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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
기억 저편에 있는 너.
작가 : 청아휘
작품등록일 : 2016.9.20

그 때에 관한 생각의 일부라도 절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주인공 오혜연.
그러나 그게 쉽게 되질 않았다.
친한 친구의 강압(?)에 못이겨 동창모임에 나간 혜연은 잊고 살았던 그 날의 일을
기억하고 만다...

 
그 때, 있었던 일.....(1)
작성일 : 16-10-01 13:07     조회 : 386     추천 : 0     분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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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 때, 있었던 일.....(1)

 

 

 중학교 3학년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

 

 시험이라고 해봤자 먼 나라 이야기처럼 혜연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엔 하루라도 빨리 졸업해서 고등학교를 거쳐 어른이 됐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종례를 마치고 가방을 싸는 그녀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 오늘 알지? =

 

 - 어.-

 

 = 이따 정미 네서 보자. 시간 꼭 지켜! =

 

 - 18. 너나 잘 지켜. 이번에도 늦으면 죽는다.-

 

 특별할 것 없는 문자였다. 주고받는 문자엔 기상천외한 욕이 때때옷을 입고 춤을 췄지만 늘 상 있는 일이나 누구 한 명 불편해하지 않았다.

 

 이날은 시험도 끝났겠다. 며칠 있으면 크리스마스 이브였기에 같이 어울리는 아이들과 분위기 좀 잡자며 계획을 세운 날이기도 했다.

 

 때마침 정미부모님이 친척조카 결혼식이 있어 지방에 내려가셔 집을 비우게 되자, 그곳이 모임장소가 되고 말았다.

 

 문자를 주고받던 혜연이 마지막으로 다시 확인을 했다.

 

 - 이물질 끼면 각오해. -

 

 = 걱정 붙들어 매고 최대한 예쁘게 입고 오기나 해.=

 

 희수가 유난히 예쁜 옷 타령을 했다. 혜연은 옷 따위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거듭 확인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 확실히 해라. 판 엎는 수가 있어.-

 

 놀긴 놀되 그건 같은 동성끼리였다. 혜연인 남자에 관심이 없었다. 없다기보다 싫었고 귀찮았다. 하지만 같이 어울리는 애들은 달랐다. 남자친구가 없는 애들이 없었다. 만남과 헤어짐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어른들 시늉을 냈다.

 

 혜연인 그런 게 싫었다. 난잡해 보여서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다.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겁 없는 행동을 많이 했지만, 그런 것만큼은 제외였다.

 

 = 우리 오늘 신나게 놀자. =

 

 얼마나 달콤한 말이던가.

 

 집에다 무슨 핑계를 대고 나올까. 어차피 어떤 핑계를 대던 부모님은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둘러댈 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정미네 엄마아빠가 결혼식 때문에 시골 가셨어. 혼자자기 무섭다고 같이 자제’

 

 핑계가 아닌 솔직하게 말했다. 의심스런 눈치였지만 안 된다고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아시는 혜연의 부모님은 마지못해 허락을 하셨다.

 

 혜연이 정미네 집에 도착했을 땐 희수나 인애 할 것 없이 화장으로 앳된 얼굴을 숨겼고, 금방이라도 얼어 죽지 싶을 정도로 짧은 치마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거기다 정미는 머리에 굵은 웨이브를 넣어 찰랑거리는 게 어른처럼 예뻐 보였다.

 

 그래봤자 중학교 졸업을 앞둔 미성년자였는데도 그곳에 모인 아이들은 하나같이 미숙한 어른흉내를 냈다.

 

 정미 집에 먼저 모인 이유는 하나였다. 술이었다. 그들이 미성년자이기에 술을 살 수도, 대놓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꼴에 맥주는 배불러 싫었다. 혜연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적당한 때 밖으로 나가려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친구들이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작정하고 술판을 벌릴 것 같은 분위기에 혜연이 의자에 닿아있던 엉덩이를 일으켰다.

 

 “ 나가자.”

 

 소파에 던져 놓았던 작은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혜연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친구들을 향해 몇 번 재촉하고 몸을 돌렸다.

 

 “ 안 나갈 거야? 니들 안 나가면 나 혼자 나간다.”

 

 “ 어? 혜연이 간대.”

 

 “ 어! 어, 아냐! 혜연아, 잠깐만....”

 

 “ 쟤 잡아”

 

 잡아? 이것들이 진짜..... 빈속에 알코올이 들어가 알딸딸했으나 견딜만했다. 혜연은 자신을 잡으려는 희수 종아리를 정확하게 걷어찼다. 희수는 벌써 취했는지 혜연의 발길질에 저만치 툭 떨어지며 아악~ 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 에이, 씨ㅂ... 죽고 싶지! 죽여주리?”

 

 이럴 라고 모인 것이 아니었다. 살짝 입가심을 하고 밖으로 나가 즐겁게 놀려고 했던 것이 틀어진 것 같아 혜연의 심사가 매우 사납게 틀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말 하지 않은 뭔가가 있는 것 같아 더 화가 나 어금니를 꽉 물었다.

 

 “ 뭐야? 무슨 꿍꿍이야. $#@&, 니들 오늘 다 죽을 줄 알아”

 

 걷어차인 희수는 혜연의 살벌한 눈을 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고, 집 주인인 정미는 유독 더 안절부절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 최정미! 뭐야?”

 

 “ 응? 어... 아, 어떡하.. 아악! 혜여나....”

 

 “ 에이, ㅆ..ㅂ...”

 

 분에 못이긴 혜연이 결국 손을 들어 정미 뺨을 세차게 후려치곤 머리끄덩이를 꽈악 움켜잡았다.

 

 “ 아아악... 아파. 씨 ㅍ..”

 

 “ 빨리 말해. 셋 쉰다. 하나아 두우울.....”

 

 그때다.

 

 쉬익 짹짹짹짹 쉬익 짹짹짹짹.....

 

 밖에 누가 왔다고 초인종소리가 요란하게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은 늘 맞았다.

 

 벽에 걸린 네모란 화면에 낯선 방문객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 저것들은 또 뭐야?”

 

 혜연이의 외침에 희수가 기다렸다는 듯 재빠른 동작으로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는 현관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주영이나 인애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 휘이이익~”

 

 “ 와우~~”

 

 희수 뒤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이 혜연의 손아귀에 잡혀있는 정미를 보고 놀랐는지 가늘게 휘파람을 불었다.

 

 “ 살벌하네....”

 

 맨 나중에 커다란 슈퍼 비닐봉투를 들고 들어오던 남자가 혜연을 힐끗 쳐다보고는 손을 뻗자 그녀가 다른 손으로 거칠게 뿌리쳤다.

 

 “ 뭐야!”

 

 “ 너 깡패냐?”

 

 “ 오빠아!~”

 남자의 등장에 바둥거리던 정미가 목소리를 쥐어짜며 울먹였다.

 

 오빠? 오빠 좋아하네. 혜연이 피식 코웃음을 치며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더 주고 끌어당겼다. 정미의 몸이 힘없이 휘청 무너지자 이번엔 발로 복부를 걷어차곤 혜연이 이죽거렸다.

 

 “ 배다른 오빠냐? 아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오빠야?”

 

 혜연이는 정미네 가족사를 잘 알고 있었기에 키득키득 헛웃음을 흘리며 남자들을 훑어보았다. 또래는 아니었다. 체격을 봐선 고등학교 고학년 쯤 되어보였다. 제법 성인 남자의 티가 났다.

 

 휘어잡고 있던 머리채를 푼 혜연이 정미를 벽 쪽으로 밀며 입술 끝을 올렸다.

 

 “ 너도 나도 필요에 따라 등장하는 사촌오빠인가?”

 

 “ 에이, 이걸.... 뭐 이딴 기집애가 다 있어?”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던 남자가 금방이라도 칠 것처럼 주먹 쥔 손을 위로 올렸다.

 

 “ 어이, 어이.... 참아라.”

 

 먼저 들어와 소파에 앉아있던 남자가 손을 저으며 중재를 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좋질 않았다. 상대가 누군지 , 왜 왔는지 모르기에 혜은은 긴장이 됐다.

 

 불안했다. 저들이 왜 왔을까. 저 바보 같은 기집애들은 저 남자들을 뭘 믿고 집에까지 불러들였는지 한심하기도 했다.

 

 불안해하는 혜연과 다르게 다른 친구들은 아까보다 훨씬 환한 얼굴로 남자들을 반겼다.

 

 오빠, 오빠.... 도대체 저들이 누구기에 저토록 스스럼없이 오빠란 소리가 나오는지 혜연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친구들을 바라보는 혜연의 시선이 삐딱했다. 친구들은 혜연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남자들에게 어설픈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남자들이 들고 온 봉투 안에는 여러 가지 먹을 것이 담겨있었다. 술도 여러 병이었다.

 

 남자들 중 한 명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친구들을 노려보고 있는 혜연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 우리가 온다는 연락을 받지 못한 것 같다. 맞냐?”

 

 혜연은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눈에 힘을 주고 남자를 노려볼 뿐이었다. 남자가 가소롭다는 듯 입술을 비틀며 말을 이었다.

 

 “ 믿지 못하는 것 같은데.... 내가 정미 사촌오빠야.”

 

 푸훗~ 혜연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왔다. 정미 사촌오빠, 웃기고 있네.

 

 “ 우리 정미 곧 졸업하잖아. 그래서 내가 내 친구들과 정미와 너희들을 미리 축하해주려고 온 건데... 반갑지 않은 것 같다.”

 

 “ 어, 어... 아니야. 오빠, 우린 아니야”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대충 손으로 정리한 정미가 고개를 휙휙 세차게 저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같은 소리를 냈다. 우린 아니라고.....

 

 남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얼굴로 저들의 반응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저들의 관심은 오로지 혜연에게 닿아있었다.

 

 남자들은 혜연이에게 묻고 있는 거였다.

 

 “ 네가 반기지 않는데, 굳이 여기에 우리가 있을 필요가 없지.”

 

 정미 사촌오빠라 소개한 남자에 이어 또 다른 남자가 목소리를 냈다. 목소리가 묵직하니 저절로 혜연의 고개가 돌아갔다. 남자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혜연을 보고 있었다.

 

 “ 우리들이 있는 게 싫으니?”

 

 척 분위기 보면 모르나?

 

 “ 싫구나? 그래 알았다. 니가 그렇게 싫어하니 우리 조금만 있다 갈게. 그럼 됐지?”

 

 그들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녀들보다 훨씬 어른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도 금방 정리시킬 줄도 알았다. 거기다 사람 다루는 법도 무척 능숙했다.

 

 잠깐만 있다가 간다고 했던 저들은 혜연을 외면하고 자기들끼리 어울리며 하하 호호 웃음들을 날리며 잔들을 주고받았다.

 

 혜연은 그곳을 빠져 나가야 한 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런데 쉽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친구들 때문이었다. 해서 그녀는 소파 한 쪽에 엉덩이를 내리고 저들의 행태를 눈여겨보았다.

 

 여차하면 자리를 파토를 내고 밖으로 튀어야 했다. 역시 짐작대로였다.

 

 그녀들은 이미 취해 있었기에 저들이 이끄는 분위기에 너무나 쉽게 넘어갔다. 남자들은 술잔을 거절하는 친구들에게 연신 술을 권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란 듯 거침없는 손길로 작게 반항하는 친구들을 주물럭거리며 음흉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혜연은 마치 자기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고 진저리가 쳐졌다.

 

 그냥 갈까? 아냐, 그냥 어떻게 가. 아, ㅆ... 목안에서 쌍욕이 자꾸 걸렸다. 그렇게 갈등하던 그녀의 눈에 불이 확 켜졌다.

 

 정미 사촌오빠라는 인간이 정미 옷 속으로 손을 넣더니 밑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좌중을 둘러보니 이놈저놈이 신호를 받은 듯 더욱 노골적으로 변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혼숙... 그거였다.

 

 결국 보다 못한 혜연이 소파에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를 빽 질렀다.

 

 “ 야, 이 병신 같은 년들아. 정신들 차려!”

 

 느닷없는 고함소리에 엉겨있는 무리들 속 몇몇이 고개를 흔드는 게 보였다. 혜연이 또 다시 고함을 질렀다. 조용히 말해선 안 될 것 같아 목에 핏대까지 세웠다.

 

 “ 야! 최정미! 저 미친놈이 사촌오빠 맞아? 사촌오빠가 맞냐 고 이 병신 같은 년아!”

 

 친구들은 혜연의 벼락 치는 소리에 흐트러진 몸들을 챙기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겁 없이 주는 대로 퍼마신 결과였다.

 

 혜연은 살면서 처음으로 무서움을 느꼈다. 같이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의기의식이 들었는지 본능적으로 그녀의 발이 현관으로 달음박질했다.

 

 순식간에 혜연은 현관을 닿았고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틈 속에 보이는 자기 구두를 찾아 막 발에 꿸 찰라 덥석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 으아악~”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날카로운 비명이 좁은 현관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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