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판타지/SF
너에게 행운을
작가 : 로기
작품등록일 : 2019.9.19

 
축제?
작성일 : 19-09-26 09:58     조회 : 189     추천 : 0     분량 : 1867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째서?!!"

  "뭘 어째서야. 못했으니까 이러지."

  교사의 층마다 중심에 걸려있는 게시판에는 커다랗게 이번 성적의 석차와 점수가 적혀 있었고 나와 반 아이들은 그것을 확인하러 왔다. 그리고 확인을 한 무한이녀석이 왜 석차의 숫자가 반의 수의 끝과 같냐며 소리치고 있었고 나는 예상했던 등수였으니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반 성적은 놀랍지 않았지만 옆에 있는 개인 성적을 보고 놀랐다. 내가 정말로 1등이었으니까.

  "알고 있었어?"

  지태가 석차를 보고 놀라고 있는 내게 다가와 의중을 떠보고 있었다.

  "그렇지. 우리 반에도 성적이 잘 나오는 애들은 있지만 그보다도 낮은 애들이 더 많으니까."

  아무래도 제일 부족한 아이들을 먼저 봐주었고 시간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으니 이럴 것이라고는 예상하기는 했지만 마지막까지 봐준 셋은 정말로 예측불가였다. 가장 점수를 높이고 싶기도 했다.

  "너희 정말로 대단하다."

  "아니, 뭘 이런걸로."

  내 바로 뒤에서 성적을 보고 있던 무한이, 수혜, 한솔이에게 한소리 했지만 셋 다 내 말에 뒤통수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했다. 칭찬 아니야.

  처참하게 깨진 반 등수를 본 각자의 기분을 가지고 우리는 일제히 반으로 돌아왔다.

  사실 나는 우리 반의 등수를 생각하기보다는 꼴지인 우리 반의 초석을 마련해주는 셋의 성적이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우리 반의 등수는 천천히 올리면 되는 거니까 말이다. 제일 바닥이라면 올리기도 쉽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기대했지만 배신당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이미 끝난 것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게 열심히 가르쳐줬는데 미안해."

  우리 학교는 상당히 특이한 곳인데 그 이유로 하나 손꼽히는 것이 성적을 발표하는 날이 따로 있으며 그날에는 수업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업이 없어 평소보다 빨리 집으로 향하는 중 복도에서 수혜가 내게 사과를 한 것이다.

  "미안해 할 필요없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부탁을 받기는 했으나 거절할 수도 있었음에도 나는 부탁을 들어주었으니까 공부를 하도록 만들지 못한 내가 잘못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내 머릿속에는 다음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운아!"

  이제는 유아가 갑자기 업혀와도 익숙해진 나는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에잉, 이제는 반응도 안해주네."

  유아는 입으로는 아쉽다는 듯이 얘기하면서 내 등에서 내려올 생각은 전혀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가 편한걸~."

  그렇다고 한다.

  "이제 적응됐나봐?"

  "응. 매일 아침 당하면 적응할 수밖에 없잖아?"

  수연이도 천천히 내 옆으로 와서는 잔잔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렇게 인기척 없이 나타나는 것을 계속하다보면 어쩌면 수연이는 최초로 능력을 쓰지 않고 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농담이지만.

  학교가 빨리 끝났지만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단골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페에 도착할때까지 유아는 내 등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이제 체육대회도 곧이네. 오늘 성적이 나왔는데 말이야."

  흥분이 되는 듯 유아는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체육대회라니?"

  "몰라?"

  "응."

  "어떻게 우리 학교를 다니면서도 학생이 체육대회를 모르니."

  수혜가 거침없이 내게 비난을 가해왔다. 하지만 정말로 모르는데 어떻게 해요. 대략적으로 어떤 느낌의 행사인지는 알지만 정확한 것은 모른다. 학교에서 한 적이 없으니 모르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너희도 안했잖아?

  "그때마다 운이는 집에서 공부하거나 체육관에 가 있어서 모를거야."

  "하긴 그렇겠다."

  언제길래 내가 학교를 안가고 집에서 공부를 하는거지?

  "그 왜, 이맘때쯤에 학교에서 공지를 하나 내어주잖아? 쉬어도 좋다고 하면서 일주일정도."

  이제야 기억이 났다. 수연이의 말대로 중간고사가 끝나면 항상 학교에서는 쉬는 날이라면서 공지를 해왔고 나는 수업이 없다면 굳이 나갈필요는 없겠다 싶어 집에서 공부를 하거나 도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밖에 나가 사람들을 도왔다.

  "그러고보니 그때에는 도시가 활기차던데 무슨 날인가 했더니 체육대회였어?"

  "맞아. 그것도 우리 학교에서 하는 것뿐이지만 도시에서는 축제처럼 벌이는 거고. 학교축제때도 비슷해."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날무렵에 있는 쉬는 날들은 학교에서 축제를 열기 때문이고 그것도 도시에서 크게 축제를 한다는 얘기였다. 오, 이곳에 그런게 있었어?

  "학교에서 하는 행사인데 얼마나 크겠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 학교 전국에서 모이는 학교이고 외국에서도 알아주는 곳이니까 도시에서 크게 해주는거야."

  이게 잘 벌리니까 하면서 수연이는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였다. 오호라 그런 건가.

  "무엇보다 체육대회는 학생들에게 기회이기도 해. 능력에 맞는 직업을 갖고 싶은 아이들의 무대이기도 하니까."

  수연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학교는 '헌터'관련이 가장 크기는 하지만 다른 직업에 관련된 과목 교육에 힘쓰고 있기 때문에 그에 관련된 사람들이 모이며 전망있는 학생들을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도시에서는 환영하고 나라에서도 지원하고 있다고 말이다.

  "정말 큰 행사인가보네."

  "응, 맞아."

  수연이의 설명은 이해하기 쉬웠고 기억을 떠올리며 들으니 도시가 얼마나 활기 찼는지 기억해냈다.

  "어? 운아 기억 안나? 우리 어렸을때 놀러 나왔었는데."

  유아는 잠자코 듣고 있더니 깜짝 놀라며 내게 어렸을 때의 일을 물어왔다.

  "그랬어?"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꽤 큰 행사이기도 하고 축제라면 즐거운 분위기였을테니 기억이 날만한데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러네. 부모님들과 다같이 밖에 나와서 즐겼었는데."

  수연이도 기억이 난다는 듯이 유아의 말에 동의했다. 이거 나만 기억 안나는 그런건가? 곤란한데.

  "음……."

  나는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는 느낌으로 기억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축제가 있었다는 것의 파편조차도 없었다.

  머리를 쥐어짜듯이 기억해내려고 하는 나를 보고 유아와 수연이는 웃음을 터트렸다. 내 얼굴이 그렇게나 우스꽝스러웠나.

  "그야 기억이 안날만 하지 그때 너 아팠으니까 집에 있었거든."

  유아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드디어 기억해냈다. 항상 멀쩡하던 내가 축제가 열리는 주만 되면 아파서 그 주에는 움직이지 못했었다. 놀러 나가는 유아와 수연이가 너무나 부러워서 아프면서도 나가려고 했던 것을 아저씨들이 말렸던 기억도 났다. 아무래도 8년 전 기억이기도 하고 아팠을 때이니까 떠오르지 않을만 했다.

  "내가 아팠던 주가 항상 축제였구나."

  그러고보니 은근슬쩍 수연이도 이제 나를 놀리기 시작한 거 같은데 이거 내 착각아니지?

  "나도 동생이랑 엄마한테 혼나가면서 몰래 나와 놀았었는데."

  수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지 추억을 그리는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다들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 나만 없었다. 뭐, 상관은 없어. 없다고.

  "수혜야, 어머니 건강하시지?"

  "응? 갑자기? 건강하시지."

  수혜는 깜짝 놀라면서도 내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언뜻들으면 나쁜말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수혜가 엄마에 대해서 얘기하니 갑자기 생각난 것뿐이었다. 나 혼자 추억이 없다고 일부러 화제를 돌린건 아니라고.

  "아니, 네가 어머니 얘기를 꺼내길래. 갑자기 생각났어. 며칠전에 뵙기는 했지만 아주머니도 모르는 상처가 났을수도 있으니까."

  "괜찮아. 내가 다 살펴봤으니까."

  며칠전에 감사인사를 다시 하고 싶다고 하시면서 찾아온 수혜의 어머니를 뵈었는데 건강하신 모습이 보기는 좋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어서 물어본 것이었다. 다행히 아무런 상처도 없으신 모양이다.

  "동생도 아무런 상처 없으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동생에 관해서도 확인해본 듯 수혜는 내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해주었다. 이제 막 친해진 수혜였지만 내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친구들에게 항상 듣는 얘기지만 표정에서 생각을 읽기 쉽지만 성격조차도 알기 쉽다고 하니 그럴만했다.

  나의 화제 전환은 성공한 상태로 우리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카페를 나섰다.

  "오늘은 뭘하고 놀까?"

  "그러게. 나는 볼링?"

  유아와 수혜가 즐겁게 이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공부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꽤 떨떠름했지만 시험성적이 나온 날이니 놀아도 괜찮겠지 싶었다. 억지로 합리화하는 느낌이지만 아니다.

  "볼링? 좋아! 오늘은 그거야!"

  여전히 나에게는 선택권은 없었고 수연이는 아무말없이 앞서가는 두 막무가내를 따라갔다. 이럴때보면 정말 수연이가 누나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어쨌든 볼링이라는 것을 하러 가게된 우리인데.

  "오케이. 이 공을 굴려서 저기 있는 핀들을 쓰러트리는거지?"

  생각보다 거리에는 놀 수 있는 곳이 많았고 그 중에서 가장 큰 볼링장에 온 우리는 사장님이 정해주신 라인에 자리를 잡고 유아가 먼저 한다며 나아갔다. 기운차게 발을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간 유아는 공을 라인이 그려진 공을 놓으려는 순간

  "으아아아!"

  성대하게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발이 그어져 있는 선을 넘어버려 미끄러지고만 것이다. 웃으면 안되지만

  "푸흡."

  미안하게도 나오는 웃음을 참기에는 힘들었다.

  "웃지마아아아!"

  우리 중에서 부끄러움이랑 가장 먼 유아가 귀까지 벌게진 상태로 웃고 있는 우리에게 소리쳤다. 그 유아가 말이다. 항상 나를 놀리기 바쁜 유아가 달려들면서 나를 주먹으로 여러번 쳤다. 힘이 잔뜩 들어가서 아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받아줄만하다. 사실 방금 웃었을때 약간 통쾌했으니까. 똑같은거라고 생각하면 아프지 않았다.

  "유아야, 그렇게 하는게 아니란다~."

  수혜는 유아에게 혀를 차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유아는 삐졌는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련된 소파에 앉아 수혜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애다.

  "자, 봐! 이게 바로 볼링이야!"

  수혜는 차근차근 한발씩 내딛고서 레인의 끝에서 볼링을 모르는 내가 보아도 안정적인 자세로 공을 직선으로 보내 핀을 넘어트렸다. 넘어간 핀은 7개였다.

  "어때?"

  "우으으."

  전부 넘어지지 않은 핀을 맞추기 위해 던진 공은 1개를 맞추고 끝났지만 이번 순서를 마친 수혜의 기고만장한 표정에 유아는 더욱 분해졌는지 이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다음은 수연이였는데 평범하게 아무런 말도 없이 완벽한 자세로 공을 굴리더니 핀을 전부 넘어트리고 유유자적하게 자리로 돌아와 마련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유려한 행동들이기는 했는데 손에 들린게 캔으로 된 음료수라는 것이 아쉬웠다.

  "어때?"

  "수연이가 한 거잖아!"

  수연이가 핀을 한 번에 다 넘어트렸다는 것에 놀라고 있던 수혜는 자신이 한것이 아님에도 의기양양한 유아에게 한소리했다. 유아가 한 게 아니긴 하지.

  "하지만 나랑 수연이는 둘이서 하나인걸?"

  이제는 대놓고 수연이의 실력이 자신이 한 것처럼 이용하려고 하는 여우였다.

  "그러면 수연이랑 유아가 팀하고 나랑 운이가 팀으로 해서 저녁 내기라도 할래?"

  유아의 모습에 조금 자존심에 금이 간 수혜가 그렇게 의견을 냈고 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유아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 아직 굴리지도 않았는데.

  "운아 잘해야해!"

  처음하는 나에게 부담스러운 응원을 해주는 수혜였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은 해보겠지만 잘 모르겠다.

  나는 레인 끝에 서서 수연이가 하던 모습을 머릿속에서 되새겼다. 수연이가 밟던 스탭, 무게중심, 공을 놓는 타이밍 정도를 기억해내고 몸으로 따라했다. 그 결과 핀은 전부 넘어갔다. 옆에서 스핀을 넣으며 하는 그런 화려한 방식은 아니지만 전부 넘어가니 기분이 좋았다.

  "뭐야? 처음하는거 아니야?"

  "응, 맞는데? 나도 지금 꽤 놀라고 있어."

  말은 덤덤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 마음속은 보기보다 정신이 없었다. 아무리 따라하려고 한다해도 정도가 있는데 지금 내가 한 것은 결과까지 따라한 것이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몸을 이용하는 것은 내 특기라고 해도 되니까 그럴만했다고 생각한다.

  "후후후. 우리가 이긴 것 같은데?"

  내가 치기 전엔 불안해하던 수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아에게 비웃음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시비로 시작해서 시비로 끝나는 볼링을 시작하게된 우리였으나 결과는 나와 수혜가 이긴 것으로 됐지만 유아와 수혜는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기는 일이 되었다.

  "아니, 어떻게 나랑 유아만 이렇게 못하는데!"

  "너희는 처음이라면서 그렇게 잘하는거야!"

  처음과는 다르게 죽이 척척맞는 유아와 수혜는 볼링에서 서로 적이었던게 맞나 싶을정도였다.

  "모르지."

  "나는 가족끼리 가끔 와서 쳐."

  수연이는 의외로 부모님과 자주 볼링을 치는 일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는걸?"

  말 그대로였다. 그래서 어째서인지 수연이도 모르지만 잘 치시는 아저씨에게 배워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아저씨가 볼링을 하신다는게 약간 상상이 되지 않는다.

  "으으."

  볼링을 할 때만 생각해도 짜증이 나는지 유아는 아직도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 화를 내도 바뀌는건 없어.

  "후우. 그럼 내기는 우리가 졌으니까 저녁은 우리가 낼게."

  그래도 약속은 지키는 유아였다. 수연이는 애초에 약속을 어길 생각도 없었을테고 그냥 친구들과 노는 것에 의미를 더 두고 있어서 지든 이기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볼링은 처음이었고 내기도 처음이었지만 볼링은 재미있었고 내기로 얻어먹는 공짜 음식도 정말 맛있었다. 이래서 남에게 얻어먹는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하나보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는 집으로 곧장 향하지 않고 도장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어서와라."

  관장님께선 평소처럼 담담한 어조로 나를 환영해주셨다. 이 모습을 보고 무관심하다고 착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관장님께서는 최고의 관심을 쏟고 계신거나 다름없다. 사람들을 보고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유심히 관찰하신다.

  "어서와~."

  "오, 형 오늘은 빨리오셨네요."

  우진이형이 오늘은 나보다도 먼저와 있었다. 항상 형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시간을 뺏기고 먼저오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니까 오늘은 운수가 좋아."

  형, 그거 플레그예요.

  도장에 들어와 운동을 하고 있는 형들과 모두 인사를 나눈 후 나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에 워밍업을 시작했다. 오늘은 몸만 풀고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꽤 천천히하네?"

  우진이형이 옆으로 다가와 내가 평소보다 워밍업을 약하게 하는 것을 보고 궁금했었는지 물어왔다.

  "네. 조금 피곤한 것 같아서 집에 빨리가서 쉬려구요."

  "그래? 빨리 온 기념으로 한 판 하려고 했는데."

  우진이형은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장난을 쳤다.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들리는 소리는 전혀 장난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죄송해요. 운수 좋은 날이신데 제가 망치는게 아닌가 싶네요."

  왠지 신나 있는 형을 놀리기 위해서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형은

  "아니야. 언제나 네가 도와주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뭐."

  내 장난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참고로 우진이 형이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을때 중간에 들어가 빼오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중학생이었을 무렵 아무런 생각없이 도우려고 한 행동이었지만 형은 처음 보는 내게 이럴때마다 도와달라며 요청해왔고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알겠다고 한 것이다. 웬만해서는 항상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나도 이제는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고하세요."

  처음에 생각한대로 땀이 조금 날 정도로만 운동을 한 뒤 도장을 나왔다. 땀이 날 정도라고는 했는데 2시간이 지나있었다. 역시 너무 오랫동안 운동을 한 탓에 이제는 체력이 너무 붙어버린 듯하다. 웬만한 일로 지치지 않는다는게 좋기는 하지만 어떨때는 오해를 부르지 않을까 싶다. 아니려나? 아님 말구~.

  오랜만에 여유로운 귀갓길은 나에게 밤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까지 안겨주었다. 여유로운만큼 주변을 돌아보기 좋았는데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시간이 되니 철로된 갑옷을 입고 검을 들고 있거나 지팡이 같이 평범하지 않은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이 바로 헌터들이다.

  우리 학교로 오는 학생들의 주로 희망하는 직업이 헌터다. 문 안쪽에 있는 괴물들을 처치하기 위해서 있는 사람들인데 인기가 있는만큼 벌이도 잘 된다는 듯하다. 어렸을때는 나도 헌터들이 멋져보여 되고 싶었지만 중학생때부터 생각이 바뀌어 곤란한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헌터들을 보니 생각나는데 최근에는 근처에서 문이 열리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정말 다행이다. 헌터들이 늦게 발견하게 된다면 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퍼질테니까 말이다.

  오늘 하루는 왠지 감정의 기복조차도 거의 없는 느낌이다. 착각이 분명하지만 그런 기분이다.

  집에 도착해 목욕을 마치고 천천히 잠에 들때까지 나는 고요한 마음 덕분에 편안하게 잠을 청했다.

  "안녕~. 일어났니?"

  다음날 아침 나는 언제나처럼 일출과 함께 일어난 나는 간단히 씻기 위해서 거실로 나왔는데 거기에는 익숙한 뒷모습의 여성이 있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집에는 맛있는 냄새가 퍼져 있었고 그 냄새는 내게 너무나 그리운 것이었다.

  "오셨어요?"

  "그래. 오랜만에 보는구나."

  소파에서는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연락도 없이 오셨어요."

  "우리가 항상 그렇지 않니."

  "그렇긴하죠."

  자연스럽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잠에서 깨어난 나를 매우 느긋하게 반겨주는 두 분은 부모님이셨다.

  "진짜 언제 오셨어요?"

  "방금 막 도착했단다. 오랜만에 귀여운 우리 아들 자는 모습을 봐서 너무 좋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잘하신다.

  "아들, 아침 먹어야지."

  "네. 그전에 동네 좀 돌고 올게요."

  "그러렴~."

  어머니는 내가 아침에 조깅을 하든 뭘하든 좋다고 하시면서 흔쾌히 허락하셨다. 아버지는

  "오호. 우리 아들 이제는 아저씨한테 배우는 것뿐 아니라 혼자서도 하냐? 아빠도 같이 가자."

  방금 아버지가 아저씨라고 부른 사람은 관장님이다. 내가 도장을 다니게 된 계기가 아버지가 관장님을 소개시켜주셔서 다니게 된 것이다. 두 분께서는 꽤 오랫동안 친구사이로 지내셨다고 하는데 처음 들었을때는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관장님을 알게되니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도 관장님에게 이것 저것 배우셨다고 한다. 무엇을 배웠는지까지는 알려주시지 않았지만.

  "따라오실 수 있으시려나?"

  "후후. 이 아빠를 무시하지마라!"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시면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계시는 아버지가 체력이 나보다 약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같이 뛴다는 생각에 왠지 가슴이 간지러워 장난을 쳤다. 그렇게 나와 아버지는 장난을 치면서 밖으로 나와 약 10km를 평소처럼 달렸지만 아버지는 생각보다 지쳐보이셨다.

  "이야~, 우리 아들 이제 아빠보다 건강하네."

  아버지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시면서 나를 칭찬해주셨다.

  "아버지가 너무 늙으신 것뿐이에요."

  "아빠 아직 늙었다고 듣기에는 젊다."

  젊은 나이에 나를 낳으시기는 하셨지만 그래도 그렇게 젊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점점 늘어가는 흰머리가 나에게 걱정거리를 늘려주고 있다.

  "걱정하지마. 아무런 인사도 없이 너를 혼자 두지는 않을거니까."

  아버지는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상냥하게 쓰다듬어주셨다. 오랜만에 뵙지만 정말 변한게 하나도 없으시다. 돌아오시는 것만해도 힘드셨을텐데 나를 챙겨주시기까지 하시니 얼마나 피곤하시련지. 그럼에도 이렇게 나를 챙겨주시는 부모님이 너무나 좋았다.

  "네."

  아버지와 나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서 정확하게 씻고 나오는 것까지 맞춰서 만들어주신 음식을 먹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어머니께서는 항상 타이밍이 정확하시다. 어째서인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지만 아무말도 하시지 않으니 모르는 척하고 있다.

  "어떠니?"

  "맛있어요. 오랜만에 맛을 봐서 그런가 더 좋네요."

  어머니의 음식은 여전히 맛이 좋았고 내가 좋아하는 그대로였다. 나는 이 맛을 따라하기 위해 노력을 해보기는 했지만 똑같이 재현하는 것은아직까지 할 수 없다.

  "어머나, 우리 아들 고마워."

  환한 미소와 함께 어머니는 내게 감사를 표현하셨다.

  나는 부모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학교를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열린 우리집 문과 함께 들어온 유아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드물게 일찍 일어난 유아였다.

  "운아, 학교 가자…….?"

  "유아 왔구나. 어서오렴."

  그 상황을 나는 교복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나온 뒤 목격하게 되었다. 유아의 목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챙겨 나왔지만 나보다도 당사자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더 느긋한 모습으로 유아를 반기고 있었다.

  "오, 유아냐? 많이 컸네."

  아버지는 유아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어릴 때처럼 반기셨다. 이제는 고등학생인데도 같은 행동을 하는 걸 보면 아직 어리게 보고 계신 모양이다. 아버지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지고 있는 유아는 나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초등학생때부터 어딘가로 떠나시고 가끔 돌아오셨기 때문에 마주치지 못해서 얼굴을 모를 수도 있었다. 내가 축제때를 기억하지 못한 것처럼.

  "아저씨?"

  "오! 그래."

  유아는 나와 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의문형으로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그것을 아버지는 매우 활기찬 목소리로 반겨주었다.

  "으아아아! 안녕하세요!"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유아는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그대로 사과했다. 유아를 뒤따라 들어온 수연이는 자연스럽게 옆에 계시는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어머니와 수연이는 저렇게 보면 성격이 모녀처럼 닮은 것 같다. 하지만 수연이네 어머니도 우리 어머니와 성격이 비슷하시기 때문에 그럴만 했다.

  "이제 괜찮아. 어차피 너희는 가족이나 마찬가지니까 마음껏 들어오렴."

  어머니도 유아와 유아를 뒤따라 들어온 수연이를 느긋하게 반겨주시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리 봐도 우리 부모님 엄청나게 침착하시다. 침착하시기는 한데 그것보다도 너무 해맑으신 것 같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렴."

  아버지는 힘차게 팔을 흔들고 계셨고 어머니도 옆에서 작게 손을 흔들어 주셨다. 두 분께 적당히 손을 흔들고 먼저 가고 있는 유아와 수연이의 뒤를 따랐다.

  "언제 오신거야?"

  아직도 부끄러운지 볼이 빨간 유아가 내게 물어왔다. 왠지 어제까지만 해도 날뛰던 유아가 얌전하니 평소보다 귀여워보였다. 유아도 그렇지만 수혜도 가만히 있으면 참 예쁜데 말이다. 둘 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니. 그나저나 수혜는 지금까지 그 성격을 어떻게 숨겨온거야?

  "오늘 새벽에 돌아오셨대. 내가 일어나기 몇 분 전인가에 도착하셨다고 그러시던데."

  나도 꽤나 신경이 예민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생각했던대로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다.

  "외모가 여전하시네."

  "나도 놀랐어."

  수연이는 자신의 부모님과 다르게 아직도 외모가 여전하시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꽤나 놀랐다 가끔 돌아오셔서 얼굴은 보았지만 오실때마다 놀라고 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옛날과 같은 외모를 갖고 계신다는게 말이다. 주름 하나 없으시기는 하지만 그래도 흰머리가 자라는건 달랐다.

  "운이네 엄마는 여전히 예쁘시니까."

  유아가 부끄러운 것을 뿌리쳤는지 얼굴에 붉은기가 없어졌고 우리 어머니에 대한 칭찬을 하고 있었다. 둘 다 오랜만에 뵙는 것만큼 그 예전과의 차이가 없어서 더 신기한 듯 보였다.

  우리는 학교에 도착했고 각자의 교사로 향했다. 등교하기에는 빠른시간임에도 불과하고 학생들은 많았고 모두들 뭔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시험이라서 없었을 뿐이지 그전까지만 해도 많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로 체육대회는 중요한 행사이기는 한 모양이었다. 무려 방과후에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반에 도착한 나는 아무도 없는 반에 홀로 앉아 열심히 체육대회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보니 왠지 재미있어 보이기도 한다. 어쩐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체육관으로 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교에는 크게 지어진 체육관이 3채정도가 있었는데 각자 교사가 체육관을 둘러싼 듯한 형태를 띄고 있고 누구든지 체육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두었다. 헌터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능력에 익숙해지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불법적인 행위를 하면 바로 발각되도록 되어 있다. 이건 전부 학교 이사장이신 아저씨에게 들은 것뿐이지만.

  체육관 안으로 들어오니 예상대로 많은 학생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무슨 연습을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능력을 쓰는 아이들, 대련을 하는 아이들, 무기를 들고 모의전투를 하는 아이들 등등 매우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객석에는 선생님들께서 앉아계셨고 아이들이 있는 곳의 외곽에도 계셨다. 아마도 점찍어둔 학생이 있는 선생님들과 다치지 않도록 보고 계시는 선생님들이신 모양이었다.

  지켜보고 있으려니 뭔가 재미있어 보이지만 이번에도 나는 체육대회에 참가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래도 헌터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고 능력 자체가 단순하기도 했고 학생들이 나를 상대로 버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관장님께 배운 것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다.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봤을 때는 우리 학교에서 나와 제대로 대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능력이라도 쓰는 날에는 몸이 성치 않을 것이다. 물론 대련이 체육대회에서 진행할 경우에만 해당하지만 말이다.

  "오, 여기에 와 있었냐?"

  그렇게 계속 자리에 앉아 구경하기를 20분 정도가 되자 아까까지만 해도 앞에서 보이던 무한이 녀석이 나를 발견하고 뒤에 와 있었다. 어쩐지 갑자기 어디로 가더라 싶었어.

  "반에 있기에는 너무 심심해서. 요즘은 또 체육대회라고 준비하는 거 같으니까 재밌어보이잖아."

  "너 그런거에 관심있었냐? 전혀 없어보이는데."

  이녀석 가만보면 참 정곡을 찌르는 말만 한다니까.

  "관심없긴 했는데 최근에 친구들이 얘기를 하길래 궁금해져서."

  굳이 말하자면 관심은 있었으나 그날이 체육대회였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지만 말이다. 어떻게 나 도시에서 크게 하는 행사임에도 몰랐을까. 집에 있거나 도장에만 갔다고는 하지만 모를수가 없는데. 어지간히 나는 눈치가 없는 모양이다.

  "어때 나랑 내기라도 해볼래?"

  "갑자기?"

  "아니, 너 표정이 왠지 뭐라도 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것 같아서."

  나는 내 얼굴을 만져보며 그런가 했지만 전혀 표정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정도였다.

  "뭐로 할건데?"

  무한이가 갑자기 꺼낸 얘기였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서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어제부터 내기를 하게 되네.

  "간단하게 단거리 달리기라도 해볼래?"

  "얼마전에 체육시간에 했잖아?"

  "무슨 소리야. 이번에는 있는 힘껏 뛰어보라고 너."

  무한이는 팔짱을 끼고서 확신한다는 듯이 그렇게 내게 도발을 해왔다.

  "나 체육시간에도 열심히 뛰었는데?"

  "열심히는 뒤었겠지. 전력으로 뛰지 않았을뿐."

  이녀석 진짜 눈이 좋은건지 감이 좋은건지 모르겠지만 운동을 하는 녀석이라서 그런지 잘 아는 듯하다. 근데 나 정말 열심히 뛰었다고.

  최근에 친해져서 알게된 거지만 무한이도 우리 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무술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나와 같은 반이니 헌터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듯한데.

  "알겠어."

  나는 무한이녀석의 웃음에 넘어가 결국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체육관은 사람이 많지만 너무 넓었고 남는 공간을 활용해서 달리기로 내기를 하기로 했다. 내기의 내용은 지는 사람이 점심에 매점에서 먹을 것을 사는 것이다.

  "잘 부탁해."

  "어, 어. 그래 맡겨둬."

  무한이는 아는 학생이 있었는지 불러서 심판을 맡아달라고 권했고 허락을 했다. 나를 보고 조금 당황한 것 같지만 무시했다.

  나와 무한이는 크라우칭 스타트가 아닌 스탠딩 스타트로 시작했다. 너무 자세를 잡고 하면 부끄러울 것 같다는 내 의견을 무한이가 받아준 것이다. 이제와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는게 이상하기는 하지만 부끄러운건 다른거다.

  "준비, 시작!"

  준비에 맞춰 자세를 잡은 후 시작에 바로 반응한 우리는 달리시기 시작했다. 스타트는 내가 더 빨랐다. 뒤를 보지 않아도 무한이가 조금씩 뒤쳐져 간다는 느낌을 받은 나는 속도를 늦췄다. 속도가 느려지자 내 옆으로 무한이가 다가왔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100미터이지만 조금씩 느려지니 결국 무한이가 이기게 됐다.

  "야! 뭐했냐?"

  무한이가 지정해둔 선을 통과를 한 뒤 내가 뒤를 잇자마자 녀석은 나를 돌아보자마자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무한이가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서 시선이 모이는 것을 느꼈지만 녀석은 신경쓰지도 않는 듯이 계속 말을 했다.

  "내가 있는 힘껏 뛰라고 하지 않았냐?"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야? 다시 해!"

  무한이는 통과지점을 시작점으로 하려고 하는지 그곳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는데 나는 현재 무한이가 왜 화를 내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다. 도장에서였다면 알았겠지만 이때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시 한다? 준비, 시작!"

  이번에도 내가 스타트가 더 빨라 먼저 앞으로 나아갔다. 아까와 똑같이 무한이가 점점 뒤로 쳐진다는 것을 느끼고 속도를 늦추려고 했지만 화를 낸 무한이가 했던 말을 기억해내고 나는 그대로 더욱 빨리 뛰어나갔다. 먼저 들어온 나는 서서 뒤를 돌아보고 따라온 무한이를 보았다. 정말 있는 힘껏 뛰었는지 무한이는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러는데도 땀 한방울 흘리지를 않네. 전력으로 뛴 거 맞아?"

  "그……. 아마?"

  아까보다는 확실히 빠르게 뛰기는 했지만 전력으로 뛰었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 좀 곤란하다.

  "됐다. 아까보다는 나으니까."

  방금 화낸것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만족했는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에 돌아가자."

  "그래."

  녀석이 먼저 반으로 돌아가자고 할 줄은 몰랐다. 밖에서 더 돌아다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이 생겨서 착각한 모양이다. 이런 선입견 좋지 않다.

  반에 돌아오니 없었던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안녕~."

  "응, 안녕."

  예전에는 없었던 반 아이들의 인사가 나를 향해서 왔다.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나도 인사를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것도 다 유아와 수연이가 말을 걸어줘서 빠르게 익숙해진 느낌이 있다.

  시험이 끝났으니 아이들은 평소보다 풀어진 상태로 수업을 듣기는 했으나 이 분위기가 사실 우리 반의 전형적인 분위기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대부분 잠을 자고 있으니까. 애초에 공부에 흥미가 없으니 수업시간에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니 꼴등이지. 그래도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였다. 수업은 확실하게 듣지만 점수가 나오지 않거나 듣지 않고 딴짓을 하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전국에서 모이는 유명한 학교라고는 하지만 어딜가나 이런 아이들은 있는 법이었다.

  "운아, 오늘 아침에 체육관에서 뭐했어?"

  "아무것도 안했는데?"

  "지금 학교에 네 소문이 쫙 퍼졌어."

  점심시간이 되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평소에 가던 공원으로 와서 오늘은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먹으려고 하는데 수혜와 수연이와 같이 온 유아가 내게 그런 말을 얘기했다. 나랑 무한이가 아침에 학교에 와서 체육관에서 달리기 내기를 했던 것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소문까지 퍼질 일인가 싶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하니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겠지.

  "그냥 친구녀석이랑 내기를 한 것뿐인데."

  "정말? 그것뿐이야?"

  "응."

  유아의 말투가 왠지 심각한 것을 보면 소문이 이상하게 퍼진 느낌인데.

  "아침에 체육관에서 네가 같은 반 애를 데리고 괴롭히고는 돈을 빼앗았다고 하던데."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얘기인가. 그냥 친구녀석이랑 재미를 위해서 내기를 한 것뿐인데 어떻게 이야기가 그렇게 퍼지는건지.

  "저번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자잘한 소문은 퍼지지 않았을테지만 이제는 조심해야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조심해야한다니 그런게 어디있나.

  "라는건. 뭐, 보편적인 의견이지만 말이야."

  유아는 심통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얘기하던 것을 그만두고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처럼 사람들 눈치 안보고 지내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같은 직장을 다닐 것도 아니고 눈치만 보고 살면 지치잖아."

  "맞아. 굳이 그런거 신경쓰지 말고 지내."

  수연이도 유아도 고맙게 그런 얘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조언해주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사람들의 평판을 하나하나 신경쓰다보면 나만 힘들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친한 사람들에게까지 민폐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 일이 있었어? 나는 몰랐는데."

  수혜는 여전히 마이페이스였다.

  점심을 마치고 반에 돌아왔더니 아이들이 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소문에 대해서 들은 모양인데. 그렇게까지 신경써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말이다.

  "괜찮아?"

  지연이가 나에게 다가와 걱정되는지 미간을 좁히며 말을 걸어왔다. 느긋함이 장점이 이 아이가 나를 걱정할 정도면 꽤 심각한 모양이다. 아까 유아에게 들었을 때도 생각했지만 이 소문이란게 진짜 위험한 것 같다.

  "응, 괜찮아."

  "괜찮다니까 다행이네."

  "걱정해줘서 고마워."

  지연이는 그게 용건이었는지 말이 끝나고 바로 다시 자리에 돌아가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 역시 모범생이라고 해야할까 수업시간 전에 준비를 하다니. 우리 반에서 몇 안되는 공부를 열심히하며 잘하는 아이라서 매우 정이 간다.

  "인기 많네."

  화장실에 가겠다고 해서 먼저 온 나를 보고 수혜가 엉큼한 미소와 함께 나를 놀렸다. 수혜도 이제 유아에게 물들어서 나를 놀리기 시작했으니 이제 기댈 곳은 지연이 뿐이었다. 반에 있는 여학생들도 나를 놀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친한건 수혜와 지연이니까 역시 기댈 곳은 지연이 뿐이다. 왠지 분위기가 우리 어머니와 비슷하니까 더 친근한 느낌이다.

  오후에 수업을 마치고 여느때처럼 청소를 마친 뒤 공원에 가서 시간을 떼운 후 반으로 돌아오니 이제는 남아있는 친구가 없는 반을 보니 어쩐지 허전했지만 혼자있다는 이 기분이 꽤 좋았다.

  그렇게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한 마음을 안고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어느때보다도 예뻐보이는 노을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었고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너무 따스한 기분이었다.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잠에 빠지려고 하는 순간 반에 있는 문이 열렸다.

  "운아 잠시만 괜찮겠니?"

  선생님이었다.

  "네, 누……. 선생님."

  학교이니만큼 누가 들을지 모르니 자연스럽게 나올뻔한 누나를 입속으로 집어넣고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내가 이래서 걱정한건데 이제 그 걱정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선생님의 표정이 꽤 심각하신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그 오늘 들은 얘긴데."

  선생님도 소문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신 모양이다. 오늘은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은데 조금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복잡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아, 저 괜찮아요."

  "괜찮아?!"

  선생님은 소스라치게 놀라시며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음? 저런 반응이 나올 문제가 아닌데? 다른 얘기였던걸까?

  "죄송해요. 다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아, 그렇네. 말도 제대로 안했구나."

  당황한 선생님께서도 정신을 다시 차리셨는지 심호흡을 하시고는 다시 입을 여셨다. 심호흡까지 할 일인가?

  "오늘 집에 부모님이 오셨다고 들었어."

  그런 얘기였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괜한 얘기를 했다. 요즘 친구들이 많아져서 자만에 빠진걸까. 조금은 자중해야할 것 같다.

  "네. 새벽에 들어오셨어요."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시고는 나를 붉어진 얼굴로 똑바로 눈을 마추고는 말하셨다.

  "그래서 오늘 인사를 드릴까 하는데 괜찮겠니?"

  "네, 얼마든지요."

  당연히 된다. 바로 옆집이시고 이웃이시니 얼마든지 될 것이다. 우리 부모님께서도 누군가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시기도 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가장 좋아하시니까 말이다.

  "그럼 이따가 찾아갈게."

  "네~."

  선생님은 기쁜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반을 나가셨다. 어째서인지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니 불안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별거 아니겠지 싶다.

  반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 이제는 날이 저물어 질 것 같아 가방을 들고 학교를 나서 도장으로 향해 운동을 마친 뒤 집으로 왔는데

  "이야, 우리 운이 예쁜 선생님이 옆집으로 이사와서 좋겠네."

  아버지께서는 나를 보시며 수혜와 비슷한 엉큼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집에 돌아와보니 집에 이미 선생님이 계셨고 부모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얼굴을 붉히신 채로 고개를 숙이고 계셨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시며 선생님을 지켜보며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면 이런 분위기가 되는거지.

  "얼른 씻고 오렴."

  어머니는 왠지 나에게 지금은 이야기를 들으면 안된다는 듯한 어조로 목욕을 하라고 하셨다. 일단 모르겠지만 목욕을 하기로 했다.

  목욕을 하며 아무리 생각해도 집에 왔을 때 그 분위기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지 나오는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나 상상력이 부족할 줄은 몰랐는데 하나 알아가는 날이 되어버렸다.

  내가 목욕을 마치고 거실로 나오자 이미 선생님은 나가셨고 부모님께서는 즐겁다는 듯이 두분이서 얘기를 하고 계셨다.

  "나왔니? 저녁 먹어야지?"

  "네. 근데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세요?"

  "아직은 비밀이다."

  어머니께선 저녁을 준비하시고 아버지께서는 비밀이라고 하시며 나를 데리고 소파에 앉으시며 모니터를 키셨다.

  "이제 곧 체육대회였지 아마? 그녀석이 이번에는 힘 좀 쓰는거 같던데."

  아버지께서 그녀석이라고 할 사람은 유아네 아버지와 수연이네 아버지밖에 없다. 이번에는 아마도 수연이네 아버지로 생각하는게 맞을 것이다.

  "이번에는 같이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 같구나."

  "음……."

  "기쁘지 않니? 엄마랑 아빠랑 같이 놀 수 있는 기회라고?"

  기쁘기는 한데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아, 그렇다. 나는 왠지 긴장을 하고 있었다.

  "아니요. 기뻐요."

  "그래? 얼굴은 전혀 아닌데?"

  아버지는 내 볼을 만지시며 부정하셨다. 또 표정에 내 생각이 드러난 모양이었다. 나는 솔직하게 얘기하도록 했다.

  "좋기는 하지만 저를 학교에서 좋게 보는 학생들이 적어서요."

  "괜찮아. 그런 시선을 보내오는 녀석이 있으면 혼내줄테니까."

  생각보다 말을 꺼내기 쉬웠고 아버지는 그런 내게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시며 장난스럽게 대답해주셨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그 말만으로도 부모님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신다는 것을 알았고 그런 부모님이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하지만 기쁜 내 마음과는 달리 왠지 파란이 불어올 체육대회가 될 것만 같았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9 이거는 2019 / 10 / 1 176 0 19483   
8 다르네 2019 / 9 / 30 173 0 18022   
7 생각보다 많이 다른? 2019 / 9 / 27 189 0 19854   
6 축제? 2019 / 9 / 26 190 0 18676   
5 원했던 것 2019 / 9 / 25 187 0 18409   
4 아마도 2019 / 9 / 24 184 0 19266   
3 꽤 즐거운데 큰일났네 2019 / 9 / 23 167 0 18200   
2 안녕하세요 2019 / 9 / 20 177 0 19505   
1 prologue 2019 / 9 / 19 330 0 332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