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 그 녀석은 어떤 녀석이었나 '
" 야, 설아 쟤보여? "
참으로 더운 날이었다. 아무래도 이 지구는 곧 멸망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더울리가..
" 듣고 있어? 저기 저 파란티 입은 애 보이냐고 "
안그래도 더운데 옆에서 쫑알대는 지현이를 조금이라도 조용히 시키기 위해 설렁설렁 대답을 해 주었다.
" 어, 보여보여 "
" 야, 쟤 괜찮지? 나 쟤 좋아할 것 같아."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앞으로 좋아할 거란 그 의미는 뭐람 더움에 한층 예민해진 나는 속으로 궁시렁 대며 지현이가 손짓하는 그 녀석을 보게 되었다.
땡볕 아래에서 티셔츠를 적시며 남자애들은 공을 차고 있었다.
그 녀석은 자신의 티셔츠를 올려 얼굴을 닦고있었고, 지현이가 지목한 애는 우리반에서 공부 좀 하는 권도윤이었다.
물론 나랑 말한마디 안해봤다 싶을 정도로 친하지 않았다.
지루한 체육시간에 지현이와의 대화도 지겹다 못해 싫증나던 나는 화장실을 핑계삼아 교실로 대피했다.
고요한 우리반
아이들의 온기를 잃어 시원한 책상 위 이어붙어진 두개의 책상의 몸을 뉘이고 누워 눈을 감았다.
옆반에서 간간히 들리는 수학선생님의 목소리, 칠판 위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시계의 초침소리..
- 덜컹, 끼익
그리고 들려오는 문열리는 소리...
문 열리는 소리? 아직 수업이 끝나려면 20분은 남았는데?
절대 들어서는 안되는 소리를 들은 것 마냥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리고 뜬 눈위로 책상에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는
" 뭐야 "
권도윤이 보였다.
" 어, 아니, 나는.. "
저 싸가지 없는 놈 나를 흘기는 권도윤의 눈빛에서 한심함이 묻어나왔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한심하고 어이없을 순 있는데 저런 눈빛은 너무 하지않은가? 하지만 저 녀석이 선생님께
이르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가를 상상하며 최대한 당당하게 핑계를 뱉었다.
" ㅎ, 화, 화장실 들렸다가 그냥.. "
쉣, 더듬어버렸다.
그 녀석은 내 핑계 소리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사물함을 뒤적이다 나갔다.
물론 한심하다는 그 눈빛을 한번 더 내게 던지고
한참을 얼빠진 표정으로 교실문을 바라보다 적반하장으로 화가 나 버렸다.
' 싸가지 없는 놈. '
안그래도 안친하지만 저 녀석과 친해지는 일은 없을테다. 하고 다짐을 했다.
놀랍게도 이 이후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권도윤과 내가 엮이는 일따윈 없었다.
물론 내 친구 지현이도 이 녀석이 아닌 다른 녀석과 사귀다 마는 가벼운 연애스타일을 보여주었다.
다만 조금 놀라운 일이라면 우리 반에서 그리고 전교에서 꽤나 놀았던 권도윤이 희망하던 과학고를 지망에 넣지도 않고, 지역에서 안 좋은 소문이 난 상고를 진학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공부에 열과 성을 다하던 녀석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의문이었지만 나와 권도윤 사이는 그런 질문을
하기엔 오지랖이었다.
나는 평범한 인문계 여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체육시간이 되어 운동장을 바라보면
왜인지 가끔씩 그 녀석이 떠올랐다.
그 이유는 몰랐다.
이젠 나와 상관없는 녀석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