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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에게 행운을
작가 : 로기
작품등록일 : 2019.9.19

 
안녕하세요
작성일 : 19-09-20 11:27     조회 : 176     추천 : 0     분량 : 19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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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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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를 다닐때는 선생님이든 학생들이든 환영받지 못하는 내가 이번 고등학교에서는 다를까 하고 생각했던게 바보였다. 같은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해버리다니. 멍청한 내 자신에게 한심하다는 평가를 내려주고 싶다.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녔음에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이.

  이제 막 2학년에 올라왔지만 여전히 학교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 어째서인지 퍼져 있는 나에 대한 소문과 내 능력에 대한 것 때문에 모두가 나를 꺼려한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고등학교에 와서 겨우 내 소문에 대한 오해가 풀려 말을 걸어주시는 때가 많지만 아직도 학생들은 믿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 무시를 관두지 않았다. 어느 의미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아무런 생각없이 사는 것을 말이다. 워낙에 너무 긴 시간동안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무시를 하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또래들이야 무시해도 상관은 없지만 선생님들의 경우에는 조금 어려울뻔했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버틴 나를 장하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졌기에 전보다 나은 학교생활이 되고 있다. 솔직히 또래의 친구가 있다면 더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마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점심시간인 지금 나는 점심을 매점에서 간단하게 해결한 뒤 넓디 넓은 이 학교에 수많은 공원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 혼자 공원에 누워있다. 말도 안되게 넓은 이 학교는 여러 방면으로 교육에 힘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점점 넓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 치더라도 너무 넓어졌다. 그렇게 되어 아무래도 휴식 공간도 그만큼 필요하고 넓은만큼 학생들도 많기 때문에 건물도 많다. 많기는 하지만 평범한 수준에 지나지 않아 너무 넓은 학교에는 남아도는 곳이 많다는 것인데 그런 곳들 중에 하나가 이 공원이었다. 누구나 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라 예쁘기도 하고 이곳 저곳에 밴치나 팔각정 같은 것들이 구비되어 있어 혼자 있기에도 참 좋은 곳이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되면 이곳에 자주오게 된다. 어쩐지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내가 혼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라서 더욱 자주 찾았다. 그런 마음 놓이는 시간은 금새 지나가기 마련이다.

  다음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조금 더 누워있기로 했다. 반이 있는 건물까지는 거리가 꽤 되지만 그런건 상관없었다. 아마 바로 가봐야 별로 좋은 꼴은 보지 못할테니까 말이다. 그보다 그저 여기가 편해서 더 있고 싶을 뿐이지만.

  그래도 수업에 늦을 수는 없으니 나는 결국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반으로 향했고 반에 도착한 순간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타이밍 한 번 기가막히다. 반으로 들어오자 같은 반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너무 일관적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갈 뻔했다. 자중해야지.

  점심을 먹고 나서 듣는 수업인지라 졸음이 쏟아지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대로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담임이신 채나선생님의 수업이기 때문에 지금 졸게 된다면 나중에 잔소리를 잔뜩 듣게될 게 뻔하다. 그러니 절대 졸아서도 안된다. 그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수업이기도 해서 자고 싶지 않다.

  수업이 끝이났다는 종이 울리자 선생님은 수업을 칼같이 마치시고는 반에서 나가셨다. 그와 동시에 나도 반을 나서 아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반에서 나온들 복도에 있는 아이들이 나를 보고 날카로운 시선들을 보내오거나 서로만 들리도록 악담을 하며 경멸의 시선을 보내왔다. 사실 저 아이들은 나에게 어째서 그런 소문이 생겨나게 됐는지 조차 모르겠지만 분위기를 따라 하는 행위이니 크게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

  그렇게 반으로 돌아가는 도중 복도에서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치게 되었다. 나는 사과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방을 보자 그런 생각이 바로 사라졌다.

  "꺼져라."

  상대방은 부딪친 사람이 누구인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그 말을 남기고 복도를 걸어갔다.

  ……. 자꾸 이렇게 신경쓰지 않는다는둥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내가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조금 의문이 든다. 그렇게 되면 약간 부끄러워지는데. 내가 신경쓰지 않는다고 해놓고 결국에는 그 반대였다는 얘기니까. 뭐, 상관없겠지.

  지금처럼 쉬는 시간이 되면 반에서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다시 수업시간 종이 칠즈음이 되면 반으로 돌아가는 것이 내 일상이다. 왠지 도망치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내가 그 반에 있으면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기도 하고 가만히 있다보면 반에 남자아이들이 시비를 걸어오는 경우가 꽤 많이 있어 불편하기도 하다. 2학년이 되고 아직까지는 그런 적은 없지만. 때문에 나는 수업시간이 아닌 이상 반에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그 반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나보다는 아이들이 더 불편할테니까 말이다.

  그런 느낌으로 하루의 수업이 끝났다는 종이 다시 울리자 아이들의 분위기가 아침보다 확실하게 풀려있다는 것을 말을 섞지 않는 나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뒤에 바로 담임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종례를 시작하셨다.

  "오늘은 이게 끝이야. 이 뒤에 자습이나 동아리 활동이 있는 사람은 확실하게 출석하도록."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말을 남기시고 반 문을 열고 나가시자마자 아이들은 움직여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몇몇 아이들은 청소를 하지 않고 나가고 있었지만 그런건 상관없었다. 안되어있는 곳이 있다면 내가 남아서 하면 된다. 나는 내가 맡은 구역의 청소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갔던 공원에서 아이들이 전부 반에서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아직 2학년이 시작된지 2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저들 나름대로 친한사람들을 만들었고 같이 다니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조금 가슴이 시렸다. 나도 그런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지만 중학생때부터 없었으니 이제는 그다지 쓸쓸하지는 않다. 오히려 이제는 이렇게 방과후에 남아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이 노을이 더 좋아져 버렸다.

  아이들이 반을 다 떠날 때가 되어 반으로 발을 들인 나는 주변을 살피다 오늘은 청소가 깔끔하다는 것에 깨닫고 내 자리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았다. 내 자리는 바로 옆에 창문이 있어 의자를 끌어다가 앉아 창틀에 몸을 기댈 수 있어 밖을 보기 편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져 노곤함이 내 속을 가득 채웠고 잠이 쏟아지려고 하는 것을 막지 않고 눈을 감자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가 더 확실하게 들려왔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아이들의 소리와 여러가지 악기 소리, 몇 없는 복도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잠에 빠지려는 순간 뒤에서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반에 울려퍼졌다.

  "야! 이 운!"

  여성의 목소리인 것은 알겠는데 누구지? 선생님이시라면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면 학생인가? 그럴리는 전혀 없는데. 졸린 눈으로 몸을 살짝 돌리고 고개만으로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했다. 거의 잠에 빠진 내 눈에는 흐릿하게 보여 누구인지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교복인 것이 여학생인 모양이었다.

  "누구?"

  졸린 머리로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어 입이 저절로 벌어져 질문을 해버렸다.

  "나야! 누군지 몰라?"

  나를 아는 듯하지만 나는 전혀 보이지 않아서 누군지도 모르겠다. 목소리는 어디서 들어본 느낌이 가득하긴 한데 누구지?

  "야, 일어나!"

  아무리 아는 사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몸을 막 흔들면서 깨워도 되는건가? 억지로 내 몸을 흔든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나는 정신을 차렸고 눈 앞에 누가 있는지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누구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누구?"

  얼빠진 내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여학생은 내 먹살을 잡아 올렸다. 그 순간 나는 잠에서 확 깼다. 내 멱살이 잡혀 놀려지자 나는 눈이 떠졌고 밝아진 시야를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 눈살을 찌푸리고 자세히 보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여학생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나 못 알아보겠어? 나 유아야. 유아."

  "이유아?"

  "응."

  "그럴리가. 이제 말 섞지 않은지가 이제 3년이 다 되어가는데."

  여전히 머리는 되돌아오지 않은 듯 이상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

  자신을 이유아라고 말하는 여학생은 여전히 내 멱살을 잡은 채로 대답이 없었다. 이럴거면 처음부터 말을 걸지 말지.

  "이거 이제 놔줄래?"

  그 순간 내 뒷통수에 큰 통증이 느껴졌고 여학생의 입이 떨어졌다.

  "정말로 기억 못 해?"

  씁쓸한 듯 미간을 좁히는 여학생의 모습에서 지금보다 더 어렸을 무렵에 보았던 유아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진짜로 유아인가?

  "정말로 유아야?"

  "응."

  이제 와서 들어보니 유아의 목소리가 맞는 것 같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 것만 같은 유아의 표정에서 나는 그녀가 유아라는 것을 확신했고 왠지 성격이 변하지 않았나 싶었다. 예전에는 정말 활기차고 미소가 예쁜 아이였는데 지금은 상당히 많이 바뀐 모양이다. 역시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밖에 없는건가?

  "그리고 내 뒤에 있는 애가 설마 수연이는 아니겠지?"

  "응. 맞아."

  이미 눈시울이 붉어진 유아는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왜 이제와서?

  "여전하네."

  수연이의 차가운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잊을 수가 없다. 언제나 나를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다정하게 대해주던 그 수연이의 목소리이니까. 사실 유아도 목소리로 눈치챘다. 너무 졸린 나머지 그것을 깨닫는게 너무 느렸을 뿐이었다. 겉모습이 내가 아는 그녀들과 많이 달랐으니까 말이다.

  "고마워. 근데 무슨 일이야?"

  칭찬은 아닌 모양이지만 일단 여전하다는 것은 아직 내가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일테니 고맙다고 전했다.

  "무슨 일이라니? 친구가 친구 만나러 오는데 뭐 이유가 필요해?"

  유아는 당당하게 그렇게 말했다. 흠…….

  "그럼 작년까지는 왜 말을 안걸었어? 같은 학교니까 내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알잖아."

  조금 짖궂지만 사실이니까.

  "윽."

  정곡을 찔렸는지 유아는 가슴 앞에 주먹을 부여쥐고 아픈 시늉을 했다.

  "뭐, 사실 그건 됐어. 이미 오래되어서 신경도 안쓰이는 거니까. 그것보다 정말 왜 이제와서?"

  "미안했어. 우리라도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아니. 정말 내가 지금 얘기하는건 그런게 아니라. 정말로 어째서 이제와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용건을 원하는 내 말에 유아와 수연이의 표정이 상당히 어두워진 것을 보니 둘에게 무슨 일이 생겼기 때문에 내게 도움을 청하는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혀 아니였던 모양이었는지 수연이에게 또다시 딱밤을 한대 맞아버렸다. 어지간하면 때리지 않는 수연이가 두 번이나 때린 것을 보면 내가 잘못한 것 같긴한데.

  "정말로 미안해. 우리도 노력은 했지만 너에 대한 소문은 막을 수 없었어."

  유아도 수연이도 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정말로 자신들이 잘못한 것처럼. 어째서 너희가? 전혀 그녀들이 사과할 일도 아니였거니와 그녀들의 잘못이 아니였다. 그 누구에게 물어도 그녀들의 잘못이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 분명한데. 쓸데없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무슨 소리야. 너희 잘못이 아니야. 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

  유아는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아니야. 내 잘못이야. 내가 그 아이를 내버려두지만 않았다면 그런 소문은 퍼지지 않았어."

  그런 책임 따위는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둘은 이미 내가 말해도 다르지 않을 정도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너희가 그렇게 느끼는 건 상관없어. 너희가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도 아니니까. 크게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그래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내가 그렇게 말을 하니 조금 책임감에서 풀려난건지 아니면 마음이 놓인건지 표정이 살짝 풀려있는 두 사람이었다. 다행이다. 다행이기는 한데 너무 빠르게 풀린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럴거면 울 것까지 없잖아.

  "고마워."

  방금까지 눈물을 훔치던 유아는 언제 눈물을 흘렸다는 듯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코와 눈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은 숨기기에는 무리였다. 그런 와중에도 수연이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도 상당히 감정이 북받쳐올랐는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무리 감정이 없어보이는 수연이더라도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반이라서 다행이었지 누구라도 있었다면 엄청나게 부끄러웠을 상황이었겠지? 무엇보다 학교에서 두 사람은 나와 전혀 다른 위치니까 아마 다른 아이들에게 들켰다면 그녀들에게는 좋지 않았을 것이다. 나 때문에 좋지않은 상황에 닥친다면 죄책감에 지금보다도 훨씬 힘들겠지. 그래도 내 오랜 친구들이니 마냥 무시하기에는 힘들다.

  "그래서 사과하고 싶어서 늦었겠지만 찾아오게 된거야."

  "이런건 학교가 아니라 집에서 해도 되잖아? 어차피 우리집은 비어있고 바로 옆에 있는데 둘 다."

  내가 유아와 수연이라는 것을 인식한 후 제일 궁금했던 것은 그녀들이 이제와서 찾아온 것과 집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학교에서 얘기했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의 일이니 부모님께서 아시는 건 별로라고 생각해서. 혹시 모르잖아."

  "그래."

  사실 두사람의 부모님은 이미 알고 계실게 확실했다. 워낙에 눈치가 빠르시기도 하지만 애초에 내가 두사람의 집에 들리는 일이 없어졌다는 것에서 이미 눈치를 채셨을 것이다. 이건 유아의 독단이었던 듯 수연이의 얼굴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이미 두사람의 부모님과 연락은 주고 받고 있으니.

  "이제 다시 갑자기 친해진 것처럼 굴기에는 우리가 너무 뻔뻔해 보일테니까 여기서 먼저 집에 돌아갈게. 내일 봐."

  유아는 수연이와 함께 갑자기 나타나고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녀의 뒷모습이 내게 너무나 미안해 하는 것 같아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친구에게 이런 걱정은 시키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고.

  그렇게 내일 보자며 교문으로 나가는 유아와 수연이를 아무도 남지 않게된 반에서 바라보며 다시 하늘을 향해 눈을 돌렸다.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나게 되니 사람은 오히려 포기하고 납득을 해버리는 모양이다. 그래도 다시 두사람과 대화를 하며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게 나에게는 생각보다 기쁜 일이었다. 몇 년간 친구도 없었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두사람의 부모님은 언제나 바쁘신 분들이었고 우리 부모님도 항상 해외로 떠나가 계시기 때문에 나에게 신경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 그러니 혼자서 감내해야했고 또 삭혀야했다. 누군가에게 상담하기 어려웠고 털어놓기에는 책임을 전가하는 것 같아 이야기하기가 미안했다. 무엇보다도 이런 일에 또래가 관련되어 버린다면 그 아이가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일을 눈앞에 두고도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닌지라 역시 혼자 있었던 것이 나았다.

  그래도 2학년이 되고부터는 직접적인 괴롭힘을 가해오는 아이들이 많이 없어 다행이었다. 두 친구와 친하게 지내더라도 직접적인 피해를 가해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였으니까. 그렇더라도 만약이라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나는 가차없이 두 친구를 떨어트리더라도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마음이 안정될 리가 없다.

  어쨌든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 치고는 꽤나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는 뜻이다. 오늘은 생각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고 그 능력에 대해 이해하고 적응하며 응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이 학교는 초등부부터 고등부까지 전부 있을만큼 커다란 학교로 여러 지역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어 매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도 예전보다는 낫다.

  "운아. 점심 같이 먹자."

  "그래."

  점심시간에도 찾아오게된 유아와 수연이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모를만 해. 여기는 선생님들도 잘 다니시지 않는 곳이니까. 가끔 관리하시는 분께서 오시는 정도야."

  "이만큼 예쁜 곳을 혼자 독차지 하다니 욕심이 과하네."

  유아는 피식거리며 내게 장난을 쳐왔다. 장난을 치는 모습이 예전을 생각나게 만들정도로 여전했다. 수연이도 마찬가지로 그런 우리를 아무런 말 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자그마한 미소와 함께. 둘의 모습은 오랜만에 만났을 때 생각했던 성격변화는 전혀 없다고 해도만큼 같았다.

  "이 공원에서 식사를 하니까 뭔가 더 맛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내가 매일같이 오는 이유가 있다니까."

  "그건 나도 찬성이야."

  우리 세 사람은 키득거리며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상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두사람은 할 이야기가 많았던 듯했다.

  "그래서 우리 아빠가 거기서 수연이네 아빠랑 싸웠다니까."

  "겨우 식사를 하는 것뿐인데 말이야."

  "그럴만하네. 아저씨들 두 분은 성향이 전혀 다르니까."

  이처럼 두사람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는 매우 친한 사이이신데 이 인연은 고등학생 때부터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친하기도 친하지만 싸우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닌 싸울수록 친하다는 그런 느낌이다. 또 어머니들께서는 그런 개성이 강한 세사람의 싸움을 말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지시게 됐고 우리를 낳으시고는 여전히 관계를 이어나가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제는 다들 바쁘셔서 자주 만나지 못하시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연락은 자주하신다고 방금 유아에게서 들었다.

  "아저씨, 아주머니는 지금 사막에 계신다고 했었지?"

  "응. 정확히는 어디인지 알려주시지 않았지만 사막이라고만 하셨으니 세계 어딘가에 살아계시기는 할거야."

  우리 부모님께서는 세계 각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두분의 입으로 직접 그렇게 이야기하셨으니 맞을 것이다.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굳이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으니까 말이다. 아니라고 한다해도 비슷한 일을 하고 계실 거다. 아니라면 아마 두 아저씨와 두 아주머니께서 매우 화를 내실게 눈에 선하니까.

  어머니는 걱정이 되지 않는데 아버지가 너무 걱정이다. 아버지는 조금 막무가내로 행동하시는 경향이 있으시니까. 그래도 갑자기 사라지시지는 않으시겠지.

  "아! 오늘 우리 방과후에 어디 놀러갈까?"

  또다시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유아에게 깜짝 놀랄뻔했지만 많이 당해본 나와 수연이로서는 금새 한숨만 나왔다.

  "ㅇ, 왜?"

  "그런건 사전에 얘기해주면 안될까?"

  "어째서!"

  논다는 것을 거절한다는게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외치는 유아.

  "방과후에 시간이 없을 수도 있잖아."

  "아……."

  감정이 말하는대로 움직이는 것 같은 유아에게 딱 맞는 행동이지만 아직까지 이러면 조금 곤란하다. 그나저나 이런걸 보면 여전한 것 같은데 학교에서의 평판은 지금 이 모습과는 다르던데 어떻게 하고 다니는거야?

  "일단 나는 시간이 되는데. 수연이는?"

  "오늘 학생회실에 가봐야지 알겠지만, 아마 아무일도 없을거야."

  수연이는 1학년때부터 수기로서 학생회에 들어가 있다. 1학년이 학생회에 들어가는 경우는 웬만해서 없다고 들었지만 수연이처럼 똑부러지는 사람을 그냥 냅둘만큼 학생회는 무르지 않았다. 학교가 큰만큼 할 일도 많기도 하고 처리할 일도 많기 때문에 유능한 사람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그럼 정했어. 오늘은 게임센터에 한 번 가보자!"

  "그런데 가본적은 있어?"

  "아니! 하지만 조금 재미있어 보이는 걸! 인형뽑기라든지, 총을 쏘는 거라든지, 두더지잡기라든지!"

  이미 머릿속은 게임센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유아였다. 수연이는 그런 유아의 모습을 지켜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나는 그런 둘을 보며 정말로 예전처럼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편안해졌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면서 긴장을 늦추지 못했지만 이 둘과 함께 있을 때만큼은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게 너무나 좋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대화에 시간을 맡기고 있자 어느새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학교에 울려퍼졌다. 아쉽지만 대화는 여기에서 끝이었다.

  "으으, 점심시간은 항상 빨리 지나간다니까. 수업시간은 잘 가지도 않는데."

  유아는 투덜거리며 자신이 먹었던 도시락을 주머니에 집어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따 봐~."

  나와 둘은 다른 반이기도 하지만 다른 건물이기 때문에 공원에서 헤어졌다.

  학교에는 교무실과 학생회실이 있는 본관이 있고 학생들이 생활하는 반과 식당, 매점이 한 곳에 있는 건물인 별관이 여러 채 있으며 체육관과 운동장, 여러 편의시설에 이어 체육과목에 따라 필요한 장소가 모두 마련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체육관은 어느 건물들보다 그 크기를 달리했다. 학생들의 능력을 사용해야하는 곳이기 때문에 넓은 것이었다. 그곳에는 장비와 장치 또한 무수했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입학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마련해 두는 것이었다.

  별관에 들어와 복도를 걷고 있자 주변에서 나에게 시선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런 시선도 이제는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유아와 수연이가 내게 다시 말을 걸었던 것이 약 일주일 전이고 그 뒤로는 유아와 수연이가 나를 찾아오거나 아침에 같이 등교하는 경우가 생겨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안그래도 두사람은 학교 내에서도 꽤나 유명한 친구들이었으니까 그럴만 했다.

  방과후가 되어도 그 시선들은 마찬가지였다.

  "애들의 시선이 꽤 따갑겠다."

  "말도 마."

  같이 집으로 가자며 찾아온 유아와 수연이와 함께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내게 향하는 시선에 대해서 눈치챈 유아가 장난스럽게 얘기했다. 괘씸한 기분이 들어 유아에게 꿀밤을 먹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더 힘들어질 것만 같았다. 수연이도 드문드문 고개를 돌리는 것 같아 신경쓰나 했지만 표정에 신경도 쓰지 않는지 태평하게 우리와 나란히 걷고만 있었다. 고개를 돌리는 이유는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예뻐서일 가능성이 컸다. 여전히 하늘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예전이랑 분위기가 다른 시선이 섞여있어서 적응이 살짝 안되는데."

  "그런거 신경쓰는 쪽이었어?"

  유아의 장난은 전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매일 아무런 표정도 없이 다니길래 이미 해탈한 줄 알았는데."

  "그게 맞기는 한데. 너희 덕분이라고."

  며칠 전까지만해도 무시라던지 경멸이라던지 그런 것만 있었는데 이제는 질투하는 눈빛까지 섞여있다. 지금 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미치겠네.

  사실상 많이 힘들지는 않지만 옆에서 계속해서 장난을 치는 유아 덕분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몸이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반으로 돌아왔을때 나는 아이들의 분위기가 바뀌어 있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바로 내 자리에 앉아 엎드려 잠을 청했다. 아마 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수업시간에 자게된 날이었다.

  "일어나봐."

  나는 신음같은 소리를 내며 내 어깨를 흔드는 사람을 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를 흔든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어버렸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담임선생님인 채나선생님이었다. 점심시간에 유아에게 빨린 기를 회복하기 위해서 잠을 잤지만 수업시간 전까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미 지나버렸다.

  "많이 피곤하니?"

  "아니요. 그냥……."

  선생님께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어보셨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친구인 유아에게 기가 빨려 지금까지 잠을 자버렸다는 것을 선생님에게 말을 할 수도 없으니 똑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런 모습에서 내가 정말로 아파보였는지 선생님께서는 결국 양호실에 가보라고 하셨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였다.

  "지태야, 운이와 함께 양호실에 가줄 수 있겠니?"

  "네."

  선생님에게 불린 남자아이가 의자에서 일어나 나를 데리고 반을 나갔다. 아무런 말도 없이 나와 그는 양호실에 도착했고 안으로 들어갔다.

  "웬일이니 운이가 양호실에도 들리고."

  이것저것 봐주던 양호선생님께서 결국 한마디 하셨다.

  "그러게요."

  양호선생님과는 어쩌다보니 중학생일때부터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선생님의 아름다운 외모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뭐, 4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럴수도 있지만 말이다.

  나는 양호선생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한 후 옆에 있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기로 했다. 일단 담임선생님의 배려에 기대기 위해서. 하지만 나는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이제 가도 돼."

  나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나머지 친하지 않은 그에게 용기내어 말을 걸었지만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정말로 어색하다.

  "뭐, 아프지는 않은 것 같으니까 걱정은 안되는데. 아, 참 이게 아니다. 이제와서 인사하네 안녕? 나, 우리 반 반장인 안지태라고 해."

  갑작스러웠다. 이녀석 유아라도 될 셈인건가? 성별이 다르지만.

  "안녕, 나는 네가 반장을 하고 있는 반의 이 운이라고 해."

  누워서는 실례가 될테니 몸을 일으킨 후 다소 부끄러울 정도의 자기소개를 하자 안지태는 웃음을 터트렸다.

  "왜?"

  너무나 크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인가 하고 부끄러워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미안해. 이런 인사를 받아줄 줄이야 놀랐어."

  안지태는 웃는 것을 멈추지 않고 나에게 놀랐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웃으면 전혀 놀란 것 같지 않는데.

  "정말 미안해. 내가 생각했던 너랑 너무 달라서."

  "어떻게 생각했기에 그렇게 웃는거야?"

  "음, 묵묵하고 까칠한데다 강한 이미지?"

  어째서지? 나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우리가 말을 걸기도 전에 나는 이곳에 미련이 없다는 것 같은 표정에다가, 수업이 끝나면 매일같이 청소만 마치고 어딘가로 가버리니까. 누구도 말 걸지 말아달라는 분위기이고 무엇보다 우리들 중에서 유일하게 민기랑 맞서고 있잖아?"

  내가 그런 느낌으로 있었나? 나는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중이기 때문에 누구와도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 그 생각이 표정에 튀어나온 모양이다. 게다가 마지막 얘기는 그럴 수 있다. 그녀석 나만보면 성질내니까.

  그나저나 민기라...... 그녀석 반 아이들이랑은 친하게 지내는건가?

  "그런 이미지 때문에 착각하고 있었지만 지금 얘기해보니 의외로 대화하기 쉽다 생각했어."

  물론이다. 나도 이제 막 고등학교를 1년 다닌 학생일 뿐이니까.

  "그래서?"

  "평소에도 지금처럼 다니면 좋겠다는거지."

  안지태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깊은 웃음을 지었다. 웃는걸 지켜보고 있자니 나는 한가지 사실을 알았다. 안지태 이녀석 엄청나게 잘생겼다. 엄청 뜬금없지만 여성에게 사랑받는 외모라는 것이 이런게 아닐까 할 정도로 잘생겼다. 자신은 알고 있을까 싶지만 지금 이야기 하는건 조금 선을 넘은게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또 공부는 잘하잖아."

  "그래?"

  "모르고 있어? 성적은 알 거 아냐."

  "흠, 전국에 비교하면 나도 잘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사실 내 성적은 알고 있지만 일일이 학교에서 통계를 내주는 등수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100점이 만점이라는 것에서 어느정도는 예상이 가능했는데 우리 학교 아이들의 평균을 잘 모르니 애매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라고 해야하나. 전교 1등이라서 그런가 스케일이 남다르네."

  1등? 나 수석이야?

  "지금 속으로 하는 생각이 눈에 보이는 거 같은 표정인데. 맞아. 너 우리 학교 수석이야."

  그럼 2학년이 되고서 자기소개를 하기도 전에 내 이름을 알고 계셨던 선생님들께서는 내가 수석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는건데. 나만 몰랐던건가?

  "우리 반 애들만 해도 수석인 네가 같은 반이라서 어려워했는데 이제는 그것보다 성격을 몰라서 전보다 더 어려워하는 분위기야."

  그래서 말을 걸어오지 않는건가? 내가 보기에는 조금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보내오는 시선은 그런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닌 더 어두운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녀석의 말을 믿어본다면 적어도 반 아이들의 시선은 내가 착각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조금 답답함이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

  "그럼 이만 가볼게."

  안지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호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양호실을 나섰다. 그가 양호실을 나서자 나는 순간 한숨이 나왔고 온 몸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또래와 이야기를 하는 것뿐인데 몸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긴장을 했다는 것이 나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유아와 수연이밖에 되지 않는걸까.

  왠지 신기한 기분으로 혼자만의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다 나는 순식간에 잠에 빠져버렸다.

  처음으로 수업에 빠지고 잠에 들었다는게 뭔가 잘못된 짓을 한 것 같고 어색한 감각이 돌았지만 나쁘지 않았던 컨디션도 더 좋아진 느낌이 들었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잠이라는 건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서 취하는 거니까 혼자 걱정이란 걱정을 다하던 나에게 휴식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근데 나 처음으로 같은 반 남학생이랑 얘기한거야?

  "이제 일어나렴. 하교시간이란다."

  양호선생님께서 부드러운 손길과 목소리로 나를 잠에서 깨워주셨다. 문제는 침대에 앉아 내 얼굴을 만지고 계셨다는건데. 내가 자는 모습을 보셨다는거잖아.

  나는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붉힌 채 선생님께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고 몸을 일으켰다. 오늘따라 부끄러움을 타는 일이 많은 듯하다.

  선생님께서 나를 깨우셨을 때 하신 말씀대로 밖은 이미 노을이 지고 있어 1층인 양호실에서도 하교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한마디로 나는 오늘 있을 오후수업을 전부 잠으로 떼웠다는 얘기였다. 오늘 들었어야할 수업들은 이미 예습을 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지만 수업을 듣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쌓여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쁜 짓을 한 것 같은게 아니라 정말로 나쁜 짓을 해버렸다는 감각이 내 피부를 감싸고 있었다.

  "너는 가끔 쉬어줄 필요가 있어. 그러니까 걱정말고 집에 들어가서 더 쉬어."

  양호선생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선생님의 객관적인 시점에서 말씀을 해주신 것이니 확실하겠지. 나는 지금 휴식이 필요한 상태인 모양이다. 그럼 선생님의 조언을 곧이 곧대로 받아 도장에 가서 조금 몸만 푼 뒤에 못한 공부를 하도록 하자. 선생님의 조언에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어째선가 속에 담겨있던 죄책감이 씻겨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홀가분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힘들면 다음에도 와."

  "네."

  양호실을 나온 뒤 가방을 가지러 가기 위해 반으로 향하는 도중 반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아와 수연이를 맞닥뜨렸다. 그러고보니까 잠을 자게된 이유가 유아였는데. 나, 유아와 수연이를 상대로 대화를 한게 그렇게 힘들었던건가? 아니면 평소에 하던 긴장을 둘과 있을때는 풀려서 갑작스럽게 피로가 몰려온건가? 확실한 답은 모르겠지만 일단 유아나 수연이가 잘못한 건 아니니 별로 어색할 것도 없을거다.

  유아는 천천히 자신들에게 다가가는 나를 보고 의아해했다.

  "어? 운아. 어디갔었어?"

  "양호실."

  "왜? 어디 아파?"

  어렸을 때부터 나는 병에 걸리거나 하는 일이 적어 아픈 적이 많이 없는데 그런 내가 양호실에 들렸다고 하니 괜스레 더 걱정이 되는지 유아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수연이도 걱정해주는 듯 유아의 말과 함께 눈으로 묻고 있었다.

  "아니. 그냥 왠지 졸음이 쏟아져서 양호실에서 자도록 선생님께서 배려해주셨어."

  "그래."

  한시름 놓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한숨을 쉬는 유아를 보니 나는 괜히 걱정한다는 소리를 해버렸다.

  "그런 말 좀 하지마. 친구니까 걱정하는 거잖아."

  유아의 말이 많이 낯이 간지러웠지만 워낙에 자주 이러는 애라 이제 다시 적응해야할 때가 됐다.

  "예전부터 아픈 걸 본적이 없으니까 그렇지."

  뒷말을 이어준 수연이는 유아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꽤나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왠지 미안한데.

  "그래, 알겠어. 조심할게."

  내 대답을 들은 두사람은 내 대답에 만족스러웠는지 유아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수연이는 드물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이제 집으로 가볼까?"

  유아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우리는 학교를 나서 거리로 향했다.

  "그런데 오늘 같이 놀러가자 하지 않았던가?"

  기억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점심시간에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 말을 꺼내보았지만 유아는 고개를 저으며 오늘은 안된다고 한다.

  "아프다고 하는 친구를 막 데려갈 수는 없잖아."

  조금은 장난스러운 유아지만 친구를 생각하는건 여전했다.

  "그래. 그럼 다음에 가자. 나는 여기서 이만."

  "도장 가? 피곤하잖아. 괜찮겠어?"

  "아픈 것도 아니고 많이 피곤한 것도 아니니까 괜찮아. 고마워."

  나는 두사람과 인사를 나눈 뒤 도장을 향했다.

  거리에서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 2층 주택으로 건물 안이 텅하니 비어있는 곳이 있다. 골목도 빛이 많이 들지 않고 좁기도 하며 건물 자체가 매우 낡아 사람들에게 꺼려지는 건물인데 그곳이 바로 내가 매일같이 다니는 체육관이자 도장이다.

  "안녕하세요."

  나는 건물의 커다란 철문을 양쪽으로 밀어 열며 들어가면서 인사를 했다. 딱히 누군가에게 한 것은 아니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인사를 한 것이다.

  내가 들어오고 인사를 해주시는 사람들이 있거나 아니면 자신의 운동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나뉘어져 있었다.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아마 집중하는 중이라서 눈치를 못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서 준비하거라."

  2층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올려다 보았다. 고개를 올려다 본 곳에는 머리가 희고 목소리와 어울리는 중후한 외모에 다부진 몸을 가진 중년이 서 있었다. 이 분이 바로 몇년동안 이곳에서 지내시면서 나나 여러 사람들을 가르친 관장님이시다. 관장님께서는 묵묵하셔서 자주 오해를 받으시지만 마음이 상당히 따뜻하신 분이시다. 여기 다니는 사람의 대부분이 갈 길을 잃고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며 삶에 희망을 잃었지만 관장님께서 거두어 무술을 가르치시면서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꾼 사람들이었다. 나처럼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소수에 속했다. 이렇듯 거리에 나돌아다니시는 분들을 내버려두시지 못하실만큼 마음이 상냥하신 분이다. 누군가를 거둬들일만큼 돈에 여유가 있으신 것도 아니시면서 말이다.

  "네."

  그런 관장님께서 내게 준비하라고 하셨다. 오늘은 워밍업만 한 후 바로 대련을 하실 생각이신 것이다. 오늘이야말로 한번라도 관장님의 몸에 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탈의실에서 가벼운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몸을 데우기 위한 스트레칭과 유산소 운동을 시작했다. 몸이 적당히 달궈졌을 무렵 관장님께서 나를 링 위로 부르셨다.

  이곳에서 배우는 것은 무술이다. 무술이기는 하나 누가 보아도 실전에서 쓰일만한 것이고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관장님께서는 그런식으로 알려주는 것이 아닌 몸을 지키기 위해서 가르치시는 것이었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수련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 링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링은 관장님께서 기술을 몸으로 직접 알려주시기 위해서나 혹은 정신을 다시 잡기 위해서, 또 자신과 제자의 몸이 무뎌지지 않도록 대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관장님께서 나를 부르는 이유의 대부분은 마지막 이유일 때가 많다.

  "잘 부탁드립니다."

  링에 올라선 나는 앞에 계신 관장님께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추었다. 관장님께서도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이 아닌 나와 같은 각도로 허리를 굽히시며 예를 갖추어 주셨다. 서로의 예를 확인한 후 링 밖에서 우리를 보던 관원 중 한 명이 고개를 들자마자 종을 때렸다. 맑은 종소리를 듣고 나는 심호흡을 한 뒤 관장님을 보았다. 자세를 취하고 계시지 않지만 빈틈이라고는 하나도 볼 수 없어 섣불리 다가갔다가 반격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기에도 다음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관장님의 품 안쪽으로 뛰어 들어가 무릎을 올리며 명치를 가격했다. 하지만 내 무릎은 관장님의 손에 의해 저지되었고 관장님은 믿을 수 없는 힘으로 내 쪽으로 밀어 내 균형을 무너뜨리셨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뒤로 향하는 몸의 중심에 맡겨 한바퀴를 돌리며 발꿈치로 머리를 가격하려했으나 이것 또한 관장님의 손에 의해 기세를 잃었다.

  나는 다시 거리를 벌린 후 바로 링 바닥을 박차고 나아가 주먹을 내질렀고 관장님은 가볍게 피하셨다. 그것을 보고 나는 연속해서 주먹과 발을 이용해 끊임없이 연속으로 공격을 가했지만 손쉽게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관장님께서는 모두 피하셨다.

  오늘은 한 번이라도 맞출 생각으로 덤비고 있었지만 여전히 맞아주실 기미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끝낼 수는 없다.

  연속으로 내 지르던 주먹과 다리를 빠르게 거두고 발을 이용해 관장님의 발을 노렸다. 관장님은 발을 살짝 드는 것으로 피하셨고 나는 그것을 예상해 다시 되돌리며 다른 발을 노렸다. 이때 관장님께서 올린 다리를 내리지 못하시고 땅에 붙어있는 다리를 이용해 위로 뛰어 오르셨다. 이것을 노리기는 했지만 아마 관장님께서는 이미 내 생각을 알고 계실 것이다. 알고는 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나는 공중에 떠 계신 관장님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관장님은 내 주먹이 자신에게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시고는 그 주먹을 양손으로 붙잡고 다리를 뻗어 내 팔을 잡고 자신에게로 당기시면서 쓰러지셨다. 나는 붙잡힌 팔을 풀기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무리였고 링 바닥을 손바닥으로 두번 내리쳤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종이 울렸다.

  나는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많이 늘었구나."

  "감사합니다."

  관장님께서는 땀 한방울도 흘리지 않으시고 내게 늘었다고 말씀하셨다. 아직도 미숙한 내가 관장님께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많이 이르지 않을까. 보지 않아도 지금 내 얼굴은 탐탁지 않은 표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관장님은 나를 보시며 미소를 지어주시고 계셨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계실텐데 말이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거라. 많이 피곤해 보이는구나."

  "네."

  역시 알고 계셨는지 관장님께서는 평소와는 다르게 한시간 일찍 먼저 귀가하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탈의실에 들어가 간단히 몸을 닦은 뒤 옷을 갈아입고 도장을 나섰다.

  "그럼 수고하세요!"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들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고 골목으로 향했다. 그 순간

  "운아! 오늘은 일찍 돌아가네?"

  "아, 형! 네. 관장님께서 오늘은 피곤해보이니 일찍 들어가 보라고 하셔서요."

  내게 말을 걸은 남자는 키가 나보다 작고 무척이나 귀엽게 생긴 남자다. 키가 작고 귀여운 외모 덕분에 여성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은 이 남자는 강우진이라고 하며 나보다 도장을 먼저 다닌 선배이다. 가끔 길을 가다보면 여성들이 형을 둘러싸고 있어 특이하게 여성들이 모여있다 싶으면 꼭 형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 아쉽네 오늘 관장님께서 너와 대련을 하신다고 하셔서 구경하려고 했는데."

  "이미 끝내고 왔어요. 형들이 보셨으니까 직접 물어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도야?"

  "네."

  형은 오랫동안 있었던만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어 단편적인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었다. 오늘도 관장님께 손하나 대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 알았어. 먼저 들어가!"

  "네. 형도 수고하세요."

  "그래."

  형과 인사를 나누고 나는 다시 골목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가 사는 집으로 향하려면 골목의 안쪽으로 더 들어가 나오는 도로에서 꺾어가면 금방이기 때문에 항상 이 길을 택한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해코지 하려고 해도 어중이 떠중이에게 당할만큼의 단련을 해오지는 않았다고 자부하기에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만큼 나는 이 길을 택한게 정말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집으로 향하던 도중 여성의 비명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잘 아는 목소리로.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비명을 듣고 바로 달려온 나는 새어나오는 한숨을 숨길 수 없었다.

  "오늘은 집에 빨리 들어가나 했더니 그러기에는 글렀네."

  나는 골목의 깊숙한 빛조차 없는 그곳에 서서 여러 명의 남자들과 대치해 서며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숫자'를 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매우 낮은 수치의 '숫자'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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