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먼저 나의 가장 친했던 친구인 채정이에게 갔다. 얼마나 꽁꽁 숨겼으면 채정이는 당시 내가 누구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다면서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채정이는 나에게 있어서 만은 비밀이 없었으니까…솔직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꽤 미안했다.

　다음날 나의 첫사랑 그 아이에게 고백하려고 발걸음을 하나씩 옮기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그 아이와 다른 여학생이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그 옆에 여자아이가 누구인지 묻지도 못하고 그 길로 나는 나의 짝사랑을 끝냈다. 당시 절망감을 느꼈던 나는 그 아이 앞에 다가가 ‘너 여자친구 있었어?’ 라고 묻는 대신에 뒤를 돌아 그 아이에게 멀리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 후로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어도 그저 마음 속에만 고이 간직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보통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늘 상 그 사람과 사귀는 상상을 한다면, 나는 그저 바라볼 수 있음에, 좋아할 수만 있음에 만족하곤 했다.

　좋아한다는 사실을 고백했을 때 상대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일 수 있지만, 서로의 마음이 다를 확률도 무시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내가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고 원한다고 해서 세상이 내 뜻대로 운용되는 것도 아닌데…또 내가 행동한다고 해서, 변한다고 해서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는 것도 아닌데…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어 버린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게 주어진 삶의 평범함? 단조로움? 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내 이름을 이 평범이라고 개명할까 고민할 정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무 일도 없었기에…그 사이에 일어났던 사건을 설명하는 것은 조금 무색한 것 같다. 그래도 후에 필요하다면 차근차근 말하겠다.

　근데 요즘은 이상하게 그 익숙했던 평범함에 진저리가 난다. 남들이 보면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콧방귀를 뀔지 모르지만, 나는 요새 이러한 평범함을 벗어나고 싶다. 일종의 일탈을 원하는 것이었을까…범생이였던 나로서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이었을까…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

　이러한 생각을 사로잡힌 나는 벌써 수업이 끝난 줄도 모르고 강의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나를 발견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4시 30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종강을 앞둔 나는 오늘 저녁 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나는 얼른 책상 위에 놓인 책을 가방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