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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아리따운 주꾸미야
작가 : 정민
작품등록일 : 2019.9.5

천신에게 바칠 제물을 해신이 가로챘다. 두 신의 줄다리기 속에 새우등 터지는 '그 제물', 인간처녀 주욱금의 이야기.

 
수중궁궐 (2)
작성일 : 19-09-10 18:33     조회 : 177     추천 : 0     분량 : 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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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엿새를 지내는 동안 욱금은 저에게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 없음에 감탄했다. 욱금을 데려온 장본인인 이각타는 그녀의 존재를 잊은 듯 코빼기도 안 비쳤다. 당장이라도 해코지할 것처럼 굴던 막자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보필을 맡은 사나만이 욱금의 곁을 지켰는데, 딱 한 가지 놀랍도록 바뀐 사정이 있다면…

 

  "인세에는 그런 새끼가 다 있답니까? 그래서 어찌 됐는데요!"

  "조졌어요. 울 할매가 싸리회초리 들고 쫓아가면 고것들 자지러졌거든요."

  "아하하! 꼴좋다~"

 

  욱금이 사나의 '호의 범주'에 확실하게 들었다는 거였다. 즐겁게 웃는 사나를 보며 욱금은 저도 함께 웃어버렸다. 그리 차가운 아이는 아니라던 이각타의 말뜻이 이런 거였을까?

 

  첫인상과 달리 사나는 웃음이 많으며, 골 때리게도 농땡이를 무척 좋아했다. 그녀는 하루의 팔 할을 이각타의 보좌에, 나머지를 욱금의 보필에 썼다. 두어 시진 남짓이지만 어찌나 알차게 쓰고 가는지. 지금도 침대에 누워 인간세상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는 사나를 보며 욱금은 꼭 경계 풀린 새끼고양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알기라도 하듯 사나는 침대에 걸터앉은 욱금의 허리를 껴안고 말했다.

 

  "아무튼 신세엔 그런 놈은 없을 겁니다. 멋대로 여인을 취하려 들다뇨!"

 

  욱금은 속으로만 피식 웃었다. 없기는요. 당장 생각나는 남자가 벌써 하나 있는데. 그러고 보니 그 남자, 아니, 그 신은 대체 열흘이 다 되도록 뭐하는 거야?

 

  양반은 못 되는지, 때맞춰 사나의 주위로 물보라가 일었다. 물보라의 의미는 상황에 따라 다양했는데, 이 경우는 이각타의 부름을 뜻했다. 사나는 아쉬운 듯 욱금에게 눈인사를 건네고는 순식간에 그 속으로 사라졌다. 사라지기 전, 의례처럼 하는 당부를 재차 남긴 채.

 

  "처소를 벗어나지 말아요."

 

  사나가 떠난 자리에 물보라마저 흩어지고, 적막만이 남았다. 이제 또 한참 뒤에나 오겠지. 혼자가 된 욱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너른 방은 아름답지만 쓸쓸했다. 사나마저 없으면 너무 고요해서 이따금 미칠 것 같기도 했다.

 

  '나가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천계로부터의 전언입니다."

  "줘봐."

 

  이각타는 사나의 손에 들린 서신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봉인을 아무렇게나 풀고 그 안의 내용을 쭉 읽어 내린 그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천계의 전언은 더없이 간결했다. 신세의 질서를 어지럽힌 죗값을 치를 것.

 

  "하여튼 짜증나는 자식들."

 

  한 세계를 다스리는 신에게 죗값이라는 표현을 써? 못내 불쾌하여 투덜거리면서 그는 서신을 더 살펴보았다. 서신 어디에도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할 때 쓰이는 각인이 없었다. 그러나 한 치의 오차 하나 없는 정갈한 서체는 분명 천신 유와가 직접 쓴 글씨였다. 아직 신세에 이 일이 퍼지지는 않았음을 의미했다.

 

  즉, 그것은 경고장이었다. 정식 공문을 내리기 전에 자진납세 하라는 의미로 보내는 것. 이각타는 잠시 생각했다. 유와라면 분명 오낭에게 원칙대로 처리하라고 주저 없이 일렀을 그림이 훤한데, 막판에 의사를 바꿔 이런 경고장까지 친절히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

 

  "어찌할까요?"

 

  이각타가 미동 없이 서신에 시선을 박고 있자 사나가 물었다. 이각타는 대답 대신에 서신을 부욱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두 조각 난 서신을 그대로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이대로 돌려줘라. 그러면 대답이 되겠지."

 

  사나는 찢긴 서신을 말없이 주워들었다.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 그녀는 서신을 품에 넣은 채 뒤돌아섰다. 물거품을 일으키려는데 이각타가 씩 웃으며 물었다.

 

  "보모일은 적성에 맞나?"

 

  사나의 몸이 움찔하고, 순식간에 물거품이 사라졌다. 이각타를 돌아보는 사나의 눈빛이 매섭기보단 새초롬했다. 마치 몰려오는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네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던데."

  "…그걸 엿듣고 계십니까."

  "질투 나서 그러지. 누구는 정무 보랴 바쁘잖나."

 

  훔쳐둔 보석을 감상할 새가 없어. 이각타는 손가락으로 업무일지를 톡톡 치며 덧붙였다. 행정 처리가 빼곡하게 기록되어있는 나무판이 발밑에도 그득그득 쌓여있었다. 개중에는 몇 달을 매달리다 열이 뻗쳐 집어던진 탓에 금이 쩍쩍 간 판때기도 여럿 있었다. 이를 주워 모아 동여맨 매듭은 사나의 솜씨였다.

 

  이각타를 응시하던 사나는 무표정한 얼굴 밑으로 약간 불만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무언가 말할 듯 보이던 그녀는 입만 살짝 벌렸다가, 결국 말없이 목례하고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

 

  사나가 해가 진 뒤에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밤은 욱금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나가고 싶다….'

 

  오늘은 그 열망이 마침내 터져버린 날이었다. 아무리 봐도 처소 밖을 돌아다니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일단 며칠을 지켜본 결과 위험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창밖으로 가끔 눈 마주치는 신세의 존재들은 욱금을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그러니 욱금 역시 얌전히만 다닌다면 잡음을 낼 염려는 없는 것이다.

 

  달빛마저 구름에 가렸을 때 욱금은 호롱불 하나 없이 처소를 나섰다. 약초꾼인 할매를 십년 가까이 따라다녔기에 밤눈에는 자신 있었다. 낯선 풀냄새를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그렇게 후원을 드나들고, 중문을 넘어서다가, 마침내 당도한 곳은…

 

  '…여기 어디지?'

 

  궁궐은 지나치게 넓었다. 욱금이 약초를 캐러 다니던 산보다도 훨씬 더. 한참을 더 헤매고 나서, 욱금은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젠장! 이렇게 넓을 줄 누가 알았냐고? 욱금은 입속으로 투덜대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동이 트길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해 뜨는 위치가 파악될 테고, 방향을 잡아서 돌아간다면 지금처럼 어려울 건 없다.

 

  끼익-.

 

  그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청설모 소리인가 했던 욱금은 얼마 안 가 이곳에 청설모가 있을 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귀 기울이고 있으려니 이는 점차 괴이한 소리로 변해갔다. 그와 함께 욱금의 심장도 요동쳤다. 할매를 따라다닌 이래로 밤을 무서워한 적은 없었는데, 그렇지만 그건 인간세상의 밤이 아니었던가. 신세의 밤은 무언가 달라도 한참 다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에 귓가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길 잃었지?"

  "으아악!"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욱금의 손목을 감아쥐는 이는 이각타였다. 그는 욱금의 비명소리에 도리어 놀란 표정이다가, 이내 상황 파악이 된 듯 웃음을 터뜨렸다.

 

  "무서웠구나, 주꾸미야?"

 

  …아니거든요! 라는 말은 입속에서만 나왔다. 부정해봤자 이미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으니까. 차라리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고 욱금은 고개를 틀었다. 그런 노력을 무시하듯 이각타가 눈짓 한 번으로 주위에 불을 밝혔다. 그제야 서로의 모습이 환히 보였다.

 

  치맛자락에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욱금은 생각보다 더 꼬질꼬질한 제 행색에 머쓱해서 헛기침을 했다. 흙을 털어버리려 이각타의 손을 슬며시 뿌리치니 그는 욱금을 놓아주는 대신 한 발짝 성큼 다가섰다. 그 탓에 흠칫 놀라는 그녀에게 그는 상냥하게 물었다.

 

  "처소로 데려다주랴?"

 

  분명 상냥한데… 욱금은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글쎄, 약초꾼 놈들 중에도 꼭 있지 않았던가. 하산이 늦어지면 곧장 집으로 갈 생각은 않고 꼭 '우리 집에서 감자 먹고 갈 테냐?' 하던 그 음흉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욱금은 저도 모르게 경멸하는 표정을 했다.

 

  "…귀여운 상상을 하는 모양인데, 주꾸미야. 너 위험할까봐 그러는 거다."

  "되었습니다. 혼자 가겠습니다."

 

  욱금은 이각타를 향해 콧방귀를 뀌어주고는 그를 지나쳐 타박타박 걸었다. 당당한 걸음걸이와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걷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이각타는 실소를 흘렸다. 허술하고 또 허술하다. 밤사이 얼마나 많은 잡귀들이 저를 노렸는지 알기나 하는 건지. 방금도 욱금의 뒤꽁무니를 쫓는 잡귀 하나를 겁주어 돌려보내고 오는 길임을 끝까지 모르려는 모양이었다.

 

  이각타는 너른 보폭으로 욱금을 성큼성큼 따라잡았다. 작은 어깨를 폭 감싸 안고서는, 욱금이 놀라서 뒤돌기도 전에 조용히 속삭였다.

 

  "동트겠다. 고집부리지 말고 이만 가자꾸나."

 

  물거품이 일었다. 욱금은 사방이 뒤흔들리는 느낌에 저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나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이 이각타의 품에 갇힌 채 제 침대 위에 떨어져있음을 발견했다. 이각타가 지척에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도.

 

  "……!"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 그 거리에서 이각타는 욱금을 가만히 보기만 했다. 욱금은 그런 그를 마주 쳐다보기 민망하여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잠시 후 그는 슬며시 미소 짓더니 물거품과 함께 그곳을 말없이 떠났다. 정말로 데려다주기만 하러 들렀다는 듯. 홀로 침대에 남은 욱금은 그제야 긴장이 탁 풀려 가까스로 숨을 내뱉었다. 다만 한동안 심장은 빠르게 진동했다.

 

  '위험한 사람인 건 확실해….'

 

  조심해야겠다고, 욱금은 저도 모르게 다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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