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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꽃을 담은 소녀
작가 : 심연고래
작품등록일 : 2019.9.3

특별한 힘을 가진 소심한 소녀의 이야기

 
02. 달콤한 일상 (1)
작성일 : 19-09-20 15:10     조회 : 228     추천 : 0     분량 : 4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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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띵!

  나른한 햇빛 사이로 청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듣는 소리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빵이 구워지는 걸 기다리는 동안 창가에 앉아있었더니 몸이 나른했다.

  ‘흐음. 어디 잘 구워졌나 볼까?’

  난 의자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두꺼운 장갑을 양손에 하나씩 꼈다. 약간의 쇳소리와 함께 열린 오븐은 촉촉하고 뜨거운 김을 뿜어냈다. 그 속에는 고소한 향기가 잔뜩 배여있었다. 네모난 오픈 팬 위에는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빵들이 반듯하게 줄맞춰 살포시 앉아있었다.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오동통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읏차!”

  난 작게 기합을 넣고 커다란 팬을 천천히 오븐 안에서 꺼냈다.

  “오늘도 잘 나왔구나.”

  부들거리며 팬을 테이블 위에 놓는 순간 어머니께서 부엌 안으로 들어오셨다.

  “네. 눌린 것도 없고 오늘은 잘 됐어요.”

  어머니는 갓 구워진 단팥빵들을 쭉 내려다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빈 바구니 여기 있다.”

  “넵.”

  나는 어머니로부터 바구니를 받아 싱크대 옆에 엎어놓았다.

  “샌드위치 좀 더 만들까요?”

  “음... 아니. 이제 아침 손님도 다 갔으니까, 나머지는 엄마가 할게. 넌 나가서 좀 놀다 오렴.”

  “어...”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나가서 논다고 해도 할 게 딱히 없는데.... 하지만 곧 대답했다.

  “네.”

  나는 장갑을 벗어 벽에 박아둔 작은 못에 걸었다.

  “음... 그럼 저 나갔다 올게요!”

  “그래. 친구들 만나서 점심도 먹고 오고, 오늘 일은 내가 할 테니 저녁때 보자.”

  “네...”

  어머니는 갓 구워진 빵을 분주히 새 바구니에 담으셨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부엌 밖으로 나왔다. 가게 안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고요했다.

  황금빛 햇살이 유리벽을 통해 가게 안으로 가득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작은 진열대에는 어머니께서 손수 만드신 바구니들이 두세 개씩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각자의 개성을 가진 빵들이 살포시 놓여있었다. 따뜻하고 아늑한 가게.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장소였다.

  “저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부엌을 향해 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일단은 걸으면서 뭘 할지 정하기로 했다. 우리 마을은 옛날부터 시골이었고, 거기다 산속에 있었기 때문에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 대부분 같은 사람의 손에 맡겨졌고, 결국 외관이 비슷비슷해져 버렸다.

  그러나 오랜 시간 한 가족이 그 집에 머물러서인지 집은 비슷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가득했다. 특히 정원은 더더욱 차이가 확연했다. 아기자기한 야생화가 가득한 집부터 고추, 깻잎 등 텃밭으로 쓰는 비들까지 다양했다. 물론 작은 부분들은 자주 바뀌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봐온 그대로였다. 나는 그런 변함없는 풍경이 너무나 좋았다.

  ‘그나저나 뭐 하지?’

  일단 나오기는 했는데, 마땅히 할 일도, 갈 곳도 없었다. 이렇게 갑자기 친구들을 불러내는 건 내가 내키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방학이긴 해도 몇몇이 모여 놀고 있기는 하겠지만.... 나랑 친한 친구들은 지금 엄청 바쁠 테니 거기에 없을 것이다. 흐음... 그럼 뭘 하지? 잠시 생각해봤지만 생각나는 건 딱 하나뿐이었다.

  ‘휴.... 이럴 때 책 하나 빌려서 과자 챙겨서 거기 가면 딱인데....’

  하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다. 안되는 건 아니지만,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

  “어머, 마닐드 왔니?”

  “네. 안녕하세요.”

  사서석에 앉아있던 엘머 부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고 챙겨온 책을 내밀었다. 그녀는 하나씩 정산기에 찍으며 반납 처리를 했다.

  “이 많은 책을 벌써 다 읽은 거야? 대단하다.”

  “요즘 방학이라 시간이 많아서요....”

  “그래도 어머니 일 돕느라 바쁘지 않니?”

  “아니에요. 저는 보조 정도라 헤헤.”

  “어휴. 그래도 그게 어디니? 아냐는 도서관에 얼씬도 않는데. 참! 너희들 내일 만난다면서?”

  “네. 여행 전에 다 같이 한 번 밥 먹으려구요.”

  “그래. 좋지. 근데 마닐드도 같이 가면 더 좋을 텐데....”

  “아... 저는 여행은 별로 안 좋아해서요....”

  난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오? 그러니?”

  엘머 부인은 신기하다는 듯 잠깐 고개를 들고 날 쳐다봤다.

  “뭐, 사람마다 좋아하는 건 다르다만.... 그래도 요즘 애들은 여행을 입에 달고 살던데...”

  “음... 그게, 저는 좀 별로더라고요."

  “그래?”

  엘머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지막 책을 반납기에 집어넣었다.

  “자. 다 됐다. 그리고 여기 이건 새 도서 목록이야. 전에 주문했던 것도 왔고. 위치는 알지?”

  “네. 감사합니다.”

  엘머 부인이 건네준 종이는 꽤 길었다. 그중에는 내가 신청한 책도 몇 권 들어있었다. 하지만 오늘 도서관에 온 이유는 따로 있기 때문에, 난 도서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천장까지 닿아있는 책장을 가득 메운 책 사이를 걸어 도착한 곳은 도서관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이었다. 책상과 의자가 있는 곳과도 멀리 떨어져 있고, 주변의 책도 그리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 늘 조용한 곳이다.

  반면 나에게는 책을 읽을 최고의 장소였다. 조용한 건 둘째치고, 내가 자주 보는 책들이 가득 꽂혀있기 때문이었다.

  ‘흐음. 어디 보자. 잎 모양이 살롱다리를 닮았는데.... 그럼 여기에 있으려나?’

  난 신중하게 책 한 권을 골라 집었다. 산림 생태학 사전. 내가 몇 번 보긴 했지만, 인기가 정말 없는 책이기에 먼지가 조금 묻어있었다. 난 손으로 대충 털어내고 사전을 펼쳤다. 대충 아무 곳이나 펼쳤는데,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페이지가 딱 마법처럼 딱 나왔다.

  ‘오! 좋아.

  난 의미 없는 뿌듯함을 느끼며 주머니를 뒤졌다. 아침에 챙겨놓은 작은 수첩이 손에 잡혔다. 수첩은 조금씩 수분기를 먹은 탓에 제멋대로 구부러져있었다. 빈 페이지를 몇 장 넘기니 어젯밤에 끼워놓은 작은 잎사귀가 나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눌러놓은 잎을 종이에서 떼어냈다.

  ‘가장 비슷한 건 살롱다리가 맞는데... 갈라진 개수가 다르단 말이지.’

  예시로 나온 여러 잎들과 내가 뜯어온 잎을 천천히 대조해봤다. 같은 종이지만, 조금씩 갈라진 대로 모양도, 이름도 다른 식물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가 가져온 잎과 동일한 것이 없었다. 애초에 살롱다리 군락지에 자기 혼자 다르게 생겨서 뜯어온 것이었다.

  ‘헐. 설마 내가 최초로 발견한 돌연변이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짠하고 똑같이 생긴 이파리가 나타났다.

  “쳇.”

  대단한 발견인가 했더니...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있는 설명을 읽었다.

  ‘같은 살롱다리이나 일종의 인공적으로 생겨난 돌연변이이다. 자세한 사항은 512쪽의 마법 변이 참조? 마법 변이면 근처에서 누가 마법을 썼다는 건데.... 거기서 누가 마법 연습이라도 했나?’

  나는 설명이 지시하는 512쪽으로 넘어갔다. 그곳에는 마법의 영향을 받아 일시적으로 유전자가 변형된 식물들이 전부 모여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찾아낸 잎도 끼어 있었다.

  ‘마족 마법의 잔여물들.’

  굵은 글씨로 쓰여있는 제목을 읽는 순간 뼛속까지 서늘해졌다.

  ‘옛 전쟁의 상흔으로 천천히 돌아오고 있으나 여전히 그 개체들은 남아있다. 무해하지만 그것을 보는 일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래... 우리 마을도 4차 대전 때 마족들이 지나간 적이 있었지. 이 잎은 아마 그때의 흔적일 것이다.

  “후...”

  나는 잎줄기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고 파라락 돌렸다. 마족의 침략과 전쟁.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마지막 전쟁이 100년 전쯤이었으니까, 나의 증조, 고조할머니는 그 전쟁을 온전히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많은 이들이 싸워서 만들어낸 평화가 바로 지금이다.

  그 많은 희생과 피. 목숨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항상 마음이 한구석이 쓰렸다. 그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내가 이렇게 편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건데... 내가 나의 일상을 좋아하는 만큼 그들을 배신하고 외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기분만이 아니지.

  나는 책을 덮고 제 자리에 넣어놓았다. 잎은 어떻게 할까? 예쁘기도 하고 돌연변이라 잘 말려다가 책갈피로 쓰려 했는데.... 좋은 약재까지 발라 놓은 게 아깝기는 했지만, 더 이상 갖고 있고 싶지가 않았다. 난 쓰레기통으로 가 잎을 잘게 조각내어 버렸다. 초록빛의 작은 조각들이 눈송이처럼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착잡한 마음에 아무 의미 없이 조용한 도서관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 공간은 햇살 덕분에 불을 켜지 않았어도 환했다. 대신 조금씩 불어오는 바람 탓에 커튼이 움직일 때마다 천장과 바닥에는 빛의 물결이 일렁였다.

  그 동굴은 도서관보다 훨씬 작았고, 커다란 덩치에 퍼져나간 불꽃은 에메랄드빛이었기에 정말 물속에 들어온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시에 있다는 아쿠아리움이 이런 느낌일까?

  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오늘은 그냥 책상에서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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