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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아리따운 주꾸미야
작가 : 정민
작품등록일 : 2019.9.5

천신에게 바칠 제물을 해신이 가로챘다. 두 신의 줄다리기 속에 새우등 터지는 '그 제물', 인간처녀 주욱금의 이야기.

 
수중궁궐 (3)
작성일 : 19-09-12 23:35     조회 : 200     추천 : 0     분량 : 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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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

 

  "단단히 미치셨습니다."

 

  예정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나에게 눈물 쏙 빠지게 혼쭐나는 일. 욱금은 제 죄를 아는 강아지처럼 어깨를 한껏 움츠린 채 사나의 잔소리를 들었다. 내용은 대강 이랬다. 겁도 없이 바깥을 혼자서 돌아다니느냐, 왜 저에겐 알리지 않았느냐, 물론 알려도 허락하지 않았을 거다, 등등.

 

  "지능 낮은 잡귀들은 만만해 뵈면 공격부터 합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데요. 제 당부는 허투루 들으신 겁니까?"

 

  잡귀는 육지로 치면 들짐승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 어젯밤의 욱금은 멧돼지 나오는 산속을 겁도 없이 돌아다닌 어린아이와 다름없었다.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던 욱금이 문득 의아함을 느낀 건 그 다음이었다. 해신이라는 자가 바다세계의 사람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는데, 왜 아직 내가 인간이지? 바다 밑에서 숨도 쉴 줄 아는데?

 

  "나 아직 바다의 사람이 아니에요?"

  "아닙니다. 바다의 사람이 되려면 이곳의 주인, 해신 이각타님을 정식으로 받아들여야 하거든요. 그래서 바다에서 태어난 것들은 모두 성년이 되기 전에 그분의 피를 마셔요."

  "피, 피요? 윽…."

 

  욱금은 저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했다. 곱게만 자라지는 않은 그녀였지만 딱 한 가지 질색하는 게 있다면 시뻘건 피였다. 아니, 질색의 수준이 아니라 몸이 거부했다. 기억할 수 없는 어떤 일에 의해서 그녀는 뚝뚝 흐르는 피만 보면 정신을 잃는 체질이 됐다.

 

  그런데,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그걸 마셔야 한다고. 마시지 않는다면 한낱 잡귀에게 쫓기는 몸으로 살아야 하는 거고.

 

  "…혹 다른 방법은 없나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본 질문에 사나는 똑 부러지게 답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분을 받아들이면 되죠. 피가 아니더라도 입맞춤으로 타액을, 혹은 몸을 섞어서 정…"

  "잠깐! 잠깐만!"

 

  욱금이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사나의 말을 멈추자, 사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순수하게 '왜 이러시지?' 하는 얼굴이었다. 그런 사나에게 충분히 알아들었다고 손짓하면서, 욱금은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 내뱉지 말라고요!

 

  아무튼 욱금은 바다의 사람이 되는 문제는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피를 마시는 것은 분명 위험하다. 몸이 어떤 거부반응을 일으킬지 모른다. 그렇다고 데면데면한 사내와 입을 맞추거나 몸을 섞는 것도 제정신으로 할 일은 아니잖은가. 그가 얼마나 위험한지 지난밤에 온몸의 촉으로 느껴놓고.

 

  앞길이 막막하여 한숨을 폭 내쉬는데 별안간 처소 밖에서 소란이 들렸다. 욱금이 돌아보기도 전에 사나가 먼저 귀를 세우더니 사색이 되었다. 무슨 일이지. 욱금도 덩달아 숨죽이고 바깥복도에 귀를 기울였다.

 

  어쩐지 밖에서는 사나를 애타게 찾는 다른 선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마치 어딘가에 위급상황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기어이… 올 것이 왔어요."

  "네?"

 

  욱금이 되물었지만 사나는 못 들은 듯 벌떡 일어났다. 어리둥절한 욱금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신신당부 하고, 그녀는 급하게 물거품으로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욱금은 왠지 여느 때와는 다른 불안감을 느꼈다. 뭔가 거대한 맹수가 저 멀리 어디선가 저를 노리고 있는 듯 하는 기분. 이건 '약자의 촉'이다. 그녀는 창문을 모두 닫고 이불을 돌돌 말아 몸을 숨기며, 속으로 울부짖었다.

 

  '도대체 또 뭐냐고!'

 

 ***

 

  철썩!

 

  이각타의 얼굴에 정확히 날아든 그것은 천계에서 내려온 공문이었다. 단단한 목각판으로 된. 모서리로 가격당한 이각타의 뺨에는 생채기가 생겼다가, 금방 비늘이 되어 스러졌다.

 

  바로 앞에는 지신 나실이 씩씩거리며 서있었다. 흙덩이처럼 다부진 몸, 그 몸을 무겁게 감싸는 금빛 비단옷. 눈부실 만치 빛나는 그녀가 바로 목각판을 던진 장본인이었다.

 

  "여기 적힌 게 사실이야? 사실이면 넌 뒤졌어."

 

  이각타는 바닥에 떨어진 목각판을 주워들었다. 공문의 내용은 지난번 이각타가 서신으로 받은 내용과 같았다. 해신 이각타가 천신에 바친 제물을 훔쳐 신세의 질서를 해쳤으므로 원칙대로 처리할 예정. 열이레 뒤에 천계에 전원 소집.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목각판에는 천계의 공식 입장임을 증명하는 각인이 존재했다. 즉, 천‧지‧해의 신과 각료 모두가 한자리에 모일 것을 '강제'하는 것이다.

 

  이각타는 대답 대신 침묵했다. 무언의 긍정을 의미했다. 그가 뭐라도 변명하길 기다리던 나실은 결국 분노를 터뜨렸다.

 

  "미친 새끼! 네가 뭐라고 유와를 긁어? 게다가 너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다가 뭔 죄야? 가뜩이나 일도 많은데 이깟 이유로 소집이나 되고!"

 

  근처의 땅이 모두 흔들렸다. 지신이 격노한 까닭이었다. 이각타 역시 인상을 구기며 제 주위로 물보라를 일으켰다. 가만히 듣고만 있기 짜증난다는 듯.

 

  그렇게 두 파동이 만나자 이각타의 집무실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나실님!"

 

  두 신을 황급히 막아선 이는 물거품과 함께 나타난 사나였다. 그녀가 눈앞의 대치 상황을 보자마자 주저 없이 뛰어든 덕분에 흔들림이 잦아들었다.

 

  다만 나실은 아까보다도 불쾌한 표정이 되어 사나를 경멸하듯 쳐다보았다.

 

  "넌 오래도 이곳에 붙어있네. 이젠 물밑이 더 익숙하니?"

  "나실."

 

  이각타가 낮은 목소리로 나실을 제지했다.

 

  "돌아가."

  "싫은데? 지랄하러 온 김에 할 말은 다 해야지."

 

  그렇게 말하는 나실의 얼굴은 눈에 핏줄이 설 정도로 살벌했다. 그녀를 수천 년 가까이 봐온 이각타였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제 성질대로 설치게 놔두는 게 지금은 나으려나.

 

  나실은 그런 이각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멱살을 붙잡았다.

 

  "뱀 같은 새끼야, 네 사람이나 잘 챙겨. 자꾸 뭘 빼앗아 갈 생각 말고."

  "…몇 번을 말하지만 그땐,"

  "닥쳐!!!"

 

  지신의 일갈에 뒤에 물러서 있던 사나까지 움찔했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포효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 변명도 이제 지겨워."

  "……."

  "긴 말 안 해. 인간 계집 숨겨놓은 장소나 불어."

 

  나실이 하는 대로 잠자코 있던 이각타는 드물게도 서늘한 표정이 되어 그녀의 손을 쳐냈다.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는 나실에게 그는 쌀쌀맞게 물었다.

 

  "그 애의 행방을 네가 알아서 뭐하지?"

  "몰라서 물어? 당장 천계로 올려 보낼 거야. 소집이고 뭐고 구태여 할 일 없게. 분명 네가 직접은 안 할 테니까, 내가."

  "유와의 성정을 모르나? 천계로 보내도 소집되는 건 똑같아."

  "그 성정을 아는 새끼가 이딴 짓을 해?!"

 

  두어 마디를 못 넘기고 나실은 또 다시 분노해버렸다. 이각타의 변덕과 뻔뻔함에 그녀는 늘 그렇게 치를 떨어왔다. 그와 유와의 사이에서 중재하느라 곤욕을 치르는 이는 늘 그녀였으니까. 특히 문제를 일으키는 쪽은 항상 이각타였다. 아주 옛날부터, 아니, 태초부터 그랬다. 이렇듯 나실의 모든 원망은 이각타를 향해 있었다.

 

  기싸움을 끝낼 기미가 안 보이는 두 신의 지척에서 사나는 언제라도 뛰어들 수 있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온몸으로 막아야 하니까.

 

  허나 그 '무슨 일'은 얼마 안 가 뜻밖의 곳에서 발생했다. 별안간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겁도 없이 뛰어 들어오는 이는, 아까 사나가 이리로 달려오며 욱금의 신변 보호를 대신 맡겨둔 어린 보좌였다.

 

  "사, 사나님! 인간, 그, 인간 계집아이가 지금…!"

 

 ***

 

  늘 한적하던 욱금의 처소에 인영이 넷이나 서있었다. 이각타, 사나, 그리고 사나의 물거품을 막무가내로 타고 온 나실. 마지막으로 이각타가 멱살 잡고 데려온 의원까지. 침대에는 인간 욱금이 누워있었다. 열 올라서 땀을 뻘뻘 흘리는, 신세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으로.

 

  "이 땅에 독초가 워낙 흔하여 인간의 육신으로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진맥을 마친 의원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조금 힘겨워 보이기는 해도 그냥 자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두 신에게 예를 갖추고 자리를 떴다.

 

  전날 밤 욱금이 길을 잃었던 후원에는 독초가 무성했다. 헌데 초목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해박한 욱금이 중독 증세를 몰라봤던 까닭은 신세에만 자라는 낯선 독초가 많기 때문이었다. 이각타나 사나를 비롯한 일반 선인들에게는 영향을 미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한 존재들이라 미처 조심시키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나마 직접 섭취한 게 아니라 근처를 지나가며 피부에 스친 정도여서 독 기운은 아주 미약하게 올라왔다. 그 상태에서 환기될 틈 없이 이불을 뒤집어쓴 게 문제였지만.

 

  이각타는 신음하며 뒤척이는 욱금의 곁을 말없이 지켰다. 나실은 사태를 관망하듯 벽에 기대서서 둘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모른 척하던 이각타가 결국 거슬려 고개를 돌릴 만큼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그러나 그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그녀가 먼저 말했다.

 

  "도통 모르겠군."

  "뭐를?"

  "이 계집의 이용가치 말이야."

 

  이각타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만 한 번 으쓱이고는 욱금을 다시 돌아볼 뿐이었다. 이용가치 따윈 없고, 단순한 변덕일 뿐이라는 제 주장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듯. 그러나 나실은 그것을 결코 믿지 않았다.

 

  "네가 유와를 아는 만큼, 나는 너를 알아."

 

  넌 늘 변덕인 척 뒤로는 일을 꾸미는 놈이라고. 나실은 뒷말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이각타 스스로도 잘 알 테니까. 이제는 그녀도 잘 알고. 지난날 그녀는 몇 번이고 속지 않았던가.

 

  '그러니 인상착의를 확인해둔 것만 해도 큰 수확이지. 이런 보잘것없는 인간을 훔쳐간 이유를 여태 모르니.'

 

  그리 생각하기에 나실은 아까 으름장 놓던 것과 달리 욱금을 천계로 올려 보낸다며 난동 피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상당히 오랜만에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고' 제 영역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처소를 나서기 전 그녀는 문득 생각난 듯 이각타를 돌아보았다.

 

  "이건 진심으로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음. 네가 나를?"

 

  이각타는 우습다는 듯 킥킥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실은 정색한 표정 그대로 경고했다.

 

  "설마 소집명령마저 무시할 생각은 마."

 

  그리고 그녀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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