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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에게 행운을
작가 : 로기
작품등록일 : 2019.9.19

 
아마도
작성일 : 19-09-24 09:58     조회 : 183     추천 : 0     분량 : 19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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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위층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조금 뒤에 지금 내가 있는 8층에서도 폭발이 이어졌다. 잠깐의 시간차를 준 것 때문에 반응한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로 나뉘었다. 그래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는 반응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폭풍에 휘말려 모두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주변을 살필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내가 할아버지에게 행운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인데 행운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되면 내 신체적인 능력이 상승하게 되는데 어떤 기준에서 증가하는지는 확실하게 확인하지 못했지만 일단 지금 아는 것으로는 20정도씩 차이가 있는 듯하다. 지금 능력으로 자신의 신체능력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확인해본 것은 지금 나누어준 40정도이다. 그리고 지금 확인한 바로는 나는 웬만한 외적인 힘으로는 상처를 입지 않는다. 맨손으로 내 키만한 바위는 부숴도 손이 말짱할만큼 상처 입지 않는다.

  여유가 있는 나는 폭풍에 버티며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는데 할아버지와 아이는 이미 이 층에 없었다. 이 폭발을 피했다는 것에 매우 안심했지만 주변에는 눈치채지 못하고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직 수두룩했다. 폭풍은 한순간이었고 층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이 망가졌는지 불안한 소리가 윗층에서부터 들려왔다. 아마 이 건물이 기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했다. 그렇게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엄마!"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 그쪽을 보자마자 바닥이 부숴질 정도로 박차고 나아가 몸으로 여성을 감싸며 무너지는 건물의 파편을 막았다. 등으로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감각은 느꼈으나 아프지는 않았다.

  "엄마~."

  파편이 부숴져 작은 알갱이가 되어 나에게 상처를 주지 못했고 내가 감싸고 있는 여성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아이는 여성이 무사한 것을 알고 빠르게 달려와 여성의 품에 안겼다. 놀란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어서 내려가는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위로 향해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있자 의미를 안 듯이 여성은 내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다시 감사를 표한 뒤 빠르게 아래층을 향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 뒤로 나는 계속해서 주변에 기절해 있는 사람들을 깨우고 일어나지 못한사람은 내가 업거나 일어난 사람에게 부탁해서 이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일어난 사람들 중에서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냉정했고 각자 할 수 있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괴물들이 나타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도 익숙한 일이 되어버린게 아닐까.

  그렇게 사람들을 도우면서 8층을 뛰어다니고 있자 밖에서 시끄러운 경보음과 함께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건물에서 나오라는 힘찬 목소리와 여러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여 들렸다. 그와 동시에 위층에서 기우는 소리와 8층에서도 무너지려는 소리가 멈췄다. 머리 위를 보자 파란색의 빛이 벽의 테두리를 타고 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건 누군가가 능력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유아네 아저씨가 도착했고 같이 온 사람들의 능력이 분명할테니 이제 나는 뛰어다니기만 하면 됐다. 다리에 도착해 건너편 건물을 보니 건너편은 폭탄을 설치하지 않았는지 멀쩡했다. 하지만 고층은 이미 무너진 이쪽 건물에 의해 파손되어 있었다. 위층에 설치되어있는 다리도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을뿐이었다. 저게 무너져 내리면 이 다리도 이제 무사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 건물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버텨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급한대로 8층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는 것을 확인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이 아래부터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그들과는 반대로 올라갔다. 기울어 있는 탓에 꽤 미끄러운 바닥이 거슬려 나는 신발을 벗고 바닥에 발을 꽂으며 올라갔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너무 야만적이지 않았나. 나중에서야 드는 생각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1층에서부터 올라오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저분들을 기다려줄 시간은 없었다. 이미 지쳐가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멀리 뛰면서 나아가고 있었다.

  역시나 아직 내려오지 못한 사람들은 많았다. 많이 그리고 신속하게 사람들을 아래로 내려보내고 나는 더 높이 올라갔지만 이미 옥상까지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떨어지거나 폭발에 휘말려 죽은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0이라는 숫자가 희미한 것을 보면 확실했다. 이젠 시체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미칠듯이 아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건이 정리되면 기도를 드리는 것밖에는 없었다.

  이 건물의 옥상은 이미 기울어 옆 건물에 부딪쳐 걸려 있었고 그 옥상을 통해서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왔다.

  "음?"

  나는 정말로 깜짝놀랐다. 이 파손된 층에 누군가가 있다고는 그것도 매우 평안한 모습으로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생각 못하지 않을까? 나랑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태평한 얼굴로 주변을 보면서 걷고 있을 거라고는 말이다.

  "너, 지금 내려가지 않고 뭐하니?"

  "아! 이제야 오셨네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그녀의 대답에 의미를 알 수 없어 나는 넋이 빠졌다. 눈이 파랗게 빛나고 있어 신기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여자아이가 정말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며 자신의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상황에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상한 녀석이지만 내 또래처럼 보이는 저 여자아이도 위기감이라고는 전혀 없어보였다.

  "자, 이제 저를 데리고 나가주세요."

  엄청 뻔뻔한 아이다. 데리고 내려가기는 할테지만 조금 기분이 묘했다.

  "그야 그럴거긴 한데."

  -운아! 이제 나오거라!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 나왔다!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아마도 건물 안을 탐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지 확신하셨다. 역시 아저씨께 연락하는게 빠르다.

  "어서요!"

  왠지 신나 보이는 아이는 내 등에 올라타며 그렇게 소리쳤다. 아이가 내 등에 뛰어서 올라탄 순간 이쪽 건물에 걸려있던 반대쪽 건물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능력을 쓰던 사람들의 체력이 다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큰 건물을 10분 정도 붙잡고 있었다는 것만해도 영웅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아이를 등에 업은 상태로 무너져 가는 건물을 뒤로하고 아래로 향했다. 이윽고 무너지는 것이 속도가 붙자 내가 달리는 속도와 비슷할 정도로 건물의 파편들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건물은 더욱 빠른 속도로 이쪽 건물로 무너지며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10층이에요."

  내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피자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해주는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이미 깨져있는 창을 향해 다가갔고 그대로 뛰어올라 기울어져있을 뿐인 7층으로 향했다. 거리가 상당히 되지만 이미 다리는 절반정도가 없었고 건물은 내 바로 머리 위까지 도착해 있었기 때문에 이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가 있었다. 무너지는 건물이 바로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자칫하면 도달하기 전에 내 머리위로 떨어져 업혀있는 아이가 위험했다. 나는 신체능력이 상승하며 사고 또한 빨라져 주변이 전부 느리게 보이고 있었다. 그것을 이용해 공중에 떨어지고 있는 적당한 파편이 없나 살펴보았지만 그런 형편 좋은 것은 없었다. 내 바로 머리 위까지 온 건물을 보자 나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지금은 수단을 가릴때가 아니였다.

  공중에서 몸을 돌려 머리가 아래로 향하도록 만든 뒤 무너지는 건물이 발에 닿자 나는 있는 힘껏 박차 아직 반쪽이 남아 있는 다리로 뛰어들었다. 다리는 이미 이루어져 있던 창이 전부 깨져있어 안으로 들어가기는 수월했다. 도착함과 동시에 나는 다시 다리에 힘을 주어 무너진 건물의 7층으로 뛰었다. 이쪽 방향에서 보이게는 천장이 내려앉은 8층은 갈 수 없어 7층을 선택한 것이다. 7층의 창문은 폭발의 여파로 창문이 이미 깨져 있어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되었다.

  여전히 떨어지는 건물이 나보다 먼저 지상에 닿아 파손되었고 그 충격으로 1층에 있던 기둥이 두개가 부숴졌는지 우리가 있는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이라고 이런걸 얘기하는 걸까.

  "네, 해요."

  여자아이는 내게 갑작스럽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것도 매우 신나는 목소리로 말이다. 이거 참 어떻게 하는거지?

  "그래. 알겠어."

  아이는 어째서인지 내가 창을 깨려고 하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가르키고는 그쪽으로 뛰어내리라고 알려줬다. 뭐가 다른건가. 잘 모르겠지만 아이가 가르킨 곳으로 향해 나는 기울어져가는 건물의 창을 발로 차서 깼다. 그러고보니까 나 아직 맨발이네.

  "5층에서 뛰는건 처음인데 말이야. 안전장치 같은건 없을까?"

  "그런거 있을리가 없잖아요."

  "하긴."

  쿡쿡하며 내 등에서 작게 웃는 아이는 여전히 긴장감이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 태평한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나도 참 긴장감이 없다.

  "꽉잡아!"

  나는 그대로 5층에서 뛰어내렸다.

  결과는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서 안전하게 착지했다. 아무리 능력을 쓰고 있는 나라도 층과 층 사이가 높은 이 건물의 5층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무리였던 듯 내 다리에 충격이 느껴졌다. 받침대가 있기는 했는데 많이 푹신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았다.

  "재미있었어요."

  내게 업혀 있던 아이는 내려오며 밝은 미소로 그렇게 말하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참 신기한 아이다.

  "운아!"

  그렇게 멀뚱이 서 있으려니 유아가 달려오며 내 이름을 외치며 내 품에 안겼다. 유아가 큰소리로 부르니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시선을 향해왔지만 금새 흥미가 식었는지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걷기 시작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걱정하지마. 알잖아 나 운동 잘하는거."

  내 능력에 대해 알고있는 사람들은 아저씨들과 부모님을 제외하고 내가 사람들에게 행운을 주면서 그 결과로 신체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알려줘도 상관은 없지만 그렇더라도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일테니까.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이야."

  유아는 정말 걱정했는지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이 사건 생각보다 훨씬 커서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으니까. 내 품에서 울고 있는 유아를 따라온 수연이도 걱정했는지 미간을 좁히고 있었고 선생님은 유아와 마찬가지로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죄송합니다."

  "그럼 다음부터 조심해."

  선생님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제대로 대답해주셨다.

  "네."

  그녀들의 뒤에서 한 중년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는 뒤로 넘겨 산발인 것을 단정하게 만들었고 어딜가도 있을법한 다정한 중년처럼 보이는 얼굴에 옷은 뛰어다니기 간편한 옷을 입고 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몸을 단련시킨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분이 유아네 아버지이다. 유아는 아저씨와 외모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두분을 모두 닮았고 성격 부분도 두분을 많이 닮았다.

  아저씨의 모습이 보여 나는 목례로 감사를 표현했고 아저씨는 손을 흔들어 보이시며 아니라고 대답해주셨다. 아니라고는 하시지만 아저씨가 계시지 않았다면 이럴때마다 힘들었을 것이다. 어제도 선생님께서 당한 일의 뒷처리를 도맡아주셨는데 또 일을 만들어드린 것 같아 죄송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아저씨의 옆에 또 다른 중년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머리가 어두운 갈색의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으며 그 위에는 얇은 테의 안경을 쓰고 있었고 수트를 입고 있어 전체적으로 단정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이분이 우리 학교의 이사장이시며 수연이의 아버지이시다. 수연이의 성격이나 외모를 보면 대체적으로 아저씨를 닮았는데 외모적인 부분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수연이네 아버지도 나를 많이 도와주시는 분 중에 한분이시다. 유아네 아버지와 함께 자주 도와주신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기꺼이 도와주시는 정말 감사한 분들이다.

  도와주시러 오신 두분께 다시 한차례 인사를 하며 감사를 표현했다. 아저씨들도 내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시는 것으로 답해주셨다.

  "이제 그만 울어."

  아직도 울고 있는 유아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너무 우는게 안쓰러워 보여 계속 안아주고 있었는데 살짝 보이는 유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야!"

  결국 작위적인 울음이었다는 얘기다.

  "진짜로 걱정은 했다니까."

  "됐어. 이제 너 안 믿어."

  유아가 내게 달라붙어 장난스럽게 사과를 해왔고 나는 그에 장난스럽게 대답을 해주었다. 사건이 일단락 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고보니 너 신발 어디갔어?"

  "아, 아까 바닥이 미끄러워서 좀 벗었어."

  발에 아무것도 신지 않아 상처가 나 있는지 직접 확인하려고 하는 유아에게 내가 보여주었다. 여자애가 남자애의 더러운 발을 마구 만지려고 하니 이거야 원.

  "그래도 발에 상처는 없네."

  원래 없을리가 없지만 신체능력이 향상된만큼 유리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

  이런식으로 세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으려니 내 시야 끝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말로 하얀 그저 하얗다고밖에 말할 표현이 없는 그런 남성이 지나갔다. 얼굴도 미형이어서 스쳐가듯이 본 것뿐이었지만 뇌리에 확실하게 새겨졌다. 그런 그의 뒤에는 허름한 백의를 입은 여성이 뒤따라가고 있다는 것도 모를만큼 넋을 놓고 시선으로 쫓고 있었다.

  그렇게 넋을 잃고 남성을 보고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 뒤에 무너진 건물 사이를 지나가는 방금 본 남성과 정 반대인 검은색의 옷을 일색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불안감이 내 속을 휘젓고 있었다. 지금 저들을 따라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를 할 것만 같은 그런 막연한 기분에 유아의 장난을 뒤로 하고 나는 어느새 그들을 따라가고 뛰어가고 있었다.

  검은 옷의 사람들을 따라오자 낮임에도 높은 벽때문에 어두운 골목에 다다랐다. 방금 사건이 일어난 건물의 바로 옆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대피한 상태여서 아무도 없던 것도 골목의 분위기에 한 몫을 하고 있었다.

  그 골목의 끝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두 명인 듯 했고 한사람은 키가 작았고 한사람은 키가 컸으며 그 중 키가 큰 사람의 머리에 떠 있는 수치가 40인 것을 보면 백화점에서 보았던 할아버지인게 분명했다. 저렇게 행운의 수치가 딱 떨어지는 경우는 대개 없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나서는 것은 주제에 넘는 행동일테니 조금만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대화를 한지 1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각자 품에서 무기를 꺼내들었다. 어디서 저런것을 꺼내들었는지 이해를 못할 정도로 긴 물건들도 있었고 작은 것들도 있었지만 모두 날붙이였다. 소리가 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확신을 해도 상관없겠지만 아직 제대로 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가 섣불리 나설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할아버지와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무기를 휘두르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뛰어들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뒤 검은 옷의 사람들을 날려보냈다. 때린건 맞는데 왜 때린 것 같지가 않지?

  "도와줘서 고맙구나. 그리고 걱정 말거라 저것들 인형처럼 보이더구나."

  외국인처럼 보이는 할아버지가 자연스럽게 나에게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을 걸어오셨다. 이거 장비로 대화를 시도하신건가? 아니, 지금 그런게 문제가 아니야.

  "감사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라면 부술 수 있다. 봐주는건 필요없다.

  나는 인형들의 중심으로 들어가 바로 앞에 보이는 인형에게 주먹을 넣었다. 주먹이 닿자마자 인형은 풍선이 터지듯이 머리가 터져나갔고 그것을 보고 바로 옆에 있는 인형에게 다리를 휘둘렀다. 휘두른 다리가 옆구리를 가격하자 옆구리가 꺾이며 나무 젓가락 부러지듯이 상체가 떨어져 나갔다.

  인형을 때리는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너무나 잘 만든 인형이어서 죄책감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노리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었다.

  인형은 총 20개 정도가 있었는데 한 번 가격할 때마다 하나씩 부숴져가니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인형이 줄어드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 이유가 이미 20번을 넘게 인형을 부쉈다고 생각했는데 내 눈앞에는 비슷한 숫자의 인형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와 거리가 먼 인형들 중 3개 정도가 할아버지를 향해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도 싸움에 익숙하신 듯 막고 계시는 기는 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으신지 반격을 하셔도 정확하지 않았다. 자꾸 움직임이 어긋나는 것이 시야의 끝에서 보였다. 어서 다 부수고 도와드려야하는데 자꾸 인형들이 일어선다. 아니 일어서는 것보다도 더 했다. 부숴진 곳이 전부 복구되며 일어나고 있었다.

  이만큼의 인형을 조종하면서 복구까지 원거리에서 가능하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겠지만 이제는 그만해줬으면 한다. 무슨 이유로 이 둘의 목숨까지 위협하면서 이 대단한 능력을 쓰며 말이다.

  내 눈앞에 검을 들고 덤비는 인형을 다시 한 번 부순 후 뒤에서 덤벼드는 인형을 팔꿈치로 찔러서 부쉈다. 할아버지의 숨소리가 거칠어져 가는 것이 들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강행하기로 마음 먹고 바로 인형들을 한 번에 부술 기세로 뛰어다니며 몸을 부딪쳤다. 하나 둘씩 부숴질때마다 기세가 죽어갔지만 아까 부쉈던 인형들의 복구 속도가 줄어들었는지 일어나는 것이 느렸다. 기회다.

  그대로 인형들을 부숴 길을 만든 후에 할아버지의 앞에 있던 인형들을 부순 뒤 할아버지와 아이를 붙잡고 뛰어서 골목 밖을 향했다.

  달리는 도중에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따라오는 듯한 기척은 없었고 인형들은 골목을 벗어날때까지 따라오지 않았다. 이제 해방된 것이었다.

  "고맙다."

  할아버지께서 감사인사를 하시며 고개를 숙이셨다.

  "아니에요. 그렇게 고개를 숙이시지 않으셔도 돼요."

  그나저나 장비를 쓰고 계시는 것 같지만 말씀을 정말 잘하신다. 할아버지의 숨은 아직 거칠지만 금새 괜찮아지시지 않을까. 다부진 몸은 오랫동안 단련을 했다는 것을 내게 보여주고 있었고 그만큼 체력도 있으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어딘가 입으신 상처만 나으신다면 금방 회복하실거야.

  "고맙습니다."

  이번에는 아이에게서 목소리가 나왔다. 청량한 느낌의 목소리로 할아버지 정도로 말을 잘했다. 요즘에는 다들 장비를 가지고 다니는게 당연한건가?

  "아니야."

  나는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어 쓰다듬으며 대답해주었다. 그 후 나는 흠칫하며 손을 뗐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완전히 타인인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어버렸다. 깜짝 놀라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랐겠지 생각했지만 뭔가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뭐지?

  "이만 가보겠네. 정말로 고마웠어."

  "네. 돌아가실 때도 조심하세요."

  할아버지께서는 조심하겠다고 하시면서 고개를 숙이시고는 그대로 떠나가셨다. 아이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며 나를 보고 손을 작게 흔들어 주었다. 음, 매우 귀여운 아이다. 여동생이 있으면 저런 느낌일까.

  할아버지와 아이를 도와주고 유아를 만난 나는 점심을 먹자는 그녀의 말에 마침 배가 고팠던지라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나는 아직 맨발인 것을 잊은 채로 말이다.

  돌아가서 신발부터 사자.

  "그나저나 쇼핑하러 가서 제대로 된 옷은 못샀네. 얻은건 속옷뿐이었어."

  유아는 자신이 골라준 속옷을 들어올리며 내게 보여주었다. 사고가 나서 그런지 근처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관해서 우리가가게 자체를 빌리는 느낌이었다. 제발 그런 장난 좀 하지 말아줘.

  우리는 사고가 난 백화점 근처에 있는 카페에 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점심은 이미 옆에 있는 음식점에서 간단히 떼웠고 그곳도 사건때문인지 사람이 전혀 없어 우리 넷만이 식사를 해서 왠지 신기했다.

  "부끄러워하네 아직도. 아까는 잘만 가게에 있더니."

  "아까는 아까고."

  게다가 아까는 급했잖아.

  키득키득거리는 유아는 내게 하는 장난을 정말 좋아하고 있었다. 재미있는건 알겠지만 나를 너무 놀리는데 나도 한 번쯤은 갚아주고 싶다. 어디 그런거 알려주는 사람 없을까?

  "그런데 아까 어디갔다 온거야?"

  "음, 그냥 산책?"

  "맨발로?"

  말도 안되는 소리 좀 하지말라며 유아가 내 팔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아프지는 않지만 내가 들고 있던 커피를 쏟을 뻔했다. 조심 좀 해줘.

  "뭐, 가끔 그런 마음이 들때도 있잖아? 그 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거?"

  어깨까지 으쓱이며 이야기해서 장난스럽게 들릴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선생님께서는 받아들이신게 다른 모양이었다. 유아와 수연이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렇지. 가끔은 사회와 동떨어져서 지내고 싶을 때가 있어."

  "언니도 그러세요?"

  "그럼~. 교무실에만 있으면 왠지 모르게 정신이 깎여 나가는 느낌이 들거든."

  의외였다. 선생님은 언제나 학교에서 즐겁다는 표정을 보여주시는데 항상 그렇지 않은 듯 했다.

  "아, 물론 매일같이 그런건 아니고. 게다가 요즘에는 학교에 가는게 더 즐겁기도 해."

  선생님께서는 내 표정을 보시고는 아니라며 정정하셨다. 그런데 왜 얼굴까지 붉히시는걸까. 아! 그건가? 남자인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시구나!

  "그 표정을 보아하니. 누나, 좋아하는 사람이 학교에 있어요?"

  "응?"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의자에서 조금 엉덩이를 떼며 뛰시더니 안절부절 하지 못하셨다. 역시나! 그런데 너희는 표정이 왜 그러냐. 유아와 수연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고 입까지 벌린 채로 있었다. 뭐가 그렇게 놀라운데 너희라면 이미 알고 있는거 아니야?

  "그래서 어떤 선생님이세요?"

  그러자 옆에 있던 두사람은 한숨을 쉬었다. 둘은 나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왔다. 어째서? 아까부터 의미를 모르겠네. 선생님은 왠지 안심하고 계시는 듯한데. 아닌가? 아까워 하시는건가? 복잡하네.

  "그, 그건."

  "그건?"

  "비밀이야."

  결국 비밀이라고 하시네요. 뭐, 사생활이니까 깊이까지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분이면 분명, 좋으신 분이겠죠."

  "응……."

  어째서인지 풀이 죽은 선생님과 나를 아직도 째려보는 아이들을 무시하고 커피를 마셨다. 왜?

  큰 사고가 있었지만 우리는 의외로 그것에 대해 힘들어하지 않았다. 큰 사고이기는 했지만 중상을 입은 사람도 없었고 주변에 있는 사람이 다치지 않아서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럼에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 덕분일거다.

  우리는 카페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낸 후 처음부터 가기로 했던 게임센터를 가기로 했다. 그전에 내 신발과 선생님의 옷을 적당한 곳에서 사고 말이다.

  "이번에는 이거 해보자!"

  게임센터에 도착한 유아는 어떻게 이제까지 여기에 오는 것을 참았는지 싶을 정도로 날뛰다녔다. 정말로 날뛰고 있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정신없이 다니는 유아는 장난감을 처음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유아는 어느새 뽑기 기계에 서서 재미있게 뽑기를 즐기고 있었다. 즐기고 있는 것 같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아 말고 나와 수연이와 선생님도 나름 즐기고 있었다.

  수연이는 의외로 격투게임에 재능이 있었는지 처음하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연전 연승을 계속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무섭다 무섭다 하면서 자신의 머리를 감싸는 기계를 끼고 공포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정말 무서운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딱히 하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아서 돌아보고 있는데 노래가 나오면서 화면에 여러가지 바가 떨어지면서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면서 점수를 얻는 게임에 눈이 갔다.

  "아, 리듬게임이구나?"

  "어떻게 하는건데?"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유아가 내 곁으로 다가와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내려오는 바에 맞춰서 그 자리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된다고 했다. 정작 유아는 잘하지 못했지만 그것도 재미있게 하는 모습에 나도 조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해볼래?"

  "응."

  기계에 단말기를 갖다대어 돈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게임을 실행해 보았다. 처음에는 버튼을 타이밍에 맞춰 누른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실패를 했지만 점점 깨달아 가니 생각보다 쉬운 게임이었다. 애초에 눈은 좋았고 몸을 다루는데는 일가견이 있었으니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은 간단했다.

  음악도 좋고 재미를 붙여서 점점 더 난이도를 높여가며 하고 있는데 내 주변에 유아를 비롯한 수연이와 선생님이 곁에 왔고 그녀들을 제외한 게임센터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부담스러운 시선에 부끄러워 했을테지만 지금은 게임에 집중하고 있어 전혀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곡을 마치자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부 맞췄다.

  "이야, 이거 재밌...?"

  유아를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주변에 모르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고 그들은 왠지 모르게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무슨 상황이지?

  "역시 게임은 재능이라는 건가?"

  유아는 게임기계를 보면서 안타깝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재능은 필요하겠지만 조금만 해도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그 표정. 누구나 다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마!"

  내 표정을 본 유아는 속을 읽은 것처럼 내게 소리쳤다. 아, 이거 정말 고쳐야하는데. 무표정 무표정.

  "처음하는거 맞아?"

  "네. 오늘 여기도 처음 왔는걸요."

  선생님께서도 여기는 가끔 오신 듯 한 모습이었지만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그렇게 재능이 있는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안그래도 도장에는 나보다 뛰어난 우진이형도 있고 관장님도 있고 하는 것을 보면 나도 상당히 평범한 수준이라고 보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도 재능이 있는거겠지? 그럼 우쭐대도 되는건가?

  "그렇다고 너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건 아니야."

  "그건 알아."

  유아가 내 표정을 물끄러미 보더니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그렇게까지 기 죽이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2시간 정도를 게임센터에서 즐겼고 마지막으로 다트를 하기로 했다. 꽤나 오래된 게임이지만 같이 하기에는 좋은 아날로그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런거 좀 해보고 싶었어.

  다트를 즐기고 난 뒤에 게임센터를 뒤로 했다. 저녁때가 되어 게임센터 근처에 있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다트의 결과는 유아의 꼴지로 끝났다.

  "저녁은 내가 낼게."

  "그런 섭한 말씀마시구요. 저희도 낼거예요. 얕보시면 안된다구요."

  선생님께서는 어제 그 일 이후로 계속 같이 있어주는 우리에게 미안함을 느끼셨는지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유아가 말도 안되는 소리 말라며 차단해 버렸다.

  "맞아요. 언니가 다 내신다고 하셔도 좋아하지 않아요."

  수연이도 거들었다. 흠 나도 해야하는건가?

  "일부러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내 말까지 끝나자 선생님은 알았다며 미소를 지으시면서 자리에 앉으셨다.

  고기는 맛있었고 이야기도 재미있었으며 오늘 하루가 상당히 즐거웠다.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사건을 겪었음에도 우리는 나름 즐겁게 놀았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안타깝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그만큼 구한 사람도 있었으니 더 이상 나쁜쪽으로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잊지는 않을테지만.

  "그럼 다음주에 봐."

  "네~. 잘가요 언니."

  선생님과 학생인 두사람의 뜨거운 이별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선생님을 보내드렸다. 라고 하려했지만

  "언니 집까지 데려다 주고 와. 아직 힘드실테니까."

  역시 수연이였다. 유아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나는 곧장 멀어져가는 선생님의 등을 쫓아가 옆에서 같이 걸었다.

  "정말 괜찮은데."

  "아뇨. 저도 그렇지만 유아랑 수연이도 걱정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있으면 웬만한 녀석들이 덤벼와도 괜찮으니까요."

  억지로 과한 행동을 보여주며 선생님을 안심시키려하자 그 모습을 우스꽝스러웠는지 웃음을 터트리셨다.

  선생님은 웃고 계신게 더 예쁘다.

  "그런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해줄거야."

  "설마 제가 입으로 꺼냈어요?"

  "응."

  ……. 안그래도 표정으로 다 드러난다는 소리를 듣는데 이제는 속으로 생각하는 것까지 입으로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다니 이거 이제 정말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겠다.

  "조심할게요."

  "응, 꼭 그렇게 해줘."

  선생님께서도 격하게 흔드시며 내 문제점 해결을 긍정하셨다. 이렇게 격하게 긍정하시면 아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칠 것은 고치는 좋으니까.

  우리는 아무런 말 없이 계속 걷기만 했다. 딱히 어색해서 할 말이 없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저 같이 걷기만 해도 괜찮다는 느낌이었다. 난 그렇게 느꼈지만 선생님은 잘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 궁금한 것이 떠올랐다.

  "누나, 어쩌다가 선생님하게 됐어?"

  이제는 누나라고 하는 것이 익숙한 느낌이 된 것 같다.

  "음, 그렇게 큰 계기는 없었는데. 그저 아이들을 돌보는게 좋았고 힘들어 하는 애들을 도와주고 싶었어."

  사람 성격은 행동으로 나온다고 해야하나 선생님께서 학교에 계실 때는 항상 웃으시면서 학생들을 봐주시니 즐거울만 했다.

  "그래도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마냥 쉬운 직업은 아니더라구. 애들이랑 얘기할 때는 재미있지만 교감선생님이라든지 교장선생님이라든지 불평을 할 생각은 아니였지만 그 분들이랑 얘기할 때는 조금 싫어. 학생한테 할 얘기는 아니지만."

  미소를 지으시는 것을 보면 정말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많이 힘드신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선생님 나름대로 학교를 즐기고 계셔서 다행이다.

  "이제 다 왔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자 작은 주택이 하나가 있었다. 거의 허물어 가는 이 주택에서 사신다고? 애초에 들어온 길 자체도 꽤 어두워서 집에 올때도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데. 드문드문 가로등이 있지만 이걸로 될까? 아예 이사하시는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괜찮아. 조만간 이사할거니까."

  역시 나 얼굴에 다 드러나나보다. 이사를 하신다니까 이제 걱정은 하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빨리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들어가볼게."

  "네."

  선생님은 내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시고 그대로 주택 안으로 들어가셨다. 문이 닫히는 것까지 확인한 뒤 나는 집으로 향했다.

  그러자 바로 내 단말기가 진동을 울렸고 나는 뭔 일인가 확인했다. 선생님으로부터 온 메세지였는데 잘 들어갔다는 얘기와 함께 도와주어서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얘기였다. 나는 답장으로 나도 즐거웠으며 곤란할 때는 언제든 불러달라는 내용으로 보냈다. 왠지 낯부끄러운 짓을 한 것 같지만 뭐 어떠랴. 지인이 안전한게 더 중요하니까.

  "그래서 언니는 잘 데려다 줬어?"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째서인지 우리집에서 유아와 수연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 메세지도 받았어."

  유아의 물음에 당연하듯이 보고를 했다. 수연이는 옆에서 유아도 직접 연락을 해서 확인했다고 한다. 철저하시군요 유아씨.

  "그나저나 의외였어. 다시 대화를 시작한지 며칠 지나지 않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할 줄은."

  수연이도 그 점에는 궁금했었는지 내게 질문해왔다. 정작 본인인 내가 가장 놀랐지만.

  "그래도 나 혼자 여성인 누나를 집에 데리고 있을 수는 없는거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실때는 여성은 항상 조심스럽게 대하라고 하셨으니까."

  그렇게 되면 나도 참 곤란하다. 안그래도 연애 경험이라고는 하나 없고 여성인 가족이라고는 어머니밖에 계시질 않으니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선생님처럼 예쁜 사람과 단 둘이 있는게 어색해서 정말 아무런 일도 못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 너라면 그럴 것 같긴해."

  유아가 자신과 수연이를 제외한 여성을 대하는게 어색하다는 것을 듣고 너무 변하지 않아서 그럴 것 같았다며 내 볼을 꼬집었다. 덤으로 "이 귀여운 녀석"은 빼놓지 않았다.

  "그럼 너 어떻게 5층에서 뛰어내렸는데 말짱해? 그거 망가져서 바람이 잘 들어가 있지 않다던데."

  이제는 그건가. 아까는 모르는 눈치였는데 말이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똑바로 말해."

  내게 도망칠 곳은 없는 듯하다.

  "내 능력은 알지?"

  "응, 행운을 보는거."

  "그것 때문에 따돌림 당하는거잖아."

  수연이의 말도 아주 틀리지는 않다. 어렸을때는 능력이 너무 하찮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으니까. 나중에는 학교에 떠도는 소문이 더 컸지만.

  "그것도 맞는데 소문쪽이 이유로는 더 커. 어쨌든 내 행운을 볼 수 있잖아? 그 행운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어. 얼마만큼까지 줄 수 있는지 모르지만 일단 그래."

  "정말?"

  "응, 그걸로 도움을 준 사람들도 있고 효과가 있다는 것도 확인했으니까."

  오늘 같은 경우는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중학생였을때나 작년에 자주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실험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을 돕는 겸해서 말이다.

  "행운을 주게 되면 20단위로 신체능력이 향상되는 모양이야. 80, 60 이런식으로 말이지."

  "몰랐어."

  "그야 내가 안알려줬으니까."

  유아는 왠지 억울한 표정이 되어있지만 중학생때 처음 알았는데 어떻게 하라고.

  "그럼 너희 아빠는 알아?"

  "응. 그리고 아저씨들이랑 아주머니들도 알고 계셔."

  "그런데 우리한테는 안 알려줬다고? 왜?"

  "왜긴 너희가 나랑 얘기 안했잖아."

  조금 놀리는 기분으로 얘기했지만 유아는 그렇지 않았는지 시무룩해졌지만 수연이는 왠지 납득하고 있었다. 그렇긴하네라며.

  "그런식으로 얘기하는건 치사해."

  "미안해."

  장난이 조금 심했던 것 같다. 어쨌든 이야기를 시작하자 봇물이 터지듯이 내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그 아저씨는 어떻게 됐는데?"

  "지금은 안 계셔."

  "아……."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보니 결국 목숨을 잃었던 분들의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중학교 2학년 때 만났던 친절했던 아저씨, 이제는 볼 수 없는 그 아저씨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아와 수연이는 듣고 명복을 빌어주었고 나도 오랜만에 다시 기억해냈다.

  "이런 저런 일이 많기는 했지만 극복해내고 있는 중이야."

  "흠……."

  생각에 잠긴 유아는 턱을 당기고 손으로 자신의 옆머리를 만지작 거렸다. 옛날부터 있던 유아의 습관이다.

  "알겠어. 그럼 우리도 이만 가볼게."

  "그래? 잘 가."

  의외로 시원스러운 유아의 모습에 의아했지만 혼자 좋은 생각이 난 것이겠지 싶어 그냥 보내주었다.

  그 뒤로 나는 목욕을 하고 어제 못한 청소와 공부를 한 다음 잠에 들었다. 오늘은 생각보다 보람찬 하루가 되었다.

  주말은 그 날을 제외하고는 평화로운 나날이 되었다. 유아는 오지 않았고 수연이도 연락만 할 뿐 딱히 놀러오지는 않았다. 왠지 매우 오랜만에 혼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다음주가 되어 학교를 등교하게 됐고 평소와 다름없는 유아와 수연이의 태도와 반 아이들의 시선에 원래 이랬지하며 납득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아침 수업은 상당히 즐거운 공부시간이 되었다. 딱히 싫어하는 과목이 없는 나로서는 어떤 수업도 재미있지만 특히 수학인 담임선생님의 수업은 다른 수업에 비해 좋아한다. 선생님도 즐겁게 가르치시는 걸 알 수 있기도 하고 나도 즐거우니까 좋아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어 나는 잊어버린 도시락을 기억해내고 매점에 가기로 했다. 급식실에서 주는 음식은 왠지 입에 안맞아서 싫었기 때문에 그쪽은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갑을 챙겨 일어나려고 하자 내 책상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저, 저기."

  목소리와 교복을 보니까 여학생인데 누구지? 고개를 들어보니 검은색 긴 생머리에 앞머리까지 길어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다. 말까지 더듬는 것을 보면 상당히 낯을 가리는 친구인데 무슨 볼 일이?

  "왜?"

  일단은 모른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왜, 우리 반일지도 모르잖아.

  "나 같은 반인데. 자, 잠시만 따라와줄 수 있어?"

  뭐지?

  "알겠어. 그전에 매점에 들려도 될까?"

  "으, 응 우리가 갈 곳도 매점 뒤니까. 괘, 괜찮아."

  음, 이렇게까지 긴장할 이유가 있나? 모르겠지만 내가 이 아이의 긴장을 지금 당장 풀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 모르니까. 조금 막무가내 같은 생각이려나.

  여학생과 함께 매점으로 향해 좋아하는 빵 몇가지를 집어 들고 우유와 함께 매점 뒤로 향했다. 배가 고프니 어서 빨리 이야기를 마치고 먹고 싶지만 상대는 꽤나 중요한 용건처럼 보였다.

  "미, 미안해. 친하지도 않은데 불러서."

  "아니, 괜찮아. 나도 우리 반 애랑 얘기해서 조금 기쁜데."

  사실 나도 긴장을 하고 있기는 했다. 두번째이기는 하지만 반 아이들과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 적응하기 힘든게 당연했다.

  "앗!"

  갑작스러운 바람에 여학생의 머리카락과 옷가지가 흔들렸다. 치마쪽은 바로 잡았으니 다행이었지만 머리카락은 격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얼굴을 가리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는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예쁜데 왜 가리나 싶었다. 유아와 수연이 옆에 있어도 꿀리지 않을만큼 예쁜데 말이다. 각자의 사정이 있으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미안해."

  "아니야.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기다려줄게."

  사실 지금 저 아이가 아니면 또 그 공원으로 가서 빵을 먹은 뒤 낮잠을 자고 있을테니까 딱히 급한것도 아니다. 잠을 안자면 수업시간에 조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고, 고마워!"

  기다리기를 5분정도가 지나가 용기가 났는지 내게 소리쳤다.

  "뭐가?"

  "동생이랑 엄마를 구해줘서 고마워."

  언제를 얘기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사건이었는지도 몰라서 알려주었으면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아차 싶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어째 내가 억지로 시킨거 같은 타이밍인데.

  "저번주에 있었던 백화점."

  아! 그거. 그래도 잘 모르겠는데. 사람이 하도 많고 급한 상황이라서 나는 기억을 하지 못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자 상대방 쪽에서 알려주었다.

  "우리 엄마가 건물 파편에 다치실뻔한걸 네가 도와줬다고 동생이 그래서."

  "그래? 그런데 나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

  여학생은 자신의 단말기를 꺼내들어 불투명한 화면을 띄워 내게 보여주었다. 화면속에는 한 노트에 그려진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거 내 동생이 그런거야. 능력 덕분에 자신의 기억을 그려낼 수 있어."

  그림은 내가 한 여성을 감싸고 있는 것이었는데 매우 자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꽤 굉장한 능력인데.

  "그래서 바로 알 수 있었구나. 동생 대단한데?"

  "헤헤."

  동생의 칭찬에 자신의 칭찬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동생을 많이 좋아하는 아이인 듯하다.

  "그 얘기를 하고 싶었어."

  미소를 짓는 그 아이를 보고 있자.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어째서일까.

  "아, 맞다. 내 이름은 차수혜야. 까먹고 있었어 미안해. 이제서야 말해서."

  미안해하는 수혜의 모습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무언가 목을 막았다.

  "나 같은 애가 말하기도 그렇고 2학년이 된 지 한달이 되어가는 지금 와서 얘기하는 것도 조금 뭣하지만 친구가 돼줄래?"

  수혜의 그 말을 듣자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갑작스럽게 우는 나를 보고 수혜는 당황했다. 그럴만도 하다. 나도 지금 내가 너무 어이가 없었다.

  "괜찮아. 잠시만 기다려줘."

  수혜의 얼굴을 보지 못할만큼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왜일까, 왜 눈물이 나는걸까. 나는 친구가 필요했을까, 아니면 칭찬을 받고 싶었던걸까. 친구는 유아와 수연이가 있고, 칭찬이라면 부모님과 아저씨, 아줌마들이 해주시는데.

  그게 아니면 뭘까.

  둘 다 얻고 싶었던걸까.

  아마도 그게 맞지 않을까.

  "그런 낯간지러운 소리 잘하는구나."

  나는 울먹거리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기뻤다. 그래, 기쁜 것이었다.

  "잘 부탁해."

  처음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얻지 못했던 만족감을 갖고 수혜에게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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