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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기록되지 않은 쐐기용사의 영웅담
작가 : SolaR
작품등록일 : 2019.9.1

인류는 ‘이레귤러의 시대’라 불리는 최악의 시대와 맞서며 끔찍한 고통을 견디어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괴물들, 생태계를 뒤바꿔버릴 정도로 지독한 이상기후, 그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인간들까지.
그러나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고통의 나날들 속에서도 누군가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을 누군가의 영웅담이다.

 
2장 불을 잃어버린 대장간의 대장장이(1)
작성일 : 19-09-08 16:22     조회 : 196     추천 : 0     분량 : 7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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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불을 잃어버린 대장간의 대장장이

 

 

 간신히 구색만을 갖춰 놓은 어설픈 경작지.

 

 논이니, 밭이니 하는 경작을 목적으로 한 땅들이 맞추다만 퍼즐처럼 조잡하게 짜여 있었다.

 

 곡괭이를 어깨에 짊어진 한 노인이 경작지 한복판에 서 있었다.

 

 초로에 들어선 노인은 규격보다 커다란 곡괭이가 어울릴 정도로 풍채가 좋았지만 어딘가 무기력해 보였다. 초점을 잃은 그의 눈은 경작지 너머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이작.

 

 사랄 왕국 국경에 위치한 이름 없는 마을의 촌장이었다.

 

 무너져가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한 그였지만 하늘이 무심하게도 그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견디다 못한 일부 마을 사람들은 도망치듯이 마을을 빠져 나갔다. 안 그래도 규모가 크지 않던 마을에는 아이작과 함께 밭을 일굴 최소한의 인력조차 부족해졌다.

 

 과거에 인연을 맺어두었던 빌헬름 상단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발버둥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돌파구가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허허. 이 마을에서 잎이 푸른 나무를 보게 될 줄이야. 개탄할 노릇이로고.”

 

 경작지 넘어 솟아오른 나무들을 보면 언제나 헛웃음만 터져 나왔다.

 

 내리쬐는 오후의 쨍쨍한 햇살과 짙푸른 녹음.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지극히 평화로운 오후의 풍경일 뿐이었지만 아이작에게는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었다.

 

 밀짚모자 틈으로 흘러내리는 땀에 눈이 아려왔다. 목에 감은 수건은 이미 땀에 절어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이작은 곡괭이를 바로잡았다.

 

 한탄만으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그가 짊어진 책임감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다.

 

 사실 이 마을은 이상기후가 일어나기 전에도 그리 윤택한 편은 아니었다.

 

 손님으로 대접받던 모험가가 화적으로 변모하기도 했고, 때때로 찾아오는 사막의 모래폭풍은 그간 일궈둔 삶의 터전을 간단히 뒤집어놓았다.

 

 그럼에도 아이작은 예전의 마을을 추억했다.

 

 모순되지만 고향땅에 서서 향수(鄕愁)를 느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아이를 봤으며, 그 아이는 같은 마을의 배우자를 만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딸을 안겨주었다.

 

 아이작은 서서히 차오르는 애잔한 감정을 외면하기 위해 곡괭이를 휘두르려고 했다.

 

 곡괭이를 내리치려던 찰나 마을 쪽 방향이 어쩐지 소란스러웠다.

 

 최근 들어 삐딱선을 타고 있는 말괄량이 손녀인가 싶어 시선을 돌려보니 손녀딸은 아니고 그와 비슷한 연배의 낯선 소녀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낯이 익은 청년이 멱살을 잡힌 채로 끌려오고 있었다.

 

 죽을상을 하고 있는 청년의 꼴이 마치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짐승과도 같았다.

 

 그 소녀가 외쳤다.

 

 “대머리 촌장 씨!!”

 

 평생 들어본 적 없는 호칭으로 불린 아이작은 저 소녀가 자신의 손녀딸에 뒤지지 않을 말괄량이라는 사실을 한순간에 간파할 수 있었다.

 

 **

 

 “흐음. 그러니까 성물이라는 것을 고칠만한 곳을 알려달라는 건가?”

 “맞아요! 바로 그거에요! 대머리 촌장 씨!”

 

 고장 난 성물을 고치기 위해 마을을 한바탕 뒤집어 놓은 바리는 마을에서 가장 다식하다는 아이작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길로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아이작은 ‘대머리 촌장 씨’라는 호칭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바리라는 소녀와 성물의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다.

 

 그가 알기로 성물이란 종교가 가지는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아무리 독특한 신앙을 가진 종교라 할지라도 정통성을 주장하는 성물은 있었고 그러한 성물들은 엄중히 보관되기 마련이었다.

 

 ‘이런 어린 소녀에게 성물을 맡겼다고? 보기에는 손녀와도 나이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지그시 뜬 눈으로 바리라는 소녀가 과연 성물의 소지자로 합당한가를 가늠해 보았지만 별달리 특출하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제법 연륜이 쌓였다 자부했건만....... 아무래도 세월을 헛먹은 것 같군.’

 

 바리라는 수녀의 존재는 아이작으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바리에게 이끌려 마을을 강제로 순회하게 된 빌헬름은 지친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며 툴툴거렸다.

 

 “그러니까 너의 신앙심이 바닥이라서 그렇다니까 그러네.”

 

 바리는 빌헬름의 엉덩이를 걷어찬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이작에게 하소연을 했다.

 

 “대머리 촌장 씨. 이건 정말 큰일이에요. 저는 성물에 의지해서 여기까지 온 것인데. 성물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저는 수녀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요.”

 

 걷어차여 심통이 난 빌헬름은 바리의 하소연에도 빈정거릴 뿐이었다.

 

 “고장 난 성물을 기념품 삼아서 돌아가면 되겠네.”

 

 바리가 빌헬름에게 달려들어 무차별적인 구타를 가했다.

 

 아이작은 쏟아지는 폭력의 비를 힘겹게 견뎌내는 빌헬름을 보며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흐음. 아무리 장난이라고는 해도 빌헬름 단장이 저렇게 간단히 맞아줄 인물이던가?’

 

 체구가 작은 소녀에게 깔려 사정없이 얻어맞는 빌헬름의 모습은 도무지 평소에 알던 빌헬름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여러모로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을 품으면서도 아이작은 성물을 고칠 수 있을만한 방법이 없을까 머릿속 서랍들을 뒤적여보았다.

 

 “으음. 보아하니 자네가 가져온 성물은 정밀한 기계장치처럼 보이네만. 시계방은 어떤가?”

 “네!? 이건 어느 상단의 도련님이 차고 다니는 싸구려 손목시계가 아니라고요!”

 “싸구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 손목시계는 싸구려가 아니야. 은퇴한 장인을 설득해서 간신히 제작한 명품 시계라고.......케헥!”

 

 억울하다는 듯이 따지는 빌헬름은 가차 없이 목을 조르려 달려드는 바리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어, 어쩌지? 원장수녀에게 맞아죽고 말 거야......”

 

 아이작은 또 하나의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근처의 종교 시설은 어떤가? 사랄 왕국만 하더라도 꽤 많은 종교 시설들이 있는데......”

 

 그의 의견은 마무리 지어지지 않고 말꼬리를 흐리며 사라져버렸다.

 

 이레귤러의 시대가 도래한 이래로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이비 종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는 말을 도무지 꺼낼 수가 없었다.

 

 “네? 종교시설이요? 안 돼요! 종교계는 소문이 금방 퍼진단 말이에요. 이미 저를 쫓는 이단심문관이 꾸려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단심문관? 이단심문관이 어째서 자네를?”

 “합!”

 

 무심코 말을 쏟아내던 바리가 뒤늦게 입을 가리며 입단속을 했다.

 

 "아,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그 모습을 의아하게 지켜보던 아이작이 그럴듯한 명안을 내놓았다.

 

 “그렇담 대장간은 어떤가?”

 “대장간이요?”

 

 대장간이라는 말에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오자 아이작은 그제야 듬직한 풍채에 어울리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뭐 어떤가? 밑져야 본전인데. 참고로 그 대장간의 대장장이님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네.”

 “신비한 힘이요?”

 “그래. 신비한 힘. 참고로 우리 마을의 농기구들은 모두 그분이 봐주고 있어. 이 곡괭이도 그분의 작품이고.”

 

 아이작에게 곡괭이를 건네받은 바리는 깜짝 놀랐다. 곡괭이가 마치 도검과도 같이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촌장씨. 이거 한 번만 휘둘러봐도 될까요?”

 

 예의상 묻기는 했으나 대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바리는 지면을 향해 곡괭이를 있는 힘껏 내려쳤다.

 

 내리친 곡괭이는 아무런 저항감도 없이 지면을 간단히 뒤집어 놓았다. 범상치 않은 곡괭이일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예상보다도 훨씬 뛰어난 위력에 바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면에 새겨진 흔적은 결코 일반적인 곡괭이의 것이 아니었다. 달걀만한 돌멩이가 마치 명검으로 베어낸 듯이 깔끔하게 동강나 있었기 때문이다. 농기구의 범주를 벗어난 이 곡괭이는 오히려 무기에 가까운 듯했다.

 

 그 모습에 눈을 반짝이며 달려든 것은 다름 아닌 빌헬름이었다.

 

 “오오! 어두운 곳에서도 빛이 날 것만 같은 이 칠흑의 광택. 휘둘렀을 때 기분 좋게 울리는 검명. 게다가 돌을 잘랐음에도 이 하나 빠지지 않는 예리함과 강인함. 이건 보기 드문 명검이군요.”

 “검이 아니라 곡괭이네만.”

 

 빌헬름은 아이작의 핀잔에도 굴하지 않았다.

 

 “아이작 촌장님! 그 대장장이님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부디 저에게. 저에게 소개를 해주십시오."

 

 모처럼 상인다운 모습을 드러낸 빌헬름이었지만 아이작은 난감한 눈치였다.

 

 “으음. 하지만 그분은 속세와의 인연을 꺼리는 기인이시라........”

 “네? 하지만 대장간을 먼저 권한 것은 촌장님이시잖아요.”

 “그건 저 수녀 아가씨에게 권한 거지.”

 

 빌헬름은 입을 다물었다. 아이작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생색을 내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 없는 마을은 빌헬름 상단의 비호 아래 간신히 연명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대장장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자신의 청을 거절하다니.

 

 그것은 마을의 운명을 저울질했을 때 대장장이 쪽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게다가 자신은 안 되지만 초면인 바리는 된다니.

 

 아이작도 빌헬름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조심스레 말을 꺼내었다.

 

 “전에 마을 젊은이 하나가 대장장이님이 만든 물건을 몰래 팔아치운 적이 있었네. 그런데 촌장인 나조차 모르고 있던 그 사실을 어떻게 된 일인지 대장장이님께서 알게 된 게야. 대장장이님은 그전부터 자신이 만든 물건이 사고 팔리는 것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내곤 하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짐을 싸서 떠나려는 대장장이님을 말리느라 한바탕 소동을 치러야했다네.”

 “확실히 기인은 기인인가 보군요.”

 

 직접적인 해명은 아니었지만 빌헬름은 아이작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빌헬름은 호기심이 동하는 물건에 대해서는 강한 집착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한 집착은 상인으로서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인간관계의 측면에서는 단점에 불과했다.

 

 흥미를 가진 물건을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는 상인과, 자신의 작품이 팔리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대장장이.

 

 대척점에 선 것 같은 둘의 마찰은 안 봐도 뻔했다.

 

 그러다보니 둘 다 놓칠 수 없는 아이작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인과는 대체 어떻게 연을 맺게 된 것이죠? 죄송한 말이지만 이 마을에는 그런 기인을 묶어둘만한 매력적인 요소가 없잖아요.”

 “뭐, 흔한 이야기일세. 1년 전쯤 사막에서 조난을 당한 대장장이님을 우연찮게 구조하게 된 게지. 대장장이님은 보은을 하시겠다며 방랑생활을 접고 마을 인근에 정착을 하셨지. 처음에는 은혜 갚기로 시작했지만 어느샌가 그분이 없으면 마을이 돌아가지가 않을 정도로 의지를 하게 되었다네. 우리는 대장장이님을 사막이 보낸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사막에서 조난을 당했다는 이야기에 괜히 뜨끔한 바리가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이 사막에는 조난자가 많나 보네요.”

 “아암. 많지. 워낙 험한 곳이니까. 여기 있는 빌헬름 단장의 조부와도 그런 식으로 인연을 맺었어.”

 “호오, 그래요? ‘객기만으로 사랄 왕국의 국경에 도전하는 멍청이’는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로군요?”

 

 비꼬는 말에 빌헬름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알 길이 없는 아이작은 고개만 갸웃하다 하던 말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대장장이님은 이미 자신의 빚을 모두 갚고도 남을 정도로 우리 마을을 위해 헌신해주셨네. 자네 상단이 우리 마을을 위해 애써주는 것은 고맙네만, 대장장이님 역시 우리에게는 고마운 사람이야. 비록 당장에 먹고 살 일이 궁해 그분께 무언가 더 해드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분이 원치 않는 일을 할 수는 없는 일일세.”

 

 마을의 사정이나 아이작이라는 인물의 됨됨이를 잘 알고 있는 빌헬름으로서는 포기하고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빌헬름이 물러나자 이번에는 바리가 제 차례라는 듯이 물어왔다.

 

 “그런데 그 대장장이는 대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잖아요.”

 “아, 어디까지나 소문이긴 하네만........”

 

 말을 꺼내는 본인조차도 의심이 간다는 표정이었다.

 

 “그것이 말이야. 대장장이님은 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

 “네? 불을 사용하질 않는다고요? 대장장이가요?”

 

 황당한 말에 무심코 되묻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저 실없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네. 하지만 대장간을 드나드는 주민들 중 누구 하나 불을 사용한 흔적을 발견한 이가 없다는 게야.”

 “작업시간이 달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잖아요.”

 “나도 그분의 작업실을 들린 적이 있네만.......”

 

 아이작은 그날에 느꼈던 기묘한 감각을 회고하려고 애썼지만 좀처럼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질 않았다.

 

 “나도 대장일에는 문외한이지만...... 뭐랄까. 아무리 그래도 대장간에서 냉기가 흐르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대장간에서 냉기가 흘렀다고요?”

 “그래, 그분의 작업량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 마치 폐가에 온 것 같은 서늘함까지 느껴졌었지.”

 “그게 사실이라면 확실히 이상한 일이긴 하군요.”

 

 이상한 점을 알아차린 빌헬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는 빌헬름 상단은 몇몇 대장간과도 교류가 있었다. 단장인 빌헬름 또한 대장간을 방문하는 일이 종종 있었으며 그때마다 느꼈던 대장간의 열기는 지금 당장이라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거래를 하는 대장간의 대장장이의 말로는 용광로의 불은 한 번 끄게 되면 다시 지피는 것도 일인지라 어지간해서는 끄는 일이 없다고 했다. 해가 떠 있는 시간 내내 작업실에만 틀어박혀있는 대장장이들이 하나같이 구릿빛 피부를 가지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대장간을 가본 적 없는 바리만이 빌헬름의 반응을 보고 뭔가 평범하지는 않은 일일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아무튼 무언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혹시 대단한 엠브리오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것 같아?”

 

 빌헬름은 들뜬 모습으로 눈을 빛내는 바리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또 뭐가 문제야?”

 “세상에는 엠브리오가 없어도 신비한 힘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거든.”

 “만약 그 대장장이가 엠브리오도 없이 이레귤러의 시대를 끝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어쩔래?”

 “에이. 말도 안 돼.”

 

 빌헬름이 심술 맞게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서 만약이라고 했잖아. 만약. 그 대장장이가 정말로 이레귤러의 시대를 끝냈다고 생각해보라고. 그러면 네가 수녀원을 떠나 고생한 이유가 사라져버리는데?”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그 속내를 읽을 수가 없었다.

 

 “그게 뭐 어때서? 하루라도 빨리 세상이 구원받으면 그야말로 해피엔딩이지.”

 “과연 그럴까?”

 “뭐?”

 

 빌헬름이 바리의 귀에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만약 그가 엠브리오, 그러니까 자연의 신녀에게서 기원되지 않은 힘으로 세상을 구한다면 네가 성물을 훔쳐서 나온 명분이 사라져버리는데?”

 

 심술궂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바리의 안색이 급변했다.

 

 “너의 명분은 세상을 구한다는 것이잖아. 그런데 성물을 고장 낸 것도 모자라서 위기에 빠진 세상을 구하지도 못했다. 글쎄. 세상이 구원받는다고 해도 성물을 훔쳐서 도망친 수녀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바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맙소사. 세상은 해피엔딩이지만 나는 배드엔딩이잖아. 아니, 배드엔딩이 아니라 데드엔딩이 되고 말거야. 원장수녀가 날 죽이려들 게 분명해. 아니, 원장수녀가 문제가 아니야. 이단 심문관에게 잡혀서 고문을 당할 게 틀림없어. 그리고는 불합리한 종교재판을 받겠지? 이단으로 분류된 나는 더욱 끔찍한 고문에 시달릴 거야! 죽을 때까지 말이야!”

 “그, 그 정도야?”

 

 진심으로 두려움에 떠는 바리를 보니 자연의 신녀를 모시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괴짜라는 소문도 마냥 뜬소문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약을 올리려고 장난을 쳤던 빌헬름은 괜히 머쓱해졌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잖아. 그 대장장이가 신비한 능력을 가진 것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 그런가? 그런 거야?”

 

 끔찍한 상상을 하며 두려움에 떨던 바리였지만 침착하게 생각해보니 빌헬름의 말마따나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네. 일단 확인이 필요하겠어.”

 

 바리는 활짝 미소 지으며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대머리 촌장 씨. 대장간의 위치 좀 알려주시겠어요.”

 

 지극히 가식적인 바리의 미소는 누가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수상했다.

 

 “일단 그 대장장이를 만나봐야겠어요.”

 “만나보고?”

 “만나보고.......”

 

 바리는 빛이 사라진 눈으로 애써 눈웃음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수틀리면 아무도 모르게 신녀님의 품으로 돌려보내면 되는 일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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