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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아벤트라
작가 : 하구
작품등록일 : 2019.9.19

받은 것은 이름과 피, 그리고 사명.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다시 한 번 인간들을 구해내기 위해 아이들은 모험한다

 
시작의 밤 - (5)
작성일 : 19-09-26 20:01     조회 : 169     추천 : 0     분량 : 4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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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기사들이 떠난 호메그 섬은 무거운 분위기에 잠겨있었다. 모두 무사했지만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안타까워하는 어른들 앞에서 소년들은 어제의 참변 속을 계속 헤맸다.

 

 하이안트는 물통을 가지고 레이븐의 옆에 앉았다. 초췌한 얼굴의 레이븐은 말없이 물통을 넘겨받았다. 그 뚜껑을 열려고 하는데 자꾸만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무리해서 힘을 주자 붉게 물든 붕대로 감싼 흉부가 떨렸다. 도움의 손길이 닿기 전에 물통은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벌어진 틈 사이로 물이 새어나온다.

 

 “레이븐.”

 

 소년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옆모습에 석양 그림자가 진다. 헤아리기도 힘든 심경일 것이다. 그걸 알기에 하이안트는 담담히 기사에게 들은 것을 전했다.

 

 “시험에 합격하면 그 녀석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대륙에서 일어나는 사건에는 대부분 기사가 동원되니까.”

 

 당연히 대답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랬으니까. 그러나 레이븐은 고개를 숙인 채로 목소리를 냈다.

 

 “어.. 좋은 생각이네.”

 

 어느새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박명만이 남았다. 역광을 받은 레이븐은 유독 어둡게 보였다. 하이안트는 희미한 기억 속에서 비슷한 장면을 떠올리고 망설이게 됐다. 섬광이 터지기 직전에 레이븐의 주위에는 텅 빈 것 같은 어둠이 맴돌았었다. 하이안트는 그저 극한에 몰렸기에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건 실재한다고 믿기에는 너무도 두려운 것이었다.

 

 “레이븐 미안해. 이제 와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됐어. 미안.”

 

 “아니야. 너도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런 거지. 괜히 고집부린 내가 사과해야 돼.”

 

 잠시 조용했다. 섬도, 마을도, 사람도 이전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가 새로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내가 꾸는 꿈 얘기한적 있었나?”

 

 “꿈? 아, 얼굴 없는 남자가 나타난다는.”

 

 “응. 어제 정신을 잃기 전에 그 남자가 나타났어. 그런데 그 남자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고, 다른 녀석이 나타나서 나한테 말을 걸었어. 목소리도 안 들리는데 왠지 계속 얘기하게 됐어. 그런데 내 가슴을 찌르더라고. 남자는 그대로 사라졌고, 그 뒤로는 기억이 없어.”

 

 “그럼 그 상처는...”

 

 “유령이라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레이븐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굳은 피로 점칠 되어있다. 레이븐의 자해와 곁을 맴돌던 어둠에는 관계성이 있을 것 같았지만, 하이안트는 거기에 대해 파고들려 하지 않았다. 그러는 찰나에 두 소년은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서로가 다르다고 느꼈다.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덕분일까, 속마음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줄어들었다.

 

 “머릿속 어딘가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아. 그것 때문에 왠지 무서워. 어제 그 녀석들에게 부모님이 당했다고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제어를 못하겠어. 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겠어.”

 

 레이븐은 상실감만을 띠고 있었다. 그에 반해 하이안트는 두 눈에 의지를 가득 담고 있었다.

 

 “어제 네가 했던, 이제는 우리가 계승자라는 말. 깨어난 뒤부터 정말 와 닿았어. 난 그 녀석들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맞서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 그래서 시험에 참가할 생각이야.”

 

 “사명... 그래. 이제는 우리가 해야 하는 거지. 여태까지 다들 그래왔으니까.”

 

 레이븐은 정신없이 자기머리를 흩뜨렸다. 그리고는 산발이 된 채로 조금은 평소다워진 목소리를 냈다.

 

 “나도 참가. 한번 해보자. 네가 앞장서 주는데 뭐가 문제겠어.”

 

 하이안트는 반쯤 나온 한 마디를 도로 집어넣었다. 그림자 뒤에서 레이븐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서둘러 표정을 바꿨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감정을 웃음으로 가렸다.

 

 “뭐야 그게.”

 

 “아, 참. 란이랑 코니는? 걔네한테도 물어봤어?”

 

 “아니. 물어봐야 돼. 가볼 테니까 여기서 쉬고 있어.”

 

 하이안트가 등을 돌리자 레이븐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했던 것처럼 연기를 그만두었다. 지금의 탐탁지 않은 기분은 가만히 품고 있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다.

 

 란은 시험에 참가할거라는 확언을 줬다. 그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도 가장 침착함을 유지했다. 하이안트로서는 매우 안심이었다. 그러나 코니가 신경질적으로 자리를 피하기만 했다.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기에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심적으로 회복하는데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시간이 많은 건 아니지만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 단계 하나하나를 확실히 밟아가야 한다.

 

 

  또다시 해가 떠오르고 소년들은 어제와 사뭇 다른 기분으로 눈을 떴다. 불타버린 집을 대신하여 흙바닥에 몸을 뉘였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해결해야할 문제는 산더미였으나, 분위기는 어제보다 풀어졌다.

 

 일단은 마을복구다. 시험까지는 아직 10개월도 더 남았다. 그때까지는 당연히 여기서 지내야 한다. 집을 고치고, 밭을 다시 일구어내고,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을 갖추는 데만 해도 까마득한 시간이 소요된다. 섬사람들은 잔해들을 치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부상당한 레이븐과 란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을 거들었다.

 

 하이안트는 몇 번 더 코니에게 접촉해봤지만 제대로 대화해보지도 못했다. 그는 묵묵히 일만하다가 이따금씩 혼자 있는 란에게만 다가갔다.

 

 “도와줄까?”

 

 란은 왼팔에 붕대를 감고 자잘한 것들을 치웠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코니가 오면 보란 듯이 한 팔로 더 많은 잔해를 들어보였다.

 

 “방해하지 말고 하이안트 형한테나 가라.”

 

 잠시 내버려두면 알아서 돌아갔는데, 이번 코니는 요지부동이었다. 란은 특유의 무표정에 한심하게 바라보는 눈빛을 섞었다.

 

 “도와주러 온 거면 필요 없으니까 가라. 그게 아니면 나한테 할 얘기라도 있어?”

 

 코니는 한참을 우물쭈물 거리다 나지막이 대답했다.

 

 “어제는... 미안했다.”

 

 “뭐?”

 

 “내가 못 참고 성질내는 바람에... 하이안트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 거고, 너네도 다 참았는데. 미안해.”

 

 란은 잠깐 얼이 빠진듯했다. 코니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자신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을 계속 품고 있었단 말인가.

 

 “그런 거라면 더욱 하이안트 형에게 말해야 되는 거 아닌가? 난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널 걷어찬 내가 사과해야지.”

 

 란은 작업에 돌아가려했다. 그런데 대화가 아직 안 끝난듯하다.

 

 “왼팔 정말로 괜찮냐?”

 

 “또 왜 그래?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하나.”

 

 저 붕대의 밑에는 검게 그을리고 새빨갛게 부어오른 살가죽이 덮여있다. 어제 겁에 질려 넋 놓고 있던 자신을 구하다가 생긴 것이다. 코니는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란은 상처까지 입으며 그런 자신을 구해줬다.

 

 “별거 아니다.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마.”

 

 보기 드문 란의 격려다. 코니도 그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멀어지는 친구의 등만이 비췄다.

 

 그날 기사시험에 관한 문제는 해결되었다. 결과는 전원참가. 네 명의 소년들은 생활이 안정 되는대로 시험 준비에 돌입할 것이다. 남은 시간은 일 년도 안 되지만, 실패할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주검으로 땅을 디딜 틈이 없다. 썩은 내와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군침을 흘리며 어슬렁대는 까마귀들이 소란을 피운다. 그것들을 전부 뒤집어쓴 시커먼 사내는 죽음 속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잠시 생존을 잊고 있었다.

 

 이곳은 훗날 같은 역사를 되풀이할 장소였다. 인간들은 또다시 땅에 어리석음을 묻혔고, 산 자들의 눈에는 죽음 그자체로 보이던 사내는 오늘도 태어났을 때처럼 죽음을 퍼뜨리며 살아갔다. 한 소녀가 그를 만나 거둔 뒤에도 사내는 몸속에 흐르는 피의 울림을 거역하지 못했다. 왜 다른 존재들은 그를 죽음으로 받아들였을까. 의문은 그때마다 해소되었다. 밤하늘보다 어두운 색을 가진 사내는 텅 빈 것 같은 암흑을 두를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걷히면 주변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평범하지 않았던 소녀는 그럼에도 사내를 데려갔다. 언제 삼켜질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도 그를 품었다. 그 힘은 단지 파괴를 위한 게 아니라고 늘 되뇌었다. 소녀의 믿음이자 바람은 어느새 사내의 마음속에도 각인됐고, 죽음이라 불리는 존재는 점점 변해갔다. 어둠이 찾아와도 모든 걸 집어삼키지 않기를. 사내가 기억하는 것들은 변함없이 남도록 그들을 지키기 위한 힘이 되었다.

 

 긴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이 옅어지는 동안 사내의 피가 울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괜찮다. 다시 선명하게 울리는 날이 올지라도 자신의 과오가 되풀이될 일은 없다. 그렇기에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혹시 아직 미숙하고 어설픈 자식이 있다면 잠깐 찾아가서 도와주고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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