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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구름따라 날개따라
작가 : 늘리혜
작품등록일 : 2019.9.2

#과거 기억도 잃고 정인마저 잃고서 슬픔 속에 살아가던 운 앞에 옛 정인의 모습과 자꾸만 겹치는 정체불명의 소녀가 나타났다! 그 소녀의 고집으로 그의 호위무사가 된 운은 그가 데려가 달라고 하는 약속의 장소로 향하게 되는데...... "좋아. 데려다 줄게, 그 약속의 장소로. 그런데 말이야, 아가씨. 난 선불만 받는데 어떡하지?" "좋다. 너의 잃어버린 기억을 주겠다." 그렇게 가게 된 곳은 옛 정인이 죽기 직전 망가져버린 바로 그 장소인데......

# 외모가 비상한 남주 / 이따금 짓궂은 여주 / 닿을 듯 닿지 않는 두 사람

# 왜곡과 진실. 잊는 것과 잊히는 것. 그리고 기억에 대한 이야기

# 반드시 지켜야 하는, 잊어서는 안 되었던 소중하고 소중한 약속 이야기

 
5장. 잊지 못할
작성일 : 19-09-10 10:04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7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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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믐날 운은 하늘에서 나린 나린 공주와 함께 북쪽으로 향했다.

 지방의 경계를 나누는 한강을 건너기 위해 오른 배의 사공이 두 사람을 의심스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조금의 빛도 없는 완벽한 어둠의 날. 젊은 남녀 두 사람이, 그것도 수상할 정도로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고 있는 그녀가, 아무래도 평범치 않게 느껴졌을 터였다.

 한껏 가늘어진 채 운과 나린 공주를 번갈아 바라보는 사공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듯 나린 공주가 천진한 잿빛 눈동자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직 햇살에 마르지 않은 공기가 참으로 기분이 좋아요, 운. 그렇지 않나요?

 뱃머리에서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나린 공주의 표정이 상쾌해 보였다. 아직 그가 한요궁을 몰래 나와야만 하는 이유와 대체 어디를 가고자 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운의 입술도 부드럽게 휘었다.

 -저, 그런데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이신지요?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사공이 물었다. 그의 물음에 운이 망설였다.

 나린 공주의 정체를 밝힐 수 없었다. 나린 공주는 류국에서 가장 존귀하고 고귀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고작 호위라고는 한 사람만을 데리고서 이런 야밤에 이런 곳에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었다.

 -그러니까.......

 -사공에게는 저희 두 사람 어떻게 보이나요?

 천진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린 공주가 사공에게 되물었다. 되돌아온 질문에 사공이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사공이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하자 나린 공주의 눈동자가 더욱 커지며 반짝였다. 어떠한 대답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나린 공주의 표정이 부담스러운 듯 사공이 천천히 시선을 그에게서 돌렸다.

 -저, 그러니까....... 두 사람은....... 정인사이인가요?

 한참을 망설이다 사공이 대답했다. 그 대답에 운이 당황했다.

 -그렇게 보이나요, 사공?

 허나 나린 공주는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 그래서 운도 굳이 사공의 말을 바로잡아주지 않았다. 나린 공주가 웃었다. 그걸로 족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류국의 북쪽에 있는 수 지방에 있는 한 마을에서 묵었다. 나린 공주가 가고자 하는 곳을 그 때 들을 수 있었다. 운은 류국에 그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난 ‘현재‘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운을 만나고 운의 과거가 궁금해 졌어요. 당신과 함께 살고 싶어요. 내게 ‘과거’를 준 건 바로 당신이에요, 운. 내게 ‘미래‘를 준 것도 운, 당신이에요.

 허나 놀라운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날 밤의 일을 떠올리면 운은 꿈만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꿈이 되어 버렸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아주 잠깐 평범한 정인사이가 되어 마을을 돌아다녔다. 다시는 없을 소중한 순간. 한 순간 한 순간이 무척이나 소중해 운은 할 수만 있다면 이 순간을 뚝 잘라 보관해 두고 싶을 정도였다.

 -운, 이것이 시아식 때 류국인들이 쓰는 태조 류하랑의 가면이래요!

 -네, 아름답습니다.

 -뭐에요, 저보다도요?

 -그 어느 것도 공주님보다 아름답지는 못합니다.

 -음...... 아저씨 저희 이거 두 개 주세요.

 운이 말릴 새도 없이 나린 공주가 태조 류하랑의 가면 두 개를 구입했다. 그 뒤 시아식이 끝난지 보름이 지났으나 두 사람만의 한요궁 밖 시아식의 분위기를 즐겼다.

 가능하다면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막고 싶었다. 허나 시간이라는 것은 형체가 없어서 어떻게 막아도 그 작은 틈새 사이로 흘러버리고 말았다.

 그 장소로 나린 공주를 모시고 가면 안 되었던 걸까. 시간을 돌리고 싶어도 시간은 물과 같아 한 번 지나친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았다.

 가고자 했던 장소에 다녀 온 나린 공주는 망가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아니, 이미 망가져 있었다.초점이 사라져 버린 나린 공주의 잿빛 눈동자를 본 순간 운의 심장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미안해요, 운. 정말 미안해요, 운.

 나린 공주는 한요궁으로 되돌아가는 내내 인형처럼 그 말만을 되풀이했다. 되돌아가는 날은 그 날보다 달빛이 밝았음에도 그의 눈동자는 조금도 반짝이지 못했다.

 승평문 앞에 섰다. 나린 공주를 한요궁에서 빼낸 벌은 처음부터 달게 받을 생각이었다.

 -미안해요, 운. 정말 미안해요, 운.

 허나 나린 공주가 망가질 것이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제게 날아오는 수백의 화살과 서슬퍼런 검 앞에서도 당당하던 그였다. 그 어떤 바위보다 단단하던 그였다.

 승평문의 문을 열려는 순간 나린 공주가 운의 옷깃을 잡았다. 얼른 돌아보았다. 사라졌던 초점을 겨우 다잡으며 나린 공주가 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을 없애 줘요. 다시는 나와 같은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도록. 부탁해요, 운. 미안해요, 운.

 운은 그 순간 나린 공주를 위협하고 방해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곳에서 그의 존재를 깨닫고 충격을 받으신 걸까. 운은 나린 공주에게 반드시 당신을 지켜내리라 맹세하며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나린 공주가 미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제 말에 조금 안심이 되신 걸까.

 -운, 제가 당신께 주었던 그 검을 제게 다시 돌려주시겠어요?

 그 검은 운이 풍화대 대장이 되는 순간 나린 공주께서 직접 하사하신 검이었다. 그 검을 받은 이후 제 품에서 떨어뜨린 적이 한 순간도 없었다.

 나린 공주와의 많은 추억이 깃든 그 검을 운이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에게 건넸다. 아무리 그러한 검이라도 그 어떤 것보다 나린 공주와 나린 공주의 말이 훨씬 더 소중했다.

 -그리고...... 저를 잠시동안만 혼자 두지 않겠어요? 끝까지 제멋대로라 죄송해요, 운.

 흔들리는 나린 공주의 눈동자만큼 운이 망설였다. 허나 운은 나린 공주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운이 그에게 읍을 한 뒤 사라졌다.

 잠시라면 언제까지일까. 도대체 나린 공주는 그곳에서 무엇을 본 걸까. 무엇을 알게 된 걸까. 수많은 의문들을 뒤로한 채 운은 감기지 않는 눈을 겨우 감았다.

 다음 날 운은 제 눈을 의심했다. 믿을 수 없었다.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채 하루가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인 푸른 새벽. 나린 공주의 명이나 윤허를 받지는 못했지만, 꿀렁거리는 제 심장에 본능적으로 이끌려 만월전으로 향했다.

 만월전은 어수선했고 소란스러웠고 들려오는 소문은 경악스러웠다.

 저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동자를 무시하고 곧바로 나린 공주의 침소로 달려갔다. 심지어 저를 붙잡는 수많은 손들을 뿌리치고 나린 공주에게로 향했다.

 아무리 나린 공주의 명이라도 그를 혼자 두면 안 되었다. 그를 위협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 허나 후회를 해도 이미 늦었다.

 축 처진 팔과 피에 잔뜩 뭉쳐 더 이상 흩날리지 못하는 하늘빛 머리칼. 힘없이 감겨 있는 두 눈. 그리고......

 그의 가슴에 제 검이 꽂혀 있었다.

 -도망 쳐요, 운!

 무언가에 홀린 듯 그대로 그 장소에서 도망쳤다.

 나린 공주를 잃은 운은 지금 당장 제 목숨을 끊어서라도 그의 곁으로 가고 싶었다. 제 모든 것을 잃은 운이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허나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운은 맹세했다. 나린 공주를 죽게 만든 자를 반드시 찾아내어 그의 부탁을 들어주겠노라고. 그 맹세를 운은 아직 지켜내지 못했다.

 운이 나린 공주가 타계하고 세 해 동안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맹세 덕분이었다. 나린 공주의 마지막 그 부탁이, 나린 공주에게 맹세한 그 맹세가, 운을 삶으로부터 붙들어 주었다.

 운이 살고 있는 것은 오직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 * *

 

 운과 소녀,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하고 무거운 기류가 흘렀다. 사공만이 그 사이에 끼어 홀로 소리없이 허둥댔다.

 운, 이 나으리를 알고 지낸 지 세 해가 넘었다. 사공은 그믐날 두 사람을 대경에서 수 지방으로 데려다 준 이후 이상한 인연으로 종종 운과 마주쳤다.

 그 날 제가 본 그 아름다운 여인이 류국에서 가장 귀한 존재였던 나린 공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바로 나린 공주를 시해한 자로서 수배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더욱 어렵지 않았다.

 허나 그가 나린 공주를 죽였을 리 없었다. 달빛은커녕 별빛조차 희미한 그날 밤에도 나린 공주를 바라보는 운의 눈동자는 다정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사공은 운이 나린 공주의 시해자란 오명을 쓰고 수배자의 삶을 사는 것이 자기 일인 듯 분이 터질 때가 많았다.

 수배자가 되고 세 해란 세월이 흘렀다. 자신도 이토록 그 오명에 분통이 터지는데 당사자는 오죽할까. 그럼에도 운은 슬픈 티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천성이 밝은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라 처음에는 생각했다. 허나 사공은 티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슬픔이 너무 거대해서 그런 것이란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운이, 항상 밝고 개구지던 장군이, 나으리가, 이렇게 표정이 굳은 건 처음 보았다.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바꾸어야 했다. 숨이 턱턱 막혀 왔다. 사공이 지어지지 않는 미소를 애써 지으며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조금 더 먼 곳으로 이동할까요? 어디로 모셔다 드리면 될까요, 아씨? 아씨는 어느 지방 출신인가요? 수? 교? 훤? 연? 어디든 모셔다 드리겠습니다요!”

 얼굴은 웃고 있으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나름 이 무서운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환기시키기 위해 용기를 낸 것인데도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사공을 손톱만큼이라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가만히 운만을 지그시 바라보던 소녀가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나의 호위무사가 되거라.”

 사공이 재빨리 운의 표정을 살폈다. 소녀에게서 고개를 돌린 운의 입술과 눈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가면으로 얼굴이 반 이상 가려져 있었으나, 굳게 다물린 입술과 눈으로 그의 심정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었다. 이러다가는 세 해 동안 애써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이 폭발할지도 몰랐다.

 사공은 두 사람을 떨어뜨리기로 결심했다.

 “나으리, 나으리께선 잠시 후면 도착하는 곳에서 내리십시오. 아씨는 제가 안전한 곳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저를 믿으시고, 안심하고 내리십시오.”

 “싫다면?”

 갑작스러운 운의 말에 사공이 움찔했다. 그 말이 자신을 향한 말인 줄 알았다. 사공이 운을 보았다. 그의 시선이 어느새 다시 소녀에게로 향해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기가 허공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나의 호위무사가 되거라.”

 “그 말만 반복할 셈인가?”

 소녀가 다시 한 번 운에게 검을 내밀었다. 운이 소녀의 손등을 쳐 검을 날렸다. 검이 배의 반대편으로 날아가 빙글 제자리에서 맴돌았지만 배에 있는 어느 누구도 검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운이 잔뜩 흥분한 채 말했다. 운의 목소리가 그리도 높아진 적은 처음이었다.

 “저 검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모르면서, 지금 내게......”

 “안다. 알고 있다!”

 소녀가 운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운의 자칫 위협적일 수도 있는 말투와 행동에도 소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담담했다.

 소녀가 긴 속눈썹을 한 번 깜빡이더니 깊은 천청색의 눈동자로 운을 직시했다.

 “그래서 네게 저 검을 주려 하는 것이다.”

 “....... 헛...... 하하......”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상황에 오히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허나 몇 차례 뜨거운 헛웃음을 내뱉자 모순적이게도 가슴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러자 뒤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공의 염려스러운 눈빛이 느껴졌다. 날카롭던 운의 눈동자가 다소 온화하게 풀렸다.

 다시 소녀를 보았다. 아니, 정확히 소녀의 뒤 어딘가를 바라보는 운의 눈동자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건 슬픔과 그리움의 눈빛이었다.

 “마을까지만 데려다 줄게, 아가씨.”

 운과 소녀가 그렇게 배에서 내렸다. 그들이 발을 내디딘 대경과 접해 있는 수지방의 뭍은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폐허였다.

 두 사람 사이에서도 그처럼 고요하면서도 메마른 감정이 흘렀다. 앞서 홀로 걷고 있는 운을 소녀가 묵묵히 뒤따랐다.

 운으로서는 도저히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은 그 때의 그 길이었다. 나린 공주와 탈궁하여 그녀가 가고 싶다고 하던 곳으로 가던 길목. 한요궁 뒷문으로부터 여기까지 그 때와 똑같은 길을 걷게 되자 마음이 뒤숭숭했다.

 운은 그저 걸었다. 아무 말도 없이 걸었다. 이럴 때는 제 뒤에 있는 저 소녀가 말이 많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그 때는 밤이었다.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 그믐날 밤. 하지만 지금은 대낮이었다. 그 때와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 이상했다.

 그러다 문득 운이 이상함을 느꼈다. 심장이 물컹거리는 이상한 감정에 뒤를 돌아보았다. 어디에서도 소녀가 보이지 않았다.

 기회였다. 이대로 사라지면 그만이었다.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사이였다. 어차피 가까운 마을에만 데려다주고 헤어질 존재였다. 그런 꼬맹이, 어떻게 되든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무엇보다 제 코가 석자였다. 나린 공주의 일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다.

 폐허가 된 지 오래되어 보이는 마을 곳곳에 돌탑과 추모비가 보였다. 그 돌탑과 추모비가 모두 나린 공주를 향한 것 같아서 운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 이대로 사라지자. 운은 그렇게 마음먹고 그대로 그 곳을 뜨려고 했다.

 키이이이잉~

 그 때 운이 걸어온 방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운은 그 소리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건 마물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운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망설였다. 더 이상 소녀에게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이 곳을 조금이라도 빨리 뜨고 싶었다. 이제 그만 가면도 벗고 싶었다.

 그런데도 섣불리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답답했다.

 “젠장.”

 운은 그대로 제가 걸어왔던 곳을 되돌아갔다. 순식간에 내달려 소녀를 찾았다. 소녀는 배에서 내렸던 곳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마물이 있었다.

 제 보다 족히 세 배는 더 커보이는 마물이 제 앞에 있는데도, 혐오스런 모습과 함께 기이한 소리와 독한 냄새가 나는데도, 소녀는 마물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무서워 그대로 굳은 모양이었다. 운은 그대로 몸을 날려 제 검으로 마물을 베었다. 마물은 그대로 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그와 함께 운이 들고 있던 검도 급속도로 녹이 쓸더니 파스스 재가 되어 버렸다.

 “마물이라고! 왜 도망가질 않아?”

 운이 소녀를 향해 뒤돌아 소리쳤다. 그러다 흠칫 놀라고 말았다.

 마물과 맞닥뜨려 그리도 무서웠던 걸까. 천청색 눈동자 밑으로 투명한 눈물이 한 방울 주륵- 흘렀다.

 “아니, 저, 그러니까…….”

 “네가 구하러 올 줄 알았다.”

 울고 있는 주제에. 소녀의 작은 입술이 양 옆으로 가늘게 찢어졌다. 소녀가 눈물도 닦지 않은 채 운을 올려 보았다. 운과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천청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째서?”

 물어보아도 돌아올 대답은 뻔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눈동자에서 도저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너는 나의 호위무사이지 않느냐.”

 “난 분명 싫다고 했어.”

 “너는 내 호위무사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니까 어째서냐고?”

 소녀가 대답 대신 싱긋 웃어 보였다. 그 미묘하게 서글퍼 보이는 미소에 이상하게 운의 심장이 덜컹거렸다.

 “내게는 반드시 가야만 하는 장소가 있다. 내겐 결코 잊지 못할 약속이다.”

 잊지 못할.

 그 말이 운의 온 몸을 휘감았다. 운에게도 있었다. 잊지 못할 추억과 잊지 못할 악몽과 잊지 못할 맹세. 그것이 운을 살게끔 만들었다.

 운은 그 순간 이 소녀와 자신이 강하게 묶여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 6장. 보름달 아래 첫날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늘리혜입니다.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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