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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꽃을 담은 소녀
작가 : 심연고래
작품등록일 : 2019.9.3

특별한 힘을 가진 소심한 소녀의 이야기

 
03. 변화는 언제나 갑자기 찾아온다. (3)
작성일 : 19-09-26 15:59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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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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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인은 어머니와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돌아갔다. 아이들이 다들 밖에 나가있어서 빈 방이 많다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미리 잡아놓은 방에 집을 두고 왔다며 가버렸다. 데인의 말도 맞기는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즈반인게 안 봐도 뻔했다. 한사코 거절하면서도 데인의 얼굴에서는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침 일찍 빵집에 들리겠다고 여러 번 되뇌며 현관을 나섰다. 초행길이니 가는 동안 마을을 소개해주겠다며 어머니께서도 그들을 따라나섰다. 나는 현관 앞에서 사람들을 배웅하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무슨 일인지 쌍둥이들은 아직 오지 않았고, 집안은 적막이 가득했다.

  “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화가 넘쳤던 거실에 나 혼자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평화로우면서도 쓸쓸한, 모순적인 감정이 고요와 함께 내려앉았다. 찻잔도, 접시도 텅 빈 채 크림과 찻잎 찌꺼기만 여기저기에 묻어있었다.

  “휴....”

  일단은 치우자. 나는 부엌에서 쟁반을 가져와 빈 그릇들을 하나씩 쌓았다. 평소라면 들리지도 않았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렸다. 부엌과 거실을 두어 번 오가니 탁자가 깨끗해졌다. 행주를 적셔 탁자를 대충 닦아놓고, 수도꼭지의 물을 틀었다. 깨끗하고, 차가운 액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렸다. 두 손을 물에 담그니 복잡하게 뒤엉켜있던 머릿속이 조금은 차분해졌다.

  “후....”

  이제 곧 닥쳐 올 일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 누구도 소리 지르지 않고, 싸우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에 대화에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그 대화는 나를 옥죄어 올 것이다. 결과는 상관없다. 아니, 상관은 있다. 내가 이기면 집에서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고, 지면 가기도 싫은 곳에 끌려갈 것이다. 하지만 그 대화는 어떻게 되든 간에 꽤 오랜 시간, 어쩌면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긁어댈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늘 그래왔으니까.

  “으악!”

  거품을 휘감은 접시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다행히도 개수대 바닥에 닿기 전에 붙잡았고, 접시는 멀쩡했다. 후... 이거 손님들 올 때만 내는 엄청 귀한 건데.... 깨졌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렇게 딴생각하다가 다 깨먹는 거 아니야?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뭐 하나라도 잘 보이고 시작해야 조금이라도 더 나을 테니까.

  나는 허리를 두어 번 스트레칭한 다음 자세를 바로잡고 접시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뭐라고 해야 할까? 공모전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별로 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고? 친구랑 약속이 있다고 할까? 날짜 중간에 끼어있어서 뺄 수가 없다고. 그게 먹힐까? 하지만 누구 랑 만나자고 하지? 셋 다 여행 갔잖아....

  아....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그냥 애들이랑 여행을 가버렸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를 하면 뭐 해. 진짜 내 인생 더럽게 꼬이는구나.

  “푸우우우우.....”

  한숨만 나왔다. 진짜 맘 같아선 산꼭대기에 올라가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내가 뭘 하지도 않았는데, 일이 이따위로 돌아가는 건 정말 운명이라는 게 있다는 이야기인 걸까? 만약 운명이 있고, 그 운명을 사람들이 말하는 신이라는 어떤 거룩한 존재가 한 땀 한 땀 손수 적어내려가는 거라면.

  아아아아악 이 거지 같은 새끼야!

  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 후. 요즘 방학이라 산에 마을 사람들도 많은데.... 화풀이할 곳도 없고 서글프다 서글퍼....

  몇 번 째인지 알 수 없는 한숨을 또 내쉬었을 때, 거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바스락거리는 가벼운 봉지 소리에 온신 경이 곤두섰다.

  “정리 중이니?”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봤다.

  “네. 오래 두면 크림이 잘 안 지워질 거 같아서요.”

  “그렇긴 하지.”

  어머니가 가져온 종이봉지 안에는 버섯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내일 아침은 양송이 크림 파스타겠네... 어쨌든 손님이 왔으니 당연한 메뉴이기는 하지.

  어머니는 바구니에 버섯을 한가득 담아놓고 식탁에 앉으셨다. 나도 다시 개수대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저녁은 뭐가 좋겠니?”

  “어... 글쎄요. 전 다 좋아요.”

  “그래? 흐음. 단호박은 어제 다 먹었으니 오늘은 간단하게 뭐가 좋을까....”

  침묵이 흘렀다. 부엌에는 내 손에서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들만이 맴돌았다.

  “그나저나 일주일 동안 있으려면 입을 옷이 부족할지도 모르겠구나.”

  쿵. 하고 모든 것이 내려앉았다. 시작이구나. 이렇게 또 시작이구나....

  “뭐... 일주일이면 그럴 수도 있겠죠.”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가벼운 일이라는 듯이, 이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래? 그럼 미리 몇 벌 사놓아야 되겠구나.”

  “가게 되면 그렇긴 한데.... 안 갈 거라 괜찮아요.”

  “... 안 갈 거니?”

  “네.”

  짧고 간단한 말이었지만, 내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그 질문이 던져졌다.

  “왜?”

  눈가가 타들어가는 듯 아려왔다.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두 눈을 꽉 감았다. 안 돼. 울지 말자. 울면 안 돼.

  “그냥... 저는 여행은 별로 안 좋아해서요.”

  “너 여행은 한 번도 안 가봤잖니. 안 해봤는데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아.”

  “다들 처음부터, 여행을 떠나보기도 전부터 좋아하잖아요. 넬리 언니도 도시에는 한 번도 안 가봤으면서 그렇게 가고 싶어 하고, 여행 가는 사람들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면서 좋아하잖아요. 그 사람들도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거기가 좋다고 말하는데. 해보지 않았어도 안 좋아할 수도 있잖아요.”

  “하아...”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만큼이나 무거운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말을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은 깊은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난 어머니를 설득해야 하고, 어머니는 날 설득하려 하실까. 왜 이렇게 안 맞는 걸까. 내가 다른 애들처럼, 요즘 사람들처럼 그런 성격이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왜 난 이렇게 태어난 걸까?

  “마닐드…. 이건, 물론 꼭 가야만 하는 그런 문제는 아니야. 하지만 엄마는 네가 지금보다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단다. 넌 열일곱이나 됐는데 아직 이 마을 밖에도 나가보지 않았잖니. 존이랑 카뷔, 넬리도 다들 네 나이 전에 한 번씩은 나가봤는데, 넌 계속 여기 있었잖아? 네가 아무리 여기서만 살 거라고 해도 사람은 다양한 경험을 해 봐야 해.”

  경험. 그놈의 새로운 경험.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것과는 거리가 아주 머니까. 그리고 세상은,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숭배하듯이 떠받든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왜 그렇게 새로운 걸 좋아하는 걸까?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좋아할 수가 있는 거지?

  “이건 정말 드문 기회야. 이 마을에서 왕궁까지 간 사람은 별로 없어. 게다가 마법사들의 도움을 안 받으면 몇 주가 걸리지만, 이번엔 더 빨리 갈 수 있지.”

  “하지만 언니 말고는 아는 사람도 없고….”

  “엄마도 아는 사람 없었지만, 지금은 여기서 잘 지내고 있잖니? 누구나 다 처음이 있는 거야. 거기서 사는 것도 아니고, 여행하는 거잖니. 다들 하는 건데, 너라고 못 할 게 뭐 있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강경했다. 나는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변명은 이 정도가 전부였고, 이걸로는 어머니를 이해시키지 못한다는 걸 잘 안다.

  그럼 진실을 말해야 할까?

  진짜 모든 걸 다 말해버릴까?

  마음속 어딘가에서 속삭임이 들려왔다. 다 말해. 그냥 말해버리자. 그럼 이해해주실 거야. 안 가도 된다고.... 할까?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게 말해주실까?

  “분명히 갔다 오면 넌 훨씬 발전할 수 있을 거야. 아무것도 아니니까 가보렴. 응? 이번 한 번만 갔다 와 봐. 해보지도 않고 무서워하면 앞으로 어쩌려고 그러니….”

  결국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나는 손을 개수대에 넣은 채로 훌쩍거렸다. 작게 들려오던 속삭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없었다.

  자신이 없었다. 어머니께서, 이버지께서, 언니들과 오빠가 나에게 괜찮다고, 안 해도 된다고 말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짊어져야 할 수많은 의무들을 가족의 목소리로 듣고 있는 나 자신이 선명하게 떠오르기만 했다.

  억울했다. 왜 나한테 이딴 능력이 있는 걸까?

  화가 났다. 왜 내 말은 안 들어주는 거야?

  그리고 슬펐다.

  난 혼자구나.

  뒤에서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마닐드. 너무 걱정 말렴. 넌 잘 해낼 거야. 성실하고, 착한 아이잖니.”

  난 혼자야....

 

 ***

  거지 같은 세상.

  나는 침대에 똑바로 누워 천장을 쳐다봤다. 희미한 달빛이 검은 천장 위에서 물결처럼 일렁였다. 집안은 고요했다. 벳지마저 내 눈치를 보며 입을 꼭 다물었다.

  거지 같은 세상.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봤다. 천장만큼이나 새까만 하늘에는 커다란 달과 수많은 별이 빼곡히 박혀있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그냥 이렇게 조용히 살고 싶은 것뿐인데.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된 거라고. 내가 뭐 어려운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실력이 없어서 빵 만들다가 집을 다 태워 먹는 것도 아니잖아? 근데! 왜! 그러면 안 되는 거냐고!

  아... 열받아. 아아아아악 열받아!

  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람들이 화가 나면 책상을 쓸어버리고 물건들을 집어던지던데, 그 기분. 정말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대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방 안을 의미 없이 돌아다녔다. 방 안은 내가 좋아하는 인형과 책, 물건들로 가득했다. 익숙하고 포근한 나만의 공간. 오랜 시간 동안 내 손으로 꾸며온 내 방을 도대체 왜 떠나야 하는 걸까?

  그러다 문뜩 문 옆에 세워놓은 커다란 여행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낡은 여행가방은 어머니께서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가져온 가방이라고 했다 그 사이에 새 여행가방도 많이 샀지만, 넬리 언니가 다 들고 가는 바람에 나는 낡은 가방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저 안에는 나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과 함께 내가 아끼는 물건 몇 개도 넣었다. 십여 년 동안 꾸며온 내 방안의 축소판이라고나 할까.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커다란 곰인형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다고 짐을 싸는 내가 머저리 중의 상 머저리지!

  “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읍! 으으윽! 으읍!”

  인형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진짜 짐 싸서 집 나가버리는 넬리 언니의 고집이라도 배우고 싶다. 도대체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는 걸까? 하긴, 애초에 내가 용감한 사람이었다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겠지. 위인전에 나오는 그런 사람들처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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