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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흔들림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19.9.5

사랑 앞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리는 남녀주인공의 이야기를 엮어보려 노력했습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흔들림 23
작성일 : 19-10-01 09:28     조회 : 338     추천 : 0     분량 : 7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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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첫째 지현의 축구시합 날짜와 은정 씨가 알려준 공연 날짜가 공교롭게도 겹쳤다. 야근하는 날이 많아 학교 행사에 자주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번 축구시합 만큼은 꼭 가겠다고 미리 약속을 했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두 군데 모두 들를 수 있지 않을까 궁리 중이다. 은정 씨가 알려준 공연 시각은 오후 1시. 축구 경기는 10시에 시작한다고 했으니 점심 때 즈음해서 끝나겠지. 경기 후 바로 출발하면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어? 날이 밝았는데 왜 알람이 울리지 않았지? 요즘 안 그래도 낮이 짧아져서 이 정도로 해가 떴다면 시간이 꽤 흘렀을 텐데. 휴대폰을 찾느라 손을 휘저었다. 자면서 어떻게 건드렸는지 이불 안으로 말려 들어가 있다. 버튼을 눌렀는데 반응이 없다. 화면이 뜨기를 기다려도 검은 바탕 그대로다. 설마? 급하게 전원을 연결하자 그제야 반응이 온다. 어젯밤에 충전을 하려고 생각은 했었는데 깜빡 했나 보다. 하필 바쁜 날 아침에 휴대폰 방전이라니. 화면 상단 구석 위로 빨갛게 떠오른 전원 경고 표시. 시각은 보나 마나 뻔하다. 이미 늦었다. 헐레벌떡 거실로 나가니 집에 사람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식탁 위 아내가 남겨놓은 메모. ‘너무 곤하게 자는 거 같아 일부러 깨우지 않았어. 밥은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반찬은 냉장고에서 꺼내 먹어. 시합은 보러 올 거지?’ 밥 챙겨 먹을 여유가 없다. 욕실로 들어가 대충 면도를 하고 나왔다. 갈아입을 옷을 챙기다 공연장에 가려면 무슨 옷을 입어야 하지, 라는 생각에 막막해졌다. 그러고 보니 공연을 보러 가본 적이 없었다. 외근에 치여서 가족들과 함께 보낼 시간은 항상 부족했고 집사람도 굳이 그런 곳에 가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노래를 들으며 흥을 내는 자리니까 너무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겠지. 마음이 급해지니 몸에서 열이 나는 듯하다. 이제 초겨울로 접어들어 쌀쌀하겠지만 반팔 셔츠를 꺼내 입고 그 위로 재킷을 걸쳤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걸치기 좋게.

 지현이 학교는 오랜만에 가는 거라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분명 예전 기억으론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좌회전 금지구역이 나왔다. 잠시 어물거리니 뒤에서 바로 경적을 울린다. 하여튼 한국 국민 성질 급한 건 알아줘야 한다. 지피에스를 쓰려고 휴대폰을 꺼내 드니 배터리가 반도 충전되어 있지 않다. 완전 방전된 상태에서 충전하려니 시간이 걸릴 텐데 급하게 나오느라 오래 충전시켜놓지 못했다. 이러다 나중에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지만 당장 길을 찾는 게 급했다.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니 이미 경기는 시작한 뒤였다. 응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내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아내는 둘째 지호를 옆에 두고 주먹을 쥐고 흔들어대고 있었다. 아내는 평소 축구라면 관심이 없어서 월드컵도 안 보는데 아들이 뛴다니까 아주 몰입을 해서 관람한다. 슬쩍 옆으로 다가가 어깨를 건드렸다. 잠깐 나를 돌아보더니 이내 지현을 찾아 눈길을 돌린다.

 “애쓴다. 이렇게 쌀쌀한 날씨에도 땀을 줄줄 흘리네. 내가 그 정성에 봐준다. 아무리 일이 먼저라지만 애들 아빠로서 자식도 살뜰히 챙기라고. 안 그러면 나이 먹어서 구박 받는 수가 생겨.”

 “미안. 맞춰 나온다고 했는데 이렇게 늦어버렸네. 경기 시작한 지 오래 됐어?”

 “아직 전반이야.”

 “깨우지 그랬어? 휴대폰 알람을 맞춰놨는데 하필 방전돼서 꺼져버렸네.”

 “피곤한 얼굴로 곤하게 쌕쌕, 거리며 자는 사람 깨우기 안 됐더라고. 그래도 경기 시간은 맞춰 나올 거라 여겼지. 그나마 많이 늦진 않았네. 밥은 먹었어?”

 “어, 아니, 정신없이 나오느라. 참, 언제부터 학교로 오는 길이 바뀐 거야? 좌회전 금지 구역도 생기고.”

 “뭔 소리야? 학교 오늘 길 언제나처럼 그대론데.”

 학교로 오늘 길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지현을 찾았다. 아들은 나를 발견하고 늦게 온 건 개의치 않는지 와줬다는 사실만으로 기뻐서 환하게 웃어보였다. 기뻐하는 아이 모습에 외려 가슴이 아팠다. 밝은 미소에 쓰윽, 베이는 서늘함을 느꼈다. 죄책감? 미안함? 그에 더해서 이렇게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가슴을 타고 올라와 목을 답답하게 조인다.

 전반은 양쪽 득점 없이 끝이 났다. 수고했다고 지현을 안아주니 둘째 지호가 자기도 안아달라며 보챈다. 애들은 항상 동등하게 대해줘야 한다. 아님 꼭 칭얼거림을 듣는 상황이 발생한다. 아내가 아침밥도 안 먹었는데 미리 요기를 하겠냐며 점심을 담은 아이스박스를 찾는다. 별로 생각 없다고 답한 후 화장실 간다며 나섰다. 숨이 진정되자 이제 요의가 찾아온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만물의 영장이니 어쩌니 해도 결국은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동물의 일종이다. 먹으면 배설하고 졸리면 자야한다고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거부하고 살 수 없는 존재다.

 “어머, 진우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

 화장실을 나서서 돌아오는 중이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얼굴을 마주치지 않아도 목소리만 듣고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주미란 누님. 사진 모임에서 알게 된 사이. 지난 번 모임에선 더 친해져서 같이 돌아다니기도 했었지.

 “안녕하세요. 이렇게 뵙네요.”

 “사진 모임이 아니라 딴 곳에서 뵙다니 기분이 새롭네요. 지난 모임에선 정말 감사했어요. 민우가 큰 신세를 졌죠.”

 “아니 별로 한 것도 없었는데요, 뭘. 저한테 감사하실 이유가 없죠.”

 가족도 아닌 사람을 참 살뜰히 챙긴다. 저혈당 쇼크가 와서 힘들어하던 회원이 있었다. 단 음식을 섭취하고 다행히 큰 문제없이 회복을 했다.

 “우리 딸이 이 학교 다녀요. 지선이 기억하시죠?”

 “아, 예. 그때 모임에 데리고 오셨던 따님이요?”

 “오늘 학급 행사가 있어서 나왔어요.”

 은정 씨와 많이 가까운 사이라는 걸 안다. 말을 줄이고 가능한 자리를 빨리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마무리 하려고 했다.

 “아빠.”

 뒤에서 들리는 둘째 지호의 목소리.

 “아빠, 나도 쉬 마려워.”

 어떻게 지호의 손을 잡고 돌아왔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후반전을 시작했다. 아내는 어느새 열혈 팬 모드로 돌아와 주먹 쥔 손을 흔들어대고 있다. 날 아빠라고 부르는 지호를 보고 묘하게 흔들리는 표정을 짓던 미란 누님. ‘그, 그래. 화장실 가려고?’ 제대로 인사를 마무리 하지도 못하고 황급히 지호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화장실을 나오니 그녀는 이미 저만치 멀리 있었다. 거기서 우리를 바라본다. 지호를 데리고 가는 내 뒤를 따라오는 시선을 느꼈다. 그 시선을 확인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혹시, 은정 씨가 우리 사이에 대해 얘기를 했을까? 경기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 은정 씨와 가까워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번 모임에서도 누구도 우리 사이에 대해 묻지 않았다. 하지만 얘기가 나오는 건 시간문제다. 은정 씨와 미란 누님은 아주 가까운 사이로 보였다. 은정 씨에게 직접 알려야 한다. 은정 씨가 다른 사람을 통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보다 더 나쁜 시나리오는 없다.

 문득 휴대폰을 살폈다. 잠시 정신이 팔렸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공연 시간에 맞추려면 경기가 끝나는 걸 볼 수 없다. 지현에게 미안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다. 아내에게 핑계를 대기로 했다.

 “경기 마지막까지 있진 못하겠는데.”

 “일이야?”

 “급하게 연락이 왔네.”

 “괜찮아. 가. 이렇게까지 와준 것만도 어딘데. 지현이가 자기 공차는 모습 아빠가 봤다는 걸로 만족할 걸. 애들한테 잘 얘기할게. 있다가 저녁 먹으러 들어올 거야?”

 “아무래도 저녁 시간엔 늦을 것 같아.”

 “잘 챙겨 먹고 다녀. 그러다 까딱하면 위장에 구멍 난다.”

 “그럴게요, 마나님.”

 콘서트가 열리는 공연장 근처는 상당히 교통이 복잡해서 근처 지하철역 주변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들어서니 토요일이라 그런지 낮부터 사람이 꽤 붐빈다. 지현이 시합장에서 너무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공연 시각에 빠듯하게 도착할 듯했다. 은정 씨에게 미리 알려주는 게 예의겠지.

 “여보세요.”

 “은정 씨, 접니다.”

 “네, 진우 씨.”

 “은정 씨, 제가 시간 예측을 제대로 못했네요. 지금 가는 중인데 거의 약속시간 다 돼서 도착하겠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넉넉하게 준비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말이죠.”

 “아직 시간 있으니 괜찮아요.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오세요. 보통 예정된 공연시간보다 조금 늦게 시작해요.”

 오히려 나를 안심시켜주는 그녀다. 굳이 상황을 이렇게 만든 내 자신이 한심하다. 오늘 이벤트 둘 중 하나는 포기하는 게 나았을 거다. 뜨르륵. 휴대폰에서 난 예상치 못한 소리에 당황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유심히 보니 꺼진 상태였다. 아차. 휴대폰이 방전된 후 아침에 충전시킨다고 했는데도 그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는지 다시 방전됐다. 이러면 이제 은정 씨에게 연락조차 할 수 없다. 약속 장소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을 텐데 혹시라도 나 때문에 늦으면 많이 실망하겠지. 그토록 고대하던 공연인데 아이처럼 기뻐하던 그 표정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초조해지자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지하철이 정차한다. 목적지까지 남은 역은 셋. 대략 시간 계산을 해본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면 공연 예정 시각까지 15분 정도 남는다. 역에서 공연장이 얼마나 멀지 그걸 모르겠다. 휴대폰이 꺼지지 않았다면 지피에스를 사용해서 대략 거리를 감 잡았을 텐데 이렇게 필요할 때 쓸 수가 없다니 어젯밤 충전시키지 않은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원망했다. 역에서 내리면 무조건 뛰는 수밖에.

 역에 도착하고 지하철 문이 열린다. 항상 사람이 붐비는 곳인데다 주말이라 더하다. 사람에 치여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전력질주를 할 수가 없다. 공연장까지 가는 동안 그 길이 아주 멀게만 느껴진다. 길이 점점 넓어진다. 저 멀리 커다란 돔구장이 눈앞에 드러난다. 아직까지 공연장을 향해 가는 사람이 꽤 있다. 은정 씨를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휴대폰이 꺼져 연락할 수가 없다. 까만 액정을 보며 한바탕 욕을 퍼부었다. 그게 나 자신인지 폰인지 상관없었다. 점점 더 초조해진다. 곧 공연이 시작할 텐데 은정 씨는 어디에 있을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다리를 움직였다. 왼쪽? 오른쪽? 아님 개찰구 근처? 이마에서 땀이 배어나온다. 막상 뛰려니 주저된다. 괜히 돌아다니다 더 엇갈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껏 움직일 수도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그게 더 답답했다. 손목에 찬 시계 초침이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틱, 톡, 거리는 소리가 이렇게 컸는지 새삼 귀에 가깝게 들린다. 이제 곧 시작인데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등에 닿는 손길에 뒤를 돌아봤다. 반갑게 웃는 은정 씨. 순식간에 온몸을 짓누르던 돌들이 떨어져 내린다. 그녀를 보고 긴장이 풀리자 이젠 전신이 나른해진다. 바로 옆에 적당히 앉을 만한 자리만 있었다면 드러누웠을 게다.

 “하아아.”

 말을 꺼내려다 숨이 차올라 그만 목이 멘다. 은정 씨가 웃던 얼굴을 살짝 궁금한 모양으로 바꾼다.

 “진우 씨, 괜찮아요? 얼굴에 온통 땀이 범벅이네요.”

 “아, 아닙니다. 급하게 오느라 그래요. 저 때문에 기다리셨죠?”

 그녀가 손수건을 꺼내 든다.

 “이걸로 닦으세요. 일부러 일찍 왔어요. 여기 공연장 근처에 오기도 오랜만이라 주변을 둘러보고 기념품관에 들러 구경도 하고 그랬죠. 아직 안 늦었어요. 미안해 마세요.”

 은정 씨를 따라 개찰구로 향했다. 그녀가 표를 꺼내 개찰을 하는 사이 건네받은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쳤다. 내 모습이 얼마나 엉망일지 안 봐도 뻔하다. 늦어서 많이 미안했는데 그녀는 그저 행복한 미소만 짓는다. 그게 너무 감사했다. 늦지 않아 다행이고 그녀가 즐겁다니 이제 됐다. 아침부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난 후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어째 쉬는 날이 더 피곤하다. 송성태라는 가수가 이렇게 인기가 많았나? 공연장은 사람들도 가득 찼다. 그의 노래를 들어본 적 있지만 별로 관심은 갖지 않았다. 여기 모인 관객은 그의 팬이라 당연하겠지만 공연 시작부터 노래 한 구절마다 따라 부르며 마치 한 무리처럼 반응했다. 옆에 있는 은정 씨는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다음부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은정 씨에게 말하기 뭣하지만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놓이자 이제 슬슬 졸음이 몰려온다.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잠이 온다니 스스로도 기가 찼다. 고개가 슬쩍 내려가자 퍼뜩, 들어올렸다. 은정 씨는 휴대폰을 꺼내 거기서 나오는 빛을 비춰가며 음악을 즐기고 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아, 내 휴대폰은 죽은 채로 있구나, 라는 실감이 난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나 궁금할 정도로 이제 휴대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다음부턴 집에 가면 꼭 충전기부터 꽂아놓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그의 음악은 나쁘지 않았다. 나름 따라서 흥얼거리게 되는 멜로디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내 마음엔 그의 음악이 들어올 자리가 별로 없다. 멀찍이 떨어져 나를 보던 미란 누님. 그녀의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더욱 온갖 잡념이 제멋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만약 미란 누님이 은정 씨에게 나와 마주쳤던 이야기를 한다면? 이미 은정 씨에게 우리 사이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면? 상현을 비롯한 사진 모임 회원들이 알게 된다면 계속 모임에 나올 수 있을까? 은정 씨의 옆얼굴이 흥분해서 발갛게 상기되었다. 피로가 겹쳐 머리가 녹초가 됐는지 아님 걱정이 돼서 그랬는지 공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은정 씨가 바로 옆에 있는데 그 사이 큰 벽이 세워진 듯했다. 나와는 다른 세상에 속한 그녀. 이게 한계일지도 모른다. 더는 다가설 수 없는 벽.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다. 단단히 곁에 붙잡아두고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보고 만지고 싶다. 그녀가 나를 향해 웃는다. 같이 웃어주었다. 그녀와 함께 마음껏 공연을 즐기고 싶었는데 스스로 망쳐버렸다. 어쩌면 시작부터 잘못됐겠지. 이제 더 욕심을 내면 벌을 받을까 두려워진다.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탐욕스럽게 팔을 벌리면 손에 쥐고 있던 것도 잃어버릴 거다. 그녀를 훑어봤다. 머리에서 시작해서 목을 타고 내려와 어깨와 가슴, 허리와 무릎까지. 그곳에 내 손이 닿았다는 게 꿈만 같다. 저렇게 생기가 넘쳐나는 근원지. 차라리 그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다면 어떨까 상상을 했지만 그 앞을 아내와 두 아이의 모습이 가로막았다. 결국 오늘 공연은 즐길 수 없게 됐다. 귀는 막혔고 눈은 흐릿하다. 가슴이 꽉 조여 온다. 음악에 취해 즐거워하는 은정 씨만 아니라면 이 공간을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몸은 같이 있지만 마음이 떠나버렸다. 은정 씨에게 자꾸 미안하다. 그렇게 고대하던 공연에 와서 함께 제대로 즐겨주지 못해서. 오늘 저녁이 길게 느껴진다. 몸은 어딘가에 숨어 눈을 감아버리길 원한다고 신호를 준다. 눈 뜨면 반복될 현실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저 피하길 바란다. 미안해요, 은정 씨. 우리, 막다른 곳에 다다랐네요. 은정 씨가 항상 행복하면 좋겠는데. 미안합니다. 이렇게 부족한 나라서 정말 미안해요.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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