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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미안해..
작가 : 소영이
작품등록일 : 2019.9.10

제게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약간의 허구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울 엄마의 마지막 선물
작성일 : 19-09-29 16:59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3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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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계속 병원에 있게 되면서 언니랑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점차 엄마와도 같이 있게 되었다. 사실은 내가 초4 때도 왼손을 수술했을 때도 엄만 내 옆에 계셨다. 초2 팔 수술을 할 땐 계시지 않았지만, 손 수술할 때만큼은 아니었다. 엄마가 어떻게 알고 온 건진 나는 모른다.

 

 왼손 수술 역시 여름에 했다. 왼팔 수술을 했던 이유와 같은 이유로 희귀병인 ‘신경섬유종’ 때문에 종양이 생겨 수술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서도 내 옆에는 엄마가 계셨다. 그런 탓에 나는 눈물이 났고 수술이 무섭다는 점과 내 옆에 엄마가 있긴 해도 수술을 다하고 눈을 뜨면 내 옆엔 엄마가 안 계시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수술보다도 더 무서워 계속 울었다.

 손 수술을 마치고 난 뒤, 눈을 뜨니 역시 내 옆에는 엄마가 아니라 보육 교사셨다. 내가 수술하는 사이에 엄마가 다시 돌아갔다는 사실에 너무 슬펐다. 그렇다고 보육 교사 앞에서 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면 그때 나는 초등학생 4학년이나 되었으니까 말이다. 왠지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가 잠시 온 게, 그리고 내가 뼈가 부러져 입원해 있을 때 불렀던 이유가 돈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다.

 

 미애원에서 자란 나는 당연히 후원을 받아서 그쪽에서 다 해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가 그 수술비며, 입원비들을 다 내고 나중에 그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는 걸 보며 미애원 쪽에서 자기들이 냈다는 식으로밖에 안 보인다는 거다. 왜 영수증을 달라고 했는지, 그 영수증이 왜 필요했는지.. 이 사실을 나는 원에서 나오고 난 뒤, 알았다. 이보다도 더 놀랍고 의문이 드는 건 더 있다는 게 문제다.

 

 병원에 입원하면서 내가 계속 움직여서인지 뼈가 도통 붙질 않았다. 엄마가 내 옆에 있어 기분이 좋았던 걸까, 병원에 있는 게 왜 이리 좋았는지 모른다. 병원에서 같이 입원해 있는 언니 두 명과 또 다른 아주머님들, 그리고 나와 엄마까지 밤까지 놀다가 자기도 하고 맛있는 간식이나 바로 병원 앞에 있는 칼국수, 만두 등을 사서 나눠 먹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내가 입원해 있기론 한 날 1~2주일 지났다. 하지만 내 팔뼈는 붙지 않았고 병원 측과 미애원에서는 병원비가 더 드니 애가 움직이고 해서 뼈가 잘 안 붙는 것 같아, 퇴원해서 집에 가만히 내두라고 한 것 같다. 나는 엄마랑 계속 있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헤어지기도 싫어 병원에 계속 있고 싶었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퇴원하는 날, 당일 나는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엄마랑 헤어지면 앞으로 지옥 같은 불구덩이 속에 갇힌 채로 미애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한없이 우울해졌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괜찮다며, 엄마가 금방 데리러 온다고, 언니가 이제 엄마 사는 집 아니까 엄마 보고 싶으면 몰래 같이 오라고, 엄마가 맛있는 김치찌개 해 놓고 기다리고 있겠다며 나를 안아 주었다. 엄마에게 안겼던 나는, 그리고 화장실에 갔었던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때 엄마의 품은 따뜻하고 좋았다. 그 품을 영원히 떠나기 싫었고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마음이 아픈 건 나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처럼 엄마도 마음이 아프다는 걸 알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걸 알기에 더 슬펐다.

 

 이젠 나는 다시 미애원으로 가야 한다. 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싫어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 방법밖에는 내가 엄마를 보고 싶은 감정을, 엄마랑 헤어지고 나서의 그 감정을 참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퇴원하기 전, 제대로 팔뼈를 고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몰라 의사 선생님이 그리고 보육 교사가 해 주시는 데로 하라는 대로 했다. 풀지 않은 붕대 7개 정도를 원통 모양으로 만든 뒤 그 원통을 또 붕대로 감아 고정을 한 다음 내 왼팔 겨드랑이에 맞춰 뼈를 고정해 또다시 붕대를 감았다. 왜 붕대로 감았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붕대 말고도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게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내가 의사가 아닌 이상 뭐라고 판단할 수도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이상하게 자꾸 꺼림칙하고 이상한, 그리고 수상한 느낌이 든다.

 

 온종일 같은 자리에 앉아 밥 먹고 공부하고 밥 먹고 공부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방학 숙제도 다 한 뒤였고 내가 할 건 더는 없었다. 하지만 방학만 되면 공부를 2, 3배 더 해야 했고 더 늘어났던 미애원은 잠시의 틈도 주지 않은 채 계속 공부만 시켰다. 그런데도 지금은 공부를 못하는 게 문제다. 다른 인원들은 식당에 내려가 공부를 했기 때문에 방에서 공부했던 나는 방 안에 나 혼자뿐, 나를 지키고 있는 보육 교사 한 명 없었다. 그냥 틈틈이 왔다 갔다 하면서 드나드는 것 말고는 대체로 나 혼자 방 안에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게 어쩌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우리에게 준 책이 있었다. 채인선의 ‘내 짝꿍 최영대’와 신충행의 ‘울 엄마의 마지막 선물’ 이라는 책이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 ‘내 짝꿍 최영대’ 하는 책은 다 읽었지만 서도 ‘울 엄마의 마지막 선물’은 아직 읽지 않은 상태였다. 온종일 편하게 놀지도 못하니 심심한 건 당연한 일인지라, 그걸 본 언니가 ‘울 엄마의 마지막 선물’이라는 책을 주면서 이거라도 읽으라며 책을 건네줬다. 평소 책 읽는 걸 좋아하고, 할 것도 없었던 내게는 마침 잘 된 일이자, 언니한테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래야 공부 시간에 공부 안 하고 책이라도 읽을 수 있었으니까.. 그거라도 해야 보육 교사께 혼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책 내용은 무척 슬펐다.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엄마와 헤어지고 나서 그 책을 읽으니 더 슬펐고,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도 책은 계속 읽었고, 마음속으로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며 말하기도 했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그리고 숨죽이며 울고 있으니, 더 슬펐다. 뼈가 부러져 식당이 아니라 방 안에서 공부했던 나는 보육 교사가 올라오는 소리에 울던 걸 멈추고 눈물을, 그리고 콧물을 닦으며 울지 않은 것처럼 훌쩍였다. 속으론 울면 안 돼 하면서도 계속 눈물이 나는 건 왜인지 알 수 없다.

 

 엄마가 쓰던 고물 핸드폰을 받은 가람이는 핸드폰이 생겨 좋아한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가람이 엄마는 매일 가람이와 일과를 함께하는 것도 모자라 핸드폰으로 감시까지 했다. 사흘정도 넘도록 전화를 걸어주는 친구는 커녕 문자를 보내는 친구도 없어 제일 먼저 전화를 걸어주는 친구를 절친한 친구로 삼으려고 했던 가람이는 제일 먼저 온 전화가 친구가 아니라 엄마 전화라는 사실에 실망하지만 이내 전화를 받고 가슴 철렁한 소식을 듣게 된다.

 엄마가 아프다는 소리를 들은 가람이는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간다. 가람이의 엄마가 ‘임파종암’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은 가람이는 어리광을 부려도 되는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투정 한번 없이 아빠와 엄마가 그 병을 잘 이겨낼 수 있게 엄마 옆을 지킨다. 나중에 바이러스가 골수로 들어가는 바람에 백혈병으로 바뀌어 결국은 죽게 되는데, 가람이는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가 준 고물 핸드폰에 엄마 사진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에는 엄마의 사진과 목소리가 남겨져 있다. 사랑한다고 말이다. 그걸 들은 가람이도 말한다. 나도 엄마 사랑해, 라고..

 

 아직도 그때 읽은 책 내용이 기억이 난다. 그 기억만큼 너무 슬퍼서 울었던 기억에 다시 한번 더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1살 때의 나와 20살 때의 나는 다를 테니까, 책을 읽고 난 뒤의 감성도 느낌도 다를 테니까 말이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오늘도 내일도 항상 후회없는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비록 하루가, 그리고 인생이 힘들지라도 항상 응원하고 기도할게요. 오늘도 항상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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