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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Record Of U
작가 : 저녁의나팔수
작품등록일 : 2019.9.6

"세상의 끝이 오지 않아 난처해하는 인류가 있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상에 두 사람이 있다. 이 세상에 두 사람만 남았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끝이라고 부르는 것이 언제 그들을 찾아올지 두려워하며 벽 속에 숨어 살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거라며 아랑곳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무수히 많다.
이 둘은 어느 쪽인가? 적어도 첫 번째 부류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두 번째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들은 배달부다. 악어가 끄는 배를 타고 아직 덜 끝난 세상의 벽과 벽 사이를 오간다. 화물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고, 이야기는 시작과 끝의 사이를 오간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끝과 함께 이야기를 담고 있던 세계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그 세계에서의 모든 이야기들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선장은 아직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Tape 1-2
작성일 : 19-09-13 02:37     조회 : 206     추천 : 0     분량 : 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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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을도 저물어가는 시애틀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투명한 밤이었다. 이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모른다는 얼굴로 깜빡거리는 하늘의 별도, 폴리스(Polis)의 장벽 안쪽에 달라붙은 터미널에 줄지어 있는 캐러밴들의 행렬도, 그 중 단연 눈길을 끄는 ‘배’ 위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선원의 모습도 똑똑히 잘 보인다.

  가장 높은 난간에 거의 널리다시피 기댄 그는 아마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 누군가의 정체는 굳이 길게 추리할 필요가 없다. 관객들에게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오후에 이 도시에서 화물의 배달을 마치고 잠시 장을 보던 와중에 그 ‘누군가’가 주위의 소란과 함께 언제나처럼 모습을 감추었다는 것뿐이다.

  일단 예정되어 있던 볼일을 모두 끝내고 와서 배로 돌아오긴 했지만, 선장이라는 사람은 지금 하기로 한 일 다음에 차차 무슨 일을 해 나가야 할지는 전혀 정해놓지 않는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계획은커녕, 내일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아니 먹을지 말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간 으레 하던 것처럼 배 안팎의 손질을 하고, ‘악어’가 제대로 잠들어 있는 걸 확인하고 나면 선원이 해야 할 일은 없다.

 

 죽음이란 없다. 모든 것은 그저 변할 뿐.(There is no death, only change of worlds.)

 

  잘도 보이네, 날씨 한번 좋다. 담배연기 같은 한숨을 마지막으로 허공에 내쉬고 나서, 선원은 이번에는 정확히 돌아올 시간이 된 다른 목표를 눈으로 쫒는다. 선장은 누가 뭐라고 하던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내킬 때 돌아오는 사람이다. 조바심을 내며 기다려 보았자 결말에는 어떤 의미 있는 변화도 없다. 이렇게 되면 이쪽도 느긋하게 쌓여 있는 시간을 천천히 태우며 게으름을 피워도 상관없겠지.

 

 “여기.”

 

  주기적으로 구역을 맴도는 프레스 드론(Press Drone)은 선원이 내미는 검은 주화를 먼저 먹어치우고 나서야 리본처럼 넓고 길쭉한 종이 타래를 입에서 게워낸다. 호외(號外)다. 어렴풋이 짐작한 대로, 기사는 오늘 시내에서 벌어진 추격과 난동을 말하고 있었다.

 

 *

 

 “건포도가 제법 싸네요. 좀 넉넉히 실어 놓을까요?”

 

 “건포도, 좋지.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면 되겠네.”

 

 “…한 봉지 정도는 좀 들어 주시죠?”

 

 “자, 그럼 다음은 뭘 사야 하지?”

 

 “보자-식료품은 이 정도면 되었고, 세제 다 썼죠?”

 

 “-”

 

 “저긴 또 뭔 난리래. 여유가 되면 새 재킷도 하나 장만하죠. 요즘 날씨도 추-선장님?”

 

 선장님?

 

 *

 

  재조합 종이에 찍혀 나오는 것이 으레 그렇듯,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는 없었다. 사정없이 둘둘 말아 테이블 위에 굴려 보아도 선원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은 토해내지 않는다. 끄트머리에 실린 커피 광고에서 활짝 웃고 있는 여자가 코와 입만을 이쪽으로 향한 채 겸연쩍은 미소를 보내고 있다. 선장이 어디로 갔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우리 일행은 건포도의 꼭지만큼도 관계가 없는 이 사건에서 선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의심밖에 남아있지 않다.

  적어도 선장이 이 소란의 주범으로 지목된 것은 아닌 게 분명했다. 기사에 실린 사진에서 연행되고 있는 것은 다행히 전혀 면식이 없는 사람이었고, 적어도 선원이 아는 선장은 한나절의 난폭운전과 수십 건의 기물파손 정도는 걸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고약한 위인이다. 다친 사람이 없는 게 기적이네. 그래도 이 정도면 한참 살겠는데?

 

 “또 그런 걸 보고 앉아있나?”

 

 “와. 이번엔 빨리 끝났네요?”

 

  진심이었다.

 

 “아직 조금 남았지.”

 

  선장은 한 손을 들어 작은 잔을 기울이는 제스처를 취했다. 언제나처럼 선원은 부엌으로 걸어가 냉장고 속에 나눠 담아 놓은 요구르트 한 컵을 꺼내 건넸다.

 

 “일입니까?”

 

  팁이라고 해야 할까, 컵 대신에 건네받은 물건 둘 중 하나는 제법 만족스럽게 짤랑거리는 묵직한 주머니. 그리고 매끄러운 누런 종이로 싸여진 소포였다.

 

 “그래. 이것만 끝나면, 재킷을 사러 가도록 하지.”

 

  소포보다는 주머니 쪽에 신경을 쓰고 싶은 선원이었지만, 곁눈으로나마 확인한 주소는 (우와아….)도저히 무시하고 숙면을 취할 수 없는 종류의 물건이었다. 돈 소리에 잠시나마 달아오른 기쁨은 테이블에 올려둔 커피처럼 빠르게 식고, 쓰디쓴 불안감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아무튼 그것이 어젯밤, 이 끔찍한 배달의 시작이었다.

 

 *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녹슨 쇠 맛을 모닝커피처럼 힘겹게 목구멍으로 넘기며 선원은 자신이 떨어져 내려왔을 허공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일을 해야 한다는 부지런하고도 성가신 정신이 돌아오고 나자, 그는 자신이 생각보다 오래 기절해 있었거나 아니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지금쯤 선장이 배 아래로 걷어차 주고 싶은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을 구멍 바깥이 보이지 않았다. 뒤통수를 지구의 중력에 맡기고 그 반대편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내려다볼 때와 다름없는 어둠뿐이었다. 거기에 어째서인지 여기까지 오면서 가지고 있던 무기들도 깨끗이 사라져 있다. 남은 소지품이라고는 떨어지기 전에 선장에게서 넘겨받은 소포 뿐. 애매하게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이 짐 덩어리만이 품속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못 마실 정도로 짙게 탄 어둠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였다. 마치 조건반사처럼 온화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노르스름한 빛이 지극히 평범하여 오히려 사고의 모서리에 걸리는 작고 깨끗한 문을 비춘다. 걸리긴 해도 이런 상황에 달리 어디로 가란 말인가?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렇듯, 관객의 눈길을 끄는 페이지는 손을 들어 넘기는 것밖에 해답이 없다.

 

  빛을 향해 걸어가며, 그는 지금 밟고 있는 바닥에서 뭔가 발에 채여 구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이 가까워지며 사방이 좀 더 잘 보이게 되자 그게 무엇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금방 알았기에, 더 이상 그쪽에는 신경을 쓰면 안 된다는 결론도 금방 내리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의 뼈 무더기에서 자다 일어나, 두개골을 깡통마냥 발로 밀어내며 걸어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문 옆에 초인종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가볍게 주먹을 쥐고, 손등을 앞으로 향해 최대한 정중한 세기로 문을 두드렸다. 일단 이 집의 주인에게 밉보이는 짓만은 삼가는 게 좋을 것이다. 저 뒤의 다른 이들처럼 손님용 깔개 신세가 되기는 싫으니까.

 

  선원의 바람과는 달리 문은 오래지 않아 가벼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가 난생 처음 보고, 또한 어느 불행한 상상에서도 떠올리지 못한 인물이었다.

 

 “다녀오셨어요!”

 

  아이였다. 그것도 가까스로 열 살의 문턱을 넘은 것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 이 어둠과 죽음을 스푼으로 휘저어 놓은 것 같은 공간에서 아이는 깨끗한 옷차림과 미소로, 마치 매일 저녁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선원을 맞아 주었다.

  허나 그를 정말로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반가운 인사 다음에 이어진 호칭. 그건 아마도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호칭이지만, 그에게는 어떤 기억을 뒤져봐도 짐작 가는 부분이 없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아빠!

 

 *

 

  놀랍게도 같은 시각. 커피에 뜬 과자 부스러기마냥 구멍 위에 떠 있는 부엌에서 천연 조명의 혜택을 마음껏 즐기고 있던 선장은, 버릇처럼 하고 있던 몽상을 고막 속으로 들어온 또 다른 방문객에 의해 잠시 멈추었다. 지어진 이래 파티 같은 것은 해 본 적이 없었을 집 안에 울리는 단단하고 무거운 발소리는 열 명보다 적다. 바닥을 이루고 있는 나무판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보면, 다들 그의 선원이 좋아하는 거추장스런 쇳덩이를 하나씩 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장은 뒤쪽 다리 두 개만 남은 식탁 의자를 안락의자마냥 벽에 기대어 게으른 이 순간을 만끽한다. 햇볕이 고이기 좋게 살짝 펼친 오른쪽 손바닥에서는 온기와 함께 내려앉은 먼지가 커피 한 잔의 김처럼 피어오른다.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지만.”

 

  마침내 뒤집힌 숲 위의 섬에서 한낮의 티타임을 즐기던 그를 발견한 새로운 목소리가 깊이 내쉬듯이 말을 꺼낸다.

 

 “계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기대했던 것만큼 젊은 목소리에 선장의 눈초리가 잘 보이지 않지만 웃는 것처럼 아주 조금 내려갔다. 적어도 휴일에 전화 한 통 없이 친구들까지 잔뜩 끌고 온 이 손님을 언성을 높이면서 내쫒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에 반해, 목소리의 주인을 따라온 나머지 친구들을 그렇게 느긋한 회화를 할 기분이 아닌 것 같다. 충분하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의 인원이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음에도, 모두가 여기저기에 긁힌 자국과 붉게 물든 먼지를 묻히고 있다. 별로 가고 싶지도 않던 관광지로 끌려온 여행객처럼 모두가 당혹과 스트레스로 신경이 곤두서 있다.

 

 “소풍이라도 나온 겐가?”

 

  물론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말투로 선장은 손바닥의 먼지 한 스푼을 일행의 대장으로 보이는 젊은이 쪽으로 튕긴다. 일제히 한 스푼 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는 나머지 일행과는 달리 젊은이는 별 내색 없이 대화를 이어간다.

 

 “멋진 동네니까요. ‘강아지’들이랑 놀아주던 건 아저씨인가 보죠?”

 

 “닭 뼈다귀라도 갖고 오지 그랬나. 관리자 봉급이 또 얇아졌나?”

 

 “네. 거기에 어제 센터의 일을 덮느라 좀 많이 썼죠.”

 

 “여전히 쓸데없는 짓을 좋아하는군.”

 

  마음에 들어. 라고 중얼거리며 선장은 그의 엉덩이 아래로 뻗어 있는 검은 숲의 중심부, 선원이 떨어진 이후 굳게 닫혀 있는 구멍의 바닥을 향해 시선을 보낸다.

 

 “자네들도 앉게. 느긋하게 쉬라고.”

 

 “저녁 먹기 전에는 가야 하는데요?”

 

 “인원이 모자라. 다른 놈들처럼 저 아래에서 살고 싶나?”

 

 “이게 수학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아시는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젊은이는 일단 대원들을 주위에 앉아 기다리도록 한다. 불만스런 내색을 보이면서도 말대답 없이 명령에 따르는 그들 역시 젊은이처럼 ‘쓸데없는’ 짓을 좋아하는 이들이리라. 적어도 침묵을 선호한다는 점에서는 선장이 충분히 탐낼 수도 있는 인재들이었다.

 

 “내 최고의 선원이 내려가 있네. 조금만 기다리게.”

 

 “네-‘최고’인 건 확실하지요.”

 

  이번에도 저희가 할 건 기다리는 것뿐인가요.

 

 “그거야, 다들 하고 있는 것이잖나.”

 

  젊은이도 말없이 웃으며 걸터앉은 어둠 아래로 두 다리를 흔들거린다.

 

 “이상적 진화(Ideal Evolution)를 아직도 붙들고 있는 건 ‘다들’이 아니지요.”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항해하는 구름을 찾으며 선장은 위를 응시하고, 다른 이들은 잠시 이야기 속으로 모습을 감춘 선원을 찾아 아래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사건의 전말에 대해 가장 아는 것이 적은 그가 이야기의 끝으로 향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렇듯 관객의 시선이 이쪽으로 돌아오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작가의 말
 

 어떤 문제를 끝까지 풀지 않고 도망치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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