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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여행의 목적
작가 : 랑글렛
작품등록일 : 2019.9.2

임도훈. 33세. 직장을 잃고 소일거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자. 어느날 명품 브랜드 지사장의 불륜여행을 대신해 3박 4일 하와이 위장여행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여자, 지성을 보고 반하게 된다.

유지성. 31세. G랜드 그룹의 임원이자 백화점 사장. 세한그룹의 임원과 약혼 뒤 쇼윈도 부부로 지내던 중, 원치 않는 결혼을 하면서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한 남자. 도훈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3박 4일 하와이 여행에서 펼쳐지는 로맨스의 시작. 그 이후의 이야기.

 
14화. 크리스마스엔 네가 올까요 <2부>
작성일 : 19-09-15 14:53     조회 : 210     추천 : 0     분량 : 8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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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진행자의 목소리가 백화점 앞 광장에 울려 퍼졌다. 이벤트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에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접수장으로 다가왔다. 부모님의 손을 맞잡고 온 아이들이 가장 많았고, 젊은 커플들이 뒤를 이었다. 도훈은 접수장 가까이 서서 무료로 지급되는 장갑을 참여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삼촌!”

 

 멀리서 찬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식이 찬혁의 손을 잡고 접수장으로 오고 있었다. 도훈은 찬혁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우와, 장갑도 줘? 상품에 장갑에 역시 스케일이 다르네.”

 

 성식이 감탄하며 말했다. 접수를 마친 성식이 15번이 적힌 배지를 가슴에 달고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성식과 찬혁에게 장갑을 나눠줬다.

 

 “못해도 3등은 하자, 찬혁아.”

 

 “당연히 1등해야지!”

 

 찬혁이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둘은 지정된 장소로 가서 급하게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안전관리 스태프였던 그는 주위를 살피는 척 하며 성식과 찬혁을 주시했다. 주변의 눈을 끌어다 뭉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같이 만들어주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재밌어?”

 

 그가 찬혁의 사진을 찍어주며 물었다. 찬혁이 개구지게 웃으며 카메라 렌즈를 향해 주먹만한 눈뭉치를 들어보였다.

 

 “삼촌도 와서 만들어!”

 

 그는 잠시 고민이 됐다. 주변 스태프들이 딱히 하는 일이 없이 이벤트장 안을 서성였다. 잠시 찬혁과 놀아줘도 될 것 같았지만 어쩐지 눈치가 보였다.

 

 “삼촌은 일해야 되니까, 여기. 이 삼촌이랑 만들자.”

 

 성식이 찬혁을 돌아 세웠다. 그도 나름 열심히 눈을 뭉치고 있었지만 모양이 삐뚤빼뚤하고 어설프게 보였다.

 

 “성식이 삼촌은 눈사람 만들어 본 적 없구나?”

 

 찬혁이 그 모습을 두고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했다. 성식이 힘이든지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 그가 성식의 표정을 보고서 소리내어 웃었다.

 

 “저기…….”

 

 갑자기 한 스태프가 와서 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그가 돌아서자 한 남자 스태프가 그에게 경광봉을 불쑥 내밀었다.

 

 “VIP 주차구역에 일손이 부족해서 그런데, 조금 맡아주시겠어요?”

 

 그는 속으로 젠장, 하고 소리쳤다. 주위에 다른 스태프도 많은 데 하필 그가 선택된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나 별 수 없이 그는 경광 봉을 받아들었다. 남자는 그가 경광 봉을 손에 쥐자마자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는 최근 주차장과 어떤 인연이 있는 듯 그를 따라다니는 반복된 업무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즐겁게 놀고 있는 성식과 찬혁을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

 

 지성이 해진과 함께 호텔 룸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그녀가 입으로 연기를 내뿜자 해진이 그 모습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담배 피우는 줄 몰랐네요.”

 

 그녀는 대답 없이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수없이 많은 사진들 속에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녀는 무심하게 대답하고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해진과 한 방에 들어와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무슨 짓을 할리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 해진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조카랑 같이 온 사람은 없어?’

 

 그녀가 한비서에게 문자를 보냈다.

 

 ‘찾아보겠습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그저 이벤트 따위로 그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던 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 응어리진 상사병이 과한 기대를 불러온 건 아닌지 의심했다. 차라리 정말로 그를 찾고자 원했다면, 루시에게 그의 행방을 물어보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시간을 좀 때우다가 가는 게 낫겠죠.”

 

 해진이 말을 하며 침대에 누웠다. 그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휴대폰 화면만을 응시했다. 얼마간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워있던 해진이 확인을 하러 나갔다.

 

 “한의사 김종복입니다.”

 

 흰 가운을 입고 있는 한의사가 문 앞에 덩그러니 서있었다. 정인이 정말로 의사를 부른 듯 했다.

 

 “아…… 예, 일단 들어오세요.”

 

 해진이 안내하자 남자가 룸 안으로 들어왔다. 룸 안을 가득채운 담배냄새 때문인지 코를 찡긋했다.

 

 “아니요. 돌아가 주세요.”

 

 소파에 앉아있던 그녀가 일어서며 말했다. 남자는 이도저도 못하고 당황한 채 멈춰 섰다.

 

 “지성씨, 일단은…….”

 

 “몸이 조금 안 좋습니다. 검사는 다음에 받을 테니, 오늘은 돌아가 주세요.”

 

 남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녀는 잔뜩 인상을 쓴 채 해진을 노려봤다.

 

 “뭐하는 짓이죠?”

 

 “내가 뭘요?”

 

 “어째서 안으로 들인 거냐고요.”

 

 “그게 뭐가 어때서요?”

 

 “저 의사가 온 이유가 뭔지 몰라서 그래요?”

 

 그녀가 닦아세우듯이 말하자 그의 표정에도 인상이 쓰였다.

 

 “무조건 거부만 할 건 아닌 것 같은데요.”

 

 “뭐라고요?”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언제까지고 숨기고 버틸 수만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걸 하자는 말인가요?”

 

 그녀가 화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가 답답한 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다른 대책이 있으면 말해 봐요.”

 

 “대책이 왜 필요하죠?”

 

 “이런 식으로 상황을 넘기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화가 났지만 최대한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니었다.

 

 “무례하시네요. 난 조해진씨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신경 써야 할 건 같잖은 당신의 애인일 텐데요.”

 

 해진의 눈빛이 일순간 날카롭게 변했다.

 

 “지금 무례한 건 당신인 것 같은데요.”

 

 “당신이 그딴 여자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어차피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었고, 원해서 한 결혼도 아니었으니까. 우린 전적으로 남이에요. 빌어먹을 이해관계 속에 처해있다고 해도 서로 철저히 남인 관계. 그걸 유지하는 게 맞는 거죠. 그런데, 당신이 방금 선을 넘으려 한 거고.”

 

 그녀가 물러서지 않고 맹렬한 어투로 말했다.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화가 나있던 그의 표정이 수긍하는 듯 식어갔다.

 

 “미안합니다.”

 

 그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녀는 황급히 가방을 어깨에 메고서 그를 지나쳐갔다.

 

 “하지만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건 알고 있을 테죠.”

 

 그가 그녀의 등에 대고서 말했다. 그녀가 돌아서며 그를 노려봤다. 평소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는데, 그 감정이 격분으로 바뀌었다.

 

 “이혼서류 준비해 두시죠. 그럼 해결이 날 테니까요.”

 

 그녀는 곧바로 룸을 벗어났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제할 힘이 없었다. 울분에 가득차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왜 이런 상황에 처해져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 위로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등을 토닥여줄 사람이.

 

 *

 

 한 손에 경광 봉을 든 도훈이 백화점 내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VIP전용 주차장은 일반 주차장안쪽 깊숙이 들어가야 있었다. 이라는 팻말을 기준으로 한 눈에 봐도 비싼 외제차들이 널찍한 공간을 두고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다.

 

 “뭐가 일손이 부족하다는 거야?”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곳은 없어보였다. 들어오는 차들로 번잡한 것도 아니었고, 주차할 공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저기요, 산타아저씨?”

 

 한 아우디 차량을 타고 있는 여자가 창문을 내리고 그를 향해 소리쳤다. 그는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자 여자가 그를 향해 차키를 건네고서는 문을 열고 내렸다. 그가 멍하니 여자를 쳐다봤다.

 

 “주차해 주셔야죠.”

 

 그는 아차 싶었다. 왜 그 남자가 그에게 일을 맡긴 채 재빠르게 사라져버렸는지 알 것 같았다. 보통 발레파킹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비싼 외제차를 운전하는 것이 겁이 날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 남자는 만만해 보이는 그에게 일을 떠넘긴 것이 분명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는 곧바로 여자가 내린 차에 탑승했다. 몇 번 해본 일이라 능숙하게 주차를 완료했다. 운전병 출신인 그에게 간단한 주차는 식은 죽 먹기였다.

 

 “고마워요.”

 

 여자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서 차키를 받아갔다. 꽤나 젊어 보이는 여자였는데 VIP회원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그는 멀어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봤다. 어쩌면 지성도 저런 여자와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세 번의 주차를 더 도와준 후, 자리에 서있었다. 성식에게서 통화가 걸려왔다.

 

 “어디야?”

 

 “지금 주차장. VIP구역에 있어.”

 

 “왜 갑자기 거기로 갔어?”

 

 “뭐 겠냐, 짬 맞은 거지.”

 

 성식이 통화중 폭소를 터뜨렸다. 성식은 이벤트가 끝이 나서 잠시 그를 보러 오겠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등수에 들지는 못했다고 했다. 옆에 있던 찬혁이 투정을 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들렸다 가.”

 

 몇 분 후, 성식이 찬혁을 데리고 주차장 입구로 들어왔다. 찬혁의 손에는 담요가 한 장 들려있었다. 루돌프 그림이 그려진 참가선물이었다. 그 위로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찬혁의 얼굴이 보였다.

 

 “찬혁이, 재밌었어? 담요도 받았네?”

 

 “성식이 삼촌이 다 망쳤어.”

 

 성식이 멋쩍은 듯 허허 웃었다. 그는 삐진 표정의 찬혁이 귀여워 볼을 쓰다듬었다.

 

 “너 늦게 끝나지? 먼저 집으로 가 있는다?”

 

 “야, 잠깐만.”

 

 도훈은 성식을 앞에 두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꼬깃꼬깃한 오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성식에게 건넸다.

 

 “가면서 케이크 하나 사줘. 우리 매년 하던 거야.”

 

 “알았다, 인마. 가기 전에 백화점 구경 좀 하다가려고. 나 때문에 1등 못했다 그러니까 선물이라도 하나 사줘야지.”

 

 성식이 인자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가 여태껏 본 성식의 모습 중 가장 멋져보였다.

 

 “찬혁아, 어디가?”

 

 그때 성식이 찬혁을 향해 소리쳤다. 그는 등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찬혁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뒤로 돌아서자 반대편에 주차되어있는 람보르기니로 다가가는 찬혁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옆으로 한 자동차가 찬혁을 불빛으로 비추며 달려오고 있었다.

 

 “야, 찬혁아, 위험해!”

 

 그가 급하게 소리치며 찬혁에게로 달려갔다. 그는 가까워지는 자동차를 신경 쓰지 못한 채 빠르게 달려가서 찬혁을 품으로 낚아챘다. 다행히 어떠한 충격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는 찬혁과 함께 바닥을 조금 뒹굴었다.

 

 “괜찮아? 응?”

 

 그가 찬혁의 얼굴을 만지며 확인했다. 찬혁은 경직된 얼굴로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삼촌…….”

 

 그제야 그는 반대편을 쳐다봤다. 찬혁을 칠 뻔 했던 자동차가 주차되어있던 다른 차의 앞 범퍼를 박은 채 멈춰서 있었다.

 

 “저거 비싼 거지…….”

 

 그의 입 속이 바짝 말랐다. 찬혁이 말하고 있는 비싼 자동차는 어느 한 쪽도 아닌 둘 다였다. 이른바 벤츠와 BMW의 아찔한 만남이었다. 두 차는 각각 한쪽면의 범퍼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찌그러져 있었다.

 

 “응…… 비싼 거네.”

 

 그는 멍하니 찬혁을 부둥켜안았다. 이게 꿈이었다면,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자동차가 멀쩡하게 서 있더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헛된 망상이었다. 그는 최근 그에게 주차장과 관련된 묘한 연결고리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날 거란 것은 추호도 생각지 못했다.

 

 *

 

 

 지성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느덧 날이 어둑해져 있었다. 이벤트도, 다른 행사도 전부 끝이 났을 것이었다. 담배연기가 차 안을 돌아다니자 운전석에 있던 김기사가 헛기침을 했다.

 

 “미안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녀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김기사 오늘이 마지막 근무지?”

 

 “예, 그렇습니다.”

 

 “그동안 수고했어.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한비서한테 연락해. 최대한 도와줄 거야.”

 

 “감사합니다. 저도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김기사와는 공무 이외에 사적으로 이야기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비서와 마찬가지로 철두철미하게 선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김기사가 그만둔다고 하니 조금은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대화를 나눈 적은 없어도 그녀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걸 누군가에게 발설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녀 주변에 몇 없는 믿을만한 사람이 점점 사라져가는 사실이 슬펐다.

 

 “호텔로 이동할까요?”

 

 “아니. 회사로 가.”

 

 그녀는 머리를 식힐 겸 잠시 회사에 들르기로 했다. 한비서를 통해 보고를 받아서 도훈이 이벤트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삼촌이 조카와 함께 참여한 팀이 한 팀 있었지만, 그가 아니었다. 결국 이번 크리스마스는 좋지 않은 기억으로 얼룩진 날이 되고 말았다.

 

 “차가 조금 막히네요.”

 

 백화점 주변에 다다르자, 도로가 번잡해졌다. 행사와 쇼핑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들로 붐볐다. 그녀는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봤다.

 

 “잠깐만.”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백화점 앞 광장을 쳐다봤다. 순간적으로 도훈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고개를 숙인 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그의 옆모습을 분명히 봤다. 그녀는 2차선 중앙에 서있는 차에서 내렸다. 옆을 지나쳐가던 차들이 멈추며 경적을 울려댔다. 분명히 옆을 스쳐지나간 그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헛것이 보였던 걸까. 그녀는 도로 중앙에 그대로 멈춰 서서 멍하니 광장을 바라봤다.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눈물이 다시 차오르고 있었다.

 

 *

 

 도훈은 행사매니저와 함께 관리실로 직행했다. CCTV를 통해 방금 전 있었던 참사를 눈으로 확인했다. 경험했던 것과 반대로,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갑자기 안 보이는 곳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놀란 차량이 급커브를 하며 주차되어있던 차를 박아버린 것이었다. 그는 참사를 확인한 뒤 고개를 푹 숙였다.

 

 “위험한 상황이 있긴 했지만…… 절차가 복잡해지겠는데요.”

 

 매니저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무 중에 발생한 사고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은 되더라도, 그가 백화점의 정식 직원도 아니었던 데다 일일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더욱 복잡한 상황이 될 것이 짐작됐다.

 

 “일단 신분증 맡기시고, 내일 다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별다른 말할 수 없이 매니저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일을 끝까지 마치지도 못한 터라 결국 하루 일당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백화점을 나와 광장을 걸었다. 어느덧 저녁이 되어 있었다. 결국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끝이 났구나. 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바닥에 널브러진 눈뭉치를 걷어찼다. 찬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삼촌…… 우리 큰일난거야?”

 

 그는 눈물이 앞을 가리는 억울한 상황 앞에서 애써 태연한척을 했다.

 

 “아니야, 괜찮아. 잘 해결됐어.”

 

 “차가 멋있어 보여서 가까이서 보려고 하다가……”

 

 “괜찮아요. 저녁은 먹었어?”

 

 “아직…… 성식이 삼촌이 기다렸다가 같이 먹재.”

 

 “알았어. 금방 갈게. 찬혁이 삼겹살 먹을래?”

 

 “오, 진짜?”

 

 “하하, 알겠어. 삼촌이 삼겹살 사서 금방 들어갈게.”

 

 그는 애써 웃으며 통화를 끊었다. 사는 게 뭐 별건가. 살다보면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는 거지. 그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그녀의 사진이 배경화면에 비쳐졌다. 예측하지 못한 순간으로 좋은 날이 있었다면, 그렇지 않은 날도 있는 거니까. 집으로 향하는 그의 뒤로 자동차 경적음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그는 이제 자동차라면 신물이 났다.

 

 *

 

 지성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한비서가 아직 퇴근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해.”

 

 그녀의 말에도 한비서는 발을 붙이고 서있었다.

 

 “찾으시던 분은…… 발견하셨나요?”

 

 “아니.”

 

 그녀는 외투를 옷걸이에 걸고서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느꼈는지, 한비서가 쭈뼛대며 그녀의 앞을 지켰다. 한비서의 손에 종이 몇 장이 들려있었다.

 

 “뭐야, 그건?”

 

 “행사는 잘 마무리됐습니다. 다만……”

 

 “뭔데?”

 

 한비서가 머뭇거리며 들고 있던 종이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주차장에서 찍은 사진 몇 장과 이력서였다.

 

 “사고가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그녀는 무심하게 사진을 훑어봤다. VIP주차구역에서 벌어진 추돌 사고였다.

 

 “아르바이트생이 부주의한 행동으로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할까요?”

 

 그녀는 차량이 부딪힌 상황의 CCTV화면과 파손정도를 찍은 사진을 순서대로 확인했다. 다음 장을 넘기자 한 남자와 어린 아이가 사고현장 앞에 서있는 사진이 나타났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이 남자야?”

 

 그녀는 사진 속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바로 그 였다. 그녀가 최태호라고 알고 있었던 남자. 하와이 여행 후, 한시도 그녀의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던 남자. 그녀가 가장 보고 싶었던 남자였다.

 

 “조카와 함께 있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들었습니다.”

 

 조카라는 말에 그녀는 확신을 가졌다. 분명히 그가 맞았다. 어쩌면 그녀가 광장에서 본 남자도 그가 맞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일 방문시켜서 사후처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나한테 보내.”

 

 그녀는 빠르게 장을 넘겨서 이력서가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그의 사진이 붙어있는 옆으로, 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임도훈…… 이게 당신의 이름이었구나…….”

 

 그녀는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기가 막힌 우연에 갑자기 활력이 돋는 느낌이었다. 한비서가 이상한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우리는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 그녀는 엉큼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그에게 복수를 할지, 고소한 계획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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