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일반/역사
설(雪)울
작가 : 몽글
작품등록일 : 2019.9.23

2019년 서울, 계절과 맞지 않는 흰 눈이 내린다. 그 눈을 맞은 설이 고려로 타임슬립하여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를 만나 벌어지는 일들이다.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의 유래를 설명한다)

 
설(雪)울 中
작성일 : 19-09-27 18:26     조회 : 240     추천 : 0     분량 : 1364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설(雪)울’

 작가 신우유

 

 이 글은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역사를 바탕으로 쓴 픽션입니다. 총 38년에 걸쳐 일어난 일들이지만, 이 소설 속에선 10년에 걸쳐 일어난 일이라고 가정하였습니다.

 

 

 

 

 

 

 

 十一.

 

 

 

 

 

 우연히 저잣거리에서 만나 단에게 끌려 시장 구석에 자리한 다점에 온 설이었다.

 

 

 

 

 “꽃차 두 잔 부탁하오.”

 

 “예.”

 

 

 

 

 자리를 잡아 앉자마자 익숙하게 차를 주문하는 단이었고 고려의 찻집이 신기해 두리번거리며 다점의 모습과 차가 담겨 나온 청자를 살피는 설이었다. 모든 것을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하는 설을 쳐다보며 웃는 단이었다.

 

 

 

 

 ‘고려시대에도 카페가 있구나. 아니, 다방인가? 그럼 저게 고려청자?’

 

 “미래엔 다점이 없습니까?”

 

 

 

 

 

 

 “아니요. 카페랑 찻집은 있는데, 고려의 찻집은 처음 와봐서요.”

 

 “그렇군요. 이 다점 꽃차가 향이 좋습니다.”

 

 

 

 

 찻잔에 꽃차를 따라 설의 가까이 두며 말하는 단이었고 찻잔에 예쁘게 떠있는 꽃잎을 보며 웃다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든 설이 단에게 물었다. 그러자 태연하게 꽃차의 향을 맡은 단이 찻잔을 내려놓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미래에서 온 걸 어떻게.”

 

 “왠지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때 삼각산에서 갑자기 사라져 다섯 해가 지난 지금 이렇게 나타나신 것을 보니.”

 

 

 

 

 설의 기억에만 없을 뿐 고려에서 지냈던 설이었고 설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궁녀들조차 설이 시간을 건너뛰어 나타난 걸 모르는데, 그것을 유일하게 알아보는 단이었다.

 

 

 

 

 “벌써 5년이나 지났어요?”

 

 “예. 그렇게 사라지시고 궁에 가봤는데, 안 계셨습니다.”

 

 “궁녀들은 제가 사라진 걸 모르던데요.”

 

 “저도 그게 이상했습니다. 마마께서 사라지셨는데, 사람들은 자꾸 있다고 해서.”

 

 

 

 

 삼각산에서 눈과 빛과 함께 설이 사라지고 걱정이 된 단은 입궁하여 만령전에 갔었다. 하지만 만령전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설이었고 궁녀에게 설의 행방을 묻자 저기에 계시다며 엉뚱한 허공을 가리켜 이상하게 생각한 단이었다.

 

 

 

 

 “걱정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다시 나타나셨으니 됐습니다.”

 

 

 

 

 5년 만에 나타난 설에게 다행이라고 말하며 웃는 단인데, 어딘가 모르게 씁쓸해 보였다. 미소를 머금고 차를 마시는 단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설이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괜찮아요?”

 

 “이제 괜찮습니다. 것보다 저 금오위상장군과 동북면상만호를 역임하게 됐습니다.”

 

 “아. 들었어요. 그 금오위상장군이랑 동북면.. 무튼 그거. 축하해요.”

 

 “뭔지는 알고 축하해주시는 겁니까?”

 

 

 

 

 길고 낯선 단어에 말을 더듬으며 얼렁뚱땅 넘어가더니 웃으며 박수를 치는 설이었고 그런 설을 보며 크게 웃는 단이었다.

 

 

 

 

 “그거 뭐하는 건데요?”

 

 “궁중과 도성, 동북면을 담당하는 장군입니다.”

 

 “그럼 엄청 대단한 거 아니에요? 고생 많았겠다.”

 

 “예?”

 

 

 

 

 궁중과 도성, 동북면을 담당하는 장군이라고 나름대로 쉽게 설명해주는 단이었지만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설이었다. 어찌 됐든 엄청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 설이 꽃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고 처음 들어보는 말에 고개를 들어 되묻는 단이었다. 그러자 설이 눈썹을 올리며 태연히 단의 물음에 답했다.

 

 

 

 

 “고생 많았겠다고요.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데,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고생 많았겠지만, 아직 갈 일이 남았어요. 조선을 세울 테니까.’

 

 “.....”

 

 “그치만 인생은 기니까 더 힘내야죠. 분명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그쵸?”

 

 “저 정말 잘 할 수 있겠죠.”

 

 

 

 

 찻잔을 내려놓고 단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하는 설이었고 그런 설을 넋이 나가 빤히 쳐다보는 단이었다. 그리고 주먹을 쥐며 힘 있게 말한 설의 말에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눈빛으로 설에게 되물은 단이었고 그에 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자 그녀를 따라 활짝 웃는 단이었다.

 

 향이 좋다며 찻잔을 두 손에 들고 따뜻한 차를 마시는 단과 설이었고 곧 장난스러운 얼굴로 입을 연 단이었다.

 

 

 

 

 “근데 누이는 나이를 안 먹는 것 같습니다. 다섯 해가 지나 전 금년 스물일곱인데.”

 

 “난 아직 스물다섯인데.”

 

 “그럼 이제 제가 오라비가 되는 것입니까?”

 

 “에이. 그건 아니죠.”

 

 “뭐가 아닙니까? 제가 두 살 더 많으니 오라비지요.”

 

 

 

 

 고려시대에도 남자들은 오라버니 소리를 좋아하는 것인지 설보다 나이가 많아져 마냥 기분이 좋은 단이 크게 웃었고 찻잔을 서둘러 내려놓고 두 손을 젓는 설이었다.

 

 

 

 

 “아니죠. 다섯 해가 지났지만, 전 시간을 건너뛰어서 나이를 먹지 않은 건데.”

 

 “그러니 스물다섯 아니십니까.”

 

 “맞아요.”

 

 “전 스물일곱이고. 그럼 제가 오라비지요.”

 

 “그건 아니라니까. 억울하면 미래에 갔다 오시든가.”

 

 

 

 

 이성계보다 나이가 어려진 것은 만족하지만 절대 오라비 소리를 하고 싶지 않은 설이 손바닥으로 식탁을 치며 막무가내로 말했고 그런 설을 보며 웃는 단이었다.

 

 

 

 

 “알았습니다. 설누이.”

 

 

 

 

 단은 딱히 설에게 오라비 소리를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저 장난을 치고 싶었고 장난을 쳤을 때, 설의 표정이 궁금해 괜히 그녀를 놀린 단이었다.

 

 그리고 설의 반응에 자꾸만 웃음이 나오는 단은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우울했던 그의 일상이 왜인지 모르게 돌아온 설로 인해 다시금 밝아지는 것을, 편안해짐을 느낀 단이었다.

 

 

 

 

 

 

 十二.

 

 

 

 

 설이 천인이라는 이유로 설을 신뢰하여 관료들과의 정사를 치루거나 귀인과의 만남이 있을 때마다 설과 동행하는 왕이었고 오늘도 역시 왕의 부름에 회경전에 온 설이었다. 설에겐 기억 없는 5년 동안 이미 익숙한 일인 듯이 왕의 한 발 뒤에 서 있는 설을 보고도 이야기를 나누는 관료들이었다.

 

 궁 밖과 궁 안까지 개경지기쇠퇴설과 남경천도설로 온 고려가 떠들썩하다는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개경지기쇠퇴설과 남경천도설과 더불어 ‘남경(한양)은 장차 이(李)씨가 도읍할 땅이다.’라는 도참설(; 미래의 일을 예언)이 정권에 난무하여 모두가 혼란스러운 조정이었다.

 

 개경지기쇠퇴설 (開城地氣衰退說; 고려의 수도인 개경이 쇠퇴하고 있다)

 남경천도설 (南京遷都說; 남경으로 수도를 천도해야한다)

 

 

 

 

 “도참설이 있으니 이씨 왕기를 확실히 눌러 놓아야합니다.”

 

 “이씨의 상징인 오얏나무(李)를 직접 베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고려 조정은 이씨 왕기를 누르기 위해 이씨의 상징인 오얏나무(李)를 심어놓고 무성해지면 이씨 사람을 시켜 직접 베어버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고 그에 이자춘 장군부터 그의 아들인 이성계 장군까지 이(李)씨 집안을 무척 신뢰하고 아끼던 왕은 섣불리 그러라고 명을 내릴 수 없었다.

 

 관료들과의 정사가 끝난 후,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 한 채로 임천각(;왕의 서재)에 온 왕이었고 그를 따라 온 설이었다. 개경지기쇠퇴설과 남경천도설 심지어 도참설까지 난무하는 가운데, 심란한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왕이었다.

 

 

 

 

 “폐하.”

 

 “응.”

 

 “괜찮으세요?”

 

 “응.”

 

 

 

 

 말로는 괜찮다고 대답하지만 그의 시선은 초점 없이 허공에 머물고 있었고 많이 혼란스러워보였다. 그의 입장에선 확실하지 않은 예언들로 온 고려가 들썩였고 그것을 잠잠하게 만들려면 그가 가장 신뢰하는 이(李)씨 집안을 눌러야하니까 마음이 복잡할 만 했다.

 

 맞은편에 앉은 왕의 눈치를 보며 서책이 즐비한 고려왕의 서재 임천각을 구경하는 설이었고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났는지 왕의 초점이 설에게 맞춰졌다. 그리고 입을 여는 왕이었다.

 

 

 

 

 “설비.”

 

 “네. 폐하.”

 

 “개경이 쇠퇴하고 있다는 말에 동의해 남경천도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네 생각은 어떠하냐.”

 

 “개경이 쇠퇴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남경으로 천도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고. 하지만”

 

 “하지만?”

 

 

 

 

 공민왕의 시기는 고려말기이니 고려의 수도로써 개경이 쇠퇴되고 있는 건 사실이었고 수도를 개경에서 남경(한양)으로 옮기는 것도 좋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역사상 수도를 남경으로 옮기는 건 조선부터라 내가 섣불리 천도를 말할 수가 없었다.

 

 

 

 

 “폐하의 결정이 중요하겠죠. 그런 도참설에 흔들리지 마시고.”

 

 “네가 천인이니 묻는 것이다.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설의 대답에 더 심란해진 왕이 한숨을 쉬며 말했고 그런 왕을 보며 함께 기분이 좋지 않은 설이었다. 하지만 행여나 말 한마디에 역사가 바뀌어 버릴까봐 왕을 도울 수 없었다.

 

 이 정도는 말해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최대한 말을 아끼려고 마음먹은 설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고 설의 허무맹랑한 대답에 보던 서책을 세게 닫으며 투덜대는 왕이었다.

 

 

 

 

 “그럼 도참설은. 남경이 장차 이씨가 도읍할 땅이라는 도참설은 맞느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너는 뭐 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느냐.”

 

 “그거야 뭐. 그런 것 같으니까요.”

 

 “너 천인이 맞긴 맞느냐?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설의 대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왕이 투덜거리며 설을 나무랐고 그에 어색하게 웃는 설이었다.

 

 

 

 

 

 

 十三.

 

 

 

 

 

 그리고 얼마 후, 만령전 마루에 무료하게 앉아있던 설이었고 무슨 일이 있는지 급하게 달려오는 설의 궁녀 덕이었다.

 

 

 

 

 “왜 그렇게 뛰어와요?”

 

 “마마. 지금 궁 안이 난립니다.”

 

 “왜요?”

 

 “폐하께서 이성계장군을 불러들여 그 뭐더라. 무슨 나무를 베라고 명하셨다고”

 

 “오얏나무?”

 

 “예. 오얏나무를 베라고 명하셨답니다. 그래서 지금 회경전 오얏나무 앞에 사람들이 엄청, 마마. 어디 가십니까?”

 

 

 

 

 고심 끝에 왕은 이씨 집안의 이성계를 불러들여 오얏나무를 직접 베도록 명을 내렸고 그 때문에 회경전 앞에 모인 조정 관료들이었다. 덕이의 말에 벌떡 일어나 치맛자락을 붙잡고 회경전으로 뛰어가는 설이었고 이미 일을 끝났는지 쑥떡이며 흩어지는 관료들이었다.

 

 

 

 

 

 

 

 

 

 그리고 베어진 가지들이 오얏나무 아래 떨어져있었고 그 앞에 힘없이 도끼를 내려놓은 단이 있었다.

 

 

 

 

 

 “.....”

 

 “.....”

 

 

 

 

 이씨를 상징하는 오얏나무를 직접 베어버렸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단은 초점 없는 눈으로 터덜터덜 힘없이 걸었고 끝내 그의 볼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불안하게 걷는 단을 지켜보던 설이 그의 팔을 잡았고 가장 근처에 위치한 임천각으로 들어왔다. 임천각은 폐하께서만 이용하는 서재이니 이 시간엔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해 들어온 것이었다.

 

 많이 놀란 듯한 단을 창가에 앉히고 그 옆에 앉아 그를 가만히 바라보는 설이었다.

 

 

 

 

 “괜찮아요?”

 

 “예. 괜찮습니다.”

 

 

 

 

 몇 년 사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李)씨 가문의 장군이 된 단이었지만, 스물일곱 아직은 어린 나이였다. 조정 관료들 사이에서 천한 신분 출신으로 무시를 당하고 심지어 이씨를 상징하는 오얏나무까지 직접 베어버렸으니 그 충격이 컸을 것이었다.

 

 설의 물음에 괜찮다고 대답하는 단이었지만 여전히 그의 눈은 눈물이 맺혀있었고 눈을 감을 때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전혀 괜찮지 않아 보여 설이 푹 숙인 단의 얼굴을 조심히 살폈고 단이 울먹이며 대답했다.

 

 

 

 

 “사실 괜찮지 않습니다. 오얏나무를 제 손으로 베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씨를 지킬 수가”

 

 “장군이 이씨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켜요.”

 

 “.....”

 

 “다 미신이에요. 장군이 이씨를 일으켜 세울 거라고요. 날 믿어요.”

 

 

 

 

 그깟 미신 하나 때문에 조선을 건국할 왕이 연약해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던 설이 말했고 설의 단호한 말에 고개를 푹 숙인채로 말이 멎은 단이었다. 설은 단에게 미래를 알려줄 순 없지만, 믿음을 주고 싶었다.

 

 

 

 

 “가장 얻기 힘든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말이 있어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긴 힘들죠. 모두가 좋아할 순 없으니까.”

 

 “.....”

 

 “여럿이 거짓으로 대하는 것보다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더라고요.”

 

 

 

 

 설의 이야기를 듣던 단이 서서히 고개를 들어 설을 마주했다. 눈이 마주친 설과 단이었고 곧 우울하던 단의 얼굴이 점차 밝아졌다.

 

 

 

 

 “그리고 하나만 알려줄게요.”

 

 “그게 무엇입니까?”

 

 “자신을 믿어요. 분명 옳은 선택일 테니까.”

 

 

 

 

 그리고 언제 울었냐는 듯이 설을 보며 차분히 미소 짓는 단이었고 그런 단을 보며 함께 웃는 설이었다.

 

 

 

 

 “설누이 덕분에 제 이번 생은 이미 성공한 것 같습니다.”

 

 

 

 

 

 

 

 十四.

 

 

 

 

 오늘은 딱히 일이 없는지 설을 부르지 않는 폐하셨고 그래서 무료하게 방 안에 누워있다 점심이 한참 지나서야 덕이와 함께 산책을 나온 설이었다.

 

 길을 걷던 설은 연못 앞에 서 있는 10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를 발견해 옆에 있던 덕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 애기는 누구에요?”

 

 “마마. 애기라뇨. 왕우 전하십니다.”

 

 “전하요?”

 

 “예. 장차 왕이 되실 왕우 전하이십니다.”

 

 

 

 

 역사 시간에 배운 대로라면 공민왕 다음 왕들은 모두 다 짧게 왕의 자리에 앉았다가 유배를 간다. 아마 이 어린 전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해 괜히 안타까운 마음에 왕우의 옆으로 조심히 다가간 설이었다.

 

 

 

 

 “누, 누구십니까?”

 

 “저는 설비라고 합니다. 왕우 전하.”

 

 “아. 천인!”

 

 “네. 천인이지요.”

 

 

 

 

 갑작스런 설의 등장에 깜짝 놀라며 낯을 가리는 왕우였고 웃으며 꽤 익숙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설이었다. 그러자 역시 설이 천인이라는 소문을 들었는지 설을 이미 알고 있는 왕우였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낯을 가려 한 발자국씩 설에게서 벗어나는 왕우였고 헛기침을 하며 다가가는 설이었다.

 

 

 

 

 “제가 재밌는 거 보여드릴까요?”

 

 “예? 재밌는 거요?”

 

 “네. 물수제비라고 하는 건데, 잘 보세요.”

 

 

 

 

 왕우를 보며 장난스럽게 웃은 설이 곧 작은 조약돌을 주워 연못에 비스듬히 던졌고 동시에 물 표면에 세 번이나 튕기며 물속으로 들어간 조약돌이었다. 그리고 연못을 빤히 쳐다보다 눈이 커지며 신기해하는 왕우였다.

 

 

 

 

 “우와. 어떻게 하신 겁니까?”

 

 “해볼래요? 몸을 기우려서 표면에만 닿게끔 던지는 거예요.”

 

 “아!”

 

 

 

 

 신기해하는 왕우에게도 조약돌을 쥐어주고는 던지는 시늉을 하며 자세를 알려주는 설이었고 설을 따라 조약돌을 던진 왕우였다. 하지만 돌이 한 번에 물에 빠져버려 시무룩해진 왕우였고 몇 번 더 연습하면 잘 할 거라고 달래는 설이었다.

 

 어린 아이와 친해지는 것은 이런 놀이가 제격이라고 생각해 시작한 물수제비였는데, 설의 예상대로 금방 친해져버린 왕우와 설이었다.

 

 

 

 

 “근데요 설비마마. 궁금한 게 있습니다.”

 

 “네. 뭔데요?”

 

 

 

 

 몇 번의 물수제비 놀이로 금방 편해진 왕우가 설을 올려다보며 물었고 왕우의 키에 맞추어 무릎을 굽히는 설이었다.

 

 

 

 

 “마마께선 진짜 천인이십니까?”

 

 “네. 천인입니다.”

 

 “우와. 진짜 하늘에서 오셨습니까?”

 

 

 

 

 자신이 정말 천(天)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고려의 사람은 아니고 이 세상에 갑자기 뚝 떨어진 사람이니 천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설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눈을 반짝이며 설을 올려다보는 왕우에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레 이야기하는 설이었다.

 

 

 

 

 “왕우 전하께만 알려드리는 건데, 전 다른 세상에서 왔습니다.”

 

 “다른 세상도 있습니까? 어떤 세상입니까?”

 

 “음. 미래라고 하지요.”

 

 “미래..?”

 

 

 

 

 지금 고려의 650년쯤 후의 대한민국에서 왔으니 대한민국, 미래 또한 또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한 설이 웃으며 하늘을 바라봤고 설을 따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왕우였다.

 

 

 

 

 

 

 

 十五.

 

 

 

 

 

 웬일로 요즘 부쩍 자신을 부르지 않는 왕이 이상해 영수전 주변을 돌아다니는 설이었고 왕의 침전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건 의심 받을 일이었기에 그런 설을 말리는 궁녀 덕이었다. 덕에게 붙잡혀 만령전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관료 복이 아닌 군장을 입은 남자들과 마주친 설이었다.

 

 

 

 

 “누구신데, 영수전 주변을 살피십니까?”

 

 “아.”

 

 “설비마마십니다.”

 

 “아. 설비마마십니까? 전 홍륜이라고 하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영수전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설을 수상쩍게 본 남자들이었고 남자들의 물음에 설을 대신해 대답하는 덕이였다. 그러자 그들도 설의 존재를 이미 아는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곤 영수전으로 들어갔다.

 

 홍륜.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신의 팔을 잡아 끌어당기는 덕이에게 묻는 설이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에요?”

 

 “자제위입니다.”

 

 “자제위?”

 

 “예. 폐하를 보필하는 분들입니다. 다들 미남이시지 않습니까?”

 

 “아. 그 자제위! 홍륜!”

 

 “마마. 목소리를 좀 낮추십시오.”

 

 

 

 

 뒤돌아 영수전으로 들어간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조심히 말하는 덕이였고 ‘미남’이라는 말에 번뜩 떠오른 설이었다. 영화 ‘쌍화점’에서 주진모가 공민왕이었고 주진모를 맡았던 남자들이 자제위, 조인성이 홍륜이었다.

 

 설을 데리고 만령전으로 돌아온 덕이 주변을 살피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설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근데 요즘 폐하께 이상한 소문이 돈다고 합니다.”

 

 “무슨 소문이요?”

 

 “자제위들을 매일 밤 처소로 부르신답니다.”

 

 “그게 왜요?”

 

 “왜긴요. 그래서 남색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습니다.”

 

 

 

 

 고려의 소문난 미남들로 구성한 자제위들을 매일 밤 처소에 불러 남색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덕이의 말에 쌍화점의 결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쌍화점을 봤을 당시에 궁금해서 역사를 찾아봤었는데, 그 끝은 죽음이었다. 그게 현실일 까봐 걱정이 돼 불안함에 입술을 깨무는 설이었다.

 

 

 

 

 

 

 十六.

 

 

 

 

 며칠 후, 연덕궁에서 모인 후궁들이었다. 지나가다 몇 번 마주쳐 인사를 한 적이 있기에 딱히 불편하진 않았지만 후궁들을 바라보며 또 다시 입술을 깨무는 설이었다.

 

 후궁들에게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혜비와 신비가 먼저 입을 열었고 노발대발 화를 내기 시작했다.

 

 

 

 

 “폐하께서 자제위와 잠자리를 권하셨습니다.”

 

 “제 게도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떻게 하긴요. 당연히 싫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러니 폐하께서 순순히 알겠다고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혜비. 신비.”

 

 “그러니 익비와 설비도 조심하세요.”

 

 

 

 

 혜비와 신비는 이미 왕에게 불려가 자제위와의 잠자리를 피했고 그렇다면 남은 건 익비였다. 아마 왕이 점점 미쳐서 후궁들과 자제위에게 잠자리를 강요할 것이고 그 끝에 익비와 홍륜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긴다. 그것 때문에 왕이 자제위를 죽이라 명을 내릴 거고 그를 안 자제위가 먼저 왕을 시해할 것이다.

 

 궁 안에서 누군가 죽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이것 또한 역사일 까봐 차마 말을 할 수 없는 설은 또 입술을 꽉 깨물었다.

 

 

 

 

 

 

 十七.

 

 

 

 

 밤이 늦어서까지도 잠이 오지 않아 침상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왕의 부름으로 덕을 따라 영수전으로 온 설이었다. 불안함에 입술을 깨물고서 침소에 든 설이었고 들어가자 이미 와 있는 자제위와 익비였다.

 

 

 

 

 “설비. 왔소.”

 

 “네. 폐하.”

 

 “설비. 홍륜과 최만생. 둘 중 누가 더 맘에 드시오?”

 

 “네?”

 

 “홍륜은 익비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니 설비는 최만생이 좋겠소.”

 

 

 

 

 왕이 고갯짓을 하자 익비에게 다가가는 홍륜과 설에게 다가오는 최만생이었다. 그리고 가까이 온 홍륜이 익비의 옷고름을 풀었고 어쩔 줄 몰라 두 손으로 입을 꼭 막고 있는 익비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이 고개를 돌리자 최만생 역시 어느새 설에게로 다가와 설의 옷고름을 잡았고 저도 모르게 최만생의 손등을 때린 설이었다. 최만생을 있는 힘껏 밀치고 왕에게 다가간 설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폐하. 제 정신이십니까? 혜비와 신비께도 이러셨다면서요. 저희는 폐하의 후궁입니다.”

 

 “그래서?”

 

 “이 자들이 저희를 함부로 할 권리는 없다 이 말입니다.”

 

 “권리라..”

 

 

 

 

 

 잔뜩 흥분을 해 소리치는 설과 달리 차분히 차를 마시는 왕이었고 곧 찻잔을 내려놓고 설을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 명이다.”

 

 “왕 명이 뭐 대수라고. 내가 싫으면 싫은 거지.”

 

 

 

 

 속으로 했어야 할 말이었지만 너무 답답해 작게 중얼거린 설이었고 고개를 들어 왕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하는 설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넋이 나가 지켜보는 홍륜과 최만생과 익비였다.

 

 

 

 

 “폐하께서 관음증에, 남색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답니다.”

 

 “알고 있다.”

 

 “그것을 다 아시면서도 이러시는 연유가 뭡니까?”

 

 “.....”

 

 

 

 설이 답답해하며 묻자 그녀의 시선을 피해 찻잔을 잡는 왕이었고 그 손이 무척이나 떨리는 것을 본 설이 이어 말했다.

 

 

 

 

 

 “폐하께서 이러신다고 돌아가신 노국공주님께서 돌아오십니까?”

 

 “알았으니 그만 하 거라.”

 

 “관음증, 남색 그딴 거 아니시잖아요.”

 

 “그만하래도!”

 

 “아직까지도 노국공주님이 그리워서, 사랑해서. 너무 힘들어서 이러시는 거잖아요!”

 

 

 

 

 왕이 조정에서 손을 놓아가는 것도, 음주에 빠져 사는 것도, 관음증과 남색이라는 소문이 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제위를 불러 문란하게 지내는 이유 모두 노국공주가 그리워서, 버틸 수가 없어서였다.

 

 노국공주가 세상을 떠난 후로 변해가는 왕을 모두들 이상하게만 바라봤을 뿐, 그 누구도 왕에게 비난을 하거나 위로를 하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와 왕의 마음까지도 아는 설이 처음으로 그를 비난했고 처음으로 그를 달랬다.

 

 

 

 

 “왕우 전하를 생각하셔야”

 

 “설비를 끌어 내거라. 당장!”

 

 “폐하. 저 폐하께서 믿으신 천인입니다. 제 말을 들으시면 분명 좋은 일이”

 

 

 

 

 설에게 마음을 들켜버린 왕이 서둘러 침소 밖에 있던 사람들을 불러 설을 끌어냈고 영수전의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도 끌려 나가는 설을 바라보며 슬픔이 가득한 채로 눈물을 토해내는 왕과 그런 왕을 멍하니 바라보는 설이었다.

 

 아직 말을 다 하지도 못 한 채로 궁녀들에게 끌려나온 설은 불빛이 환히 켜진 영수전을 바라보며 끝내지 못한 말을 혼자 이었다.

 

 

 

 

 “분명 좋은 일이 있을 텐데.”

 ‘죽지 않으실 텐데. 익비와 홍륜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 폐하는 죽습니다.’

 

 

 

 

 

 

 

 十七.

 

 

 

 

 얼마 후, 평화롭던 궁 안은 익비가 회임을 했다는 소식과 함께 축하의 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그 중, 설만이 불안해했다. 익비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홍륜의 자식일 것이라 생각한 설이 불안함을 참지 못 하고 영수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폐하의 부름을 받은 최만생이 영수전 안으로 들어갔고 그 모습을 본 설은 초조함에 메마른 입술을 뜯었다.

 

 하는 수 없이 처소로 돌아온 설은 익비가 회임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끼니를 물린 채로 며칠을 굶었고 처소에 궁녀인 덕이 마저 들어오지 못 하게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지 않아 처소 밖에서 설을 부르는 덕이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마.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물음에도 설이 대답이 없자 조금 더 가까이서 들리는 익숙한 그의 목소리였다.

 

 

 

 

 “단입니다.”

 

 

 

 

 

 

 十八.

 

 

 

 

 아무리 왕의 신임을 받는 장군이라곤 하지만 후궁의 처소에 마음대로 들어올 수는 없을 터, 이곳까지 들어온 단에 설이 먼저 물었다.

 

 

 

 

 “이곳까지 어떻게 왔어요?”

 

 “오늘 궁이 조금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요?”

 

 “뭔가 어수선하니 평소와 다릅니다.”

 

 

 

 

 요즘 궁 안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리 많이 어수선했고 그 틈에 만령전까지 올 수 있었다는 단의 말이었다. 불안함에 자꾸만 입술을 물어뜯는 설이었고 그런 설을 보며 그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단이었다.

 

 

 

 

 “오는 길에 폐하께도 문안을 여쭈러 갔었는데, 이미 자제위들과 잔치를 벌이고 계시더군요."

 

 “혹시 폐하께서 취하셨어요?”

 

 “그러신 것 같았습니다.”

 

 ‘오늘이구나.’

 

 

 

 

 단의 말에 오늘이라는 것을 알게 된 설이 입술을 뜯던 손을 멈췄고 동시에 바깥이 소란스러워져 만령전 밖으로 나온 설과 단이었다. 그리고 덕이 저 멀리서 정신없이 설에게로 달려왔다.

 

 

 

 

 “마마. 피하셔야합니다.”

 

 “설마..”

 

 “폐하께서 시해 당하셨습니다. 얼른 피하셔야 해요.”

 

 

 

 

 폐하가 자제위에게 시해를 당하셨고 왕의 죽음으로 왕의 후궁들 모두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다며 덕이 설의 팔을 잡고 어디론가 도망치려하자 덕의 손을 내리며 설의 앞에 서는 단이었다.

 

 

 

 

 “장군님.”

 

 “내가 마마를 모실 테니 가보 거라.”

 

 “그래도..”

 

 “난 괜찮으니까 얼른 가요.”

 

 “예. 그럼 마마를 잘 부탁드립니다. 장군님.”

 

 

 

 

 설의 앞을 가로막은 단이 덕에게 말하자 설의 눈치를 보는 덕이었고 그녀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설이었다. 그러자 덕이 치맛자락을 붙잡고 서둘러 도망쳤다.

 

 

 

 

 “제가 비밀리에 마련해놓은 처소가 있습니다. 그 곳으로 가시지요.”

 

 “그건 안 됩니다.”

 

 “설누이.”

 

 “전 후궁입니다. 아무리 장군이셔도 왕의 여인을 데려가시면 화를 면치 못 할 것입니다.”

 

 

 

 

 도망치는 사람들로 인해 어수선한 궁 안을 잠깐 둘러보다 설에게 말하는 단이었고 제게 내밀어진 단의 손을 잡지 못 하는 설이었다.

 

 

 

 

 “어차피 누이는 고려의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하늘에서 내려준 천인이지요. 그러니 괜찮을 것입니다.”

 

 

 

 

 시해당한 왕의 후궁을 마음대로 데려갔다간 화를 면치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 아무리 장군일이지라도.

 

 후에 조선을 건국하실 분인데, 괜히 저로 인해 위험해질까 걱정이 된 설이 제게 내밀어진 단의 손을 쉽사리 잡지 못 했고 설의 손을 먼저 잡아오는 단이었다.

 

 

 

 

 

 “저를 믿으셔도 됩니다.”

 

 “다 미신이에요. 장군이 이씨를 일으켜 세울 거라고요. 날 믿어요.”

 

 

 

 

 눈물이 맺힌 채로 애달프게 서로를 쳐다보는 설과 단이었고 단에게 믿음을 주었던 설처럼 이번엔 설에게 믿음을 주는 단이었다.

 

 

 

 

 

 

 

 

 사실 이곳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긴 무서웠던 설이 단의 말에 끝내 고개를 끄덕였고 곧 단이 미소를 지으며 설의 손을 더 꼭 잡았다.

 

 

 

 

 

 

 十九.

 

 

 

 

 단이 마련해놓은 처소는 저잣거리 한 골목 안에 위치했고 다행히 밤이 늦어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 안전히 도착한 설과 단이었다. 하지만 본가가 아닌 혼자 잠시 들르는 정도의 처소인지라 방이 한 칸짜리였고 하는 수 없이 한 방에서 밤을 보내게 된 둘이었다.

 

 

 

 

 “누이가 편히 누워 주무십시오. 전 이렇게 기대 자겠습니다.”

 

 “그렇게 자면 불편하지 않겠어요? 목에 담 걸릴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아무리 성이 개방적인 고려일지라도 성인 남녀가 한 방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 보통의 일은 아니었는지 편하게 펴놓은 이부자리에선 설이 자도록 하고 자신은 벽에 기대어 앉아 잠을 자겠다는 단이었다. 물론 설의 눈치를 엄청 보면서.

 

 몇 번을 물어도 자꾸만 괜찮다고 대답하는 단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부자리에 편히 누운 설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었다.

 

 

 

 

 “진짜 마지막이에요. 진짜 괜찮아요?”

 

 “.....”

 

 “난 같이 누워서 잤으면 좋겠는데.”

 

 “설누이가 하도 불편해하는 것 같아 눕는 겁니다.”

 

 

 

 

 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설의 머리맡에 있던 다른 베개를 품에 안고 설의 옆에 누운 단이었고 웃으며 그를 향해 돌아누운 설이었다. 물론 가까이 마주한 설에 깜짝 놀란 단은 입을 꾹 다물었고 먼저 입을 연 건 설이었다.

 

 

 

 

 “덕이는 괜찮을까요?”

 

 “내일 일찍 군사를 보내 그 궁녀를 찾을 테니 걱정 마세요.”

 

 

 

 

 단을 손을 잡고 궁을 빠져나와 단의 처소에 와서 이부자리에 누울 때까지 함께 오지 못 한 덕이 걱정되는 설이었다. 아무래도 궁 안에서 가장 가까이서 오래 지냈던 사이인지라 무사하길 바랐다. 설의 말에 덕을 찾겠다며 설의 걱정을 덜어주는 단이었다.

 

 곧 천장을 보고 나란히 누운 설과 단이었고 깜깜한 방 안, 그들의 목소리가 나긋하게 오고 갔다.

 

 

 

 

 “미래는 어떤 곳입니까?”

 

 “음. 미래는 여기보다 자유로우면서도 자유롭지 못한 곳인 것 같아요.”

 

 “미래엔 혼인을 하지 않아도 됩니까?”

 

 “네. 미래에 혼인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거든요.”

 

 

 

 

 설이 미래에서 왔다는 것을 믿는 단이 궁금한지 미래에 대해 물었고 그가 정말 궁금했던 건 미래는 어떤 곳인지가 아니라 설의 혼인 유무였던 것 같았다. 다시금 들려오는 단의 질문에 금방 눈치를 채 웃으며 대답하는 설이었다.

 

 

 

 

 “그럼 설이누이는 혼인을 안 하실 겁니까?”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하겠죠. 아직은 못 만나서 잘 모르겠어요.”

 

 “아. 아직 못 만나셨군요..”

 

 

 

 

 설의 말에 왠지 모르게 서운해 기운 없이 대답하는 단이었고 몸을 단에게로 돌려 다시 가까워진 거리에서 말하는 설이었다.

 

 

 

 

 “뭐 더 궁금한 거 없어요? 얘기해줄 수 있는 건 해줄게요.”

 

 

 

 

 이왕 미래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단에게 더 큰 믿음을 주고 싶은 설이었다. 대신 역사가 바뀔 수도 있으니 바뀌지 않는 선에서만 대답했다.

 

 

 

 

 “전 미래에서 어떤 사람입니까? 후손들이 절 압니까?”

 

 “알고말고요. 엄청 대단한 분이시죠.”

 

 “그럼 됐습니다.”

 

 

 

 

 길게 고민하던 단은 생각보다 단순한 질문을 했고 그에 너무나도 쉽게 대답한 설이 저도 모르게 단의 볼을 매만졌고 눈을 감은 채로 가만히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을 받는 단이었다. 물론 단은 설이 자신을 기분 좋게 해주려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설과 단의 첫 날 밤이 깊어갔고 나란히 누운 그들이 서서히 잠에 들었을 쯤, 밖에선 지금의 따뜻한 봄의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하얀 눈이 내렸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작가 신우유입니다. 배경음악으로 'various Artists-Not Alone(정국 테마)'를 매~우 추천합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 설(雪)울 下 結 2019 / 10 / 23 224 0 18065   
2 설(雪)울 中 2019 / 9 / 27 241 0 13645   
1 설(雪)울 上 2019 / 9 / 23 357 0 961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도미넌트(DOMINANT)
몽글
스폰서 아니고
몽글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