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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미안해..
작가 : 소영이
작품등록일 : 2019.9.10

제게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약간의 허구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놀림감
작성일 : 19-09-13 22:42     조회 : 271     추천 : 0     분량 : 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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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애원에서의 생활 2년째,

 이젠 완전히 적응해 갔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이제 갓 초등학생이 된 나는 동일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내 동생 역시, 언니도, 미애원에 있는 모든 학생이 다 같은 학교와 유치원을 다녔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나 아빠 할머니 손 잡으며 얘기하면서 올 때 우리는 혼자 학교에 갔다. 애들이 엄마랑 아빠랑 얘기하면서 웃고 울고 하는 걸 보며 부럽기도 한 마음이 들었다.

 

 초등학교 생활은 어떨까 라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면서 긴장도 됐다. 우리 반 담임은 여자일까, 남자일까를 궁금해하며 속으론 여자 선생님이길 원했다. 다행히도 우리 반은 여자 담임선생님이셨다.

 20살이 된 지금 선생님 성함은 가물가물하지마는 선생님 얼굴과 키만은 기억하고 있다. 생김새나 성격 등 내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는 건 내게는 그 선생님이 정말로 좋은 쌤이셨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내가 그 쌤 덕에 숫자 9도 잘 쓸 수 있었고 내성적이었던 내가 1학년 생활만이라도 재밌게 잘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막 1학년이 된 우리는 담임 선생님께 이름표를 받았다. 각자의 이름이 적혀있는 동그란 녹색 이름표였는데 목에 걸고 다녔다.

 숫자도 배우며 동그라미를 그려 그 원에다 가족 얼굴을 그리며 가족 소개를 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초등학생 땐 누구나 한다는 받아쓰기도 했다. 그때는 어려웠다면 지금은 쉬운 나, 너, 우리, 어머니, 아버지 같은 단어들을 익히고 외우며 받아쓰기를 했다. 단계별로 나눠서 코팅지에다, 복사해서 붙여서 주셨는데 단계가 올라갈수록 점점 어려워졌고 내 공책에는 빨간색 색연필에서 비가 주르륵 내렸다.

 

 틀린 건 5번이나 10번 정도 적으면서 또다시 익히곤 했는데 그때는 그렇게도 싫었던 받아쓰기가 지금은 왜 이렇게 그리운지 모른다.

 

 나는 지금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초1 때 숫자 9를 못 썼다.

 다른 숫자는 잘 썼는데도 이상하게 숫자 9만 못 써서 마지막에 남아서 따라 배우곤 했다. 물론 지금은 잘 쓴다.

 

 내가 초등학생 1학년 때 내 담임 선생님한테는 딸이 있었다. 나랑 같은 또래로 나보다 키가 컸고 안경도 꼈고 똑똑해 보였다.

 하지만, 걔한테도 담임한테도 미안하고 죄송한 말이지만은 나는 걔가 정말로 싫었다.. 아무 이유 없이 싫었던 게 아니다.

 

 아까 말한 데로 나는 동그라미를 그려 원 안에다 가족을 그리고 그 밑에 가족소개를 적는 걸 할 때, 나는 어김없이 또 남아서 마무리를 했다. 왜 그렇게 미술 같은 그림 그리는 걸 싫어했는지, 어릴 땐 좋아했지만 이상하게 학교에만 가면 그림을 못 그려 부끄러워 그림 그리는 걸 싫어했던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가면, 내가 마무리를 다 하고 담임 선생님께서 벽에 꾸민다고 부치실 때 담임 딸이 왔다.

 그러고는 벽에 걸려있는 여러 명의 그림들을 보면서 내 그림을 보고 비웃는 것이다.

 

 “쟤 그림이 이것야?? 진짜 못 그렸다.”

 

 비웃는 소리와 재수 없는 웃음이 들렸다. 입을 가리며 오호호홍 웃는데 얼마나 재수 없던지.. 그런데 바보 같게도 나는 그것조차도 부끄러워 쪽팔려 했으니.. 한심하~다.

 

 비웃는 그 소리에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 빨리 짐을 챙겨 소진이랑 같이 미애원에 갔다. 여기서 소진이는 내 동생이다.

 재수 없게도 담임 딸이랑 같이 가게 돼서 약간 마음에 안 들었지만 거기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걔랑 가게 되었다.

 그때 우리 반이었던 남자애 한 명도 같이 갔는데 어찌나 짜증이 났는지.. 집에 가기 위하여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동생이 먼저 다 신자, 담임 딸이랑 우리 반 남자애랑 같이 먼저 가는 것이다. 원래라면 나를 기다려 주던 동생이 먼저 가버려 너무 속상한 마음에 동생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웃긴 게, 담임 딸이 일부러 그런 것처럼 나를 보고 비웃으면서 동생이랑 웃으면서 가는데 내 욕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같은 반 남자애 역시 같이 그랬는데.. 왜 나를 그렇게 싫어했는지, 나는 걔가 싫어할 만한 행동도 한 적이 없는데, 만약 잘못한 게 있다 한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약하고 아프니까, 그리고 장애니까.. 건드려도 되나 생각하나?.. 왜 동생만 좋아했지?.. 아직도 모르겠다..

 

 문제는 동생은 이 일을 기억 못 하고 있다는 것..

 그게 더 서럽다.

 

 그렇게 미애원에 서서히 다 와 갈때쯤 우리는 담임 딸이랑 같은 반 남자애랑 헤어지고 나서 집에 도착했다.

 가방을 정리하고 바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저녁을 먹었다.

 그런 다음, 씻고 바로 공부하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미애원에서는 밥도 식당에서 먹고, 식당이 꽤 넓어서 공부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미애원에 들어오는 인원수가 많아졌기 때문에 식당이 제일 맞았다. 6시 반부터 8시까지 공부하다가 10시까지 티비보거나 다음날 학교 갈 준비를 하고 10시 됨과 동시에 바로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데 미애원에서는 항상 사무실 앞에 모여 차렷, 경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는 정.직!! 하고 외치며 학교에 갔다. 때로는 학교 가기 전, 원장이 가방 검사를 한다고 가방을 막 뒤집기도 하고 가방 안에서 만화책이나 장난감 같은 게 나오면 다 같이 엎드려 뻗쳐서 야구 방망이로 엉덩이를 맞기도 했다.

 

 우는 소리는 일절 들리지 않았고 얼굴이 벌게진 채로 울음과 고통을 참을 뿐, 우린 그렇게 계속 자랐다.

 

 벚꽃이 점점 지고 매미가 울기. 시작하더니 여름이 왔다.

 덥다고 긴 팔은 박스에 담아 창고로 옮기고 반소매를 꺼내 주시면서 입으라고 하셨다. 이쁜 옷도, 괜찮은 옷도 없이 나와 동생은 그냥 주는 대로 다 받기만 했다. 여름이 되고 나서도 학교는 가야 하는 건 당연하듯이 어김없이 반소매를 입고 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왼팔이 오른팔에 비해 좋지 않아 까맣고 털이 많다. 초등학생 1학년이었던 나는 설마 애들이 놀릴까 하는 아무 생각 없이 반소매를 입고 갔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다. 내가 반소매를 입고 간 게 잘못된 것일까..

 

 1-5반 이었던 나는 1-3반 이었던 소진이보다 더 빨리 수업을 마쳤다. 같이 미애원에 가기 위하여 소진이 반, 복도 앞에서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서 튀어 나오는지도 모르는 남자애 두 명이 나를 보고는

 

 “고릴라~ 고릴라~ 고릴라다~~ 고릴라래요 고릴라래요”

 

 하..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그 남자애 이름은 바로 최. 석. 훈

 걔 옆에 있었던 남자는 ... 얼굴은 기억나는데 이름이 가물하네..

 

 웃으면서 ‘고릴라’라고 놀리는데 얼마나 부끄럽고 서럽더니.. 나는 그 자리에서 울었다. 엉엉 울고 있으니 그 울음소리를 듣고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왔다. 다른 반에서까지 울고 있는 나를 둘러싸 나를 보고 있는데 나는 ‘고릴라’라고 놀림 받는 그 순간부터 내 왼팔이 부끄럽고 다른 애들도 나를 놀릴까 봐, 나를 진짜로 고릴라로 볼까 두려워 더 울었다.

 

 결국, 아무런 조치도 없이 나는 소진이랑 울면서 원에 갔다. (여기서 원은 미애원, 앞으로 미애원을 원이라고 합니다)

 그 뒤로, 나는 여름에는 항상 긴소매를 입고 다녔다. 물론 20살이 된 지금도.. 아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흘끗흘끗 쳐다봐서 웬만해선 여름에는 밖에 잘 안 나가려고 한다. 내 왼팔을 보고 서로서로 속닥이고 비웃으며 손가락질까지 하니 도통 반소매를 입고 밖에 돌아다닐 수가 없다.

 그래도 지금은 구미로 이사 와서 구미 사람들이 착해서인지 감사하게도 내 왼팔을 봐도 쳐다보는 사람도, 비웃는 사람도,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없으니 이번 여름에는 밖에 잘 돌아다녔네.. ㅎㅎ 좋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오늘은 추석이네요. 다들 즐거운 추석 보냈나요? 저희는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어요..

 가족들간 사이도 좋지도 않고, 가기도 불편하기도 해서 그냥 집에만 있었답니다.

 그래도 전도 먹고 떡이랑 송편도 먹으면서 나름 추석 분위기는 냈어요~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어요. 아침 저녁으로 조금 추우니 몸조리 잘하시고요, 앞으로도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할테니

 많이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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