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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겨우살이왕
작가 : 지놓
작품등록일 : 2018.12.23

30년전,

각지의 점쟁이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모든 신들의 죽음이 예언되었다.

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예언의 집행자는 과연 누구인가!

살신(殺神)의 운명을 거머쥐고 태어난 아이들 앞에서 지금,

세계의 운명이 들끓기 시작한다!

#동양판타지

 
4. 탐욕의 산(4)
작성일 : 19-09-20 20:50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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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짙은 초록과 검정이 분간되지 않는 어두컴컴한 가시덤불숲속.

 

  가느다란 물줄기가 졸졸 흘러내리는 어느 시냇가 기슭에 한 소년이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옆에는 웬 풀꽃 하나가 허공에 붕 뜬 채로 주위를 가만 맴돌고 있었는데, 마치 소년을 호위라도 하려는 듯 접근해오는 조그만 벌레들을 분주하게 쫓아내고 있었다.

 

  잠시 뒤, 어느 정도 호흡이 가라앉은 짙은 회색 눈의 소년이 풀꽃을 보며 말했다.

 

  “휘토…… 때문이었다고?”

 

  -정확히는 그 애가 받은 신 때문이지만…….

 

  “그럼 휘토가 있을 땐 나타날 수 없다는 거야?”

 

  풀꽃은 눈에 보이는 대화상대를 원한 탈루를 위해 겨우살이신이 그의 메를 빌어 가장 가까이 있던 식물의 형(形)을 빌린 것이었다. 자녀들의 모습을 빌려야만 그나마 반쪽짜리 현신(現身)이라도 가능한 대다수의 신들과는 달리, 겨우살이는 자신의 특성상 이런 쪽에 관해선 꽤나 자유롭다고 했다. 어쩌면 자녀가 없기에 허락된 특기일지도 모른다고…….

 

  -그, 그런 건 아냐.

 

  “그럼?”

 

  탈루는 언젠가부터 그의 신에게 경어를 쓰는 대신 말을 놓고 있었는데, 이는 그 끔찍한 놈에게서 도망친 이후, 그토록 단호했던 신의 목소리가 어느새 다시 후르의 그것처럼 다소곳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무심코 반말을 내뱉은 탈루에게 그의 신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그것이 자연스레 이어져온 것이었다. 뒤이어 이를 의식한 탈루가 다시금 고치려 해봤으나, 이상하게 잘 되지가 않았다.

 

  -조,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되긴 하는데…….

 

  “휘토와 나는 같이 인도를 받는 처지야. 또 앞으로도 쭉 불새일족의 일원으로서 함께 행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식으로 거리를 둬야 한다는 말은…….”

 

  -그, 그치만 걔는 좀 무섭단 말이야!

 

  겨우살이의 투정에 탈루는 헛웃음을 집어 삼켰다. ‘걔’라는 건 아마도 동쪽의 옛 신들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신인 ‘불새’를 지칭한 것이리라. 감히 이 땅의 근원신 중 하나를 ‘걔’라 지칭하는 자그마한 풀꽃을 보며 탈루는 새삼 불새와 겨우살이가 맺어온 기나긴 인연을 다시금 상기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옛 영웅의 네 상징이라…….’

 

  이 세상이 아직 혼돈으로 뒤덮여있을 무렵, 지상의 모든 것들을 규합해 지하의 적과 맞서 싸웠다는 전설상의 인간(물론 이에 대해선 종족마다 의견이 갈렸다. 거인들은 그의 정체가 거인이었다고 말하고, 도깨비들은 그가 허풍선이 도깨비의 탈을 쓴 커다란 지렁이라고 말했다), 옛 영웅. 태곳적부터 구전되어온 연대미상, 지역미상의 허구 가득한 신화이긴 해도 그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옛 영웅의 여정에 도깨비와 거인이 진정 함께 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나, 불새와 겨우살이의 동행은 어느 정도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이는 어쨌거나 저 둘만이 현재에도 인간의 의해 받들어지는 신으로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겨우살이가 불새를 개인적으로 아는 듯이 말하고 있었기에, 탈루로선 자연스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옛날엔 함께 했던 적도 있는 거 아냐?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불새의 불이 태양에 가까운 것이라 그런 거야?”

 

  -그런 것도 있지만…….

 

  최초의 거인이 퇴적되어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의 터전이 된 이후, 태양의 불씨를 몸에 두른 채 지상에 내려왔다는 불새는 창조신의 전령이자 세상의 근원 중 하나인 ‘불’의 어미로서 뭇 이들에게 칭송받아온 신이다. 태양은 아니나 그만큼 태양에 가까운 존재였기에, 겨우살이의 불편함도 그렇게까지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며칠이 지나도록 운명의 짝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는 건…….

 

  ‘신이지만 괘씸해…….’

 

  사실 탈루로선 그간 정말로 자신의 메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줄 알고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새의 기운이 느껴져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겨우살이의 말은, 그래서 더욱 핑계처럼 들릴 뿐이었다.

 

  이에 탈루가 독한 마음을 품고 그의 신을 추궁하려 할 때였다.

 

  -가, 가만 안두겠다고 했단 말이야! 다음번에 지상에서 또 만나면…….

 

  “…….”

 

  다소 황당하다고까지 느껴지는 겨우살이의 대답에 탈루는 그만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불새께서?”

 

  -……응.

 

  신이 신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했다니…… 자신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겨우살이의 저 억울하다는 반응은 분명 거짓이 아니었다.

 

  결국 탈루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의 신에 대해 품었던 불만을 조용히 털어냈다. 저 강대하기 짝이 없는 불새에게 협박당했다는데 뭘 또 어쩌겠는가. 둘의 개인적인 사정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딱히 더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천천히 물어보면 되겠지…….’

 

  대신에 그는 그의 신과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로 결심했다.

 

  “그럼 이제…… 어쩌지?”

 

  탈루의 눈에 비치는 것은 온통 검정뿐이었다. 검정색 가시덤불, 검정색 땅바닥, 검정색 시냇물, 검정색 나무와 검정색 하늘. 주위를 빽빽이 감싸고 있는 덤불에 의해 색을 빼앗긴 숲이 심상찮은 음산함을 내뿜고 있었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야 할 것 같아. 숲 어디에서도 생기가 느껴지질 않아.

 

  “여기가 어딘지 알고 안내한 거 아냐? 바람이 많이 불고, 또…… 어둡고 추운 곳으로 가라고 했잖아.”

 

  -그건 그냥 숲의 포식자들이 으레 머물기 싫어하는 곳을 언급했던 것뿐이야. 햇빛이 없는 곳엔 그들의 먹잇감도 부족한 법이니까. 그래서 일부로 더 춥고 외진 곳으로 도망치라고…….

 

  조금은 허탈한 대답이었지만 겨우살이를 탓할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 정체모를 끔찍한 녀석을 피해 도망칠 수 있었던 건 모두 그의 덕분이 맞으니까.

 

  탈루는 천천히 가시덤불로 뒤덮인 숲을 거닐기 시작했다. 괴물을 피해 도망쳐온 곳이긴 하지만 이 또한 안심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듯싶었다. 수상쩍다시피 적막한 주위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주고 있었고, 걸을수록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지는 한기(寒氣)가 공간의 음습함을 더하고 있었다. 또한 기본적으로 요기를 할 만한 게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실은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된 이후부터 급격히 허기가 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평소 그다지 식욕이 많지 않던 탈루로서는 좀처럼 느껴본 적 없는 배고픔이었다. 갑작스레 긴장이 풀려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영 조짐이 좋지 않았다. 탈루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빨라졌다.

 

  얼마쯤 걸었을까. 한기와 허기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을 무렵, 사방을 빼곡히 채우고 있던 가시덤불의 행렬이 마침내 그 끝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곳엔…….

 

  -저, 저기!

 

  “허…….”

 

  탈루는 두 눈에 비친 기괴하고도 끔찍한 광경에 절로 숨이 가빠지는 걸 느꼈다.

 

  정면에 있는 자그마한 연못 주변에 피투성이가 된 수많은 대형짐승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또한 시체들 외에도 곰처럼 거대한 대여섯 마리의 늑대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안 돼! 보지 마!

 

  그러나 겨우살이의 외침은 이미 때늦은 뒤였다.

 

  “여, 열매다……!”

 

  자세히 보니 늑대들에게 둘러싸인 샘의 중앙에 웬 나무 한 그루가 솟아나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들은 분명 조금 전 그토록 탈루의 탐심을 자극했던 바로 그 새빨간 열매였다.

 

  탈루는 그제야 눈앞의 펼쳐진 광경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늑대들은 지금 저 열매를 놓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피투성이 시체가 되어 널브러진 다른 거대한 짐승들은 그 싸움에 진 패자들이다. 늑대 무리는 서로 협력해 다른 짐승들을 물리쳤으나 이내 곧 자기들끼리의 싸움을 시작했고, 그 싸움도 이젠 막바지에 이르렀다. 잠시 후엔 단 하나의 승자만이 저기 저 열매를 독차지 하게 될 것이다.

 

  탈루는 최후의 승자가 된 늑대가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열매에 다가가는 광경을 상상했다. 마침내 고대하던 열매를 취하게 되는 순간이니 아주 잠깐이라도 무방비 상태가 될 것이다. 만약 그때 기회를 틈타 녀석을 공격한다면?

 

  ‘내가, 내가…… 저걸 차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순간 탈루의 두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래, 녀석들이 쓰러지길 조금만 더 기다리면……두 마리, 아니 세 마리만 쓰러진 다음에 곧장…….”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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