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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수상한 남자의 친절한 독백
작가 : 수상한남자
작품등록일 : 2016.10.3

"사람들은 나를 심리 상담사라 부른다. 하지만 난 인간의 감정을 알지 못한다."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이코패스 심리 상담사. 이 수상한 남자 앞에 평범하지만 문제 많은 이상한 가족이 나타난다.
과연 수상한 남자는 이 이상한 가족들의 심리 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 1
작성일 : 16-10-03 01:01     조회 : 837     추천 : 3     분량 : 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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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인간이 높은 곳에서 느끼는 아찔한 현기증은 추락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뛰어 내리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그렇다면 아직 서늘한 4월의 밤공기를 맞으며 고층빌딩 옥상에 선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도시의 야경까지 모두 잠든 이 시각, 아찔한 도심의 밑바닥을 내려다보며 내 안에 퍼져가는 이 짜릿함은 무엇일까?

 

 “상담사님.”

 

 내 손에 의지한 채 짙은 어둠에 매달린 이 화려한 여자가 느끼는 건 추락에 대한 공포일까, 아님 뛰어 내리고 싶은 욕망일까?

 

 “상담사님!”

 

 사람들은 날 심리 상담사라고 부른다.

 

 “그만하고 빨리 올려주세요!”

 

 하지만 난 인간의 감정을 알지 못한다.

 

 “이만하면 됐다고요!”

 

 여자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날선 긴장감이 잠들어 있던 내 마지막 세포 하나까지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젠 마지막 질문을 할 차례다.

 

 “아직도 죽고 싶으십니까?”

 

 여자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 흔들림이 뭘 말하는지 난 알지 못한다.

 다만 이번에도 내가 맞길 바랄 뿐이다.

 

 “그래요, 선생님이 이겼어요! 살고 싶어요! 이제 됐죠?”

 

 역시 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살게요! 산다고요! 그러니까 빨리 올려주세요!!”

 

 심장이 뛴다.

 

 “살고 싶어요..! 정말 살고 싶다고요!! 제발 살려주세요!!”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이젠 마지막 상담을 끝낼 차례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아-악!!!!!!!”

 

 여자의 손이 미끄러진다.

 짙은 화장과 명품으로 휘감은 여자의 몸이 아득한 어둠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간다.

 

 25층... 24층...23층...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설렘으로 지새웠던가......

 

 18층... 17층... 16층...

 

 내 온 몸에 퍼지는 이 깊은 전율을...... 인간들은 뭐라고 부를까?

 

 13층... 12층... 11층...

 

 모르겠다. 정말이지 인간의 감정은 너무 복잡하다.

 

 10층... 9층... 8층...

 

 아...,,, 이 순간은 왜 이리도 짧은 건지.

 

 7층... 6층... 5층...

 

 아쉽지만 이젠 눈을 감을 차례다.

 저 여자의 몸이 바닥에 닿는 순간, 그 시끄러운 입에서 새어나올 시뻘건 피는 내 취향이 아니거든.

 

 - 쿵!

 

 아득한 어둠 끝에서 희미한 충돌음이 들려온다.

 

 이젠 돌아서야 할 시간이다.

 아쉽지만 이젠 정말 가야 한다.

 아무래도 다음번엔 63빌딩을 섭외해야겠다.

 

 

 도대체 내 정체가 뭐냐고?

 아직도 눈치 못 챘나?

 

 그래 맞다.

 난 연쇄 살인마다.

 

 

 

 

 # 1

 

 

 

 

 

 지금 난 29번째 사냥을 마치고 강남에 있는 내 오피스텔에서 이삿짐을 싸는 중이다.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내 은색 K7 하이브리드에 싣고 갈 박스 몇 개가 전부다.

 앞으로 몇 달간은 새로운 사냥을 위해 머리와 몸을 단련하는 재충전의 시간이다.

 

 마지막 사냥의 뒤처리는 완벽히 마쳤다. 옥상 난간엔 여자가 직접 벗어놓은 명품 하이힐과 가방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가방 안엔 시가 300억이 넘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자필 유서도 들어 있다. 상담 시간에 치료의 과정으로 여자가 직접 작성한 유서다.

 

 사냥감의 물건 중에 나와 연관될만한 건 내 명함뿐이었다.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흔적 때문에 불에 태워 한강에 흘러 보냈다. 사냥감을 싣고 갔던 내 차 조수석은 ULPA 17등급 헤파 필터 청소기로 치운 후, 소독제로 세 차례 닦아냈다.

 

 여자가 새 하이힐에 뒤꿈치가 까져 조수석 바닥에 손톱만한 핏자국을 남겼다. 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돌아서서 피를 닦아야 했지만, 만에 하나 여자가 내 사무실에서 상담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해도 내게서 여자의 흔적을 찾아낼 순 없을 것이다.

 난 절대 실수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연쇄 살인마가 왜 피를 싫어하냐고?

 그게 이상한가?

 설마 연쇄 살인마를 피에 굶주린 드라큘라의 진화 버전쯤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연쇄살인마의 특징은 하나의 통계이거나 인간의 상상력이 불러낸 허상일 뿐, 어딜 가나 돌연변이는 존재한다.

 인간이 위대한 절대 신의 창조물인지, 거대 외계 세력의 실험물인지, 우연과 돌연변이가 탄생시킨 자연의 걸작품 인지 조차 증명할 수 없는 이 보잘 것 없는 세상에서, 설마 100%로 진실이란 게 존재한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

 당신들도 우리를 보고 다 똑같이 반응하는 건 아니잖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부탁 하나만 하자.

 나 같은 놈을 보면서 무서워하거나 신기해하거나 불쌍해하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영웅이라도 본 것 마냥 열광해서 팬까페를 만들거나 팬레터를 보내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그런 인간들은 나도 정말 이해 안 되는 사이코거든.

 

 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연쇄살인마의 표본처럼 우울한 과거의 희생양이거나 세상에 복수하려는 미쳐버린 살인마가 아니다. 대학 교수였던 부모님 밑에서 부족한 것 없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에도 들어갔다.

 비록 첫 채혈 실습 때 피를 보고 기절하면서 그만 두긴 했지만.

 

 그러니까 대체 피를 싫어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지 마라. 나도 모르니까.

 

 

 의대를 포기하고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내가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인간들이 흔히 감정 없는 살인마라고 알고 있는 사이코패스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감정은 갖고 있다. 학습과 경험에 의해 타인의 감정을 어느 정도 구분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난 내 39년 인생을 통틀어 인간과 교감을 나눌만한 그 어떤 감정도 느껴본 적이 없다.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 그들의 감정을 구분해내려고 시도조차 해 본 적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사이코패스조차 될 수 없는 괴물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했다. 충격을 받아서가 아니다. 인정하기 싫었던 것도 아니다.

 글쎄.... 그 때의 내 심리 상태를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

 모르겠다. 인간의 감정과 언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건 당신들이 느끼는 어떤 공포나 두려움, 뭐 그딴 건 분명히 아닐 거라는 거다. 내 귀를 의심하지도 않았고, 사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도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거나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주 오래 묵은 체증이 한 방에 씻겨 내려간 느낌이랄까?

 무의식 깊은 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질문이 드디어 답을 찾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난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인간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전, 독립된 생명체가 아닌 보잘 것 없는 세포였던 그 시절부터 난 이미 괴물로 예정돼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이코패스가 태어나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궁금하지도 않다. 그저 한가지 확신하는 건 기억할 수 있는 내 삶의 처음 그 순간부터 내 안엔 이미 괴물이 자라나고 있었다는 거다.

 

 그 괴물과 직접 마주하게 된 건 입대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이등병 시절 제대를 백일 앞 둔 까마득한 선임이 실연의 충격으로 탈영을 시도했었다. 정치인 부모님 빽 덕인지 탈영은 조용히 마무리됐다. 하지만 선임의 상태는 극도로 이상해졌다.

 인간의 감정을 모르는 나로썬 당시 그 선임의 상태가 어떤 증상인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야간 경계근무를 함께 서던 내 앞에서 죽겠다며 자살 소동을 벌인 걸로 봐선 아마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죽고 싶다는 선임의 말을 처음 듣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암흑뿐인 바닷가 절벽 위에서 선임의 반짝이던 눈빛을 본 순간, 내 안에 조용히 커가던 괴물이 드디어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죽겠다며 직접 벼랑 앞에 섰던 선임이 내 팔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욕지거리를 퍼붓던 순간 깨달았다. 난 결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걸.

 

 모든 걸 부숴 버릴 듯 거세게 바위에 부딪히던 그 무시무시한 파도를 보면서,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거대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선배의 그 핏발 선 눈빛을 보면서 난생처음 짜릿함을 느꼈다. 살아있다는 게, 숨을 쉰다는 게 그토록 편안한 느낌이란 걸 처음 알았다.

 

 그 강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던 그 해 봄과 여름 동안, 난 결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인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몇 가지 규칙을 세웠다.

 

 

 첫째, 죽음을 원하는 인간들만 사냥할 것.

 

 내가 임상심리학을 전공했음에도 임상심리사가 아닌 심리 상담사가 된 이유이며, 지금껏 단 한 차례의 의심도 받지 않을 수 있던 중요한 규칙이다.

 

 임상심리사의 경우 근무지가 주로 병원이기 때문에 환자와 직접적인 대화에는 한계가 있다. 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자살 환자가 늘어날 경우 의심을 피하기도 어렵다. 병원을 계속 옮겨 다니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심의 여지는 무한대로 늘어날지 모른다.

 

 무엇보다 진로를 정할 당시 이미 한 번 맛 본 사냥의 짜릿함을 잊을 수가 없던 상태였다. 멀쩡한 인간마저도 괴물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군대라는 그 지옥에서 탈출하는 순간, 내 인내심은 폭발 직전이었다. 내 안의 괴물이 나를 무너뜨리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새 사냥감을 찾을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그런 이유들로 심리 관련 자격증 중에서도 비교적 조건이 가벼운 심리 상담사를 선택한 후 민간 심리센터들만 옮겨 다니며 사냥감들을 찾기 시작했다.

 

 죽음을 직접 선택할 권리를 누리겠다는 인간 고도의 이성적 결정을 돕는다는 궤변 따윈 하지 않겠다. 나약한 인간을 이 끔직한 세상에서 구원해주겠다는 사명감 따위로 포장하지도 않겠다. 그저 단지 우연히 시작된 첫 번째 사냥이 나에게 가장 안전하고 짜릿한 방법을 알려줬을 뿐이다.

 내 첫 번째 규칙은 인간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일종의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거다.

 

 

 둘째, 깨끗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줄 것.

 

 난 인간의 상상처럼 피에 굶주린 미쳐버린 살인마가 아니다. 나에게 사냥감은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의 존재다. 유치한 장난감이나 분풀이 대상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육식동물들은 절대 필요 이상의 사냥은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기적인 목표를 위해 다른 생명체를 집단으로 말살 시키는 존재는 하늘 아래 오직 인간뿐이다.

 생존을 위해 북극곰을 사냥하지만 그들의 희생에 감사를 표하는 에스키모의 정신을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내 이웃은 절대 건들지 말 것.

 

 세 번째 규칙에 별다른 이유는 없다. 다만 내 이웃을 건드리는 순간 용의자가 될 확률이 무한대로 높아진다는 거다.

 

 

 넷째, 노인은 절대 건드리지 말 것.

 

 이 규칙이 생긴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상담사가 된 후 처음 만난 사냥감이 사채업을 하던 70대 할아버지였는데, 평생 남 등쳐먹고 모은 재산이 치 떨리게 아깝다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돈에 파묻혀 죽고 싶다고 했다.

 어르신 대우 차원으로 고심 끝에 할아버지가 숨겨둔 현금 뭉치를 찾아내 무대를 꾸몄다. 헌데 사냥이 시작되기 직전에 할아버지는 텅 빈 비밀금고를 보고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아.... 그때의 그 허무함이란......

 그 때 이후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은 사냥 목록에서 제외시킨다.

 

 

 다섯, 미성년자 역시 절대 건드리지 말 것.

 

 이 규칙 역시 별다른 이유는 없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세상이 지옥이란 걸 맘껏 경험해보길 바란다고 해야 될까.....?

 

 

 이제 마지막 규칙을 얘기할 차례다.

 이 마지막 규칙이 없었더라면 난 지금까지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절대 깨져서는 안 될 이 중요한 규칙은,

 

 살려주세요! 살고 싶어요! 살려주세요!!!

 

 아, 놀랐나?

 미안.

 

 걱정마라. 손에 든 휴대용 카세트 녹음기에서 나오는 소리다. 난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사냥을 벌이는 그런 무식한 살인마가 아니다.

 나에겐 나만의 규칙만큼이나 중요한 리듬이 있다.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번이면 충분하다. 그 두 번의 사냥으로 난 나머지 일 년을 편히 잠들 수 있다. 물론 가끔 예외가 있긴 하지만.

 

 이 리듬이 마지막 규칙은 아니다. 드물긴 하지만 예외를 둬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마다 규칙을 어길 수는 없지 않은가.

 손가락만 한 구멍 하나가 댐을 무너뜨리는 법이다. 하나의 규칙이 깨지기 시작하면 나머지 것들도 결국은 무너진다. 그리고 결국엔 내가 쓴 인간의 탈을 벗겨 버릴 것이다.

 

 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만 사냥한다. 부득이 존재하는 예외란 것은 내 생존을 위협 받을 경우를 말한다.

 나에게 사냥이란 인간 세상에서 숨을 쉬기 위한 산소다. 필요 이상의 산소는 내 안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다. 그리곤 결국 껍데기까지 녹여 내 안의 괴물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규칙을 세웠다. 규칙이 무너지는 순간, 철저히 컨트롤 해 오던 내 안의 괴물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는 나도 모른다. 인간 세상에서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규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난 자신만의 생각과 규칙 없이, 평생 남이 만든 틀에 맞추려 고군분투하는 인간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얼떨결에 시작된 첫 번째 사냥 이후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그들의 마지막을 녹음해 왔다. 인간들은 이런 걸 흔히 살인마들의 전리품이나 트로피라고 부르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다.

 나에게 이건 그냥, 나를 잠들게 해줄 유일한 수면제다.

 

 세 살짜리 꼬맹이들도 스마트폰 중독 증세를 보이는 이 휘황찬란한 시대에 아직도 구식 녹음기를 고집하는 데에 중요한 이유가 있냐고?

 

 별 거 없다.

 그냥 처음 사냥을 시작할 때 사용했던 거라 지금껏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사냥꾼들은 사냥 법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어설프게 변화를 시도했다가는 이 의심 많고 남의 일에 관심 많은 인간들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굳이 감상적인 이유를 대보자면 쉽게 지워지고 옮겨질 수 있는 요즘 기기들은 너무 가벼워서 맘에 들지 않는다.

 카세트 테이프와 녹음기가 주는 그 적당한 그 무게감이 마음에 든다. 이 끔찍한 세상과 작별하는 인간의 마지막 영혼, 그 영혼의 무게감을 직접 느껴 보고 싶다고나 할까......?

 

 덧붙이자면 5년 전까지만 해도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상담소를 옮겨 다닐 때 마다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퇴근 후엔 늘 꺼둔다. 6개월~1년 반 주기로 사냥터를 이동할 때마다 기본 통화 기능만 가능한 2G 폴더 휴대폰을 새로 개통한다.

 

 내 존재를 들킬까 겁나서가 아니다. 아무 때고 불쑥 불쑥 남의 인생에 끼어드는 걸 당연시 하는, 인간들의 그 어이없는 발상과 행동이 귀찮을 뿐이다.

 도대체 왜 인간들은 남의 인생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하는 거지?

 

 

 인간의 심리를 모르면서 어떻게 상담사가 됐냐는 어릭석은 질문은 하지 않길 바란다.

 설마 의사들이 환자의 몸을 속속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의사들은 각종 검사와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한다. 심리 상담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정도와 방법적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정형화된 표본을 중심으로 인간을 분류하고 짜여진 틀에 맞춰 치료한다는 점에선 의사나 심리사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검사를 통해 내담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모범 답안에 맞춰 치료를 한다. 물론 대화는 거의 하지 않는다. 대화가 귀찮기도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상담 시간 내내 고개만 끄덕이면 대부분의 경우 인간들은 묻지 않아도 알아서 얘기를 한다. 혼자 얘기 하고 혼자 울다가 선생님 덕에 감사하다며 인사를 한다.

 

 물론 그렇게 상담을 해도 도저히 치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우엔 정신과를 추천하거나 다른 상담사에게 보내긴 하지만 내가 맡은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됐었다.

 

 인간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혹시 인간들이 귀찮아서 사냥을 하는 거냐고?

 

 오해하지 마라. 난 세상과 담쌓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정신 이상자나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다. 잔인하고 끔찍한 고어 영화에 심취해 살인을 저지르는 미친 살인광도 아니다.

 

 난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탈을 쓰고 살아간다.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상담소 근무가 끝나면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헬스클럽에서 3시간씩 운동을 한다.

 주말엔 주로 집에서 책을 보지만 가끔 야외로 나가 레저 스포츠를 즐기거나 영화관에 가기도 한다.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웃들과는 형식적이지만 인사도 나눈다.

 

 물론 인간은 귀찮은 동물이다. 그 어떤 이유라도 내 영역 안에 들어오는 건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껏 그 견고한 벽을 넘어선 이들은 내 사냥감뿐이었다.

 

 하지만 인간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규범과 예의는 지켜야 한다. 만에 하나 주변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 불필요한 의심을 줄이기 위해서다.

 

 태초의 미생물들이 내뱉은 미미한 산소들이 모여 결국 지구 전체를 얼어붙게 했을지도 모른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 토네이도를 몰고 올지도 모른다. 의심 많고 남의 일에 관심 많은 인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 어떤 의심의 여지도 절대 남겨서는 안 된다.

 

 난 당신이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탈을 쓰고 있다. 어쩌면 당신이 오늘 지나쳐 간 사람들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인간이 돼 볼 생각은 없냐고?

 그럼 이번엔 나도 질문 좀 해보자.

 남자에게 묻는다. 하루 이상 담배를 못 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나?

 여자에게 묻겠다. 맘에 드는 가방을 발견했는데 살 수 없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지?

 이도저도 모르겠다면 사랑에 빠졌을 땐 머릿속이 어떻게 돼?

 

 이젠 나란 놈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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