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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내 손가락의 남은 시간
작가 : 모험
작품등록일 : 2019.9.3

"제가 당신께 드릴 능력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입니다. 언제든 저를 떠올리며 시간을 되돌려달라고 비는 순간 전 당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해줄 겁니다. 당신이 능력을 사용하고 지불할 대가는 [당신의 신체의 일부, 손가락] 을 주십시오."

.. 예기치 않은 악마와의 만남을 통해 얻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 허나 능력에 따른 대가는 어마어마 했다

 
2부 3회 - 예견된 결말
작성일 : 19-09-16 19:33     조회 : 169     추천 : 0     분량 : 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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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어떻게? 변장한 게 아니었어요?"

 "키키킥.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같이 온 남자분은 누구시죠?"

 

 악마가 가리키는 곳에 있는 그는 처음 본 악마의 모습에 어지간히 놀랐는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영주는 서둘러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왜 외부인을 데리고 오셨죠?"

 

 악마의 물음에 영주는 지금껏 보였던 무미건조한 표정과 말투가 아닌 여느 인간처럼 두려움에 떠는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 죄송해요. 전 당신이 변장을 하고 저를 만나는 줄 알았어요!"

 "흠. 오해를 하고 데려왔다는 말씀인가요? 자. 이걸 어떻게 할까요.."

 

 악마는 말라비틀어진 손을 들어 까만 손톱으로 고심하듯 턱을 긁으며 말했다.

 

 "이 골목이 당신을 허락했던 것은 저와의 특별한 계약을 위해서였죠.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은 외부인을 이곳에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골목과 저. 그리고 당신과의 비밀을 누출한 죄]라 볼 수 있겠군요."

 

 시종일관 웃고 있던 악마의 눈은 영주의 몸을 이곳저곳 훑고 있었다. 마치 도살장에서 먹고 싶은 부위를 고르는 것 같았다.

 

 영주는 악마의 시선에서 상상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곤 엎드려 빌었다. 이 세상에 미련 따윈 없어 보였던 처음의 그녀와는 달리 비굴한 모습이었고 그런 모습을 본 악마는 실망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도.. 똑같군요. 도대체 죽음이 무엇이길래 이렇게들 두려워하는지. 인간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저에게 실망만을 안겨주는군요. 처음에 보았던 당신의 삶을 초월한 태도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말이죠. 즐겁게 기다려온 당신의 능력 발휘는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또다시 저능한 인간의 본성만을 보게 되다니.."

 

 고개를 가로젓던 악마는 단호한 한마디를 남겼다.

 

 "외부인을 인도한 두 다리를 주시죠. 그리고 허가받지 않은 침입자는 영혼을 가져와 영원히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정신이 아늑해지는 기분.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숨이 막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컥컥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악마는 멈추지 않고 한 손을 영주를 향해 들었다. 그의 손과 표정에서 용서는 없다는 단호함이 보였다.

 

 ...

 

 사람은 죽음을 눈앞에 두면 그 짧은 순간에 인생을 되돌아본다 한다. 영주는 신체를 잃는 마지막 순간에 주마등처럼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그중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가 떠올랐고 그를 돌아보았다. 아직까지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그는 아무 죄도 없이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길 참이었다.

 

 순간 영주는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된다 생각했다. 구하고 싶은 의지가 그녀에게 위기를 벗어날 아이디어를 하나 주었다. 영주는 두 눈을 감고 생각했다. 바로 앞, 악마를 떠올리며..

 

 '손가락을 드릴 테니 시간을 돌려주세요. 돌릴 시간은 10분. 받칠 손가락은 오른손 새끼손가락.'

 

 악마의 손에서 검은 연기 같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순간 그녀의 속마음을 듣고 멈칫했다. 처음으로 본 악마의 당황스러운 표정. 하지만 곧 지금껏 본 적 없는 신나는 표정으로 바뀌며 웃어댔다.

 

 "크..크크큭. 캬캬캬캬캬캬! 좋습니다! 역시 당신은 다를 줄 알았습니다. 이 골목에 들어오기 전인 10분 전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악마는 수십, 수백 년의 지루했던 기다림 속에 기발한 생각을 할 인간을 찾았던 모양이다. 아주 약간이지만 영주가 발휘한 기지에 매우 기뻐하며 그녀의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위기는 넘겼지만 자신을 손가락을 보며 군침을 삼키는 악마의 표정을 보는 것은 영주에겐 끔찍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악마는 순식간에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물어뜯었다.

 

 "꺄아아아악!!!"

 

 생살과 뼈가 뜯기는 고통이 그대로 그녀에게 전해졌다. 설마 손가락을 먹어치울 줄이야. 영주는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뜯는 끔찍한 광경에 비명을 질렀지만 곧 찾아온 엄청난 고통에 소리도 못 내고 헐떡이기만 했다.

 

 "영주 씨! 무슨 일이에요!?"

 

 누군가가 영주의 양 어깨를 잡고 흔들며 물었다. 정신 차리고 둘러본 곳은 차 안. 골목 옆에 주차한 그 순간으로 돌아왔다.

 

 "아.. 악마는요?"

 

 극심한 고통에 상황 파악이 안된 영주의 물음에 남자는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악마라고요? 영주 씨! 지금 악마를 봤나요!?"

 

 이제야 정신이 든 영주는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시간을 돌리기 전 악마는 계약에 대한 비밀에 대해 매우 예민한 모습을 비췄음이 생각난 영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손이 너무 아파서 헛것을 봤나 봐요.. 근데 제 손가락.."

 

 영주는 여전히 남아있는 고통스러운 오른손을 쳐다봤다. 문신이 있던 그곳 그대로 새끼손가락이 잘려나가있었다.

 

 "내 손가락.."

 

 걸을 수 있는 다리와 사랑하는 사람은 지켜냈지만 실제로 없어진 손가락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앞으로 영영 손가락이 잘린 채 살아야 된다니. 막막한 기분에 엉엉 울어댔다.

 

 "영주 씨.."

 

 그는 영주를 위로하려 하는듯했다. 그러다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영주 씨 손가락이 없었네요? 내가.. 알고 있었던가?"

 

 그는 영주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갸우뚱했다. 그리곤 울고 있는 영주의 얼굴을 들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영주 씨. 지금 악마를 본 건가요?"

 "네?"

 

 영주는 크게 당황했다. 눈물이 멎을 정도로.

 

 "아까 비명을 지른 후에 악마를 찾았죠? 그리고 그 손가락.. 왜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을까요? 저는 분명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어요! 분명 며칠간 그 손을 주의 깊게 봤었는데 당신이 손가락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분명.. 영주 씨가 말한 골목에 다가오자 악마가 나타났던 겁니다!"

 

 그의 말이 맞다. 눈치가 조금이라도 빠른 사람이면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라는 존재를 믿느냐 안 믿느냐의 차이가 더 중요할 텐데. 그는 악마가 있을 것이라 믿는 사람이었나 보다.

 

 "아.. 아니에요! 더 이상 찾아오지 마세요!"

 

 영주는 무서웠다. 진짜로 손가락이 없었다. 신체의 일부가 진짜로 사라진 것이다. 사실 설마 싶었다. 악마란 존재를 눈으로 보고 이상한 문신이 생기긴 했지만 마음속 한편엔 설마 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손가락이 사라진 것이다.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고 이 남자에게 들켜 더 큰일이 벌어지게 하고 싶진 않았다. 끝까지 모른다 잡아떼고는 차에서 내려 집으로 내달렸다. 온 힘을 다해서.

 

 그리고..

 

 다음날. 눈을 떴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울다 잠들었었다. 하지만 잠에서 깨도 손가락은 돌아오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우는 영주에게 부모님이 들어와 위로했지만.. 그들도 영주가 왜 우는질 알지 못했다. 영주의 손을 어루만지면서도 손가락이 없어진 것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집안에서만 일주일이 흘렀다. 영주의 부모님 또한 딸의 변화에 침울한 분위기였다. 제 손으로 키운 귀한 딸의 손가락이 왜 없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주는 손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렸고 그렇게 상황은 악화되어만 갔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결심했다.

 

 분해서. 또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아서. 영주는 악마를 불렀다. 그는 영주의 감은 두 눈 속에서.. 또다시 웃으며 나타났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어느 곳에든 나타날 수도 있는 당신.. 당신이라면 가져간 제 손가락도 돌려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만용이라기보다는 단호한 결의에서 나온 부탁이었다.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에 될 대로 가보자는 마음. 그래서 나온 부탁이었다.

 

 "그게 오늘 저를 부른 이유인가요?"

 "네.."

 

 악마는 평소처럼 웃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영주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요? 제가 손가락을 돌려준다면 당신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거라는걸요."

 "대가는 무엇인가요?"

 "대가라.. 흐음"

 

 악마는 한참을 고민하다 불현듯 뭔가 떠오른 사람처럼 씨익 웃으며 말했다.

 

 턱도 없는 대가였다. 10년이란 수명을 늘리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면 대놓고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주는 고민했다. 수명이라. 어차피 길게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이었다. 특별함을 바랬던 삶은 막상 겪어보니 시궁창 같은 것이었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평범한 인생을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어린 그녀에게 10년이란 수명은 크게 와 닿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의 수명이 얼마나 될까? 내가 늙었을 때는 100세까지는 살겠지. 90살의 몸으로 10년을 더 살고 싶진 않아.. 차라리 손가락을 다시 찾아서 남들 눈치 안 보고 살래.'

 

 그녀는 결국 악마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좋아요. 당신이 잘라먹기 전 그 상태로 똑같이 돌려주세요."

 "크크크큭. 좋습니다."

 

 악마는 비로소 원래의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곤 어둠 속에서 손을 꺼내더니 자신의 입속 깊숙이 집어넣었다. 토악질이 날 만큼 끔찍한 광경에 영주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크억.. 크어어.."

 

 악마는 팔뚝이 다 들어갈 만큼 깊게 손을 집어넣더니 위액이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을 하나 꺼냈다. 그리곤 영주의 오른손을 잡고 손가락을 갖다 대며 말했다.

 

 "약속대로 당신의 손가락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손가락은 예전 그 상태 그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다만 그 대가로 당신의 수명 10년을 앞당겨 가져가겠습니다!"

 

 악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잘렸던 손가락은 하얀 빛을 내며 달라붙었고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는 양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주는 비로소 잃었던 웃음이 자연스레 입가에 번졌고 악마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 웃음엔 약간의 존경심 또한 포함되어 있을 정도였다.

 

 그때였다!

 

 몸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탱탱했던 볼살이 빠지고 눈가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꽃다운 20대의 여리여리한 몸은 어느새 묵직한 30대의 여성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영주가 틀린 것이다. 악마는 영주의 마지막 10년을 가져간 게 아니라 현재의 10년을 가져갔다.

 

 "안돼.. 안돼!! 그만!!! 꺄아아아악!"

 

 몸이 변해갈 때마다 영주는 제발 멈춰달라며 비명을 질렀다. 그때 마주친 악마의 눈엔 경멸과 조롱이 가득했다.

 

 그리고 곧..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컥!"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숨이 막혀 목엔 커다란 핏줄이 올라왔고 두 눈동자는 순식간에 빨갛게 충혈됐다. 그런 영주를 악마는 즐거운 듯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의 예견된 죽음의 날은 31세. 평생을 우울하게 집안에 처박혀 있다가 대낮에 침입한 강도에게 강간당한 후 자살을 하며 인생을 마무리하게 되지. 가져간 10년의 수명으로 당신은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어쩌면.. 내가 그 지옥 같은 인생을 벗어나게 해 준 것인지도 모르겠군. 크크크큭.. 카캬캬캬캬!"

 

 영주는 그렇게 악마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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