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불타버린 재와 무덤지기
작가 : 오렌지핥고싶다
작품등록일 : 2019.9.8

세계를 이루는 다섯가지 색은 변질했고, 대륙의 중심을 다스리는 여왕은 숨을 거두었다. 백성들은 변질한 통치자를 그저 두려워 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을 연명한다. 대륙의 나머지를 다스리는 4명의 여왕은 타락해 고귀하던 영혼을 더럽혔다. 신은 이 모든 참사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렇기에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몸에서 흐르는 검붉은 혈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는 다짐했다. 망가질대로 망가져버린 이 세계를 반드시 되돌려 놓겠다고.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작성일 : 19-09-23 01:03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470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혈(血) 993년 적(赤) 월 5일]

 

 “일어나..”

 

 의식이 몽롱하다. 전신은 철근이라도 넣어둔 것 마냥 무겁고, 눈꺼풀은 잘 떠지지 않았다. 미세하게 경련하는 눈꺼풀 너머에서는 희미한 빚줄기가 들어왔다. 동시에 누군가가 연신 몸을 흔드는 감촉이 느껴졌다. 론은 옅은 신음소리를 내며 가까스로 눈을 떴다.

 

 “일어.. 났네? 일어나라면 빨리 일어날 것이지. 입 아프게..”

 

 론이 눈을 뜨자마자 그를 반긴 것은 정신을 잃기 전 보았던 상태와는 완전히 딴판인 아리아의 모습이었다. 누가 덮어 주었는지 알 것도 같은 이불은 빳빳하게 펴져 몸 위에 덮여져 있었고, 미약한 나무 향이 맴도는 심플한 방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아리아의 상태는 그야말로 굉장히 쌩쌩한 상태였다. 자신이 물어뜯은 팔 하며, 짧은 전투 사이에 입은 부상들까지 대부분의 상처들이 치료되어 있는 상태였으니.

 

 “어.. 여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부상을 입히지 않으려 했던 약간의 수고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조금은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뭐 어쩌겠는가.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다. 론은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의아한 눈빛으로 아리아를 쳐다보았다.

 

 “내 집 안이야. 짜릿한거 한방 맞고 기절해있다 깨보니까, 니가 내 옆에서 자고 있더라고. 밖에서 자면 입 돌아가니까 집 안으로 옮겨줬지. 치료도 해주고.”

 

 그러고 보니 몸 군데군데를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무언가의 감촉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불을 들춰 보니 꽤나 좋은 솜씨로 붕대가 이리저리 감겨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싸울때는 그렇게 죽일 듯이 싸우더니만, 예상 외로 승패를 깔끔하게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덕분에 상태가 상처에 비해 조금 더 나았던 거군요. 감사합니다 아리아. 이런 치료까지 해주실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론은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아리아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아리아는 이런 감사가 익숙치 않은 듯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정신나간 광기 뒤에 이런 섬세한 면모가 있었다니. 굉장히 신비로운 사실이다.

 

 “감사는 무슨.. 그냥 거기 버려두기 조금 그래서 줏, 줏어온거야. 아무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와! 간단하게 밥 해뒀으니까. 밥이나 먹으면서 천천히 얘기하자고.”

 

 그러고 보니 요 하루동안 뭘 제대로 먹은 기억이 없다. 기껏 한 아침 식사라고 해봐야 간단하게 달달한 약초와 열매로 대충 때운것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장소가 숲 속인 이유도 있었고, 한시라도 빨리 아리아를 찾기 위해서 발걸음을 재촉한 이유도 있었다.

 

 그렇기에 맛있는 냄새에 반응한 배는 즉시 꼬르륵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난 소리라 천천히 올라오는 부끄러움에 론의 얼굴이 조금 빨개졌지만, 아리아는 개의치 않은 채 턱짓으로 방 바깥을 가리켰다.

 

 찌뿌둥함과 약한 통증이 가시지 않은 몸을 이끌며 방을 나가자 그곳에는 심플한 식탁 하나가 의자들을 곁에 낀 채로 놓여있다. 그 위에 감자 하며 고기같은 것들이 조리되어 올려져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은 거실인 모양이었다.

 

 먼저 식탁에 자리를 잡은 아리아는 벌써 제 몫을 나무 그릇에 옮겨담으며 식사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양을 보니 이걸 둘이서 다 먹을 수 있을까 잠깐동안 걱정이 들었지만, 이내 그 걱정은 빠르고 힘있게 음식들을 먹어치우는 아리아의 모습에 치여 사라졌다.

 

 “으음.. 역시 감자랑 고기랑은 엄청나게 잘 맞는다니까. 쥐꼬리만큼 남은 향신료를 쓰기 잘했어. 너도 빨리 먹어. 나으려면 먹어야 하고, 먹으려면 나아야 하니까. 안 먹으면 내가 다 먹는다?”

 

 론은 주린 배를 손으로 약하게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탁에 앉아 음식들을 그릇에 담자니 얼마 전에 맞은 옆구리가 쓰라려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하나뿐인 팔도 조금 욱신거려 음식을 담기가 쉽지 않았다.

 

 “..줘봐. 넌 무슨 기사씩이나 되는 놈이 먹을거 하나 못 담냐?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

 

 하지만 이내 답답하다는 표정을 한 아리아가 론이 들고 있는 숟가락을 가로채듯 가져갔고, 고기와 감자를 수북히 담아주어 이 문제는 곧바로 해결이 되었다. 론은 옅게 미소지으며 아리아가 음식을 담은 그릇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아직 얻어맞은게 덜 나은 모양이에요. 아리아, 당신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대충 보아하니 부상이 거의 다 나은 것 같네요.”

 

 “아, 이거? 그냥 한숨 자고 일어나니까 나았는데. 넌 왜 아직도 몸 상태가 그래? 제대로 못 먹고 다녀? 이 기회에 좀 많이 먹어둬. 안쓰러워서 원..”

 

 정말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아리아. 론은 이런 아리아의 정신나간 소리에 잠시 움직이던 식기를 멈췄고, 이내 멍청한 표정이 그 뒤를 따랐다. 고개를 갸웃이는 것을 보아하니 아리아는 이런 회복력에 대한 자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밥은 적당히 먹고 다닙니다.. 오히려 안쓰러운건 당신이에요. 아리아가 비정상적으로 회복력이 좋은겁니다. 도대체 이런 간단한 사실조차 모를 정도라니, 얼마나 이 숲에 쳐박혀 있으셨던 겁니까?”

 

 “13년.”

 

 “장난치지 마시고..”

 

 뜬금없는 숫자에 인상을 약간 구긴 론에 비해, 아리아의 얼굴에는 전혀 장난스러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진짜로 13년을 이곳에서 지낸건가? 그런 결론이 나오자 론의 얼굴에 멍한 표정이 떠올랐다.

 

 “진짜야. 내가 올해 23살이니까. 10살 때부터 아버지란 인간이 날 여기에 쳐박았어. 정식 무덤지기가 되기 전까지는 편하게 지내선 안된다면서.”

 

 밝은 어조로 말하면서도 고기를 씹어 삼키는 아리아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론의 스승이기도 했던 전대 무덤지기가 조금 엄격하고 고지식한 성격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심한 사람이었을 줄이야. 예상치도 못한 충격에 론의 식기를 움직이던 손이 잠시 멈추었다.

 

 “미친 인간이지. 뭐, 덕분에 강하게 자라긴 했어. 몇 번 목숨의 위협도 느끼면서 불의 사용법도 익혔고. 결국 정식 무덤지기 임명을 받기도 전에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나버렸지만 말이야.”

 

 “..미안합니다. 쓸데없는걸 물어본 것 같네요.”

 

 “됐어. 밥이나 먹어. 다 먹고 얘기할거 하자.”

 

 그렇게 그 둘의 이야기는 거기서 끊겼고, 조금 불편한 침묵 속에서 식사가 모두 끝났다. 식사가 모두 끝난 뒤에는 론이 식기를 치우며 간단하게 설거지를 했다. 아리아는 휑한 찬장을 털어 먼지 쌓이던 찾잎 통을 꺼내었다.

 

 “자. 차 식기 전에 마셔.”

 

 아리아가 식탁에 앉아있던 론에게 김이 모락모락 차는 금빛의 차를 건네었다. 차를 준비하기까지의 시간은 정말 놀랍도록 빨랐다. 도중에 아리아의 손에서 작은 불꽃이 나왔던 것을 보아, 불꽃을 사용해 급속도로 차를 데운 모양이었다. 불을 저렇게 쓰다니, 신박한걸.

 

 “감사합니다. 얘기는 짧게 끝낼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좋아. 듣던 말 중 가장 반가운 소리네.”

 

 론은 어깨를 으쓱하며 차를 한모금 마셨다. 차에서는 쌉쌀한 맛이 났다. 그와 동시에 속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어, 조금 굳어있던 몸이 한결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일단 본론부터 얘기하겠습니다. 아리아, 아샬리아께서 돌아가신 사실은 알고 계시나요?”

 

 론이 자신의 여왕이자 불의 왕국을 통치하던 지배자를 입에 담자 아리아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가끔 숲에 오는 얼간이들 족쳐서 정보를 뜯어냈거든. 대격변의 원인이랍시고 제거됐다고 했었나?”

 

 “참 어이없는 이유지만, 맞습니다. 그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아샬리아께서 돌아가시면서 안 그래도 휘청거리던 대륙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죠. 그 시기에 맞춰 다른 왕국의 여왕들에게서 이상징후가 나타나기도 했구요.”

 

 아리아는 론의 눈에 제 시선을 맞추며 조용히 설명을 들었다. 중간중간 차를 입에 가져다대어 호로록거리는 소리와 나긋나긋한 론의 목소리만이 고요한 거실을 울렸다.

 

 “여왕이 백성들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들리질 않나, 괴물같은 모습으로 변해 백성들을 왕국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소문이 들리질 않나.. 믿기 힘든 소문들이 대륙 곳곳에서 들려왔습니다. 저는 이 현상이 다른 여왕들이 아샬리아 님의 영혼을 흡수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순간 차를 마시던 아리아의 손이 우뚝 멈춰 섰다. 생전 처음 못 들을 이야기를 들은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서, 상당히 놀랐는지 입을 반쯤 벌린 채로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잠깐.. 여왕들 괴물설은 하도 많이 들려서 알고 있긴 했는데, 영혼을 흡수했다고?”

 

 “정확히는 영혼 ‘조각’을 흡수한 거죠. 여왕의 영혼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서로 섞일 수 없어요. 하지만 그건 영혼이 온전했을 때의 얘기고, 조각일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지죠.”

 

 열심히 설명을 하는 탓에 입이 탔는지, 론은 연신 차를 홀짝대었다.

 

 “몸이 파괴된 탓에 쪼개져 힘이 약해진 영혼 조각은 자신과 비슷한 성질을 가진 영혼을 찾아 다시금 영혼을 하나로 만들고 싶어 할 것이고, 거기서 채택된 것이 다른 여왕들의 온전한 영혼인 겁니다. 온전한 만큼 힘이 강할 것이고, 끌어들이는 힘이 강하니 영혼 조각은 자연스레 그곳에 흡수가 되었겠죠.”

 

 “젠장.. 영혼을 흡수한다니,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일이군. 세상이 엿같이 변한 이유가 다 있었어!”

 

 꽤나 불쾌한 기분이 된 아리아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기야, 아리아가 저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신이 내려준 영혼을 다른 영혼과 뒤섞는 행위라니. 금기도 그것만한 금기가 없다.

 

 “그래서 제가 부탁하고 싶은건 이겁니다. 아리아, 제게 힘을 빌려주세요.”

 

 불쾌감에 빠져있던 아리아는 의미심장한 론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였다. 론은 씁쓸한 미소를 지은 뒤, 기사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금기를 입에 담았다.

 

 “저는 여왕을 죽일 겁니다. 아샬리아님의 영혼을 해방시켜, 이 대륙을 정상적으로 되돌려 놓겠습니다.”

 
작가의 말
 

 세계관 TMI: 대격변이 일어난 후던,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이던, 불의 왕국에는 불의 찬탈을 원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여왕이나 론 같이, 강한 불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을 죽이면 불을 흡수할 수 있다고 믿는 얼간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한 불을 쓸 수 있는 자들은 이들의 표적이 되었으며, 정말 놀랍게도 불의 찬탈자들은 이들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약했기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 강한 불을 쓸 수 있는 자들을 어떻게 죽일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0 다시 시작되는 여정 2019 / 10 / 23 216 0 5852   
19 냉소적 퇴장 2019 / 10 / 23 227 0 4601   
18 냉기의 자식 2019 / 10 / 23 207 0 4468   
17 카샤는 개코! 2019 / 10 / 23 211 0 4693   
16 크고 아름다운 영혼철 2019 / 10 / 23 209 0 4569   
15 노래하는 대장장이 마을 2019 / 10 / 23 213 0 5293   
14 친구! 2019 / 10 / 23 204 0 5262   
13 카샤, 카샤, 카샤! 2019 / 10 / 23 211 0 4171   
12 녹색 영웅? 2019 / 10 / 23 202 0 5523   
11 간만의 휴식 2019 / 10 / 16 226 0 5187   
10 개화(開花) 2019 / 10 / 14 208 0 4691   
9 부동(不動)의 기사 2019 / 10 / 11 190 0 6001   
8 눈 먼 정의 2019 / 10 / 3 230 0 5932   
7 정원의 이면 2019 / 10 / 1 195 0 4675   
6 망할 풀때기들! 2019 / 9 / 29 246 0 4882   
5 머피의 법칙 2019 / 9 / 25 194 0 5545   
4 밥은 잘 먹고 다니냐? 2019 / 9 / 23 217 0 4700   
3 망나니 2019 / 9 / 17 233 0 6153   
2 은둔자 2019 / 9 / 9 227 0 5376   
1 프롤로그 - 대격변 (2) 2019 / 9 / 9 372 1 252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