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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Beyond Stella
작가 : LEHJA
작품등록일 : 2019.9.14

마법과 과학의 도시 스텔다운. 그리고 그 도시의 교사 케이드 로엔그린에게 벌어지는 여러 '신비한' 이야기들.

 
Beyond Stella - 03
작성일 : 19-09-17 01:39     조회 : 191     추천 : 0     분량 : 1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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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는 나름 순조롭게 흘러갔다. 다만 안 그래도 복잡했던 머릿속에 잡념이 하나 더 끼어들어 생각해뒀던 것 이상으로 플러스 알파가 없었다는 게 아쉬웠다. 나 스스로에게 말이다. 나는 아까의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해결책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잘못한 것은 오래 마음속에 새겨두지만 이롭게 한 것은 잘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간단한 사과 같은 것으로는 안 될 터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사과에는 원금에 이자까지 얹어서 돌려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 다음 단계, 그 이자는 무엇으로 쳐서 줘야 할까? 상대가 받았을 때 가장 좋아하고, 또 가장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가야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돈? 땅?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법에 저촉되는 점이 문제다. 더 추측을 길게 늘리는 건 귀찮은 일이니 결론부터 말하겠다. 그 녀석에게 가장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공부 실력이고. 그것을 나는 가야에게 제공할 수 있다. 내가 다른 반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계획했던 것들 중에는 희망자에 한한 방과 후 교습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와 같은 신입 강사의 반에는 비교적 성적이 덜한 학생들이 오는 편이기 때문에 거의 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는데. 계기까지 생겨버렸으니 빼도 박도 못 하겠군. 나로서는 일이 더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속이 쓰리기도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 수업이 끝난 뒤 잠깐 비는 시간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잠깐. 모두 여기 좀 볼까.”

 학생들 모두가 나를 쳐다봤고. 나는 본론을 꺼냈다.

 “내일부터 희망자에 한해서 방과 후 교습을 진행할 예정이다. 부족한 부분이 있거나 자신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면 신청하면 되겠군.”

 그렇게 말하며 나는 슬쩍 가야를 쳐다봤다. 내 의도가 제대로 전해졌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 그리고 가야는 끝나고 교무실에 잠깐 들러라.”

 그렇게 말을 해 두곤 종례를 끝낸 뒤 나는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에 도착하자 나는 진이 빠진 얼굴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피곤함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교사생활을 하다가는 3년 뒤에 백발노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똑똑.

 그렇게 늘어져있던 차에 교무실에 조심스러운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누군지는 안 봐도 뻔하지.

 역시나 가야가 문을 열고 얼굴을 비췄고 두리번거리더니 이쪽을 바라보곤 다가왔다. 그렇게 그 학생이 내 앞으로 걸어오자 나는 첫 말을 어떻게 뗄까 고심하며 다가 말을 시작했다.

 “그, 아까 말한 건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말했던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부른 거다.”

 나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번 한 뒤 사과의 말을 전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 미안하다.”

 녀석의 반응은 꽤나 담백했다.

 “아뇨, 사실인 걸요 뭘. 결국 선생님이 말하고 싶으셨던 건 진지해지라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상대의 말을 수긍하는 태도, 그러면서도 흘려들으면서 건네는 형식적인 말이 아님이 느껴지는 맑게 빛나는 눈. 나는 그 자리에서 느꼈다. 적어도 이 녀석이 무언가 불순한 의도 혹은 날로 먹으려는 의도로 이 학교에 들어올 만큼의 나쁜 인격을 지니지 않은 사람이라고. 그렇게 느꼈다는 말이다. 어쨌든 그 말을 들은 이후에 나는 가야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고 이야기했다. 대충 스텔다운에 오게 된 배경, 앞으로의 계획, 내가 보호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 등등. 별 영양가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본래대로라면 내가 가야의 집까지 안내를 해 주며 전반적인 생활에 대해 조언을 해 줘야 하겠지만, 오늘은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가야에게 내일 안내해 줘도 되겠냐고 물었고, 가야는 흔쾌히 수락했다.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가야가 교무실을 떠나자 나는 다시 아까의 포즈로 의자에 몸을 맡겼다. 진이 다 빠지네. 그 광경을 보고 있었는지 블레이크는 내게 다가와 무슨 상황인지 물었다.

 “가야한테 언제 한 소리 하셨어요?”

 “사정이 있어서 말이죠...”

 무슨 일인가 블레이크는 궁금해 하는 눈치지만 그런 걸 막 말하고 다닐 수는 없지. 가야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기도 하니까.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조금의 잡담을 한 뒤 우리는 각자의 할 일이 남아 있으므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는 아침 일찍 온 덕에 일을 다른 이들보다 훨씬 빨리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먼저 교무실을 나섰다.

 

 학생들은 이미 대부분이 나갔고. 교사들은 아직 나가기 이른 이 시간, 아침에 내가 출근할 때와 같은 적막함이 느껴졌다. 나는 계단을 바삐 내려가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역시나 점심에 봤듯이 비는 그쳐 있었고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일과를 마치고 한 숨 돌리고 일에서 해방되니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아침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우울해졌다. 나의 눈앞에 마주친 일이 그 사람에 대한 애통함보다 우선이구나, 내가 느끼는 감정은 딱 그 정도구나. 하고 말이다. 나는 바빌론의 정원을 나서 계속 걸었다. 지금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은 여느 때와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아침에 챙긴 가방 안의 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꽃을 전달하기 위해 가야만 하는 장소의 초입에 들어섰고 정돈이 잘 된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길이 보였다. 산길은 꽃 같은 물건들을 든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아마 나와 같은 목적으로 이곳에 왔겠지.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산길을 조금 걸었다. 올라가는 도중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띄엄띄엄 가로등이 놓여 있었는데 꽤나 좋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공동묘지가 보였다. 공동묘지의 입구에는 ‘전사자 공동묘지’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익숙한 듯 공동묘지의 중앙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 비석의 앞에 멈춰서 그 비석에 적힌 이름을 읽었다.

 “로건 스펜서.”

 

 비석은 관리를 자주 받는 듯 반질반질하고 깨끗한 표면이여서 조문객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해 주려는 노력이 보였다. 아까 온 비의 영향으로 물방울이 조금 맺혀 있는 비석 앞에 나는 가방에서 꽃을 꺼내 놓았다.

 로건 스펜서. 로건 선생님은 내가 지금까지 보게 된 어른 중 가장 올곧고 이상적인 사람이었다. 전쟁고아로 태어나 떠돌던 그는 전쟁의 참혹함과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한 고독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낀 인물이었으나 그의 인품을 보고서는 도저히 그가 그런 역경을 겪었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그가 그의 고결한 인품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천성적으로 그런 인품을 타고났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오랜만이에요.”

 누구 한명도 들을 일이 없는 독백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바로 앞에 사람에게 말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이제 교사래요, 교사. 웃기죠? 졸업하교 견습강사로 들어간 지 얼마나 지났다고 교사랍니다. 뭐 운도 좀 많이 따랐지만. 제가 이렇게 된 걸 보셨어야 했는데 말이죠.”

 나는 몸을 낮추어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세워놓은 꽃다발이 옆으로 쓰러지자 제대로 세우고는 다시 중얼댔다.

 “저 혼자 떠들려고 하다 보니 뭐 할 이야기가 없네요. 이런 이야기는 얼굴 마주보고 해야 좀 말할 게 생각나는 건데.”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한숨을 쉰다고 한들 마음속의 답답함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말을 이으려다 나오던 말을 마음속에서 잘라냈다. 굳이 마음속의 문제를 가시화해 나 자신을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복잡한 문제들은 이미 지천에 산재해 있었다. 쩝 하고 입맛을 다시고 머리를 한번 긁어주고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찝찝함이 아까 뱉으려던 말이 입과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굳이 다시 뱉지는 않았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왔던 산길을 다시 걸어 내려가며 예전, 19살 때의 일이 기억났다. 7년 전 햇살이 유난히도 뜨거웠던 7월 어느 하루의 일이. 그때의 선생님이 돌아온다는 기대감과 학교로 날아온 편지 한 장에 느껴졌던 절망감. 그 때의 일은 아직도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뿌리를 박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얼마 지나지 않은 즈음, 내 앞에 익숙한 얼굴의 여성이 나무에 기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여성은 검은 머리를 뒤로 묶고 있었고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은 이내 나를 발견하더니 한번 피식 웃고는 손을 흔들었다.

 “역시나 여기 있을 줄 알았지.”

 “벨.”

 그랬다. 내 앞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쓸데없이 의기양양한 이 여자는 벨 알테어. 나의 오랜 친구인 그녀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건 별로 신기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는 지난 몇 년 간 내가 3월 1일마다 어디로 향했는지를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녀는 언제나 나에 대해서 내 생각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시간에 바깥에 나와 있는 건 꽤 오랜만 아냐? 바쁘신 몸일 텐데.”

 그러자 벨은 몸을 나무에서 떼고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오늘은 일이 좀 빨리 끝난 것도 있고. 질질 짜고 있는 너를 구경하고 싶어서.”

 “그래서, 감상은?”

 벨은 잠깐 동안 내가 걸어 내려온 길을 쓱 보더니 대답했다.

 “뭐.. 생각만큼 재미있지는 않네.”

 “어련하시겠냐.”

 그 말을 하며 벨은 꽤나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연민, 걱정과 같은 부류의 감정들이 묻어나는 표정, 나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다 내려가는 길로 눈을 돌린 뒤 벨에게 말했다.

 “뭐해? 가자.”

 그러자 벨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무에서 등을 뗐고 우리는 같이 걷기 시작했다. 벨 역시 이 곳에 오면 과거가 회상이 되는지 그녀는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와서야 말하는 거지만 로건 선생님과 너의 사이,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신기했다니까? 얼핏 봐서는 전혀 너랑 파장이 안 맞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네가 그 정도로 감화될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어. 현실주의와 비관주의에 찌든 네가 그런 극 이상주의자 기인을 따를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냐는 말이지.”

 “사실이긴 한데 말이 심한 거 같지 않냐?”

 나는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그 선생님과 나는 극과 극이었다. 벨의 말대로 나는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고 고민하던 비관론자였고, 그 선생님은 누구보다 밝은 미래를 꿈꾸던 이상주의자였으니까.

 “나도 그 선생님이랑 그렇게 잘 지내게 될 줄은 몰랐지. 근데 뭐, 대충 생각해 봐도 그런 사람에게 끌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솔직히 너도 그 선생님을 호의적으로 보고 있었잖아?”

 “그건 맞는 말이지. 그 선생님은 꽤 마음에 들었어. 수업도 잘 가르치는 편이었고, 재미있었기도 했고. 싫어할 거리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나의 그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랑 비교해서 너의 것은 근본부터 다르잖아.”

 “뭐 그렇지.”

 그랬다. 내 존경심은 내가 선생님이 정한 인생의 목표를 나도 같이 따르도록 만들만큼 강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목표를 좇는 사람은 나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 사실이 벨과 말하며 올라갔던 기분을 다시 침체시켰다.

 잠시 조금의 정적이 흘렀다. 벨은 내 처진 기분을 캐치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너무 처져있는 건 별로 안 좋을걸. 그 선생님도 네가 이 일로 안 그래도 많은 잡생각이 더 많아지는 걸 바라지는 않았을 거 아냐?”

 그건 그랬다. 그런 생각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계속 머리에 맴돌아 왔다. 하지만 생각보다 처진 기분을 다시 끌어올리는 건 내게 쉬운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너무 낙담해 있지는 말자. 옆에 있는 벨에게도 이건 민폐일 테니까. 대충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그제야 벨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다크서클이 진하고 길게 그어져 있었고 “피곤하다”라는 말이 얼굴에 써져 있는 것 같은 정도로 피곤함이 여기까지 전해져 왔다.

 “다크서클좀 봐라, 줄넘기해도 되겠는데. 피곤하냐?”

 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피곤해진 이유라면 뭐, 그녀가 속한 집단인 치안관리국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겠지. 벨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서두부터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넋두리를 시작했다.

 "남부 X끼들. 화평 제안은 계속 흐지부지시키고 뒤로 헛짓거리 하는 것 때문에 화평 제안이 끝날 때 까지 경계를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강화해야 한다고. 그것뿐만 아니라 온갖 파견 업무까지 난리도 아니라니까.“

 벨은 한숨을 한번 푹 내쉬고는 중얼댔다.

 “살라딘인가 뭔가 하는 X끼.. 하아..“

 성깔은 여전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뭐 저 녀석의 입에서 아직 욕이 튀어나올 힘이 남아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주지.

 “신문에서는 대충 화평 제안이 온건하게 흘러간다는 이야기로 나오던데, 그걸 그렇게 막 민간인한테 말하고 다녀도 되는 거였냐?”

 그러자 벨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듯 하는 표정을 짓고는 대답했다.

 “너? 너는 민간인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하지. 엄밀히 따지자면 민간인은 맞지만.”

 애매는 무슨 애매.

 “안 애매할걸.”

 “그리고 네가 그걸 안다고 해도 어차피 그 이야기를 나불거리고 다니지도 않을 거잖아? 생각이 있다면.”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막 말하고 다니진 마라.”

 “나 그렇게 입 싼 사람은 아니거든. 너도 알잖아?”

 “잘 모르겠는데.”

 얻어맞았다.

 그나저나 아직도 그 분쟁이 지속중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꼰대들은 아직도 타협점을 못 찾았다는 걸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분명 남부고 북부고 다들 타협점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화평이 진행이라도 됐지. 다만 어영부영하고 있는 건 그놈의 극단주의자들 때문일 게 확실하다.

 “아.. 그 이야기 들으니까 또 머리 아픈데.”

 “내말이.”

 나는 빨리 이 주제에서 벗어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의지가 표출된 결과로 나는 이야기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대충 저녁 먹을 시간인데. 뭐로 할까?”

 벨은 어깨를 들썩이고는 대답했다.

 “별 생각은 안 해 뒀는데? 애초에 여기로 온 거도 어쩌다 갑자기 시간이 생겨서 온 거라.”

 “별 생각 없으면 내가 가고 싶은 데로 가도 되지?”

 “좋을 대로.”

 그럼 뭐, 집 근처에 있는 단골 식당으로 가 주자. 대충 대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곳의 음식도 마음에 들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으니. 내가 아는 선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뿐이다. 귀찮은 게 아니라는 말씀이다.

 

 식당에 대한 설명과 그 외의 잡담을 하다 보니 산길의 끝이 보이고 스텔다운의 시내가 가까워졌다. 산길이 끝나고 바닥에 블록이 깔려있는 길이 나타났고, 자그마한 강을 건너기 위한 다리 역시 보였다. 다리 너머에 보이는 스텔다운의 시내는 은은한 마법공학 조명으로 황혼이 지평선 밑으로 몸을 숨겨도 밝게 빛났다. 언제나 스텔다운의 시내는 체계적으로 설계된 아름다움을 자랑했고. 나 역시 그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문득 이러한 광경과 내 어릴 적의 모습이 교차해 지나가자 이러한 풍경들도 머릿속에서 빛을 잃어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느끼는 막연한 죄책감이다. 내가 이렇게 행복함을 누려도 될까. 다른 사람이 고통 받을 때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하고.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 죄책감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고 이것을 느낄 이유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불행하다고 나의 행복을 영위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그 감정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정당한 감정이니까. 내게 옛날의 기억이 없었다면 나도 이러한 감정 따위는 느끼지 않았겠지. 말수가 없어지고 표정이 굳은 게 느껴졌는지. 벨은 내게 말을 걸었다.

 “또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음침한 쪽으로.”

 그리고 벨은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는 사람 옆에서 웃고 있는 녀석이 어처구니가 없어 나도 너털웃음을 지었다. 성격 한번 더럽게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거의 매일 말하는 거지만 너는 얼굴에 모든 감정이 다 드러나. 그러니까 레아 아주머니도 너한테 정치를 안 시켰던 거겠지.”

 반박거리도 없거니와 굳이 반박할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나는 정치같은 걸 바라지 않으니까. 그리고 나는 피식 웃었다. 어이없음의 웃음도 아니었고 재미로 인한 웃음도 아니었다. 그저 피식 웃었다. 이유는 뭐.. 잘 모르겠다만. 아마도 한심한 나를 비웃는 조소가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 본다.

 나는 이 멍청한 잡념을 버리고는 다시 잡담을 시작했고, 그 잡담은 꽤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잡담은 대문짝만하게 ‘Reliqua’ 라고 적힌 가게 앞에서 끝이 났다. 문을 열자 열고 들어간 문 뒤에 달려 있던 작은 종이 경쾌하게 노래하며 손님의 입장을 알렸다. 가게는 아늑한 분위기를 풍기는 목재로 이루어져 있었고, 맡기 좋은 은은한 마력 향초의 냄새가 났다. 나에겐 익숙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창가 쪽의 적당한 자리를 잡아 앉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업원이 와 주문을 받았다.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녀석에게 나는 시답잖은 질문 하나를 던졌다. 아침의 가야를 조우했을 때의 일 때문에 신비가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너, 혹시 신비 기억하냐?”

 “신비?”

 녀석은 머리를 한번 긁적이더니 떠올랐다는 식으로 아, 하고 작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대답했다.

 “마법 계통 중에 하나 아냐? 아직 연구는 잘 안 된 거로 아는데.”

 “아니 그냥, 스텔다운에 신비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있나 싶어서.”

 “글쎄, 내 기억으로는 몇 명 없을걸. 둘? 셋? 아니면 넷이었나?”

 그 정도로 적었나. 상상 이상이었다.

 “생각해보니 저번 의원 총회가 열렸을 때 아마도 주제 중에 하나가 그거였지. 신비 사용자를 연구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교사도 한 명 왔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솔직히 그런 주장을 의회에서 했다는 사실이 기가 찼다.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게 코웃음이 쳐질 정도였다. 신비 사용자 연구를 승인해달라는 이야기는 정확히 말하자면 신비 사용자를 강제로 연구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의견이 의회에서 수용되진 않겠지만.

 “허? 수용될 가능성 자체가 없는 것 같은데.”

 “그렇지. 결국 기각 당했어.”

 벨은 마법적인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지. 화제를 돌리며 내가 다른 이야기를 하길 촉구했다.

 “그런 것보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이야기해봐. 전부 이 언니가 들어 줄 테니까.”

 언니는 얼어죽을. 어쨌든 나는 오늘 꽤나 많은 일이 있었기에 좋다 하고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별 건 없다..라고 하기엔 너무 복잡한 하루긴 했네, 드레퓌스 가드너의 아들이 내 학생이 되었다는 것부터 시작인가.”

 “오.”

 벨은 진작부터 정치 계열에 발을 들여놓은 녀석이라 그런지. 드레퓌스 가드너, 그 유명한 반역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드레퓌스라.. 나도 어렸을 때 몇 번 보긴 했었는데. 꽤 착하다 싶은 아저씨였지. 그 뒤에 한 일은 둘째치더라도.”

 “충격이었지, 말 그대로. 인망도 되게 좋았던 정치인이었는데.”

 물을 한 모금 마신 벨은 이후 그의 아들에 대한 연민을 드러냈다.

 “알잖아, 유력 정치인의 자식은 되게 고달픈 거. 게다가 몰락한 정치인의 아들이라니, 아직까지 몸이 성한 게 신기할 정도네.”

 말 그대로였다. 몰락한 정치인의 아들이라는 것은 평생 뗄 수도 없고 숨길 수도 없는 꼬리표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꼬리표는 일어났던 사건이 클수록 더욱 숨기기엔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나 또한 벨과 같이 하프리트 가드너에게는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잘 해 줘야겠지. 그 녀석이 무슨 죄가 있겠냐.”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가 오가자 나는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이런 연민의 감정 역시 당사자는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 이야기의 메인이라고 한다면 입학식 당일 추천입학을 받은 학생이겠지.”

 “하?”

 벨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미모를 감탄사를 내뱉었다.

 “가능하긴 한 거야 그건?”

 “레아 아줌마니까 뭐.”

 “그건.. 가능할 수 있긴 하겠네.”

 바로 수긍하는 거냐.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정도가 있지. 실제로 그 정도의 영향력이긴 하다만.

 “근데 그 추천입학생이 사실 형편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냐?”

 “뇌물?”

 질문을 받은 벨은 자동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평범하게 생각해도 그렇게 귀결이 날 수 밖에 없겠지. 대답을 하고 잠시 생각한 벨은 당황하며 말을 정정했다.

 “무..물론 레아 씨는 그러실 분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야.”

 “누가 뭐랬냐.”

 나는 이후 한숨을 쉬었다. 다음 나올 이야기는 나의 잘못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벨 역시 눈치챈 듯 말했다.

 “다음이 진짜 본편이구나?”

 “눈치 하난 빠르네.”

 나는 손으로 볼을 한번 긁었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그 학생, 그러니까 가야에게 조금 화를 냈던 게 걸려서 말이지. 흥분하거나 심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첫 날부터 그런다는 건 좋은 인상을 남기진 않을 거 아냐.”

 “이름이 가야야? 이름 이쁜데.”

 그게 중요하냐.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의도를 알아차린 벨은 제대로 답변했다.

 “이야기만 들으면 딱히 네가 이상한 이유로 혼낸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조언 같은 느낌이었겠지. 네 얄미운 말투가 이상한 시너지를 만들어 냈다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윽.”

 내 반응을 본 벨은 씨익 하고 웃었다.

 “가야의 반응은 어땠는데? 성격은 어떻고?”

 “그래도 어떻게 잘 수긍해 준 것처럼 보였지. 성격은 뭐.. 지금 단언할 순 없지만 착하다는 인상만 있네.”

 “그럼 된 거야. 아니라고 해도 다음부터 잘해.”

 그건 그렇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되돌릴 수는 없고, 가야 역시 진심으로 수긍하는 듯 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있었다.

 “뭐.. 그렇게 나는 속이 좁은 인간이었다는 거지.”

 그런 이야기들의 교환 속에서 나는 바람 잘 날 없던 하루에서 그나마 안식을 찾게 됐다.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때가 되자,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왔다. 나는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녀석은 음식을 쓱 보더니 잘 먹겠습니다, 하고 흘리듯 말하며 먹기 시작했다. 저 먹기 전에 인사하는 버릇이 나온 걸 보니 맘에 안 들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안심했고 나 역시 먹기 시작했다. 하루가 고단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나쁘지 않은 날이라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아까 느꼈던, 이 슬픈 날에 어찌 나는 평소와 같은 일로 웃을 수 있을까, 하는 감정으로 조금 다시 우울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계산하고는 나는 먼저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의 공기는 딱 알맞게 선선했고 봄의 시작을 알리는 듯 이름 모를 꽃의 봉오리가 나무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얼마 후, 벨 역시 나를 따라 나왔다. 우리는 서로의 집 가는 길이 얼마 정도 겹치기에 같이 걸었고.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아까 밥 먹으면서 뭔가 우울한 생각하고 있었지? 네가 갑자기 그렇게 감정이 침체될 일이라면 뻔하지. 로건 선생님 일?”

 역시 녀석의 눈은 속일 수 없나.

 “티 났었나?”

 그 말을 하고 녀석은 자리에서 멈춰 섰다. 아, 여기가 집 가는 길이 갈리는 곳이었지.

 “아까 우리가 만난 곳이 어디였더라?”

 “그렇군.”

 생각해보니 뻔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뭐, 너무 침울해하지 말라고. 이런 말도 할 만한 게 너 별로 안 좋아 보였거든.”

 그랬던가. 나는 언제나대로의 나였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나는 그녀의 충고에 답했다.

 “괜찮을 걸 아마. 어차피 나도 이제 교사기도 하고, 침울해져 있을 시간조차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런 일은 뭐...”

 나는 마지막 말을 하는 것을 주저했지만 입 밖으로 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자 잊어가니까.”

 아까까지만 해도 선선하게 느껴졌던 스텔다운의 봄바람이 어째서인가 지금만큼은 무엇보다 아프고 시리게 파고드는 서리바람과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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