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행복의 정의(3)
“이모 똥집 하나에 소주 1병이요.”
“어유 오랜만이야~요즘 통 안 보여서 서운할 뻔했네.”
“바빴죠~이것 저것 하느라 근데 지금은 다시 할 일이 없어져서.”
“괜찮어! 아직 젊은 게 축축 쳐져가지고 말이야. 이모가 똥집 맛있게 해줄게.”
알바를 끝나자마자 내가 자주 오던 포장마차 술집에 왔다. 가끔 우울할 때면 이곳에서 혼술을 하고는 한다. 집에 들어가면 우울하기만 하고 오늘은 술로 이 마음을 꼭 달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나는 소주를 술잔에 부어 홀짝 홀짝 마셨다.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너 나 사랑하긴 하니?”
“미안. 폰 바꾸자마자 너한테 먼저 연락한 거야.”
“야..! 서인환 너..! 진짜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너 원래도 연락 잘 안했잖아. 매일 매일 나만 안달 나서 문자하고 전화하고...근데 어떻게 3일이나 잠수를 타? 그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그 3일 동안 너는 혼자 집에 틀어박혀서 그 잘난 곡 만들기나 했겠지.”
“.......”
“우리 그냥 헤어질래...?”
뭐야...내 앞 테이블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왜 저런 이야기를 포장마차에서 하고 있는 거야. 남의 연애사는 궁금하지도 않고 끼어들고 싶지도 않지만 너무 귀에 박히는 여자의 목소리가 안 듣고 싶어도 듣게 만들었다. ‘헤어질래?’라는 여자의 말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절대로. 여기서 남자의 대답이 아주 관건이다. 저 말에 ‘그래’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래.”
라고 대답해버렸다. 저 남자 정말 눈치가 없는 건가...?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너 진짜...”
“나는 정말 우리가 왜 사귀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수진아. 널 좋아한 적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어.”
“.......”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행복해도 될까 내가? 나는 늘 그런 생각뿐이야. 게다가 난 아직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도, 그 사랑도 잘 모르겠다. 너한테 더 상처 줄 바엔 그냥 헤어지는 게 좋겠어.”
“왜...? 어머니 때문에?”
“...미안. 이렇게 만났는데도 너한테 감정이 없는 걸 보면 우린 아닌 거야.”
“나쁜새끼.”
결국 욕이 나와 버렸군. 어휴 쯧쯧. 남자가 정말 쓰레기네. 3일 동안 잠수를 타? 그래 여자 말대로 그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여자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나는 흠칫 놀라 여자를 쳐다보았고,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깜짝 놀라 아무 것도 못 보고 못 들은 척 똥집을 뒤적거렸다. 여자는 내 옆을 지나 그대로 포장마차를 나갔다.
나는 홀로 남은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남자는 소주를 글라스에 부어 벌컥 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으...엄청 쓸 것 같은데 저걸 한 번에 먹다니 저렇게 말해도 남자도 역시 힘들겠지. 역시 이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법이다.
남자는 또 한 번 소주를 가득 담은 글라스를 한 번에 입 속으로 들이 붓고, 또 다시 몇 번이고 안주도 먹지 않고 빈속에 소주를 들이 부었다. 바로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남자는 마지막 한 잔을 들이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뒤돌아 나가려는 순간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어...?”
아니, 또 당신이야?
남자는 나를 보더니 또 삐딱한 자세로 서서 풀린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또 너야?”
“아...안녕하세요...여기 근처 사시나 봐요?”
남자는 자기가 먹던 잔을 들고 와서 바로 내 앞에 앉았다. 소주를 따르더니 또 다시 벌컥 벌컥 들이켰다.
“다 봤겠네.”
“아...뭐...보려고 한 건 아닌데, 본의 아니게...”
“누구 때문에 핸드폰이 박살나서 연락을 못 했거든. 여자친구한테”
“아...네...죄송합...”
이 사람과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둘이서 술이 웬 말이냐. 이 상황이 굉장히 껄끄럽다. 취한 사람을 붙들고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고, 혼자 그냥 조금 마시다가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그리고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 지도 의문이다. 사과는 할 만큼 했고 새 휴대폰으로 교체를 해주겠다고 했는데도 마다한 건 이 남자다.
“저기요. 그냥 그 쪽이 연락하기 싫었던 걸 제 탓 하지마세요.”
“뭐?”
“지금 내 핑계 대는 거잖아. 폰이 고장이 났어도 다른 사람 폰을 빌려서라도 연락할 수단은 많은데 왜 그걸 내 탓하는 거지? 그래놓고 뭐, 헤어지자고? 좋아한 적이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왜 자꾸 반말이지?”
내 말에 남자가 피식-하고 웃었다. 아니 이 사람 사이코야?
“너도 반말했네.”
“몇...살인..데요?!”
“스물 다섯.”
“하. 뭐야 동갑이네.”
“잘 됐네. 이름은?”
“이...바람”
“나는 서인환”
아니 뭐야. 무슨 대화 내용이 이렇게 개연성 없이 흘러가니. 나 분명 화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통성명을 하다니. 이 사람 제대로 취한 게 분명해.
“그래 맞아. 나 변명하는 거야. 핑계거리가 있어서 존나 쓰레기처럼 너 안 좋아했다고 하면서 핑계 대는 거 맞아. 처음부터 사귈 거라 생각 못했고, 사귀다 보면 좋아질 거라는 말에 알겠다고 했어. 근데 그게 1년이 지났고, 내 마음은 변함이 없고 상처는 주기 싫고 그래서 억지로 관계를 붙들고 있었던 거지. 나 나쁜놈 맞지 뭐.”
“뭐야..,너 나쁜놈인 거 순순히 인정하네.”
“넌 왜 울었어?”
“어?”
“그때 버스에서 울었잖아 너.”
아...창피하다. 폰 때문에 내가 그때 추하게 울었다는 사실조차 까먹었구나.
“너 무슨 글 써?”
“너 왜 훔쳐봐?”
“아니 훔쳐보려고 한 건 아닌데, 보여서...”
“몰래 훔쳐보고 듣고 하는 데 선수구나.”
“아니..!!”
“이래봬도 나 음악해. 새로운 곡 가사 쓰는 중이었어.”
“그 곡 제목이 행복...뭐 그런 거야?”
“참 꼼꼼히도 훔쳐봤다.”
“아니 뭐...”
“그건 예전에 쓴 가사. 이미 나온 곡.”
“뭐? 너 가수야?”
“뭐 들었냐? 곡 만든다니까.”
헐. 나 지금 연예인이랑 술 마시는 거?
“뭔 생각하는 거야. 아이돌이나 뭐 유명한 가수만 가수하냐? 그냥 소소한 음악 취미로 하는 거야.”
“아 그래? 집 갈 때 그때 그 노래 들어보고 싶어. 제목이 뭐야?”
“...행복의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