안해!”

  “아, 아니에요! 저 정말 괜찮아요. 진짜 긴장해서 그런 거예요.... 여행은 정말 처음이라....”

  “그런 거지? 정말 괜찮은 거지?”

  데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대답은 정해져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잠깐 뜸을 들이다 말했다.

  “어.... 네. 정말 괜찮아요.”

  안 괜찮으면 어쩌겠어?

  “진짜로 괜찮아요.”

  나는 방긋 웃었다. 그때 뭔가 서늘한 시선이 날아와 꽂히는 게 느껴졌다. 눈으로만 살짝 옆을 봤다가 체리색 눈동자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데인이 불을 뿜을 때는 아랑곳없이 책만 읽더니 지금은 무슨 일인지 책은 무릎 위에 내려놓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왜 억지로 웃고 있지?’

  방금 들었던 말이 귓가에서 생생하게 울렸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나는 다시 시선을 데인에게로 돌렸다.

  “괜찮다니 다행이기는 한데.... 후. 저놈이 문제야 문제. 카뷔가 왔었어야 하는데. 그러면 훨씬 나았을 텐데 그치? 오즈님은 차라리 쟤한테 일을 시키지 왜 사람을 꼬아서 보내는 거야. 정말 가아끔 가다가 이해를 할 수가 없다니까.... 그래두 도착하면 카뷔가 성문 앞에서부터 기다리구 있을 거야. 그동안 우리 친해지자!”

  두서없이 쏟아내는 데인의 말에 끄덕여주며 나는 다짐했다. 저 남자는 모르는 척하자. 말 섞지 말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 진짜 이 여행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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