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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에게 행운을
작가 : 로기
작품등록일 : 2019.9.19

 
꽤 즐거운데 큰일났네
작성일 : 19-09-23 00:56     조회 : 166     추천 : 0     분량 : 1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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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도장에서 운동을 마친 후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만난 형과 헤어지고 난 뒤 나는 집으로 바로 향해 편안하게 쉬기 위해 빠른 길을 택했다. 그 결과 귀를 찌르는 듯한 비명을 듣고 그쪽으로 향했는데 거기서 맞닥뜨린 것은 여러 남성에게 둘러싸여 무언가 당하고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많이 어두운 상황이지만 지금 보이는 남성들의 머릿수보다 많은 '숫자'와 조그맣게 들려오는 숨소리에 섞인 목소리와 이미 들렸던 비명으로 여성의 것이라고 알 수 있었다.

  골목 끝에 오기는 했지만 이대로 못본 채로 떠날 수도 있었다. 그건 내 선택이니까. 하지만 내 성격상 여기서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는게 문제였다. 변함없이 작용하는 내 성격에 나는 한숨을 쉬며 골목의 안쪽으로 들어가 남성들에게 질문했다.

  "저기요. 아저씨들 뭐하세요?"

  딱히 아저씨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잘 알지 못하니까 게다가 보이지가 않으니 일단 아저씨라고 불렀다.

  "뭐? 아저씨?"

  이상한데서 반응하는데?

  "넌 뭐냐."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서는 험상궂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저 얼굴을 더 무섭게 만들다니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얼굴이 너무 가까워.

  "저는 일단 지나가던 학생인데요."

  "늦은 시간이니 학생은 집에 가라."

  꽤나 친절하신 아저씨다.

  "죄송하지만 아저씨들이 둘러싸고 계신 분에게 용건이 있거든요."

  "이거 발칙한 놈이네."

  관장님 죄송합니다. 사람을 때려서 안된다고 하셨지만 이번에는 어기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사과를 한 후 내 앞에 있는 아저씨의 복부에 주먹을 때려 넣었다.

  "큽."

  아저씨는 제대로 된 소리도 내지 못한 채로 고통에 겨워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바로 발을 앞으로 내딛어 아저씨들에게 다가갔다. 내게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던 아저씨들은 한 명이 쓰러지자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 믿기지 않는지 나를 보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이내 정신을 차린 아저씨들 중

  "버르장머리 없는 것."

  두 명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조금 먼저 내게 다가오는 아저씨를 손바닥으로 밀어 벽에 머리를 박게한 후 옆에서 날아오는 주먹을 바깥으로 밀어 자세를 흐트리고 발을 걸어 바닥에 넘어지도록 했다.

  "호오."

  옆에 한 명을 낀 채로 처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아저씨에게서 목소리가 나왔다. 분위기 잘 잡으시네.

  "학생 맞냐?"

  아직까지도 여유롭게 나를 보며 앉아있는 사람의 옆에 있던 아저씨가 자세를 잡으며 다가왔다. 운동을 하는 사람인 모양인 듯 팔로 자신의 얼굴을 가드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복싱을 하는 사람인가? 생각보다 긴장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다가오는 아저씨에게 가드가 있는 얼굴쪽으로 주먹을 날렸고 아저씨는 그것에 반응해 반대쪽으로 피하려고 하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주먹을 거두어 무릎으로 아저씨의 옆구리를 가격한 뒤, 다리를 내리는 것과 동시에 손날로 가드가 풀린 목을 때려 눕혔다. 생각보다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반응은 좋지만 잔기술에 약한 것을 보면 오랫동안 운동을 해오지는 않은 모양이다.

  "야, 너 뭐냐?"

  굉장히 거만한 아저씨의 말투에 조금 기분이 상할뻔했지만 빠르게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보니까 이 좁은 골목이 엄청나게 길어보이는데?

  내가 아무런 대답도 없자 아저씨는 크게 콧방귀를 뀐 후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내게 다가왔다. 이 아저씨는 아까 그 아저씨와 다르게 오랫동안 운동을 한 사람 같다. 그도 그럴게 지금 아무렇지 않게 걸어오면서도 느껴지는 것이 생각보다 더 위압적이었다.

  "진짜 학생 맞냐?"

  "교복 안보이세요?"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겠지만. 아저씨의 말에 의외로 내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고운 말을 할 상대가 아니긴 했다.

  "그렇군."

  나도 그렇지만 내 앞에 있는 아저씨도 전혀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서로 상대가 나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나는 관장님보다 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고 아저씨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아저씨는 내게 손가락으로만 먼저 덤벼들어보라는 식으로 까딱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달려가 바로 앞에서 멈춘 후 빠르게 옆구리 쪽으로 다리를 휘둘렀다. 아저씨는 내가 다리를 휘두르는 것을 보자마자 다리를 잡고 밀어서 다시 되돌렸다. 봐주는건 탐탁지 않지만 생각보다 훨씬 눈이 좋고 경험도 많은 듯했다.

  "야, 이렇게 해서 나 맞출 수 있냐?"

  아저씨는 일부러 도발적인 발언을 해왔는데 그것에 속아 넘어가줄 마음은 없어 가만히 서 있자 이번에는 아저씨 쪽에서 덤벼들었다.

  "그럼 내가 먼저 간다?"

  엄청 가벼운 말투로 주먹을 내지르는 아저씨를 보고 확신했다. 아까 복싱한 것 같은 아저씨는 이 사람에게 배운 것이라고 말이다.

  "오, 역시 잘 피하네."

  확실히 주먹을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내질러오는 속도가 남달랐다. 하지만 맞을 정도의 속도는 아닌게 이것보다 빠른 주먹을 많이 보았고 게다가 맞기도 많이 맞았다. 이제는 그 주먹도 맞을 생각은 없지만 이건 더 느리니 맞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맞는다면 뒤에서 불안하게 보고 있는 여성에게도 좋지 않다.

  "이제 끝내자. 귀찮다."

  아저씨는 흥미가 사라졌다는 듯이 말하며 오른쪽, 왼쪽, 복부를 연속으로 가격하던 주먹을 일제히 거두더니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질러왔다. 맞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나는 열심히 피하면서 틈을 보았고 아저씨의 몸이 전보다 크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반격에 들어갔고 그것을 노렸는지 아저씨는 미소를 지었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보기 위해서 가만히 오는 주먹을 바깥으로 흘리고는 주먹을 내지르자 아저씨가 흘려진 주먹을 따라가듯 몸을 비틀어 빙글 돌면서 그대로 나를 가격하려고 했다. 이번에도 꽤 노리신 것 같지만 빠르지 않은 공격에는 맞을 생각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반격을 하려고 하는 순간 나는 이미 벽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얼굴에는 통증과 함께 부어오른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어떻게 맞은거지?

  "너 몸 튼튼하네. 나랑 같이 다닐래? 그럼 재미있는거 많이 하게 해줄게."

  내가 보기보다 말짱한 것을 보고 놀란 아저씨가 나를 유심히 보며 말했다. 말투가 아까부터 굉장히 부드러운걸 보면 그냥 나쁜짓을 하는게 아니라 재미를 위해서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 듯했다. 하지만 따라다니고 싶지 않다. 남을 괴롭히면서 즐거워 하는 일을 할 바에 차라리 죽을때까지 지금의 학교생활을 지내는게 낫다.

  "아니요."

  "그래? 아쉽네."

  그렇게 말하며 달려오는 아저씨는 주먹을 내지르는 듯 싶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얼굴을 맞았고 다른 곳을 계속해서 맞고 있었다. 누가봐도 일방적으로 내가 맞고 있지만 맞는 것만큼 충격이 없어 꽤나 가뿐했다. 이거 아마도 속도에 관련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데. 아마 달려올때 쓰지 않는 것을 보면 전신에는 쓰지 못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도 쓸 수밖에 없다.

  나는 보이지 않는 주먹을 감으로 몇 번 피하고 아저씨와 거리를 벌렸다. 거리를 벌린 것을 여유가 없다고 착각한 아저씨는 실력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따라오지 않고 웃고 있었다. 아주 느긋하시다.

  "좋아. 아직도 쓰러지지 않는 근성있는 녀석은 오랜만이야. 좀 더 즐기게 해줘."

  즐겁기는.

  나는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숫자 100'에 손가락을 가져간 후 뒤에 있는 여성을 보며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100이었던 숫자는 80으로 줄어들고 42였던 여성의 숫자는 어느새 62로 늘어났다. 이제 됐다.

  "시끄러워요."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자존심에 금이 갔는지 웃는 얼굴이 굳었고 어느새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달려오고 있었고 아저씨는 아까와 같이 주먹을 내지르려고 했다.

  "호오?"

  아까와는 다르게 보이지 않았던 주먹이 보여 그것을 막았다. 감이 아닌 눈에 포착된 그 주먹을 말이다.

  아저씨는 아까까지 맞고 있던 주먹을 막자 의아했는지 이번에는 자신이 거리를 벌리고는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서 있더니 금새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너 능력 썼구만. 방금 팔 휘젓는게 조건이냐? 특이한 것도 다 있네. 그래도 어차피 니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없다."

  갑작스럽게 아저씨가 빠르게 달려오더니 주먹을 내질러왔다. 온 몸에 쓸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숨겨둔 것뿐이었던 모양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보이는걸 그대로 맞아줄 생각은 없었다. 내게 오는 주먹을 잡고 그대로 당겨 아저씨의 복부에 힘껏 가격했고 그대로 아저씨는 기절했다.

  아저씨들을 뒤로 하며 나는 경찰에 전화한 뒤 금방 골목으로 온 경찰들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 여성을 데리고 떠났다.

  생각보다 많이 맞았는지 입 안에 피가 맴돌았다. 그렇게 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맞은건 아프다. 이거 부으려나?

  "괜찮으세요?"

  내가 다가가도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불안에 떨고만 있는 여성을 보자 너무 안쓰러워 한마디 더 건냈다.

  "선생님 저예요. 이 운이요."

  "응? 운이?"

  선생님은 내 이름을 들으시고는 반응한 후 내 얼굴과 목소리를 확인하자 눈물을 흘리셨다. 지금까지 있던 여성은 우리 담임선생님이셨다.

  "죄송해요. 조금만 더 빨리왔으면."

  "아니야, 고마워."

  선생님은 내가 드린 겉옷을 부여잡으며 가까스로 대답해주셨다. 싫은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어서 죄송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곳까지 왔니?"

  선생님도 그 골목은 알고 계셨는지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고 하셨다.

  "이 옆에 건물이 제가 다니는 체육관이에요."

  지름길이라고는 하지만 밝지 않은 곳을 가기에는 선생님에게 무리가 아닐까 생각한 나는 가까운 대로로 나가기 위해 도장을 지나갔고 마침 선생님께서 물어보셔서 나는 도장을 가리키며 대답해드렸다.

  "저런 건물에서? 너무 낡지 않았니?"

  "안은 의외로 멀쩡해요."

  생각보다 선생님께서 괜찮아보이셔서 다행이다. 손이 떨리고 얼굴이 퍼렇게 질려있지만 그래도 겉으로라도 이런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조금만 더 케어해드리면 되지 않을까.

  나와 선생님이 대로로 나와 조금 걸었다. 지금 당장 집에 보내드리고 싶었지만 선생님께서는 앞서 발이 닿는대로 걸으시는걸 보면 아직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보였다.

  "선생님 저녁은 드셨어요?"

  "응."

  저녁을 이미 드셨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무슨 말이라도 해드려야지 나쁜쪽으로 생각이 치우치지 않겠지라는 생각에 한 말이었다.

  "아쉽네요. 안드셨으면 제가 만들어드리려고 했는데."

  나는 일부러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요리를 할 줄 아니? 운이 대단하네."

  내가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순수하게 놀라셨는지 얼굴에 표정이 조금 돌아오셨다. 다행이다.

  "그럼 만들어줄래? 조금 배가 고파서."

  "네!"

  갑작스러운 부탁이었지만 애초에 언제든 해드리려고 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선생님의 표정에서 미소가 드러났다. 정말로 다행히도 금새 돌아오실 것 같았다.

  나는 선생님께서 부탁하신대로 요리를 하기 위해서 우리집으로 초대했다. 그래도 아까 그런 일을 당하셨는데 남성인 나와 단 둘이 있어도 되는걸까? 괜찮으실까?

  "괜찮아. 걱정안해줘도 돼. 고마워."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표정을 보고 아셨는지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언제나 씩씩하시던 선생님께서 어두운 목소리를 내시는 것이 많이 안쓰러웠지만 그것만큼은 내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괜찮다고 하시는데 내가 아니라고 단정짓기에도 조금 아닌 것 같았다.

  그나저나 역시 아직도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구나.

  "들어오세요."

  그리 높은 아파트는 아니지만 새로 건설되어서 경치도 멋있게 잘 보이고 소음이라던지 쓰레기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혼자살기에는 넓지만 오늘만큼은 넓은게 다행이었다.

  "꽤 넓은데서 혼자 사네."

  "네."

  처음 2학년이 되고 선생님과 상담을 했을때 부모님께서 바쁘셔서 해외로 자주 나가 계시느라 집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고 이미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알고 계시다.

  "이거 어디서 났니? 너무 귀여워!"

  선생님은 소파 위에 놓은 인형을 끌어안으시면서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보셨다. 이런거 꽤 좋아하시는 듯하다.

  "학교 근처에 가구집이 하나 작게 있잖아요? 거기서 공짜로 주셨어요. 거기 사장님께서 손재주가 좋으셔서 가끔 만드시는 거라고 하시면서 선물로 주셨어요."

  선생님께서는 집 안을 둘러보시며 인테리어나 깨끗한 것을 칭찬해주시자 내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인테리어나 청소 같은 것은 다 내가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너무 바쁘셔서 집만 구하시고 바로 일을 위해서 해외로 떠나셨기 때문에 내가 다 맡아서 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다.

  "외롭지는 않니?"

  자신보다 남을 걱정하실 때가 아니신데도 내 기분을 생각하고 계셨다. 정말로 선생님은 대단하시다. 방금 겪은 일이라 잊기도 힘드실텐데.

  "가끔 외롭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부모님께서 편지를 보내오셔서요."

  나는 가장 최근에 온 편지를 보여드리면서 괜찮다는 것을 표현했다. 사실 정말로 외롭다고 느껴질 때 즈음이 되면 곧바로 편지가 와서 크게 외롭다고 느낀적은 없었다. 어떻게 아는지 그럴 때마다 편지가 오니 신기할 따름이다.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선생님께서 입으실만한 내 옷을 가져다 드렸다.

  "이 옷들은 뭐니?"

  아무말도 없이 옷을 드리니 역시 궁금한 지 고개를 기울이시는 선생님께

  "선생님께서는 한 번 씻고 오시는게 어떠세요? 목욕을 하시면 아까보다는 괜찮아지실 것 같아서요."

  손을 씻으며 목욕을 권했다. 그래도 목욕을 하는 것이 머리가 말끔해지고 몸도 풀어져서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꺼낸 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학생의 집에서 씻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드시는지 고민을 하시고 계셨다. 괜히 한 짓이려나.

  "그럴까? 그럼 부탁할게."

  "네. 맛있는거 준비해둘게요."

  나는 장을 보러 갈 수 없어 할 수 없이 어제 썰어두었던 재료로 만들기로 했다. 만들어서 아껴두었던 것은 이미 어제 다 먹었기 때문에 새로 만들기로 했다. 간단히 먹을만한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는 중 간단하게 먹을만한 것은 역시 과일이고 채소가 좋겠지 싶어 샐러드를 선택했다. 덤으로 너무 없어도 심심하니 샌드위치를 겸하기로 했다.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식기를 다시 씻어서 깨끗한 행주로 닦은 뒤에 식탁에 두었다. 그래도 집에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아서 다시 세척해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지만 조금 지나쳤으려나?

  선생님께 거창하게 맛있는 것을 준비할 것처럼 얘기하긴 했지만 이미 저녁을 드신 선생님에게 든든한 무언가를 건내기도 뭣하니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선택했는데 솔직히 준비할 것은 별로 없어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소파에 있는 인형을 안아들고 모니터를 켜두었다. 역시 인형은 안고 있는게 최고다. 너무 부드러워.

  그렇게 뉴스를 보고 있자 선생님께서 목욕을 마치시고 나오셨다. 머리는 안에서 말리고 나오셨고 옷은 내가 준비한 것을 드렸지만 역시 내 옷은 많이 컸던 듯 기장이 잘 맞지 않았다. 어머니 것을 드리는게 나았으려나. 속옷을 드리지 못하는게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드렸다면 역시 변태가 되어버릴테니까.

  "와, 맛있어 보이네?"

  씻으러 들어가시기 전과 확실히 표정이 전혀 달랐고 어느정도 평소에 보여주셨던 밝은 모습이 조금 보였다.

  "별로 준비한 것은 없지만 맛있게 드셔주세요."

  "고마워."

  선생님께서는 그릇에 놓여진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드시기 시작했고 나는 준비해 두었던 녹차를 선생님의 옆에 두었다. 녹차는 마음을 안정시켜준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아서 준비했다.

  나는 선생님의 반대편에 앉아 내가 준비한 샐러드를 조금식 먹기 시작했다. 먹지 않아도 되지만 선생님께서 낯선 곳에서 혼자 드시기에는 쓸쓸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식기를 들었다.

  "아프지 않니?"

  샐러드만 드시고 계시던 선생님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내 얼굴을 보시고 계셨다. 아까 마지막에 싸운 아저씨에게 맞은 상처들이 보인 모양이다.

  "네. 괜찮아요. 이 정도는 운동하다보면 자주 생기는 상처니까요."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도장에서 정말 수도 없이 많이 맞은만큼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관장님이나 관원들에게 맞은 것처럼 센 것도 아니였던 것도 있다.

  "선생님 오늘은 주무시고 가시는게 어떠세요?"

  "응?"

  샐러드를 다 먹고 정리하는 중에 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선생님에게 전했고 역시 놀라셨는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무언가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들어가셔도 많이 늦었고 조금 불안하기도 하니까요."

  "아니야. 괜찮아. 이제 집에 들어가볼게."

  설거지를 마치고 뒤를 돌아 격렬하게 손사래를 치고 계시는 선생님의 옆에 앉아 권유했다.

  "괜찮아요. 거절하시지 않으셔도 돼요."

  "아니, 괜찮은데 정말로."

  선생님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아까보다도 빠르게 손사래를 치시며 뒤로 물러나고 계셨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제발 부탁드려요. 선생님. 오늘 하루만 부탁드릴게요."

  나는 정말로 간절했다. 오늘 선생님께서 우리집에 머물러 주시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아, 알겠어. 그럼 실례할게."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노골적으로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나도 씻어볼까?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일으키자 선생님께서 흠칫하셨다. 왜 그러시지?

  "그럼 저도 잠시 씻고 와도 될까요?"

  "그, 그래."

  그렇게 질문하고 나는 내 방에서 옷을 준비한 후 욕실로 향했다. 뭐지, 왜 저렇게 긴장을 하시는거야? 오늘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주무실 생각에 그러신건가.

  욕실에 들어와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욕조에 담아둔 뜨거운 물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집 현관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유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타이밍이다.

  나는 약 10분 정도 욕조에 몸을 맡기고 개운해진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왔다. 그러자 유아와 수연이의 반가운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반나절만이야!"

  유아가 정말로 반가운 듯이 말하니 나도 손을 흔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밤인데도 참 기운차다.

  "씻고 나왔어?"

  "응."

  수연이가 잠잠하게 내게 말을 걸어왔다. 역시 이렇게 독설을 하지 않는 수연이는 참 누나 같아서 좋다.

  "근데 유아와 수연이는 어떻게 여기를 알고 문까지 따고 들어왔니?"

  "그야 이웃에다가 저희 어렸을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서요. 부모님들도 친구들이세요."

  선생님의 질문에 태평하게 유아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셨겠지만 사실 아까 집에 들어왔을 무렵에 유아와 수연이에게 연락해서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유아와 수연이가 채나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을 이미 들었기 때문에도 있지만 같은 여자끼리 있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아까 해코지하려던 남성들과 같은 남성인 내가 있는 것보다는 나을테니까.

  "그렇구나. 그래서 오늘 집에서 묵고 가라고 한 거구나?"

  선생님은 내가 한 행동들의 이유를 알게 되셨는지 박수를 치시며 납득하셨다.

  "네. 죄송해요. 설명해드린다는게 깜빡했네요."

  사실 유아가 오기전에 알려드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말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깜짝 놀래키고 싶다고 해서 나도 동참한 것이다. 이럴 때 아무런 생각없이 즐겁게 있는게 좋을테니.

  "언니! 오늘은 우리랑 같이 밤새 놀아요. 내일은 주말이니까!"

  유아는 거리낌없이 선생님에게 언니라고 불렀다. 이렇게 보면 정말 이 아이 낯가림이 전혀없다.

  유아의 부탁아닌 부탁에 곤란해하시던 선생님은 조금 고민하는 듯 했지만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것을 방금 떠올리시고 금방 밝은 표정으로 긍정했다. 역시 다음날이 쉬는 날이면 무심코 놀고 싶어지는 것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이신 모양이다. 이제는 정말로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계신 선생님을 보며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잠시만! 어딜 들어가. 너도 같이 놀아야지."

  유아에게 목덜미를 잡혀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왜? 나 공부해야해."

  "무슨 내일이 주말인데 공부야."

  정말로 말도 안된다는 듯한 말투에 표정까지 완벽한 유아의 모습에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인 줄 알았다. 옆에 수연이가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 있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아니, 오늘 쉬느라고 오후에 아무것도 안했고 주변에서는 피곤해 보이니까 쉬라고까지 들었는데. 그나저나 너도 아까 학교에서 내가 말한거 들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무슨 이런 막무가내가 있어.

  결국 유아와 한차례 장난스러운 말다툼을 한 끝에 공부는 하지 않고 밤새 놀기로 했다.

  밤을 새기로 결정은 했다지만 유아는 금방 곯아 떨어졌고 선생님도 힘드셨던만큼 금방 잠에 드셨다. 두 사람을 내 방으로 옮겨 침대에 눕히고 나와 거실에 있는 소파에 몸을 묻었다. 선생님의 자는 얼굴이 엄청나게 예뻤다는건 비밀이다.

  "앗!"

  내 볼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는 것을 느끼고 큰소리를 내려던 것을 나는 입을 막아 차단했다. 그리고 천천히 소파에 기댄 그대로 고개를 들자 수연이가 얼음을 띄운 물 컵을 양손에 들고 한쪽을 내 볼에 대고 있었다.

  깜짝 놀랐지만 크게 소리치지 않은 내게 칭찬을!

  "고마워."

  "별 말씀을."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미소를 보여주는 수연이였다. 역시 낯을 많이 가리는 수연이는 여전히 밖에서는 표정변화가 많이 없었고 이렇듯 가까운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표정변화가 평범한 사람정도로 된다. 힘들지 않을까 생각은 하지만 딱히 곤란해 보이지는 않으니 나쁘지 않다 생각한다.

  "피곤했을텐데. 여전히 거절은 못하는구나."

  수연이가 미소를 머금은 채로 모니터를 보며 물을 홀짝이고 있었다. 왠지 추억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게. 이건 좀 고쳐야할텐데. 안 그러면 유아가 계속 나를 부려먹겠지?"

  "틀림없이."

  거기까지 말하니 머릿속에서 정말로 유아가 나를 부르며 이것저것 부탁하는 상상이 되자 이번에는 웃음이 삐져나왔다. 참을 수 없게 되자 소리까지 내며 웃고있었는데 옆에서 수연이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웃고 있었다.

  "미안해."

  그렇게 둘이서 한참을 웃고 나자 수연이는 여느때보다도 어두운 표정으로 내게 사과했다.

  "뭐가?"

  무엇에 관해 미안하다고 하는지 알고 있지만 모른척했다. 여전히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소문 막지 못해서."

  "사실이 아니니까 있어도 상관은 없고 어짜피 믿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믿지 않을테니까. 너나 누나처럼."

  놀면서 분위기를 타셔서 그런지 선생님께서는 밖에서는 이제 누나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뭐,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그렇게 부르지는 않겠지만.

  "그렇겠지."

  피해자인 내가 그렇게 얘기해도 속이 시원하지 않는지 수연이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하는걸까. 모자란 내가 생각하기에는 힘들어.

  나는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고 수연이가 다시 기운을 차릴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우리 둘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물을 홀짝였다. 그러다 갑자기 수연이가 얼음이 들어있음에도 물을 한 번에 들이키더니 머리가 아픈 듯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나는 수연이의 의외의 모습에 놀라 컵에 입을 댄 상태에서 멈춰버렸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이미 지난일인데 뭘."

  그러고는 속이 풀렸는지 표정이 좋아진 수연이를 보고 이제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유아는 어떨지 몰라도 수연이는 지금 죄책감을 떨쳐낸 것처럼 보였다.

  "유아는 괜찮아. 유아는 나보다 먼저 떨쳐냈을거야."

  "그래? 그럼 나도 걱정 안할게."

  수연이가 그렇다고 한다면 맞을 것이다. 나는 몰라도 두사람은 잘 맞는 구석도 있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있는 듯하니까 말이다.

  우리는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가 잠에 들기로 했다. 수연이는 내 방에 가서 침대에 누워서 자기로 하고 나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 누워 잠에 들기로 했다. 손님이라고는 하지만 여성들을 소파 같은 곳에서 재울 수 없고 혼자 남성인 나와 같은 곳에서 재우는 것도 뭣하니 내가 거실에서 자기로 한 것이다.

  "유아야, 어서 일어나. 아침 먹자."

  일출과 함께 가장 먼저 일어난 나는 간단하게 씻고 난 뒤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먹을만한 빵과 함께 밥도 지어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어주기 위해서 찌개를 같이 끓였다. 요리를 하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일어나시고 그 뒤로 수연이 순서로 일어나 씻은 뒤에 준비가 다 되자 아직 나오지 않는 유아를 깨우러 온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아침에 일어나 나를 보시고 깜짝 놀라신 것은 비밀로 하기로 했다.

  "으응? 아침이야? 나 조금만 더."

  "여기 너희 집 아니다. 일어나."

  유아의 몸을 일으켜 억지로 깨운 뒤에 나는 그릇에 음식을 담고 식탁에 정리해서 둔 다음 먼저 씻은 두사람에게 식사를 하자고 권했다.

  "이게 다 운이가 한 거니?"

  "네, 맞아요. 저희 둘보다도 운이가 요리를 더 잘해요."

  선생님의 질문에 수연이가 더 자랑스럽다는 듯이 대답해주니 나도 몸둘바를 모르겠다. 다시 친해진 기념으로 우리집에서 식사를 했던 때가 있었는데 유아와 수연이가 정말 좋아했다. 아무래도 그때 기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듯하다. 내가 머리는 나쁘지만 그래도 기억하는거랑 몸 쓰는 것 정도는 잘하기 때문에 레시피와 필요한 행동만 잘한다면 간단한 요리는 잘 할 수 있었다.

  "우와~. 이게 무슨 냄새야? 맛있겠다!"

  유아가 욕실에서 달려 나오며 식탁에 앉았다. 뛰지는 말았으면 하는데 개인주택이 아니니까.

  "잘 먹었습니다."

  "예예."

  유아가 설거지 하는 내게 다가와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왠지 낯이 간지러워 뭐라고 순순히 고맙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부끄러워.

  "이제 뭐 할까?"

  설거지까지 마치고 모니터를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셋에게 다가가니 유아가 이대로 헤어지면 재미없다며 밖에 나가서 놀자!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막상 나가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니 떠오르는 것이 없어 함께 생각하고 있다. 물론 공부를 하려고 했던 나는 억지로 끌려가는게 확정인 모양이었다.

  "아! 어제 못한거나 할까?"

  "뭐? 게임센터?"

  "응."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다. 나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었는데 어제 같이 가자고 유아가 그랬지만 못가서 아쉬웠다. 하지만 유아에게 게임만 할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오늘은 아침에도 시간이 있으니까 쇼핑을 하고 가자! 언니는 어때요?"

  "응, 나도 좋아."

  아직 집으로 출발하지 말라는 유아의 부탁에 우리집에 계신 선생님도 가기로 했다. 약간 강행처럼 보이지만 기뻐보이는 표정이니까 괜찮겠지.

  그나저나 어제부터 생각했는데 유아는 선생님에게 언니라고 부르는게 익숙해 보인다. 세사람 원래 친한건가?

  "사실 우리 중학생때 이것 저것 도와준 사람이 채나 언니야."

  "그래요?"

  "응."

  저번에 유아와 수연이에게서 중학생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 누군가가 도와주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선생님이셨던 모양이다. 나이 차도 별로 안나는데 대단하네.

  "대단하지?"

  "그렇네. 그래도 뭐 누나니까 납득은 된다."

  워낙 사람을 잘 돌봐주시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선생님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칭찬에 익숙하지 않으신 걸까? 외모에 관한 칭찬도 많이 들으실 것 같은데.

  "바로 쇼핑하러 가자!"

  아마도 유아의 생각은 선생님께서 어제부터 같은 옷을 입고 계시니까 사러가려고 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거절하지 않고 따라가도록 해야겠다. 근데 내가 가면 먼가 도움이 되나?

  "그럼! 짐꾼으로 딱이지!"

  그랬다. 유아가 나를 데려온 이유는 무거울 짐들을 들게 하기 위함이었다. 짐꾼이라는게 조금 안타깝지만 도움이라도 되니까 다행이다. 다행인게 맞는거지?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지어진지 2주도 채 되지 않는 백화점이었다. 건물이 양쪽에 마주보는 형식으로 지어져 있는데 고층인 것은 물론이고 중간 중간에 다리로 이어져 있어 자유롭게 건널 수 있게 되어있었다. 외관은 새로 건설되어서 그런지 건물 안이 전부 세련되고 예쁘게 보였다. 역시 새로 지은 건물들은 웬만해서는 다 예쁘게 지어지는 모양이다.

  "자, 우리가 처음에 향할 곳은 속옷이야!"

  "네?"

  잘못들은거죠? 나는 수연이와 선생님을 번갈아 본 후 유아를 보았다. 유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라고 해줘!

  "나, 그럼 식료품 좀 사고 있어도 될까?"

  "안돼."

  단호한 유아였다.

  "나중에 여자친구가 생기면 이런 것도 골라야할지도 모르니까 잘 봐둬."

  아니, 그거야 그럴 수 있겠지만 지금 여자친구도 없고 아직 한 번도 사귄적이 없는데.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잔말말고 따라와."

  내게 선택권은 일절 없었다.

  "알겠어."

  그렇게 나는 끌려가듯이 유아에게 붙잡혀 여성속옷가게의 앞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나는 그곳을 바로 앞에 두고 눈을 둘 장소를 찾고 있었지만 유아의 손에 의해 다른 곳을 볼 수 없었다. 내 얼굴을 속옷가게를 향해 꽉 붙잡고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제발 누가 도와줘! 나에게 이런 곳은 무리야!

  "도와줄 사람은 없으니까 포기해."

  내 속을 너무나 잘 아는 유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앞세워 가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곳은 내가 발을 들일 수 없는 성지였다.

  성지는 정말로 여성밖에 없었다, 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 성지에서 아무렇지 않게 속옷을 고르고 있는 커플이 있었다. 왠지 내가 그쪽을 보자 남성쪽과 눈이 맞았는데 그쪽에서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왔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아무렇지 않다고 해서 죄송해요. 그리고 우리 같이 힘내요.

  커플을 제외하고는 전부 여성에다가 직원도 여성이었다. 고생길이 훤해 보인다.

  "이거 어때요?"

  들어오자마자 수연이는 선생님에게 속옷을 가져와 맞춰주었다. 나를 제외하고 셋은 매우 태평해 보였다. 나는 혼자서 이 성지를 돌아다닐 수도 물건을 고를 용기도 없었기에 그녀들의 주위에 딱 붙어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주변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시선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 내 얼굴은 이미 홍당무가 되어 있겠지?

  "운아 너도 좀 골라봐!"

  "아니, 고르라고 해도 말이지."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유아는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런 나쁜녀석!

  "히히."

  음침하게 웃는 이녀석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내 얼굴은 점점 더 붉어져만 가고!

  "잠깐만 나 화장실 좀 가도 될까?"

  속옷을 들고 내게 다가오려고 하는 유아에게 나는 손사래를 치며 멈추게한 후 부탁하듯이 질문했다.

  "도망치는거 아니지?"

  내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하는 유아에게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무표정을 연기했다. 내 뺨에 있는 붉은 홍조를 제외하면 아마 정말 아무런 표정도 없어보이겠지.

  "아니야."

  "그럼 다녀와."

  유아는 나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지만 이번에는 봐준 듯하다. 고마워!

  나는 성지에서 해방되듯이 뛰쳐나와 아래층에 있는 식료품을 찾으러 걸었다. 이 성지는 8층에 있었기 때문에 밑층으로 향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 발을 멈추게 만드는 무언가를 보았다.

  8층에 있는 다리에서 건너는 사람들의 머리 옆에 있는 '숫자'가 매우 낮다는 것을 본 것이다. 매일같이 보면서도 낮은 숫자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 '숫자'는 내 능력으로 인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마다 다르며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이 숫자가 낮은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무슨 일이 일어난다. 이건 내가 보았기 때문에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이 숫자를 '행운'이라고 부르고 있다.

  행운은 수치가 낮음에 따라서 일어날 일이 큰지 작은지를 알 수 있는데 평범한 수치가 54~65 사이이고 그 이하로는 운이 낮은 것이고 그 이상은 운이 좋은 것이다. 이 행운은 낮거나 높거나 할 것 없이 무슨 일을 만나는 것은 자신일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서 나빠지거나 좋아지기 때문에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불명확한 수치이기는 하지만 예상 정도는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행운이 지금 다리에서 건너오는 사람들의 머리 옆에 있는 행운이 반복해서 낮아졌다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것도 다리의 중심을 지날때마다 0~20 사이를 말이다.

  행운이 0이 되면 그 사람은 무조건 목숨을 잃게 된다. 이것을 나는 단 세사람을 보았고 모두 눈앞에서 목숨을 잃는 것을 보았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안되는데 지금 여러 사람들이 그런 수치를 가지고 있다.

  말도 안되는 이 상황에 나는 머릿속이 텅 비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규모의 사태에서 단 한 명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때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나는 바로 성지로 달려가 유아와 수연이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야?"

  내가 성지로 들어왔음에도 얼굴이 시퍼렇게 되어있는 것을 본 수연이는 무언가 심각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는지 내게 물어보았다. 유아도 바로 눈치를 챘는지 나를 보며 놀리지 않았다. 참 고마운 친구들이다.

  "지금 바로 옆에 있는 다리 건너에 있는 사람들의 수치가 너무 낮아."

  "얼마나?"

  "0..."

  유아와 수연이는 이미 내 능력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바로 알아 들은 것이다. 거기에 행운이 0이라는 것의 의미도 말이다.

  "바로 아빠에게 연락할게."

  "나도."

  두사람은 바로 작은 단말기를 꺼내 들더니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 그녀들의 말대로 아마 아저씨들에게 연락하는건데 아저씨들도 내 능력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야기는 금방 마칠 것이다.

  "무슨 일이니?"

  지금까지 옆에 있던 선생님은 우리가 너무나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하고 있자 불안한 얼굴로 물어보셨다. 그런데 그 전에

  "누나, 옷부터 입어주세요."

  내가 말을 하자 이제 깨달았는지 선생님은 얼굴을 붉히시고 칸막이를 치셨다. 허둥지둥 달려와서 잘 몰랐지만 내가 있는 곳 앞에는 옷을 갈아입기 위한 칸막이가 있었고 그곳에서 선생님은 칸막이를 걷고 질문하신 것이다.

  지금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나도 얼굴이 붉어졌겠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이제 곧 오신대!"

  "우리 아빠도!"

  예상대로 두사람은 빠르게 대화를 마친 모양이었다.

  "그럼 나 먼저 저쪽 건물 다 돌아볼게!"

  유아와 수연이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나는 바로 달려 나가 다리를 건너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이 행운의 문제는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한참 뒤에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행운이 0이라면 말이 다르다. 0인 사람은 하루를 기준으로 무조건 일이 일어난다. 한마디로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무조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 도와줘서 목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지 않다. 지금까지 만난 0이었던 사람들이 목숨을 잃지 않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초조해져만 갔다.

  지금 뛰는 이 순간에도 내 옆에는 숫자가 0인 사람들이 많았고 어느 지점에서 0에서 다른 숫자로 바뀌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곳을 찾아냈는데 그곳에는 폭탄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폭탄이 있는 곳을 보고 욕설을 내뱉었다. 설치되어 있는 것은 보았지만 내가 함부로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보아도 무슨 폭탄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어떻게 제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지금 당장 터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제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폭발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 단말기를 꺼내들고 유아네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운이냐?

  "네, 오랜만에 뵙네요."

  -그냥 전화했을리는 없으니까 말해보거라.

  역시 유아의 아저씨라고 할까 내 속을 잘 알고 계신다.

  "지금 제 눈앞에 폭탄이 있는데 제거할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래서 사진을 보내왔구나.

  "네."

  연락을 하기 전에 나는 사진을 찍어 아저씨에게 보내둔 것이다. 알고 계신다면 아저씨의 말에 따라서 제거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미안하다. 나도 도와주고 싶지만 그건 전문가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런가요. 그럼 더 찾아볼게요."

  -그래. 금방 가마.

  아저씨의 단말기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이미 준비를 마치시고 출발을 하고 계시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나는 폭탄을 찾기 위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한 곳에 눈이 쏠렸다. 한 여자아이였다. 키는 중학생 정도 같았는데 머리칼이 하얀색을 띄고 있었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 아닌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색이었던 것 같다. 저런걸 은발이라고 하는건가? 게다가 눈동자가 파란 것을 보면 외국인 듯 보였다. 그 옆에는 키와 몸집이 머리가 전부 희어진 할아버지가 있었다. 문제는 아이의 행운은 78이었으나 그 와 대비되듯이 할아버지는 어디를 가든 0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곳이 폭탄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인지 못해도 한자릿수였지만 할아버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고 결국 나는 내 행운을 나누어 주었다. 100이었던 것을 팔을 휘두르자 할아버지의 머리 옆에 있던 0은 40이 되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안심했다. 이러면 꼭이라고는 못하지만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내 행운은 어째서인지 100으로 고정되어 있고 행운을 나누어줄 수 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면 그 수치는 다시 100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나는 행운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무언가를 얻게 되는 것이 내 능력이다. 예전에는 이럴 수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이런 것도 가능했다.

  할아버지의 행운이 바뀌는 것을 보고 안심했지만 아직 그럴 수 없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이 건물에 얼마나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것을 설치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필사적인 나를 사건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위층에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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