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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타버린 재와 무덤지기
작가 : 오렌지핥고싶다
작품등록일 : 2019.9.8

세계를 이루는 다섯가지 색은 변질했고, 대륙의 중심을 다스리는 여왕은 숨을 거두었다. 백성들은 변질한 통치자를 그저 두려워 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을 연명한다. 대륙의 나머지를 다스리는 4명의 여왕은 타락해 고귀하던 영혼을 더럽혔다. 신은 이 모든 참사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렇기에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몸에서 흐르는 검붉은 혈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는 다짐했다. 망가질대로 망가져버린 이 세계를 반드시 되돌려 놓겠다고.

 
망할 풀때기들!
작성일 : 19-09-29 00:01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4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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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님, 조심하십쇼!”

 

 론의 거대한 대검이 아리아의 왼쪽 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간다. 묵직한 검이 큰 턱을 쩍 벌려 아리아를 덮치려 한 폭식충의 몸을 꿰뚫었고, 곧바로 검을 뽑아낸 론이 세 번째 폭식충을 베었다. 아리아는 이 정신없는 기세에 능숙하게 올라타며 계속해서 달려드는 폭식충의 몸을 산산조각내었다.

 

 중간중간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아하니 공격 타이밍에 맞추어 불꽃을 적에게 흘려 넣는 모양이었다. 참 전투 센스 하나는 죽여주는 사람이다.

 

 “이 역겨운 벌레 새끼들.. 체액이 왜 초록색인거야?! 끈적하고 더러워!!”

 

 아리아는 자신이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저런 사소하고 멍청한 사실이 조금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론은 가볍게 혀를 차며 자신의 다리로 달려드는 폭식충을 발로 으깨었다. 단단한 폭식충의 외골격이 부서지며 끔찍한 감촉이 발 끝에서 전해져 온다.

 

 “윽.. 역겹긴 하네요.”

 

 동의하지 않을래야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들보다 폭식충들의 전투력이 약했기 때문에 몇십 번의 공방 후, 수십 마리를 웃도는 숫자는 금세 정리되어 모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물씬 피어오르는 찝찝한 느낌은 감출 수 없었다. 녀석들의 습성을 따져봤을 때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였다. 풍요의 왕국에 거주하는 여왕과 백성에게는 한없이 온순한 녀석들이다.

 

 이 녀석들은 땅의 여왕이 직접 만든 땅굴까지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라, 한번 전투가 일어나면 수백 마리가 몰려와 목표물을 끝까지 사냥한다는 이야기는 이 대륙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사실이다.

 

 “야, 얌마! 뭔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순간 자신만의 생각에 너무 사로잡혔는지, 가만히 서서 미동도 하지 않는 론의 어깨를 아리아가 툭툭 쳤다. 그에 론은 잠에서 막 깬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아리아를 마주 보았다.

 

 “네? 네.. 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것 같아서요. 좀 찝찝하네요.”

 

 “일이 쉽게 풀리면 좋은 거 아냐? 가만보면, 넌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좋게좋게 생각하자고. 이 앞이 바로 목적지잖아.”

 

 정말 아무 근심도 걱정도 없어 보인다. 론은 가까스로 그 말이 입으로 튀어나오려 하는 것을 간신히 막으며, 일단 알겠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아의 말도 맞다. 목적지를 바로 앞에 두고 걱정만 앞세운다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일단 한번 질러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정보가 없는 이 시점에선.

 

 “그럼 뭘 망설여? 가자. 내 기억 상으로는 이쪽으로 조금만 쭉 가면 왕국의 입구가 나와.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듯, 눈살을 약간 찌푸린 아리아의 말이 느릿한 분위기를 띠었다. 이윽고 손가락으로 거대한 나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 곳을 가리킨 아리아. 론은 등잔의 불을 다시 크게 키운 뒤, 활기찬 발걸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그녀를 따라 발을 옮겼다.

 

 그 뒤에는 별다른 일 없이 왕국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며 ‘조금만’을 강조하더니 진짜로 시간은 조금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런 부분에서만 정확한 아리아의 길 안내 실력에 조금이나마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이거라도 잘 하는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가볍게 고쳐먹었다. 어쨌든 간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이 둘이 도착한 곳은 마치 커다란 광장 같은 장소가 펼쳐진 곳이었다. 땅바닥은 깔끔한 대리석으로 포장해 두었다. 둥그런 포장 바닥의 중심에는 풍요의 왕국을 상징하는 녹빛 문양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으며, 그토록 찾던 왕국의 입구가 높게 세워진 벽 중앙에 박혀 있었다.

 

 “여긴 진짜 오랜만에 와보네. 되게 그리운 느낌이야. 먹어본 적도 없는 엄마 요리를 오랜만에 먹어본 느낌?”

 

 아리아는 웅장한 느낌을 주는 왕국의 입구에 온 것이 꽤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옆에서 의미심장하게 입구를 살펴보고 있는 론은 그렇지 못한 듯했다. 곧바로 피어오른 의문점을 입에 담았으니.

 

 “저도 여긴 오랜만에 와 봅니다. 근데, 입구가 조금 이상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제가 아는 왕국의 입구는 이렇게 화려하지 않았는데.. 이루실라 님의 성격도 성격이라서요. 이분은 조금 더 자연적인 심플함을 추구하셨다구요.”

 

 론은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현재의 입구와 과거의 입구 디자인을 대충 대조해 보았다. 다른 왕국과는 다르게 풍요의 왕국은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딱 하나뿐인데, 하나뿐인 입구임에도 조촐하게 아무런 장식도 해 놓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하지만 현재 론이 보고 있는 커다랗고 널찍한 입구는 보석을 머금고 있는 형형색색의 꽃과 아름다운 꽃을 피운 나무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누가 디자인을 고안했는지, 완벽히 딱딱 맞아떨어지는 조형들이 감탄사를 자아낼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취향이 바뀌기라도 했나 보지. 사람 성격이 항상 같나?”

 

 “아뇨, 그게 아니라..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에요. 애초에 이런 세상에서 이렇게 치장에 화려하게 신경을 쓸 여유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저 꽃과 나무들은 왕실의 실내 정원에서만 자라는 민감한 식물들이에요. 이런 곳에 방치해 둔다면 하루도 못 가서 시들어 버릴걸요?”

 

 론의 불안 섞인 설명이 주구절절 이어진다. 그렇지만 고개를 갸웃이며 작은 보석이 박힌 꽃 한 송이를 뽑아든 아리아는 불길의 불자 조차도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태평한 얼굴로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그럼 세상이 바뀌면서 진화라도 했나 보지. 환경이 항상 같나?”

 

 “항상 그대로인 사람은 누님밖에 없을 겁니다. 도대체가, 사람이 왜 의심이란 게 없어요?! 그러다 뭔가 튀어나와서 모가지라도 돌아가면..”

 

 말이 씨가 된다고 누가 그랬던가? 태평함을 넘어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리아의 뒤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론은 그 즉시 말을 멈추며 아리아의 멱살을 붙잡아 뒤로 당겼고, 굵은 비명을 지른 아리아가 앞으로 벌러덩 넘어졌다.

 

 “야이, 개자식아! 함 뜰까?! 말로 하던가!”

 

 급격히 아드레날린이 분비됐는지, 오만상을 찌푸린 아리아가 신경질적으로 론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지금 소소한 말다툼을 할 때가 아니다.

 

 “말로 하면 안 듣잖아요!! 아니, 뒤를 봐요!”

 

 아니나 다를까, 아까 아리아가 서 있던 자리를 굵고 커다란 줄기 하나가 맹렬한 기세로 내리찍고 사라지는 모습이 재빠르게 지나갔다. 아리아는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론이 멱살을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아리아는 그대로 찌부러져 터져버렸을 것이다. 설령 터지지 않았다고 해도, 큰 부상을 면치 못했으리라.

 

 “어으.. 내가 미안. 이젠 꼰대라고 안 놀릴게..”

 

 “고작 이틀 만에 생각하시는 제 이미지가 그겁니까? 아무튼.. 진짜로 위험했어요. 저런 건 평생 듣도 보도 못했어요. 이 숲에 폭식초 말고 살고 있는 식인식물은 없을 텐데.. 아무래도 들어가려면 저걸 불태워야 할 것 같습니다.”

 

 “숲에서 불장난이라니. 엄청 맘에 드는데?”

 

 씨익 웃는 아리아의 얼굴에서 조금 불안감을 느꼈지만, 다행히도 화끈한 화재현장은 만들지 않을 모양이었다. 아리아는 삽을 치켜들어 엷은 불을 둘렀다. 불씨들을 그러모았기 때문에 불이라고 하기도 뭐한 크기였다.

 

 “들어갔는데 왕국도 이 모양 이 꼴이면 진짜 슬플 것 같은데. 다시는 풀 못 먹을 것 같아.”

 

 방금 자신을 공격하려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기라도 했는지, 거칠게 날아간 아리아의 삽이 입구의 장식 부분을 가로로 갈랐다. 그러자 커다란 굉음이 공기를 흔들며 장식들이 요동쳤다. 그와 동시에 체액으로 보이는 액체들이 그을린 상처를 비집고 쏟아져 나왔다.

 

 “그에에..엑..”

 

 그렇게 이름 모를 괴물은 김빠진 단말마를 끝으로 허무하게 생명을 다하고 말았다. 이내 입구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식물들이 시들어 버렸고, 드디어 왕국의 진짜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든 식물들 사이로는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뼈들이 무수히 많이 흩뿌려져 있었다.

 

 아마 모두 소화가 되지 않았던가, 사망한 상태에서 그대로 방치되어 생겨나 버린 뼈들이겠지. 이 가짜 입구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누님. 뭐 하십니까? 어서 들어가야죠. 여기 계속 있다간 또 뭐가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잠시만.”

 

 순식간에 드러난 뼈들을 바라보는 아리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선홍빛 입술을 꾹 깨물고, 이내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살며시 감는다. 꾹 마주 잡은 두 손은 살며시 떨려와 아리아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내비치고 있었다.

 

 입을 열어 무언가를 작게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아 그녀가 묵념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무덤 지기들은 늘 이랬다. 망자들의 앞에서 그들의 넋을 기린다. 정식으로 임명을 받던, 받지 않았던.

 

 그들의 묵념은 숭고하다. 이곳은 형태만 다르지, 거대한 무덤과도 같았다. 안식도, 망자에 대한 존중도 없는 무덤.

 

 우두커니 선 채로 미동도 하지 않는 아리아의 묵념은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힘없이 축 처진 뒷모습은 너무나 처량해, 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 됐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또 지나고, 묵념을 모두 끝낸 아리아가 몸을 돌려 론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아리아의 얼굴은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허무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서였을까, 아니면 그들이 편안히 쉴 무덤조차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쓰러워서였을까. 론은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이 사람들은 좋은 곳으로 갔을 겁니다.”

 

 무언가 위로를 하고 싶어 건넨 론의 말이 너무나 뻔해서였을까, 아리아는 작은 웃음을 흘렸다.

 

 “난 그런 말 안 믿어. 그렇다기엔 좋은 곳이 너무 많거든. 망자한테 가장 좋은 곳은 무덤 속이니까.”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아리아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론의 어깨를 톡톡 치며, 드디어 뚫린 입구 안으로 발을 옮길 뿐이었다.

 

 그런 아리아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작가의 말
 

 세계관 TMI: 풍요의 왕국을 다스리는 여왕은 소심하기가 대륙의 제일이라고 소문이 나 있다. 수줍음은 말 할 필요도 없고, 일이 아니라면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부끄럼도 많기 때문에 그녀의 옷은 늘 맨살이 아예 드러나지 않는 디자인으로 제작되었다. 개방적인 불의 여왕과는 굉장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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