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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N의 밤
작가 : MrNerd
작품등록일 : 2016.8.22

격리된 구역, 생존자, 그리고 좀비

 
<1부 : 낙조> - 11장 : 유년기의 끝
작성일 : 16-10-04 13:36     조회 : 522     추천 : 0     분량 : 7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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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아침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뜨고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허무함을 꾹꾹 채워 넣는, 그런 날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오고서야 오늘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거리는 묘한 이질감을 품고 있었다. 일상이 뒤틀려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전날 왔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길 가던 사람을 물어뜯었다. 새빨간 눈을 한 결찰이 누군가를 미치듯이 팼다.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온통 피를 뒤집어쓴 채 뒤엉켰다. 온 길거리가 피로 범벅이 되었다.

 

 뭔가가 잘못 됐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그녀는 곧장 집안에 들어왔다.

 

 문을 닫고 창문을 막아도 사람들의 비명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고통의 비명, 애원의 비명. 어느 순간부터는 짐승의 비명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전화를 하고 싶어도 전화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끈질긴 무음이 들렸다. TV도 전등도 마찬가지였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어둠속에 홀로 앉아,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절규를 듣는 것뿐이었다.

 

 그녀만이 있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죽음과 그녀만이 있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노크가 아니란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의사를 표시할 자격이 없다는 건,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생각했다.

 

 이것이 죗값이구나.

 

 문이 부러질 듯 위태롭게 흔들린다. 가냘픈 소리가 언뜻 들린다.

 

 저것이 죽음이구나.

 

 그리고 문이 열렸다.

 

 ***

 

 문이 열리고, 갈색 점퍼를 입은 남자가 튀어나왔다. 남자는 균형을 잃고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자리에 나자빠졌다. 그 뒤로 빨간 비니를 쓴 젊은 남자와 새치가 돋아난 남자가 차례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총구를 보자마자 그들은 자리에서 멈췄다. 관성 탓에 상반신이 모두 오뚝이처럼 흔들렸다. 점퍼 입은 남자는 바닥에 엎드린 채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빨간 비니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입만 뻐금거렸다. 자신이 사냥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 저쪽이 사냥감이고 이쪽이 사냥꾼이다. 어려울 것 없다. 손가락만,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된다. 자신감을 그대로 검지에 몰아넣는다.

 

 그러나 여전히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준경이 뿌옇게 변했다. 모든 게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손가락과 방아쇠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생명이라는 척력이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아무리 밀어도 척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방아쇠를 당길 수만 있다면, 살 확률이 올라간다.

 

 털보 아저씨는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정말일까.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곧장 달려들 것만 같았다. 확실히 상상으로만 보던 것과는 달랐다. 맞서 싸울 수 있는지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무서웠다.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시체와 달리 여전히 인간이라서 무서운 게 아니라, 그냥 무서웠다.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든다는 게, 그리고 진짜로 죽을지 모른다는 게 무서웠다.

 

 온몸이 속부터 뒤집혀질 것 같다. 손이 떨려온다. 저격총이 바닥에 부딪치면서 편집증적인 소리를 냈다.

 

 달칵달칵.

 

 숨이 거칠어진다.

 

 새치가 그 모습에 미소를 짓는다. 아직까지 겁에 질린 두 명과는 달랐다. 새치가 천천히 한 발자국 내딛는다.

 

 “아가야, 어설프게 흉내 내면 죽어.”

 

 “우, 움직이지 마!”

 

 목소리가 떨린다. 괜히 입을 열었다.

 

 새치가 그 모습에 온화한 표정을 짓는다. 손에 든 도끼에 대조되어 더욱 역겹게 보인다.

 

 “아저씨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거든? 어디 있는지 말만 하면 해치지 않아. 자, 어디 있니?”

 

 “전도사님, 왜 그러세요?”

 

 빨간 비니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새치는 손을 휘저어 가볍게 무시하고는, 한 발자국 더 내딛었다.

 

 “저, 저리 가라고!”

 

 “괜찮아, 헤치지 않는단다. 우린 그냥 사람을 찾으러 온 것뿐이야. 모른다고 거짓말해도 소용없어. 이미 다 듣고 온 거야.”

 

 “쏘, 쏠 거야!”

 

 소년이 악을 썼다. 이번엔 목소리가 갈라지기까지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애처로운 목소리다.

 

 “왜 그렇게까지 죄인을 감싸려는 줄 모르겠구나. 그런 행위 역시 죄가 된단다. 네 마음을 더럽히는 거라고.”

 

 새치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아저씨들한테 말하면, 조금이지만 그런 죄가 사라진단다. 그런 식으로 우린 죄를 지워나가라는 거란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지. 자, 어서 말해보렴.”

 

 새치가 다시금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냥꾼, 지금 어디 있지?”

 

 사냥꾼? 승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역시 알고 있는 표정이구나. 우리 정보원이 말하기론 너한테 뭘 말하고 갔다던데? 자, 어서 말해 봐. 그 남자, 지금 어디 있니?”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적절한 어휘가 생각나지 않았다.

 

 “어서 말하렴. 말하면 정말 아무 짓도 안 할 거야. 그냥… 사라지마. 내가 언제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히 가도록 하마. 그러니까, 어서.”

 

 새치가 매혹적으로, 그러면서 분명하게 말했다.

 

 초조함에 머릿속에서 다툼이 일어난다. 그러나 만화처럼 천사와 악마가 싸우는 광경이 펼쳐지진 않는다. 형태 없는 생각이 이리저리 뒤엉켜 추상화 같은 혼란만 그려낼 뿐이다.

 

 소리도 형태도 모조리 멀어진다. 입에서 바보 같은 신음만이 흐른다. 간신히 정신을 쥐어짜내자 그의 눈에 학교가 보인다. 그가 다니던 학교다.

 

 그 때 빨간 비니가 새치에게 눈짓해보였다. 뒤쪽 구석, 민아가 앉아 있는 쪽이다. 힐끔 그쪽을 본 새치가 음흉한 미소 지었다.

 

 “좋아, 끝까지 그렇게 나오시겠다.”

 

 새치가 여전히 누워있는 남자를 발로 찼다. 점퍼 입은 남자가 뭐라 중얼거렸다.

 

 “빨리 일어나.”

 

 남자가 일어나자 새치가 구석 쪽을 향해 턱짓했다.

 

 “미안하다.”

 

 전혀 그렇지 않은 표정으로 점퍼가 구석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민아가 몸을 떨었다.

 

 “우, 움직이지 마!”

 

 승재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점퍼의 다리는 묵묵히 움직였다.

 

 “움직이지 말라고! 멈춰!”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민아가 필사적으로 울음을 삼켰다. 또 다시 감각이 붕 뜬다. 현기증이 일어난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뇌와 몸이 분리된다. 혀가 멋대로 대답한다.

 

 “모, 몰라.”

 

 “뭐?”

 

 “모, 모른다고.”

 

 점퍼가 걸음을 멈췄다. 빨간 비니와 수염 난 남자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승재를 바라보았다.

 

 새치는 달랐다. 그만은 웃음기조차 없는 기계 같은 표정으로 승재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용히 바람이 불어온다. 온화했던 미소가 가루마냥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좋아. 누가 이기는지 한 번 해보자.”

 

 새치가 점퍼에게 말했다.

 

 “빨리 죽여.”

 

 “예?”

 

 점퍼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자다 깬 목소리 같다.

 

 “빨리 죽이라고, 이 새끼야!”

 

 새치가 얼굴이 벌개져서 소리친다. 점퍼가 허둥지둥 민아에게로 뛰어갔다.

 

 뭔가가 심장을 옥죄여온다. 그저 필사적으로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여전히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본 점퍼가 꼴좋다는 듯 비웃었다.

 

 “오빠!”

 

 민아가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머리가 새하얗게 질린다. 멀리서 누군가가 계속해서 운다. 문득 어디선가 들었던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막 태어난 조그만 아기, 우는 것밖에 할 줄 몰랐던 아기. 동생 잘 돌봐야 해. 조그만 민아를 안고서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었다. 오빠잖아.

 

 다음 순간, 점퍼가 피를 쏟아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처음에는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점퍼가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자, 손가락에서 감각이 느껴졌다. 검지 끝마디가 차갑다. 그게 방아쇠라는 사실이 그때서야 떠오른다.

 

 경련에 맞추듯 소년의 심장도 거칠게 뛰기 시작한다.

 

 “이런 씹할!”

 

 비니가 욕설을 퍼부으며 그에게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다시 방아쇠를 당기자 비니가 군말 없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남자가 들고 있던 도끼가 포물선을 그리며 뒤로 떨어졌다.

 

 또 다시 가슴이 뛴다.

 

 가슴이 헐떡거리며 바닥에 닿을 때마다 따끔거리면서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잠시 후 조준경에 새치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포착됐다. 조준경 속에서 남자가 계속 흔들렸다. 호흡이 빨라 조준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진정하자. 천천히. 급할 것 없다. 사냥감 앞에서 절대 서둘러선 안 된다. 털보가 항상 입버릇처럼 이야기한 말이다.

 천천히. 사냥감과 그 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다. 집에 누운 것처럼 편안하게. 긴장이 풀리자 호흡이 안정되어갔다. 좋아, 천천히……. 숨을 참는다. 모든 게 정지되고, 이윽고 죽음이 다가온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타인의 죽음을 보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죽음과 마주해야 한다. 그랬을 때 죽음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여준다. 죽음은 친구요, 길이자 이정표다.

 

 남자가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잠을 자듯, 편안하게.

 

 그리고 방아쇠를 당긴다.

 

 문득 왜 자신이 여태껏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털보 말이 맞다. 그동안 너무 여유로웠다. 인간성의 문제나 사랑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건 이런 세상에선 그저 사치에 불과하다.

 

 뒤쪽으로 학교가 다시 어렴풋하게 보인다. 기분 탓인지 학교가 전보다 조금 멀어진 것 같았다.

 

 19살, 가을. 학교로 돌아가기엔 아쉽지만 늦었다. 내년이면 벌써 성인이다. 삶에서 자유로웠던 시간은 이제 끝났다. 조금 이르지만, 별 수 없지.

 

 졸업이다.

 

 그리고 총성이 울렸다.

 

 ***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살덩이가 찢겨 나가고 뼈가 거칠게 부러지는 소리.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꿈인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채 그렇게 생각했다. 꿈에서 깰까봐, 시체가 된 자신을 볼까봐 차마 눈을 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건호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양쪽 손가락 엄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모두 제대로 움직였다. 손가락만이 아니라 온 몸이 그랬다. 그의 살덩이도 뼈도 어느 하나 분리되지 않은 채 제대로 붙어 있었다. 아직까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그러나 연기를 못하는 삼류 배우처럼 그의 몸은 그 소리에 맞춰주질 못한다. 그의 살덩이나 뼈는 여전히 붙어있다. 여전히 지속되는 감각은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천천히 눈을 떴다. 햇빛이 날카롭지만 여유롭게 눈꺼풀 사이에 스며든다. 약간의 통증과 함께 그저 눈부신 빛만이 보인다. 차차 빛은 사라지고 회색 도시와 그 밑으로 펼쳐진 참상이 보였다.

 

 시체가 시체를 박살내고 있었다.

 

 빨간 눈들이 세력다툼으로 쓰러진 시체들을 마구 짓이겨 놓았다. 피 묻은 내장이 고무줄처럼 날아다니고, 파편이 된 뼛조각들이 불꽃이 되어 허공 위로 이리저리 흩어졌다. 피비린내와 썩은 내가 코를 찔러댔다. 구역질이 난다.

 

 뭐야.

 

 저도 모르게 다리가 움직였다. 그걸 놓치지 않고 빨간 눈 몇몇이 쏜살같이 고개를 들어올린다. 검붉게 얼룩진 얼굴 위에서 새빨간 눈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들이 괴성을 지르며 그에게로 몸을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죽어있는 시체의 팔뚝 하나가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마치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그 순간 녀석들의 붉은 눈이 재빨리 바닥을 향했다. 다시 괴성을 지르며 녀석들이 바닥에 달려들었다.

 

 이내 좀 전의 행위가 반복된다. 내장이 찢겨나가고 뼈가 날아다녔다.

 

 썩은 내가 익숙해지자 역겨움이 줄어든다. 건호는 침착하게 빨간 눈들을 관찰했다.

 

 한 놈이 시체를 짓이기다가, 방해 된다는 듯 옆에 있던 시체를 거칠게 밀었다. 푸른 옷을 입고 있던 시체가 아무 저항 없이 옆으로 굴러갔다. 푸른 옷이 바닥을 구르기 시작하자마자 놈이 다가간다. 움직임을 멈추기도 전에, 녀석은 잽싸게 푸른 옷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움직임에 반응하는 건가?

 

 주변을 둘러보니 뿔처럼 생긴 파편이 보였다. 아무래도 갈비뼈인 것 같다. 건호는 소리가 안 나도록 주의하며 파편을 주웠다. 손끝으로 꺼칠꺼칠한 표면과 함께 끈적거리는 살덩이가 느껴졌다. 다시 썩은 내가 풍긴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힘껏 뼈를 던졌다. 그 바람에 잊고 있던 통증이 어깨를 쑤셨다. 하마터면 소리를 낼 뻔했다.

 

 갈비뼈가 녀석들 뒤로 떨어지면서 투박한 소리를 냈다. 아스팔트 쪽이다. 물방울 떨어지듯 작은 소리였지만 확실히 파문은 일었다. 빨간 눈들이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문이 일었던 자리에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움직여도 되나. 침 삼키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은 침묵에 몸이 깔린다. 식은땀이 흐른다. 서둘러야 하는데도 경직된 근육이 잘 펴지질 않는다.

 

 갑자기 녀석들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마치 TV를 보며 빨래라도 너는 것처럼 녀석들은 태연히 시체를 짓이기기 시작했다.

 

 간신히 풀리려던 근육이 다시 굳는다. 자세가 불편하다. 몸 이쪽저쪽에서 쥐가 날 기세다. 바싹 마른 입술 위로 식은땀이 흘렀다. 미세한 소금기가 혀를 간질인다. 좋은 맛은 아니다. 공포에 질린 맛이 좋을 리가 없다.

 

 공포가 자극이 되어준다. 덕분에 머리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몸을 풀며 건호는 다시 녀석들을 관찰했다.

 

 크게 다를 것 없는 광경이 계속됐다. 시체와 시체가 뒤엉키며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판타지. 여전히 붉은 기가 가득한 판타지는 보고 있기 피로했다. 지나치게 자극적이어서 지루할 지경이다.

 

 그때였다. 문득 한 녀석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녀석의 앞에는 머리가 잘려나간 시체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놓여있었다. 그 사이를 내장 하나가 간신히 잇고 있었다. 녀석은 그 사이에 쪼그려 앉아 강박적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상반신 쪽, 하반신 쪽. 다시 상반신, 다시 하반신. 다시 이쪽저쪽.

 

 뭐하는 거지?

 

 날아드는 내장과 뼈 조각에 일일이 반응하면서도, 녀석은 시선을 유지한 채 고개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흡사 나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고양이 같기도 하다. 귀엽진 않지만.

 

 불쑥 시체 하나가 날아왔다. 누런 샌들이 인상적인 시체다. 녀석은 강박적인 움직임을 멈추고는 곧 바로 시체에게 달려들었다.

 

 그런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나기 무섭게 빨간 눈들이 고개를 들어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옆에 있던 시체를 들어올렸다. 체구가 작은 남자의 팔 하나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자의 나머지 팔과 다리를 붙잡고 있는 힘껏 녀석들을 향해 던졌다.

 

 다시 한 번 통증이 느껴졌다. 이번엔 참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

 

 시체가 떨어지자 금세 빨간 눈들이 시체에게 달려들었다. 떡밥에 달려드는 붕어처럼 순식간이었다.

 외모와 공격성만이 빨간 눈들의 특징이 아니었다.

 

 녀석들은 사람을 공격한다. 다른 시체들과 다른 점이라면 사람의 형상이라면 무조건 달려드는 점이다. 상대가 죽었든 살았든 상관없다. 피로 물든 눈에 뭘 제대로 보길 기대하는 게 바보짓이다.

 

 그가 뒤로 한 발자국 내딛자 몇몇 녀석들이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여유롭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그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예상대로 더 다가오진 않았다. 녀석들이 움직일 때마다 아래에 있던 시체들도 덩달아 흔들리기 때문이었다.

 

 움직이되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 그게 녀석들의 우선 공격대상이다. 즉 시체들을 사이에 두고 있는 한 녀석들은 절대 건너지 못한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방향성을 잃은 증오 탓에.

 

 아이러니에 웃음이 나온다.

 

 시체가 목숨을 구해주다니. 웃음이 나오지만 유쾌한 기분이 들진 않는다. 입맛이 씁쓸하다. 벌레라도 씹은 것 같은 맛이다.

 

 예림동.

 

 불현 듯 자신이 맛 비평을 할 시간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지금은 그만 퇴장할 시간이다. 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시체가 움직이는 소리와 찢겨나가는 소리가 낡은 그네처럼 무미건조하게 반복된다.

 

 왜 예림동일까?

 

 이번을 제외하면 아파트를 나선 적이 없다. 누군가한테 들켰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주일 전쯤에 발견했다면? 그렇다면 왜 이제야 쳐들어왔는지 설명이 안 된다.

 

 애꾸가 거짓말한 걸까? 아니, 그건 아니다. 놈이 그런 걸 거짓말해서 이득이 될 게 없다. 어쩌면 조각상에 매달렸던 남자처럼 잘못된 정보가 퍼진 걸지도 모른다. 비슷한 녀석이 근처에 있다가 우연히 걸린 것이리라. 하지만 우연치곤 어딘가가 석연찮다. 계속해서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이유를 들먹여도 불안이 줄어들지 않는다. 현실을 부정하려해도 그럴 수 없다는 건 그가 이미 잘 알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사실. 아이들이 위험하다.

 

 얼마 걷지도 않아 멀리서 연기가 보였다. 예림동 방향이다.

 

 젠장. 그저 다른 집이기만을 빌며 총대를 단단히 멘다.

 

 다시 입장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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