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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꽃을 담은 소녀
작가 : 심연고래
작품등록일 : 2019.9.3

특별한 힘을 가진 소심한 소녀의 이야기

 
03. 변화는 언제나 갑자기 찾아온다. (1)
작성일 : 19-09-24 17:50     조회 : 242     추천 : 0     분량 : 7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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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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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왕실 제복이 맞았다. 다른 종류가 더 많은 지 어떤지는 몰라도 저 옷은 분명 카뷔 언니의 입단식 때 본 옷이었다.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인데 저 사람이 우리 마을까지 찾아온 걸까?

  불안감이 엄습했다. 바빠서 일 년에 두어 번 볼까 말까 하지만, 그래도 편지로 늘 소식을 전해왔다. 언니가 왕실 마법사로 들어간 2년 동안 누군가가 찾아온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합격 소식도 편지로 전달되었는데 어째서 직접 온 거지? 설마.... 언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하지만 그렇게 어두운 표정은 아니었는데.... 그야 내가 언니 동생이라는 걸 모르니까 그런 거 아닐까? 근데 그것 말고 찾아올 일이 또 있는 걸까?

  ....설마?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설마.... 설마.....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설마 들켜버린 걸까? 그래서 날 끌고 가려고 저 사람이 온 걸까? 손이 떨려왔다. 어깨에 멘 가방이 자꾸 흘러내렸다. 결국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잠깐 쪼그려 앉았다. 어지러워서 그대로 서 있으면 쓰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 생각해보자. 진짜로 나 때문에 온 거라면.... 근데 나 때문에 온 거면 날 못 알아볼 리가 없을 텐데. 드래곤이 내 얼굴을 봤고, 아무리 정확하게 기억을 못 한다고 해도 우리 집을 찾아왔는데 왜 날 못 알아본 거지? 무엇보다 진짜라면 언니를 보내지 않았을까? ...그럼 내가 아닌가? 손의 떨림이 멈췄다. 내가 아니라면 언니인가? 언니가 직접 오지 않은 걸 보면.... 어쩌면...

  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도저히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거나 저거나 모두 끔찍한 일들뿐이었다. 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모르는 척 집에 늦게 들어갈까? 아니면 아버지께 가서 누가 왔다고 전해야 하나? 수십 번도 넘게,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닥쳐오니 혼란스럽기만 하고 그냥 이대로 사라지고만 싶었다.

  그때 뜻밖의 방법이 떠올랐다. 미행해볼까? 따라가서 어머니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가게는 통유리로 되어있고, 부엌에서 이야기할리는 없으니 분명 가게 밖에서도 안의 상황이 보일 것이다. 잠시 생각해보니 좋은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가 사라진 길을 따라 걸었다.

 

 

 

 ***

  그렇게 늦게 따라간 것도 아닌데, 여자는 벌써 가게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유리창을 통해 가게 안을 살폈다. 내 예상대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의 손에는 여자가 보던 종이가 들려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으니 온 신경을 써서 두 사람의 옆얼굴에 집중했다.

  다행인 건 둘 다 웃는 얼굴이었다. 심지어 여자는 손뼉까지 치며 꺄르륵 웃었다. 어머니께서도 미소를 짓고 계셨다. 예상과는 달리 뭔가 좋은 일인 것 같아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뭐지? 저렇게 화기애애한 거 보면 내 이야기는 아니고, 언니 일도 더더욱 아닐 텐데.... 도대체 뭘까?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너.”

  “악! 네?”

  아우씨. 오늘 참 많이 놀라네. 내 뒤에는 언제 온 건지 웬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그는 긴 검은 머리카락을 반묶음하고 있었는데, 눈동자가 신기하게도 체리 색깔이었다.

  “어.... 혹시 동료분 찾으시는 거라면 저기 계시는데....”

  남자 또한 제복을 입고 있었기에 나는 가게 안을 가리켰다. 하지만 남자는 가게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너. 이 마을 사람인가?”

  “어.... 네. 그런데요.”

  “이 근처 사나?”

  “어... 음....”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평소라면 모르는 사람에게 집이 어딘지 절대 알려주지 않겠지만. 이 사람이 저 여자와 동료인 걸 감안하면 어차피 알게 될 일이었다.

  “저는 저기 삽니다.”

  나는 가게를 가리켰다. 그 순간 남자의 눈썹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카뷔 베커, 동생인가?”

  “네. 그렇습니다.”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내려다봤다. 뭐, 뭐지? 뭔가 불안한데.... 그는 잠시 그렇게 날 내려다보더니 가게로 시선을 옮겼다.

  “근데 왜 안 들어가고 여기서 염탐하는 거지?”

  제대로 정곡을 찌르고 들어오는 질문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이 사람 언제부터 날 보고 있었던 거지? 내가 너무 티 나게 훔쳐보고 있었나? 이럴 때는 잡아 때는 게 상책이다.

  “어.... 그냥 못 보던 사람이 있어서요.”

  그리고 더 캐물어보기 전에 질문으로 차단했다.

  “그런데 우리 언니를 아세요?”

  “알지.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아.... 그럼 마법사세요?”

  “그런 셈이지.”

  “그렇구나.... 근데 왕실에서 무슨 일로....”

  그 순간 남자의 무표정한 얼굴이 희미하게 바뀌었다. 뭐지? 웃은 건가? 비웃은 건가? 하지만 그 표정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건 들어가 보면 알게 될 거다.”

  남자는 나를 휙 지나쳐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주 짧은 대화였는데도 서늘한 냉기가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남자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시선이 바깥으로 쏠렸다. 곧 나를 발견한 어머니께서 나를 향해 손짓하셨고, 여자분은 나를 보고 반가움과 놀라움을 뒤섞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아니, 그러니까 도대체 무슨 일로 온 거냐고!

  어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소리 지르고 싶다. 그래. 저 남자 말대로 들어가 보면 알겠지. 그리고 지금 나한테 선택권 따위. 없다. 나는 꾸물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너 앞에서 만났다면서. 같이 오지 그랬니.”

  이런. 말했구만.

  나는 아하하하 웃으며 손에 든 가방을 어머니께 들어 보였다.

  “그게 아냐가 짐을 집에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서요....”

  “그러니? 그런데 왜 그냥 왔니?”

  “어.....”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잠깐 당황했지만, 대충 둘러댔다.

  “아직 퇴근 안 하셔서 집에 아무도 없더라구요. 카닐 오빠도 어디 놀러 갔나 봐요.”

  “그러고 보니 아까 지나가는 걸 본 것 같구나. 어쩔 수 없지. 이따 저녁에 가져다 주렴.”

  “네. 그럴게요.”

  “어머! 카뷔 동생인 줄 몰랐어요오! 동생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쌍둥이는 어리다고 했으니까, 넬리? 마닐드?”

  우리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여자가 바로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그녀는 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커다란 눈망울로 나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며 끼어들 틈을 노리고 있었다.

  “아, 저는 마닐드에요. 안녕하세요.”

  “어머어머~ 마닐드군요오! 반가워요. 저는 코시 데인이에요. 카뷔랑은 동기이자 동료이죠! 같은 팀이거든요.”

  여자는 특유의 높은 목소리로 꺄르륵 웃더니 손으로 옆에 선 남자를 가리켰다.

  “이쪽은 아즈반 벤델. 얘도 동기에요. 뭐... 같은 팀은 아니고요."

  남자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데인은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아즈반을 째려보더니 다 들으라고 구시렁거렸다.

  “얼굴은 반반한데 싸가지가 좀 없어요. 말도 없고요."

  와.... 저렇게 대놓고 말해도 되는 건가? 생글거리는 얼굴로 저런 말을 하니 아즈반과는 다른 의미로 섬뜩했다. 어머니도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즈반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오즈님이 왜 이런 놈을 붙여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심성이 나쁜 녀석은 아니니까 혹시 예의 없는 짓을 한다면 실수로 봐주세요.”

  뭔가 미리 정리해서 써놓은 듯한 대사였다. 왕성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남자의 태도 때문에 몇 번 일이 있었던 모양이네.... 자연스럽게 아까 느꼈던 그 서늘함이 다시 떠올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저쪽보다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말투도 좀 희한하긴 했다. 딱 한마디로 얼음조각상 같은 사람이었다. 이쯤 되니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왜 카뷔 언니가 안 오고? 아니, 보낼 거면 카뷔 언니가 오지 왜 저 사람이 온 걸까? 흐음....

  ...의심병이 또 도졌네.

  “참, 손님들을 이렇게 세워놓으면 안 되는데. 일단 집에 먼저 올라가있어요. 여기 정리하고 갈게요. 마닐드, 케이크랑 차 좀 드리렴.”

  “네. 아, 근데 집에 쌍둥이 있나요?”

  “아침에 바니 집에 놀러 가서 아직 안 왔을 거야. 케이크는 두 번째 냉장고에 있단다.”

  “넵.”

  나는 어머니의 말대로 두 사람을 데리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집은 2층이예-.”

  “어머! 가게랑 붙어있군요!”

  “네. 바로 위에서 살아요.”

  “어머~ 이뻐라! 집이 참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데인을 흘끗 쳐다봤다. 그녀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쥐고 끊임없이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마치 요정의 세상을 구경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흐음. 저래도 괜찮은 건가? 뭔가 내가 생각한 군인의 이미지랑은 전혀 딴판이었다. 뭐, 아즈반이라는 사람은 정확히 딱 들어맞지만.... 아무리 개인차가 있다고 해도 저렇게 해맑을 수가 있나?

  나는 두 사람을 거실에 앉혀놓고 어머니의 말대로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내가 나가고 쌍둥이들이 몇 번 더 먹었는지, 그 커다란 케이크의 절반이 사라져있었다.

  음.... 그대로 내어가기는 좀 그렇고.... 접시에 반반 담을까? 아니면 따로 담아서 갈까? 누가 어떤 케이크를 얼마나 먹을지 알 수 없으니 양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일단 난 초코 케이크를 많이 먹을 건데... 그럼 큰 접시에 반반 담고, 앞 접시를 가져가자. 그게 좋겠다. 부족하면 더 가져오면 되니까.

  나는 평소는 잘 쓰지 않는 장식장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손님이 왔을 때만 사용하는 고급 식기들이 열맞춰 진열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 뭘 써야 하나? 분명히 배웠는데.... 그날 날씨랑 맞춰서 내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오늘은 맑으니까, 이걸로! 나는 연둣빛 싹을 막 틔운 가지들이 그려진 세트를 골랐다.

  평소에 쓰지 않는 것들이지만, 매일 아침과 저녁 한 번씩 닦았기 때문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을 묻힌 행주로 한 번씩 다시 닦았다. 그나저나 손님들인데 너무 방치해놓고 있는 건가? 딱히 할 것도 없을 텐데.... 나는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거실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밖은 조용했지만, 작은 발소리와 함께 데인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다.

  “어머. 이것 봐. 진짜 예쁘다.”

  당연히 아즈반의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데인은 계속 이것저것 둘러보며 감탄했다.

  “여기는 꽃도 피었네? 이게 그건가? 라벤더?”

  “로즈마리.”

  한심하다는 그의 말투가 짧은 단어임에도 정확하게 전달됐다. 저 정도로 전달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능력이야. 나는 네모난 쟁반에 케이크와 접시, 포크, 케이크 칼을 담아 거실로 나왔다. 데인은 엿들은 대화 내용대로 커다란 로즈마리 화분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건 체리로 만들었고, 여긴 초코케이크에요. 차는 뭘로....”

  “어머~ 이게 그 케이크군요! 카뷔한테 말로만 들었는데! 어머어머, 이걸 먹게 되다니 영광이에요!”

  데인은 손뼉을 치며 재빨리 앞접시 하나를 집어 들었다. 뭐, 어디 내놔도 절대 꿀리지 않을 맛이긴 하지! 괜히 내가 뿌듯했다.

  “많이 드세요. 그럼 차는 뭐로 드릴까요?”

  데인은 벌써 핑크 케이크 한 조각을 접시에 올려놓고 포크로 한입 떠먹었다.

  “으음! 맛있네요! 차는.... 아! 혹시 유자차 있나요? 동생분이 자주 담근다고 들었는데....”

  데인은 해맑은 얼굴로 날 쳐다봤다. ...카뷔 언니랑 엄청나게 친한 사이인가? 내가 유자청 담그는 것까지 알고 있고.... 아! 혹시 그래서 언니 대신에 온 건가? 언니가 바쁘니까 제일 친한 친구를 보낸 거지.

  꽤 그럴듯한 추리였다. 언니 친구라면 잘 해줘야지!

  “네. 있어요. 레몬도 있는데 둘 중에 뭐가 좋으세요?”

  “유자로 할게요.”

  “네. 그럼....”

  나는 말끝을 흐리며 아즈반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허브차. 아무거나.”

  “하여간 저 싸가지.”

  데인이 케이크를 오물거리며 쏘아붙였다. 그녀의 접시 위에 놓인 케이크는 이미 반파되어있었다. 문뜩 핑크 케이크가 그녀의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코 케이크는... 아무리 언니 친구라고 해도 양보하기가 힘들단 말이지.

  “네. 로즈마리로 가져올게요.”

  다시 부엌으로 돌아와 물을 올렸다. 로즈마리 차에 유자차랑. 어머니는 홍차 잎만 넣어놓고 이따가 오시면 내려드리고.... 나는 뭘 마실까? 병을 열어 주문에 맞게 컵에 하나씩 담으니 온갖 향기들이 기분 좋게 흩어졌다. 흠. 오늘은 홍차 향이 진하네. 나도 홍차 마셔야지.

 그때 바깥이 부산스러워졌다.

  “아, 오셨어요? 이거 짱 맛있어요!”

  “오호호.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이네요. 마닐드는 부엌에 있나요?”

  “네! 제가 유자차 부탁드렸거든요. 카뷔가 엄청 맛있다고 꼭 마시라고 해서. 헤헤.”

  “마닐드가 청을 잘 만들긴 하죠. 저도 좀 보고 올게요.”

  두 사람의 대화가 끊어지고 곧 어머니께서 부엌으로 들어오셨다.

  “다 되어가니?”

  “네. 물만 부으면 돼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주전자가 딱 맞게 증기를 뿜어냈다. 뜨거운 물을 찻잔에 붓자 더욱 진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제가 가져갈게요.”

  나는 쟁반에 컵을 올려 어머니를 뒤따라 부엌에서 나갔다. 데인은 벌써 두 번째 케이크 조각을 반쯤 해치우고 있었다. 점심을 안 먹었나 싶었지만, 아즈반은 손도 안 댄 걸 보면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어머, 고마워요.”

  데인은 유자차를 받으며 방긋 웃었다. 점점 이 사람이 군인이 맞는 건가 의심이 들었다. 내가 너무 편견에 찌들어있나?

  “이건 로즈마리차에요.”

  나는 아즈반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말없이 잔을 들더니 바로 입에 가져다 댔다. 어? 잠깐만!

  “그거 방금 끓어서 뜨거운데!”

  내 말과 동시에 아즈반은 찻잔을 기울였고, 분명 김이 펄펄 나는 차를 마셨음에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어, 그, 안, 안 뜨거울 리가 없는데?

  “아, 얘는 뜨거운 거, 찬 거 잘 먹어요. 걱정 마요.”

  태연한 아즈반 대신 데인이 설명해주었다.

  “아... 네.”

  괜히 머쓱해졌다. 근데 진짜 엄청 뜨거울 텐데....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온도도 한계가 있는데, 마법사라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것은 신기하게도 아즈반이었다.

  “초대장은?”

  “응?”

  데인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머니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고는 허공으로 시선을 올리더니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는지 혼자 깜짝 놀랐다.

  “어머! 어머! 내 정신 좀 봐! 어머, 그 중요한걸!”

  ....설마 지금까지 잡담만 한 거야? 이제 보니 아즈반이 왜 따라온 건지 조금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언니는 바쁘니 친한 친구인 데인이 왔고, 데인을 현실로 불러 줄 누군가가 저 사람이구만. 역할이 딱 들어맞았다.

  데인은 매고 온 가방을 뒤적이더니 곱게 접힌 편지봉투 한 장을 꺼냈다. 두껍고 빳빳한 재질의 종이는 보라색이었고, 황금색 물감으로 화려한 무늬가 그려져있었다. 한눈에 봐도 왕실에서 내려온 게 분명했다.

  “이번 건국절에는 가족들 몇몇을 초대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여기, 초대장에 자세하게 쓰여있을 겁니다.”

  “건국 절이라면 며칠 안 남지 않았나요?”

  “네. 정확히 일주일 남았죠. 그게 엊그제 급하게 나온 이야기라,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음.... 첫 시도랄까? 그래서 다 오는 건 아니고, 뽑기로 뽑아서 초대하게 되었어요.”

  “그중에 우리가 뽑힌 거군요?”

  “네. 카뷔는 공도 많으니까요.”

  어머니는 초대장을 받아 펼쳤다. 거기에는 자필로 쓰인 문구가 있었는데, 가족들을 왕성에 초대한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흐음. 넬리 언니 불쌍해라.... 이런 좋은 기회를 날리다니. 아깝네. 나는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음... 그런데 제가 가게를 하는 입장이라 이렇게 급하게 비우는 게 좀.... 게다가 쌍둥이 들은 어리고.”

  어머니의 말이 맞았다. 가게를 며칠 동안 접고 간다고 해도, 쌍둥이를 데리고 왕성에 가서.... 흠.... 쥬뮈면 몰라도 뱃지는 감당이 안 될게 분명했다. 쯧쯧. 불쌍한 넬리 언니. 넬리 언니라면 혼자서라도 가겠지만, 그 언니마저 없으니 갈 만한 사람이 없-.

  “마닐드만 보내도 괜찮을까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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