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애원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그곳에 있는 친구들의 이름도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서서히 적응해갔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누군가의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야 된다는 게 그 나이로써는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그런대로 잘 지냈다. 한 달이 지났을 때쯤, 그곳에 있는 언니, 오빠, 동생들의 이름을 얼굴과 같이 머릿속에 매치 되었고 이틀마다 바뀌는 보육교사도 기억하게 되었다.
보육교사는 총 8명으로 남자부와 여자부, 유치부 방으로 나뉘어 각 방에 한두 명의 보육교사와 지냈다. 남자부 방은 인원수가 많았기 때문에 두 명의 보육교사가 계셨고, 그나마 인원이 적은 유치부 방과 여자부 방은 한 명의 보육교사와 지냈다.
매달 이틀마다 보육교사가 바뀌었는데, 어느 때에 어떤 보육교사가 담당할지 우리는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좋은 쌤이면 좋아했고 좋지 않은 쌤이면 실망을 하며 싫어하기도 했다.
나와 쌍둥이인 동생은 6살이었기 때문에 유치부 방에서 지냈다. 언니는 8살 이었지만, 우리가 많이 우는 바람에 언니도 같이 유치부 방을 잠시동안만 쓰기로 했다.
매번, 같은 시간에 종이 항상 울렸다. 그 종이 울리면 우리는 밥을 먹거나, 무슨 일이 났거나, 둘 중 하나였다. 가끔 간식을 대용으로 주면서 먹으라며 종을 치기도 했지만 대부분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오래된 거였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그런 걸 알 리가 있나.. 우리는 좋아라 하고 먹기만 했다.
때론 남자애들이 종을 쳐서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하도 많이 쳐서 진짜 종과 장난치는 종을 헷갈려 밥을 못 먹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갈수록 우리는 무엇이 진짜 종이고, 무엇이 장난 종인지, 구별 할 수 있었다. 바로 시계를 보며 구별하는 것이었는데 그곳은 항상 정해진 시간에 종이 울렸기 때문에 그 시간 외에 다른 시간에 울리면 그 종은 장난 종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게다가 장난 종은 치는 간격이 땡 땡 땡 하고 짧은 간격이라면, 진짜 종은 때땡때때땡 하고 시끄럽기 짝이 없는 긴 간격이라 구별하기가 쉬웠다.
미애원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는데 어떠한 자유도 얻지 못한 채 우리는 누군가의 꼭두각시처럼 지내야만 했다. 그곳에 있던 동생들과 언니, 오빠들 역시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복종하며 순종했다.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이 낮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고, 높은 사람들이 나이가 많다 해도 몸이 불편하다거나, 지능이 낮으면 무시는 기본, 욕설과 손가락질까지, 장난 대상처럼 여겨졌다. 심지어는 화풀이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여기저기서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울음소리와 고함소리가 매번 들렸다. 하지만 울리 모두 다 쳐다볼 뿐,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물론 보육교사마저도...
엄마는 일주일만 지나면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일이 있겠지, 못 올 이유가 있겠지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깊숙이 상처만이 남았고, 실망만 할 뿐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를 의지한 채 지냈다.
일주일이 1년 같았고, 1년이 100년 같았던 날이 계속되면서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9~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미애원에서 지냈다..
어떠한 자유도 얻지 못한 채 우린 그렇게 계속 계속...
유치부 방에서 혼자 침대에 걸터앉아 넋 놓고 있었는데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우리의 이름 소리가 들렸다.
“쌍둥아~ 엄마 왔다~~”
‘엄..마?..’
엄마가 왔다는 그 말이 정말로 기쁘게 느껴졌다.
드디어 우릴 데리러 왔구나, 이제 엄마랑 같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버선발로 엄마한테로 달려갔다.
하지만 내가 너무 기대했던 것일까..
잠깐 얼굴 보러 왔다는 말에 급격히 실망했다. 기대한 게 컸기 때문에, 엄마를 보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기에 더더욱 실망이 컸다.
하지만 그 실망한 마음을 엄마한테로 보여드리기가 싫었는지 애써 웃으며 기뻐했다. 그래도 온 게 어디야, 얼굴 잠깐 보러 온 게 어디야.. 하며 계속 마음속으로 세뇌 이며 엄마와 언니, 그리고 동생과 같이 밖에 잠깐 나갔다 오기로 했다. 엄마와 빨리 헤어지기가 싫어 굳이 가까운 길을 놔두고 일부러 거리가 먼 길을 선택하면서 걸었지만, 결국엔 우리의 발걸음은 미애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엄마와 헤어지기 전, 엄마는 맛있는 걸 사 주시겠다면서 마트로 들어가셨다. 우리는 그것도 좋아라 하며 싱글벙글하며 쫄래쫄래 따라 들어가 먹고 싶은 걸 골랐다. 나는 그새 ‘맛있는 거’ 하는 거에 기뻐 기분이 좋아 아무것도 모르고 신나게 과자를 고르며 좋아했다. 언니와 동생 역시 과자를 골랐는데 그 과자들을 사 주시면서 다음에 또 보자며 헤어졌다.
정확히는 기억나진 않지만, ‘돈돈’이라는 초콜릿과 비슷한 모양의 비타민 같은 것으로, 원기둥 모양 통에 담겨져 있는 과자를 택했다. 그때 시대를 생각하면 내가 느끼기엔 조금 비싼 감이 있었는데 나는 비싸고 저렴하고를 떠나 겨우 ‘먹을 거’라는 하나에 좋아라 했다. 나중에 일어날 일도 모른 채 말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때 엄마가 과자를 보며 좋아라하는 우릴 보고 뭐라고 생각하셨을까.. 비싼 과자를 고르는 날 보며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계산을 하면서도 엄만 무슨 생각을 하며 계산하셨을까..
어린 게 비싼 건 알아가지고.. 했을까..
그래.. 내 딸인데 이거 하나 못 사줄까 봐.. 했을까..
돈도 없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비싼 걸 고른 날 보고 얼마나 미워했을까..
그런데 난,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라만 했네.. 진짜 바보같이...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의 엄마의 얼굴을 말이다.
웃고는 있지만, 어딘가 힘들어 보이는, 어딘가 지쳐 보이는 우리 엄마만의 표정을 말이다..
엄마.. 그땐 정말 미안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너무 죄송하고,
비싼 걸 고른 나의 선택이 너무 후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