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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까마귀 혀
작가 : 아브락사스
작품등록일 : 2019.9.16

이 글은 고속도로에서 사는 까마귀(견인기사)들의 본성과 투쟁을 그린 것이다.

 
까마귀 본부
작성일 : 19-09-18 17:33     조회 : 206     추천 : 0     분량 : 8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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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레커차 없어요? 빨리 레커차 불러주세요. 빨리요. 급해요.

 사고를 당한 차주가 직접 레커회사로 찾아와서 사무실 문을 쾅쾅 두드렸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 레커차를 불렀으니까 금방 올 거예요.

 사무실 문 앞에 서 있던 중년 남자의 얼굴은 몹시 놀라고 당황한 듯 새하얬다.

 - 얼마나 걸려요?

 - 한 오 분, 늦어도 십 분이면 올 거예요.

 - 아, 더 빨리는 못 오나요.

 - 지금 오고 있는 중이에요.

 -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중년 남자는 돌아서서 차고지를 가로질러 뛰어나갔다.

 

 수연은 창문 밖을 내다보고 서서 레커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 분 정도 지나자 레커차가 고속도로 쪽에서 경광등을 번쩍이며 전 속력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까마귀 11은 구난 작업 한 시간 여 만에 물에 젖은 황태 한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비가 온 것도 아닌데 까마귀 11이 물에 젖어 있었다. 신발과 옷, 전부가 젖은 채였다.

 

 - 아저씨가 차보다 황태를 먼저 건져달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안 된다고, 차만 건지고 빨리 고속도로에 올라가봐야 한다고 했는데, 나이 많은 아저씨가 막 울더라고요. 그래서..........

 까마귀 11은 늦은 이유를 설명하려 애썼다.

 - 구난비하고 견인비는 트럭 찾아갈 때 준대요. 시동이 안 걸려요. 제네레다가 망가진 것 같은데....... 차 고칠 돈도 없는가 봐요. 그래서 차를 맡겨놓은 거예요.

 

 - 차주는! 갔어요?

 수연은 물었다.

 - 아, 지나가던 사람이 트럭을 세우고 도와줬는데, 그 아저씨가 태워다 줬을 거예요. 황태도 실어다 준다고 했어요. 그 아저씨는 과일 행상을 하는데 마침 자리가 있어서 그래서........ 그 아저씨도 사고를 당해서 과일을 몽땅 버린 적이 있었대요. 그래서 심정을 안다고....... 그래서.......

 -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나 봐요?

 - 예, 많이 놀라신 것 같기는 한데........ 자꾸 울더라고요. 코를 훌쩍이며.

 - 그 아저씨 병원에 먼저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얼굴이 새하얀 게 아픈 사람 같던데.

 수연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까마귀 11이 집에 안 들어간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승낙이 죽은 지 벌써 두어 달이 지났구나.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까마귀 11이 전에 없이 명랑하게 굴지만 마음 속 그늘은 숨길 수 없는 것일까. 수연이 보기에 까마귀 11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웃고 있을 때도,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도, 불현 듯 음울한 그림자가 까마귀 11의 얼굴에 드리웠다.

 

 - 오늘은 집에 들어갔다 오세요. 사장님한테는 내가 이야기 할 테니까 집에 가서 푹 좀 쉬었다 나와요.

 - 아니에요. 가끔 집에 들러서 옷 갈아입고 와요. 금방 갔다 금방 오니까 무전 안한 것뿐이에요. 집이 증평톨게이트에서 가깝거든요. 갈 때마다 보고 했어야 하는데 주로 새벽 시간에 가다보니까 제로님 잠 깨울까봐 그냥 가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 아, 그랬구나. 죄송할 건 없어요. 잘하신 거예요. 그나저나 무척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겠어요!

 - 요새 불면증 때문에 잠을 못자서 그래요.

 - 그러니까 집에 들어가서 푹 자고 나와요.

 - 집에 가면 더 잠이 안 옵니다. 습관이 돼서 그런지 고속도로에서 자는 게 더 편해요.

 레커차에 오른 까마귀 11은 다시 고속도로로 올라갔다.

 

 무전기는 밤새 침묵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수연은 까마귀제로를 찾는 무전기 교신 소리에 놀라 퍼뜩 일어나곤 했다. 환청인 줄 알면서도 번번이 나와서 무전기를 쳐다보다 다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단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명종 소리가 잠을 뒤흔들었다. 까마귀들이 내려오든 말든 밥과 찌개를 끓여야 마음이 편했다. 수연은 눈곱만 떼고 식당으로 건너갔다.

 

 밑반찬을 꺼내 접시에 담고 밥상을 차리는 사이에도 수연은 몇 번씩이나 주방과 사무실을 오가며 무전기와 전화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아침 식탁이 다 차려질 때까지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까마귀 제로를 찾는 무전 교신도 없었다. 까마귀들끼리 교신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못 들은 걸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별일은 없는 것이다. 일이 있었다면 까마귀들끼리 교신이 계속 오고 갔을 테니 모를 수 없었다.

 

 - 여기 까마귀 제로....... 들어와서 식사하세요.

 수연은 누구에게 라고 할 것도 없이 짤막한 교신을 날렸다. 까마귀들에게서 응답은 없었다.

 수연은 식당으로 가서 김치찌개 냄비를 얹어 놓았던 가스 불을 아예 꺼버렸다. 충분히 끓어서 까마귀들이 돌아오면 다시 데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냄비 뚜껑을 열었다. 뜨거운 김이 얼굴로 달려들었다. 수연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열기는 금방 가라앉았다. 수저로 국물을 떠서 맛을 보았다. 어머니가 끓여주던 맛이 아니었다. 설탕을 넣고 휘휘 저었다. 다시 맛을 봤다.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맛이 안 날 땐 다시다를 조금 넣으면 맛있어져.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싱크대 서랍에서 낱개 포장된 쇠고기 다시다를 꺼내 절반을 넣었다. 맛을 보고 나머지 절반을 넣었다. 하나를 더 꺼내 다 털어 넣고 나서야 어머니가 끓여준 김치찌개 맛과 비슷해졌다.

 

 까마귀들이 복귀할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실적을 못 올린 까마귀들은 정해진 복귀 시간에 맞춰 꾸역꾸역 들어오기 미안했는지 휴게소에서 대충 때우고 고속도로에서 대기하곤 했다.

 수연은 송신기를 집어 들려다가 그만두고 지난밤 읽다가 책상 위에 엎어두었던 버지니아 울프의‘세월’을 다시 뒤집어서 읽던 곳을 찾고 있었다.

 ‘한 잔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책을 마주할 때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감상적으로 외우고 있던 시구가 저절로 떠올랐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도 떠올랐다.

 이부 오빠들로 인해 받은 그녀의 상처들이 떠올랐고 그녀를 정신적으로만 사랑한 남편 레너드 울프가 떠올랐다.

 막 행간을 찾아서 세월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까마귀 07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튀어나왔다. 연이어 까마귀들의 교신이 이어졌고 소란이 계속되었다. 까마귀 07이 사고차를 잡았고 다른 까마귀들이 그쪽으로 일사분란하게 이동하는 중이었다. 현장수습에서 사고처리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수연은 김치찌개에 밥을 조금 말아서 사무실로 가져와 혼자 먹었다. 칫솔질을 하고 나서 사무실 문을 잠그고 눈을 붙였다. 새벽까지 뜬 눈으로 무전을 받다보면 잠이 달아나 버리기 일쑤였다. 부족한 잠을 낮잠으로 보충하곤 했는데 이제는 낮잠 자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자는 동안 무전도 없었고 찾아온 사람도 없었다고 생각했다. 막 일어났을 땐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시계를 들여다보고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다.

 그때만 해도 차고지에 레커는 한 대도 들어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샤워하고 나왔을 땐 까마귀 11만 빼고 전부 들어와 있었다. 얼마나 깊은 잠에 빠졌는지. 무전이 없었던 게 아니라 못 들었던가 보았다.

 

 무질서하게 차고지에 서 있는 레커차들. 차고지 입구 쪽 구석에는 대형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트럭이 얼마나 큰지 차체 길이만도 이십 미터는 더 되어 보였다. 덕분에 지난 밤 까마귀 11이 입구에 가져다 놓은 1톤 트럭이 장난감처럼 작아 보였다.

 까마귀 05가 대형 트럭 짐칸 위에 올라가 부대에 담긴 뭔가를 내리고 있었다. 대빗자루로 트럭 짐칸을 쓸던 까마귀 09가 고개를 들어 수연을 바라봤다. 수연은 얼른 고개를 돌리고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식당 문 옆에 못 보던 40킬로그램짜리 쌀자루가 쌓여 있었다. 사고차에 실려 있던 것을 가져왔으리라는 짐작이 갔다. 까마귀들은 사고차에서 종종 과일이며 생선, 건어물 따위를 집어왔던 것이다.

 

 수연은 식당에 가서 밥상을 차려놓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사무실 문이 갑자기 왈칵 열렸다. 성큼 사무실로 들어선 사람은 작업복 차림의 떴다방 김 사장이었다. 김 사장은 언제나 기름때와 페인트가 얼룩진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녔다. 크고 둥글넓적한 얼굴에는 언제나 천진난만한 웃음이 걸려 있지만 말이 걸고 험해서 처음 보는 사람은 경계심을 품기 마련이었다.

 

 - 경리 아가씨, 저거 허리 아래는 내한테 파이소.

 떴다방 김 사장이 앞뒤 없이 다짜고짜 그런 말을 했다. 수연은 갑작스런 그의 출연에 심장이 털썩 내려앉았다. 하지만 태연한 척 그를 바라보며 얼른 앞가슴을 더듬어 여몄다. 니글거리는 눈빛. 음흉한 눈길. 떴다방 김 사장은 조금은 바보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래서 더 무서웠다. 물불 못 가리고 천지분간 못하는 인간 같아서.

 

 - 아따라 놀래기는, 내가 잡아묵는교. 설마 경리 아가씨 허리 아래를 내한테 팔지는 안할끼고. 내사 오늘은 저 콩코드를 사로 왔심더. 허허허

 떴다방 김 사장은 솥뚜껑만한 손을 들어 우두둑 꺾었다.

 - 그래도 몬 알아 듣겠는교. 저, 콩코드 딱 보이까네 폐차감이고만. 내가 폐차장보다 잘 쳐 줄테이끼네 허리 뒤쪽으로 반쪽만 내 달라는 말이오.

 

 - 사장님한테 안 물어봤어요! 콩코드는 폐차장에서 값을 많이 쳐준다고 해서 그리로 보내기로 했어요.

 수연은 창밖을 내다보며 새침하게 쏘아붙였다. 레커차에 가려 까마귀07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떴따방이 그냥 사무실로 직행했을 리는 없었다. 아마도 까마귀07이 사무실 가서 물어보라고 했을 것이다.

 

 콩코드를 탐내는 것은 폐차장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사흘 전이었다. 오십 대 중반의 폐차장 사장은 늘 하던 대로 차고지 마당에 세워놓은 사고차들을 살펴보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수연은 그가 유독 콩코드 앞에서 오래 머무는 것을 책상 옆 창문으로 내다보고 알았다.

 아닌 게 아니라 사무실에 들어온 그는 콩코드 오디오를 따로 떼어주어도 좋고, 자기한테 폐차를 맡겨주면 넉넉히 쳐줄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오디오 하나 값만 수십만 원 쳐준다고 했던가! 폐차장으로 보내주면 무려 백오십만 원을 쳐 주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폐차장 사장이 돌아가고 나서 수연은 나가서 콩코드를 살펴봤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값이 나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잖아도 차고지에 세워놓은 사고차에서 오디오 따위만을 떼어가는 도둑놈 때문에 연식이 괜찮은 사고차가 들어오면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더욱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 아따라, 그라니까 반쪽만 떼어 간다는 거 아이요. 허리 아래만 싹둑 잘라서. 그케도 폐차하는 데는 아무 지장 없소. 내 말이 거짓말이믄 내 목을 치소.

 김 사장이 짐짓 자기 목을 손칼로 치는 시늉을 하는데 그 목이 두꺼워서 더욱 짐승 같았다.

 - 사장님은 반쪽 가지고 뭐하게요?

 수연은 가능한 퉁명스런 목소리를 냈지만 떴다방 김 사장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둔한 건지. 의뭉스러운 건지.

 

 - 아가씨도 차암, 내가 뭐하는 사람이오! 차를 만드는 사람 아니오. 나한테 앞은 멀쩡하고 뒷부분만 아주 작살난 콩코드가 하나 있는데, 그걸 펴고 어쩌고 하느니 멀쩡한 저걸 그냥 딱 떼어 붙여버리면 감쪽같이 신차가 되는 거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묵고 알 묵고. 또랑 치고 가재 잡고. 알겠는교.

 

 - 차주가 폐차서류 가져오면 보내 줄 테니까 오십 더 써요. 쩨쩨하기는.

 어느 새 들어와 있던 까마귀 07이 대신 대답을 했다.

 - 황 사장, 내 통 큰 거 모르나. 최고로 주는 기다.

 - 똥배만 나왔지 뭐. 통 큰 거는 모르겠던데.

 까마귀 07이 농담조로 비꼬았다.

 - 와이 카노. 내를 멀로 보고.

 떴다방 김 사장은 다시 한 번 웃어젖히고는 까마귀 07을 보며 슬슬 배를 뒤집어 깠다.

 - 함 보소, 내도 어릴 때 이카고 놀았다아인교.

 떴다방 김 사장의 살찐 배에 칼자국이 선명했다. 수연은 민망하기도 하고 또 저 사람이 험악해 보이기도 해서 얼른 고개를 돌렸다.

 - 맹장수술 자국이네.

 까마귀 07이 면박을 주었다.

 - 머어요. 아이다.

 짐짓 목청을 높이는 그의 얼굴이 발 저린 도둑 같았다. 그걸 자기도 느꼈는지 떴다방 김 사장은 페인트로 얼룩진 커다란 손으로 까마귀 07의 어깨를 잡고 또 다시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젖혔다.

 

 

 

 

 ***

 

 

 밤이 오히려 낮보다 명료했다. 지금부터 시작하는 느낌. 밤을 아침처럼 맞이하는 기분. 수연은 언제부턴가 그랬다.

 식탁을 행주로 닦고 있는데 사무실 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수연은 행주를 개수대에 던져놓고 사무실로 달려갔다.

 사십대 중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얼굴에 기미가 많고 뚱뚱한 이 여자는 차고지 입구에 세워 둔 트럭 운전사의 아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여자의 얼굴엔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퍼부을 것 같은 먹장구름이 끼어 있었다. 수연은 조심스럽게 트럭이 2미터 정도 되는 앞 도랑에 빠진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건져 올리는 것은 위험하고 또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거라서 구난비가 비싸다고도 했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순순히 지갑을 열어 구난비를 냈다. 수연은 여자의 얼굴에 담긴 먹장구름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구난비가 비싸다며 억울해 할 줄 알았는데.

 

 - 차가 고장 난 거죠! 고치려면 어떡해야죠! 여기서 고쳐주지는 않나요?

 여자의 목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 레커를 불러서 가까운 카센터까지 견인해 줄까요?

 - 그런데 황태는 어디에 있어요?

 여자는 사무실 한쪽에 놓아 둔 황태 박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 저건, 트럭을 구난한 기사가 가져다 놓은 거예요. 트럭을 구난한 기사 말로는 도랑에서 황태를 옮겨 싣는 걸 도와줬더니, 고맙다며 줬다고 그랬어요. 트럭 주인, 사장님이.

 - 남편은 죽었어요. 황태도 모두 잃어버렸고요.

 여자의 눈에서 굵은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졌다. 소리 없이. 무겁고. 참담하게.

 - 점심때가 지나도록 안 일어나서 깨웠는데....... 안 일어나서....... 119를 불러서 병원에 갔는데, 벌써 죽은 지 몇 시간은 지났다고. 집에 왔을 때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갔으면 남편이 살았을지 모르는데....... 미련해서....... 돈들 까봐, 돈 까먹을까봐 병원에 가자 소릴 못했어요. 분명히 어디가 안 좋은 걸 알았는데....... 남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영안실에 있어요. 장례 치르기 전에 먼저 여기에 와 보고 싶었어요. 아니 사실은 남편이 잠자리에 눕기 전에 명함을 주면서 차를 찾아서 고쳐놓으라고 했어요. 자고 일어나서 일 나간다고........ 남편 말대로 했으면, 어쩌면 안 죽었을지 모르는데....... 돈이 없어서........ 언니한테 빌려왔어요. 장례 치르고 나면 갚는다고 하고.

 

 여자는 겨우 울음을 삼키고 돌아나갔다. 수연은 차고지 서치를 켰다. 여자가 차고지를 가로질러 곧장 트럭으로 다가갔다. 여기저기 살펴보던 여자는 트럭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운전석 문을 열더니 올라탔다.

 여자가 키를 돌리자 시동이 걸렸다. 그럴 수 있었다. 사고 직후에 시동이 걸리지 않던 차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거짓말처럼 시동이 걸리는 일이 가끔 있었다.

 트럭은 천천히 레커회사 출입구를 벗어나서 도로 가장자리 쪽으로 심어놓은 측백나무 뒤로 사라졌다. 레커회사를 차릴 당시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으려고 차고지 둘레로 빙 돌아가며 측백나무를 심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말라죽고 도로 가장자리 쪽만 남아 있었다.

 여자가 트럭을 몰고 진행 반대 방향으로 간 걸 보면 반대 차선으로 건너가는 것이리라. 창가에 서서 바라보고 있던 수연은 서치를 내리고 돌아섰다. 수연의 귀에 질주하는 자동차 바퀴소리가 들려왔다. 섬뜩하다고 느끼는 순간 엄청난 폭발음이 났다. 수연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기다시피 책상으로 다가가 송신기를 잡았다.

 

 - 여기 까마귀 제로, 차고지로 빨리 오세요.

 다급한 수연의 목소리가 무전을 타고 흘러갔다.

 까마귀 07이 내려와서 반대편 차로로 무단 횡단을 하다가 운전석이 박살 난 트럭을 다시 차고지로 끌고 왔다. 이번엔 폐차해야할 지경으로 부서졌다.

 여자는 운전석에 끼인 채 즉사했다. 남편을 따라간 것일까! 트럭을 들이받은 2.5톤 타이탄 트럭도 전면이 박살이 나고 운전사는 도로 밖으로 튕겨나가서 그 자리서 죽었다.

 

 뒤따라 내려온 까마귀 11이 2.5톤 트럭을 차고지로 옮겼다. 사고도 죽음도 일어날 때는 연속해서 일어나는 것 같다. 수연은 그런 생각으로 몸서리쳤다. 당연히 레커회사 입장에서는 사고 난 게 잘 된 일이었다. 자동차들이 서로 부딪치고 부서지고 뒤집어지고 처박히는 걸 바라는 것은 아니어도 사고가 나야만 일이 생기고 이윤추구라는 회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 수연아, 11 밥 좀 먹여 보내라.

 까마귀 07이 사무실로 들어온 까마귀 11을 보며 말했다.

 - 아뇨, 전 괜찮아요. 사고처리 끝내고 고속도로로 올라갈게요.

 까마귀 11이 정색을 했다.

 - 김치찌개 끓여놓은 거 있으니까 먹고 가세요.

 수연이 말했다.

 - 아이, 괜찮다니까요.

 까마귀 11이 말했다.

 - 11! 너 무슨 고민 있냐! 날이 갈수록 더 힘들어 보인다. 잊을 때도 됐잖아.

 까마귀 07이 말했다.

 - 사장님도, 전 고민 같은 거 없어요. 먹는 것도 잘 먹고요. 불면증 때문에 잠을 좀 못자기는 하지만요.

 - 어쨌든 밥 먹을 때 되면 내려와서 같이 먹고 해. 여기도 직장이니까 혼자 따로 놀 생각하지 말고.

 - 알았습니다. 저, 사고처리 끝내고 바로 고속도로로 올라갈게요.

 까마귀 11이 일지에다 적을 것을 수연에게 건네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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