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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꽃을 담은 소녀
작가 : 심연고래
작품등록일 : 2019.9.3

특별한 힘을 가진 소심한 소녀의 이야기

 
02. 달콤한 일상 (2)
작성일 : 19-09-21 16:35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4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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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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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가게가 닫혀있었다. 아직 저녁시간도 안됐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유리창에 찰싹 붙어 커튼 틈으로 가게 내부를 살폈지만 별달리 특별한 점은 없었다. 평소 마감했을 때와 같이 안은 깨끗했고, 빵이 있던 진열대는 텅 비어있었다.

  ‘뭐지?’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일단 집에 가보자. 나는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가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평소보다 좀 더 크게 인사를 하는 순간 코 끝을 달콤한 향기가 스쳐 지나갔다. 어? 이 냄새는? 불안한 마음마저 진정시키는 달달한 향이 집안에 가득했다. 두려움이 가시자 뒤늦게 호기심이 일었다. 뭐지? 뭔가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신을 벗고 정리하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그때 무언가가 현관 앞으로 휙 튀어나왔다. 당연히 뱃지였다.

  “이야앙 마닐드 언니왔당!”

  뱃지는 뭔가를 하고 있었는지 굉장히 신이 난 얼굴이었다. 방글방글 얼굴이 웃음으로 터질 것 같은 그 모습에 마음이 완전히 놓였다.

  “어머나! 무슨 일로 우리 뱃지가 제시간에 저녁을 먹으러 왔을까 아?”

  내 말에 뱃지는 까르륵 웃었다.

  “언니, 언니! 나 오늘 엄마랑 쥬뮈랑 셋이서 장도 봤어! 엄마가 내일 점심에 초코 케이크랑 핑크 케이크 만들 거래! 꺄아!! 우체부 아저씨 짱 좋아!"

  뱃지는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방방 뛰었다. 정말로, 굉장히 신나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케이크는 어머니의 음식 중에서 단연코 으뜸으로 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만큼 손이 많이 가서 일 년에 두세 번 먹을까 말까 했다.

  “오~ 초코 케이크! 맛있겠네!”

  “응! 초코는 너무 달아! 딱 어.린.이. 입맛이라구. 난 핑크 케이크가 짱 좋아! 언니두 빨리 와~ 뱃지두 돕고 있다? 쥬뮈두! 손 꼭 씻고 와! 꺄륵!”

  뱃지는 횡설수설 내뱉더니 꺄르륵 웃으며 우당탕탕 다시 부엌 쪽으로 달려갔다. 흐음.... 쥬뮈야 그렇다고 해도... 뱃지가 돕고 있다니. 뭘...? 약간 의심이 갔지만, 일단 손을 씻고 부엌으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응 그래. 왔니?”

  “마닐드 언니 안녕.”

  쥬뮈와 어머니는 식탁에 마주 앉아 체리를 다듬고 있었다. 쥬뮈의 옆자리는 비어있었는데, 상태만 봐도 누가 앉아있었던 건지 훤했다. 그 자리에 앞에 놓인 접시에는 다듬은 건지 짓이긴 건지 알 수 없는 모양새의 체리 몇 개가 있었다. 게다가 그 근처에는 붉은빛의 체리 즙이 방울방울 튀어있었다. 뭘 했길래 체리가 저렇게 된 거지?

  “어머니! 여기, 여기 설탕이요!”

  내가 체리에게 일어난 일을 유추하는 동안 뱃지가 설탕 한 봉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 잘 했다.”

  뱃지는 헤헤 웃으며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나도 빈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체리 한 개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오늘 무슨 날이에요?”

  “응? 아니. 무슨 날은 아니고. 그냥 못 먹은 지 좀 됐잖니. 그동안 너무 바빠서. 너 내일 친구들 만난다며?”

  “네.”

  “언제 만나는 데?”

  “점심이요. 밥 먹고 출발한다고....”

  “그러니? 그럼 케이크도 좀 가져가서 먹으렴. 마르코 씨네 가게지?”

  “네. 그럴게요.”

  그때 뱃지가 끼어들었다.

  “언니, 언니!”

  “응?”

  “언니! 내가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줄게!”

  뱃지는 내가 대답하는 걸 들을 생각도 없는지 바로 체리 하나를 집어 들더니 꼭지를 똑 꺾었다.

  “자아. 이건 여기다 두는 거래. 못 먹어서!”

  “그래, 그래.”

  나는 뱃지의 말대로 꼭지를 꺾어 비닐봉지 안에 넣었다. 이미 십몇 년을 도와온 일이라 익숙했지만, 뱃지가 신나하니 조용히 설명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곧 체리들이 왜 저 꼴이 되었는지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자 이제 씨앗을 빼야 해! 이게 쪼오금 어려워!”

  벳지는 체리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 중심부를 빨대로 질렀다. 여기까지는 맞는 방법이기는 한데.... 손가락 힘 조절을 못하는 바람에 체리는 씨앗을 뱉어냄과 동시에 납작하게 짓눌리고 말았다. 당연히 즙이 사방에 튀었다.

  “짜잔! 이러면 씨앗이 나와!”

  뱃지는 뿌듯한 얼굴로 씨앗을 비닐봉지 안에 버렸다.

  “어...음... 알려 줘서 고마워. 뱃지 덕분에 언니도 쉽게 할 수 있겠네. 그나저나 우리 뱃지 힘이 장사구나....”

  아무리 잘 익은 체리라고는 하지만 어린아이가 저렇게 납작하게 만들 정도로 무르진 않을 텐데.... 평소 다른 애들보다 활달하다고는 생각했지만, 힘이 이 정도 일 줄이야.

 뱃지는 칭찬받아서 신난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다음 체리를 집어 들었다.

  “얘들아. 이제 마닐드 언니 왔으니까 너희는 가서 놀고 있으렴.”

  어머니의 말에 뱃지의 눈이 반짝였다.

  “오? 정말요?”

  그러면서 슬쩍 체리를 바구니 안에 도로 내려놓았다.

  “그래. 지금까지 많이 도와줬으니까 이제 놀아도 된단다.”

  “그럼 체리 먹어도 돼요?"

  “그래. 가져가서 먹으렴.”

  어머니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뱃지는 작은 접시를 가져와 체리를 주워 담았다.

  “나도 먹을래.”

  쥬뮈도 자기 앞에 놓인 체리 몇 개와 뱃지가 다듬은 체리 전부를 작은 접시에 쓸어 담았다.

 “히히. 우리 올라가서 토순이랑 호순이 옷 만들어주자!”

  벳지는 생각만으로도 신나는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 좋아.”

  쥬뮈의 대답은 차분했다. 정말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야. 둘은 체리를 한가득 담은 접시를 들고 의자에서 내려왔다. 그 짧은 사이 뱃지는 계단을 향해 냅다 달렸고, 어머니께 또 한 소리를 들었다. 걱정이 가득한 엄한 목소리였지만, 뱃지는 네에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어휴. 또 넘어지면 어쩌려고.”

  어머니는 혀를 쯧쯧 차셨다. 쥬뮈는 조용히 뱃지를 따라 나가려다가 우뚝 멈춰 서더니 뒤돌아 우리를 쳐다봤다.

  “왜? 체리 더 담아줄까?”

  쥬뮈는 말없이 조용히 서 있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언니.”

  “응?”

  내가 뭐라고 더 묻기도 전에 쥬뮈는 부엌을 나가버렸다. 응?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았는데....

  “쥬뮈 무슨 일 있었어요?”

  “응? 아니.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있었는데. 왜?”

  “아까 뭔가 말하려고 하다가 만 것 같아서요... 표정도 안 좋았고.”

  “그러니? 난 잘 모르겠는데.... 아까 일을 좀 많이 시켰더니 피곤한가 보구나.”

  나는 작게 네 라고 읊조렸지만, 뭔가 마음에 걸렸다. 분명히 어두운 얼굴이었는데....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체리에 집중하는 척하면서 어머니의 안색을 살폈다. 어머니는 평소와 똑같았다. 그냥 내가 예민한 건가? 아니면 내가 기분이 우울해서 그렇게 보인 걸까? 사실 나 혼자 오해하고, 걱정하고, 고민한 것이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기도 했다. 휴... 하여간 나는 너무 부정적이야....

  “네 친구들 여행 준비는 잘 되어간다니?”

  어머니의 입에서 여행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갑자기 속이 답답해졌다.

  “아.... 마도요? 내일 가니까 거의 다했겠죠.”

  “이번이 세 번째 라고 했나? 엘던트로 가는 거지?”

  “네.”

  “흐음. 좋겠네.... 거기 물도 좋고, 문화재도 많고...”

  “풍경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사진 보니까 높은 곳에 올라가면 수평선도 보인대요.”

  “어머. 예쁘겠네. 너도 같이 가보지그래?”

  후우....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한숨이라기보다는 심호흡이었다.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여행은.... 별로라....”

  “왜? 가서 예쁜 풍경도 보고, 새로운 것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 좋지 않겠니?”

  “음... 저는 별로... 집에 있는 게 좋아요.”

  “집에 있으면 맨날 똑같이 빵만 굽고 책 읽는 것 밖에 없잖니. 너는 한 번도 여행을 안 갔는데, 재미있는지 없는지 미리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단다. 이번에 애들이랑 같이 갔다가 오지...”

  “다음에 갈게요. 지금은 별로....”

  “어휴.”

  난 자꾸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냈다. 어머니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늘 그랬다. 어머니는 마을 밖으로도 잘 안 나가고, 집이나 가게에만 있으려는 내가 못마땅한 눈치셨다. 어렸을 때야 괜찮았다고 해도,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친구들이 하나씩 여행도 가고, 다른 지역으로 유학도 가기 시작하자 나 또한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 다른 것, 그런 것들을 더 보고, 듣고, 느껴야만 성장할 수 있는 걸까? 그런 것 없이 나처럼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걸까?

  억울해.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지만. 생활방식은 자기 마음대로 살잖아. 왜 나는 그것도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되는 걸까?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걸까? 내가 누굴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그냥 조용히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 부엌에는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말없이 손만 바쁘게 놀리니 커다란 바구니는 금세 비어버렸다.

  “확실히 여럿이 하니 빠르구나.”

  “.... 네.”

  “곧 네 아빠도 올테니 저녁 먹을 때까지 놀다 내려오렴.”

  “네.”

  나는 다듬은 체리들을 바구니에 다 모아놓고 부엌에서 나왔다. 쌍둥이들도 방에 들어가 있는 건지 계단과 복도가 조용했다.

  “후우....”

  나는 천천히 심호흡했다. 여행. 도대체 그놈의 바깥이 뭐기에 다들 그렇게 좋아하는 걸까? 내가 한 번도 안 가봐서 싫어한다고? 누구에게나 다 처음은 있는 법인데 왜 나만 이 모양일까? 다들 오히려 더 가고 싶어 하던데. 난 그냥 이대로 있는 게 좋은데....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녁 먹기 전까지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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