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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아마쿠사의 신(1)
작성일 : 19-09-27 08:27     조회 : 273     추천 : 0     분량 : 7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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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냄새가 태어나서의 첫 기억인 것은 아마쿠사미코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태어남과 동시에 전장을 물들이는 붉은 피와, 그와 함께 흘러내리는 인간의 모든 감정들을 직접 목격해야 했고, 그것들이 슬픔, 절망, 비탄이라는 형태로 자신에게 흘러들어 자신의 내면을 잠식하는 것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인간인 다른 사무라이들과는 달리 누군가의 손에 죽지 못하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죽이기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고, 아마쿠사미코토는 곧 자신이 인간이 아님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어디지?”

 

  한동안 흘러들던 인간들의 감정이 흐름을 멈추고 어린 아마쿠사미코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주인을 잃은 팔다리와 몸통들, 머리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고, 불에 탄 깃발이며 부러진 칼날이며 창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피?”

 

  아마쿠사미코토는 본능적으로 피가 굳어진 곳을 찾았다. 몇 번이고 피가 흩뿌려졌는지 이미 땅이 새까맣게 변한 그곳에는 아직도 굳지 않은 피가 강을 이루어 줄줄 흐르고 있었고, 그 중 일부는 흐르고 흘러 개울로 흘러들어가 맑은 개울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생경해서, 너무도 생경해서,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아름다워 보여서 어린 아마쿠사미코토는 그대로 개울물에 손가락을 담가보았다. 손가락에 와 닿는 시원한 느낌과 함께 개울물에 섞인 피에서 느껴지는 모든 감정들에 아마쿠사미코토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미친놈.”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개울물에 흘러든 피들 중 누군가의 피에서 ‘사나 죽으나 그게 그거’라는 감정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죽으면 끝이잖아. 인간이든 신이든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인간은 다시 태어날 수 있지만 이세계의 삶과는 작별하게 되니 그걸로 끝이고, 신은 소멸해 근원으로 돌아가게 되니 그걸로 끝이지. 그런데 사나 죽으나 그게 그거라고? 대체 누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나 손가락을 빼려하면 할수록 다른 깊은 감정들이 흘러들어와 아마쿠사미코토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그 감정들은 고향에 두고 온 노모에 대한 걱정이기도 했고, 곧 태어날 어린 자식에 대한 기대이기도 했고, 흰 쌀밥이나 한 번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던 누군가가 죽어가며 다음 생에는 배곯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탄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것을 느끼는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알 수 없어 두렵기까지 했다. 불현듯 찾아온 두려움에 아마쿠사미코토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마쿠사미코토는 개울물에서 손가락을 빼낼 수 있었다. 손가락은 어디 하나 퉁퉁 불어난 곳 없이 물에 들어가기 전과 똑같았다.

 

  “어어?”

 

  그제야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이 인간과는 다른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태어난 것이, 처음 눈을 뜬 것이 언제였더라. 아마쿠사미코토는 얼른 아까 그 자리로 돌아가 부러진 칼날 하나를 주워들고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부러진 칼날에는 열 살은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춰보였다.

 

  “하아. 이게 그러니까…….”

 

  아마쿠사미코토는 잠시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며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햇살이 내려와 그녀의 작은 머리통을 뜨겁게 달구었고 전장의 시체들을 금세 부패하게 했다. 시체들에 꼬이는 파리떼와 개미떼를 바라보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이 알게 된 사실들을 정리해보았다. 자신은 조금 전에 태어났으며, 자신이 태어난 곳은 바로 이 전장이었고, 부모라 불릴 존재도 없이 스스로 태어났다. 그리고 자신은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고는 있었으나 직접 확인한 것은 조금 전이었다. 또 자신의 능력이 전장의 모든 감정들을 느끼는 것인 것으로 보아 자신은 전쟁에 관련된 신일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이나 신이나 죽으면 끝이라고 한 건가.”

 

  어찌 되었든 이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널브러져 있는 병장기들 중 가장 멀쩡해 보이는 것을 골라 챙겨들고 그곳을 떠났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곳이 전장인 이상 또다른 전장을 찾아가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쿠사미코토가 태어난 시대는 바야흐로 전란의 시대였다. 곳곳에서 전화(戰 火)가 피어오르고, 수많은 목숨이 전장의 비명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에 스러져갔다. 아마쿠사미코토는 홀로 여러 전장을 떠돌며 수없는 인간들과 싸우고 또 싸웠다. 간혹, 다이묘가의 조상신들을 만나거나 그 지역의 토착신, 혹은 하급신이 된 지박령들을 만날 때도 있었으나 그들은 피와 죽음의 냄새를 달고 다니는 어린아이를 환영하지 않았고, 그나마 인간들 중 인심 좋은 이들이 넝마와 다름없는 피 묻은 옷을 걸치고 상태가 좋지 않은 무기를 들고 다니는 어린아이를 불쌍히 여겨 보리밥에 소금을 넣은 주먹밥을 던져주었다.

 

  “고맙구나.”

 

  그때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주먹밥을 나눠준 대가로 약간의 가호를 보내주었다. 하급신, 그것도 완전히 자라지 않은 어린아이의 가호가 얼마나 효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가호를 받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그렇게 전장을 떠돌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아마쿠사미코토는 수많은 인간들을 베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의 숨을 거둘 때마다 그들의 감정이 같이 흘러들어왔고, 그때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겨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참 덧없구나.”

 

  인간의 목숨이란 참으로 덧없는 것이라고 언제나처럼 되뇌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어느새 총대장의 우마지루시(대장을 상징하는 표식의 일종)로 보이는 거대한 깃발이 세워져 있는 군막에 가까워져 있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총대장으로 보이는 젊은 사무라이가 갑주를 벗고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양손으로 와키자시를 받쳐 들고 있었다.

 

  “죽으려는 것인가.”

 

  아마쿠사미코토는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갑작스러운 외부인의 등장에 그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그의 손에서 와키자시를 빼앗았다.

 

  “좋은 칼이군. 그런데 이 칼로 자신의 배나 가르려 하다니. 칼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너는 누구냐?”

 

  그가 물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그에게서 빼앗은 와키자시를 허리에 찼다. 낡은 스오이(마직으로 만든 무가의 소년이나 하급 무사의 평상복)와 좋은 와키자시는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았지만 좋은 무기를 얻은 이상 그것이 무어 그리 중요하랴.

 

  “내가 이기게 해줄까?”

  “무어?”

  “이 싸움 내가 이기게 해줄까?”

 

  그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아마쿠사미코토를 바라보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허공에 검을 휘둘러 붉은 꽃잎을 피워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었지만 주위의 흩어져 있는 기를 모아 형상을 만드는 것쯤은 할 수 있었다.

 

  “나는 전장에서 태어난 어린 신이다. 그러니 내게 있어서 네가 이기게 하는 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니야.”

 

  여태 누군가를 위해 싸운 적이 없는 아마쿠사미코토였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지금까지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 본능에 따라 싸워왔을 뿐 누군가를 이기고 지게 하기 위해 싸워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정말 자신에게 전투의 승패를 가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을 고려하기보다 눈앞에 있는 이 사무라이의 죽음을 막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신이라 하였는가?”

 

  신이라는 말에 그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그런 그를 침잠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대가 정말 신이라면 나와 함께 싸워주어라. 우리 가문의 신들께서도 나를 버리신 지 오래. 그러니 그대가 그분들을 대신하여 나와 함께 싸워주어라. 부탁한다. 부디 우리가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어라, 어린 신이여.”

 

  그가 아마쿠사미코토의 앞에 쌍수례(일본의 예법 중 하나인 좌례 중 두 번째로 큰 예법)를 올렸다. 바닥에 양손을 짚고 삼각형 모양의 공간을 만든 다음 허리를 숙여 이마를 가져다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 말고 아마쿠사미코토는 그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주었다.

 

  “여기서 이럴 시간에 갑주나 챙겨 입어라. 나가서 싸워야 이기든 말든 할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나?”

 

  아마쿠사미코토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앞에서 환하게 웃었다. 자신을 섬기는 인간이 생겼다는 것보다 자신을 받아들여준 존재가 생겼다는 사실이 더 기뻐 아마쿠사미코토는 갑주를 다 입은 그의 손을 잡고 군막 밖으로 이끌었다.

 

 ※

 

  그날, 아마쿠사미코토는 태어나 처음으로 신을 베었다. 전장은 결국 하나의 선에 지나지 않는 법. 그리고 그 선을 무너뜨리는 것은 점 몇 개를 흩어놓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신이, 그것도 나이 어린 하급신이 전장에 개입해 점을 흩어놓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그 한계를 매우는 유일하다시피 한 방법은 상대편의 신을 죽이는 것이었다.

 

  “너는 이름이 뭐지?”

  “하루후사. 그대의 이름은?”

  “없다. 그딴 거 없어.”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과 등을 맞대고 싸우던 총대장 하루후사를 한 번 돌아보고 걸음을 옮겼다. 적진 깊숙이 다가갈수록 인간들의 저항이 거세져왔다. 조금 전보다 한층 격렬해진 공격에 아마쿠사미코토는 팔다리를 여러 차례 베여 피를 뚝뚝 흘렸다. 신이라 해도 상급신이 아닌 이상 상처가 저절로 치유되는 권능을 가질 수가 없으니 결국 인간의 몸과 마찬가지였다. 전장에서 늘 느끼는 씁쓸함을 이번에도 똑같이 느끼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앞을 막아서는 인간들을 차례로 베었다. 병장기를 부딪쳐 오던 인간들이 차례로 스러져가는 모습이 마치 꽃잎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름답고도 잔혹하게 느껴졌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하루후사의 모습이 보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소리쳤다.

 

  “하루후사! 조금만 더 버텨라! 내가 곧 그쪽으로 가겠다, 하루후사!”

 

  적진 깊숙이 들어간 아마쿠사미코토는 한 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상대편 총대장의 조상신으로 보이는 그에게서는 아마쿠사미코토보다 한층 더 강한 권능이 느껴지고 있었다. 곧 땅에서 식물덩굴들이 솟아나 아마쿠사미코토의 발을 묶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발목과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식물덩굴들을 베어냈다. 그러나 식물덩굴들은 아무리 베고 또 베어도 아마쿠사미코토의 발목과 다리를 타고 올라와 움직임을 봉쇄했고, 아마쿠사미코토는 결국 식물덩굴들을 삼키기 시작했다. 식물덩굴들이 몸 안을 헤집어 온몸이 뜯겨져나갈 것 같았지만 아마쿠사미코토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애써 일으켜 신에게 다가갔다.

 

  “하루후사다.”

  “……?”

  “피와 죽음의 냄새를 달고 다니는 나를 처음 받아들여준 존재. 그 이름이 하루후사다.”

  “…….”

  “그의 이름을 듣고 나니 나도 이름이 가지고 싶어졌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검을 고쳐 잡았다. 본래 전장을 떠도는 이들은 전장에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법. 그러니 바로 지금, 이 신을 베기 전이 이 신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때였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신에게 말을 걸며 검을 쥔 자세를 다시 바로 잡았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어라. 너는 내 손에 죽어서 소멸하겠지만 대신 내게 주어지는 이름으로써 영원히 그 흔적을 남기는 거다. 어떠한가?”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꿈꾸는 것 같은 눈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럼 안녕.”

 

  아마쿠사미코토는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그었다. 머리부터 배꼽까지 갈라진 신이 서서히 눈앞에서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려 사라져가는 신을 삼키기 시작했다. 요괴가 같은 요괴를 먹어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 것처럼 신도 그러하던가. 하지만 처음 맛본 신의 기운과 권능은 너무도 달콤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붉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닦았다. 기운과 권능으로 보아 못해도 중급신은 되었나보다 생각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긴 손톱으로 흰 이를 톡톡 두드렸다.

 

  “뭐, 중급신 중 좀 약한 급은 되려나. 어쨌든 맛있네.”

 

  신을 흡수하고 아마쿠사미코토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자신이 방금 흡수한 신이 가지고 있었던 태어나던 날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신을 먹는다는 건 슬픈 일이구나.”

 

  아마쿠사미코토는 한참이 지나서야 걸음을 옮겨 하루후사에게 다가갔다. 신이 죽어서인지 상대편 군사들은 우왕좌왕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고, 하루후사의 군사들은 사기가 올라 아까의 무기력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맹렬하게 적들을 몰아붙이며 전세를 역전시키고 있었다.

 

  “하루후사.”

 

  전투가 끝나고 아마쿠사미코토는 하루후사를 불렀다. 승리를 알리며 검을 높이 들어 올리고 군사들의 환호를 받는 하루후사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

 

  아마쿠사미코토를 바라보는 하루후사의 시선이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새 그렇게 자랐단 말인가?”

 

  하루후사의 말에 아마쿠사미코토는 칼날을 대충 슥슥 문질러 닦고 얼굴을 비춰보았다. 열서너 살은 되어 보이는 소녀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눈길로 칼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게 진짜 나란 말인가?”

  “하. 그대도 믿기지 않는 모양이군. 솔직히 말해 나도 그렇다.”

 

  결국, 신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같은 신을 죽여야 한다는 것인가. 새롭게 깨달은 사실에 몸을 떨며 아마쿠사미코토는 하루후사의 손을 잡았다.

 

  “하루후사,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어라.”

  “그대의 이름을 말인가?”

  “그렇다.”

  “인간인 내가 어찌 신의 이름을 지을 수 있다고.”

  “그런 건 상관없다. 너는 나를 처음으로 받아들여준 존재. 누군가가 내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면 그게 너였으면 한다. 그러니 내 이름을 지어주어라, 하루후사.”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는 듯하던 하루후사가 이윽고 눈을 떴다. 하루후사는 말했다.

 

  “아마쿠사가 어떤가?”

  “아마쿠사?”

  “그래. 내 어머니의 고향이 아마쿠사였다. 그러니 내 진짜 고향은 아마쿠사나 마찬가지. 그대를 그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데 허락해주겠나?”

  “그래, 좋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대의 이름은 아마쿠사미코토다. 이제부터 그대는 그대의 이름인 아마쿠사에 신의 이름에 붙는 존칭인 미코토를 붙여 아마쿠사미코토라 불릴 것이다. 마음에 드는가?”

  “응. 마음에 든다.”

 

  처음으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준 존재를 만나고, 성장하고, 이름을 얻게 된 일이 마치 꿈만 같았다. 그날 아마쿠사미코토는 밤을 새워 하루후사의 군대와 함께 이동하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살짝살짝 손깎지를 껴보았다. 깎지 껴진 손가락 사이로 서로의 체온이 느껴져 두 존재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고, 자꾸만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간질거리는 느낌을 참다못한 아마쿠사미코토는 깎지 낀 손가락을 빼려 했으나 하루후사는 그 손을 자꾸만 끌어와 아마쿠사미코토가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칼을 쓰는 존재답지 않게 손이 참 곱구나.”

 

  하루후사의 말에 아마쿠사미코토는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마치 가슴에 커다란 바윗덩어리라도 떨어진 것 같은 느낌에 아마쿠사미코토는 낯간지러운 소리 좀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렀고, 하루후사는 그대로 아마쿠사미코토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앞으로도 내 곁에 있어주어라.”

 

  하루후사의 말에 아마쿠사미코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이 느낌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하루후사와 계속 함께 있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 같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하루후사의 입술에 입맞춤을 돌려주며 말했다.

 

  “너와 나,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 네 곁에 있으마.”

 

 

 
작가의 말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누군가를 불러주었을 때 그 존재는 여러분의 꽃이 될 겁니다. 여러분의 꽃이 될 존재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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