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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신에 버금가는 자.
작가 : Stonehead
작품등록일 : 2019.9.29

저승의 최고신, 염라대왕의 현신, 신아.
그가 머물고 있는 지옥에서 대형사고가 하나 터지는데......

"십이악령이 탈출했네."

저승이 관리하는 최악의 열둘 대죄인들이 저승을 탈옥한다!

"그것 참, 큰일이군요."

신아는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이 즐거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염라대왕은 신아에게 악령의 처리를 맡긴다.
그리고 신아는 기꺼이 이 즐겁게 놀기(?)위해 악령들을 쫓아 이계(異界)로 향한다.

 
Chapter 3 체이테 성의 악녀 : 피의 백작부인(3).
작성일 : 19-09-30 23:38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1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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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화는 심장이 뛰는 것이 느꼈다. 그녀는 지금 살아있었다. 심장이 뛰고 뜨거운 피가 온몸을 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몸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바토리의 것이었다.

 

  주위에서 피가, 삿된 기운이, 사이한 기가 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피가 점점 검어지고 심장의 박동이 더 빨라지고 온몸의 막힌 혈맥이 뚫린다. 정신마저 침범한 삿된 기는 점차 태화의 세상을 흑백으로 물들였다.

 

  태화공주.

  대주국의 하나뿐인 왕녀였던 그녀의 첫 기억은 자신과 같은 나이였던, 네 살짜리 어린 소녀에게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는 부왕과 오라비의 모습이었다.

 

 주 왕국이 궁금하다며 황제를 졸라 밖으로 나온 대국의 황녀.

 

 그런 황녀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노령의 대신들과 국왕과 세자.

 

  자존심도 버린 채, 황녀를 위해 왕녀의 장난감을 바치고, 왕녀의 정원을 바치고, 왕녀의 애마를 바치고, 왕녀의 자유마저 바친 국왕.

 

  황녀를 위해 개가 되고 황녀를 위해 말이 되고 황녀를 위해 웃으며 매를 맞아야 했던 세자.

 

  그리고 황녀를 위해 현실을 알고 현실에 절망하고 현실에 좌절한 왕녀, 태화.

 

  어린아이기에 순수했으며 또한 잔혹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그 순수함과 잔혹함을 현실로 이끌어낼 권력 또한 있었다.

 

  어린아이기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제 세상이 무너지는 것에 두려워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그저 웅크리며 상전을 위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저 절망하며. 때론 분노하며. 결국은 좌절하며.

 

  그렇게 그녀의 첫 기억은 분노와 절망으로 시작했다.

 

  뭔가 이상한데? 이건, 이건 내 기억이······.

 

 태화는 자신의 기억에 의문을 제기했다.

 

  흑백의 영화처럼 반복해서 나타나는 치욕적인 기억.

 

  이것은 자신의 첫 기억이 맞는가?

 

  이것이 정녕 나의 기억이 맞는 것인가?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태화에게 답을 해줄 존재도, 답도 애초에 없었다. 그런 건 바토리를 받아들이며 모두 잃어버렸으니까.

 

  태화는 잠에서 깨고 싶었다. 아니, 이것이 잠인지, 뭔지도 몰랐다. 그저 일어나고 싶었다.

 

  태화의 등 뒤, 그녀를 향해 가늘고 창백한 여인의 손이 나타나 그녀의 머리를 붙잡았다. 태화는 머리에 뜨겁고 끈적이는 무언가 닿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피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태화의 머릿속을 파고 들었다.

 

  무얼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딴 의문은 필요 없어!

 

  너는 너의 굴욕을 떠올려!

 

  네가 받은 그 수치와 모욕을 떠올려라!

 

  그리고 맹렬히 분노해라!

 

  분노하고 또 분노해 너에게 굴욕을 준 자들에게 죄를 물어라!

 

  너의 그 분노가!

 

  너의 그 원한이!

 

  너의 그 절망이!

 

  ······나를 만족시켜 줄 테니까.

 

  뭐? 그리고 태화는 눈을 떴다. 그녀의 두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눈앞에 나체의 여인이 핏발이 선 두 눈을 부릅뜨고 길게 찢어진 미소를 지으며 태화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태화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바토, 리?”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가 바토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바토리의 입이 십 자(十)로 찢어졌다. 그 속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열을 이루며 늘어져 있었다. 입안에 혀도 살도 목젖도 없이 오직 송곳니만 있었다. 그 입이 태화의 정신을, 나아가 영혼을 씹었다.

 

  바토리의 의식이 사라짐과 동시에 바토리의 몸 또한 녹아내려 태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태화의 전신에 붉은 문양으로 낙인이 찍혔고 그녀를 감싸고 있던 피의 공이 흘러내리며 태화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피를 모두 흡수하자 창백할 정도로 새하야며 아름다운 나신의 그녀가 땅으로 내려왔다. 피가 그녀의 몸을 감싸 노출이 심한 검은 드레스를 만들어냈다.

 

  태화, 아니 바토리의 두 눈이 피처럼 빛났다. 각성. 바토리는 더 이상 둥지가 필요하지 않는, 강력하고 위험한 악령으로서의 각성을 마쳤다. 그녀는 더 이상 피의 악령이 아니었다.

 

  ‘뱀파이어(Vampire).’

 

  악령의 격을 넘어 악마의 격에 발을 들인 자. 그것이 지금의 엘리자베트 바토리였다.

 

 ***

 

  황궁이 있던 자리, 그곳에는 과거의 영광은 없고 흉물이 된 잔재와 피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쿵! 넘어가는 잔재 너머에 신아와 유와가 있었다. 옷이 조금 찢어진 것만 빼면 두 사람 다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생존이었다.

 

  “컥!”

 

  신아가 갑자기 유와의 목을 움켜쥐었다. 숨이 막히는 와중에도 차가운 신아의 두 눈은 유와의 눈을 넘어 몸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너, 또 다시 날 방해하면 그땐 진짜 지옥이란 게 뭔지 보여주마. 고통은 차라리 달콤한 상이 되어 애걸하게 될 테니. 알아들었나?”

 

  끄덕끄덕. 유와가 목이 잡힌 상태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신아는 유와를 놓아주었다.

 

  “쿨룩쿨룩!”

 

  유와는 피웅덩이 위에 엎어져서 목을 어루만지며 숨을 토해냈다. 신아는 그런 유와를 두고 강력한 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바토리가 있는 곳으로.

 

  세계와 세계 간의 경계가 무너졌다. 둥지와 현실세계의 충돌은 결국 균열을 가져온 것이었다. 인과율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 신계의 신을 강림시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 편하나 문제는 신아 자신이 귀찮아진다는 것이다. 애초에 악령도 지구에서 왔다. 문제를 가져왔으면 조용히 해결하고 조용히 돌아가야 하거늘. 이렇게 요란스럽게 일처리를 하는 이상 분명 이계의 신계와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에는 신아는 지구로 강제 귀환될 수도 있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신의 개입을 막아야 하는 데, 그러기 위해선 신이 개입하는 원인이 되는 균열부터 복구해야 했다.

 

  그리고 신아는 균열을 이미 한 번 메꿔본 적 있었다.

 

  천기―천위복원.

 

  파츠츠. 균열이 천천히 닫혀간다. 균열의 너머에서 고차원적인 존재의 눈들이 이곳을 염탐하지만 그들은 이곳에 올 수 없었다.

 

  “바토리.”

 

  바토리는 균열 앞에 서있었다.

 

  고차원적 초월자들의 종복을 이용하려 했던 것일까? 아님 그들과 계약이라도 맺으려 했던 것일까? 무엇이든 이미 늦었으며 설령 성공했다 해도 둥지도, 제약도 없이 힘을 되찾은 신아의 상대가 되지 못하리라.

 

  “너, 먹었구나. 우선 축하부터 할까. 미약하게나마 신성을 얻은 것에 대해.”

 

  신아는 바토리의 상태를 보자마자 꿰뚫었다.

 

  태화를 먹음으로서, 정확히는 태화가 그동안 키워온 부정적인 감정의 총체를 먹음으로서 악령으로서 바토리의 격은 올라갔고 거기서 그녀는 작게나마 신성(神性)을 얻었다.

  하지만.

 

  “부족하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더, 더 많은 신성이 필요해.”

 

  중얼거린 바토리가 고개를 들어 신아와 마주 본 순간 땅에서 검붉은 덩어리들이 솟아나와 신아를 삼킬 듯이 쇄도했다.

 

  눈도, 귀도, 코도 없이 오직 입과 날카로운 송곳니만 가지고 있는 이 이형의 괴물은 바토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널 먹으면 이 부족함이 채워질까?”

 

  이건 혼잣말에 가까웠다. 하지만 신아가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신아는 검으로 검붉은 덩어리들을 쳐내며 생각했다. 권능 기록말살을 사용하면 편하지만 그건 기의 소모가 너무 심하다. 종말집행도 마찬가지다.

 

  권능, 천기, 마기, 신기, 도술, 사기 등 기 혹은 마나를 사용한 초자연적인 기술들은 늘 에너지, 즉 기나 마나로 발동된다. 같은 범주 내에 있다 해도 필요한 기의 양은 모두 다 달랐다. 예를 들어 같은 권능이라도 규모나 목적 등에 따라 필요한 기의 양은 달랐다.

 

  종말집행과 기록말살은 각각 한 세계와 한 영혼을 소멸시키는 일. 그것이 거짓된 세계이며 악한 영혼이라도 해도 마찬가지. 오늘 하루 동안 권능만 두 번이 썼다. 여기서 또 권능을 쓰면 그땐 기가 바닥을 보일 지도 몰랐다. 물론 무한에 가까우니 아예 바닥나지는 않겠으나 태화 같이 또 다른 악령이 나타나 기습을 하면 꼼짝없이 당할 것이다.

 

  ‘이미 한 번 전적이 있으니 전처럼 막무가내로 나가기는 힘들겠고.’

 

  “어떻게 한담.”

 

  신아의 검기가 검붉은 것들을 베어 가르고 바토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검기는 피를 모조리 증발시키며 나아갔다.

 

  촤아악! 바토리는 손을 들어 피의 벽을 세웠다. 검기와 피의 벽은 서로 부딪혔고 수증기를 품어내며 둘 다 소멸했다.

 

  후끈한 열기의 수증기를 피부로 느끼며 바토리는 신아를 보며 생각했다.

 

  ‘이 온도, 이 열기. 상성이 좋지 않군.’

 

  바토리의 눈에는 신아가 온몸에 불꽃으로 이뤄진 갑옷을 착용한 것만 같았다. 그가 걸음을 내걸 때마다 바닥의 피가 증발했고 그의 온몸에서 이글이글한 열이 느껴졌다. 마치 태양이 걸어오는 것 같았다.

 

  피란 결국 액체. 액체는 온도에 따라 고체가 되기도 기체가 되기도 한다.

 

  바토리의 능력은 고체가 된 액체를 다룰 수 없었고 신아의 열기는 기체가 된 액체조차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신아가 사용한 천기.

 

  헬리오스의 태양마차(Helios' Solar Carriage).

 

  태양은 그 질량과 온도가 제아무리 신이라 해도 마차로 끌고 다닐 수 없다. 그래서 신화 속 태양신의 태양마차는 어디까지 태양의 빛과 열을 복사한 열화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열화판이라 해도 태양의 실제 온도의 십분의 일만 구현되어도 이깟 피바다 하나 증발시켜버리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바토리가 피를 얼마나 쏟아내든 태양마차의 열기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 태양도 집어 삼켜주마!’

 

  피들이 한 곳으로 집중된다. 하늘 높이 솟아올라 하나의 거대한 기둥이 된 피는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 하늘에 닿을 듯한 피의 기둥의 끝이 쩍 갈라져 날카로운 송곳니들이 가득한 입이 되었다.

 

  마기―피의 포식자(Bloody Predator).

 

  그것은 피로 만들어진 샌드웜(Sandworm). 아니, 데스윔(Death Worm)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태양을 가린 데스윔이 신아의 머리 위로 공격했다. 커다란 입은 신아를 삼키고 땅을 파고 들어갔다. 데스윔이 다시 땅위로 나왔을 때, 데스윔의 배의 한 쪽 부분에 구멍이 나 있었다. 상처는 금방 수복되었으나 바토리는 그것이 태양마차의 영향임을 알았다.

 

  ‘어디 갔지?’

 

  바토리가 신아를 찾기 위해 정신을 집중할 때 그녀의 발밑이 무너졌다. 무너지는 땅 위에서 신아가 나타나 바토리의 턱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태어나서 턱을 처음 맞아본 바토리는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신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퍽! 퍼버벅! 신아의 주먹과 발이 빠른 속도로 바토리의 전신을 공격했다. 팔이 꺾이고 다리가 부러지고 노출이 심한 드레스라 온몸에 생긴 멍이 훤히 보였다.

 

  “지금 뭐하자는 거지?”

 

  바토리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상처는 빠르게 수복되었다.

 

  “너 엿 먹인다.”

 

  “끝까지 건방지군.”

 

  신아가 바토리에게 달려갔다. 불길이 붙은 검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불타올랐다.

 

  이에 맞서 바토리는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녀의 팔이 휘둘러진 경로에 따라 피가 솟아올라 신아를 덮쳤다. 피에 두 동강이 난 신아의 몸이 땅으로 떨어졌고 이내 희미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환영!? 설마!”

 

  기척을 느낀 바토리가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씩 웃고 있는 신아가 있었다.

 

  퍽! 신아의 주먹에 맞은 바토리는 방금 전 그가 만들어 놓은 싱크홀로 빠졌다.

 

  “으득! 이딴 걸로 날 막겠다고!”

 

  상처를 회복한 바토리가 피로 된 박쥐 날개를 만들어 위로 날아올랐다.

 

  신기―중력가중(重力加重).

 

  쿵! 한순간 중력이 배로 늘어나며 바토리의 속도가 느려졌다. 쿵! 다시 한 번 중력이 늘어나며 바토리는 아예 싱크홀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아아악!”

 

  바토리의 발악이 느껴졌으나 육체가 있는 이상 중력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신아는 다음 한 수를 준비했다. 딱. 신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검지에는 지옥불의 탁한 불꽃이 있었다. 신아는 지옥불을 싱크홀의 밑으로 떨어뜨렸다.

 

  한 송이 꽃잎처럼 떨어진 싱크홀은 움직일 수 없는 바토리와 닿으면서 엄청난 화력을 내기 시작했다. 펑! 폭탄이라도 터진 듯이 싱크홀 밑에서부터 화염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화염기둥은 신아의 손짓에 따라 땅속에 숨어 있는 피의 데스윔을 찾아내어 불태웠다.

 

  “으··· 으으···.”

 

  희미하게 바토리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살펴보니 재생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다.

 

  뱀파이어 엘리자베트 바토리. 그녀는 본래라면 뱀파이어라고 불러야 맞겠지만 태화라는 인간의 몸을 강탈해 탄생해 완성되었으니 ‘반쪽짜리 뱀파이어(Half Vampire)’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뱀파이어와 하프 뱀파이어의 차이가 뭐냐고 묻는다면 신아는 단언할 수 있었다.

 

  “재생력의 차이지. 뱀파이어는 햇빛이나 신성이 깃든 무기가 아니고선 무한히 재생이 가능하지만······, 하프는 다르지. 하프는 피가 있어야만 재생이 가능하니까.”

 

  뱀파이어를 ‘불사의 왕(King of Immortal)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한한 재생력이지만 하프 뱀파이어들은 끊임없이 공급되는 피가 아니라면 무한한 재생을 할 수 없었다. 피는 그들의 근원과도 같으니까.

 

  “아이러니한 일이지 않나. 너의 격을 올려준 육신이 오히려 너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다니 말이야.”

 

  신아가 싱크홀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안 들리나 보군.”

 

  하지만 상관없지, 신아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바토리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신아가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구름 위에 고대 룬(Rune) 문자로 그려지는 마법진을.

 

  “유성체(Meteor).”

 

  보랏빛 마법진은 하늘과 하늘을 넘어 우주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우주를 떠도는 거대한 바윗덩어리는 마법진을 통과하자 불타기 시작하며 추락했다. 싱크홀을 향해서.

 

  쿠구궁!

 

  “예로부터 마녀에게 어울리는 형은 화형이었지. 아, 화형치고 좀 과한가?”

 

  “으, 으아아!”

 

  바토리는 남아있는 피로 바닥에 마법진을 그려넣었다. 이동 마법진이었다. 마지막 남은 피를 짜내 그려놓은 것이나 신아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파아앗! 바토리가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마법진은 작동하지 않았다.

 

  “왜, 대체 왜애애!!”

 

  몇 번을 더 시도한 바토리는 주변에 마력의 흐름을 방해하는 무언가를 확인했다.

 

  ‘이건······안티 매직 필드! 저 자식이 아주 작정을 했구나!’

 

  그러는 사이 메테오는 싱크홀 안으로 추락했다. 메테오가 추락하며 일으키는 열과 풍압은 싱크홀 주위를 깔끔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 충격은 한순간 함경성에 지진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메테오의 날카로운 끝이 움직이지 못하는 바토리의 심장을 정확하게 노려왔다. 그것은 마치 불타는 검과 같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으며 결코 다시 살아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아아아악!!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널 죽일 거야!”

 

  콰과광! 운석은 땅과 부딪혔고 바토리의 몸은 으깨졌고 바토리의 저주는 폭음 속에 묻혔다.

 

  “즐거웠어, 바토리.”

 

  신아는 그것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결과는 확인할 것도 없었다.

 

  저 멀리서 유와가 비척비척 다가왔다. 신아를 바라보는 표정에 원망과 슬픔이 가득했다.

 

 ***

 

  연율 황자의 반란이라고 기억되고 기록된 사건은 북방 원정군이 돌아와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족 유와를 황제로 추대하면서 막을 내렸다. 또한 태화 공주의 반란은 유와가 입을 닫는 것으로 없었던 것이 되었고 사고로 시신조차 찾지 못한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황제가 된 유와는 가장 먼저 함경성의 시신들을 수습하고 부정한 것들의 잔재를 불태웠으며 새로운 수도를 정했다. 황제 유와는 천도한 이후 주 왕국을 비롯한 대륙 각국에 사절을 보내 천 제국의 건제함을 알렸다. 그리고 함경성을 금지(禁地)로 설정해 영구히 폐쇄할 것을 명령했다.

 

  금지가 된 함경성. 이제는 저주받은 땅으로 불리며 들짐승도 피해간다는 땅에 두 명의 인영이 서있었다.

 

  그 중 한 명, 노이아는 자신의 복구된 팔을 보고 있었다. 분명 잘렸는데, 흔적도 찾기 힘들만큼 으깨졌는데 그의 팔은 완벽하게 이전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팔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몸 전체가 기절하기 전보다 더 좋아졌다. 그릇이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노이아는 이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실현한 주인을 바라보았다.

 

  “왜?”

 

  주인의 퉁명스런 대답에 노이아는 그저 배시시 웃었다. 주인은 참 나 하고 중얼거리고는 함경성을 벗어났다.

 

  “가자.”

 

  “이번엔 어디로 갑니까?”

 

  “신 왕국. 거기에 한 놈이 있는 것 같다.”

 

  천 제국의 동남쪽, 서방과 동방의 해상 중계 무역으로 번성한 나라. 그리고 최근 급격하게 국운이 기운 나라,신 왕국.

 

  “그 배경이 악령이 있는지, 아님 그저 순리대로 일어나는 일인지는 가서 알아봐야지.”

 

  신아는 그렇게 말하며 말에 올랐다. 천 제국에서 지원해준 것이었다.

 

  “딱 국경까지만, 이라. 새 황제님도 참 쪼잔해.”

 

  유와가 구국(救國)과 구생(救生)의 답례로 내어준 것. 그것은 약간의 금전과 말, 그리고 식량과 호위였다. 국경까지의 호위. 사실상 위험인물이 아무 사고 없이 집을 나가는지에 대한 감시일 것이다.

 

  하지만 신아는 그딴 것을 상관하지 않았다. 애초에 상관할 성격도 아니었다. 노이아 역시 그저 주인의 의중에 충실했으니.

 

 ***

 

  “아이러니한 일이지 않나. 너의 격을 올려준 육신이 오히려 너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다니 말이야.”

 

  저 싱크홀의 위에서 신아는 말했다. 바토리는 그것을 듣고 생각했다.

 

  육신이 있기에 죽음이 오는 것이라면 육신을 버리면 되는 것이지 않나? 영혼이란 영원불멸한 것. 그렇기에 소멸이라는 모순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대가가 필요하며 환생이라는 절차가 있는 것이다. 그럼 육신은? 육신이란 필멸의 것.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육신은 얼마든지 다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영혼은 잃으면 다시는 얻지 못한다.

 

  그래서 바토리는 육신을 버렸다. 육신으로 얻은 격 또한 육신을 잃으면서 격을 잃었다. 하지만 불운이었을까. 바토리의 결정은 느렸고 운석은 이미 폭발하고 있었다. 바토리의 영혼은 그 폭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휘말린 것도 아니었다.

 

  지금 북방의 초원을 떠돌고 있는 바토리는 영혼 상태라고 보기 어려웠다. 악령의 두 가지 부분, 죄업과 영혼 중 영혼이 폭발로 대부분 소멸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바토리는 학살의 죄업에 결합한 그녀의 잔류사념이라고 보는 편이 옳았다.

 

  그리고 사념과 죄업 밖에 안 남은 바토리가 하는 것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아주 강력한 원념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

 

  만월의 달이 초원을 아무런 방해 없이 비추는 밤, 작은 호숫가에는 한 무리의 유목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더러웠고 또한 굶었으며 지쳐있었다.

 

  그들 가운데 바토리가 원한 강한 원념은 그 사이에 있는 한 소년의 것이었다. 그 소년은 노이아의 배다른 동생, 아르키였다. 그는 피 묻은 양의 뼈를 가지고 달을 보며 원한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르키의 주위에는 수천의 영혼들이 떠돌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억울한 죽음에 대해 토로하며 복수를 외쳤다.

 

  바토리는 자신이 제대로 찾은 것임을 직감했다.

 

  바토리는 양의 뼈와 결합했다. 피 묻은 양 뼈는 그 순간 하나의 무기가 되었다.

 

  “뭐, 뭐야!”

 

  아르키는 놀라 양의 뼈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양의 뼈에 묻어있던 피는 그의 손을 타고 흘러 그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탁한 빛이 흘러나왔다.

 

  “······복수.”

 

  그래, 복수! 복수하자! 우릴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복수하자! 복수하자!

 

  아르키는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의 일족이 죽어가던 때를 떠올렸다. 도술로 일족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다녔던 자. 그 증오스러운 이름, 신아. 주제도 모르고 반기를 든 하찮은 노예, 노이아.

 

  그 둘을 떠올리며 증오와 원한이 커져갈수록 양의 뼈는 천천히 변화했다. 뼈가 갈라지고 자라나며 날카로운 톱날을 가진 검으로 변해갔다. 새하얀 도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Fratricide Hétszer.’

 

  그건 헝가리어였다.

 

  “일곱 배의 보복. ······기다려라, 곧 죽여줄 테니.”

 

  눈을 뜬 아르키가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서 나온 것은 도저히 소년의 것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아르키의 두 눈은 이전과 같은 검은 색이 아니라 피처럼 붉은 색이었다. 양 뼈가 변형되어 만들어진 검을 든 손을 시작으로 아르키의 온몸에 기형적인 문양이 그려졌다.

 

  그것은 떠도는 자들의 상징. 추방의 형벌을 받고 세상의 저주를 한 몸에 받은 채, 모순된 가호를 가지고 영원히 떠도는 죄인의 상징.

 

  ‘아하스베루스(Ahasberus).’

 

  그것이 아르키의 몸에 그려지고 있었다.

 

  바토리는 아르키의 원념과 하나로 합쳐졌다.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 원념은 곧 그 인간의 정신이며 영혼으로 이어지니, 바토리와 원념의 결합은 아르키와 바토리의 합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다시금 격을 올리고 탄생한 악마.

 

  지구에서는 이 악마를 이렇게 불렀다.

 

  동생을 죽인 자, ‘카인(Cain)’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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