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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쇼비타 성의 도련님(2)
작성일 : 19-09-23 08:31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7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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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히메가 유죠에 대한 처분을 결정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9월의 어느 날이었다. 유난히 하늘이 파랗던 어느 늦가을 날 유죠는 옥사에서 끌려나와 봉행들에 의해 심문을 받았다. 오다 단조노추가를 섬기는 세 명의 봉행 키요스 타다토미, 유미즈 제쿠, 호스이 아오키는 유죠의 스승을 비롯하여, 마사토부의 하나뿐인 아들 유죠가 마땅히 가독을 이어야 한다 여겼던 이들을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잡아들여 고문하고 그 일족까지 인질로 잡아 협박해 유죠가 자신들을 준동해 반역을 획책하였다는 조서를 강제로 받아내었다.

 

  “내가 반역을 꾀하였다고?”

 

  삼봉행의 입에서 나온 말에 유죠는 기가 차 헛웃음을 지었다. 아버지가 건강하실 때만 해도 자신이 마땅히 가독을 이어야 한다 주장했던 이들이 누나의 편에 붙어 자신을 죽이려 하는 이 상황이 너무 우스워 유죠는 자신도 모르게 포복절도하고 말았다.

 

  “하하하. 하하하. 아하하하하.”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 그대는 어찌 웃으시오! 전하께 반역을 꾀하려 하였음은…….”

  “키요스 타다토미, 유미즈 제쿠, 호스이 아오키. 그대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반역을 꾀할 이유가 있더냐? 어디 한 번 말해보아라. 나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시다가의 유일한 후계자였다. 그러니 내게 반역을 꾀할 이유 따위는 없다. 나는 그저 후계자교육을 착실히 받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렇지 아니하냐?”

 

  몸이 자유로워져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어서 그런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방 안에 갇혀 있을 때와는 다르게 입에서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말하기 전에는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스승에게 누누이 가르침을 들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것이 무어 그리 중요하랴. 유죠는 세 명의 봉행을 노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할 말은 하고 죽어야 억울함이 덜하지 않겠는가. 유죠는 아랫배의 단전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높였다.

 

  “풀어라!”

  “방금 무어라 하였소?”

  “이 줄을 풀라 하였다. 나를 묶은 이 오랏줄을 풀란 말이다!”

 

  유죠는 팔을 뒤로 하고 오랏줄에 묶인 상태에서도 몸을 꼿꼿이 일으켜 세우려 애썼다. 곧 형리들이 다가와 바르작거리며 일어서는 유죠의 몸을 땅바닥에 짓눌러 고정시켰다.

 

  “나는 이시다가의 가독을 이을 유일한 후계자였다. 그런 나를 너희들이 어찌 이리 대할 수 있단 말이냐! 어서 이 줄을 풀어라, 어서!”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

 

  타다토미가 유죠의 이름을 불렀다. 유죠는 형형한 눈으로 타다토미를 노려보았다.

 

  “전하께서도 선언하셨듯이 그대는 이제 더 이상 이시다가의 후계자가 아니오. 그저 전하께 반역을 꾀하려 한 죄인일 뿐.”

  “닥쳐라!”

 

  유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조금 전까지보다 훨씬 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반역이 무엇이고 역모가 무엇인가. 바로 적법한 후계자의 자리를 빼앗는 것을 두고 그리 말하지 않던가. 그러니 반역의 죄를 묻는다면 그것은 누나가 자신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나에게 물어야할 것이었다.

 

  “감히 적법한 후계자를 저버리고 역도에게 붙은 너희의 죄를 세상이 용서할 줄 아느냐? 하늘이 용서할 줄 아느냐? 신불들께서 용서하실 줄 아느냐? 너희는 지옥에 떨어져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이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가 죽어서도 너희들을 저주할 테니까.”

  “저, 저런!”

 

  할 말을 마친 유죠는 삼봉행을 차례로 노려보았다. 유죠의 눈빛을 마주한 삼봉행이 무엇이라도 좋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저 입에서 자백을 받아내라고 명했다. 곧 형리들이 다가와 유죠를 끌고 가 오랏줄을 풀고 옷을 벗긴 다음 두 손을 허공에서 교차해 형틀에 묶어 세웠다.

 

  “곱게 자란 도련님이 견디기에는 고초가 너무 클 것이오. 지금이라도 순순히 자백하시오.”

 

  제쿠가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유죠는 갑자기 부드러워진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땅바닥에 퉤, 하고 침을 뱉었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형리 두 명이 번갈아가며 유죠의 몸을 채찍으로 갈기기 시작했다.

 

  “으윽!”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지만 유죠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려 애썼다. 그 어떠한 고초 앞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무가의 도리가 아니던가. 그러나 아무리 무가의 자식이라 해도 유죠는 이제 겨우 열 살 어린아이였다. 채찍질이 거세질수록 유죠의 다물린 입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고, 유죠는 결국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하아앗!”

 

  한동안 비명을 지르던 유죠가 단말마의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유죠가 혼절했음을 안 형리들이 얼굴에 찬물을 끼얹어 유죠를 깨웠다. 유죠는 다시 다가올 채찍질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또다시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미리 마음의 준비만은 해두고 싶었다.

 

  추풍에 견고한 나무는 다른 낙엽인가

 

  유죠는 렌가(일본 고유 시가의 한 장르로, 한 수의 와카 31자를 5.7.5와 7.7로 나누어 두 사람이 읊는다.)를 읊었다. 죽음이나 그 밖의 고난의 순간에서 시구를 읊으며 앞으로 닥쳐올 일을 의연히 맞는 것은 무가의 당연한 도리였다.

 

  “으윽!”

 

  또다시 채찍이 유죠의 여린 살을 찢으며 파열음을 냈다. 유죠는 형틀이며 땅바닥에 뿌려지는 붉은 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미 찢어진 살이 또 찢어지며 자잘한 살점들이 떨어져나가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가 싶더니 끝내는 형틀과 땅바닥에 튀는 피에 섞여 흘렀다.

 

  “잠시 멈춰라.”

 

  삼봉행 중 아오키가 부채를 펼쳐 채찍질을 멈췄다. 유죠는 거친 숨을 내쉬며 아오키를 바라보았다. 아오키의 눈에 약간의 동정심이 서려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유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가신에 불과했던 이에게 동정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죽을 수도 있소.”

  “…….”

  “고문을 받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오.”

  “당연히 그렇겠지.”

  “그러니…….”

  “그러니 이제 그만 죄를 인정하고 이 고통을 끝내라?”

 

  유죠는 푸흐흐, 하고 웃어버렸다. 죄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자신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죠는 동정심을 담은 아오키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오키.”

  “…….”

  “대체 나더러 무엇을 인정하라는 말이냐.”

  “…….”

  “나는 이시다가의 적법한 후계자이다. 그런 내게 반역의 죄를 인정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에 다름 아니며, 반역의 죄를 묻는다면 적법한 후계자의 자리를 찬탈한 카이히메게 물어야 할 터. 그러니 나는 너희들과 카이히메가 내게 뒤집어씌우려 하는 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유죠의 입에서는 누님이라는 호칭이 아니라 카이히메라는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유죠는 등을 곧게 펴고 형리들을 둘러보았다. 형리들이 이번에는 인두를 불에 달구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이왕 할 것이면 빨리 시작하자.”

 

  유죠는 눈을 감았다. 저 인두가 살에 닿는 순간, 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지독한 누린내가 퍼지고 어마어마한 고통이 닥쳐올 것이었다. 유죠는 형리가 인두를 살 앞에 가져다대는 순간까지도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뜨면 공포에 질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좀 뜨거울 거야, 도련님.”

 

  형리가 인두를 유죠의 옆구리에 가져다댔다.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유죠의 눈이 저절로 떠졌다. 유죠는 신음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고개를 푹 떨구었다. 유죠는 풀린 눈으로 또다시 다가오는 인두를 바라보았다. 인두가 다른 쪽 옆구리와 가슴, 복부, 그리고 허벅지를 연달아 지졌다. 유죠는 끝내 정신을 놓고 형틀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끌어내려라!”

 

  그러나 삼봉행은 여기서 고문을 멈출 생각이 없는지 유죠의 축 늘어진 몸을 꿇어앉히고 찬물을 뿌렸다. 다시 정신을 차린 유죠의 앞에 무거운 돌이 쌓이고, 빼곡히 못을 박은 나무판자가 대령되었다.

 

  “하, 이제는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게 내 무릎까지 부수려는 거군.”

 

  유죠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무릎 위에 나무판자를 올려놓는 형리들의 손동작을 바라보았다. 흡사 찻잔을 어루만지는 듯한 우아하고 섬세한 태도에 유죠는 고문도 다도와 마찬가지로 예술이라면 예술일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멈춰라!”

 

  누나 카이히메의 유모인 아라츠보네의 목소리와 함께 삼봉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깊이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유죠는 자신에게서 멀어져가는 손들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판자를 바로잡고 돌을 쌓으려던 형리들의 손이 일제히 멈추고 잠시 그대로 머물다 뒤로 물러나는 것을 바라보던 유죠는 새삼 아라츠보네의 영향력을 확인했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고작 젖어미 주제에 반역자를 키운 공로가 있다고 으스대는군. 그렇지 않은가, 아라츠보네.”

  “무례하오. 나는 전하를 키운 전하의 유모요. 이 이시다가의 가주를 내 손으로 키웠단 말이오. 그러니 나는 이시다가의 또다른 어머니라 할 수 있소. 한데, 그대가 내게 어찌 이리 무례할 수 있단 말이오.”

  “일개 하인에 불과한 주제에 말이 많구나. 젖어미는 그저 젖어미일 뿐이다. 어미를 대신해 젖을 물리는 하인에 불과할 뿐 절대 또다른 어미가 될 수 없다. 오랫동안 무가에 몸 담아온 네년이라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터. 한데, 네년이 말하는 것을 듣고 보니 방자하기 이를 데 없구나.”

 

  유죠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 가문의 적법한 후계자를 끌어내려 반역의 죄를 뒤집어씌우고 그로도 모자라 이제는 일개 하인에 불과한 젖어미에게까지 권력을 쥐어주는구나 싶어 유죠는 자꾸만 새어나오는 헛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한참을 웃고 난 유죠는 쿨럭 거리는 기침을 뱉어내며 온몸을 들썩거렸다. 채찍으로 맞은 상처며 인두로 지져진 상처에서 피가 터져 나와 땅바닥에 한 차례 뚝뚝 떨어졌다. 유죠는 마치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자신의 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상처가 터진 모양이로군.”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유죠는 자세를 꼿꼿이 하고 아라츠보네를 노려보았다. 아라츠보네가 뒤를 따라 온 시녀들이 받쳐 들고 있는 나무함을 눈썹 위로 한 번 들어 올렸다 자물쇠를 열었다. 자물쇠에는 둘둘 말린 비단 두루마리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를 포함한 반역자들은 전하의 지엄하신 명을 받들지어다.”

 

  아라츠보네에게서 두루마리를 건네받은 삼봉행이 일제히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유죠는 형형한 눈으로 삼봉행과 아라츠보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빛을 차마 보지 못하겠는지 아라츠보네의 뒤에 선 시녀들 중 몇 명이 고개를 돌리며 “나무아미타불.” 하고 작은 소리로 염불을 외웠다.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는 아버지이며 이시다가의 선대 당주, 오와리국의 다이묘이셨던 이시다 단조조추 사이조노스케 마사토부님이 돌아가시기 전 후계자로 지명한 나, 이시다 단조노추 카이를 이시다가의 적법한 당주와 오와리국의 적법한 다이묘로 인정하지 않았음은 물론, 자신이 마사토부님의 유일한 아들임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이시다가의 당주와 오와리국의 다이묘가 되고자 하였으니 그 죄가 하늘에 닿았으며 이시다가와 오와리국을 지켜주시는 신불들을 노하게 하였도다.”

 

  하? 유죠는 기가 막혀 입을 헤 벌렸다. 하늘? 신불? 이제는 하다하다 별 말 같지도 않은 것들을 갖다 붙인다 생각하며 유죠는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늘이며 신불들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어떻게 적법한 후계자의 자리를 빼앗고 그로도 모자라 반역의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단 말인가.

 

  “또한 그 스승 이와다 미스나리를 필두로, 그에게 준동하여 함께 반역을 획책한 이들의 죄 또한 결코 신불들께 용서받을 수 없는 만고의 죄악일 터. 이에 나, 이시다 단조노추 카이는 다음과 같은 처분을 내린다.”

 

  두루마리에 적힌 명령을 읽으려던 산봉행의 눈이 일순간 커지는 것을 유죠는 놓치지 않았다. 대체 저 포고문에 무엇이 적혀있기에 저들이 저리 놀란단 말인가. 유죠는 짐짓 태연한 척 삼봉행 모두의 입을 차례차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반란의 수괴인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에게는 다음과 같은 처분을 내린다.”

  “…….”

  “그가 비록 이시다가의 당주이며 오와리국의 다이묘인 내게 역심을 품었다고 하나, 그는 나의 하나뿐인 동생이다. 그러니 그 목숨만은 보전해줄 것이다. 그러나 역심을 품은 자와 어찌 한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나는 그를 이시다가에서 파문하고 얼굴에 낙인을 찍어 오와리국의 영토 밖으로 추방할 것을 명한다. 또한 그는 일평생 오와리국의 영토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며, 그를 오와리국의 영토 안에서 발견하는 자는 누구든 그를 사살해도 좋다.”

  “…….”

  “또한 이와다 미스나리를 포함한 나머지 가담자들 전원에게는 사형을 선고하는 바이니 그 시체를 오와리국의 전 영토에 전시해 모두에게 본을 보이도록 하라.”

 

  죄인의 낙인이라. 유죠는 하하, 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에 낙인이 찍힌 죄인은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존재, 히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예전의 신분이 무엇이었든 한 번 히닌이 되고 나면 다시는 사람답게 사는 것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히닌은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속하는 계층이었다.

 

  “히닌.”

 

  유죠는 그 이름을 입으로 불러보았다. 한자로 직역하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뜻을 가진 그 이름을 가만히 음미하다 말고 유죠는 뒤로 묶인 손에서 손가락 하나를 간신히 움직여 남몰래 허공에 그 이름을 써보았다.

 

  ‘非 人.’

 

  이제는 더이상 이시다 단조노추도, 유죠도 아닌 이 히닌이라는 말이 자신의 이름이 될 터였다. 유죠는 비단보자기에 싼 함을 들고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아라츠보네를 올려다보았다. 곧 형리들이 다가와 손을 풀어주고 아라츠보네가 보자기를 풀고 함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유죠에게 건네주었다.

 

  “전하께서 그대에게 내리시는 은사장(恩 赦 狀)이오.”

  “은사장이라…….”

  “전하께서는 그대가 전하께 품은 역심마저도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는 은전(恩 典)을 베푸시었소. 그러니 어서 전하께 감사를 표하시오.”

  “지금 감사라 하였느냐.”

 

  일순간, 유죠의 눈에 이채가 서리는가 싶더니 유죠의 손 안에서 은사장이 좍좍 찢어지기 시작했다. 비단에 종이를 발라 만든 두루마리라 잘 찢겨지지 않아 애를 먹으면서도 유죠는 은사장을 찢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고 결국, 형리들이 달려들어 유죠의 몸과 얼굴을 땅바닥에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은전이라. 그래, 참으로 은전이로구나. 그래, 그렇게도 내가 두려웠단 말이냐? 그렇게도 내가 두려워 이시다 단조노추로도, 유죠로도 살지 못하게 히닌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내려주고 그것을 은전이라 부를 만큼?”

  “닥치시오!”

 

  아라츠보네가 소리를 질렀다. 유죠는 아라츠보네의 말을 들은 척 만 척 하며 형리들을 돌아보았다. 아라츠보네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연신 무어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형리들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낙인은 너무 심하다는 기색을 얼굴에 띄우고 어린 유죠의 눈을 애써 피하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카이히메가 그렇게 나를 두려워한다면 내 기꺼이 그에 따라주마. 그래야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로서의 마지막 명예를 지킬 수 있지 않겠지. 형리들은 무얼 하느냐! 어서 내 얼굴에 낙인을 찍지 않고!”

 

  유죠는 어딘가 모르게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소리쳤다. 누나에 대한 비웃음을 가득 담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얼굴에 찍힐 낙인이 새겨진 불도장을 바라보는 유죠의 눈은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작가의 말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무가의 아들. 그렇기에 유죠는 고통 속에서 의연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가의 아들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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