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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에게 행운을
작가 : 로기
작품등록일 : 2019.9.19

 
생각보다 많이 다른?
작성일 : 19-09-27 10:21     조회 : 188     추천 : 0     분량 : 19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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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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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이 오신지 5일이 지나고 다음주가 되어 월요일인 오늘 체육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개회식이 열렸다. 장소는 우리 학교의 중심에 있는 공원이었다. 학교에 있는 어떤 공원보다도 큰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오더라도 자리가 남을거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내가 사람 수를 얕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정말 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공원에도 자리가 모자라 옆에 있는 길마저 빈 곳이 없을만큼 차 있었다. 이제서야지만 우리 학교 진짜 공원 많아.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모인건가?"

  "그럴리가 없잖아."

  무한이가 아무런 생각없이 입으로 뱉은 말을 부정했지만 나도 같은 생각을 해서 조금 찔렸다. 그나저나 이녀석과 같은 생각을 했다니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야? 이렇게 많은데?"

  "행사라고는 해도 일을 해야할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을 거고 지금 학생들만 해도 모두가 온 건 아니잖아."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이 도시에 있는 다른 학교에서도 이때를 맞춰 축제를 준비하고 있고 우리 학교와 연계하여 하는 종목들도 있다고 한다. 대규모로 진행되는 행사라는 것이 확실하게 와닿는 이야기였다.

  "애들은?"

  한솔이가 내 옆으로 다가오며 반 아이들이 어디있는지 찾고 있었다. 귀찮은건 싫다면서 우긴 한솔이였지만 결국 반 아이들에게 붙잡혀 이것저것 잡일을 하게된 그였는데 의외로 일을 잘해서 여러 아이들이 부탁하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할 일이 없기도 하고 개회식이라서 왔다나.

  공원에 중앙에는 없던 넓은 단상이 하나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곳을 중심으로 왼쪽에서부터 초등학생부터 1학년순으로 되어있었다. 한 학년에 300~400명 정도가 있으니 얼마나 학교가 큰지 이제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제까지는 쓸데없이 넓기만 한 학교라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광경이다.

  "아마 저기 있을거야."

  나는 단상에서 오른쪽즈음에 있는 곳을 가리키며 한솔이에게 알려주었다.

  "으음~, 오! 안보여. 일단 먼저 가볼게."

  귀찮은건 싫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애들 부탁은 잘 들어주는 녀석이었다.

  "이제 시작하려는가 본데?"

  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어 떠들썩했는데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술렁임이 생겼다. 바로 이 학교의 이사장이신 아저씨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헌터로서도 꽤 이름을 알리셨다고 해서 유명하신 분인데 갑자기 은퇴를 하시고 학교 이사장을 맡으셔서 나라에서는 꽤나 아쉬워했다고 한다. 능력도 뛰어났다고 하는데 왜 그만두신건지.

  어쨌든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아저씨를 보자마자 환호성을 지르거나 저들끼리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나쁜말이 들리지 않을까 귀를 기울여봤지만 그런 것은 일절 없는 것을 보니 다행이었다. 욕 같은 말이 들렸으면 내가 바로 가서 뒤통수를 갈겨 땅과 입맞춤을 시켜줬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만 애들한테 가보자."

  나와 무한이는 우리 반 교실이 있는 교사의 옥상에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공원에서의 자초지종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시작할 것 같으니 같이 내려가자는 권유에

  "아니, 나는 여기서 보고 있을게."

  "……. 그렇게 해."

  나는 저 사람들, 아니 학생들 사이에 들어가는 것은 아직은 무리일 것 같아 거절했고 무한이는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알았다며 혼자 옥상에서 내려갔다. 은근히 사려가 깊은 녀석이다. 이렇게 보면 겉모습과 다른 녀석들이 우리 반에는 많은 것 같다.

  옥상에서 잠시 지켜보다가 단상에서 진행을 맡은 교감선생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셨고 나는 천천히 몸을 눕혀 잠을 청하기로 했다. 개회식이라 빨리 끝날테지만 그 다음에도 내가 할 일은 많이 없으니 그냥 이 시간에 잠이나 잘까 한 것이다. 옥상에서 한 번 숙면을 취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는데 이렇게 이루어지니 기분이 어쩐지 좋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잠을 자다니 집에 있는 것 같잖아?

  눈을 살며시 감고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가장 크게 들려오는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 들며 들은 아저씨의 목소리는 가족과 이야기 할 때나 나와 이야기 할 때의 목소리의 분위기가 전혀 달라서 신선했다.

  잠에 빠진 나는 하나 꿈을 꾸었다. 오랜 친구인 유아와 수연이가 말을 걸어주기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제는 친구들이 많아져 집에 가기전 들리지 못하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도시에서도 가장 작은 공원이다. 누구와도 친해지지 못한 나는 학교에서 노을을 보고 공원에서 시간을 떼운 뒤 도장으로 향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날은 1학년 마지막 시험이 끝난 직후라 시간이 남아 춥지만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 날이었다.

  점심을 먹기 전에 학교가 끝났기 때문에 나는 공원으로 향하기 전에 좋아하는 빵을 사기 위해 단골이 된 빵집으로 향한 뒤 공원에 도착했다. 빵집은 공원과 반대편에 있었지만 시간이 넘쳐나니 천천히 발을 떼었다.

  공원에 도착해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이 공원은 작지만 예쁘게 꾸며져있기도 하고 왠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런데도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추운 날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날씨가 따뜻한 날에도 사람이 전혀 모이지 않는 곳이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오지 않는다는 것에 처음에는 충격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사람이 없어 마음이 편했고 내가 왠지 이 공원의 주인이라도 된 것 마냥 느껴졌다. 음, 주인이라기 보다는 친구처럼 생각했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날도 여전히 사람은 없었고 나는 친구와 만난다는 생각으로 의자에 편히 앉아 하늘만 바라보다가 어느덧 배가 고파져서 사온 빵의 포장을 장갑을 벗은 뒤 뜯었다. 빵은 식지 않게 마련된 봉지 안에 들어있어 방금 만든 것처럼 따뜻함을 간직한 채 내 손에 올라왔다. 실제로 샀을 때는 만든지 얼마되지 않은 것이 맞기는 했다. 가게 아저씨께서 단골이 된 나를 알아보시고 어떻게 방금 만든 빵을 내게 주셨다. 그때는 그게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 주는 것들 중 하나였다.

  빵을 들어올린 뒤 식기 전에 입으로 넣으려고 하니 내 옆구리가 따가웠다. 누군가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누군가 올 곳도 아니였기에 무시하고 입에 넣은 뒤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안에 퍼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빵과 함께 달콤한 팥이 입 안에 퍼졌다. 이게 바로 행복이지 하며 행복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따가운 시선에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눈처럼 하얀 아이가 있었다. 지금와서 보면 요정이지 않았을까 싶을정도로 하얬다.

  추운 겨울임에도 소매가 얇은 단순한 하얀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손과 발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발은 무려 신발조차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추운 기색은 하나도 없었고 차가운 바람에 노출되어 있는 피부에는 추워서 생긴 것이 아닌 원래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분홍색의 홍조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나중에 눈치챈 것이었고 너무나 사람이 아닌 듯한 그 아이의 모습에 나는 눈을 빼앗겼다.

  아까 말한대로 정말 하얀 아이였다. 피부가 하얀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머리카락, 눈동자까지 하얬던 것이다. 그런 모습에 누군가 만든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정한 이목구비까지 있으니 시선이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이 진짜로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지켜보다 한가지 생각에 걱정을 했는데 바로 그 생각을 집어넣었다. 불치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병의 증상이 이 아이와 똑같았는데 그건 피부가 자외선에 약해 이런 모습으로 밖에 돌아다닐 수 없다고 들어 병은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처럼 해가 쨍쨍한 날에 말이다.

  무엇보다 아이에게는 행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내 옆에서 빵을 지켜보고 있었다. 왠지 먹고 싶어 보여서 따뜻한 빵 하나를 꺼내어 아이에게 가져다 주자 나에게 고개를 갸우뚱 했다. 엄청 귀여운데. 이런 동생이라면 몇 명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먹어도 괜찮아."

  내가 허락하자 아이는 얌전히 빵을 받아 의자에 남은 자리에 앉아 빵을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다. 모습을 보면 초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이런 아이가 밖으로 돌아다니면 이미 소문이 파다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서 들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신기한 모습의 아이와 빵을 같이 먹고 있자니 한 남성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사람이 없어서 오는 공원에 오늘 이상하게도 두 명이나 온 것이다.

  아이는 빵을 먹고 있다가 남성의 모습이 보이자 빵을 문 상태로 남성에게 빠르게 달려가 안겼다. 달려와 안긴 아이를 미소를 지으며 반겨준 남성이 아이와 함께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남성의 외모가 정말 말이 안됐다. 머리카락이 길어서 보이지 않을 뻔했지만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었기 때문에 얼굴이 확실하게 보였다. 동성인 남성들이 보아도 정말 납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잘생겼다. 아니 예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생길 수 있지하며 감탄하고 있자 도시에서 괴담처럼 들려오는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머리카락이 길고 신기하게 흑발인데도 빛을 받으면 금색으로 보이며 머리카락 안에 숨겨져 있는 눈동자도 똑같은 색에 정말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잘생긴 남성이 있다는 소문을 기억해낸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게 다가오는 남성이 딱 그런 사람이었다.

  걸어오는 소문의 그를 보며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외모가 내게 그곳을 떠나도록 만들지 못했다. 내게 다가온 남성은

  "감사합니다. 드실 빵을 아이에게 양보해주셔서."

  목소리까지 말이 안나왔다. 이런 완벽한 사람이 있나!

  하지만 의외로 내 입은 간단히 떨어졌다. 너무 잘생긴 사람이 앞에 있지만 떨지 않은 것이었다. 누구라도 이런 사람 앞에 서면 말을 꺼낼 수 없지 않을까 했지만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도 많은 것 같아서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했어요."

  대답을 하고나니 알게 되었다. 그의 분위기가 매우 부드러워 대화하기에도 편했고 목소리도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 주는 것만 같았다. 왠지 그의 주변만 매우 따뜻해지는 착각까지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정말 감사해요. 자, 에시나트."

  그는 아이를 부드럽게 부르며 내게 머리를 숙이며 고마워했다. 아이도 그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아니예요.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어요."

  나는 정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사새를 쳤고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그는 미소를 지었다. 와, 내가 여자였다면 저 미소를 보고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절대 없다. 저건 그런 종류의 미소였다.

  "잠시 옆에 앉아도 될까요?"

  "네."

  내 전용석도 아니지만 물어오는데에 대답은 해드려야하니 그렇게 대답했다. 그는 나와 빵을 사이에 두고 앉았고 옆에 조금 자리가 남아있었지만 아이는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그는 익숙한지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여기 좋아하시나봐요?"

  "네, 여기에 오면 마음이 안정이 되어서."

  "그래요?"

  그는 조금 놀란듯 약간 눈을 크게 만들며 내게 되물었다.

  "사람도 안오고 그래서 좋아해요."

  "저랑 비슷하시네요. 저도 그래서 여기 좋아해요."

  나는 깜짝 놀랐다. 나도 여기 자주 오기는 하지만 사람을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도 오지 않는 이곳에 그와 같은 사람이 온다면 잊을 수도 없을텐데 말이다.

  "저는 아침에 오거든요."

  아, 그래서 마주치지 못했구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대답한 그에게 의문을 느꼈지만 표정에 드러나는 감정은 이때에도 변함없었다.

  "학생이신가봐요?"

  "네."

  학교에서 바로 왔기 때문에 입고 있는 교복을 보고 아셨는지 그렇게 얘기하셨다. 그리고 그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벌리려는 순간

  "시훈."

  그의 옆에 있던 아이가 목소리를 내었다. 아이의 목소리이지만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목소리로 아이는 그를 불렀다. 그는 자신을 부른 아이를 잠시 말없이 지켜보더니

  "이만 가봐야할 것 같아요. 이거 제 연락처이니 필요하실 때 불러주세요."

  내게 직사각형의 자그마한 종이를 주고 일어났다.

  "이제부터는 괜찮아지실거예요."

  그런 의미모를 말을 남기고 아이를 데리고 떠났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넋을 놓고 보고 있었고 그가 보이지 않자 한가시 사실에 깨달았다. 빵을 씹고 있을때까지만 해도 뒤숭숭했던 내 마음에 내려앉은 떼가 씻겨나간 것 같은 시원함을.

  저 사람이 소문의 그사람이구나 신기한 경험을 했네하며 받은 종이를 보자 거기에는 김시훈이라는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고 뒤를 뒤집어 보자 지금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 길드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거기까지가 꿈이었고 거기까지가 내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아직 연락을 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에게 연락을 하게될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일어나보니 눈부신 하늘에 눈을 뜰 수가 없어 손으로 가린채로 일어나니 옆에 잘 때까지만해도 없었던 아이들이 보였다.

  "너희 뭐해?"

  "응? 일어났네?"

  나는 너무 눈부셔서 얼굴을 찡그린채로 옆에서 떠들고 있던 유아에게 물었다.

  "뭐하긴 놀고 있지."

  유아는 손에 트럼프를 들고 수연이와 대치하고 있었다. 판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보니 원카드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다.

  "수연아 너는 학생회인데 여기 있어도 돼?"

  "응. 회장한테 허락받았어."

  수연이는 나를 보지도 않고 태연하게 카드를 내고 있었다.

  "유아 너는 할 일 많다고 저번에 그랬잖아."

  "어, 왜."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지 수연이와 똑같이 나를 보지도 않고 대충 대답하고 있었다.

  "근데 왜 여기있어?"

  "그야 도망쳤으니까?"

  도망?

  "애들이 자꾸 시켜서 귀찮아서 뛰쳐나왔어."

  유아가 할 법한 일이기는 한데 괜찮은거냐.

  "당연히 괜찮지. 누가 들어도 확실한 변명을 하고 왔으니까."

  "뭐라고 했는데?"

  "남자친구 응원하러 간다고."

  어이가 없었다. 학교에서 유명인 취급을 받는 네가 그런 얘기를 하고 여기에 오고 나랑 같이 있는걸 보고 오해를 하게 생길게 분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 남자'인' 친구니까."

  인을 강조해서 말하며 이제서야 나를 보는 유아는 만면의 미소를 꽃피우고 있었다. 그래, 너 알아서해라.

  "그래서 운이 너는? 너희 반 주전이라며?"

  시험이 끝난 학교에서는 확실하게 축제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준비의 하나로 각 반에서 종목마다 누가 나갈 것인지 정해야했다. 종목마다 누가 몇 번을 나가도 상관없다고 했기 때문에 반에서 가장 운동신경이 뛰어난 내가 그 역할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흘날까지는 어떤 것이 있는지 확실하게 알려주었지만 마지막날인 닷샛날은 그날 공지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어 나는 거의 모든 경기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애초에 우리 반 애들 공부말고는 각자 잘하는 것이 있는데도 이기기 위해서 일단 나를 넣는다고 하니 이게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다.

  "그렇다고 듣기는 했는데 오전에는 내가 나가는 종목이 없어."

  모든 경기에 참가하기는 하지만 첫날인 오늘 오전에는 아이들끼리 해보겠다고 하며 나를 빼놓았기 때문에 할 일이 없어서 옥상에서 잠을 잔 것이었다.

  "뭐, 오늘은 달리기밖에 없었으니까 운이가 다 나가도 이길테니 그럴만하네."

  이제는 내가 능력을 이용하면 신체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알고 있는 유아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이런 축제 속에서 능력을 사용해서까지 모두 이기고 싶지는 않아."

  굳이 이기기 위해서 능력까지 써가며 모든 사람들의 즐거움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 이기는게 더 재미있을걸? 그리고 너 능력 안써도 우리 학교에서는 이미 상위권이니까."

  "에이 설마. 공부는 뭐, 매일같이 하고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애초에 나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이 학교에 없을리가 없잖아."

  "아니, 진짜라니까? 그리고 너도 재능 운운할게 아니라 지금까지 체육관에서 한 운동을 생각해."

  생각해보니 그랬다. 학교에서 체육으로는 성적이 높은 무한이를 이길정도이니까 조금 잘하는 편이기는 한 것 같다.

  "에라 모르겠다~."

  이제 귀찮아진 나는 다시 잠을 자기 위해서 벌러덩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러자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내게 달려들었다.

  "커헉."

  갑자기 무거운 무언가가 나를 짓뭉게니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무지 아팠다.

  "선배! 왜 여기 계세요. 한참 찾았잖아요."

  네 목소리에서 그런 고생을 한 낌새는 느껴지지 않는단다.

  "아린이야?"

  "네~!"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내 옆에서 나를 푸른색 눈으로 내려다 보고 있는 아이는 백화점에서 만났던 기묘한 아이였다. 시험이 끝난 뒤로 어떻게 알았는지 나를 찾아와 구해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는 점점 자주 찾아오게 되어서 꽤 친해진 사이가 됐는데 요즘에는 좀 심하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유아랑 비슷할 정도로 틈만나면 내 등을 덮쳐온다.

  "제발 이런 것 좀 하지 말아줄래."

  "왜요?"

  아니, 그렇게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물어도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이런 식의 장난은 그만 해줄래? 네 오빠녀석이 또 날 가만히 두지 않을게 분명하니까."

  아린이는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나를 따가운 시선을 보았던 박민기의 의붓동생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동생을 노리는 나를 견제한 거라나 뭐라나. 처음에는 그저 나쁜 녀석이라고 보고 있었지만 체육대회 며칠 전에 덤벼오기에 상대해주었더니 이제는 나를 건드리지 않게 되었다. 물론 아린이가 나에게 안겨있는 것을 보면 달랐지만.

  "괜찮아요~. 우리 오빠 그래도 보여도 우리 사이를 인정하고 있다니까요?"

  "우리 사이가 뭔데? 그냥 친구잖아?"

  "또 그러신다~."

  아린이는 내 누워있는 내게 들러붙어 머리를 고양이처럼 비벼댔다. 도대체 제가 뭘 했길래 이러는 걸까요. 이렇게 들러붙게 됐을 무렵에 아린이에게 직접 물어보았는데 사고에서 자신을 구해줄 때 즐겁게 해줘서라고 한다. 그게 무슨 이유야.

  어쨌든 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이녀석은 나를 애인으로 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부 장난처럼 보이기 때문에 나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저 진심이라니까요?"

  나를 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아린이었다. 응, 제발 봐줄래?

  "미안한데 여성의 장난에 놀아날 생각은 없어요."

  나는 몸을 일으키며 아린이를 떼어놓기 위해 밀었지만 끈질기게 달라붙는 아린이를 내버려두기로 하고 유아와 수연이의 원카드를 지켜보기로 했다. 이대로는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으니까.

  두사람은 생각보다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원카드로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임하는 녀석들도 많이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아아아! 이걸!"

  "내가 이겼어."

  유아는 자신의 손에 있는 카드들과 중심에 있는 카드를 번갈아보더니 결국 카드를 뽑으며 분통해하는 것을 보고 수연이는 가지고 있는 카드를 전부 내며 원카드를 외치고 게임은 확신하고 있던 승리를 붙잡았다.

  "나 왜 이렇게 게임을 못할까. 어? 아린이 왔구나. 어서 와."

  "어서 와."

  상심하고 있던 유아는 아린이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수연이도 이제서야 그녀를 발견했는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사했다. 그 손길에 아린이는 기분이 좋다는 듯이 수연이의 품에 안겼다. 흠, 아무리봐도 수연이는 아린이를 고양이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안녕하세요. 언니들 저도 껴도 될까요?"

  "얼마든지."

  나에게 들러붙는만큼 유아와 수연이를 만나는 횟수가 많아진 아린이는 둘과도 매우 친해졌는지 나를 빼놓고 수혜와 선생님까지 포함해 다섯이서 노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그만큼 나와 노는 횟수가 적어졌지만 나는 오히려 좋았다. 자꾸 여자애들하고만 더 친해지는 것 같아서 차라리 혼자 있는게 나았다. 지금 이 옥상만 봐도 유아, 수연이, 아린이가 있는 것을 보면 내 친구는 매우 여성으로 치우쳐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셋의 진지한 승부인 원카드를 지켜보고 있는데 내 단말기가 진동을 울렸다. 예정보다는 빠르게 전 경기들이 끝나 생각보다 빨리 내가 나갈 경기가 시작될 모양이었다.

  "나는 이제 반 애들한테 가야겠다."

  "네? 선배 어디가세요? 저도 같이가요."

  아린이는 내가 일어나는 것을 보더니 유아와 수연이 사이에서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린이를 두고 먼저 옥상에서 내려갔다.

  "이렇게 보니까 되게 잘 꾸몄구나."

  "그럼요. 학생회를 비롯해서 학생분들이랑 밖에서 오신 분들까지 다들 노력하셨으니까요."

  금새 내 옆으로 온 아린이가 내 혼잣말에 대답해주었다. 빠르구만.

  이 체육대회는 정말 도시에서 크게 하는 축제이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도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각 교사에서는 각자의 개성에 맞춰 꾸며진 교실과 복도를 볼 수 있었고 길마다 만들어져 있는 장식품들이 늘어져 있었다. 길 중간중간 도시에 있는 가게들이 와서 물건을 파니 이거야말로 축제가 아닐까 싶다.

  길을 걸으며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듯 했다.

  "운이 학생!"

  여러 포점이 있길래 둘러보면서 아이들에게 가는 중 익숙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나를 불러세웠다.

  "아주머니!"

  바로 단골인 빵집의 아주머니였다.

  "오늘 오셨네요."

  "이런 축제에 우리가 빠지면 섭하지 않겠니?"

  가볍게 내게 윙크를 하시는 아주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빵을 건내주셨고 돈을 내려고 했지만 오늘은 기분이시라면서 받으시지 않았다.

  "아저씨는 안오셨나요?"

  "아, 그이 지금 돌아다니면서 홍보중이야."

  아주머니의 말씀으로는 인형옷을 입고 지금 홍보를 하고 계시다고 한다. 그 험악한 얼굴에 인형옷이라니 엄청나게 안어울릴 것 같지만 얼굴만 가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할거다.

  "오! 운이 왔냐?"

  아저씨도 양반은 되지 못하시는 것 같다.

  "아저…씨?"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빵의 한 종류인 초코 소라빵의 인형을 입고 계셨는데 얼굴을 가리는건 문제가 되지 않는데나와 있는 다리의 털이 보였다. 한마디로 바지를 입지 않으셨다는건데.

  "아, 이거? 바지 입으면 더워."

  그게 이유라고 하신다. 나는 지금 이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옆에 있는 아린이도 꽤나 경악했는지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네……."

  "내가 입으라고 그렇게 얘기해도 입질 않더라구"

  아주머니는 내 얼굴을 보시더니 나도 같은 마음이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나저나 이 예쁜 여자애는 누구니? 혹시 여자친구?"

  "ㄴ… 읍!!"

  아린이는 아주머니가 속삭이시는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대답하려는 것을 빠른 반사속도로 입을 막았다. 이녀석 아까까지 아저씨를 보고 놀란거 맞아?

  "아니에요. 그냥 아는 후배예요."

  "그, 그러니?"

  내 팔 안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아린이를 보고 그 침착한 아주머니조차도 당황하셨다. 제발 가만히 좀 있어줄래.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겠다.

  "그럼 곧 저도 경기를 해야해서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빵 감사합니다!"

  "그래. 힘내렴~."

  아주머니는 손을 흔들어주시고는 곧바로 인형옷을 입고 있는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시더니 주먹으로 한대 때리셨다. 유쾌한 분들이다.

  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보이지 않게 되자 바로 아린이를 풀어주었고

  "선배! 어떻게 선배가 제게 이러실 수 있으세요?"

  눈물을 훔치는 척을 하며 시작된 아린이의 투정을 간단히 흘려들으며 반 애들에게 향했다.

  운동장을 가운데에 두고 옆으로 둥글게 천막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이것은 각 학년과 반을 위해서 준비해둔 것이다. 작전회의를 위한 것이라고 하던가. 좀 과민반응인가 싶었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무시할 정도는 아닌 듯하다.

  그리고 한 천막에는 양호선생님과 담임선생님께서 같이 다친 아이들을 돌보고 계셨다. 두분께서는 나를 발견하시고 같이 손을 흔들어 주시길래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린이가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뭔데? 아프다고.

  우리 반의 천막으로 들어와 가장 먼저 보이는 지태에게 다가갔다.

  "어때?"

  "그럭저럭 상위권이야."

  지태가 내 물음에 정확한 대답을 도출해냈다. 역시 지태다. 지태의 말은 지금 우리 반은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체육대회는 각각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로 나뉘어서 점수를 매기고 거기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딴 학년이 이기는 것으로 되어있고 별개로 학년마다 반으로도 점수를 나누어 매긴다. 그리고 모든 학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딴 학생에게는 따로 좋은 상을 내린다고 하는데 그게 뭘지는 시상식이 될 때까지 모른다고 한다.

  "자, 이제 네 차례야. 단거리 달리기를 하면 돼. 점심 시간 전에 하는건 어떤가 싶지만 계획이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지태가 내 등을 떠밀면서 그렇게 얘기했다. 남의 건강상태를 걱정해주는 잘생긴 친구를 두어서 나는 마음이 편하다.

  단거리 달리기는 100m였는데 매일 같이 뛰는 내게는 쉬운 것이었으나 조금 긴장을 하고 있었다. 경기 자체는 오늘 하루는 능력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매우 쉽겠지만 친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뛴다는 것은 처음 하는 일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꽤 긴장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 반 아이들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고 다 다른 반 아이들이라 불편한 분위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모두 내 소문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이 소문에 신경쓰지 않는 괴짜들 뿐이라는 것을 알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노골적인 시선들을 받으니 왠지 주눅이 들었다.

  "선배! 힘내세요!"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린이가 우리 반 천막 아래에서 큰 목소리로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 옆에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아린이에게로 쏠렸고 모두가 설마 나?라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객관적으로 보거나 주관적으로 보아도 아린이의 외모는 상당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아이가 왜 나에게 들러붙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그리고 지금 아린이가 나에게 응원을 했다는 것이 확실하지는…….

  "운이 선배! 화이팅이에요!"

  확실했다. 그 순간 내게는 강한 질투가 몸을 휘감았고 나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압박감 때문이 아닌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래도 누군가가 응원을 해준다는 것은 나쁜 기분이 아니였다.

  아린이 덕분에 하고 있던 긴장은 모두 날아가고 단거리 달리기는 매우 가뿐하게 5번의 경기를 치뤘고 모두 제쳐 1위를 차지했다.

  "역시 네가 우리 반의 최종무기이자 주무기야."

  "사람을 물건 취급하지마."

  "하지만 사실인걸?"

  지태는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멋진 미소와 함께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무리 축제가 되어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우리가 있는 이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왜일까.

  "이렇게 사람이 많아도 여기는 없구나. 신기하네."

  "이 정도가 되면 거의 수수께끼 수준인걸."

  "그러게요. 아무도 여기에 오질 않는데 선배는 어떻게 여길 찾으셨나요?"

  유아와 수연이는 서로 신기해하며 자신들이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고 있었고 아린이는 여전히 내 옆에 붙어 질문을 해왔다. 참고로 아린이의 도시락은 내가 싸온 것이다. 언제 내가 도시락을 먹고있을 무렵 싸온게 나라고 하니 자신도 싸달라고 조르기에 어렵지 않은 부탁이라 들어주었다. 왠지 목줄을 잡힌 듯한 기분이었지만 착각이려니 싶다.

  "내가 저번에 얘기했지? 여기 관리하시는 분께서 계시는데 심심해서 뒤따라와 보니 여기에 도착했어. 그 뒤로는 마음에 들어서 자주 오지."

  그런식으로 떠들고 있자 공원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네 명 정도가 있었다. 그 중 한사람은 수혜였다.

  "역시 다들 여기에 있었네?"

  수혜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예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언제부터 저런 캐릭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원래 저런 성격일지도 모른다.

  "아들 우리 왔다!"

  네 명 중 두사람은 우리 부모님이었다.

  "오신다고는 하셨지만 그게 오늘이셨네요."

  "그럼~. 우리 아들이 활약하는 모습은 보고 가야하지 않겠냐."

  음?

  "그러고보니 얘기를 안했었구나. 우리 여기서 점심을 먹고 떠날거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할 법했지만 항상 그러셨으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있다.

  "아들 우리 없어도 슬퍼하면 안돼?"

  어머니께서는 이미 마음은 해외로 나가신 건지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이것도 항상 보았기 때문에 내 반응을 보기 위한 어머니의 장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아니였는지 당황하며 나를 보채고 있었다.

  "야! 뭐 해? 빨리 가서 위로해드려!"

  유아는 내 등을 세게 치며 얼른 가라고 외쳤고

  "어서 가서 위로해드려."

  수연이는 매우 침착한 목소리로 얼렀고

  "어떻게 해?!"

  수혜는 당황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지 허둥지둥거렸고

  "어머니께서 매우 유쾌하시네요."

  아린이는 어머니의 장난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미있네 이거."

  아버지는 더할나위 없이 재미있는 것을 보고 계시다면서 왼팔을 무언가를 감싸고 오른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내렸다 하셨다. 무언가 먹는 모습 같은데 잘 모르겠다.

  "우리 아들보다 다른 애들이 더 재미있네."

  어머니는 흐르던 눈물을 닦으시며 자신이 들고 계시던 인공눈물을 보이시고는 장난이었다는 것을 모르던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나저나 선생님 생각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셨네요."

  어머니는 나를 잠깐 보시더니 마지막으로 같이 온 선생님을 보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무슨 얘기인지 전혀 모르는 나는 선생님은 어머니의 말씀에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이고만 계시는 이유도 몰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을 줄이야. 우리 아들 이제 걱정 안해도 되겠네."

  우리 가족 셋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 싸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있다가 아버지는 떨어져있는 아이들과 선생님을 보고 웃음을 지으셨다.

  "그러네. 우리 아들에게도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생겼으니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어머니도 아버지의 말에 동의하시며 나를 끌어안아주셨다. 너무나 따뜻했다.

  "그래요. 이제 걱정따위는 하시지 마시고 두 분 건강이나 챙기시라구요."

  오랜만에 만났다고는 해도 가족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몸이 조금 쇄약해지셨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 아들 눈치도 좋아졌네. 그래, 당연하지. 우리 아들 오랫동안 봐야하니까."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시며 내게 장난을 치셨다. 이런 나날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는 가볼게. 선생님도 힘내십쇼. 아직 기회는 많아요."

  "저희는 선생님을 응원하고 있으니까요.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부모님께서는 끝까지 내게는 영문모를 말을 하시고는 떠나셨다. 두 분의 말을 들은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얘기할 때까지도 지워지지 않던 붉은 얼굴을 더욱 붉히고 계셨다.

  점심을 먹고 바로 시작하는 경기에는 반 전체가 참가하는 2인 3각 경기였다. 이 학교는 반마다 모두 20~24명 정도의 학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딱 떨어지는 수여서 파트너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무조건 이성과 짝을 맺어 팀을 이루어야한다고 단말기로 공지되어 있어 나는 수혜와 같이하려고 했지만

  "나 방금 한솔이가 같이하자고 해서."

  거절당했다. 물론 남녀의 수도 똑같기 때문에 구하기는 쉽지만 우리 반은 모두 파트너가 있었고 나는 남은 사람이 누군지 몰라 돌아다니며 파트너를 찾고 있었는데

  "나랑 같이 할래?"

  지연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었다. 파트너가 없던 내게는 지연이는 천사와도 같이 보였다.

  "고마워."

  "아니야. 나 운동 못하니까 애들이 너랑 같이하면 어떻겠냐고 해서."

  자칫 잘못하면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이유라도 좋았다. 옆에서 자꾸만 같이하자고 하는 누군가와 다르게 평범한 것 같은 이유라서 말이다.

  그렇게 나까지 모두 짝을 이루게 되어서 2인 3각이 준비가 되었다.

  각 학년마다 진행을 하고 그곳에서 우승을 하는 반끼리 마지막 결승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이제 2학년인 우리가 할 차례가 됐고 우리 반을 포함한 다섯 반이 운동장의 시작점에 서서 앞에 있는 고깔을 노려보고 있었다. 왠지 살기처럼 느껴질만큼 승부욕이 다들 굉장했다. 상이 그렇게 굉장한건가? 들어본바로는 매년 대단하기는 했다는데.

  모두가 긴장한 상태에서 심판으로 서신 선생님께서 큰 깃을 위로 치켜들고 내리자 아이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다들 연습을 많이 했는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되었고 금새 마지막인 나와 지연이의 앞 순서인 수혜와 한솔이가 뛰어나갔다. 아까 수혜가 말한대로 방금 팀을 이루어서 그런가 아니면 한솔이가 운동신경이 없는건가 수혜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긴장하지 않아도 돼."

  지연이가 긴장한 듯 몸을 떨고 있기에 나는 안심시키기 위해서 말을 걸었다.

  "고마워. 나 운동을 못하니까 이런거 조금 부담스럽거든."

  언제나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던 지연이가 이런 말을 꺼내니 왠지 신선했다. 그리고 음, 어쩐지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앗!"

  고깔을 돌고 오던 수혜와 한솔이가 발을 잘못 딛여서 넘어지고 말아 하고 있던 1등을 놓치게 되고 말았고 돌아온 수혜의 모습이 매우 좋지 않았다.

  "미안해."

  "괜찮아."

  나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지연이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고 뒤에서는 수혜와 한솔이를 책망하기는 커녕 모두들 잘했다며 위로해주고 있었다. 역시 우리 반 애들은 괴짜이기는 하지만 좋은 녀석들뿐이다.

  나와 지연이는 호흡을 맞춰 한발씩 앞으로 나아갔다. 속도는 매우 느려 이미 다른 반 아이들은 고깔을 돌아 시작점으로 향했지만 우리는 초조해하지 않고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열심히 한발씩 내딛었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는 아이들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경기를 처음에 탈락한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 수혜는 천막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처음 봤을때와는 전혀 다른 수혜의 모습에 요즘 심한 차이를 느끼지만 아마 저게 수혜의 모습이 맞을거다.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수혜의 모습에 우리 반 아이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지었다.

  "뭘 그런거 가지고 그래. 오전에 우리도 실수한 거 많으니까 괜찮아. 어차피 점수는 이녀석이 다 이길거잖아?"

  무한이는 수혜에게 위로의 말을 던지며 마지막에 내게 어깨동무를 하고는 그렇게 말했다. 이게?

  "그래. 수혜야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가 아무리 빨리 왔어도 아마 나 때문에 1등은 못했을거야."

  지연이는 상심한 수혜에게 자신을 깎아내리며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지만 저런 모습은 조금 지연이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럴리가. 그때는 아마 운이가 지연이 너를 들어올려서 돌았을 걸?"

  "야!"

  지태의 실없는 말에 나는 빠르게 소리쳤다.

  "하긴 운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어이없는 말에 지연이도 웃으며 동의를 해버렸다. 내가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지만 지연이의 미소를 보았으니 기쁜 마음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2인 3각을 이후로 3km달리기, 10km달리기를 했다. 두 경기 모두 너무나 학교가 너무 넓으니 굳이 학교를 나가지 않아도 진행이 가능했지만 도시에서 하는 축제인만큼 도시의 도로에서 달리는 것으로 되었고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들 보는 형식이 되었다. 매우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또다시 시작된 아린이의 응원과 부모님, 그리고 거리에 아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긴장을 잊어버리고 열심히 달려 나는 1위를 차지했다. 우리 반에서는 나를 제외하고 3명 정도가 더 참여했지만 참여한 나와 무한이를 제외하고 모두 아쉽게도 등수에 오르지 못했다.

  첫날인 오늘의 마지막 경기인 장애물 달리기를 앞에 두고 우리는 회의를 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실수를 한터라 계속 유지되었던 상위권의 바깥으로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5km까지 괜찮겠어?"

  "체력적으로 묻는거라면 괜찮아."

  지태는 내 몸을 걱정하는 듯 물어보았지만 조금 땀을 흘려 이제 워밍업이 된 느낌이라 오히려 좋았다.

  "이녀석 이제 몸이 풀렸을걸 걱정 안해도 괜찮아."

  무한이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보다도 이 애 좀 어떻게 해줘."

  내 옆에서 이젠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아린이를 무한이가 가리키며 한탄했다.

  "이제 안 떨어질거예요! 눈만 떼면 자꾸 여자들하고 엮이는 선배를 불안해서 어떻게 혼자 냅둬요!"

  그게 이유라고 한다. 우리가 회의를 한 원인이 이 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싱거운 회의이기는 했지만 상당히 심각했다.

  "내가 언제……."

  언제 내가 여성들하고만 있었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지태와 무한이를 비롯한 우리 반 친구들, 아버지 그리고 경기를 같이 뛴 아이들을 제외하고 이야기를 나눈 모두가 여성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내 교우 관계의 상태에 한탄을 했다.

  이 아이를 떼어놓기 위해서 이리저리 생각을 해봤지만 내 지친 머리로 좋은 방이라곤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다음에 같이 어디 놀러가자. 영화를 보든, 카페를 가든 뭘하든 간에 다음에 해줄테니까. 그래, 하루를 너에게 할애할게. 그러니까 오늘은 떨어져주지 않을래?"

  "네!"

  내가 부탁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떨어져서 배시시 웃는 아린이를 보자 왠지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보면 정말 귀여운 친구인데 말이야.

  "갔다올게."

  나는 천막에 있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며 필사의 각오로 시작점으로 향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장애물 경기는 매년 체육대회 때마다 매우 위험하고 기묘한 경기라고 들었는데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조금 긴장한 상태로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불안했지만 관장님과의 대련을 한다고 생각하며 경기에 임하기로 했다. 아무리 불안해도 관장님과의 대련보다 더 어려울리가 없으니까.

  장애물 경기는 각 반에서 단 한 명만을 골라 모든 학생들이 각자에 맞는 코스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코스는 학교 전체를 훑듯이 이어지는 길들이었다. 나는 시작점에 서서 초등부와 중등부 아이들을 보았다. 각자 모두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는 것을 보니 나도 왠지 승부욕이 생겨났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5분 정도를 하자 고등부의 양호선생님께서 오셔서 신호탄이 장전된 총을 들자 아이들은 방금보다 긴장된 상태에 들어갔고 총소리와 함께 일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일단 우리는 1등이 목표야."

  지태는 확실하게 말을 했다. 이번 장애물 경기는 어렵기 때문에 주는 점수가 높아 무조건 1등을 차지해야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전력으로 바닥을 내딛었고 금새 앞으로 치고 나와 아이들과 떨어졌다. 그리고 먼저 온만큼 첫 장애물을 만났는데

  "으아아!"

  나는 놀라고 말았다. 내 상체만한 불덩이들이 갑자기 달려드는데 놀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게다가 이거 헛것이 아니였다. 내 옆을 지나가는 불덩이의 온도가 확실하게 피부에 전달이 되었다. 이거 진짜 학생들을 위한 경기 맞아?

  "역시 운이가 가장 먼저 왔구나? 네가 왔으니 이 선생님 더 힘차게 능력을 써야겠구나!"

  불덩이를 쏜 범인은 우리 반을 가르치는 체육선생님이셨다. 능력처럼 성격도 화끈하셔서 선생님에게 지쳤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다. 나는 몸이 지치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들게 만드는 선생님이라 그다지 반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아무리 나를 굴려도 잘 지치지 않아 마음에 들어하시는 모양이었다.

  "역시 훌륭하구나!"

  나는 달려드는 불덩이들을 아슬아슬한 거리로 모두 피한 뒤에 선생님을 지나쳤다. 위험하기는 했지만 보이기만하면 피하기가 쉬웠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운 장애물이 아니여서 쉬웠다. 또

  다음 장애물은 영어선생님만 계실뿐 아무것도 날라오지 않았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라고 생각했지만

  "운이 왔구나 너라면 걱정 없겠다."

  선생님들의 신뢰를 얻고 있어 기쁘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갑자기 손을 뻗으시니 내가 딛고 있는 바닥이 흔들리면서 뿔이 솟아났다. 이건 진짜 위험할 뻔했다. 하나를 피하면 하나가 또 솟아났고 그런식으로 이어지는 장애물이 범위가 매우 넓었기에 정말 힘들었다. 그나저나 이것도 학생을 위한 장애물이 맞아?

  그렇게 다행히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상태로 그곳을 벗어났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조금 심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나중에 듣고보니 영어선생님이 나에게만 뿔을 세우셨다고……. 나를 신뢰하신다고는 생각하지만 너무하시다!

  무난하다면 무난하게 경기를 진행하며 나아가고 있자 갑자기 내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능력은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의 능력이었다.

  "운아 어서오렴. 기다리고 있었단다."

  분명 시작점에 계셨던 양호선생님께서 물과 음료를 테이블에 마련해두시고 계셨다.

  "이번 장애물은 이건가요?"

  "그렇단다. 너에게는 거의 통하지 않지만 다른 애들에겐 효과만점이라서."

  양호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곳의 장애물은 선생님밖에 계시지 않는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범위는 앞선 두 장애물보다도 넓었지만 내게는 소용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생각보다 부담없이 장애물들을 통과했고 생각보다 위험하면서 싱거운 장애물들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어느덧 시작점이 보였다. 금방 돌았네 싶어서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대로 나는 결승점이 되어버린 시작점을 지났고 우리 반은 1위를 하게 되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들은 바로는 이번 장애물이 역대 수준으로 가장 힘들었고 내가 역대 중 가장 빠르게 통과했다고 한다.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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