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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에게 행운을
작가 : 로기
작품등록일 : 2019.9.19

 
원했던 것
작성일 : 19-09-25 09:38     조회 : 186     추천 : 0     분량 : 18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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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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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아! 이리 와 봐!"

  "왜 또."

  쑥스럽지만 수혜의 앞에서 원없이 펑펑 울고 난 2주 정도가 지난 지금 수혜와는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친해진 사이가 되었다.

  "이거 봐봐. 유아가 만든 과자래!"

  나와 친해진 이후로 수혜는 유아와 수연이와도 이야기를 나눴고 그만큼 친해졌다. 그리고 수혜는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와는 전혀 다른 녀석이 되어있었다.

  "근데 진짜 맛없다?"

  깔깔하며 웃는 수혜의 모습에서는 낯을 많이 가리던 그때의 여학생이 아니였고 여기 있는 것은 직설적이어서 그만큼 매력이 있는 친구가 있을뿐이었다. 아마도 친해지기 전까지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겠지. 그나저나 이렇게나 성격이 급변할 정도면 수연이보다도 심하다고 봐도 무관하겠는데?

  "한 번 먹어봐."

  수혜는 유아에게서 받아온 수제 쿠키를 내게 직접 먹여주었다. 거리낌 없는 것은 좋지만 약간 이런데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나는 하는 수없이 받아먹기는 했으나 내 얼굴은 어김없이 붉게 변했다.

  "괜찮은데?"

  "진짜? 뭐지?"

  갑자기 장난이 떠오른 먹은 쿠키를 입 안에서 씹으면서 수혜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미 붉어졌던 얼굴은 식었다. 누가 보기에는 음미하면서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맛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런 내 의도는 수혜에게 제대로 통한 듯 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봉지 안을 보고는 다시 하나를 집어들고 자신의 입으로 집어넣고 턱을 움직이자마자 눈을 질끈감았다.

  "맛없는데?"

  하며 나를 돌아보는 순간 내가 아직 입에 쿠키를 씹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수혜는 얼굴을 붉히며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 속냐?"

  나는 쿠키를 빠르게 삼키고 큰 웃음을 지으며 수혜를 놀렸다. 아주 꼴이 좋다. 매일같이 유아와 함께 나를 놀려대는 수혜에게는 한 번 골려주고 싶었는데 잘됐다. 오늘이 딱 좋은 날이었다.

  "뭐가 그렇게 신나?"

  나와 수혜는 흠칫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만 들어도 목소리의 주인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내 쿠키가 그렇게도 맛이 없어? 어디 줘봐!"

  영락없이 유아였다. 자신이 만든 쿠키가 들은 봉지를 수혜에게서 빼앗듯이 들고서는 안에서 하나 꺼내어 입으로 한 번에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씹더니 역시나라고 해야하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유아의 얼굴을 보고 나와 수혜는 서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만든 쿠키를 막 뱉을 수는 없었는지 끝까지 씹고 삼킨 유아는 기세등등하게 우리에게 가슴을 펴보였다.

  "맛있기만 하구만!"

  그런 유아의 표정은 이미 시퍼렇게 질려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맛있었는데."

  역시 참을 수 없었는지 금방 포기하고는 이상하다며 봉지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는 유아의 등을 살며시 두드려주며 다독여주었다.

  "정말이라니까? 그치?"

  "응, 나도 맛있어서 만들어달라고 했어."

  수연이가 유아의 말을 긍정하니 나로서는 상당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유아의 행동에 부정이라고는 없는 수연이이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해주는 친구이기 때문에 정말로 아침까지는 괜찮았을 것이다. 그럼 뭐가 잘못됐을까?

  "그건 그렇고 쿠키 위에 있는 이 가루는 뭐야?"

  그렇다면 겉부터 지적해 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쿠키에 어울리지 않는 초록색의 가루를 보고 유아에게 물어보았다.

  "음? 이거 어? 나 이런거 뿌린 기억이 없는데."

  "나도 아침까지는 못본거야."

  이게 맛을 변화시킨 원인이라는건데 그럼 누가 뿌린거지? 유아의 집에서는 장난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저씨가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딸이 처음으로 만들었을 쿠키에 감동을 받아서 맛있다며 맛없어도 가져갈 아저씨니까.

  "아까 반에서 누가 잠깐만 달라고 하기는 했는데."

  그거다.

  "너 누가 괴롭히냐?"

  나는 순간적으로 바로 그 말이 튀어나왔다. 직감이 그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 경우에는 그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아니, 친구가 맛있게 만들어준다고 가져간 것뿐인데?"

  수연이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면 둘과도 친한 사이인가보다. 내가 잘못 짚은건가?

  "아니면 말고."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지만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뭐, 일단 그게 맞는거 같기는 하지만 괴롭히는게 아니라면 장난이겠지."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장난이라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하지만 역시 내 안에서는 무언가에 턱 걸려 그리 시원한 느낌은 아니였다. 조금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고 우리는 즐거웠던 쉬는 시간을 마치고 각자 반으로 돌아갔다.

  선생님과 백화점 사건 뒤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상당히 기분이 나아져 있었다. 백화점 사건은 그 뒤로 감사 인사를 해오는 사람들이 3일 정도 이어졌지만 수혜와 마찬가지로 너무 기뻐서 당사자들 앞에서 울었다. 나는 이렇게나 눈물이 많았는지 싶을정도로 울어버렸다. 내가 감사를 받고 있을때마다 옆에 있던 유아와 수연이조차 놀라고 있었으니 내가 우는 것은 드문일이었던 것 같다.

  오후 수업까지 마친 나는 반에서 청소를 마친 뒤 반을 떠나 한적한 공원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점점 붉어지는 하늘을 보다가 적당한 시간이 되었다 싶어 다시 반으로 돌아갔다. 언제나 아무도 없던 교실에는 수혜가 남아있었고 자신의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방과후에 그녀의 공부를 봐주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 일상이라기보다는 곧 있으면 중간고사니까.

  "잘 되어가고 있어?"

  "아니……."

  내 질문에 고개를 천천히 돌리는 수혜의 표정은 울상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가르치는 맛이 있었다.

  "어떤게 막히는데?"

  이제와서 새삼스레 내 성적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하자면 나는 전교 1등이라고 한다. 나는 정말로 몰랐지만 수혜에게서 언제인가 질문을 받은 기억이 있다.

  "너, 네가 전교 1등인 것은 알아?"

  "으... 응? 아니 전혀."

  나는 내가 마시고 있던 딸기 우유를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뿜어낼 뻔했지만 잘 참고 삼킨 뒤 대답했다. 정말 이때는 위험했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은 했지만 잘 생각해보니 전교 1등이라는 것에 놀란 나는 소리를 질렀다.

  "전교 1등?"

  "응. 너 전교 1등이야."

  우리 학교가 넓은만큼 사람도 많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평범한 수의 학생들이 모여있다. 한 학년에 400명이 넘는 정도이니까 그다지 많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 학교가 터무니없이 넓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학교와 비교하면 적다고 생각은 하지만 수로만 봐도 많은 4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제치고 1등을 하고 있다는게 많이 놀라웠다. 나 조금 잘하는 수준 아니였어?

  "에이 한 과목만도 100점을 맞기 힘들만큼 어려운 우리학교에서 처음으로 두 과목을 제외하고 만점이라니 말도 안돼."

  그야 지금도 그렇지만 할게 공부밖에 없는걸.

  수혜의 말에 따르면 우리 학교는 전교에서도 손꼽을만큼 시험의 난이도가 높으며 그것은 다른 학교에서 문제를 빌려쓸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선생님들의 수준도 높다는 이야기인데 하긴 우리 학교 선생님들께서는 내가 보아도 대단하신 분들밖에 안계신다. 당장에 담임선생님이신 채나선생님도 굉장하신데 말이다.

  "그래? 나는 몰랐지. 그냥 100점 만점에 만점을 받는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석차가 나오더라도 나는 보통 보지 않고 내 점수만 봤으니까."

  등수를 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서.

  "에잇 이 멍청아!"

  그렇게 수혜에게 꿀밤을 맞은 기억이 있었다.

  공부에 대화를 한 며칠 뒤 우리는 중간고사라는 높은 벽에 부딪치게 되는데 수혜에게는 넘어갈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했는지 내게 도움을 청했다는 그런 상황이다.

  아무래도 도와주는건 나도 좋아하니까 좋게 넘어가기는 하지만 수혜의 수준이 조금……. 아니 많이 낮다는 것을 이제야 안 나는 차근차근 점수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래도 이해는 잘하는 친구니까 빠르게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희망을 안고 말이다.

  "그나저나 수혜야?"

  "으, 응?"

  "집에서는 공부하는거 맞아?"

  나는 최대한 자상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은연중에 내 안에 있는 화가 드러났는지 수혜는 주눅들어 있었다. 나는 화를 심호흡으로 내뱉은 후 다시 질문했다.

  "집에서 공부하시는거 맞나요 수혜씨?"

  "아, 아뇨."

  "야…!"

  이를 악 물고 내는 소리에 히익하는 소리와 함께 수혜가 의자에서 펄쩍뛰며 일어나며 내가 때릴거라고 생각했는지 팔을 X자로 교차시켜 방어했다. 나는 그런 수혜를 손짓으로 다시 앉히고 나는 최대한 상처입히지 않기 위해서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자, 수혜야 잘 들어봐."

  "응."

  수혜가 주눅들어 있는 것에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참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나는 네 공부를 항상 봐줄 수는 없어. 그치?"

  "응."

  "그러면 못해도 집에서 복습이나 숙제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아?"

  "응."

  "근데 지금 네가 풀고 있는 지금 이 부분은 언제 배운걸까?"

  "이틀전에……."

  "그래. 이틀전이야. 그치?"

  "으, 응."

  앞머리가 긴 수혜의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지만 점점 바닥을 길 것 같은 어깨를 보니 이쯤 해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는 한차례 다시 한숨을 쉰 다음 조곤조곤 이야기를 꺼냈다.

  "막 공부하라는게 아니야. 이해는 잘하니까 복습해서 모르지 않을정도로 만들라는거지. 담임선생님께서도 그러셨잖아."

  "응."

  우리가 방과후에 공부를 자주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선생님은 가끔 시간이 남으시면 방과후에 수혜를 비롯해 나까지 공부를 봐주신다. 정말 애들 돌보는걸 좋아하는 누나……. 선생님이다. 이거 조심하지 않으면 이제 실수로 학교에서까지 누나라고 하겠어.

  "어쩔 수 없지. 내일 우리집에 와. 다같이 공부나 하자."

  "저, 정말?"

  내 말에 대답하는 수혜의 얼굴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을 보니 내일이 주말이라고 놀 생각을 하고 있었던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 중간고사가 코앞인데 놀 생각하지마. 우리 고등학생이다?"

  "알겠어."

  계속해서 주눅드는 수혜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제 한달도 남지 않은 중간고사를 그냥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와 선생님이 봐주는 이상 공부는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겠어. 조금 이기적일지 몰라도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적어도 수학은 잘 봐줘야겠어.

  "아, 물론 유아는 너와 비슷한 수준이니까 걱정마."

  "응."

  동료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주눅든 수혜에게 말을 해주었지만 전혀 회복이 되고 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나.

  "그럼 내가 점심이랑 저녁 만들어줄게."

  마침 어제 만들어둔거 다 먹었으니까.

  "정말이지? 그럼 열심히 할게!"

  수혜가 아까와는 다르게 정말로 의욕이 샘솟는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꽉 쥐었다. 얼마전에 우리집에 놀러온 수혜에게 요리를 해주었더니 너무나도 맛있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돌아올만큼 맛있었던걸까 싶기는 하다. 내가 먹었을때 맛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는 거니까.

  "운아, 수혜야. 집가자~."

  복도에서 유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가 두 명인 것을 보면 옆에 수연이가 있는거겠지 했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 있었다.

  "오늘은 언니도 같이 집에 가기로 했어~."

  "학교에서는 언니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네~."

  유아의 머리를 살짝 내리친 후 선생님은 나를 보고 작게 손을 흔드셨다. 나도 그에 보답해서 작게 손을 흔들었는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오늘 아침에도 점심에도 뵀잖아요.

  "휴휴~."

  유아가 옆에서 휘파람을 불면서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뭔데?

  "장난 그만치고."

  선생님께서 다시 한 번 유아의 머리에 손날을 약하게 내리치셨다.

  "그래서 수연이는?"

  "오늘 학생회의가 있다나봐."

  "바쁜가보네 곧 중간고사인데도."

  "그런가봐."

  수연이는 우리 중에 유일하게 학생회에 속해있는데 우리와 놀다가도 가끔 어디에서 온 연락을 받고 가는 경우가 있었다. 왠지 그 모습이 커리어우먼 같은 분위기라 멋있다. 비서 같은거라면 수연이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나 싶다.

  "이제 가자!"

  기운이 돌아온 수혜가 자신의 가방과 내 가방을 들고 일어나며 신난다는 듯이 외쳤다.

  "그러고 보니까 언니 어디로 이사하셨어요?"

  이제는 수혜조차 선생님에게 언니라고 하게 되었다. 여자들은 빨리 친해지는건가?

  "음, 나중에 알려줄게."

  어째서일까 선생님은 알려주는 것을 부끄러워하시며 꺼렸다. 왜 부끄러워하시지? 그나저나 선생님 옆에서 미소 짓는 유아가 뭔가 음흉하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저번에 사시던 아파트는 너무 낡았고 게다가 골목도 너무 어두워서 걱정됐는데."

  "그야 방이 싸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저번에 한 번 간 그 주택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곳이었다. 어떻게 그런 곳을 혼자서 다닐 생각을 하셨는지. 그래도 일이 있고난 후부터는 선생님도 집에 빨리 들어가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사를 하고 다시 평소처럼 일을 하시고 계시다고 한다. 뭐, 거기에 있을 때는 나나 유아, 수연이에게 연락을 자주 하셨으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달려갈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평소처럼 카페에 잠깐 들러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수혜와 헤어졌다. 나와 유아는 이웃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가까운 거리이니까 같이가지만 어째서인지 선생님도 우리와 같이 계속 걷고 계셨는데 좋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설마?

  "잘 가~."

  "어서 들어가렴."

  유아의 인사에 선생님도 차분한 분위기로 인사를 나누셨다. 음…?

  "자, 올라가자."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같이 올라가자고 하셨다. 머릿속에 하얗게 되어버린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선생님을 따라 승강기에 탑승해 집이 있는 층까지 올라갔다. 이때까지도 선생님은 내 옆에 계셨다.

  "좋은 꿈 꿔. 내일보자~."

  나는 우리집 현관 앞에 멀뚱히 서서 바로 옆집 현관을 열고 들어가는 선생님을 보고 있었다. 그저 멍하니 서서.

  ……? ……? ……?

  "그럼 얼마전에 이사온게 선생님이셨어?"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으려니 옆집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선생님께서 빼꼼 얼굴만 드러내시고 계셨다. 그 얼굴에 피어난 환한 미소가 눈부셨다.

  "이렇게 대놓고 다니는데 눈치를 채지 못한다는게 말이나 돼?"

  어느새 학생회의를 마친 수연이와 같이 우리집으로 온 유아는 그렇게 말했다. 나도 놀랐다.

  "떡을 돌리기는 했지만 운이에게는 주지 않았는걸."

  그래서 아주머니들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거구나.

  "그렇다고 해도 모른다는게 이해가 안되잖아요."

  유아가 장난스런 미소를 띠운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면목없습니다.

  "언니가 잘 처신한 것도 있으니까 모를수도 있지."

  역시 수연이야!

  "그렇...!"

  "아무리 그래도 몰랐다는건 멍청한 수준이지."

  "지……."

  내가 하는 말을 가로채가며 유아는 자기 말이 맞다는 것을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긍정했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바로 옆집인데 지금까지 몰랐다는게 어이가 없으니까.

  선생님께서 이사를 오신 것은 일주일 전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때까지 모르지.

  "아주머니들이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셨구나."

  "뭐라고 하셨는데?"

  "'요즘때에도 떡을 돌리는 아가씨가 있네' 라고."

  내 말을 들은 유아는 뿜었다고 할만큼 웃음을 터트렸다. 아, 내가 생각해도 이건 빼지도 못한다.

  "이야~. 운아 최근 너랑 대화를 시작하고 나서 제일 웃겼다."

  유아는 웃는 것을 멈추지도 않고 나를 놀려댔다. 나쁜 녀석. 하지만 내가 뭐라고 반박할 거리는 없었다. 눈치가 없는건 맞으니까.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다고 해도 목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을텐데 왜 몰랐지.

  나는 계속해서 놀려대는 유아를 이대로 계속 냅두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수연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유아야. 그만해 운이 또 울겠다."

  "앗! 그러네 이제 그만놀려야겠다."

  수연이도 유아의 한패였다. 수연이의 그 말에 유아는 이제 깔깔거리며 웃었다.

  "울다니? 무슨 얘기야?"

  내가 울었다는 것을 모르는 선생님은 궁금하셨는지 수연이에게 물어보셨다. 제발 얘기하지 않기를!

  "그 백화점 사건 때 운이가 구해주었던 사람들이 감사를 전하기 위해 운이를 찾아왔었는데 그때마다 대성통곡했어요."

  무리였다. 수연이가 모든 것을 털어놓고 있을 동안 나는 유아에게 붙잡혀 자리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그곳에서 선생님이 흥분하며 듣고 계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 수치를 드러내는데 내가 앞에 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수연이가 미웠다.

  "운이가 그렇게 여린 줄 몰랐어."

  선생님은 정말로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저도요.

  "저희도 이제까지 알고 지냈지만 전혀 몰랐다니까요. 이렇게 눈물이 많은 애인지."

  유아는 여전히 나를 놀리는데 전념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나 진짜로 울어버린다?

  ……. 농담이지만.

  "그럼 언니가 이사왔다는 기념으로 오늘 운이가 저녁을 만들어주겠지?"

  유아의 즉흥적인 협박이었지만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흔쾌히 요리를 하기로 했다. 유아의 뜻대로 흐르는 것 같아 조금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축하하는 생각으로 해야겠지.

  "이런 날에 체육관 안가겠지?"

  나는 아차싶었다. 오늘 아직 도장에 가지 않았다. 아까까지 너무 싱숭생숭해서 까먹고 있었다. 하루정도야 괜찮다. 나는 관장님에게 연락을 드려 오늘은 일이 생겨서 못 갈 것 같다는 메세지를 보냈다.

  -그래 알겠다.

  보낸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금방 돌아왔고 메세지는 여전히 시원시원했다.

  "우리는 씻고 올테니까 요리하고 있어."

  관장님께서 보내신 메세지를 확인하고 있으려니 언제 가지고 온건지 자신들의 옷을 챙겨들고 욕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둘을 따라갔다.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유아와 수연이가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주게된 이후로 계속해서 내 주변에 사람들이 늘어나 북적해져서 시끄럽기는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다. 그래도 놀리는건 조금 자중해줬으면.

  "역시 운이라니까!"

  "축하하는 날이니까 힘 좀 써봤지."

  모두가 씻고 있을때 나는 잠깐 밖으로 나가 장을 보고 와서 이것저것 요리를 했다.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에 셋이서 재미있게 떠드는 것을 보니 왠지 가족이 늘어난 듯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이 케잌은 사온거야?"

  "아니, 내가 만들었는데?"

  빵은 사실 전에 심심해서 만들어서 잘 보관하고 있었고 케이크 자체를 차게 했기때문에 괜찮을거다. 아마도?

  "정말?"

  "응."

  직접 만들었다는 것에 놀랐는지 요리들을 이리저리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 셋을 보고 있으려니 은근히 우쭐해진 나였다. 나도 정말 쉬운녀석이다.

  "잘 먹겠습니다."

  "잠까아안!"

  각자 식기를 들고 먹으려고 하는 순간 우리집 현관이 열리며 수혜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뭐야? 우리집 문은 누구나 다 열 수 있을만큼 쉬운 곳이야?

  "운이가 요리했다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오! 왔구나!"

  유아가 놀라지도 않은 모습으로 수혜를 환영하며 수혜의 식기를 준비해주었다. 이 모습을 보면 말할 것도 없이 유아의 짓이었다.

  "네 요리를 이렇게나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런 축하하는 자리에 부르지 않고서야 되겠어?"

  그런 이유라고 한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는 하지만 그런건 얘기 좀 해줘라."

  많이 만들기는 했지만 수혜가 올 것까지 예상하지 못해 적당히 네 명이서 나눠먹을 수 있을만큼만 만들었기 때문에 부족하다 싶었지 만 아니라고 한다.

  "나중에 더 만들어주면 돼."

  그렇다고 한다. 그래도 축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사람 수보다 많이 만든게 딱 좋은 양이 되었다.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네사람을 보고 있자니 나도 왠지 오랜만에 만든 종류의 음식들이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이게 바로 인식의 차이인가?

  "잘 먹었어."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게 선생님께서 다가오시며 거들어주시겠다고 하셨다. 거절은 했지만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오시는 선생님을 막기에는 내가 그렇게 매몰차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아니야. 항상 운이에게 신세만 지고 있으니까 이런건 하게 해줘."

  내 옆에서 그릇을 닦고 있는 선생님을 보자니 새삼스레 예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과 같이 살게된다면 재미있…….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그런 문란한 생각을 하며 설거지를 하는둥 마는둥 물끄러미 선생님을 보고 있자 내 시선이 느껴지셨는지 고개를 돌리자 나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서로 얼굴이 붉어진 채로 시선을 그릇으로 옮겼다. 역시 여성만 있어서 그런가 자꾸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나도 동성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나와 선생님의 행동을 보고 뒤통수에서 음흉한 시선과 웃음소리가 들리는 느낌이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더 의식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다. 유아의 놀림거리가 늘어날 듯한 전조가.

  "잘 가~."

  우리집에서 놀던 모든 사람들이 나가고 나만의 시간이 돌아왔다. 최근에는 오늘처럼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고 있지만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즐거운 느낌이 든다.

  주말은 여전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옆집에 있는 선생님께서 가끔 밥이 없으시다며 드시러 오시긴 했지만 그런건 얼마든지 가능했으니 괜찮았다.

  날이 지나고 동이트자 평소처럼 일찍 일어난 나는 운동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나왔을때 선생님과 마주쳤고 선생님께서도 나와 마찬가지로 아침마다 동네를 뛴다고 하시기에 같이 뛰기로 했다. 나도 매일같이 하는데 어떻게 일주일동안 마주치지 못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얼마나 뛰니?"

  "음, 아침에는 간단하게 10km만 뛰기로 하고 있어요."

  "10km?"

  선생님께서 눈이 휘둥그레 지셔서 달리는 도중에 멈추셨다. 왜 놀라시지?

  "그렇게나 많이 뛰어?"

  "많이 뛰는건가요? 저희 도장 사람들은 이 정도는 다 뛰시는데."

  신기한 것을 보는 눈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에이 부끄럽게 하하하.

  "평범한게 아닌가요?"

  "수연이에게 들었지만 심하네."

  뭘 말씀하시는걸까.

  "운이 네가 평범하다는 기준을 잘 모른다고 들었거든. 최근까지 네가 전교 1등인 것도 몰랐다며?"

  "네."

  선생님께서 뛰시면서 말씀하시기에 그 속도에 맞춰 뛰며 대답해드렸다. 그나저나 별 이야기를 다 하나보다. 그렇게 뛰면서 선생님은 수연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평범한 기준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능력에 대한 것과 지금 학교에서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까지 말이다. 정말로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꺼내서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유아나 수연이를 미워하지 말아줘. 내가 물어봐서 대답해준 거니까."

  유아가 옆에서 거들며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는 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 수 있었다. 이럴때도 장난이 심한 녀석이다. 내가 없는 곳에서 내 이야기를 했다는게 조금 이상한 기분이지만 선생님께서 알게 되도 상관은 없었다. 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만 빼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도와주고 싶어."

  "괜찮아요. 수혜도 있고 유아와 수연이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학생 한 명에게만 신경을 쓰시기에는 입장상 좀 그렇잖아요."

  "하지만."

  선생님은 발을 멈추시고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셨다. 표정을 보아하니 소문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으신 듯 했다.

  "정말로 괜찮아요. 사소한 소문이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니까요."

  "그게 어떻게 사소한거니!"

  선생님께서는 멈추시면서 화를 내셨다. 아, 이런.

  "역시 그런가요?"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선생님은 내 표정이 더 가슴 아프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정말로 착한 사람이다.

  "그래도 괜찮아요. 선생님들 중에서도 사실을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고 최근에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정말로 괜찮아요."

  사실 나도 내가 한 번 무너졌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걸 끌어올려준 것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선생님과 친구들이었다. 2학년에 올라와 여전히 바뀌지 않은 아이들의 시선과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 아이들을 보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미 수없이 겪은 일이어서 적응했지만 나도 모르게 쌓여가는 스트레스는 막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침에는 달리고 저녁에는 도장에 가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었다. 이제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어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만 습관이 되어버렸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 정말로 괜찮아요."

  선생님을 보며 최대한 지금 이 기분을 전하기 위해 미소를 지어냈고 내 의도를 읽으신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 그렇다면 믿어볼게."

  "네."

  우리는 한참을 달리고 집으로 돌아가 씻은 뒤에 같이 등교를 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먼저 가셔야하는거 아니에요?"

  "오늘 하루는 괜찮겠지~."

  의외로 융통성 있으셨다.

  "운이다!"

  누군가 내 등으로 뛰어들면서 이름을 불렀지만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 유아의 장난이었다.

  "쳇. 이젠 놀라지도 않네. 재미없어."

  "매일같이 놀라면서 너를 즐겁게 해주는 이 운은 이제 없구요."

  우리는 서로의 장난에 웃음 지으며 즐겁게 등굣길에 올랐다.

  "그럼 이따가 봐~."

  유아와 수연이는 같은 반인데 건물이 달라서 먼저 반으로 향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이 있는 교사의 교무실로 향하셨다. 나는 혼자 반으로 들어오자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자마자 다시 사라졌다. 평소 같았으면 계속해서 째려보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덩치만 큰 저녀석 빼고는 없었다.

  "운아~, 좋은 아침."

  수혜는 자신의 책상에 머리를 박고 공부를 하다 나를 발견하고 내게 인사를 건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는 좋다. 저런데 집에서는 하지 않다니 죄다 죄.

  나는 자리에 앉아 반을 둘러보았고 위화감이 들었다. 왠지 반 아이들의 반응이 저번주와 다르다. 뭐지?

  "안녕 운아?"

  "응? 안녕?"

  반장인 안지태가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내와서 놀라기는 했지만 잘 숨기며 인사했다. 어째서일까 처음에는 흥미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더니 양호실을 같이 간 이후로는 내게 자주 말을 걸어오게 되었다. 아니면 사실 내가 이녀석한테 관심이 없었던 걸까.

  왠지 반 아이들의 시선이 다른 상태에서 수업을 받고있자니 영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있었던 반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정도로 말이다.

  "그래? 나는 잘 모르겠는데."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 시간이 되어 내가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는 그 공원에 와서 세 친구와 선생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수혜에게 내가 느낀 그대로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와 같다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그럼 내가 이상한건가?"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수혜는 평소와 같다고 하고 있고 선생님께서도

  "우리 반 애들은 평소랑 똑같던걸?"

  이라고 하셨다. 그럼 내가 지금까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일까? 우리 반 아이들은 나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서 착각하고 단정지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인가? 지금 두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게 맞는 듯하다.

  "그럴만 해. 중학생때부터 받아왔던 시선들에 익숙해졌을 운이가 2학년이 되고 갑작스럽게 바꾼다는게 말이 되지 않으니까."

  유아의 말에 수연이도 그럴거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 반 아이들은 나를 나쁜시선으로 본 적이 없다는 얘기인데.

  "나 이제와서 궁금한데. 운이와 관련된 소문이란게 뭐야?"

  "모르고 있었어?"

  "응."

  유아는 물론 나도 적잖이 놀랐다. 같은 반인 수혜가 모르고 있다니.

  "반 애들이랑 얘기 안해봤어?"

  "응. 애초에 아직 친구라고 할 사람은 운이 뿐인걸."

  그럴만하다 나와 처음 대화를 나눴던 수혜를 보면 너무 낯을 많이 가리는 나머지 긴장을 심하게 해서 말까지 더듬었으니까.

  유아가 나를 보며 시선으로 물었다. 수혜에게 이야기해도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전했다. 수혜니까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운이는 지금 학교에서 살인범으로 오해받고 있어."

  유아의 잠잠한 말투에 수혜는 너무 놀라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고 조금 진정하자 다시 질문을 했다.

  "왜?"

  "운이가 만난 사람들 중에 죽은 사람이 3명이나 있거든. 그것도 운이가 눈앞에 있을때."

  이야기 하는 유아도 표정이 매우 괴로워 보였고 수연이도 마찬가지였다.

  사건의 전말은 간단하다. 중학생이 된 나는 내 능력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그 능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밖으로 나다녔으며 덤으로 실험을 했다. 그리고 행운이 '0'인 사람들을 만났고 그분들을 도우려고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으며 그걸 나는 눈앞에서 목격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걸 우리 학교 학생이 나를 보고 오해를 했다는 그런 얘기다.

  "그럼 지금 운이가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니라는게 밝혀진 거 아니야?"

  "맞아. 그게 맞는 얘기야. 하지만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 아이들은 운이를 몰아간거지."

  그때 돌아가신 분들에게는 각자 자식들이 있었다. 나는 내 입장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들어주지 않았고 나를 살인범으로 몰아갔고 그로 인해서 유아의 아버지에게도 신세를 끼쳤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저씨들에게 다가가지도 않았고 연락도 하지 않게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저씨들께서 개의치 않으시며 곤란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나를 현재까지도 도와주시고 계신다. 아주머니들도 내게 먼저 다가오시며 따뜻한 말을 건내주신 것으로 나는 점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정말로 고마운 분들이다.

  그럼에도 또래들의 시선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긴 했다. 나 혼자 끙끙 앓으며 삭히고 숨겨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은 1년 정도는 모르게 했으니 나 치고는 꽤 잘했다고 본다.

  "그게 무슨."

  "하지만 그게 사실이야. 너도 생각해봐 너희 어머니가 너와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랑 같이 있다가 목숨을 잃으셨다고 하면."

  유아의 말은 냉정했지만 머리는 이미 달궈졌는지 말 실수를 했고 그걸 들은 수혜는 말문이 막혔는지 입만 뻥긋하고 있었다.

  "미안해. 너무 짖궂었어."

  수혜의 모습을 보고 유아는 바로 사과했다.

  "아니야."

  나를 제외하고 네사람은 매우 엄숙한 분위기가 되었다. 황금같은 점심 시간에 이렇게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안된다. 아, 원인은 나구나?

  "뭐, 그래서 동네 어른들의 오해는 풀렸지만 아직 학생들의 오해는 풀리지 않았다는 그런 얘기야."

  나는 일부러 밝은 분위기로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내 이야기이니까 내가 나서는게 맞다.

  "그래! 그러니까 이 빵을 먹자!"

  유아는 머리를 젓고는 감정을 변화시키며 자신이 들고 있는 봉지를 들어올려 보이며 외쳤다. 유아나 수연이에게는 얼마든지 감사해도 모자란다.

  "여기 운아 네가 좋아하는 빵이야! 마음것 먹으라구!"

  "고마워~."

  점심 시간에 흘렀던 어두운 분위기를 걷고 우리는 다시 밝은 분위기로 보냈다.

  오후 수업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나 나름대로 즐거운 분위기에서 수업을 받았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그 뒤 방과후가 되어 나는 내가 맡은 청소구역을 한 후 점심 시간에도 온 공원에 도착해 시간을 떼우다 하늘이 붉어지자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뭐야 이게?"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생각이 입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아이들은 내 목소리를 듣고 나에게 일제히 고개를 돌렸지만 다시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공부하려고 있는 애들인데?"

  그런 아이들 중에 반장인 안지태가 나에게 다가와 이 상황을 설명했다.

  "왜?"

  "왜냐니 곧 중간고사잖아?"

  내게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하던 안지태는 씨익하고 미소를 짓었다. 그러자 동시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당연하게도 나는 당황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야!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아니면 말이라도 제대로 전해라."

  지금은 없지만 나를 매일 째려보는 그녀석과 비슷할 정도로 덩치가 상당히 큰 아이가 일어나며 안지태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며 윙크했다. 남자답게 생긴 이 아이가 윙크를 하니 왠지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는 것 같지만 노력해서 그 기분은 가라앉혔다.

  "그러게. 지태 너는 이런거 잘 못하는게 탈이야."

  "그런가?"

  안지태에게 그런식의 장난을 치면서 일어난 여자아이는 다갈색의 머리칼이 끝에만 물결처럼 웨이브가 되어있는 아이였다. 분위기부터 몸짓, 표정까지 여유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느긋한 아이였다.

  아직도 이 상황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들 너에게 공부를 배우고 싶어하는 애들이야."

  "뭐?"

  말도 안된다. 이렇게 갑자기? 그것보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고?

  "너에게는 갑작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항상 너랑 가깝게 지내고 싶어서 안달인 애들이 많아."

  안지태가 짙게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거리낌없이 다가왔다.

  "나도 마찬가지야. 안그래도 너 체육시간에 보면 운동신경이 좋다는 것을 알았거든."

  안지태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덩치큰 아이는 나에게도 어깨동무를 하며 다가왔다. 얘는 일단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는건 알았다.

  "공부를 잘하니까 조금 배우고 싶어서."

  잔잔한 목소리에 느긋한 말투로 내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고 나는 확신했다.

  아, 내 시선이 잘못된 것이었구나. 오히려 내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어.

  "그래. 알겠어."

  아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나는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꾹 참아내며 말을 자아냈다.

  "잘됐어."

  "그러게."

  이제는 단골이 되어버린 카페에서 기다리는 유아와 수연이에게 가면서 수혜가 내게 한 말이었다. 딱히 이 이후로 걸으면서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속에서부터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왠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집에서 나와 함께 있을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잘됐네!"

  수혜는 방금 우리 반에서 일어난 일을 얘기했고 그에 대한 유아의 반응이었다.

  "그러게 다행이야."

  수연이도 지금까지 걱정하고 있었는지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평소처럼 이야기 꽃을 피우고 각자 집으로 향했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루를 보냈다. 언제나와 같은 하루였지만 오늘만큼은 평소보다도 훨씬 따뜻한 기분에 휩싸여 잠에 들 수 있었다.

  "아니, 여기는 이게 아니라니까?"

  우리 반에서 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제는 반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우리 반 애들에게는 일상이 되고 있었다.

  참고로 약간 나 자신에 대해서 자랑을 해보자면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가 나면 겉으로 터트리기는 하지만 참을 수 있을때까지는 참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건 조금 심했다.

  "왜! 이걸! 모르냐고!"

  "허허, 선생님. 학생에게 그렇게 소리치시면 안됩니다."

  내 앞에 있는 덩치만 쓸데없이 큰 지무한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짜로 이 머리에 주먹을 쥐어박고 싶다.

  한사람을 제외한 반 아이들이 내게 공부를 가르쳐달라는 이야기에 흔쾌히 허락한 나는 반 아이들의 성적을 보고 어디가 부족한지 어떤 아이가 가장 심각한지 확인을 한 뒤 이미 잘하고 있는 아이들 먼저 봐준 것이 약 3일전의 일이다. 그 다음날부터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하고 있는데.

  "수혜야? 거기 어제 알려주지 않았어?"

  "네. 맞습니다."

  당당한 수혜였다.

  "그런데 왜 몰라? 너 이해는 잘한다니까?"

  "하지만 응용을 못하겠는걸요?"

  수혜가 내게 울상을 지으면서 반항했지만 오늘의 나는 물러서는 것 따위는 없다. 가르치기로 한 이상 철저하게 우리 반에 있는 모자란 아이들을 모조리 성적을 올릴 것이다. 나도 한다면 하는 남자야. 하지만 그런 내 다짐을 가로막는 세 장애물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이녀석들이었다.

  "너는 기억력도 좋은 애가 왜 공부는 안하냐."

  무한이, 수혜와 달리 내 눈앞에는 박한솔이라는 녀석이 그들의 옆에 나란히 있었다. 날카로운 인상에 얇은 테의 안경을 쓴 것이 수연이네 아버지를 연상시키지만 그 속은 전혀 다른 녀석이었다.

  "흠, 공부 따위 지금의 내게는 필요없지. 내게는 게임만 있을뿐!"

  "제발 공부 좀 건드려라!"

  내 기억에도 전례가 없을만큼 화를 내고 있는 도중이다.

  방금 내가 말한대로 이녀석은 기억력이 좋다. 그가 말하기로는 능력 덕분이라고 하는데 그걸 공부에도 이용하면 되지만 수업시간에는 졸고 집에 가면 게임만 한다고 한다. 솔직한 건 좋지만서도.

  나도 얼마전에 게임센터에 처음 가보았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궁금증이 생겨 무슨 게임을 하냐고 물어보았고 웬만해서는 모든 게임을 하지만 즐겨하는 것은 무슨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셋을 끌어안고 나는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반 아이들과 친해지게 되고 얼마지나지 않았지만 다들 내게 잘해주었고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정말 딴판이었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도 많은 학생들에게 꺼려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우리 다른 반에서 보면 대개 괴짜들밖에 없어."

  라고 한다.

  나도 상당히 나를 괴짜라고 보고 있지만 이녀석들은 그것의 배였다. 한숨이 나올만큼 괴짜들이지만 이런 아이들이라서 나는 오히려 전보다도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운이도 이제 친구가 많아졌네."

  "놀리지마세요."

  나는 우리 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부열풍에 대해서 설명하자 입을 가리면서 쿡쿡 웃는 선생님과 함께 귀가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괴로운 표정을 짓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야."

  "네."

  나 자신도 요즘에는 전보다 밝아졌다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내가 아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크게 느껴질까. 아마 내가 상상하는 이상일 것이다.

  "그럼 방과후 선생님에게 우리 반 아이들을 맡기겠습니다."

  서로의 집 현관에 도착하자 선생님께서는 문을 열면서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물론 내 대답은

  "물론이죠. 맡겨주세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즐거운 나날들이 지나고 훌쩍 찾아온 중간고사에 긴장한 아이들이었지만 어딘가 자신감이 보였다. 그것을믿고 나는 내 시험을 치뤘고 평소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임했다. 오히려 전 시험들보다 잘 치루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다.

  그리고 성적이 나오는 당일.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반 아이들보다 성적이 낮다는 것을 이미 공부를 가르치는 단계에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반이라도 제치면 성공한 것이었다.

  "자! 가볼까!"

  내 눈에 보인 결과는 예상과 같은 우리 학년의 마지막 반을 가르키는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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