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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내 손가락의 남은 시간
작가 : 모험
작품등록일 : 2019.9.3

"제가 당신께 드릴 능력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입니다. 언제든 저를 떠올리며 시간을 되돌려달라고 비는 순간 전 당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해줄 겁니다. 당신이 능력을 사용하고 지불할 대가는 [당신의 신체의 일부, 손가락] 을 주십시오."

.. 예기치 않은 악마와의 만남을 통해 얻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 허나 능력에 따른 대가는 어마어마 했다

 
2부 2회 - 재회
작성일 : 19-09-11 09:22     조회 : 176     추천 : 0     분량 : 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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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영주는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하얀 피부에 짙은 눈썹. 연예인을 보는 듯한 오뚝한 콧날과 립을 바른 듯 붉은 입술의 전형적인 미남. 검은 정장을 입은 그는 무작정 영주의 옆에 앉았다. 꿈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의 전개에 실컷 신이 날 만도 했지만 표정엔 변화하나 없이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오히려 미남이 아니었으면 긴장되고 쑥스러웠겠지만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의 미남이어서인지 TV를 보듯 자연스러웠다.

 

 남자는 사근사근한 미소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주었고 영주 역시 처음 갖는 단둘만의 술자리를 능숙해 보이듯 넘겼다. 어느새 한 병을 비우고 두병을 넘어설 때쯤.. 영주는 필름이 끊겼다.

 

 어느새 아침.. 영주는 밝은 빛에 눈부셔하며 잠을 깼다. 두꺼운 이불 속에 벌거벗은 채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지만, 옆에 사람이 누워있음을 알고는 조용히 주변을 확인했다. 미세한 담배 향이 페브리지 향기와 함께 뒤덮여 있는 냄새가 나는 이곳은 모텔. 작은 창문 틈 속에서 비쳐오는 햇빛.. 조그만 화장대와 커다란 침대 속에 속살까지 하얀 사내가 누워있었다. 옆에 있는 사내는 어제 그 미남이었다.

 

 '내.. 첫 경험.. 아프다더니 아니네?'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침대보를 확인하고는 어제 일을 기억하려 애쓰지만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둘은 관계를 나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음침한 자신의 본모습을 밝은 햇살 아래서도 웃으며 안아주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순 없었다. 그렇게 영주는 깊이 빠져버렸다.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까지 겨우 반나절. 생전 처음 갖는 사랑의 감정이 반나절을 마치 1년처럼 길게 만들었다.

 

 '하루가 너무 길어..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은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지?'

 

 비단 사랑에 빠진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연예인 같은 외모의 그와 만나는 것은 영주에게 있어 그 누구도 못하는 가장 특별한 경험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악마와 무시무시한 계약을 했지만, 그녀는 이제 갓 성인이 된 20대 초반의 여대생에 불과했다.

 그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영주를 찾아 왔고 그녀는 갓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을 하고는 그를 맞이하였다.

 

 둘은 카페에 들어가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여전히 다정하고 젠틀한 그의 모습에 영주의 볼이 발그레 해질 때쯤 그가 이상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귀신을 믿으세요?"

 "네?"

 

 뭐지? 왜 갑자기 귀신에 대해 묻지..?

 

 "귀신을 믿냐고요?"

 "네."

 

 영주는 잠시 생각했다. 음침한 자신의 모습에서 악령을 믿는 컬트 한 여자라 생각된 걸까? 하지만 굳이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실제로 영주는 악마와 계약까지 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네. 전 믿어요."

 

 그때 알아챘다. 그가 자신의 손가락을 힐끔거리며 보고 있었다는 것을. 놀란 영주는 황급히 손을 테이블 밑으로 숨겼다.

 

 "이건. 문신이에요."

 

 영주의 말에 그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알고 있어요. 열 손가락에 모두 문신을 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 쳐다봤습니다."

 

 그때 바라본 그의 눈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묻는 짓궂은 남자아이 같았다.

 

 "최.. 최근에 했어요. 저도 이제 특별히 살아보고 싶어서요."

 "그러셨군요. 어디서 했어요?"

 

 영주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 자꾸 물어볼까? 혹시 이 문신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인가? 영주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몰라도 돼요. 늦어서 이만 들어가 봐야겠어요."

 

 그녀의 말에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그래요.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영주는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슴이 아파졌다. 이래봤자 손해는 자신의 몫. 목이 빠지게 기다려서 만난 뒤 겨우 한 시간 만에 헤어져야 하다니. 차에 타서 집으로 향하는 길이 어찌나 아쉬운지 모른다.

 

 그렇게 아무 말없이 운전하는 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차 안을 훑어봤다. 차에 대해 전혀 모르는 영주에게도 이 차는 비싼 외제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돈도 엄청 많은가 보네.. 이렇게 완벽한 남자가 왜 나를 만날까?'

 

 힐끔 그를 쳐다보았다. 옆모습까지 완벽하다. 날카로운 턱 선 밑 와이셔츠 옷깃을 지나 단단해 보이는 팔뚝. 그리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핏줄 선 손목까지..

 

 '손목에?'

 

 영주는 깜짝 놀랐다. 운전대를 잡느라 드러난 그의 손목에 이상한 무늬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저 문신.. 무슨 무늬지? 어디서 본 것만 같은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봐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와 서먹하게 헤어진 후 집에 돌아와 누웠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아까 그 무늬가 맴돌아 잘 수가 없었다.

 

 '아! 혹시..?'

 

 영주는 예전에 손가락 문신에 깨알같이 그려진 무늬를 확인하려 사용했던 돋보기를 찾아 자신의 손가락을 비춰보았다. 이럴수가! 손가락에 새겨진 희한한 문자는 아까 남자의 손목에 그려진 문신과 동일했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갔다. 저렇게 완벽한 남자가 왜 자신을 만났던 건지.

 

 '악마였어.. 한 달 동안 아무 짓도 안 하니까 직접 변장해서 온 거야. 그러고 보니 하얀 피부에 빨간 입술도 악마와 똑같고 항상 입고 있는 검은 정장에.. 젊은 나이임에도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걸 보면 내 손가락을 노리고 다가온 게 틀림없어! 이.. 개자식!'

 

 절로 이가 갈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런 줄도 모르고.. 첫사랑인 줄 알았건만..'

 

 분노와 함께 슬픔이 몰려왔다. 아니, 어쩌면 분노보다 슬픔이 더 컸었나 보다. 단 두 번의 만남이었지만 영주는 그에게 완전히 빠졌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치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악마에게 빼앗긴 듯한 기분은 영주를 더욱 힘들게 했다.

 

 '두고 봐.. 이 악마 새끼..'

 

 

 ***

 

 

 다음날 밤 그가 다시 찾아왔다. 영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따라나섰고 차 안은 어젯밤처럼 조용했다.

 

 "왜 저를 만나시죠?"

 

 영주의 단도 진입적인 물음에 그가 놀란 듯 쳐다봤다.

 

 "사귀는데 이유가 따로 있나요? 좋은 감정이 생겼고 계속 만나고 싶다는 마음. 그것뿐이죠."

 "사실 저도 알고 있어요. 제가 남들과는 다르게 기분 나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 저에게 좋은 감정이 생겼다고요?"

 "네. 전 취향이 독특하거든요."

 

 그의 말에 순간 화가 치밀었다.

 

 '이 악마 새끼가..'

 

 당장 욕설을 내뱉어 주고 싶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구보다 깊게 사랑했던 그의 얼굴을 마주 보니 차라리 악마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제. 제 손가락에 새겨진 문신에 대해 물어보셨죠?"

 "네."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이 문신에 대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영주는 그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 손에 그려진 문신. 처음엔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저도 제 문신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오늘 알게 됐어요. 같은 모양의 문신이라는걸요."

 

 정적이 흘렀다. 언제나 대본을 읽듯 순순히 물음에 답하던 그가 망설이고 있었다. 순간 흐르는 알 수 없는 공포. 주변을 둘러보니 차는 인적 드문 곳을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끼이익!

 

 그는 차를 갓길에 급정거하더니 싸늘한 시선으로 영주를 바라보았다.

 

 "알고 있었던 것. 네. 사실 저는 그 문신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맞았다! 이놈이 악마가 분명하다!

 

 "그럴 줄 알았어! 왜 내 앞에 나타났지? 내가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서 수작을 부리려 한 거야?"

 "어떤 능력 말인가요?"

 

 영주는 기가 막혔다. 시치미 떼는 꼴이라니.. 악마임을 숨기다 영주의 입에서 실수로 나온 말들을 빌미로 능력을 사용하게 하려는 게 분명했다.

 

 "그럼 그 골목도 모른다고 하겠네?"

 

 순간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정곡을 찔린 듯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골목.. 어느 골목 말씀하시는 거죠?"

 "성수동 315번지. 우체국 옆 골목.."

 "지번으로 말하니 위치를 잘 모르겠군요."

 "좋아. 그럼 직접 한번 가보지. 그래?"

 

 그는 잠시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내쉬곤 말했다.

 

 "네. 좋습니다."

 

 그는 거칠게 차를 몰아 그 골목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고 악마와 같이 있다는 생각에 문득 불안함이 몰려왔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악마라면 분명 무슨 짓이든 할게 분명한데.. 내가 괜히 몰아붙인 게 아닐까?'

 

 영주는 힐끔 그를 쳐다보았다. 전에 보았을 때 보다 분명 심각해 보였고 운전 또한 거칠어졌다. 드러내진 않지만 화가 난 게 분명했다.

 

 갑자기 오한이 일고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 아냐. 난 아무 잘못 한 게 없어. 이놈은 분명 계약대로만 행동할 거야. 정신 차리자.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돼. 이 일을 계기로 우습게 보일 여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해!'

 

 차는 곧 성수동에 도착했고 골목이 있는 갈림길에 세웠다. 크게 심호흡을 차에서 내린 뒤 먼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여기.. 이 골목. 다시 왔네요."

 

 그곳엔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는 골목이 있었다. 악마와 만나 계약을 진행했던 곳. 영주에게 특별한 삶을 약속했던 곳.

 또다시 그 골목을 향해 들어갔고 곧 그가 따라들어왔다.

 

 

 텁.

 

 그가 갑자기 영주의 손을 붙잡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앞서가는 엄마의 손을 잡듯 그는 하얀 손을 내밀어 붙잡았지만 영주는 바로 쳐내버렸다.

 

 "뭐예요! 제 몸에 손대지 마세요!"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그녀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함부로 접촉한 것에 대해 화를 내며 말했다. 그리고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의 표정이 공포에 질려 있다는 것을.

 

 그리곤 골목 안으로 한참을 들어가서야 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정체를 드러내시죠.."

 

 그의 얼굴엔 많은 게 담겨있었다. 긴장, 공포, 불안함. 무서움에 잔뜩 경직되어 있는 표정이었지만 눈빛만은 반짝거렸다.

 

 "왜 내 앞에 나타난 거죠? 어떻게든 능력을 쓰게 하려는 수작인가요?"

 "아닙니다. 능력이라뇨?"

 "시치미 떼지 마세요. 여기까지 왔는데 모르는척할 필요 없잖아요?"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영주가 아닌 어딘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갑자기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린 채 영주의 뒤편 어딘가를 응시하며 겁에 질린 듯 떠는 모습. 영주는 그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뒤돌았다.

 

 그곳엔 악마가 서있었다.

 

 "꺄아아아악!"

 

 영주는 너무 놀라 절로 비명이 흘러나왔다. 저놈이 왜 저기 서있지? 그렇다면 이 사람이 악마가 아니었던 건가?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정신없이 오고 갈 때 악마가 입을 열었다.

 

 "크크크크크큭. 또 오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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