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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현명한 레시피
작가 : 이웃집메이
작품등록일 : 2016.7.21

"우리, 사귀어 볼래요?"
"...큽!"
든든한 식사 이후에 챙기는 달콤한 디저트. 그리고, 음식과 디저트를 만드는 셰프와 파티쉐.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풍기는 그들의 계약... 연애? No! 36살 파티쉐와 28살 셰프의 달콤살벌 계약연애 스토리!

 
03화. 때로는 밀푀유 같이 철벽 치는 그대
작성일 : 19-09-14 17:44     조회 : 222     추천 : 0     분량 : 11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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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밀푀유(Mille-Feuille) : 천 겹의 잎사귀라는 뜻을 가진 맛있는 파이의 켜가 여러 겹을 이루는 페이스트리로, 달콤하고 바삭바삭한 프랑스식 고급 디저트.

 

 

 

  현명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자신에게는 중요했다. 기억도 나지 않고, 정작 같이 있었던 장본인은 설명해주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증언이 필요했다.

 

  즉, 그가 지금 일을 끝마치자마자 뒷정리를 부탁하고 도착한 이 곳은……

 

 

 “저… 사장님!”

 

 

  어제 그녀와 함께 왔던 술집이었다.

 

 

 “음? 아, 어제 그 총각 아니야? 왜, 준영이 네가 데려다 준.”

 “맞는 것 같은데요.”

 “아, 안녕하십니까.”

 

 

  술집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알아보는 주인과 아르바이트생 준영에 괜스레 민망해지는 것은 현명 뿐 인가. 그가 난감한 표정으로 애써 인사를 드리니, 주인아주머니가 기분 좋게 미소 지어 보인다.

 

 

 “어제 지수 녀석이랑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던데, 속은 좀 괜찮아요?”

 “아, 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걱정은. 그나저나 여기엔 무슨 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드리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가게에 들린 이유에 대해 묻는 그녀가 매우 고마웠다. 걱정도 해주고, 이렇게 시간 끌 일 없이 직설적으로 물어봐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흠흠 하며 목을 가다듬더니 빠르게 입을 열었다.

 

 

 “저, 다름이 아니라… 어제의 일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아서… 그런데…”

 “아, 필름이 끊겼어?”

 “네? 아, 네. 그래서, 어제 얘기를 좀 들었으면 하는데…”

 “지수가 얘기 안 해주디?”

 “아……”

 

 

  어떻게든 얘기를 들어야 뭐 해결을 보든 할 텐데, 그녀 역시 현명에게 가지는 궁금증이 너무나도 많다. 여기서 어떻게 더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는 듯 우물쭈물 거리는데.

 

 

 “제가 설명 해 드릴게요.”

 “예?”

 “그래, 준영아. 네가 어제 일 더 잘 알겠다. 총각한테 설명해주고 주방으로 들어 와라.”

 “네.”

 

 

  아까부터 현명을 유심히 보며 둘의 대화를 듣던 준영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본인이 설명을 해주겠다는 말이 얼마나 구세주 적인 말로 들리던지. 현명은 주방으로 들어가는 가게 주인에게 90도로 꾸벅 인사를 한 후, 준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까부터 그를 보고 있던 준영이었던 지라 동시에 둘은 시선을 마주쳤는데.

 

 

 “…….”

 “…….”

 

 

  왠지 자신을 향한 적대적인 시선을 두고 있는 준영이라 현명은 꽤나 당혹스러웠다.

 

  ‘어… 내가 진짜 어제 많이 잘못을 했… 나? 왜 저렇게 보는 거지?’

 

  나름의 사회생활 경력이 있는 현명인지라 저런 시선 쯤 살피는 것은 익숙했다. 즉, 지금 준영의 눈빛은 완벽한 ‘적대심’가득한 눈빛이었다. 현명은 영문을 모른 채로 준영을 바라보았고, 그는 낮은 한숨과 함께 말을 시작했다.

 

 

 “그러니까요.”

 

 

 

  지수가 테이블 위로 쓰러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기를 한 20분. 정확히 그때 현명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을 했다.

 

 

 「 푸후… 아, 미치겠다……. 」

 

 

  그의 얼굴은 이미 토마토처럼 무르익어 있었고, 주변은 뱅글뱅글 돌고 있을 정도로 취해 있었다.

  그렇다.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수준을 넘어 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까, 그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자신의 앞에 정신을 못 차리는 그녀를 보며 이상한 걱정을 했던 것 같다.

 

 

 「 아, 우리 파티쉐님… 여자가 이런 데서 자는 거 안 되… 는데…… 」

 

 

  그는 본인의 정신도 가누질 못 하면서 이상한 곳에서 엎드려있는 그녀가 걱정이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어어, 어……. 」

 

 

  물론, 똑바로 설 정도의 정신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지수의 안전’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 어찌 되든 간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녀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그리고 등에 손을 얹어 흔들면서 그녀를 깨우려고 했는데.

 

 

 「 파티쉐님…… 」

 「 ……. 」

 「 파티쉐님… 이런 곳에서 주무시면 안돼요……. 」

 「 ……. 」

 「 왜 대답이 없어……. 」

 

 

  본인의 정신도 없고, 그녀는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못하는 걸 보아하니 이미 깊은 잠에 빠진 게 아닐까 하고 그는 추측했다. 그 와중에 그런 추측은 정확하게 하는 듯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할 바를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게 흠이었을까.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머리를 긁적이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려고 했다. 아마 자신의 짐을 가지고 가려고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 음…… 어어?! 」

 「 후으…… 어딜 가……. 」

 

 

  대뜸 자신의 팔을 정확하게 붙잡고 억누르는 힘을 쓰는 그녀에 그는 쿠당탕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 으… 아프다……. 」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예상치 못한 어택을 받았기에 더더욱 아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마저도 술기운에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팔을 잡은 그녀의 손을 떼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술에 취한 사람이 힘은 강하다고 했던가. 그녀는 악착같이 그의 팔을 놓지 않았고, 그의 힘에도 절대로 그러하지 못했다.

 

 

 「 파티쉐님……. 」

 「 ……. 」

 「 파티쉐님……? 」

 「 ……. 」

 

 

  자신을 그런 힘으로 누르는 걸 보아하니 깨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생각한 그가 지수를 아무리 불러보지만, 요지부동.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아, 이대로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그가 그‘냥 이 순간을 즐기자’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며 똑같이 엎드리려고 했던 그때.

 

 

 「 ……가지마아. 」

 「 네에? ……흡. 」

 

 

  그의 팔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더욱 강해지고, 갑자기 엎드려 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입술로 돌진했다.

 

  빛의 속도로 일어난 일이라 그는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그대로 당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 박치기에, 그것도 남자가!

 

  놀란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읍읍 거렸다. 술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게, 지금, 무슨,’

 

  그가 팔을 버둥거리며 그녀를 떼어내려 했지만, 그녀의 힘은 더더욱 강해질 뿐만 아니라, 둘의 키스가 점점 농염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도 알딸딸한 술기운이 남아있던 그 인지라 그 분위기와 농염한 키스에 그대로 넘어가고야 말았던 것!

 

 

 「 후으, 응, 음…… 」

 「 하아…… 」

 

 

  처음 키스를 주도했던 것은 그녀였지만, 이제는 주도권을 뺴앗긴 채로 그가 더욱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은 여전했지만, 그는 잡히지 않은 손으로 그녀의 볼을 붙잡고 고개를 돌려가며 입을 맞췄다. 서로의 입술을 급하게 탐하면서, 농염하게 혀가 왔다갔다 거렸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흘렸음에도,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알싸한 알코올 향이 입안에서 감돌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둘이 동시에 쓰러졌는데, 마감시간 쯤 되니까 누나가 일어나더라고요.”

 

 

  준영은 그렇게 야하디야한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아주 적나라하게 그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정말… 이렇게 어린놈이랑 주인아주머니한테 못 볼꼴을 보였잖아… 게다가… 게다가 내가 남자인데 먼저 당했다고?!’

 

  여러 가지로 어제의 일은 패닉이었다. 이래나 저래나 자신에게 좋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던 것. 그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입술을 꽉 깨물며 뇌를 열심히 굴렸다.

 

  ‘아아, 이거 어쩌면 좋은가. 여자 쪽에서는 기억을 하고 있고, 나는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모른 척 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고…….’

 

  그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가며 최선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해결을 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그런데, 그냥 넘어갈 필요가 없는 거잖아.”

 

 

  문득 그는 생각을 하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혼자 중얼거리는 그 순간, 정확한 해답을 찾게 되었다.

 

 

 “그래… 애초에 그러면 됐을 것을.”

 

 

  그는 좋은 방법을 다시 되새기며 입가에 미소를 잔뜩 지었다. 그것은 마치 악마의 미소 같았다고 후에 준영이 얘기 할 정도로, 잔뜩.

 

 

 

 ♣

 

 

 

 “……뭐라고요?”

 “뭐, 다시 처음부터 읊어 드릴까요?”

 “하… 아니, 아니에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그렇게 다음 날, 현명은 여느 때와 다르게 아주 기고만장한 자세로 레스토랑에 출근했다. 늘 출근시간 보다 한참 일찍 와 있는 지수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출근하는 시간으로 맞추어 도착했더니 마침 주방에는 그녀 뿐 이었다.

 

  그리고 어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며 얘기를 해 주었더니 그녀는 지금 너무 갑작스러운 듯 했다.

 

 

 “우리 진하게 키스도 했는데, 이틀 전에 했던 제 말, 받아 주시죠?”

 “아, 안… 되는……”

 “그것도 그쪽에서 먼저 덮치셨잖아요.”

 “…….”

 

 

  그가 아주 자신만만한 태도로 얘기하자, 그녀는 그 태도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사람이 바뀌다니, 정말 너무 한 게 아니냐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이거, 어떡하지…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건데!’

 

  지수는 처음 겪어보는 이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애초에 이런 경험을 과거에 단 한 번이라도 했다면 해결하는 방향이라도 잡을 수 있을 텐데.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나오는 상대는 너무나도 당황스럽다.

 

  그녀가 각종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중, 그는 당당한 태도로 그녀에게로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요리를 하는 긴 테이블을 기준으로 그녀와 그가 마주보고 있을 때, 그는 얼굴을 그녀 쪽으로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받아 주시는 겁니까?”

 “안… 돼요.”

 “왜죠? 파티쉐님이 저를 받아주셔야 하는 이유, 아까 전에 얘기했지 않았나요?”

 “하… 대체 저한테 왜 그……!!”

 

 

  기회를 슬쩍 엿보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뒤통수를 강하게 부여잡은 채로 입술을 부딪쳤다. 아니, 입술을 부딪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진득하고 농염한 키스를 시작했다. 당황스러움에 이미 열려 있던 입술 사이로 그의 혀가 미끌거리며 들어갔고, 그 안에서 그녀의 고른 치열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 덕에 숨이 턱 하고 막혀버린 그녀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고, 둘의 키스는 점점 더 야해지고 있었다.

 

  쪽 거리는 소리가 그와 그녀가 있는 곳을 잔뜩 울리고 있었고, 고개를 돌려가면서 까지 하는 키스는 멈추질 않았다.

 

 

 “하읍, 으읍……”

 

 

  잠시 후, 그녀가 괴롭다는 표정으로 어떻게든 그를 밀어내려고 하자, 그는 눈치를 채고서 천천히 입술을 뗐다. 점점 서로의 얼굴이 멀어지면서 쪽 하는 소리가 들린 것은 서로를 강하게 원하다가 묻은 서로의 타액 때문일까.

 

 

 “좋은 연애 한 번 한다 생각하고 받아 주세요.”

 “흐으… 하아…”

 “정말, 잘해줄게요.”

 

 

 

 ♣

 

 

 

  솔직히 생각하면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고는 생각한다. 얼마나 좋지 않은가! 36살에 28살의 잘생기고 능력 좋은 남자가 사귀자고 하는데. 물론, 3개월간의 계약에 대해서는 별개의 문제다.

 

 

  8살.

  일단 공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녀와 그의 나이 차이.

  즉, 그녀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그가 태어났고,

  그녀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그는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또 그녀가 대학에 입학할 때 그는 초등학생이었고,

  그녀가 레스토랑에 처음 취직하여 일하고 있을 때, 그는 겨우 중학생이었다.

 

 

  이것은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지수 씨, 오늘 일 끝나고 뭐해요?”

 “어… 퇴근?”

 “그거 말고, 다른 일은 없고?”

 

 

  그가 마감시간이 다가오는 때에 지수가 있는 주방을 방문했다. 늘 그렇듯 이제는 익숙하게 그녀에게 다정한 말투로 말을 하는데.

 

 

 “음… 없는 것 같네요.”

 “그래요? 잘 됐다. 그럼 오늘 저랑 같이 데……”

 “아아, 아. 아아아, 갑자기 생각났네. 저, 저 오늘 일… 있어요!”

 “네? 그렇지만 아까는 없……”

 “바빠요!!!”

 

 

  지수는 현명이 자신의 거짓말을 알아차릴 세라 곧바로 말을 잘라먹고 주방 안 쪽에 있는 탈의실로 들어갔다. 8살 차이의 이 어른아이가 이런 식으로 달라붙을 때, 그녀는 굉장히 난감해 했다.

 

  ‘저 사람은 부끄러움 도 없나…….’

 

  물론, 36살에 모태솔로라는 타이틀을 가지진 않았지만, 연애를 함에 있어서 이렇게 적극적인 것은 그녀에겐 굉장히 큰 부담이었다. 상 남자답고 적극적이고 매사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은 좋지만…… 이것은 그저 3개월 뒤에 해지하는 ‘적금 형 연애’였으니. 물론, 이자 같은 것도 없다. 그러니 그녀는 현명의 행동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수는 나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겨우 그를 떼어내고 들어온 탈의실에는 바깥의 대화를 모두 들은 그녀들이 있었다. 자기들끼리 하하호호 웃으며.

 

 

 “둘 다 여기서 뭐해요?”

 “잠깐의 휴식 시간이랄까… 그나저나 팀장님도 너무 하세요.”

 “맞아, 맞아. 현명 씨가 저렇게 매달리는데, 매번 튕기기만 하고.”

 “내, 내가 뭘!”

 “밀당도 적당히 해야죠!”

 

 

  나름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온 곳에서 이런 얘기를 듣게 될 줄이야. 지수는 그녀들의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홱 돌렸다.

 

  ‘밀당은 무슨… 이건 엄연히 정당한 계약의 한 부분일 뿐이야! 난 그저 3개월 동안 연애하는 척만 해도 정당화 되는 거라고!’

 

  지수는 혼자 생각하며 그녀들의 시선을 피해 자신의 사물함이 있는 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그렇다. 그녀가 이렇게 난감해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일명 ‘탈의실 키스 사건’ 외에도 결말을 짓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계약 연애를 정식으로 체결했던 일.

 

 

 “좋은 연애 한 번 한다 생각하고 받아 주세요.”

 “흐으… 하아…”

 “정말, 잘해줄게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채 전에 시작된 입맞춤에, 그녀는 정말로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남자에게 키스를 받은 것도 억울한 데, 거의 반 강제적인 부탁에 더더욱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왜 하필 나냐고! 고작 그때 내가 먼저 키스를 해서?’

 

  그런 생각이 들며 그 순간 정말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차마 눈이 마주치고 있는 그 짧은 몇 초 동안 말이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한 뒤, 내린 결론은 생각보다 로맨틱 하지 않다.

 

 

 “이번 한 번 만 저 믿고, 한 번 같이 사귀어 볼…… 악!”

 “미친… 후으, 놈…”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슬슬 분위기를 통해 긍정의 답을 들어볼까 했던 그의 생각과는 다릴, 대뜸 그의 말을 거세게 밟은 것이다, 지수가. 놀란 그가 당황해서 그녀를 가두었던 팔을 떼고 자신의 발을 붙잡고 있을 때, 그녀는 아주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나… 이거 고소할 거야!! 나 아는 친구 중에 검사 있거든?! 이거 다 얘기 하고 너 고소 할 거야! 고소 할 거라고!!”

 

 

  얼마나 목소리가 쩌렁쩌렁 했는지 아마 밖에 모든 소리가 다 들렸을 거다. 다행스럽게도 밖엔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 한 마디를 남긴 채로 탈의실을 나가버린 그녀를 보며, 그는 그 순간 그 어떤 때보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소라니… 내가 뭘 했다고, 대체!’

 

  그는 억울했지만, 이미 가버린 그녀를 잡을 수는 없었다.

 

 

 

 ♣

 

 

 

 “성폭력까진 안 되고… 성희롱 정도로는 가능 하겠는데.”

 “하… 뭐든 좋으니까 최고형으로 만들어줘!!”

 

 

  현명에게 고소를 하겠다는 자신만만한 말을 내뱉었던 그 날, 하루 만 뒷정리를 후배들에게 맡기고 검사인 수민이 있는 사무실로 달려갔다. 지금 이 순간 지수에게 생각나는 것은 ‘현명’과 ‘고소’. 이 두 단어 뿐 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 수민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비웠고, 한참이나 얘기를 들어주더니 하는 말이 저거였다.

 

 

 “후… 이렇게 내가 당했는데 고작 성희롱이라니.”

 “애초에 증거도 없고, 네 증언 밖에 없잖아. 그쪽에서 안 했다고 하면 땡이지.”

 “쳇… 이렇게 끔찍하고… 더러운데…….”

 

 

  수민이 날카롭게 얘기하자, 지수는 짜증이 난다는 듯이 잔뜩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아니, 내가 이렇게 마음이 심란하고 미치겠는데, 고소거리가 안 된다니… 마음에 안 들어!’

 

  그녀가 혼자 속으로 주구장창 법에 대해 욕을 하고 있을 때, 수민은 그녀를 바라보며 은은히 웃기만 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녀가 반갑기도 하고, 지금의 화내는 모습이 꽤나 귀엽기도 해서.

 

  수민이 자신의 앞에 있는 서류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더니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난 그래도 해 보는 게 괜찮을 것 같은데.”

 “뭐?! 너 지금 성폭행 범 편드는 거야?!”

 “진정해, 진정해.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잖아.”

 

 

  마침 그 말을 하며 서류 정리가 끝난 수민은, 대뜸 꽃받침을 한 채로 지수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입가에는 환한 미소를 그린 채로. 그리곤 그 올망졸망한 입술을 열어 그녀를 향해 말했다.

 

 

 “너 레스토랑이니 뭐니 신경 쓴다고 연애도 30대 초반에서 끝났잖아.”

 “그, 그건… 내가 일하는 게 좋으니… 까!”

 “흐음… 글쎄.”

 

 

  수민이 눈을 게슴츠레 하게 뜬 채로 지수를 바라보았다.

 

 

 “왜… 왜 그렇게 봐?”

 “왜긴, 귀여워서!”

 

 

  말 할 듯, 말 듯 하다가도 결국 말을 해주지 않는 수민 특유의 말투에 지수는 나지막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지수를 아는지 모르는 지, 수민은 다른 곳에 있는 서류를 하나 꺼냈다. 그리곤 바로 앞에 있는 안경을 쓰더니 지수에게 있던 시선을 서류 쪽으로 돌렸다.

 

 

 “뭐, 일단은 잘 생각해 봐.”

 “무슨 생각?”

 “이대로 고소할 건지, 아니면 잘 해 볼 건지.”

 

 

  ‘생각은 무슨, 난 생각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은 친구인 수민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지수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해서 얘기 하는 건데, 만약 나라면 3개월 간 잘생긴 애랑 연애하면서 넝쿨 째 굴러 온 호박을 덥석 물 거다.”

 “뭐?”

 “28살 꽃돌이라니… 꿈만 같잖아.”

 

 

  게다가 저런 말이라니! 지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머, 벌써 가게?”

 “그래! 간다! 가!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어머, 고마워. 잘 가!”

 “……능글맞아.”

 

 

  아무리 욕을 하고 나쁜 말을 해도 저렇게 유들유들 하게 받아 치니, 공격하려고 해도 공격력이 순식간에 바닥에 되어 버린다.

 

  지수는 이제 됐다는 듯이 한숨을 포옥 내쉬고서 수민에게 인사를 하곤 그 사무실을 나섰다. 어쨌거나 여기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그리고 도착한 집에서는 나름 마음이 편했다. 일단 집이면 무조건 좋다는 생각을 가진 지수는 더 그랬다. 비록 낮에는 손님들과 현명에게 치이고, 저녁에는 수민에게 치여서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는 좋은 교훈을 얻었을 지라도.

 

  지수는 말끔하게 샤워를 끝내고서 머리에 있는 물기를 마지막까지 탁탁 털었다. 중간정도 오는 생머리를 관리하는 것은 꽤나 골치 아픈 일이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내일은 잔뜩 뒤집어 져서 곤란을 겪게 될 테니까.

 

  최대한 신경을 곤두세우며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를 한 뒤, 미리 챙겨 놓은 옷을 하나 씩 주워 입었다. 늘 일을 끝내고 저녁에 와서 하는 샤워는 기분이 좋았다. 매번 마다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오늘 수민이는 너무 했어!”

 

 

  ‘친구라는 게 도움은 못 줄망정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아야지!’

 

  지수는 퇴근 후 만났던 수민과의 일을 떠올리며 잔뜩 투덜투덜 거렸다. 그리곤 화장대 앞으로 가서 스킨과 로션 등을 일렬로 세워 놓았다. 그리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하나 씩 발랐고, 동시에 거울을 쳐다보며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지었다.

 

 

 “뭐… 그래도 확실히 내가 젊어 보이긴 하네. 그래서 그랬던 걸까, 서현명 그 자식은.”

 

 

  동시에 자신에 대한 찬양론을 펼치며 행복해 하는 지수였다.

 

  ‘나의 미모를 보고 그런 부탁을 한 거라면 뭐… 반 정도는 인정해 주지!’

 

  혼자만의 착각에 빠진 그녀는 그 생각을 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져 금방 싱글벙글 해졌다. 그렇다. 지수는 단순한 여자였던 것이다. 자신만의 착각으로 기분이 좋아 질 수 있으니 더욱 그랬다.

 

  그때, 지잉- 지이잉- 거리는 소리가 화장대 주변에서 들려왔고, 그녀는 익숙하게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는데.

 

 

 “…….”

 

 

  저장이 되지 않은 모르는 번호였다. 하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번호.

  그 번호를 보자마자 지수는 문득 수민이 아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혹시나 해서 얘기 하는 건데, 만약 나라면 3개월 간 잘생긴 애랑 연애하면서 넝쿨 째 굴러 온 호박을 덥석 물 거다. 28살 꽃돌이라니… 꿈만 같잖아. 」

 

 

 “…넝쿨째 굴러 온 호박이라고…….”

 

 

  그 중얼거림과 동시에 그녀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생각들로 밤을 지새운 그녀는, 아침부터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아… 결국 꼬박 밤을 새버렸네……”

 

 

  분명 어제 마음 편하게 샤워도 끝내고 편안히 침대에 몸을 뉘였던 것 같은데… 자꾸 이상한 잡생각이 들어 그 생각을 쫓으려다 보니 벌써 아침이었다. 5시쯤이 되었지만, 지금 자면 절대 못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그대로 일어나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던 것. 즉, 그녀의 지금 상태는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미안하지만 오늘도 뒷정리 좀 맡기고 일찍 자야겠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그녀는 또각거리는 정장구두를 신고 거의 레스토랑에 다와 갈 즈음이었다.

 

 

 “좋은 아침.”

 “억!”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에 나란히 손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멀리서 뛰어 온 건지 정말 급박하게. 놀란 그녀가 억 소리를 냈더니 정작 그녀에게 장난을 건 장본인은 키득 키득 거리기만 했다.

 

 

 “뭐야, 아침부터, 억 소리 나네. 로또 당첨 되셨어요?”

 “하… 서현명 씨…”

 “정장 되게 잘 어울리네요.”

 “……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장난할 기분도 아닌데 장난을 거는 그가 너무 짜증이 나서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더니… 그의 뜬금없는 칭찬에 그녀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순간적으로 너무 놀란 탓이었다.

 

  ‘화낼 타이밍에서 칭찬이라니… 이 남자, 정말 고단수다!’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그의 곁에서 떨어지려고 했으나.

 

 

 “같이 가요, 나랑.”

 

 

  대뜸 ‘그런 여자들이 설레는 말 100선’에서 나올 한 마디와 동시에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이 아닌가? 이건 정말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황당함을 느끼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거기다 대고 무어라 말을 할 수 없는 그녀는 대체 무얼까.

 

  그녀는 복잡한 심정으로 현명의 말 그대로 나란히 같이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지수 씨, 좋은 아…… 어?”

 “…좋은 아침, 현준 씨.”

 

 

  레스토랑에 도착하자마자 카운터를 담당하는 현준이 반갑게 인사를 하려고 한 것도 잠시. 현명과 지수가 같이 오는 모습을 보고 의외라는 듯이 그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것은 다른 레스토랑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매번 싸우기 바빴던 사람 둘이가 맞는데, 왜 저렇게 다정하게 나란히 걸어오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덕분에 아침부터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그녀는 짜증스럽게 그에게서 벗어나 주방 안에 있는 탈의실로 들어갔다.

 

 

 “이, 이거 놔요!”

 

 

  그 한 마디를 하는 것도 잊지 않고서.

 

 

 “하… 진짜 미치겠네.”

 

 

  탈의실로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자신의 사물함 쪽으로 다가갔다. 이미 와 있던 후배들이 반갑게 인사했지만, 그런 인사들도 들리지 않았다. 밤을 새서 피곤한데, 저렇게 자신을 더더욱 피곤하게 만드는 행동을 아침부터 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 안 쓰러지고 일 하면 내 스스로 대견스럽다고 칭찬해줘야 겠다.’

 

  정말 피곤했지만, 일단은 일이니 어쩔 수 없이 지수는 옷을 빠르게 갈아입고 탈의실의 문을 연 그 순간.

 

 

 “팀장님! 혹시 진짜에요?”

 “뭐가요?”

 “서현명 씨랑요. 사귀는 거 맞아요?”

 

 

  오늘은 참 여러 가지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피곤하게 아는 것 같았다. 고작 같이 출근한 것 가지고 사귀다니… 당치도 않다.

 

  지수가 황당하다는 듯이 웃으며 그녀들에게 아니라고 대답하려는 그때였다.

 

 

 “사귀는 거 맞아요.”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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